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여도는?사식이가,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가끔 제가 본 장면이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거든요. 이게 어쩌면 원 언니가 얘기한 어릴 때 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다가 다시 그와 같은 장면을 보고 기억의 깊은 곳을 건드려 생각이 나는 거 일지도 몰라요. 만아가 지금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닐까요.”“아, 그렇게 된 거 로군요.” 만아가 홀연히 깨달았다.원경릉이 비록 이렇게 다독였지만 마음 속에 기억해 두고, 이 일이 정리되면 탕양을 시켜 만아에 대해 조사해 보기로 했다.안풍친왕 부부는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보친왕부에 갔다.이번에 세사람은 평소처럼 온화하게 대화가 가능했다.그때 일을 안풍친왕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보친왕에게 알렸고, 그건 심금을 울리는 적서 간의 싸움이었다. 유친왕의 야심은 잔인하고 강렬해 하마터면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할 뻔 했다. 마지막에 큰 힘을 들여 위험한 국면을 겨우 만회했으나 수많은 사람이 그 일로 목숨을 잃고 처자식과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보친왕이 다 듣고 부들부들 떨며 입으로 믿을 수 없다고 했지만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얼굴은 그야말로 처참했다.보친왕이 휘종제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줬는데 왕릉에서 가지고 나오지 않고 순장 구덩이 한쪽 모퉁이에 두고 위에 이미 너덜너덜해진 비단을 덮어 사람들의 이목을 피했다고 했다.“병여도는?” 안풍친왕이 물었다. “이미 홍엽공자의 손에 넘겨줬느냐?”보친왕이 고개를 흔들며 대경실색하더니, “홍엽공자와 상관없습니다. 그는 이 일에 참여하지 않았고 북막의 진씨 집안이 사람을 보내 병여도를 가져갔습니다.”안풍친왕이 놀라서, ‘어떻게 북막의 진씨 집안일 수 있지? 그럴 리 없어.”남강과 결탁하고 있는 자는 홍엽이고, 당한 것도 남강의 회혼술이다. 그리고 홍엽이 사람들을 북당에 풀어 두었지만 진씨 집안에서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북막 진씨 집안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직접 진씨 집안의 영패를 확인했어요. 진씨 집안의 심복을 보내 저와 접촉했습니다.” 보친왕이
안풍친왕비와 보친왕하지만 보친왕의 말에 안풍친왕은 당혹스럽다 못해 전혀 감이 안 잡힌다고 느꼈다.겉으로 보면 이미 북당에 침투해 있고, 보친왕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건 홍엽인데 보친왕은 기어코 북막의 진씨 집안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안풍친왕 일생 중 지난 30년을 전부 북막 진씨 집안과 싸우며 보냈다.그래서 알 수 있다. 진씨 집안은 음모나 계략엔 서투르고, 무력과 전투력만 믿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침투하는 건 진씨 집안 솜씨가 아니며, 진씨 집안은 이 일을 할 수도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랜 시간 포석을 갖추고 잠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십년 전의 일에 대한 앙금을 읽어내 글로 풀어야 하는데 진씨 집안에겐 어불성설이다.하지만 보친왕의 진지한 얼굴을 보면 거짓말 같지도 않다.이건 뭔가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해!“네 죄는 천인공로 할 대죄로 널 어떻게 처리할지는 황제께서 결정하실 거다. 네 자신이 벌인 일의 죄과는 네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안풍친왕이 보친왕에게 말했다.보친왕은 안풍친왕비를 향해 무릎을 꿇고 절하며 슬픔과 후회가 가득한 목소리로,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안풍친왕비는 눈을 감았지만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잠시 후 안풍친왕비가 눈을 뜨고 안풍친왕에게, “먼저 돌아가세요. 전 여기 며칠 있으려고요. 마당에 대추가 익었던데 맛이 그립네요.”안풍친왕이 왕비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나갔다.보친왕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고, 안풍친왕비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보친왕을 보지 않고 문 밖에서 안으로 아주 조금씩 더 안으로 비춰 드는 햇살만 본다. “일어나거라!” 안풍친왕비가 마침내 보친왕에게, “남강의 무고 환술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집념으로 작동되는 거지. 그 말은 네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내가 한 말을 완전히 믿은 적이 없었다는 말이고, 그게 누군가가 틈탈 기회가 됐구나.”보친왕이 몸을 부르르 떨며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안왕과 위왕은 왕릉 순장 구
홍엽을 만난 우문호어떤 사람은 멋대로 날뛰고 흉악한 표정을 지어도 악의가 없다고 느껴지고, 반대로 또 어떤 사람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자애롭고 선한 눈짓을 해도 위험인물이라는 경계심이 드는 사람이 있다.홍엽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우문호가 아직 대답하기도 전에 마차 가리개가 훅 젖혀지며 만두 늑대가 고개를 내밀더니 바닥에 뛰어내려 우문호 앞에서 발라당 누워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그리고 가리개가 다시 젖혀지더니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고 기쁜 듯, “태자 전하!”우문호는 장검을 칼집에서 꺼내 홍엽을 가리키며 싸늘하고 예리한 눈빛으로, “네가 할머니를 납치했나?”칼날이 날카로운 빛을 발하며 홍엽의 목을 겨누자 흰 피부에 푸른 혈관이 또렷하게 보이는데, 조금만 옆으로 비껴도 칼날이 피부를 가르며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게 만들 태세다. 홍엽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우문호가 손을 쓰지 않을 거란 걸 아는 듯, 여전히 해맑은 미소가 걸려 있다. “태자 전하 오해 십니다. 딱 그 반대의 경우지요. 제가 노마님을 구해드린 겁니다.”서일이 달려가 할머니를 부축해 내려오며 화난 목소리로, “그런 선한 마음을 품었을 리가 있나? 노마님을 납치해 간 건 분명 당신이야.”할머니가 얼른 해명하며, “아니, 아니야, 이 젊은이가 날 구해줬어.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네.”우문호가 홍엽을 노려보자 홍엽은 눈을 굴리며 다른 데를 보는데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고 더도 덜도 말고 딱 적당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있다.우문호가 검을 거두었으나 여전히 예리한 눈빛으로, “그런 가요, 그거 참 절묘합니다. 내가 막 노마님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공자께서 한 걸음 빠르셨군요.”“가다가 우연히 목격했을 뿐이니 태자 전하께서는 굳이 감사하실 정도 아닙니다.” 홍엽이 정색하고 느긋하게 말했다.우문호가 칼을 칼집에 넣으며 담담하게, “그렇게 말씀하시니 감사하지 않도록 하죠, 그럼 이만!”서일에게 노마님을 말에 태우라고 했다.“태자 전하!” 홍엽이 불렀다.우문호가 막 말
홍엽과 우문호의 신경전홍엽이 명랑하게 웃으며, “그거 잘 됐네요. 가는 길 내내 태자 전하와 함께 할 수 있다니 지겹지 않겠습니다.”“그러게요. 얘기를 나눌 수 있겠군요. 공자께서는 어떻게 마침 딱 노마님을 구하신 겁니까?” 서일은 어리둥절했다. 전하의 말은 무슨 뜻이지? 홍엽을 나쁜 놈이라고 했다가, 또 홍엽을 데리고 경성을 들어간다고 하고. 게다가 두 사람이 말하는 태도가 사뭇 화기애애 한 것이 이해가 안간다.서일이 자기 말을 홍엽에게 주고 마차를 몰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에 우문호가 마차에 올라 할머니께 안부를 묻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할머니가 우문호의 손을 잡고 작은 소리로, “저 젊은이가 우아해 보이지만 무공이 굉장해. 배에서 내린 뒤 우리는 육로로 서절까지 갔는데, 기슭에 세워져 있던 마차에 태워 어느 집에 가두더군. 첫날 밤에는 아무 일 없다가 둘째날에 그 풍야라는 아가씨가 우리 늑대를 죽이려고 마당에 고기를 떨어뜨려 놓고 늑대를 유인해 내는데 수많은 사람이 늑대를 때려 죽이려고 매복을 하고 있고, 난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지. 엄청난 소리만 들리고 잠시 후 늑대가 문을 부수고 나를 꺼내 줬어. 그때 이 젊은이와 그들이 싸우는 걸 봤는데 젊은이가 몇 사람을 죽이고 결국 곤경에서 우리를 구해 마차로 도망 시켰지. 우리는 거기를 빠져나가서 객잔에서 하룻밤 묵고 오늘 비로소 경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른 걸 세.”우문호가 듣더니, “놀라셨겠습니다.”할머니가 웃으며, “처음엔 좀 놀랐는데 뒤엔 늑대가 따라와서 안 무서웠어. 배에선 아무도 날 괴롭히지 못하게 해서 고생도 겁날 일도 없었지.”말을 하며 할머니는 눈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고 부드럽게 칭찬하며, “정말 생각도 못 했어. 늑대가 이렇게 총기가 있다니.”눈 늑대는 칭찬을 듣고 사정없이 꼬리를 흔들어 댔다.우문호가 한마디 꾸짖으며, “자중해. 넌 늑대야, 개냐 꼬리 흔들게?”눈 늑대는 우~하고 울더니 할머니 발치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았다.“저 홍엽공자란 자는
경성으로 돌아온 우문호경성으로 돌아오는 길, 늦가을 경치가 상당히 아름답다. 관도 양 옆은 반쯤 단풍이 든 나무가 늘어서 있고 옅은 노란색으로 물든 낙엽이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데 한층 또 한층 금빛 찬란하다.말은 매우 빨리 달릴 수 있지만 할머니의 몸이 마차가 까부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서일에게 천천히 몰라고 했다.홍엽공자는 마치 북당의 경치를 특별히 좋아하는듯 길을 따라가며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고, 가끔 말을 따라가는 걸 놓치기도 했다.특히 회관(回關)에 도착했을 때는 온 산과 들이 반은 단풍이 들고 반은 녹색인 것을 보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전하께서 아까 제가 만약 낯선 땅에서 객사하면 하고 말씀하셨을 때 슬프고 처량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니 여기서 죽는 것도 일종의 행복 아닐까요?”우문호는 홍엽이 산수를 보느라 넋이 나간 모습에 조금도 경계를 풀지 않고 오히려 이자의 마음이 음흉해 본심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공자께서 여기서 죽는 게 행복하다고 느끼시면 저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우문호는 시선을 거두고 말을 달렸으며, 홍엽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웃었다.명원제는 보친왕에게 첫번째 처벌이 내려져 친왕의 봉호를 박탈했다.보친왕은 당초 휘종제가 책봉한 것으로 그가 어릴 때 친왕의 자리를 허락했다. 규정에 따르면 황제의 아들만 친왕으로 책봉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당시 유친왕은 모반하지 않았어도 보친왕은 고작해야 군왕에 봉해질 수 있었다.휘종제는 이 조카에게 한량없는 황은을 베풀었고 그의 충심과 경건한 마음을 결코 바꾼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왕릉의 무덤을 파헤쳐 휘종제의 시체를 훔쳐 가다니 명원제가 어찌 진노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보친왕을 죽여도 할 말이 없다.하지만 병여도를 아직 찾아오지 못했고, 그 일은 아직 완벽한 조사 결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명원제는 잠시 그의 목숨을 살려 두기로 했다.우문호 일행이 오주(梧州)에 도착하자 구사가 사람을 데리고 맞으러 와서 보고하고 정보를 교환한 후, 우문호는 할머니와
병여도 사건에 대한 보친왕의 고백“박원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우문호는 전혀 믿기지 않아, “박원은 당신을 봤는데 만약 죽이지 않으면 자신의 신분을 폭로하는 꼴이 되는 거 아닙니까?”보친왕이 담담하게, “정말 봤을까? 당시 칠흑같이 어두워서, 박원의 관찰력이 예민했다고 해도 내가 부인하기만 하면 누가 그의 말을 믿겠나? 내가 당시에 갑자기 그를 공격한 건 그저 말을 빼앗아 달아나기 위해서로 살인을 하려던 게 아니었어. 전체 큰 그림에서 살인하지 않을 수 있으면 나는 절대로 살인하지 않아.”“애민 정신이 철철 넘치게 말씀하시는 데 놀잇배 아가씨같이 왜 이러십니까?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잖아요? 당신이 세운 일련의 계략에 일곱째도 말려들 뻔 하지를 않나, 심보가 아주 악하기가 이를 데가 없던 데요?”보친왕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맞아, 그 아가씨와 몸종은 내가 죽였네. 일곱째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그런 거지 무슨 악한 심보 때문은 아니야. 일곱째는 괜찮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단지 당시 국면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 수록, 여러 사람이 연루되고 반대로 난 안전해 지거든.”“그럼 철패는요? 일부러 철패를 남겨두어 아바마마의 손발을 묶어 둔 것도 국면을 더욱 어지럽히기 위해?”보친왕이 한탄하며, “그 철패는 일찌감치 수중에 넣었던 거지. 만일 발각되더라도 이 철패가 우리집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쉽게 쓸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너희들이 내가 그날 밤 도망간 길을 추적해냈고, 놀잇배를 탄 것까지 알아냈어. 내 얼굴을 아는 아가씨와 몸종을 죽였지만 안심이 안됐네.”우문호가 차갑게, “안타깝게도 당신은 모르셨 더군요. 그날 당신을 접대한 건 오월이가 맞지만 오월이의 몸종은 아파서 오지 않고 버들이의 시녀가 대신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당신은 오월이와 몸종을 죽였지만 당신을 진짜로 본 사람은 버들이의 하녀였어요. 그녀가 당신이 남긴 철패를 주웠고요.”보친왕이 우문호를 보고 담당하게 웃으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우문호도 보친왕을 보고 갑자기
보친왕과 접선한 자는 누구인가보친왕이, “북막 진씨 집안의 밀정이야. 기왕비는 자기가 똑똑하다고 자만하고 있었지만, 저택에 이미 사람이 잠입해 있었던 거야. 우문군이 강남 거상의 지원을 받으려고 자기 딸의 혼사를 거래 조건으로 삼아 기왕비를 격노하게 만들었지. 부부의 내분은 언젠가는 있을 일로 내가 마침 그 기회를 틈타 우문군을 희생시켰으나 조금도 안타깝지 않네. 우문군은 멍청하고 못 됐어. 내 손에 당하지 않아도 조만간 다른 사람 손에 당하게 돼 있는데 굳이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우문군의 후궁 주명양과 당신은 왕래가 있었습니까?” 우문호가 다시 물었다.보친왕이 고개를 흔들며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주명양과 뭐 하러 왕래를 해? 걔가 뭘 할 수 있다고?”우문호가, “기왕비가 서재의 도난 사건을 꾸밀 때 사람을 시켜 소문이 밖에 세나가도록 했습니다. 당신들 사이에 접촉이 없었으면 주명양이 접촉한 사람은 바로 당신과 결탁한 자일 겁니다.”보친왕이 놀라서, “주명양이? 그건 몰랐어. 북막 사람은 자신들 방법이 있어서 주재상의 손녀를 찾더라도……”보친왕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그래서 나와 접촉한 게 진짜 북막 사람이 아니다?”“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고, 큰 그림대로 배치하고 각계 각층에 침투하는 게 북막 사람일 거라 생각합니까?”북막 사람은 사지 육신은 발달했지만 뇌는 단순해서, 무력과 전투를 숭상하고 싸워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략을 꾸미는 것 따위는 자기들이 먼저 못 견딜 게 틀림없다. 그러니 북당 재상의 손녀 주명양을 내부 첩자로 포섭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누구지?” 보친왕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다시 생각해 보세요. 당신과 접선한 사람이 선비족일 가능성은 없나요?”보친왕이 고개를 저으며, “나와 접선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 진씨 집안의 영패였어. 그리고 진대장군의 친필 서신도 있었지. 절대로 잘못 봤을 리가 없어. 진씨 집안 영패는 내가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자네가 태자로 책봉될 때 북막
주명양의 폭탄 선언“입구에 홍등을 걸어 놓으면 그자가 오기로 했지.”우문호는 망설였다. 지금 계획을 망친 가운데 홍등을 걸어도 올 리 만무하지만 홍등을 건 뒤 의심스러운 사람이 부근에 어슬렁거리는지 살펴 볼 수는 있다.그래서 우문호가 갈 때 보친왕부의 늙은 집사에게 입구에 홍등을 걸어 두라고 하고 홍매문 사람에게는 입구를 주목하고 있으라고 했다.이틀간 지켜봤으나 아무 결과가 없고 도리어 구사가 홍엽을 데리고 할머니를 경성에 보내 드려, 할머니를 태운 마차가 문 앞에 이르자 우문호가 직접 나가 맞이했다. 홍엽이 싱글벙글 웃으며, “외람되게도 선물을 미쳐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일단 들어가서 방해하지 않고 있다가 며칠 후 선물을 준비한 뒤에 다시 태자 전하를 찾아 뵙겠습니다.”우문호는 홍엽의 악의 없이 수려한 외모를 보며 마음속으로 저자가 이 모든 일을 배후에서 지시했다는 생각에 아무 증거도 없지만, “선물은 됐고 공자께서 오셨으니 주인의 도리를 다해야 지요. 공자의 시중을 들 두 사람을 보내드리겠습니다.”홍엽이 인사하며 눈을 반짝이더니, “그러면 감사하죠. 저는 해복객잔(海福客棧)에 머물고 있습니다. 전하, 선물은 역시 보내야 하지요. 전하께서는 기다렸다가 받기만 하시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유유히 사라졌다.우문호는 탕양에게 염탐꾼 둘을 홍엽 신변에 붙여 살피라고 명했다.원래 주명양이란 끈은 가지고 있으려 했으나 지금 상대방이 추호도 틈을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주재상이 주명양을 직접 심문했으나 주명양은 한사코 불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주재상이 마음을 모질게 먹고 주명양의 입에서 뭔가를 끌어내기 위해 매를 들겠다고 하자 주명양이 그제서야 겁을 먹고 형장이 가해지자 날카로운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태자 전하, 태자 전하 절 구해주세요……”재상의 저택 사람은 다급히 태자를 청해 우문호가 왔을 때는 큰 마당에 모든 하인을 전부 물리고 주재상이 복도 태사의에 앉아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있었다.주명양이 마당에 꿇어 앉아 있는데 전신이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