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혼사를 다 결정해놨다고? 왜 나는 그걸 몰랐지?” 원경릉이 경악을 금치못했다. 원경병은 막 열 다섯이 되지 않았는가? 이리 급히 혼사를 치른다고?“이미 내 사주팔자도 그 쪽으로 보냈다고 해요.”“누구한테?” 원경릉이 물었다.“주대유(褚大有)”“주대유가 누구야?”옆에 있던 기상궁이 “주수보에 조카입니다. 벌써 서른이 훌쩍 넘었다고 하는데, 이 전에 혼인한 세명의 정실(正妻)들이 다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고작 열 다섯 여자아이를 서른 중반의 남자한테 시집을 보낸다고? 말도 안돼!” 화난 원경릉의 손이 벌벌 떨렸다. 정후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딸을 이렇게 물건 넘기듯이 넘기려고 하다니!“아버지께서 말하길 나이가 많긴 하지만 이미 혜정후까지 봉해졌으니 우리 쪽보다는 귀한 신분이라고 하셨습니다.”“그래서 어쩌라고?” 원경릉이 화가 난듯 물었다.“어쩔 수 없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원경병이 고작 열 다섯살이라고 할지라도 집안 끼리의 혼인을 자신이 이래라 저래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원경릉이 기상궁에게 “혜정후는 인품이 어떱니까?” 라고 물었다.“왕비. 왕야께 물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왕야께서 열 다섯부터 혜정후를 따라 참전했고,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는 직접 전쟁에서 통솔하셨습니다.”원경릉이 원경병를 보며 “혜정후. 아마 진작 알아봤겠지?”라고 물었다.“알아봤죠. 무척 괴팍한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원경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원경릉은 원경병이 단순히 여기에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라 혼인을 피하기 위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열 다섯살. 고작 중학생 나이인데.정후는 자신의 앞길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이기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왕비께서 초왕의 총애를 얻어 아버지의 출세를 도왔더라면! 내가 혜정후에게 시집가지 않아도 됐습니다!” 원경병이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원경릉은 화가 나서 붉어질 것 같은 얼굴을 간신히 숨겼다.
우문호에게 아쉬운 소리해가며 부탁을 할 생각을 하니 원경릉은 내심 내키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순순히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우문호가 정후에게 혼사에 관해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정후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혼사를 막을지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 원경병은 생각은 단순하기 그지없구나.’허나 우문호가 마음먹고 도와준다면 그는 틀림없이 방법을 찾을 것이다.“우선 방에 들어가 쉬고, 이 일은 좀 더 생각해보는게 좋겠어.”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병은 괴로운 마음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원경병은 자신의 말을 원경병이 신경도 쓰지 않을 줄 알았다. 그저 모 아니면 도 라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구했을 뿐이다. 하지만 원경릉이 의외로 고민하는 듯 보이니 원경병도 내심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원경릉이 방금‘좀 더 생각해보자’라고 하니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었다.원경릉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본 적이 없었다. 이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혼인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말에 복종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초왕과 혼인을 했다. 혼인을 했다고 지금 초왕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나? 그것도 아니다.정후는 딸을 내세워 모험을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딸은 출세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는 옳지 않다. 모든 사람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게 이 시대의 여자라고 해도 말이다.지금 원경릉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녀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원망과 원한, 증오 뿐이다.원경릉이 무언가 결심한 눈빛을 기상궁을 보며 “왕야가 무엇을 즐겨 먹습니까?” 라고 물었다.“자소 오리” 기상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원경릉이 초왕에게 부탁을 하려는 건가?“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주세요.” 원경릉이 말했다.“왕비. 아무래도 이 일에 손을 떼시는 것이 좋겠어요. 왕비가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고, 만약 왕야께서 나서서 정후부에 찾아가 원경병의 혼사에 관여하게 되면 정후는 아마 초왕의 총애를 얻었다고
오리 요리로 청탁할 틈을 노리는 원경릉“보기엔 붓기가 가라앉았는데, “ 원경릉이 미소를 띄고 칭찬하며, “이 말 안 할 수가 없네, 왕야는 진심 잘 생겼다니까, 부어서 이런 거지, 보면 그런대로 잘 생기지 않았어?”“헛소리 다했으면 빨리 꺼져.” 우문호는 약간 열이 나는듯 하고 전신에 힘이 없는 것이 이 말벌이 독하긴 독하구나 싶지만, 그래도 원경릉만큼 독하진 못하다.“별 일 없으면 왕야 식사 시중을 들고 싶은데. 직접 자소오리(紫蘇鴨子, 차조기 오리요리) 만들어 왔거든. 술도 한 병 곁들여서, 왕야 이리 와서 나랑 한 잔해.” 원경릉이 손을 뻗어 우문호를 부축했다.“건드리지 마!” 우문호는 손을 뿌리치며 노기충천해서, “너 이 독한 것아.”원경릉이 간절하게, “왕야는 통이 크니까 나처럼 이런 소녀랑 대결하지 말았어 야지. 이번 일은 확실히 내가 잘못했네, 숨지도 않고 소리도 지르지 말고 바닥에 조신하게 서있었어야 했는데, 말벌이 나를 쏘게, 아이고, 어쩌다 왕야를 쏴서, 진짜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지.”“너 지금 나 토해서 죽는 거 보고 싶은 거지?” 우문호가 몸을 돌려 단추구멍만 해진 눈을 겨우 뜨니 원경릉의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추는 표정이 보였다, “기회는 한 번, 말할 거야 말 거야? 안 할 거면 꺼져.”“술도 마시……”원경릉이 우문호의 얼굴을 보니 진짜 못났다, “됐다, 너 지금 얼굴 너무 심하게 부어서 술 못 먹겠어, 밥 먹자, 자소오리는 처음인데 냄새 진짜 죽이지 않아? 안심해. 나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그냥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게 방법은 아닌 거 같아서, 이 생활 계속 해야 하는 거잖아? 모름지기 인화가 중한 법이지.”이 말은 지극히 논리 정연하고 이치에 합당해서 맺혔던 마음도 풀리게 만들어 우문호마저 받아들이려고 한다.우문호 생각에도 줄곧 다투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인데, 심지어 예전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원경릉이랑 다투는 것이니 말해 뭐할까.게다가 그녀는 지금 그렇게 싫지도 않고, 어쩌면 각박하게
혜정후에 대해 듣게 되는 원경릉기왕 이렇게 된 이상 원경릉은 사양하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 “왕야한테 두 명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원경릉은 알고 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얕은 데에서 깊은 데로 들어가야 한다. 듣는 사람을 곤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본론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누구?” 우문호는 역시 반감을 나타내지 않는다.“소요공(逍遙公).”우문호의 안색이 약간 변하며, “그 두사람에 대해 물어봐서 뭐하게?”“태상황 폐하가 그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듣고, 그냥 호기심에.”“그 사람에 대해서는 나는 아는게 하나도 없으니, 물어봐도 소용없어.” 우문호가 싫은 얼굴로 말했다.원경릉은 약간 의혹이 드는 게, 이 소요공이란 사람은 전임 재상이 아닌가? 우문호가 어째서 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탕양이 옆에서 눈짓하는 것을 곁눈질로 본 원경릉은 자연스럽게 소요공이 우문호와 원한 관계였음을 알고, “그럼 됐어, 두번째 사람에 대해서 물어볼 게, 혜정후(惠鼎侯) 주대유(褚大有)는?”우문호는 미간을 찡그리는 것이겠지만 붉게 부어 오른 미간이 일순간 번질거리며, “그 사람?”“그 사람은 행동거지가 어때?” 원경릉이 우문호의 표정을 보고 좋은 대답이 나올 거 같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한 마디로, 악랄해!” 우문호는 차갑게 말했다.원경릉이 악랄이란 단어의 의미를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은 놀랍게도 우문호의 성격은 함부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고, 오직 원경릉에 대해서만 악독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혜정후에 대해 악랄하단 한 단어로만 표현해? 네가 진짜 얼마나 속 좁은 인간인지 알겠다.“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원경릉이 서둘러 말했다.“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거야?”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조금 망설이더니, “우리 아버지가 동생을 그 사람한테 시집 보낸데.”우문호가 당황했지만 곧 냉정하게: “그럼 이제 여동생 장사 지낼 일만 남았네.”원경릉이 너무
티격태격하는 원경릉과 우문호“왕야께서 그와 부딪히는 게 많아 결국 황제 폐하 앞에서 상황을 고하니, 폐하께서 조사를 분부하셨으나 오히려 그런 일이 없었던 것으로 되었습니다. 왕야는 이로 인해 황제 폐하께 심하게 질책을 당하셨는데, 군의 원수(元帥)를 무고한 죄였지요.” 탕양이 말했다.원경릉은 가슴을 부들부들 떨며, “그렇다면, 그가 살해한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전부 입다물게 했단 말이야?”“한 명만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삼방부인의 친정 아버지인, 육주(陸州) 지부(知府)로 삼방부인이 죽었을 때 마침 아버지 육지부(陸知府)가 수도에 있어 딸의 시체를 봤더니 전신에 상처가 나 있고,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한 데다가 뱃속에 아이가 있었는데 직접 때려서 유산을 시킨 것을 알았습니다. 육지부가 당연히 가만 있지 않고 이 일을 조사하려 했으나……”“결국?” 탕양이 갑자기 말을 멈추자 원경릉이 다급하게 물었다.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조사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육지부가 미쳤거든요.”원경릉은 전신이 덜덜 떨리고 전신의 모든 구멍에서 분노가 터져 나와 머리카락까지 쭈뼛하게 서는 기분이 들며, “아무도 변태를 고치지 못한 거야?”우문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도 심하게 맞긴 했지.”“누가 때렸어? 잘 때렸네.” 원경릉이 이를 갈며, “누가 왜 차라리 때려 죽이지?”“소요공!” 우문호가 원경릉을 흘끔 쳐다보고 말했다.“소요공?” 원경릉은 어안이 벙벙했다. 소요공은 나이가 많은데 과연 그를 심하게 때릴 수 있었을까? 힘과 권세! 원경릉은 소요공에게 꼭 인사 드리러 가겠다고 결심했다. 탕양이 말하길: “혜정후는 삼방부인이 죽은 뒤에 소요공의 조카 손녀와 결혼하고 싶다며, 심지어 주재상에게 중매를 부탁했지요. 혼담은 성사가 되었지만, 누가 알았겠습니까, 소요공이 이를 알고 용머리 지팡이로 혜정후를 심하게 팼는데, 혜정후가 삼일 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굉장히 잔인하게 때렸다고 합니다.”“용머리 지팡이? 이름은 굉장히 무시무시할
혜정후와의 결혼을 말리려 친정에 간 원경릉원경릉은 우문호의 약점이 뭐가 있는지 머리를 쥐어 짰다.맞아, 주명취. 하지만 이건 우문호의 역린(逆鱗)이기도 한데, 그의 약점을 틀어 쥠과 동시에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꼴이라 뒤끝이 장난 아닐 것 같다.“됐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고 안되면 내가 직접 혜정후를 만나면 될 거 아냐.” 원경릉은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우문호는 콧방귀를 뀌며, 원경릉이 직접 혜정후를 만난다고? 원경릉이 그럴 베짱이 있으면 내가 원경릉 노비다.우문호가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니라, 정후부가 감히 주씨 가문에 맞설 수 없다는 말이다.원경릉은 말이 떨어지자 마자 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라 다음날, 녹주를 시켜 혜정후에게 인사첩을 보냈는데, 혜정후는 왕비가 만나자는 요청을 거절한다는 직접적인 답장을 정후부에 보내지 않고, 혜정후가 요 며칠 집에 없다고 둘러서 말했다.녹주는 초왕부로 돌아와 화를 내며, 원경릉 앞에서: “혜정후도 마마님을 그다지 존중하질 않습니다. 분명히 집에 있었어요, 문지기가 가서 보고할 때 혜정후 대감이 마침 복도에 계신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녹주야, 말이 많구나!” 기상궁이 호통을 쳤다.원경릉은 아무렇지도 않게: “혜정후는 잘 나가는 후작이니, 거드름을 피우고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도 정상이지.”“헤정후 대감은 왕야마저도 업신여기는 거예요.”“그야 당연하지, 지난날 왕야도 휘하의 장수에 불과하지 않았느냐.” 지난날 아랫사람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게다가 그 아랫사람한테 미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원경릉은 속수무책이다.정상적인 혼인절차에 따라 혜정후가 정후부를 예를 갖춰 대한다면 어찌 장차 처형이 될 원경릉과 만나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그가 아예 문전박대 하는 것은 정후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표시다.바꿔 말해, 이 결혼은 대등하지 않다.“왕비 마마, 가서 정후 대감께 사정하시는 게 어떠세요?” 녹주가 말했다.“차라리 옥황상제에게 가서 사정하겠다!”
오빠 원륜문과 사촌 새언니 난씨의 입장원경릉이 미소를 띠고, “고마워요, 알려주시기 전엔 할머니를 찾아볼 생각을 못했어요.”하지만, 할머니를 누가 찾아 뵙는 걸 싫어한다고? 둘째 노마님이? 손녀가 병이 위중한 할머니를 찾아 문병하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황씨는 열 받아서 머리가 지끈거리며, “열 받아 죽겠네, 하나도 나아진 게 없어, 철이 없어.”원경릉은 어머니를 내버려두고 바로 나갔다.문을 나가다가 누군가와 거의 부딪힐 뻔 했다.원경릉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 몸을 세우고 앞에 선 사람을 쳐다보는데,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푸른 옷을 한 벌로 입은 잘 생긴 젊은 남자다.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며, “오빠!”이 사람은 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의 오빠 원륜문(元倫文)으로 서길사(庶吉士,한림원의 진사 벼슬 중 하나)다.전에는 가문의 자랑이었으나, 언사가 방자하다며 주씨 집안의 미움을 산 까닭에 지금은 한림원(翰林院)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한량이다.“천방지축으로 뭐하고 있어?” 원륜문이 엄숙하게 말했다.“일이 있어서, 실례해요.” 원경릉은 원씨 집안 사람들에게 호감도 없고, 원륜문이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내는 것도 귀찮다.안에서 황씨가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리자, 원륜문은 원경릉의 손목을 잡아 끌고, “너 또 왜 어머니를 화나게 했어?”“엄마가 화내는 걸 좋아하는 걸 어떡해.”“무례하게 굴지마라!” 원문륜은 얼굴을 굳히더니 호통을 쳤다.원경릉은 속으로 울화가 치미는데 황씨에게 화를 낼 수 없고, 마침 원륜문이 시체처럼 얼굴을 굳히자 화가 끓어올라, “무례한 게 무정한 것보다 나아.”“무정하다니?” 원문륜이 화를 냈다.“자기 친 딸을 혜정후같은 악인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는데 무정한 게 아니고 뭐야?” 원경릉이 차갑게 말했다.“누가 혜정후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데?” 원문륜은 얼굴색이 확 변했다.원경릉은 그를 보고, “오빠 몰랐어? 아버지가 둘째를 혜정후한테 시집 보낸데, 이 참에 주씨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고 싶으신 거지.”“말도
할머니를 찾아가는 원경릉정후부의 ‘단결’은 원경릉의 마음 속 저 깊은 곳의 잔인한 반골의 피를 들끓게 했다.“셋 까지 셀 동안 비켜요!” 원경릉이 난씨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난씨는 씩 웃으며, “어쩌나 비킬 수가 없네, 왕비마마께서 노마님께 가서 포악을 떨고 요란을 부리면 노마님 병환이 나빠지셔서 안되요.” 셋까지 세야 하나, 유치하다.원경릉은 그녀를 노려보며, “하나……”두 손으로 밀어젖히니 난씨는 비틀거리다가 넘어졌다.“죄송해요!” 원경릉이 빠른 걸음으로 갔다.“아야야, 왕비가 나를 치네, 왕비가 나를 치네……” 난씨는 땅바닥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크게 울어 대니 정후부 하인들이 다투어 와서 쳐다본다.원경릉이 걸음을 멈추고 잠시 멈칫 하더니, 큰 걸음으로 뒤로 돌아왔다.난씨가 울며: “도리가 땅에 떨어졌네, 좋든 싫든 내가 네 숙모인데, 나한테 손찌검을 하다니, 왕비라는 것을 믿고 친정에 와서 손윗사람을 못살게 구는 구나.”원경릉은 몸을 굽혀 차갑게 웃으며: “숙모, 입 닥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오늘 둘째 노마님도 감히 나와서 절 막질 않는데, 숙모가 나서서 앞잡이가 되 보겠어요?”“너…..너 지금 무슨 소리야?” 난씨가 잠시 울음을 멈춘 것이, 눈물을 아무리 쥐어짜도 한 방울도 나오질 않아서다.“예전엔 친정에 한 번 오려면 왕야께 여러 번 청을 드려야 했지만 지금은 내가 가고 싶으면 어디든 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원경릉은 음흉한 듯이 말했다.난씨는 놀란 얼굴로, “소리 질러서 깜짝 놀랐잖아, 왕야께서 이제서야 너한테 신경을 끄신 거지, 그날 너희들이 우리 보라고 연극한 거잖아.” 그들은 그날, 분명 서로 사랑하는 부부인 척 가장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연극을 해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난씨가 곰곰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게, 전에 원경릉이 친정에 왔을 땐 늘 소심하게 쩔쩔 매더니 이번 두 번은 베짱이 두둑하다.난씨는 소리도 못 내고 눈만 껌벅거리며 원경릉이 빠른
우문호는 즉시 얼굴에 기쁨을 띠며 종이를 구겼다.“뭘 가져왔는가? 한 잔 마시겠네. 지금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네!”목여 태감이 바로 들어와 차를 올리며 말했다.“어의가 처방한 화기와 열을 내려주는 약입니다. 약간 달면서도 쓴맛이 나는데, 등심초와 하기초, 그리고 연심을 조금 넣어, 열을 내리기에 제일 맞을 겁니다. 폐하께서 쓴맛을 싫어하실까 봐 꿀대추도 하나 넣었습니다!”그는 약을 탁자 위에 놓고 부채를 찾아 부쳐주려 했지만, 우문호는 이미 손으로 약그릇을 들어 가까이 가져가 불며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날씨가 조금 추운 탓에 약이 미지근한 상태로 전달되어, 몇 번 불어 마시기에 딱 적당했다.그는 약을 단번에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은 후, 목여 태감을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자네가 세심하군. 앞으로 짐의 기거와 음식은 자네가 더 신경 쓰게.”“이것은 소신의 본분입니다!”목여 태감은 다소 감격하며 말했다.“자네는 짐이 원로 신하들과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모르네. 앞으로 자네가 옆에 있으면서 짐을 도와 몇 마디 해주시게. 도통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목여 태감이 안쓰럽게 말했다.“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폐하가 계신 곳에는 항상 제가 함께하며 결코 폐하 홀로 싸우지 않게 하겠습니다.”우문호의 침울했던 눈빛이 갑자기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 선생이 언제나 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기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늘 그의 삶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우문호 부모님의 생신도 잊지 않았고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돌보며 곁을 함께 했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은 자기 일도 바쁘게 처리하고 있었다.가끔 피곤하다고 느낄 때 그녀를 떠올리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곤 했다.“폐하? 지금 황후마마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까?”목여 태감은 바로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조금 있으니, 소월궁으로 돌아가 황후마마와 함께 식사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좋네. 어서 돌아가세!”
목여 태감은 필요에 대한 결핍을 느꼈다.사실 우문호는 그가 힘들까 봐 걱정되어 그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태상황을 그렇게 오랜 세월 모셨으니 그의 노고가 매우 컸고, 그가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를 바랐던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계속 바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한가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무공도 뛰어난 데다 신체 능력도 젊은이들보다 크게 뒤떨어지지도 않았다.갑자기 그를 쉬게 하면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리고 현재 어서방이든 소월궁이든, 그가 비록 그곳에 있긴 했지만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일을 처리할 때 그를 시키는 일은 전혀 없었다. 매번 그 스스로 나서서 하려고 했다. 어쩌면 우문호가 그를 늙어서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태감!” 원경릉이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약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폐하께서 요즘 늦게 주무시고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지셨네. 몸에 열이 많은 것 같은데, 태감이 보기에 어의를 불러 몇 해열탕을 몇 첩 지어야 할 것 같소?”목여 태감은 긴장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열이 오르셨다고요? 그렇다면 어의를 불러 맥을 짚어 봐야 합니다.”“맥을 짚을 필요는 없네. 내가 보아하니 열이 오른 것 같네. 태감이 약 몇 첩을 지어 잘 달인 뒤 어서방으로 보내 주시게.” 목여 태감이 다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인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아주 바빠 보였다. 다시 활력이 생긴 것 같았다.원경릉은 몇 자 적고는 녹주를 시켜 어서방으로 보내 우문호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의정 논의가 잠시 쉬어가는 시기에 들여보냈고, 그의 공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녹주는 쪽지를 받아 어서방 밖에서 기다리다가, 잠시 틈이 생기자 어전 시위에게 전달하며 황제께 전해 드리라고 했다. 이어서 황후 마마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덧붙였다.우문호는 오늘 대신들과 아주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가 이전에 발탁했던 한
원경릉은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잘 생각 하셨소, 내 사람을 시켜 전골을 내오라 하겠소.”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아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그는 스스로가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큰 행운은 그녀를 만난 것이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가슴 벅찼다.그는 그저 아톰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만약 아톰의 마음속에 일곱째 아가씨가 없다면, 아톰이 평생 장가를 가지 않는다 해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몇 마디 잔소리를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는 안타까웠다.둘은 전골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날들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최근 공무가 바빠 식사 후에 보고를 가져와 검토하였고 원경릉은 옆에서 그를 보필하며 이따금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밤은 고요했지만 아주 평화로웠다.보고를 다 읽었을 때는 이미 자시가 되어 있었다. 목여 태감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와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고 재촉했었다.우문호는 아직 잠이 오지 않았지만 원 선생이 그 때문에 밤을 새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녀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그에게 며칠 후에 어딘가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겸사겸사 양여혜가 이끄는 다른 팀의 신약 데이터도 살펴보고, 추 상궁의 피를 조금 뽑고 돌아가 검사해서 약의 억제 효과를 확인하려 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돌아와 조정을 해야 했다.“얼마나 가 있는 것이오?” 우문호가 물었다.“일주일 정도. 나도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소. 추 상궁 쪽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오.” 원경릉이 답했다.“그럼 좋소. 내 경호까지 바래다 드리겠소.”“필요 없소.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번거롭지 않소!”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가 말했다. “알겠소. 아이들도 가고, 냉정언이랑 홍엽도 떠나고, 서일도 가고, 탕양도 가고, 이제 당신까지 가니,
“급한 일이 아니면 일단 잠시 미뤄 두게. 짐이 자네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으니…”“정말 급한 일입니다. 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탕양은 말을 마치자마자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몸을 돌려 쏜살같이 도망치듯 달려갔다.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 정말 재빠르게 도망치는군. 누가 잡아먹겠다고 했나, 그저 속마음을 좀 털어놓으려 했을 뿐인데. 저 이기적인 놈, 내 또 누구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목여 태감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폐하, 탕 대인께서는 폐하께서 잔소리하실까 봐 그러시는 겁니다!” “짐이 언제 잔소리를 했단 말이냐? 몇 번…아니 열몇 번, 많아야 백 번 정도 말했을 뿐이지 않나?” 우문호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네 그럼요, 폐하께서는 잔소리하지 않으십니다!” 목여 태감이 웃으며 말했다. 황제가 탕 대인을 매우 아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었다. 황제는 그가 홀로 밖에서 고생하는 것을 안쓰러워하며, 집에는 그를 정성껏 보살펴 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짐이 그를 설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사람마다 뜻이 있는 법이고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면 내버려두는 수밖에. 다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네. 사람의 일생이란, 정말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붙잡아야 하는 법 일세.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가 되어 한평생을 되돌아보며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겠나?”“짐도 잔소리가 좀 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저 이 일에 대해서만 잔소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야. 감정적인 일은 억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급하구나.”목여 태감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있었다. 이전 사례로 보아 황제는 또 한동안 탕 대인 일로 잔소리를 늘어놓을 터였다. 탕 대인 일이라면 황제가 탕 대인보다 더 안달복달이었다.정말이지, 태감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황제만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우문호는 소월궁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원경릉은 책을 보면
탕양은 손을 뻗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을 살짝 눌렀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안내인도 있고, 지도도 있으니, 독산 어디든 원하시는 곳에 가실 수 있습니다. 사람을 써서 사전에 모든 위험을 제거해 드릴 겁니다. 아시겠지만 독산에 위험이 제거되면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을 들일 수 있습니다. 어떠십니까?”“관광지로 개발한다고요? 그거 참 기발한 생각이네요. 하지만 그렇다면 독산을 저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군요?” 일곱째 아가씨는 냉소했다.“15년 동안은 아가씨께서 독점하시고, 그 후에는 수익의 3할을 가져가시는 겁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개발, 물론 좋은 일이다. 좋은 곳, 좋은 경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가 말한 것처럼 입장료를 받고 조정의 협력까지 더해진다면 꽤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어쨌든 조정은 다섯 곳의 성지를 발전시키려 할 테니,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려 할 것이다.게다가 황제는 현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총력을 쏟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되고 북당이 점점 부유해지니 돈을 좀 들여서 놀러 다니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고, 이는 장기적인 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다.그녀도 이제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 봐야 했다. 독산은 정말 좋은 곳이고, 그녀의 꿈이 깃든 곳이다. 독산에서 여생을 보낸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원 가문의 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계약하죠!”이렇게 성급하게 5백만 냥짜리 거래를 결정하는 것은 평소 신중했던 일곱째 아가씨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부자에게 있어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번쯤 돈을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일곱째 아가씨께서는 역시 호탕하시군요! 과연 여장부십니다!” 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첨은 그만 하시고, 말씀하시지요. 제 안내인은 어디 있나요? 제가 직접 한번 가 보고, 정말 독산 전체를 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공부에서 오는 길입니다. 복지 시설 건립 건에 작은 문제가 생겼거든요. 지금은 다 처리했습니다.” “탕대인께서 나서셨으니, 안 될 일이 없겠죠.” 일곱째 아가씨는 탕양의 일 처리 능력을 인정하였다.그녀는 차 재료를 넣고 잠시 끓인 후, 탕 대인에게 따라 주며 말했다. “입술이 바싹 말라 다 트셨네요. 어서 드세요.”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탕양은 차를 받아 들고 몇 번 불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차가 뜨거웠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말 몹시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그가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 “저를 찾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탕양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단에서는 혹시 약도성 재건 사업에 참여할 생각을 해 보셨는지요? 안심하십시오,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저는 민간 상단입니다. 어떻게 성 재건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분명 문제없을 겁니다.” 탕양이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탕 대인, 이런 좋은 일을 어쩌다 저희 상단이 맡게 된 것입니까? 혹시 대인께서 뒤에서 저희를 위해 힘써 주신 건 아니신지요? 어쨌든 호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은혜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민간 상단이 약도성의 재건에 참여하려면 막대한 은화를 지출해야 하는데, 재건 이후 그녀의 상단에 돌아갈 이익은 아마 봉토 정도 일 것이다.약도성은 택란 공주의 영지이고, 철광이 많으며, 정세도 이미 안정되었으니 채굴은 시간문제이다.하지만 광산은 예로부터 조정의 소유였으니, 민간 상단에 봉해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설령 봉토를 내린다 해도 쓸모없는 산지나 몇 개 주어질 뿐일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 일을 엄청난 호재라고 말한 것은 탕양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함일 뿐, 사실 그녀는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탕양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