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루 사람의 증언주명양은 우문호의 말에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는 얼굴이다. 자신이 들은 걸 도저히 믿을 수 없는지 전신을 부르르 떨며 분노와 슬픔으로, “정말 무정하네요, 어떻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죠? 내가 임신한 걸 알았을 때, 때가 무르익으면 날 위해 혼례를 치르고 당당하게 아내로 맞겠다고 하더니 어떻게 저를 속일 수가 있나요?”우문호는 당장 주명양의 목을 조를 듯 소리치며, “무슨 개소립니까? 당신은 지금도 여전히 큰형의 첩으로 이혼장이 없으니 부부의 명분도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이혼장은 간단한 거잖아요?” 주명양이 울며, “내가 그를 찾아가서 이혼장을 받아오면 바로 나랑 혼인할 건 가요?”“그런 문제가 아니라 난 절대로 당신과 어떤 관계도 없으니, 닥쳐요!” 우문호가 폭발했다. 주씨 집안에서 사람이 와서 우문호를 청할 때, 재상이 주명양을 엄히 심문 중이라고 알려줘서 뭔가를 알아냈나 하는 생각에 황급히 달려왔건만 정보는 커녕 도리어 구정물만 뒤집어 썼다.주명양은 슬프고 화가 나서 우문호를 가리키며, “결백한 체 하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본데 우리가 명월루에서 만난 걸 명월루에 있던 사람들은 다 알아요. 당신이 발뺌해도 그들을 오라고 해서 물어보면 확실하죠.”“데려와, 당장 데려와!” 우문호는 한 순간도 주명양을 보고 싶지 않았으나 이 오해를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주재상에게 송구하다.주재상이 우문호를 보는 시선이 의혹으로 가득하다.주재상이 우문호만 본관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주명양도 밖에 두고 문을 닫았다.우문호가 씩씩거리며 앉아, “재상, 다시 말하지만 손가락 끝도 건드린 적이 없어요.”주재상이 책상 곁에 앉아 차를 끓이는 난로에 탄을 더 넣고, 두 손을 소매속에 넣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담담하게, “형을 가하기 전에 명양에게 귀영위가 쓰는 자백을 강요하는 약을 썼네, 이런 약은 내공이 심후한 사람에게는 쓸모없지만 명양이처럼 연약한 여자에겐 약효가 뛰어나지. 태자전하는 이 약의 효능을 알고 있을 겁니다.”우문호가 등골이
명월루에 우문호가?우문호가 의자에 앉아 부리부리한 눈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며 위압적이라 두 사람은 순간 멈칫하며, “그……”“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 사실대로 말해.” 재상이 날카롭게 말했다.주명양도 울며, “말해, 알아 몰라? 내가 몇 번을 같이 간 거 너희들도 다 알잖아. 본 대로 얘기해.”두 사람은 주명양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어르신께 말씀드립니다. 이분은 다섯째 나리로 뵌 적이 있습니다. 매번 오실 때마다 이 아가씨와 같이 오셨고 별실에서 반나절 정도 계시다 가셨습니다.”우문호가 책상을 내리치며, “간이 배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날 모함해?”명월루의 두 사람은 놀라서 떨며, “다섯째 나리 저희를 탓하지 마세요. 그저 사실대로 말씀드릴 뿐입니다.”그들은 눈을 가린 채 데려왔기 때문에 여기가 어디이고 주재상이 누구이며, 눈 앞에 다섯째 나리의 신분은 더더군다나 알지 못했다.“너희들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란 말이지?” 주재상이 두 사람을 보고 설렁설렁, “만약 너희들의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을 시엔 목이 떨어질 것이다.”두 사람이 이 말을 듣더니 주재상이 관원임을 알고 얼른 엎드려 황공해 하며, “소인 감히 거짓을 고하지 못합니다. 명월루에 기록이 있을 것입니다. 언제 오시고 언제 가셨는지 전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만약 못 믿으시겠으면 명월루로 사람을 보내 찾아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방에서 시중을 들던 시녀 홍매(紅梅)도 증인이고요, 홍매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며칠 있으면 옵니다. 어르신께서 직접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광분해서, “좀 똑바로 봐, 저 여자가 데리고 온 사람이 태……평한 내가 맞는지!”그 둘은 고개를 들어 우문호를 보고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도 똑똑하게, “맞습니다……당신이십니다, 다섯째 나리, 나리께서는 소인에게 상을 내리신 적도 있습니다.”주명양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할아버지, 봐요, 들으셨죠, 제가 모함한 게 아니죠, 제 뱃속에 아
주재상과의 싸움다들 물러간 뒤 본관에는 침묵이 감돌고 주재상이 눈이 음험하게 우문호를 한동안 주시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전하, 그 홍매라는 시녀를 불러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까?”우문호는 이미 얼빠진 모습이다. 주명양이란 이 끈에 기대를 품고 있었고, 언젠가 뭔가 뽑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우문호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겨눌 줄 상상이나 했을까.“믿으십니까?” 우문호가 주재상에게 물었다.주재상은 다소 어렵게, “만약 전하께서 아니라고 고집하시면, 전 믿을 수 밖에요.”“마음 속으로 믿느냐 아니냐 묻는 겁니다. 입으로가 아니라.” 우문호는 마음이 복잡했다. 다행히 이 일을 다른 사람이 모르고 방금 두 사람은 입도 뻥긋 못할 거라, 원경릉 모르게 덮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주변 사람이 믿고 안 믿고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하께서 결백하시면 되지요.” 주재상이 고개를 흔들며 온화한 말투로, “전하께서 하신 잘못이 뭐 별 겁니까. 장인이신 정후와 같은 정도인 걸요 뭐.”“말이 지나치네.” 우문호가 화를 내며 자신을 누구와 비교하는 것도 별로인데, 하필 장인과 비교하다니 정후는 사람답지 못하다.주재상이 탁자를 치고 눈을 부라리며, “그럼 어떻게 말합니까? 전하께 반항이라고 할까요? 증인도 증거도 다 있는데 제가 눈이 멀어서 맹목적으로 전하의 결백을 믿어야 합니까?”우문호가 돌아버릴 지경으로, “전 결백합니다. 주명양의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린 적이 없어요.”주재상이 냉랭하게, “그래요, 머리카락 말고 다른 데를 건드렸겠죠. 그렇지 않으면 뱃속에 아이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우문군은…… 그쪽으론 무능한 인간이고.”“천하에 우문군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천하에 남자가 이렇게 많은데 왜 다른 사람을 모함하지 않고 당신을 모함할까요?”“그걸 어떻게 압니까!” 우문호가 펄펄 뛰며 주재상의 반응을 믿을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하면 믿을 겁니까? 제 인품을 기본적으로 이해하잖아요? 언제 여인을 얼마나 원했다고? 하필 왜……”“하필
우문호의 추론우문호는 비록 화가 났지만 주재상이 이렇게 말하는 건 자신을 믿는다는 소리이므로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 들어 다시 자리에 앉아, “그럼 절 믿으시는 겁니까?”주재상이 심장위에 손을 올리고, “믿을 수 밖 에요. 저도 공처가 거든요.”우문호가 목을 길게 빼고 침을 삼키며, “이 일은 보안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사적으로 조사하고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안 그러면 끝장나요.”“반드시 비밀을 엄수하죠!” 주재상이 엄숙하게 말했다.희야가 만일 주씨 집안 여식과 태자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아는 날엔 주재상도 희야를 볼 낯이 없다.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홍엽공자의 미소 띤 얼굴이 생각나 탁자를 치며, “분명 홍엽이 날 모함하기 위해 꾸민 흉계가 분명해요. 홍엽은 어디서 나와 생김새와 키가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서. 어쩐지 나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하더니, 이 비굴한 소인배 놈.”“홍엽의 혐의가 짙어요, 전체적인 함정을 파고 홍엽이 뒤에서 지시했을 겁니다.” 주재상이 담담하게, “안타까운 건,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았어요. 즉 그를 체포할 증거가 없어요.”우문호의 마음이 싸늘해 식어서, “홍엽이 북당에서 판을 벌이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일을 성사시키기 어려워요. 그를 돕는 자는 반드시 고위층입니다. 종일 고생고생 뛰어다니며 밤낮으로 외부의 적을 방비하느라 애를 써도, 안에 있는 도둑은 막기가 어렵군요.”“누가 의심스럽습니까?”우문호가 천천히 냉정을 되찾아, “선비족이 대주와 맞서는 건 단지 눈가림일 뿐으로 최종 목적은 북당을 상대하려는 게 아닐까 해요. 대주에는 인재가 많고 조정은 위아래 할 것없이 화목하고 왕위다툼도 없을 뿐더러 조정과 재야에서 똘똘 뭉쳐 강대한 힘을 발휘하는데 선비족이 잠식해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을 걸요? 반대로 우리 북당에는 진심으로 조정을 위하는 자가 몇이나 있을까요? 태자가 정해지기 전엔 조정이 사분 오열로 갈라져서 다들 자신의 이익을 쫓아 주판을 튕겼죠. 사람의 마음이란 게
원경릉에게 들키나?가기 전에 우문호는 주재상에게 이 일은 절대 밖에 새 나가서는 안되며, 특히 초왕부 누구도 알게 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랬다간 엄청난 재앙을 만나게 될 거라고 말이다.따라서 우문호는 초왕부에 돌아와서도 조심조심, 마음은 초조했지만 얼굴은 누구에게 친절하고 온유하게 대했다. 순간 욱했다가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말이다.원경릉은 오늘 할머니 건강상태를 검사하고 전부 건강하셔서 안도했다. 만두 늑대도 크게 칭찬해 특별히 고기 2근을 더 주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비정상이란 걸 눈치챘다. 엄숙하고 위엄 있는 미소 아래 뭔가 켕기는 구석을 감추고 있는 게 빤히 보이는 것이 원경릉을 속이려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결코 지적하지 않고 저녁에 침실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우문호에게 여기 좀 앉아 보라고 했다.우문호는 벌써 불안 초조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원경릉과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무슨 일이 있다는 거야? 그냥 피곤해서 그래.”“부부 사이엔 솔직한 게 최고야.”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생각했다. 여인의 입은 사람을 홀리는 물귀신 같아서, 얼마나 많은 부부가 ‘솔직’이란 함정에 빠져 죽었는가?“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만일을 대비해 한 마디 덧붙이며, “있어도 가짜야.”“그럼 확실히 있는 거네. 말 안 해? 자기 평생 날 속일 자신 있으면 말 안 해도 되는데 아니면 그나마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원경릉이 딱 부러지게 말했다. 부부생활 2년여 기간 원경릉은 우문호의 작은 몸짓에 해당하는 심리상태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우문호는 침묵하고 아무 말이 없다.“또 여자 문제야?” 원경릉이 떠보듯 우문호를 쳐다봤다.냉정을 가장하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며 불현듯 고개를 들고 하늘을 가리키며 맹세하길, “이번은 나랑 조금도 관계 없어, 난 건드리지도 않았다고. 그 여자 배속에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원경릉이 여유 만만하게 차를 따르며, “응, 그 여자란 사람, 누구야?”“주명양 그 미친 여편
홍엽과 주명양의 아이“그자가 분명해, 당신 오늘 못 들었어? 나에게 선물을 준비한다고 했잖아.” 우문호가 홍엽 얘기를 하며 이를 갈았다.“좋아, 행동의 의미를 파악했으니 동기만 찾으면 되겠네.”우문호가 투덜거리며, “동기는 무슨 동기? 나로 분장한 다음 그 미친 여자를 구슬려서 자기를 위해 일을 저지르게 만든 거잖아? 네 아버…… 장인 어르신이랑 마찬가지로, 여자가 목숨 걸고 자신을 위하도록 만드는 놈이 홍엽 밖에 더 있어?”“그렇게 이해할 수 있지. 그런데 피임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왜 아이를 남기려고 했을까? 잘 생각해 봐!” 원경릉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리 둘이 치고 받고 하라고?” 우문호는 여전히 아이에 대한 동기를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큰 대세만 분석했다.“우리를 서로 싸우게 하는 건 쉬워, 자기가 주명양이랑 한번 잤다는 것만 나한테 알려줘도 우리는 같이 못살 테니까, 아이까지 내세울 필요 없지. 왜냐면 아이가 태어나면 여기의 관습대로 피를 떨어뜨려서 친자 여부를 확인하거나, 생긴 게 자기랑 딴판이라 아예 혐의를 깨끗하게 벗을 수도 있거든.”“내 명성을 헤치기 위해서?” 우문호는 실지로 최근의 일로 머리가 굳어버렸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도 대략 목적 중 하나일 걸? 북당의 태자가 뜻밖에도 형수를 꼬드겨서 애를 배게 했다. 이렇게 소문 나면 자기 명성은 철저하게 망가지는 거지.”우문호의 눈빛이 싸늘해 지며, “최종 목적은 그게 아닐 걸, 나와 주씨 집안이 등을 돌리게 만드는 걸 지도.”원경릉이 감탄하며, “홍엽이란 인간의 일하는 방식이 가랑비에 옷 젖게 만드는 것 말고도 상당히 환경 친화적이네, 일석 몇 조야 이게.”우문호가 원경릉을 째려보며, “당신 그 놈을 칭찬하는 거야?”“자기가 냉정해 져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거야. 이런 사람이랑 맞서려면 초조하면 안돼. 성급하게 굴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게 되 있어,” 원경릉이 작게 한숨을 쉬더니 찡그리고 있는 우문호를 바라보고, “일을 이렇게 크게 터
주명양을 찾아간 원경릉우문호는 여자의 직감을 믿고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요부인을 찾는 일은 서두르지 말자. 소문이 밖으로 드러날 때 해도 늦지 않아.” 원경릉이 이상하게 여기며, “왜? 일이 커져서 반박해 봤자 지금 우문군이 인정하는 것만큼 효과가 좋지 않을 텐데.”우문호가 끙끙거리며, “아니, 아니야, 명성은 중요하지 않고 좀 두고 보고 싶어서 그래, 소문이 어디부터 퍼지기 시작하는지 말이야. 이렇게 크게 한 방 먹었는데 그들 정체도 조금은 폭로해 줘야지.”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거 좋네, 나 화장 지우고 목욕할 게.”원경릉은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에 가득한 보석 장신구를 빼고, “자기 생각에 주명양이 지금 어떤 기분일 거 같아?”“흥, 그 여자 얘기도 꺼내지 마. 열 받아서 못 참겠어!” 우문호가 또 순식간에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내가 내일 주명양을 찾아가서 물어보려고, 그자가 살까지 섞었다는 건 틀림없이 주명양 입에서 뭔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는 거잖아. 제일 중요한 건 본인과 같이 있었던 그자가 자기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거지만.” 그게 사실 제일 중요한 목적이다.“가지마, 들으면 귀만 더러워져.”“괜찮아, 난 버틸 수 있어. 엄밀히 말해 이 일에서 주명양은 피해자고 불쌍해. 이용당한 거잖아. 그 놈 진짜 증오스러워, 여자의 감정과 몸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다니, 저질이고 비열해.”비열한 남자를 성토하는데 우문호도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어서, “맞아, 그래, 비열한 놈!”주재상이 주명양을 집 안에 있는 하지원(夏至院)에 가두고 여자 하인에게 지키게 한 뒤 하지원 문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집안의 여자 식구들도 주명양에게 접근할 수 없게 한 것은 어떤 소문도 새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주명양은 한동안을 울었다. 그녀는 우문호가 이렇게 배신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수없이 많은 달콤한 속삭임이 귓가에 쟁쟁한데 싹 안면을 몰수하다니 말이다.어제 하지원에 갇힌 다음부터
주명양의 독설만아가 주명양의 앞을 막아 서며 경고하듯 그녀를 바라봤다.주명양이 만아를 가리키며 실성한 것처럼, “너…… 넌 내 노비니까 저 여자를 죽여. 저 여자를 죽이라고.”만아는 주명양에게 아직도 약간 겁이 났다. 오랜 시간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 주명양이 진노하는 모습을 대할 때는 여전히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명양을 막으며 태자비가 주명양에게 다치지 않도록 막았다.원경릉은 난처해 하는 주명양을 보고 그녀가 전에 얼마나 날뛰며 오만했는지 떠올랐다. 사람이 이렇게 변하다니, 여자를 가장 다치게 하는 건 역시 감정이다.주명양은 만아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만아 얼굴에 따귀를 때리려, “이 비천한 게!”만아는 숨지도 반항하지도 못하고 따귀를 맞으려던 찰나, 원경릉이 갑자기 만아 뒤에서 손을 뻗어 주명양의 팔목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멈춰!”주명양은 보기에 그럴싸한 약간의 무공을 할 줄 아는데다 지금 뚜껑이 열린 상황이라, 엄청난 힘이 손에 들어간 상태였으나 다행히도 원경릉이 한동안 무공을 수련한 게 헛되지 않았는지 나름 효과가 있었다.주명양의 손목을 잡고 뒤로 비틀어, “왜 무고한 사람에게 화풀이해요!”주명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분노의 불꽃을 내뿜으며 이를 갈더니, “원경릉, 네가 정말 이겼다고 생각하나 봐? 그이는 형세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나와 결백한 체 하는 거야.”주명양의 흉측한 얼굴에 음산한 미소가 떠오르며, “그이가 나랑 같이 있을 때 내 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 아마 넌 알 수 없겠지. 그이가 직접 내게 얘기 했어. 그이가 너와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태상황 폐하께서 널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천한 계집, 별 방도가 없으니까 의술 좀 아는 걸 가지고 태상황 폐하 비위나 맞추는 주제에. 그거 아니었으면 넌 애진작에 이혼 당했어.”원경릉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런 말을 믿다니 참 불쌍하네요. 한마디만 확실히 하죠. 당신과 같이 있던 사람 절대로 그 사람 아니예요.”주명양 고개를
이 점에 대해 양여혜는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 전문가의 팀원들도 말한 적이 없었고, 그녀가 이전에 컴퓨터에서 봤던 데이터도 지금 노트의 데이터와 일치했다. 그러나 노트에는 찢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보아하니, 그녀는 다섯째의 병이 나은 뒤 다시 한번 돌아가 조사를 해야 할 듯했다.그래도 이번에 과다 투여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그녀가 물건을 정리하며 말했다."서일, 돌아가서 쉬거라. 마지막 일만 마무리하고 바로 궁으로 돌아갈 것이다.""예. 마마도 일찍 쉬세요!"서일은 나가는 김에 죽은 쥐를 처리하려 손을 뻗었다. 그는 어찌 사람보다 훨씬 작은 쥐로 약물 실험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곳의 의원은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약을 실험하고 있었다."다치지 말거라. 해부할 것이니!"원경릉은 즉시 그를 제지했다."해부요? 해부까지 해야 합니까?"서일은 쥐를 든 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죽은 것도 모자라 해부까지 하다니, 쥐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그래. 해부해야 한다."원경릉은 습관적으로 약상자에서 메스를 꺼내려 했으나, 약상자를 소월궁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서일에게 말했다."서일, 소월궁으로 가서 내 약상자를 가져 오너라. 절대 안에 있는 것을 건드리지 말거라. 알겠느냐?""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서일은 말하자마자 약상자를 가지러 소월궁으로 달려갔다.소월궁에 오자, 잠들어 있는 우문호의 모습을 보았다. 열 때문인지, 악몽을 꾸는 것인지 그는 얼굴을 찡그린 채 불편한 모습이었다. 목여 태감이 곁에서 지키며 이따금 따뜻한 수건으로 그의 이마를 닦아주고 있었다.서일은 발소리를 죽이고 약상자를 집어 들어 황급히 원경릉에게 전해주었다.약상자를 연 원경릉은 서일이 놓은 주사기를 보고 멈칫했다."어찌 주사기가 두 개인 것이냐? 하나만 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섯째에게 몇 대를 놓은 것이냐?""두 대요!"서일이 서둘러 말했다. 그러더니 약상자 속 주사기 위치를 가리키며 말했다."여기 하나 더 놓
"예!"서일은 주사기를 내려놓고는, 옆에 있던 또 다른 주사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하지만 방금 그 약과는 색이 다릅니다.""네가 무엇을 안다고 그러냐? 어떤 약은 색을 더하기도 한다. 붉은 약이나, 노란 약을 본 적 없는 것이냐? 전에 수보가 사용했던 약도 노란색이었다.""맞는 말씀입니다!"서일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주사를 놓았다. 그렇게 치료가 끝나자마자 우문호가 바로 눕고는, 다시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주사를 맞았으니, 조급히 올 필요 없다고 전하시게. 늦은 시각이라, 길도 어두울 텐데 서두르다 다칠라."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일에게 말했다."서 대인, 폐하를 잘 보살펴주시게. 바로 다녀오겠네."서일이 답했다."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더 빨리 다녀올 수 있습니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달려 나갔다.우문호는 약기운 때문인지 다행히 어지럼증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잠에 들었는데, 목여 태감은 여전히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옆을 지키며 안쓰럽게 바라보았다.그는 황제의 운명이 참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태상황을 모셨을 때, 태상황도 밤낮으로 정무를 처리하며 후궁 문제까지 챙겨야 했다. 지금의 황제는 후궁 걱정은 덜었지만, 조정의 관한 걱정은 끝이 없었다.목여 태감은 우문호의 창백하고 여윈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했다.목여 태감은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 명했다. 목여 태감은 그가 더 편히 잘 수 있도록 그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서일은 실험실로 향했는데, 원경릉이 모든 실험용 쥐를 다시 잡아 와 쥐들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었다. 서일이 들어오는 것을 본 후, 그녀가 노트를 내려놓고 물었다."곧 돌아가마. 다섯째는 어떠냐? 열은 내렸느냐?""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주사를 놓았으니 서두르지 않으셔도 된다고 폐하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서일이 약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주사를 놓았다고?"원경릉은 서일이 주사를 놓을 줄 알자, 조금 놀랐다."예. 주사 놓는
체온을 측정해 보니 무려 40도였다.“고열이오. 또 다른 증상은 없소?”원경릉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 병까지 든 다섯째가 안쓰러워졌다.우문호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소. 그저 재채기 몇 번에 조금 어지럽고, 코가 막히며 목이 약간 찌릿한 정도네. 별일 아니네.”원경릉은 서둘러 청진기를 꺼내 심장과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비를 맞아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듯했고,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다.그녀가 말했다.“해열제를 먼저 먹고 주사를 맞은 후, 푹 자고 나면 내일 괜찮아질 것이오.”그녀는 해열제를 찾아내자, 서일이 바로 물을 준비해 왔다. 우문호는 해열제를 삼킨 뒤, 바로 물을 마셨다.이는 그가 약을 먹을 때 늘 하는 습관이었다.원경릉은 주사기를 꺼내 약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사기를 손에 들자마자, 우문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꼭 이걸 맞아야 하오?”“주사를 맞으면 빨리 낫습니다. 바쁘다 하지 않았소?”원경릉이 부드럽게 그를 달랬다. 우문호는 약은 한 움큼씩 먹을 수 있는 반면, 주사는 몹시 무서워했다.옆에서 서일도 말을 보탰다.“아프지 않습니다. 금방 끝날 겁니다.”“근육 주사가 제일 빠르오. 정말 안 아플 거라네.”원경릉이 웃으며 덧붙였다.우문호는 바쁜 나랏일을 떠올리며 더 이상 아프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주사의 아픔을 참기만 하면 내일 나은 몸으로 조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좋소. 그럼 빨리 낫게 두 대 놓으시게!”우문호가 용기를 내어 웃으며 말했다.“마마…!“그때 밖에서 녹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쥐들이 갑자기 우리를 부수고 탈출했습니다. 궁녀를 시켜 잡았지만, 두 마리나 놓쳐 버렸습니다.”원경릉은 쥐들이 대나무 우리를 부술 정도로 강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급히 주사기를 약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다섯째, 조금 있다가 돌아와서 다시 주사 놓겠소.”그러자 우문호
이 약은 사실 원경릉이 맡은 프로젝트가 아닌, 그녀의 실험실에 있던 다른 전문가팀이 진행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전문가가 뜻밖의 사고로 행방불명이 되면서 양여혜가 그녀에게 팀을 이끌고 연구를 이어가도록 했다.원경릉은 연구 단계에 처한 약을 약상자에 넣어 가져온 후 실험용 쥐에게 주사했다. 그녀는 궁에 간단한 실험실을 마련해 실험용 쥐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기본적인 작업을 했다. 하지만 심도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현대로 돌아가야만 했다.부부는 각자의 일로 바삐 보내며, 이삼일 동안 식사도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전형적인 바쁜 부부의 모습이었다.며칠 밤을 상의한 끝에 우문호는 과거시험 문제를 정하고 주 시험관을 명했다. 그리고 천제를 올려, 이번 과거시험에서 나라에 유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늘에 기원했다.그렇게 천제 의식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의식은 중단되었다. 제단 위에 있는 우문호와 대신들은 비에 흠뻑 젖었지만, 의식을 끝까지 마쳐야 했다. 천제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비를 맞은 탓에 연신 재채기 했다.그는 궁으로 돌아가자마자 녹주가 끓여준 생강차를 연거푸 두 그릇 마셨다. 원경릉이 아직 돌아오지 않자, 우문호는 다시 어서방으로 가서 내각에서 올린 상소문을 검토했다. 내각에서 올리는 상소문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일반적인 문제는 냉정언이 먼저 확인한 후, 바로 처리했다.자시까지 바삐 보내고 난 후, 우문호는 몸 상태가 점점 이상하고 어지럽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문턱에 앉아서 졸고 있는 목여 태감을 보며,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버거움을 느꼈다.황위에 오른 후, 우문호는 거의 아픈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달아 밤을 새우고 비까지 맞은 데다 환절기에 찬바람을 맞으니 감당하기에 더욱 어려웠다.하지만 우문호는 일을 마저 처리하려 억지로 애를 썼다.목이 조금 말랐지만, 목여 태감을 깨우기 귀찮아진 그는 차갑게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을 이어갔다. 상소문을 보자마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물었다.“참, 아이들과 그룹… 채팅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계란이가 이 일을 안다고 한 적 있소?”“우린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소.”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나도 들어갈 수 있소?”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 안 될 것이오. 그룹 채팅은 단지 별칭일 뿐, 당신이 현대에서 본 통신 앱과 같은 것이 아니오. 우리는 의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라, 당신은 함께할 수 없소.”“그렇군.”우문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원경릉은 그가 조금 서운해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를 안고 말했다.“당신도 참. 지금까지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당신한테 숨긴 적 없이 모두 말해줬으니,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계란이가 모르고 있다가 속상해할까 봐 걱정되는 것 뿐이라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시오. 계란이는 아직 사내를 좋아할 나이가 아니오.”우문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의 노파심으로 인해 작은 문제도 크게 보기 마련이었다.이 드넓은 세상을 아이들이 마음껏 탐험하는 것은 괜찮지만, 혹여나 아이들이 속상해할까 봐 늘 걱정이었다.한편, 요즘 다섯째는 과거시험으로 인해 바쁜 일상에 조금 지쳐 있었다.과거 시험장은 항상 부정행위로 난무하는 곳이었다. 과거로 인재를 등용하려는 조정의 목적과 달리, 일부 관리들은 그저 돈 벌 기회로 여길 뿐이었다.그래서 지금 주 시험관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지난해까지는 냉 수보가 항상 주 시험관을 맡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시험관들의 부정행위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이 일로 우문호는 3년에 한 번씩 화를 내곤 했다.올해 냉 수보는 주 시험관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겠다고 말하고 이 직책을 내려놓았다.최근 새로운 세금 제도를 추진하느라 바쁜 터라, 주 시험관직까지 겸할 시간이 없었다. 이에 우문호가 직접 시험관 선발 과정을 엄격히 관리하기로 했다.북당
택란은 순간 단순히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보답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린 황제는 어린 시절부터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기에, 란이라는 자의 언니와 몇 년을 함께 보내며 정이 생겼을 가능성이 충분했다.어쨌든, 단순히 은혜를 갚기 위해 은인의 언니와 결혼하는 것은 말이 안 되었고, 다소 억지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왜 그 란이라는 사람이 정말 자신의 은인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사람을 데려갔을지도 의문이었다. 어쩌면 일을 맡은 부하가 임무를 대충 하며 거짓말을 꾸며냈으니, 어린 황제가 그 란이라는 사람에 대한 은혜 때문에 섣불리 믿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어린 시절의 감정이 가장 순수한 법이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오직 발전만을 목표로 합니다!”주 아가씨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감정 문제는 공주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아직 어리기도 하기에 혼담은 스무 살까지 미뤄도 늦지 않았다. 아니면 그녀처럼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한편,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냉명여가 짐을 싸는 택란을 보며 물었다.“누나, 멀리 가는 것입니까?”“금국 량주에 다녀오려고 한다.”택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싸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그러자 냉명여의 눈이 반짝였다.“량주요? 그럼 나도 데려가면 안 됩니까? 량주에 변신술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가고 싶으냐? 그래.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말을 잘 들어야 한다!”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잘 듣겠습니다! 꼭 약속하지요!”냉명여가 급히 다짐했다.“좋다. 그럼 가서 짐을 싸거라. 내일 출발할 것이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택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냉명여는 기쁜 얼굴로 쏜살같이 방으로 달려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때, 이를 본 주 아가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데려간다니요? 아직 어린아이인데… 귀찮게 굴지 않을까요?”“괜찮소. 지금 아직 어리니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해야 하오. 계속 저택 안에만 두면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는 아이로 자랄 뿐이네. 그건 냉 대인과 홍엽 아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