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 물리다그리고 눈 늑대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타오르는 불꽃같은데 그 눈동자가 때때로 붉은 색으로 변하면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혔다. 늑대 눈이 빨개지면 사람을 공격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생일 잔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가슴을 졸였다. 특히 우리 떡들이 명랑하고 해맑게 눈 늑대와 같이 서있는 모습이 흉악함과 순진함이 극렬한 대비를 이루며 일종의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데, 눈 늑대가 갑자기 피를 뚝뚝 흘리며 입을 벌리고 아이들을 삼켜버리는 착각이다.그래서 위태부를 위시해서 한 무리의 늙은 신하들이 노파심으로 우문호를 설득하며, 아이들이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고양이 정도를 키우는 거지 이런 공격성이 강한 맹수는 키워서는 안된다고 했다.우문호는 책임을 소요공에게 넘기기 위해 세 마리 눈 늑대는 소요공이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위태부는 소요공에게 아이들에게 그런 야수를 선물해서는 안되며 만약 황태손이 다치기라도 하는 날엔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물었다.소요공은 위태부가 물고 늘어지자 귀찮아서 모든 책임을 태상황에게 밀어 이건 태상황의 뜻이었다 태상황께 말씀드리라고 했다.위태부는 답답한 마음으로 입을 닫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키지 않아서 씩씩거리며, “무슨 말만 하면 태상황 폐하, 태상황 폐하, 태상황 폐하가 전가의 보돕니까? 태상황 폐하께서 눈늑대가 이렇게 큰 줄 아셨겠어요? 이렇게 위험할 거란 걸 아셨겠느냐 말입니다.”소요공이 눈을 부라리며, “왜 이렇게 성가시게 구십니까? 파리같이. 그저 즐겁게 술 좀 마시게 놔두시면 안됩니까?”“내가 언제 성가시게 굴었습니까? 황태손의 안전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곁에 있는 건 개가 아니라 늑대란 말입니다. 그리고 저 개도 만만치 않아요. 사납기가 이를 데 없어요. 오늘 어떻게 데리고 나올 생각을 하신 겁니까? 황실의 친척들과 신하들이 이렇게 많은데 만약 미쳐서 물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위태부가 이렇게 말하며 바로 우문호를 찾아가 다바오를 쫓아내려고 했다.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
응급처치우문호가 성질을 부리며, “한 번만 더 짖으면 아주 목을 쳐 버릴라!”원경릉이 뒤를 돌아 다바오를 보고 놀라서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친왕을 보는데 명원제도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이 보여 정신을 차리고 우문호와 같이 보친왕을 치료하러 보내 드렸다.다바오가 보친왕을 물었다는 것을 안 명원제는 화가 나서 다바오를 때려 죽이라고 어명을 내렸다.눈 늑대는 다바오를 보호하며 입에서 푸르르 소리를 내고 앞으로 나온 시위들을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이때 우리 떡들이 방밖으로 달려 나와 뒤뚱뒤뚱 계단을 내려가다가 경단이가 홀랑 굴러 떨어져 눈 늑대 앞에까지 굴렀는데 얼른 일어나 손을 허리에 대고 뺨을 부풀리며 명원제에게, “할아버지 나빠 나빠!”명원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초왕부에 있는 짐승은 어찌나 귀하신 몸인지 황제인 자신조차도 건드리지 못하는 구나 싶다.오늘 생일 주인공이 최고인데다 명원제가 보기에 보친왕의 상처도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으니,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 살생을 할 수는 없고, 나중에 다섯째에게 아이들과 이 야수들을 같이 놀게 하지말라고 따끔하게 얘기하는 것으로 했다.위태부는 계속, “봐, 보라고, 일이 터졌잖아, 내 말이 틀려?”위태부가 이 말을 하면서 일부러 소요공을 쳐다봤다.소요공이 울리는 목소리로, “입 방정 떨지 맙시다!”명원제는 눈 늑대와 다바오를 노려보고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어의가 보친왕의 상처를 치료하고 원경릉도 가서 돕는데 보는 눈이 많은 가운데 태자비가 직접 친왕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원경릉은 소독약을 꺼내 어의에게 주고 어의에게 우선 깨끗한 물로 상처를 씻은 후 소독약을 바르게 했다.다바오가 심하게 문 건 아니었다. 만약 진짜 물었으면 살점이 떨어졌을 건데 지금은 이빨자국만 남아있는 상태로 이빨자국 2개가 특히 심해서, 이빨이 살점을 갈고리처럼 걸어 당겨 거기서 피가 많이 나왔다.명원제가 보친왕을 위로하고 보친왕은 아픔을 참으면서 눈 늑대와 다바오를 감싸주는 것을 잊지 않고, “
보친왕이 의심스럽다?생일 잔치가 끝나고 초왕부로 돌아가니 이미 저녁 해시(9시~11시)다.우리 떡들은 오늘 굉장히 의젓해서 생일 선물을 잔뜩 받아 마차마다 그득 그득 싣고 왕부로 돌아왔다.집에 와서 다들 잠이 들고 유모들은 아이들을 데려다 재우자 눈 늑대와 다바오도 따라가는데 우문호가 일갈하며, “다바오 거기서!”다바오는 쏜살같이 달아났다.우문호가 완전 열 받아서 원경릉에게, “저 녀석 처리해야 겠어. 미쳐서 다른 사람을 물면 안되니까.”원경릉은 살짝 우문호의 소매를 당기며, “방으로 가자, 할 말이 있어.”우문호는 원경릉 표정이 무겁고 돌아오는 길 내내 아무 말도 없었던 게 생각나서 뭔가 알아챘구나 싶었다.두 사람은 소월각으로 들어가 만아가 차를 따라 주기를 기다렸다가 모두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왜?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우문호가 원경릉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피곤해?”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아 무릎 위에 올리고 고개를 흔들며, “안 피곤해, 자기야. 박원을 공격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보친왕이 아닐까 의심스러워.”“말이 돼?” 우문호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말해? 이유가 있는 거야?”원경릉이, “그때 내가 다바오에게 안장의 냄새를 맡게 했던 거 기억나? 다바오가 알아냈어. 보친왕이야. 생각해봐. 다바오는 주도적으로 사람을 공격한 적이 없어. 다바오는 사람 성격을 알고 특히 오늘 같은 상황에서 데리고 나가도 분수껏 행동했을 텐데 왜 이유 없이 사람을 물었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은 아니고 오직 보친왕만 노려보고 물었어.”우문호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듯, “다바오가 안장의 냄새를 맡은 건 꽤 오래 전 일이라 다바오가 냄새를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다바오가 황숙을 문 게 이상한 냄새가 나서가 아니라 황숙이 다바오를 혼냈거나 쫓아버렸기 때문일수도 있어.”원경릉이 확실하게, “다바오는 분명 안장의 냄새라고 했어. 난 다바오를 믿어.”“다바오가 얘
태후의 병환우문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경릉에게 뽀뽀했다. 그녀의 손을 잡고 눈동자를 응시하며, “눈 깜짝할 새 우리 떡들이 벌써 돌이 됐어. 1년이 정말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응.” 원경릉도 감개무량해서, “하지만 그 시간동안 벌어진 일도 엄청났지. 사건마다 얼마나 힘들었나 몰라.”원경릉은 우문호의 잔머리를 정리해주며 손가락으로 얼굴의 흉터를 만지는데 벌써 많이 옅어 졌다. 흉하지 않고 살짝 무늬가 들어간 정도다.부부는 나한상에 서로 기대 일년 동안의 일을 얘기하는데 하나같이 엄청난 사건들이지만 다행인 건 모두 지나갔다는 사실이다.고진감래라고 비바람이 지나간 뒤 평온한 날이 있는 법이다.이어지는 한달간 아무일 없이 고요했으나 좋은 일도 생기지 않았다.일부 기숙사는 빨리 세워져서 거의 준공이 다가왔고 의원들도 전부 찾아 놨다. 이리 나리와 미색이 도와주니 식은 죽 먹기다.한달간 학생모집도 진행중인데 처음 모집하는 학생들은 전부 학문적 소양이 있는 자들로 글자교육에 시간을 보낼 필요 없었다.할머니는 원장을 담당하고 조어의는 부원장을 맡아 6월초 정식으로 수업을 시작했다.의대가 개학한 것이 경성에선 큰 행사로 자리매김해 많은 백성들이 몰려왔다.날씨도 점점 더워져 갔는데 경성의 더위는 찜통더위라 막 6월에 접어들었는데도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작열해 머리에서 김이 날 지경이었다.태후가 어화원에서 연꽃을 감상하고 더위를 먹은 나머지 궁으로 돌아가가 기절하고 토해서 어의가 일사병을 낫게 하는 탕과 차를 처방했으나 이틀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고 도리어 갈 수록 혼수상태가 되었다.명원제는 원경릉이 입궁해 태후를 치료하게 했는데 역시 일사병으로 진단하고 약을 처방한 후 며칠 더 쉬고 궁의 통풍과 환기에 신경을 썼다.태후가 쇠약하게 병석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병은 낫게 해드릴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치료해 드리지 못하네요.”원경릉은 현비 일 이후 태후의 몸이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았는데 기왕 일까지 터지
태후의 병세옆에서 병수발을 들던 황귀비가, “태후마마, 위왕 전하가 그리우시면 사람을 보내 마마를 뵈러 오라고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태후가 고개를 흔들며, “됐네, 조정을 위해 나가 있는 사람을 뭐 하러 일부러 불러 들여? 그리고 편지를 보내고 위왕을 기다리는데 적어도 한 달은 걸릴 텐데 내 몸이 한 달을 버티지 못할 것 같네. 그리고 두 군주는 어떻게 지내나? 금지옥엽처럼 불면 날아갈 세라 키워질 아이들인데 지금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을까? 평범한 영애보다 못한 서민 출신으로 떨어졌으니 앞으로 어떻게 혼인을 시킨다는 말이냐?”“그런 말씀 마세요. 마마는 일사병이니 무슨 중병도 아니고, 잘 쉬시면 좋아집니다.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절대로 손녀들을 고생시키지 않으실 거예요.” 황귀비가 얼른 답했다.태후가 입을 닫고 어두운 눈빛으로 침대 휘장을 보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잠시 후 둘을 나가라고 하고 깊은 궁궐 안쪽에 태후의 탄식이 깊어져 갔다.황귀비와 원경릉이 외전으로 나가 자리에 앉더니 황귀비가, “태후 마마의 병세가 심각한가?”원경릉이, “심각한 정도로 따지면 괜찮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심각하기도 해요.”황귀비가 당황해서, “뭐? 일사병이 아니야?”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황귀비에게, “더위를 먹기 전에 몸이 좋지 않으셔서 지금 일사병애 걸리니 다른 병도 같이 발병한 상태예요. 몸에 병은 그래도 나은 게 고약한 큰 병이 아닌데, 심각한 건 마음의 병으로 요 1년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으셔서 마음을 달래고 터놓지 않으면 벙세가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습니다.”황귀비도 그래서 걱정이 앞서는 지라, “셋째 쪽은 그래도 괜찮은 게 사람을 보내 쉬지 않고 말을 달리면 보름이면 돌아올 수 있지만, 큰애는 어떻게 하지? 폐하께서 입궁을 허락하지 않으시는데 누가 폐하께 말씀을 드려? 태후 마마도 폐하께서 하기 힘드신 걸 아니까 폐하 앞에서는 내색을 안하시는 거지.”원경릉도 도울 방법이 없고, 지금 우문군은 황제의 마음 속에 역린으로 건드리면
환자를 돌보다희성이 희열이와 헤어지고 원경릉만 남겨서 얘기를 나눴다.태후가 원경릉을 침대맡으로 불러, 손을 꼭 잡고 정중하게, “희열이가 컸구나, 2년안에 혼담이 오갈 텐데 지금 신세가 그렇다 보니 명문세가의 공자들은 분명 눈에 차치 않아 하겠지. 황제에겐 네 말이 먹히니 폐하의 은덕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 봐라. 하다못해 걔들한테 현주 봉호라도 하사하고 식읍과 분봉을 내려 앞으로 먹고 살 걱정 없게 해 달라고.”원경릉이, “황조모 걱정 마세요.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걔들 옷이 초라해서 빈궁한 나날을 보내는 건 아닐까 걱정하시나 본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미색이 계속 세 모녀를 돌봐 주고 있어서 의식주에 부족한 게 없지만 좋은 걸 주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비난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쟤들은 죄를 지은 친왕의 딸인데 사치를 부린다고 할까봐요. 사람 입이 들면 침으로도 아주 익사 시키고도 남아요. 특히 군주가 점점 자라고 있으니 조금의 오점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큰 형님의 뜻이기도 하고요.”태후가 듣더니 얼굴이 좀 편안해 지며, “너와 미색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주니 세 모녀가 고생하지는 않겠구나. 제왕의 집안엔 박정한 예가 없지 암. 너희들이 쟤들을 이렇게 대해주니……잘했구나.”“태후마마 걱정 마세요. 일이 좀 수그러들면 이유를 찾아내 쟤들 자매에게 은덕을 베풀어 주시길 구할 게요.” 원경릉이 믿어도 좋다고 했다.태후가 깊은 신뢰의 눈빛으로, “네가 말하는 게 낫지, 난 못 해. 내가 말하면 황제를 강요하게 하는 거라 힘들게 만들 뿐이야.”원경릉이 깊이 생각하더니 역시 제일 힘든 건 아바마마다.태후가 희열이 희성이 자매를 보고 마음이 많이 편안해 져서 일사병도 점점 호전되기 시작했다.하지만 연세가 많고 마음의 상처가 있는 지라 정신이 아무래도 예전 같지 않았다.6월 중순이 되어 자꾸 병을 앓으시는데 어의가 탕약을 계속 올렸지만 큰 병은 아니지만 완전히 낫지 않아 골골하는 상태가 계속 되었다.원경릉도 무슨 큰
제왕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제왕이 몸을 뒤로 기울이자 석양은 이미 떨어졌고 지평선에 일말의 노을 빛만 남아 있다.“왜냐면 내가 외롭거든!” 제왕이 비밀스럽게 말하더니 작가 한숨을 쉬며, “화려할 수록 고독해. 모든 일이 마치 나랑 무관한 것 같고 세상이랑 단절된 이 느낌이 장원의 지금이랑 아마 비슷할 거야. 장원은 자신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지.”어둠이 조금씩 덮이고 세상은 마치 칠흑 같은 지하 밀실처럼 빛이 없다.6월 하순이 되자 황후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명원제에게 알현을 요청하며 제왕의 혼사를 준비하고자 했다.명원제는 제왕을 불러 이 일을 알리자 제왕이 반대하며 처음으로 과격한 말이 오가며 부자간에 언성이 높아졌다.명원제가 화를 냈지만 우문군 일을 겪고 아들을 특히 조심스럽게 대하며 계속 혼자 지낼 수 없다고 우문호를 통해 제왕과 잘 얘기해보도록 했다.우문호는 초왕부에 연회를 열어 제왕에게 와서 술을 마시도록 했다.약간 취기가 돌자 우문호가, “비를 고르기 싫은 게 원용의 때문 아냐?”제왕이 술을 따르고 눈을 내리 깔며, “전혀 아니라고 하면 형은 안 믿을 거잖아요. 그렇다고 전부 그녀 때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 예요.”“그럼 또 뭐가 있는데?” 제왕이 눈을 반짝이며, “혼인은 왜 하나요?”우문호가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더니, “심각한 얘기 하고 싶어?”“자손을 낳기 위해서라는 말만 하지 말아줘요.”우문호가 웃으며, “그건 세상 사람들이 혼인하는 이유야, 당연하지 친왕이 왕비를 고르는데 다른 이유가 수도 없이 많지.”“그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혼인해서 어떻게 하려고? 왕부에 사람 하나만 더 늘어날 뿐이잖아요.” 제왕이 적막한 듯 말했다.“보아하니 그 사람이 원용의가 아니기 때문인 건데 만약 그녀와 혼인하고 싶으면 아바마마께서 성지를 내리실 수 있어.”“그랬잖아요, 이건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제왕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 고독한 눈빛으로, “만약 그 사람이 원용의면
걸리는 손자들명원제는 지금 우문호를 상당히 신임하고 있다. 어쩌면 정말 피로감이 심하거나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명원제가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의견을 듣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 우문호는 명원제와 얘기를 나눴는데 명원제는 의외로 제왕이 왕비를 골라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태후의 건강이 날로 악화되어 명원제는 위왕에게 소식을 전하고 짬을 내서 경성으로 돌아와 만나 뵐 것을 허락했다.우문군 쪽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7월이 지나고 날이 갈수록 달아오르기 시작해 태후는 이미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8월 초사흘, 경성 바깥 관도에 말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데 말을 탄 사람은 옷이 더러운데다 얼굴은 흙먼지가 가득했다.그가 성문에 도착했을 때 요패를 꺼내지 않았으면 아무도 눈앞에 이 거무튀튀한 사람이 왕년에 잘생기기로 소문난 위왕 전하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위왕이 경성으로 돌아온 뒤 잠시도 쉬지 않고 바로 입궁해 알현을 드렸다.명원제는 위왕을 만나지 않고 목여태감을 통해 위왕을 용화전에 태후를 뵙게 하라고 전했다.할머니와 손자가 만나 위왕이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태후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몸을 일으켜 위왕을 한동안 쳐다보더니 눈물이 터져 나오는데, “어째 소식 한 자 없었어? 이 늙은이를 그리워 한 적이 있기는 했고?”위왕이 침대맡으로 기어가며 목놓아 울었다.태후는 별 말 하지 않고 위왕의 손을 잡더니 정화군주를 데리고 와서 잘 대해주라고 신신당부 하며 다시는 정화군주를 저버려서는 안된다고 했다.위왕이 알았다고 답하고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이제 그는 정화군주에게 접근할 자격이 없다.위왕을 보고 태후의 마음에 그리운 사람은 이제 오직 우문군 뿐이다.하지만 우문군을 입궁시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는데 아버지이자 임금을 저주하는 불효자를 무슨 자격으로 다시 황실 가문에 불러들인다는 말인가?그래서 마음의 응어리는 도리어 깊어만 가고 우문군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절박하면 할 수록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