이상하다 이상해하룻밤을 쉬고 다음날 다들 만아에 대한 아무 의심없이 안심하고 다시 따라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 권역에 들어가자 모든 감각이 이상한 것이, 매우 음습하고 차가웠고 나무는 땅 권역보다 더 많아 보였다. 게다가 전부 커다랗게 하늘을 향해 치솟은 고목들로, 길도 명확하지 않아 모두 들풀을 밟으며 걸어갔다. 낙엽이 높게 쌓여 땅은 미끄럽고, 습도가 높아서 숨쉬기가 약간은 곤란했다.운무는 땅 권역보다 더 짙어서 가시거리가 5~6m정도로 모두가 길을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만아가 나뭇가지를 꺾어 자신의 붉은 손수건을 매고 그걸로 운무를 헤치면서 갔다. 뒤따르는 사람들은 이 붉은 색을 보며 따라가 대오에서 떨어져 낙오될 일이 없었다. 사식이는 호흡이 갈수록 곤란해져 산에 앉아있는데, 사람들의 거칠고 낮은 숨소리만 들을 수 있었고, 가끔 누군가 기침을 하였고 점점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누가 기절했다!” 대오에서 갑자기 큰 외침이 들려 위왕이 빠른 걸음으로 뒤로 갔다. 기절한 자는 사병으로 얼굴은 청색증을 보이고 입술은 창백한데다가 약간 보랏빛이 도는 것이 호흡곤란 증상 같았다. “좀 비켜, 에워싸지 말고.” 위왕이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며 옷으로 바람을 불고 사병의 인중을 누르자 잠시 후 천천히 깨어났으나 그는 이미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업고 가자, 다들 돌아가면서 업어!” 위왕이 명령했다.한 명을 업고 계속 앞으로 가는데 갈 수록 많은 사람들이 이어서 쓰러졌다. 한 시진 동안 수십명이 쓰러졌고 사식이도 버티지 못해 결국 서일에게 업혔다.위왕은 답답한 심정으로 만아에게 물었다. “이 하늘 구역은 얼마나 오래 있어야 벗어날 수 있니?”만아가 붉은 손수건을 들고 조용히 위왕을 보며, “적어도 6시진이요, 이것 또한 최대한 빨리 갔을 때 얘기입니다.”“아직 5시진이나 더 가야 한다고?” 위왕이 크게 놀라, “6시진이면 해가 지네, 그럼 여기서 하룻밤을 더 보낸다는 소리 아닌가? 그게 어떻게 가능하나?”만아가 미소를 지으며
돌변한 만아“신경 쓰지 마세요, 만약 만아가 빨리 가면 무슨 수를 써서든지 반드시 쫓아가셔야 합니다!” 정집사 마음 속에도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우문천을 재촉해서 만아를 따라가게 했다.정집사는 가장 최악의 가능성은 말하지 않았다. 그건 바로 만아가 혈술에 당했을수도 모른다는 일이다.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은 것이 정집사가 아는 바에 따르면, 그동안 무당 한 명이 폐관 한 것 외엔 지금까지 죽은 무당이 없었며 이 혈술은 무당의 목숨을 사용해야만 해서 만약 혈술을 하기 위해 무당 한 명을 희생해야 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우문천도 깊이 신경 쓰지 않고 하늘 권역이 매우 기괴하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가 길을 안내하는 만아를 쫓아갔다.만아가 빨리 가자 우문천도 빨리 가는데 이상한 것이 만아라는 목적이 있어 그녈 쫓을 때 우문천의 호흡은 전처럼 그렇게 곤란하지 않았고, 눈 앞의 운무도 그렇게 짙지 않다.우문천은 하늘 권역을 이제 거의 다 빠져나가는 줄 알고 황급히 모두에게 소리치길, “얼른……”우문천은 말을 멈추고 기괴하다는 듯 뒤쪽의 길을 봤다. 뒤쪽 길은 거의 안개가 없는데 방금 그의 뒤를 따르고 있던 큰 대오가 이미 보이지 않았다.우문천은 순간 가슴이 철렁해서 고개를 돌려 만아에게 묻는데, 배가 아픈 느낌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내려다 보니 배에 비녀가 꽂혀 있었고 선혈이 흘러나왔다.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물러가서 1장(3.3m)정도 거리에서 우문천을 보더니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만아, 너……” 우문천이 배를 쥐었다. 진짜가 아닌 그저 몽환적인 느낌 뿐이었다. 두 손에 피가 젖어 물들었고 배에 통증을 느끼니 비로소 사실인걸 깨달았다. 만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왕야, 죄송합니다!”“…대체 왜?” 우문천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만아에게, “네가 왜 나를 찌르지? 난 널 구해준 적이 있는데...”“왕야는 쫓아오시면 안되니까요!” 만아가 고개를 들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작게 숨을 토해내며, “무당 지대는
길을 잃은 대오만아는 풀려난 뒤 연달아 얼굴이 벌게지도록 기침을 하면서도 하하 웃으며, “그들 상황을 알기는 쉽죠, 앞으로 간 다음 아래를 보면 전부 볼 수 있어요.”우문천이 한손으로 만아의 손목을 잡고, “그럼 앞장서!”우문천의 호흡곤란 증상은 완전히 없어졌고 눈앞에 길도 분명해지기 시작해서 심지어 여기는 절대로 정집사가 얘기한 하늘 권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아가 그들을 어디로 데리고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5,000여명이 만약 안에 갇혀서 나올 수 없게 된다면, 헛된 희생이 되고 만다.우문천은 대오를 찾을 방법을 생각해 내서 그들을 길로 끌어내야 했다.만아는 이번엔 반항하지 않고 우문천에게 끌려 앞으로 갔다. 산길을 대략 반 시진 정도 걷고 작은 봉우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침내 산맥의 다른 쪽 산 위에 사람이 있는 게 보였다.이는 군대 대오로 그곳엔 엷은 운무가 있었지만, 걷는 모습이 보였고 앞에 길을 이끄는 사람은 정집사로 군인들의 발걸음이 매우 느리고 계속 주저앉는 것이 길을 잃은듯 해 보였다. “셋째형, 셋째형!” 우문천이 마음이 급해 그쪽 산을 향해 계속 소리쳤지만, 정집사 곁을 가는 위왕은 우문천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였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누군가 기절하고 바로 병사들이 업는 것이 우문천과 같이 있을 때와 여전히 같은 상황이였다. 그들의 호흡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앞으로 더듬거리며 걷는 발걸음을 봐서는 앞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로 보인다. 하지만 우문천이 여기서 내려다 보면 아래 안개는 아주 얇게 한 층뿐이었다. “저들을 데리고 나와!” 우문천이 화가 나서 한 손으로 만아를 잡아 끌고 반대쪽 손으론 만아를 한 대 치려고 했으나 그는 태어나서 여자를 때려본 적이 한번도 없었고 또 이렇게 익숙한 얼굴에 어떻게 손찌검을 할 수 있을까, 화가 나서 이만 뿌드득 갈았다.만아가 미소를 거두더니 차갑게, “멋대로 무당 지대에 침입한 자는 죽어요, 저들은 나갈 수 없는 운명입니다.”“그럼 너를 죽이겠다!” 우문천이
혈술“우리 남강 북쪽이라고?” 우문천이 이 말을 듣고 만아를 노려보며, “그래서 넌 도대체 누구야? 넌 절대로 만아일 수가 없어.”“전 만아예요, 저도 남강 북쪽의 무녀라고요, 믿던 말던 마음대로 하세요.”우문천이 고개를 흔들고, “네가 만아라면 어떻게 사식이를 저 안에서 죽도록 내버려 둘 수가 있어? 넌 사식이와 제일 친한 사이 아니야?”만아가 살짝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작게 한숨을 쉬고, “사식이는 오면 안됐어요. 그런데 이미 와버렸으니 죽어야 하는 운명인 거겠죠.”이렇게 자기 소중한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야 한다는 운명’이라는 말을 뱉고, 조금의 슬픔도 연민도 없는 모습을 보고 우문천은 절대로 그녀는 만아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귀신이 씐 건가?’우문천은 이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어서 자신의 허리띠를 풀러 자신과 만아의 손을 하나로 묶어 만아가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 했다.한편 위왕 등 사람들은 여전히 뱅뱅 돌았다. 운무가 겹겹이 눈을 가리고 길을 분별할 방법이 없으니 갈 수록 많은 사람들이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다. 날은 이미 천천히 어두워져 만약 저녁에 어기서 밤을 보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쓰러질지 감도 안 잡힌다.“어때? 찾았어?” 안왕이 사람을 데리고 돌아오자 위왕이 바로 물었다.안왕이 고개를 흔들고 무거운 얼굴로, “우리가 만아에게 당했어, 만아가 안 보여, 천이도 안보이고.”위왕이 열 받아서 칼로 나무 하나를 찍어버리더니, “땅 권역을 무사히 나가길래 그 계집애를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우릴 속이고 있었다니..!”안왕이 정집사를 보고, “자네는 우리를 데리고 하늘 권역을 나갈 방법이 있나?”정집사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얼굴은 이상하게 창백한 것이, “여기가 하늘 권역이라는 것부터 의심스럽습니다. 하늘 구역은 이렇지 않습니다.”“하늘 구역이 아니야? 그럼 어디야? 우리가 땅 권역을 나온 게 아니었어?” 안왕이 놀라서 물었다.정집사가 눈을 감더니 지나간 길을 찬찬히 더듬어 봤다. “땅 권역을
삼자대면진정정과 우문호는 외곽에서 소홍천, 박원 등과 합류했다. 소홍천이 대략의 상황을 얘기해 주며 만아가 약을 복용했고 문제 없을 거라고 했다.진근영의 전서구에 만아의 상황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쓰여 있지 않아서 우문호와 진정정은 소홍천의 이 얘기를 듣고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이번 작전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외곽에서 하루 반나절을 근영군주와 원경릉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원경릉이 거의 탈진 상태가 되도록 달려와서 말에서 내릴 때까지 계속 숨을 몰아쉬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부축하며 원망하고 안타까움을 담은 말투로, “뭐 하러 왔어? 얼마나 위험한데? 애들은 어떻게 하고?”원경릉이 떨리는 다리를 주무르며 얼굴은 온통 먼지 투성이로, “이리 나리께서 데려갈 거야, 걱정하지 마, 아이들은 충분히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있어.”우문호가 원경릉의 얼굴을 닦아 주며, “그럼 넌 산에 들어가지 마, 군주와 여기서 기다리자.”원경릉이 웃으며, “그 멀리서 까지 왔는데 여기서 기다리라고? 내가 무슨 바본줄 알아? 당신들이랑 같이 들어갈 거야.”소홍천이, “사실 우리 다 갈 필요는 없어요, 만아 상황이 괜찮아서 만아와 정집사가 길을 안내하면, 무당 지대를 데리고 틀림없이 데리고 갈 수 있고, 사식이와 서일이가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났을 경우를 대비해 우리가 구출할 수 있도록 가는 길에 표식을 해 놨을 거예요. 지금 우리에게 위험을 알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크게 위험에 빠지진 않았을거에요.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죠.”진근영이 정색하며, “아뇨, 그들은 이미 안에서 길을 잃지 않았을까 의심됩니다. 만아 상황은 맞지 않아요. 만아가 비록 신내림은 해결했지만, 혈술을 당했을 수도 있어서 저들을 미로 안에 끌어들여 죽였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들이 사람을 내보낼 수 없었던 거예요. 우리가 어서 들어갈 것을 제안합니다! 서일이 가는 길에 표식을 해 두었으면 그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우문호가 놀라며 의아해, “만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어떻게 된
땅 권역잠시 후 우문호가, “이번에 난 홍엽을 믿어, 우리가 죽으면 홍엽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가 원하는 게 바로 약품이라면.”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모두 산으로 들어가는데 바깥 지역은 가기가 쉬워 놀랄 것도 위험한 것도 없었고 서일이 남긴 표식도 있어서 길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땅 권역으로 들어가니 표식이 명확하지 않고, 약간 어수선한 것이 어떤 곳은 심지어 표식이 2개였으며 약간 이상한 낌세가 들었다. 땅 권역에 들어가니 수많은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였는데, 홍엽이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 꽃들은 모두 독이 있고 건드리기만 한다면, 혈액에 닿을 필요도 없이 피부를 통해 독이 침투해 곧 죽게 된다고 했다.점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표식이 없어졌고 발자국도 볼 수 없었다.진정정이 먼저 앞으로 가고 다시 돌아오더니, “이상해, 여기는 비가 내린 적도 없어… 대오가 지나갔다면 흔적이 남아있을텐데. 왜 흔적조차 없는 거지? 땅바닥에 있는 풀도 밟지 않았어. 멀쩡해. 여기에 온 적이 없는 건가?”우문호가 홍엽을 보고, “땅 권역에 다른 길도 있나?”홍엽이 고개를 흔들고,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우문호의 눈에 의혹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진정정의 말 대로 대오가 지나갔다면 분명 흔적이 남았을 텐데 말발굽 자국도 없고 땅 위엔 나뭇잎이 쌓여 눌린 흔적조차 없이 더부룩하게 쌓여 있다. “그들이 여기를 지나갔을 리 없어. 우리가 잘못 왔던지, 아니면 그들이 잘못 갔던지.” 진정정이 고부동하게 말했다.모두 홍엽을 보고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홍엽이 손을 내젓더니, “이 길을 아주 정확합니다. 열 번도 넘게 다닌 길이니까요. 만약 못 믿으시겠으면 직접 길을 찾아 가셔도 됩니다.”여기는 길이 많아 걸어서 대략 330m정도에 갈림길이 있고 어떤 곳은 심지어 3~4개로 길이 갈라져 있는데 어느 쪽 갈림길이든 모두 누군가 지나간 것 같진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우문호는 상당히 미심쩍어하며, “처
미로로 가다홍엽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들이 미로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요, 땅 권역에서 미로에 들어간 뒤 아무도 알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심지어 자신이 미로에 들어간 줄도 모르고 계속 맴돌기만 하는 거죠.”홍엽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의 마음 속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홍엽의 말은 즉, 그들이 땅 권역 미로로 가버렸다면, 들어가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나올 수 없다는 뜻이었다.홍엽은 우문호들이 뜻밖에도 미로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을 듣고 어이가 없어 따져 물었다.“당신들이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가능성이 커요. 당신들 미쳤습니까? 결국 그들과 같이 죽겠다는 거예요? 전 그럼 당신들과 같이 갈 수 없어요.”원경릉이, “당신까지 우리와 같이 미로에 들어갈 필요 없어요. 그냥 우리를 들어가게 데려다 주기만 하면 돼요. 당신 말 대로 라면,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미로에 있는 것조차 모르는 거니, 누군가 가서 그들에게 알려줘야 해요.”“알린다고 나올 수 있습니까?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요? 제가 말했죠. 당신이 죽는 걸 막으러 온 거라고. 전 당신을 미로로 데려가지 않을 겁니다.” 홍엽이 담담하게 말했다.우문호가, “원 선생은 안 가도, 나는 가. 내가 들어가는 건 괜찮지?”홍엽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왜 굳이 희생을 하죠?”“저들은 내 형제야, 난 반드시 그들을 데리고 나올 거야.” 우문호가 굳건하게 말했다.“자신을 희생해서?” 홍엽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형제면 뭐?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죽는다.우문호는 홍엽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공손하게 예를 취하며, “한 가지 공자의 인정에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만약 제가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게 된다면, 번거롭겠지만.. 저들을 데리고 남강 북쪽에서 멀리 떠나 주시면 더없이 감사하겠습니다.”홍엽이, “이건 자살행위예요.”“예, 그치만 공자 제 소원을 들어 주세요.” 우문호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고
미로에서 일행을 찾아우문호가 예를 취하더니, “고맙습니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몇 가지를 당부 하려는데 원경릉이 이미 한 걸음 먼저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홍엽이 깜짝 놀라, “원경릉, 약속을 지키지 않다니!”홍엽이 손을 뻗어 원경릉을 데리고 나오려고 했으나 원경릉이 잽싸게 안으로 달려 들어가며, “공자 길을 안내 해줘서 고마워요.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키지 못 했어요!”원경릉은 이미 보이지 않은 채 목소리만 울려 나오는데 우문호가 깜짝 놀라 바로 뒤 따라 들어갔다. 다행히 엷은 운무속에 원경릉이 있는 걸 발견했다.우문호가 앞으로 와서 원경릉의 손을 잡았고 두 사람은 뒤를 돌아보는데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가 천천히 진정정과 진근영이 나타났고, 소홍천과 박원도 나타났다. 또 잠시 후 홍엽과 못난이도 나타났는데 홍엽의 얼굴이 단지 조금 불쾌해 보였다.그러니까, 결국엔 모두가 미로로 들어왔다.한편 위왕 등은 산 속에서 몇 바퀴를 계속 돌았고, 쓰러지는 사람이 갈 수록 늘어 다음날이 되자몇 명은 임종 상태가 되어 모두의 마음에 절망이 가득 찼다.이 땅 권역은 왜 계속 맴돌기만 하지?피로하고 지친 일행은 산속을 계속 도느라 가져온 육포도 떨어졌고 물도 다 마셨다. 사람이 며칠 안 먹을 수는 있지만, 물은 마시지 않을 수는 없어 절망이 점점 더 퍼져 나갔다.정집사는 그들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일단 말로 뱉으면 모두 더욱 절망할 것이고 심지어 정집사를 죽여 분풀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계속 출구를 찾기 위해 애 쓰는데 정집사도 호흡이 약간 곤란해 지는 것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환각이 약간씩 나타났다.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정집사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 계속 사방을 찾아다니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정신을 더 버티게 만들어줬다.오후가 되어 한 병사가 칼을 뽑아 자결했는데 그는 처음 기절했던 사람으로 계속 질식의 고통을 느끼며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서 왔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