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왕의 도움우문호가 출궁해서 안왕부로 갔다.안왕은 이 일이 자기에게 불똥이 튈 까봐 걱정한 것이 지금 제일 의심스러운 사람이 안왕이기 때문이다.우문호가 명원제의 뜻을 얘기하자 안왕은 한시름 놓더니 바로 쑥스러워 하며, “사실 난 형부랑 별로 안 친해. 하지만 아바마마께서 분부하셨으니 아들 된 도리로 그대로 처리하지 뭐.”우문호가 눈을 흘기며, “형이 이렇게 위선적인 인간인 줄 몰랐네요.”형부와 친하지 않다고? 그럼 안왕비 때 형부를 통해 우문호 압박은 어떻게 한 건데? 형부는 또 어떻게 안왕의 의견에 연합했던 건데?형부 쪽에서 사람을 교체했다고 해도 안왕은 아주 고질적으로 뿌리 깊이 침투해서 형부는 안왕의 주 무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일 좀 해 달라니까 어렵다고?안왕이 하하 웃으며, “동생, 형은 조심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어. 형이 지금 옴짝달싹 못하는 게 하는 일마다 비난이 쏟아져서 누구든 다 나를 의심한다고.”“여우 같네!” 우문호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안왕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생각도 못 했어. 우리 형제들이 싸우는 어부지리를 뒤에서 도사리고 있던 독사가 차지하려 하다니. 동생은 누가 의심스러워?”“형의 분석이 듣고 싶은데요.” 우문호는 연일 바빠서 머리속이 여러 가지 생각이 엉망진창으로 엉겨 의심스러운 대상을 아직 분석해 내지 못했다.안왕도 고개를 흔들며, “분석하기 좋지 않네. 아바마마께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적지 않고, 만약 곁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면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지. 요 일 이년 사이에 배정받아 들어간 사람은 아마 아닐 거야. 아바마마 곁에서 오래 시중을 들었던 사람이어야 해.”우문호가 안왕에게, “목여태감을 의심하는 거예요?”“목여태감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 아바마마라를 따른지 너무 오래됐어. 주인과 종의 감정이 깊고 목여태감은 가족이 없어. 약점이 없으면 위협을 당하지도 않지. 아바마마께서 주실 수 있는 걸 다른 사람은 못 줘. 그러니 목여태감은 불가능해.”“일리가 있네요. 그럼 또 누가 있죠?
제왕을 찾아온 원용의사공은 말이지, 안왕이 안왕부로 불러 종일 차를 마시며 기다리게 한 뒤, 다음날 법정에서 진술을 시켰는데 사공이 부들부들 떨며 말하기를 자기가 본 연기는 강의 물 안개로 결코 화재가 났을 때의 연기가 아니었으며 자기가 노안이라 당시에 잘못 봤다고 했다.우문호는 이 증언에 따라 제왕에게 화류계에 발을 디뎠던 벌로 곤장 20대를 때렸는데 다 때리고 나서 초왕부로 옮겼다.초왕부로 돌려보낸 까닭은 초왕부엔 조어의가 있고, 제왕의 별채는 시중드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결정권자가 없어서 뭐든 제왕이 의견을 줘야 하니 홀아비 신세가 처량하다.물론 이 일에 제왕을 끌어들인 자가 또 제왕에게 무슨 수작을 부릴 지 몰라 아예 초왕부에서 돌보기로 한 것이기도 하다.우문호는 제왕을 초왕부로 보낸 뒤 먼저 박원을 보러 가는 김에 무심코 제왕 일을 원용의에게 알렸다.돌쇠가 침대에 엎드려 있는 제왕의 엉덩이에 약을 바르고 우문호가 옆에 지켜보는데 ‘아야야야’ 난리가 났다. “뭘 비명까지 지르고 난리야, 고작 스무 대 맞고. 이틀만 지나면 괜찮아져.”제왕이 두 손을 교차해서 턱을 받치고 아파서 화낼 기력도 없는지, “형은 곤장에 익숙한 사람이라 피부가 아주 그냥 적응을 했잖아요, 제가 어떻게 형이랑 같아요? 형네는 온 가족이 곤장을 맞아봤잖아요.”“됐어, 이 징징이야. 사람을 시켜 너무 세지 않게 때리라고 했어. 그렇게 안 아파!” 우문호가 제왕의 허리를 한 대 빵! 치며 웃었다.제왕은 순간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올 뻔 했는데 이를 악물고 한참 있다가 겨우 한 마디, “나가요!”이때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제왕 눈에 얼핏 꽃신 한 쌍이 보이는데, 화들짝 놀라 얼른 돌쇠에게, “덮어 덮으라고, 약은 됐으니까 얼른.”돌쇠는 한 손으로 이불을 끌어 제왕을 덮고 고개를 돌리자 원용의가 들어왔다.우문호가 눈치 있게 돌쇠에게 손짓하더니 끌고 나갔다.제왕이 몸을 버티고 일어나야 겨우 원용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상당히 난감한 상태로 창백한 얼
원용의가 그리워머리가 긴장으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서, “박형제는 좋아졌나?”원용의가 제왕을 보고 살짝 고개를 흔들며, “안 좋아요, 오늘은 눈도 안 떴는 걸요.”제왕은 원용의가 괴로워 하는 것을 보고 위로하며, “너무 걱정하지 마, 좋아질 거야. 사람 좋고 마음씨 착한데 하늘도 이렇게 모질게 대하지 않으실 거야.”“네, 다들 그렇게 얘기해요.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이예요.” 원용이가 작게 한숨을 쉬며 머리 속은 온통 박원과 같이 보낸 즐거운 시간으로 가득하고, 같이 사냥 가고 장난친 게 마치 어제 일 같은데 이제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 버렸다. “그래!” 제왕이 중얼거렸다.원용의는 제왕에게 약을 발라주는 대신 뜨거운 물을 가져와서 얼굴과 손을 닦아줬다.조용히 이 모든 일을 하는데 능숙한 것이 전에 다쳤을 때 옆에서 돌봐 줬었고 그때는 제왕의 마음은 여전히 주명취 때문에 슬프고 괴로웠었다.하지만 그때조차도 제왕은 어느 날 뚱땡이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만약 시간을 되 돌릴 수 있다면 결코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주명취에 대한 감정은 점점 옅어 져서 지금은 저의 아무것도 없어질 것을 말이다. 제왕은 더욱 몰랐다. 동고동락하던 시간동안 눈 앞에 이 여자가 강하게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아 버렸고 이제 쫓아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제왕은 침대에 엎드려 원용의 소매에 수 놓인 작은 꽃송이들을 보고, 손등 피부가 희고 부드러운 것을 보고, 피부 아래 푸른 혈관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원용의의 손이 제왕의 얼굴에 닿고, 턱에 닿는데 동작이 매우 자연스러웠지만 제왕의 마음은 오히려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했다.그 순간 제왕은 이기적으로 원용의가 계속 자기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제왕을 다 닦아 준 뒤 원용의가 작은 소리로, “치료 잘 하세요. 내일 다시 보러 올 게요.”“좋아!” 제왕은 콧소리가 심해졌다. 아마도 계속 엎으려 있었기 때문이겠지. 얼른 고개를 들어 원용의를 흘끔
속수무책사실 이초도 선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우문호는 한 발짝 씩만 가야 했다.명원제는 실망했다. 우문호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군주 일생의 행복이 걸린 일이니 명원제 역시 모험을 할 수는 없다, “이 일은 일단 제쳐 두도록, 짐이 다시 사람을 내려 보내도록 하지.”“아바마마, 큰형이 조정의 고통을 분담하고 싶다고 하나, 소자의 이해로는 군주를 민간에 시집 보내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조금의 차질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군주의 일생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형은 아버지로서 이러한 이치를 완전히 꿰고 있어야 함에도 어째서 적극적으로 성사시키려고 하는 걸까요?”우문호는 기왕에게 미움을 사던 말던, 명원제가 마음에 걸리도록 대놓고 얘기했다.명원제가 우문호를 보내고 기왕을 궁으로 불러들여 아버지로서 자격이 없다고 통렬하게 꾸짖었는데, 세세하게 조사해보지도 않고 딸을 시집 보내려고 했던 것은 경솔했을 뿐 아니라 멋대로 하는 행동이라고 말이다.기왕은 우문호가 중간에서 일을 망쳐 놓은 것을 알고 열 받았지만, 초왕부에 쳐들어가서 난리를 피울 주제는 못돼서 기왕부로 돌아가 기왕비에게 화풀이를 했다.병여도 도난 건과 박원이 다친 사건은 실마리가 전혀 없는 상태로, 조사가 오래 지속되었으나 체포는 커녕 범인의 윤곽도 알아내지 못했다.경조부 부윤 우문호는 조정에서 힐난도 견뎌야 했다. 병여도가 중요한만큼 그것을 훔친 사람이 모반을 꾀하거나 역심을 품었을 경우 북당에 있어 일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비난의 폭격을 맞고 고개를 푹 떨구고 조정에서 물러났다.북당을 통틀어 제일 바쁜 관원은 우문호일 것이다. 한쪽에선 비난 폭격을 맞으랴, 다른 한쪽에선 눈이 돌아가도록 바쁘게 수사를 진행했다.당장 실마리가 전혀 없지만 적어도 그 자는 놀잇배 사람과 접촉한 적이 있고 서소하의 뱃사람을 찾아내 매수한 적이 있으니 그 사실에 의지해 수사를 계속 하는 수밖에 없었다.저녁 해시(9~11시)경 피곤한 몸을 이끌고 초왕부로 돌아왔다.지금 초
밥 한술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뭐부터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바깥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 등불이 꺼질 듯 위태롭게 일렁이고, 휘장이 말려 올라가 펄럭펄럭 소리가 났다이렇듯 주변은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고 두 사람의 마음 속엔 수백 수천마디의 말이 있지만 그저 이렇게 묵묵히 바라보기만 해도 모두 알 수 있을 것 같다. 말은 부수적일 뿐.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작은 소리로, “당신이 있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고생이란 생각 안 들어.”그들은 서로의 세계에 등불이자 한 줄기 따스함이다.원경릉이 조용히 우문호의 가슴에 엎드려 그의 심장 고동소리를 듣자 마음이 평온해 지는데, 우문호가 있기에 세상이 있고 무슨 일이 생겨도 두렵지 않다.우문호가 고개를 숙여 원경릉에게 키스하고 원경릉은 우문호의 목을 끌어안는데 약간 건조하면서도 뜨거운 입술의 온도가 느껴지며 그제서야 둘이 꽤 오래 서로 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아가 밥을 가지고 문 앞에 왔다가 이 장면을 보고 얼른 물러났다.서일의 목소리가 살풍경하게 들려오는데 급하게 뛰어왔는지 새된 목소리로, “나리, 기왕부에 일이 생겼는데…….어? 두분 바쁘신 가요? …… 소인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놔주고 약간 침울한 얼굴로, “들어와, 기왕부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서일이 대담하게 들어와서 보고하길, “기왕부 사람이 경조부에 신고하러 왔는데 기왕부에 도둑이 들었다고. 보좌관이 병여도 도난 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태자 전하께 직접 다녀오라고 했습니다.”우문호가 얼른 외투를 입고 원경릉에게, “다녀올 게.”“뭐 좀 먹고 가지?” 원경릉이 만아 손에 들려 있는 밥을 보고 소리쳤다.우문호가 한 손으로 찐빵 두개를 입 안에 우겨 넣고 우물거리는 소리로, “도아아서 어그께.”서일도 따라서 얼른 뛰어 갔다.만아가 밥을 들고 들어와서 한숨을 쉬며, “태자 전하께서 너무 고생이세요. 밥 한 끼를 제대로 못 드시고.”원경릉도 마음이 아파서 만아에게, “냄비
기왕부에서만아는 먹는 것을 버리는 것을 싫어해서 이미 배가 불렀지만 남은 것을 보고 아줌마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럼 쇤네가 먹습니다.”우문호는 서일을 데리고 기왕부로 가자, 경조부에서 이미 사람을 보내 우문호가 오면 같이 들어가려고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기왕은 오늘 술을 마시고 서재에서 기왕비에게 손가락질 하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신고는 왜 해? 도둑 좀 든 거 가지고? 잡으면 잡는 거고 못 잡아도 딱히 잃은 것도 없는데, 저 속이 시커먼 놈은 왜 오라고 했어? 왜 날 더 엿 먹이지 못해 안달이야? 내가 망신당하는 꼴을 보고 싶어 죽겠지? 네가 아주 지금 좋아 죽겠는 모양인데, 이 분만 삭이고 나면 내가 널 아주 죽여버릴 거야 이 년아!”기왕은 우문호에게 뼈에 사무치게 미움이 쌓였는데, 도둑이 들었어도 별로 큰 손해도 없이 서재나 뒤졌을 뿐으로 돈 되는 물건이 없어서 신경 쓸 필요 전혀 없는데 이 쌍년이 옳다구나 하고 경조부에 신고를 했다.기왕비는 한 쪽에 서서 아무 말이 없이 기왕이 비난하도록 내버려 두었다.얼굴엔 벌써 손바닥 자국이 나서 화장으로 가렸지만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인데 기왕비의 눈빛은 흐리멍덩한 것이 뻥 뚫린 오래된 우물처럼 그렇게 악독한 저주를 퍼붓는 대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오히려 기왕이 갑자기 뒤를 도는 순간 기왕비의 눈에 한줄기 차가운 섬광이 번쩍했다.우문호가 경조부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자 기왕이 바로 나와서 막으며 우문호에게, “조사할 거 없어, 가!”우문호가 서재를 힐끔 보니 난장판이 되어 있고 책꽂이에 있던 건 뽑혀 땅바닥에 뒹굴고 탁자 위의 물건은 전부 바닥에 떨어져 있다.“보긴 뭘 봐? 꺼지라고 했어. 안 들려? 집안에 좀도둑이니 경조부에서 납실 필요 없으니까 당장 꺼지라고!” 기왕이 술을 마시고 우문호를 보니 희열이와 이씨 집안의 혼사를 망쳐 놓은 일이 생각나 열불이 치밀었다. 결국 경조부 사람이 그 자리에 같이 있는 것도 개의치 않고 대놓고 우문호에게 화를 냈다.우문호는 정색하고 기왕
기왕의 밀실이런 모욕적인 말을 우문호는 전혀 들은 척도 안하고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기왕비는 계속 조용히 보고 듣고 있다가 우문호가 들어오자, “오늘밤 기왕부 수위가 순찰을 돌 때 서재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창문으로 도망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을 데리고 쫓았으나 잡지 못하고, 제가 전에 병부에서 도난사건이 있었다는 게 기억나서 이 일을 사적으로 처리할 수 없어 이렇게 신고를 했습니다.”“뭘 잃어버리셨는지 찾아보셨습니까?” 기왕비가 고개를 저으며, “아뇨, 뭔가 손을 대면 조사하는데 지장이 있을 까봐, 그런데 여기…… 원래는 이렇게 어지럽혀 있지 않은데 왕야께서 돌아오셔서 역정을 내시는 바람에 이렇게 부서져버렸네요.”우문호가 바깥을 흘끔 보니 기왕이 여전히 욕을 하고 있고 갈 수록 욕이 에스컬레이팅 하자 심각한 얼굴로 서일에게 분부하길, “입을 막아라.”기왕의 욕은 험하고 악독하며 자극적이어서 서일은 벌써부터 참기가 힘들었는데 친왕이라는 신분이라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런데 우문호가 명을 내리자 바로 천을 가져다 욕을 쏟아내는 기왕의 입을 틀어막았더니 온 세상이 일순간 고요해 졌다.우문호가 보니 서제에 기본적으로 중요한 물건은 없고 병법서와 일반적인 문서들로 기왕비에게, “사람을 데리고 와서 뭔가 귀중한 것을 잃어버린 게 없는지 살펴 보시죠?”기왕비가 망설이며, “여긴 중요한 물건이 없는데, 어쩌면……”“어쩌면?” 기왕비가 말하려 다가 말고 우물쭈물 하는 것을 보고 의구심이 들었다.기왕비는 바깥에 기왕을 흘깃 보더니 기왕의 입은 막혀 있지만 두 눈은 뜨고 있고 눈에서 불꽃이 나오며 독화살처럼 기왕비에게 꽂혔다.기왕비는 천천히 눈을 돌려 우문호에게, “어쩌면 밀실에 잃어버린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여기 밀실이 있어요?” 우문호가 의아해 했다.밖에 기왕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마의 핏줄이 다 튀어나왔으나 소리를 내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두 눈 멀쩡하게 뜨고 기왕비가 밀실 문을 여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서재의 동쪽
기왕비의 부탁우문호가 한 손으로 들어 올리자 병여도가 그의 손에서 주르륵 펼쳐지는데 바닥까지 닿고 위쪽에는 병기의 제조 방식과 여러 구조도가 그려져 있다.우문호는 천천히 병여도를 말며 기왕비의 놀란 표정을 보고 속으로 생각이 있어 여기서는 묻지 않고 차갑게 명을 내리는데, “이리 오너라, 우문군을 경조부로 데려가 하옥하라.”기왕이 풀려날 때는 이미 몸이 허물어지더니 병여도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우문호를 가리켜, “네가 훔친 걸 우리집에 가져다 놓고 나한테 뒤집어 씌우려고 해? 이건 내 꺼 아니야, 우문호, 넌 위아래도 없고 뵈는 것도……”우문호가 한 방에 기절 시키더니, “데리고 가라!”기왕비는 손을 뻗어 문에 기대고 복잡하고 당혹스러운 안색이다. 우문호가 다가와서, “형수님, 태자비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은데 가서 같이 좀 계셔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기왕비가 멍한 목소리로, “그러지요!”“그런 저는 일단 경조부로 가겠습니다!” 우문호는 현장 종료를 알리고 기왕부를 떠났다.기왕은 경조부 감옥으로 압송되었고, 병여도는 우문호가 경조부에 남겨두지 않고 몸에 지니고 초왕부로 갔다.우문호는 사실 밀실의 문을 열 때부터 이 일은 어쩌면 기왕비의 작품일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했다. 도난사건을 빌미로 경조부 사람을 끌어들여 우문군이 안에 꾸며 놓은 사악한 주술 짓거리를 보게 해서 모두에게 미움 받을 계획이었다. 아바마마는 말할 필요도 없다.이 죄는 기왕의 목숨을 부지하게 할 수 있으나 남은 평생에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기왕비가 이렇게 한데는 기왕이 희열군주를 건드리려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아직 잠들지 않았는데 기왕비가 심야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옷을 걸치고 나갔다. 기왕비는 전신에 맥이 풀린 것처럼 의자에 쓰러지더니 옷 안으로 목을 잔뜩 움츠렸다. 망토 밖으로 큰 눈만 보이는데 허둥지둥하고 막막한 표정이다.원경릉이 기왕비의 이런 모습에 너무 놀라, “무슨 일이예요?”기왕비를 안지 오래됐지만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