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원륜문과 사촌 새언니 난씨의 입장원경릉이 미소를 띠고, “고마워요, 알려주시기 전엔 할머니를 찾아볼 생각을 못했어요.”하지만, 할머니를 누가 찾아 뵙는 걸 싫어한다고? 둘째 노마님이? 손녀가 병이 위중한 할머니를 찾아 문병하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황씨는 열 받아서 머리가 지끈거리며, “열 받아 죽겠네, 하나도 나아진 게 없어, 철이 없어.”원경릉은 어머니를 내버려두고 바로 나갔다.문을 나가다가 누군가와 거의 부딪힐 뻔 했다.원경릉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 몸을 세우고 앞에 선 사람을 쳐다보는데,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푸른 옷을 한 벌로 입은 잘 생긴 젊은 남자다.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며, “오빠!”이 사람은 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의 오빠 원륜문(元倫文)으로 서길사(庶吉士,한림원의 진사 벼슬 중 하나)다.전에는 가문의 자랑이었으나, 언사가 방자하다며 주씨 집안의 미움을 산 까닭에 지금은 한림원(翰林院)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한량이다.“천방지축으로 뭐하고 있어?” 원륜문이 엄숙하게 말했다.“일이 있어서, 실례해요.” 원경릉은 원씨 집안 사람들에게 호감도 없고, 원륜문이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내는 것도 귀찮다.안에서 황씨가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리자, 원륜문은 원경릉의 손목을 잡아 끌고, “너 또 왜 어머니를 화나게 했어?”“엄마가 화내는 걸 좋아하는 걸 어떡해.”“무례하게 굴지마라!” 원문륜은 얼굴을 굳히더니 호통을 쳤다.원경릉은 속으로 울화가 치미는데 황씨에게 화를 낼 수 없고, 마침 원륜문이 시체처럼 얼굴을 굳히자 화가 끓어올라, “무례한 게 무정한 것보다 나아.”“무정하다니?” 원문륜이 화를 냈다.“자기 친 딸을 혜정후같은 악인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는데 무정한 게 아니고 뭐야?” 원경릉이 차갑게 말했다.“누가 혜정후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데?” 원문륜은 얼굴색이 확 변했다.원경릉은 그를 보고, “오빠 몰랐어? 아버지가 둘째를 혜정후한테 시집 보낸데, 이 참에 주씨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고 싶으신 거지.”“말도
할머니를 찾아가는 원경릉정후부의 ‘단결’은 원경릉의 마음 속 저 깊은 곳의 잔인한 반골의 피를 들끓게 했다.“셋 까지 셀 동안 비켜요!” 원경릉이 난씨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난씨는 씩 웃으며, “어쩌나 비킬 수가 없네, 왕비마마께서 노마님께 가서 포악을 떨고 요란을 부리면 노마님 병환이 나빠지셔서 안되요.” 셋까지 세야 하나, 유치하다.원경릉은 그녀를 노려보며, “하나……”두 손으로 밀어젖히니 난씨는 비틀거리다가 넘어졌다.“죄송해요!” 원경릉이 빠른 걸음으로 갔다.“아야야, 왕비가 나를 치네, 왕비가 나를 치네……” 난씨는 땅바닥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크게 울어 대니 정후부 하인들이 다투어 와서 쳐다본다.원경릉이 걸음을 멈추고 잠시 멈칫 하더니, 큰 걸음으로 뒤로 돌아왔다.난씨가 울며: “도리가 땅에 떨어졌네, 좋든 싫든 내가 네 숙모인데, 나한테 손찌검을 하다니, 왕비라는 것을 믿고 친정에 와서 손윗사람을 못살게 구는 구나.”원경릉은 몸을 굽혀 차갑게 웃으며: “숙모, 입 닥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오늘 둘째 노마님도 감히 나와서 절 막질 않는데, 숙모가 나서서 앞잡이가 되 보겠어요?”“너…..너 지금 무슨 소리야?” 난씨가 잠시 울음을 멈춘 것이, 눈물을 아무리 쥐어짜도 한 방울도 나오질 않아서다.“예전엔 친정에 한 번 오려면 왕야께 여러 번 청을 드려야 했지만 지금은 내가 가고 싶으면 어디든 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원경릉은 음흉한 듯이 말했다.난씨는 놀란 얼굴로, “소리 질러서 깜짝 놀랐잖아, 왕야께서 이제서야 너한테 신경을 끄신 거지, 그날 너희들이 우리 보라고 연극한 거잖아.” 그들은 그날, 분명 서로 사랑하는 부부인 척 가장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연극을 해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난씨가 곰곰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게, 전에 원경릉이 친정에 왔을 땐 늘 소심하게 쩔쩔 매더니 이번 두 번은 베짱이 두둑하다.난씨는 소리도 못 내고 눈만 껌벅거리며 원경릉이 빠른
원경릉을 찾아 온 원륜문희망은 깨끗하게 사라졌다.원경릉이 초왕부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원륜문이 왔다는 전갈을 들었다.원경릉이 원륜문의 얼굴을 보니, 희고 깨끗한 고상한 얼굴에 벌건 손바닥 자국이 나 있고, 한 쪽 볼이 부어 올라 있다. 정후는 무장 출신으로 따귀를 한 대 때리면 사람이 반쯤 넋이 나가곤 한다.원륜문은 화가 났지만 방법이 없어 원경릉에게: “이 일은 아버지와 말이 통하질 않아, 아버지는 둘째 동생이 무사히 시집 가도록 주씨 집안에 꼬리치느라 정신이 없으시다.”원경릉이 가볍게 탄식하며 녹주에게, “빙고에 가서 얼음 한 조각 꺼내 수건으로 싸서 가져오너라.”녹주가 명을 받들고 나가서 잠시 후 얼음을 가지고 돌아오자, 원경릉이 수건으로 싸서 원륜문 얼굴에 얼음찜질을 했다.원륜문이 원경릉을 보고, “동생, 아직 방법이 있을까? 왕야께 도움을 구해볼 수 없을까?”“구해봤어, 그 죽일 놈이 싫데.” 원경릉이 말했다.원륜문이 꾸짖으며, “동생, 왕야를 그렇게 말하면 안돼, 왕야는 좋으신 분이야.”“오빠는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길래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야?” 원경릉이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오빠도 혹시 초왕의 권세에 아부하고 있는 거 아냐?“왕야는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가 싸우고, 아무런 공도 다투지 않는데 어찌 좋은 사람이 아니냐?” 원륜문은 평소처럼 원경릉을 흘깃 보며, “설사 너를 잘 대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 자업자득이야, 네가 왕야의 앞길을 망쳐 놓았으니.”맞는 말이다. 이게 어떻게도 씻을 수 없는 원경릉의 원죄다.원경릉은 화제를 돌릴 겸, “이 혜정후라는 사람이 정말 그렇게 악랄해?”그렇게 철저하게 악한 사람이라면 도대체 낯짝이 얼마나 두껍길래 이 세상을 멀쩡히 살아가는 거야?“잘 모르지, 하지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혜정후가 삼방부인을 학대해서 죽였고, 또 이 인간이 여색을 밝히는데 마음에 드는 촌 아가씨나 신분이 낮은 여자는, 반드시 사로잡아 가는데 안타깝게도 증거가 없다고.”원경릉은 가슴
원경릉의 이상한 행동이 미친 생각이 원륜문이 간 뒤에도 계속 자라났다.원경릉이 방에서 약 상자를 점검했다. 마취제, 있고, 거즈, 있고, 지혈제, 있고, 응급처치용 도파민, 있고, 아트로핀, 있고, 그 외 각종 자질구레한 약품들.비수, 없다. 서일한테 빌릴 수 있을 것이다.준비는 끝났다. 조사만 하면 된다.원경릉은 혜정후가 어디 자주 나타나는지, 언제 어떤 길을 지나는지, 신변을 보호하는 자가 얼마나 있는지, 무슨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는지 조사해야 한다.서일이 생각하기에 요즘 왕비마마께서 이상하시다. 한번은 와서 비수를 빌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고, 한번은 와서 다른 암기는 없냐고 물어보시고, 한번은 남자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이 뭐냐 고 묻질 않나.앞에 두 가지 경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맨 뒤에 그건 사실 말로 하기 쉽지 않다.왕비는 정말 엄청나게 단순하다.어느 날 왕비마마께서 참신하게 남장을 하고 문밖을 나서는 것을 보고, 심지어 녹주나 상궁 둘을 데려가지 않고 후문으로 나가시는 것을 목격했다.서일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묻기가 죄송했다. 왕비께서 이런 취미를 가지고 계셨 다니, 이거 정말 송구하구만.둘째 날, 왕비는 찐빵 두개를 들고 또 밖으로 나갔는데 이날은 하루 종일 걸려 날이 어둑어둑 해서야 돌아오셨다.셋째 날도 마찬가지 였다.서일 생각에 왕야께 말씀드릴 필요가 있겠다.우문호는 붓기를 가라앉힌 후 바로 경조부로 가서 인수인계를 하고 정식으로 경조부 부윤 직을 맡았다.새로운 인사는 한바탕 질서있는 정돈이 필요한 법, 경조부 관원 수십명은 얽히고설켜서 인맥은 꼬일 대로 꼬여 있고, 스스로 세력권을 가지고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건 조금도 과장해서 말하는 게 아니다.우문호는 최대한 빨리 각종 업무를 숙달해야 했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바빴다.이날 초왕부에 돌아오니 서일이 와서: “왕야, 요즘 왕비마마께서 이상하십니다.”우문호는 본래 상처가 있는 상태에다가 원경릉 얘기를 들으니 조금도 흥미가 생기지 않아, “왕비나 원
원경릉과 혜정후 눈이 마주치다우문호는 ‘응’하더니, “아첨하는 게 원경릉의 주특기 아니냐.”원경릉은 며칠 조사를 계속하며, 혜정후가 경성(傾城) 기생집에 노래를 들으러 자주 간다는 걸 알아냈다.하지만 날짜를 정해서 가는 게 아니라, 짬이 나면 가고 매일 가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군영에서 귀가길에 경성을 지나며 기생집에 들러 몇 곡을 듣는다.원경릉은 처음엔 들어갈 수 없었던 게 들어가서 노래를 들으려면 차 값과 상여금이 필요한데,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아 밖에서 배회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혜정후는 말을 타고 귀가하는데 보통 두 사람만 데리고 다닌다. 이 두사람은 허리에 칼을 차고, 엄숙한 얼굴로 한 명은 안으로 따라 들어가고 한 명은 밖에서 기다린다.이날은 원경릉이 돈을 가지고 있어 들어가서 노래를 들었다.청색 남자 옷을 위아래로 빼 입은 남자는 허리에 띠를 묶고 출렁이는 아름다운 머리에 제갈공명 모자를 썼다. 화장을 안 했는데도 붉은 입술, 하얀 이, 눈썹도 깔끔해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여성스럽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눈썹을 약간 두껍게, 눈꼬리는 날듯이 가늘게 그려 부드러움 속에 패기를 약간 더하는 느낌이다.원경릉은 초왕부에서 서일의 걷는 자세를 배운 적이 있는데, 정말 온갖 고생을 다했다. 가슴을 동여매고 허리를 펴고, 걸음은 안정적으로 걷는 것으로 서일은 칼을 찼지만 원경릉은 쥘부채를 꽂은 게 서생(書生)이 무장의 행색으로 분장한 느낌이라 오히려 자연스러웠다.하지만 오늘 나올 땐 시간을 약간 지체한 것이, 원경병이 초왕부로 온다 길래 같이 밥을 먹고 왔기 때문이다. 원경릉은 식사를 하며 원경병을 보니, 눈에 수심이 가득한 지라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다.그러고 경성 기생집에 도착했을 때 혜정후의 시종 하나가 밖에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뛸 듯 기뻤다. 그 말은 혜정후가 안에 있다는 소리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혜정후와 근거리에서 접촉할 수 있게 되니 원경릉의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렸다.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혜정후와 원경릉의 아슬아슬한 대화원경릉은 자신이 혜정후의 시선에 잡힌 것을 알고, 차분 하려고 애를 썼다.원경릉의 계획은 혜정후가 먼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사람이 많은 데서는 손을 쓸 수 없으므로 혜정후가 손을 쓸 수 있을 만한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그런데 막상 때가 닥치니 혜정후를 일망타진하듯 한 방에 잡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원경릉은 이즈음에서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일어섰다.서일이 탕양의 분부에 따라 요 근래 계속 원경릉의 뒤를 미행했는데 원경릉이 경성 기생집으로 들어서자 서일도 옆문으로 들어갔지만 앉지는 않고, 문에 기대서 쳐다보고 있었다.원경릉이 걸어 나와 주변을 보며, 요 며칠사이 부근 길이 상당히 익숙해 졌으나 오늘처럼 마음 먹고 찬찬히 고대의 거리 풍경을 바라본 적은 없는 것 같다.북당의 수도는 참으로 번화해서, 가게와 온갖 진귀한 물건이 가득 하고, 업종마다 번창한데 비단가게, 보석가게, 쌀가게, 화장품가게 모두 손님들이 가득하다.원경릉이 걸으며 정신없이 쳐다보느라 뜻밖에도 마차 한 대가 원경릉 옆에 멈춰선 것을 알지 못했다.마차 그림자가 보이자 원경릉은 놀라서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가리개가 걷히고 혜정후가 보인다.원경릉이 요 며칠 바빴던 건 다 이 사람 때문이라, 비록 가슴은 철렁했지만 그다지 놀란 척 하지 않고 약간 당황한 듯 혜정후를 봤다.마음 속으로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드는게 그동안 계속 말을 타고 다니더니 오늘은 왜 마차일까.“공자,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 혜정후가 말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괜찮습니다, 집이 별로 멀지 않아 금방 도착합니다.”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 원경릉은 지금 아무런 방비도 없고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방금 공자와 경성 기생집에서 노래를 들었는데, 공자도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시니, 어떻습니까? 술집에서 한잔 하시는 건?” 혜정후가 웃으며 물었다. 그가 뿜어내는 기색은 상당히 올바른 기운으로 마치 진짜 지인을 만난 것처럼 진실하게 임하고 있다.원경릉은 여전히 미
혜정후에게 납치된 원경릉“뭐 하시려는 겁니까? 풀어주십시오!” 원경릉이 몸을 일으키며 차분하지만 노기를 띠고 말했다.혜정후는 침략자의 눈빛으로 원경릉을 마치 도철(饕餮, 식탐이 심한 전설속의 짐승)의 먹이감처럼 바라보는데 눈 속에 이글대는 욕망을 전혀 감출 생각이 없다.큰 손으로 원경릉의 턱을 잡는데, 그 힘이 엄청나서 너무 아픈 나머지 눈물이 찔끔 나고 이 인간이 폭력 성향이 있다는 생각이 나자 마음이 초조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혜정후는 갑자기 손을 풀더니, 원경릉의 얼굴을 따라 매만지다가 갑자기 한 손으로 모자를 벗기니 아름다운 머리칼이 쏟아져 내렸다.“원래 계집이었군.” 혜정후의 웃음이 더 음흉해지고, 입술이 다가오며 입김을 원경릉 얼굴에 뿜는다. 입냄새가 심해서 토할 지경이다.원경릉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폭력 성향의 사람이 반항에 부딪히면 어떻게 하더라, 상대의 반항이 거세면 거셀수록 마음 속의 폭력 요소를 자극한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반항할 수 없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원경릉은 혜정후가 설마 백주대로에서 손을 쓸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는 도대체 얼마나 오만 방자하고 제멋대로인 걸까?방금 공중에 붕 떠오른 걸 보면 속도가 빨라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 같고, 설사 봤더라도 눈앞에 사람 모습이 휙 사라진 정도가 고작으로 마차를 타는 사람이 민가의 여자를 납치해서 겁탈할거라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원경릉은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냉정을 되찾았다.몸을 뒤로 한 걸음 물리고, 손으로 마차 돗자리를 짚고 입술을 깨물고 고운 미소를 띤 채, “계집이 어때서요? 여자 무시하세요?”혜정후는 머뭇거렸으나 여자의 수법에 닳을 대로 닳아서 실실 웃으며, “여자를 무시하다니? 우리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하면서 노래에 대해 얘기나 좀 나눠보지 그래?”“이런 방식으로 만나는 게 싫지만, 성의를 봐서 이번은 용서하죠.” 일사천리로 쏟아내는 모습이 천진하다.원경릉은 자신이 기방의 새끼마담에 될 잠재력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혜정후
원경릉의 납치 사실을 안 우문호서일은 머리를 푹 수그리고 들어가 감히 우문호의 노기어린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소인이 요 이틀동안 계속 왕비마마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마마께서 오늘 남장을 하시고 경성 기생집에서 노래를 들은 후 혜정후를 만나고 헤어지셨을 때 혜정후의 마차가 마마님을 낚아채 갔는데 두 분이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소인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왕비께서 두어 마디 답하시고 가시기에 저도 뒤를 미행했는데 혜정후의 마차가 바람같이 달려서 지나가더니 곧 왕비마마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마마께서 혜정후에게 납치되신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남장? 신선이라도 되겠다는 거야?” 우문호는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원경릉은 천지사방이 이미 다 적인 걸 모르고 있나? 어디 감히 남장을 하고 밖을 나가.이런 인간은 진짜 죽어야 정신을 차리지.“신경 쓰지 마라. 죽든지 말던지.” 우문호는 쌀쌀맞게 말했다.탕양이 권하듯: “왕야, 지금 화를 내실 때가 아닙니다. 왕야께서도 혜정후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또한 혜정후는 지금 왕비마마의 신분을 모르니 만약 왕비께서 그의 수중에 떨어지면 죽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그건 자업자득이지, 누가 함부로 돌아다니라 더냐.” 우문호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아니다, 혹시 자기가 혜정후에게 접근한 거 아닌가? 동생 혼사때문에.”탕양이 우문호의 대담한 추리에 펄쩍 뛰면서 그럴 리 없다는 듯: : “그럴 리가요? 왕비께서 그 정도로 대담하시진 않으십니다.”“대담하진 않지만, 멍청하지.” 우문호가 화가 나서 말했다.서일이 묻길: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직접 혜정후부에 가서 사람을 찾을까요?”“안 가!” 우문호가 차갑게 말했다.탕양도: “왕야께서 사람을 데리고 혜정후부로 가는 건 다시 위험합니다. 어쨌든 서일의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만약 마마께서 혜정후부에 없으시면 왕야의 입장이 그야말로 난처해 집니다. 왕야께서 경조부 일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채로 이런 과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