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의 신분잡혀가는 도중 원경릉은 천천히 안정을 되찾고 혜정후와 얘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나를 마차에 태우고 가면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아요?”혜정후는 사악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보고, “마음이 끌린 게 중요하지, 누구인지가 중요한가?”원경릉이: “당신은 혜정후죠?”혜정후는 원경릉이 알고 있다는 것에 전혀 놀라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오며, “무서운가?”혜정후는 얼굴을 바로 앞까지 들이미는데, 이글거리는 눈의 불꽃, 특별히 좋아하는 장난감을 만났을 때의 불꽃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린 모습이 조금도 웃고 있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비틀리고 악독하고 폭력적이란 느낌이 든다. 이 사람, 전신에서 폭력적인 요소가 뿜어져 나온다.원경릉은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입술을 깨물고, “무서워요. 이렇게 가까이 오는데 당연히 무섭죠.”원경릉은 두 손을 소매 속으로 숨기고, 약 상자를 열어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뭔가를 꺼내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그러나 혜정후가 이미 알아채고 차가운 눈으로 원경릉의 손을 흘끔 보더니 피식 웃으며 그녀가 잔꾀를 부리지 못하게 막자, 원경릉은 날쌔게 손수건을 휘날리며 방긋 웃고 그의 앞을 지나갔다.헤정후는 원경릉의 턱을 잡아 억지로 얼굴을 들어 자신과 마주보게 하더니 제멋대로 냉소를 지으며, “초왕비, 며칠 내 시중을 드는데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원경릉은 이번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혜정후가 어떻게 그녀의 신분을 알지?혜정후는 원경릉의 신분을 알면서 길거리에서 그녀를 납치한 것이라면, 맙소사, 이 인간 방자하게 날뛰는 게 이지경까지 이르렀단 말인가?원경릉은 자신이 조사하는 게 완전히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애진작에 혜정후의 주의를 끌었을 줄 꿈에도 모르고 혼자 쓴 웃음을 지으며 너무 자신만만했던 게 생명의 위험을 불러들였다.“아니면, “ 혜정후가 손에 힘을 더 주자 원경릉의 턱뼈가 거의 바스러질 지경으로 더욱 위험해 지며, “초왕이 시키 더냐?”원경릉은 고통을 참으로 힘겹게: “초왕이랑
혜정후의 집에 갇힌 원경릉원경릉이 혜정후부 후문으로 끌려 들어가는데, 남장을 하고 긴 머리를 산발한 여자를 보고도 혜정후부 사람들은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심지어 익숙해 보였다.혜정후부에 혜정후의 이런 성향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난 가서 일을 좀 할 테니, 너희들은 잘 감시해!” 혜정후는 원경릉을 방안에 내던지고 몸종에게 분부했다.“예!” 두 명의 몸종이 몸을 굽히며 답했다.원경릉이 볼 때, 이 두 여자의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것이 무술을 연마한 사람이다.이 두 사람의 손에서 도망가려면 결코 무력으로는 불가능하단 사실을 알았다.하지만…… 원경릉은 소매 속의 약 상자를 더듬자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다.“언니들, 나 볼 일 좀 보고 싶은데, 화장실 어딨어요?” 원경릉이 물었다.이 두 몸종은 남장 여자인 원경릉을 보고도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원경릉의 눈썹이 어떤 모양인지 보더니 기방이나 놀잇배에 딸린 아가씨가, 자기가 원해서 온 줄 알고, 그래도 혜정후가 잘 감시하라고 했으니, “병풍 안쪽으로 가면 요강 있어요.”“화장실 없어요?” 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렸다.“너무 멀어서. 나리께서 이 방에서 나가면 안된다고 분부 하셨어요. 집안에 맹견이 아가씨를 놀라게 할 수도 있어요.”맹견? 원경릉은 이 집에 들어올 때 확실히 개가 짖어 대는 소리를 들었다. 집 지키는데 맹견을 키우는 것이 틀림없다. 됐다, 병풍 뒤에서도 약 상자를 꺼낼 수 있으니까, 몸종들이 용변보는 데까지 들어와서 쳐다보진 않겠지?원경릉은 병풍 뒤로 가서 요강에 쭈그리고 앉아 바깥의 동정을 자세히 살폈다. 두 명의 몸종은 꼼짝 앉고 서있지만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다.원경릉은 가볍게 약 상자를 꺼내고 제일 먼저 서일에게 빌린 비수를 약 상자에 넣었으나 약 상자를 다시 넣으려고 하니 비수가 있어서 그런지 작아 지질 않아 결국 비수는 안에 넣지 못했다.지금 보니 마취약이 그녀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하지만 마취약은 딱 주사기 하나 뿐이고 그나마 한 사람 마
혜정후의 결심 그리고 밀실혜정후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내 사람이 되면, 그 여자의 뼈를 꺾고 살을 태우더라도 다른 사람한테 조금의 흔적도 발견되어서는 안된다.”심복은 알아듣고, “그리하겠습니다. 나리께서 비밀통로로 초왕비를 보내 신 후에 초왕이 들여보내도록 하겠습니다.”혜정후는 서탁에서 비수 하나를 꺼내 쥐고 놀다가 갑자기 비수를 탁자에 세게 찔러 넣는데, 칼자루 부분이 결국 들어가지 않자 그는 음산한 얼굴로: “우문호 이 자식, 네가 길 들지 않을 놈이란 걸 알아봤지.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우문호에게 경조부 부윤을 맡긴 건지 모르겠지만 상관없어. 우문호는 경조부 부윤이 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그 자리를 지킬 힘은 없으니까 말이야. 이번에 이 멍청한 여자가 제 발로 기어들어 온 김에, 그녀를 이용해 우문호를 아주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심연으로 떨어뜨려 주지.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게 말이야.”심복은 냉소를 띠며, “맞습니다. 나리께서 일전의 설욕을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혜정후는 그때의 치욕을 떠올리면 여전히 원통해서 가슴이 떨린다. “그때 우문호는 내 휘하의 선봉장 하나에 불과했으나 황자라는 신분을 믿고, 모든 장수들 앞에서 나를 쳐서 내 얼굴을 땅에 떨어뜨리고 심지어 잘못했으면 황제가 벌을 내릴 뻔 하지 않았나, 만약 백부께서 날 감싸주시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 성취도 없었을 것이다. 이 참에 내 가슴을 몇 년간이나 누르고 있던 납덩이를 오늘 청산할 것이다.”“나리 안심하십시오, 오늘 초왕이 조정의 고위 관리를 모함하고 제후의 집을 사적으로 침범한 죄를 분명히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심복은 고개를 들어, “그럼 초왕비는 어찌 처리할까요?”혜정후는 차갑게 웃으며, “기왕에 굴러들어 왔으니, 내가 그녀를 가지고 놀며 초왕을 모욕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알겠습니다, 나리의 분부를 기다렸다가 초왕비를 밀실로 보낸 뒤 잠시 별채에 두었다가 나리의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겠습니다.” 심복이 말했다.혜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무서워 한다고?” 혜정후(惠鼎侯)가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본후(本侯)는 너의 이러한 행동에 감탄스럽구나. 우문호를 위해 네 목숨마저 내놓을 줄이야.”원경릉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혜정후를 보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후작나리께서는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는 우문호를 위해서 이러는게 아닙니다.”“그래? 그럼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혜정후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가며 동시에 광기 어린 그의 두 눈동자가 원경릉을 몸을 위 아래로 훑었다.원경릉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소매 속으로 넣고 마취제를 찾았다. “여자들은 힘이 쎈 장군을 좋아하죠.” 원경릉이 야릇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한걸음 다가가자 혜정후가 의심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안타깝게도 제가 우문호를 잘못보았지 말입니다. 그는 저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체력도 별로지 뭡니까.” “그런가?” 혜정후는 옆에 있던 촛불을 꺼버리더니, 한 손으로 원경릉의 허리를 끌어 당겼다. 원경릉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문호 별거 아닙니다. 그쵸?”원경릉은 몽롱한 눈빛으로 혜정후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녀의 손은 자연스럽게 그의 등을 쓸어올렸다.“난 그가 정말 싫습니다.” 그녀의 손톱이 그의 살갗에 생채기를 남기자 혜정후는 온몸이 저릿해지며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원경릉은 두 손으로 그를 껴안고는 머리를 그의 가슴에 바짝 붙였다. 기회는 지금이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손톱이 스쳤던 살갗에 주사기를 꽂은 후 다른 손으로는 피부 근육을 잡았다.혜정후는 차가운 바늘이 몸에 닿자 놀란듯 한 눈빛으로 순식간에 그녀의 목을 조르고는 다른 한손으로 단번에 등 뒤에 꽂힌 주사기를 뽑았다. 분노에 가득찬 그가 원경릉의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고?”혜정후가 그녀의 뺨을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그녀의 뺨이 얼얼하다 못해, 머리통 반이 날아간 느낌이 들었
한 시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서자, 뒤에서 다른 시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여자가 나리를 해쳤습니다! 못 도망가게 잡아요!”원경릉은 들통났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소매에 숨겨뒀던 가위를 꺼내 시녀의 귀를 찔렀다. 아무리 재간이 좋은 사람이라도, 귀를 직접 찔러 고막이 다치면 심한 통증으로 반격할 겨를이 없어진다. 시녀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원경릉이 발 빠르게 달아났다. 시녀의 비명소리를 듣고 수위(守卫)가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들어왔고, 원경릉은 황급히 옆 마당으로 도망갔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도망친 곳엔 적어도 스무 마리의 개들이 사납게 짖어 대고 있었다. 생고기를 먹고 자란 개들이라 그런지 사납고 복종성이 높아서 주인의 호령 한마디에 망설임 없이 적에게 달려들어 물어 뜯는다. 원경릉은 담벼락을 등지고 살금살금 물러서다 쫓아오던 추격병과 맞닥뜨렸다. “나리를 해치고 이렇게 쉽게 달아나겠다고?” 덩치가 큰 남자가 원경릉 앞에 서있었다.원경릉은 한 눈에 그를 알아 보았다. 그는 혜정후와 경성 기생집에 갔던 호위(护卫)였다. 앞 뒤가 모두 막히자 그녀는 절망했다. ‘이렇게 빨리 잡히게 되다니. 혜정후의 하반신을 못 쓰게 만들었으니, 나를 능지처참하지 않을까?’그 방에 있던 고문 도구들을 생각하니, 그녀는 차라리 개한테 목덜미를 물어 뜯겨 죽는게 나을 것 같았다.‘우문호는 내가 죽은 것을 알면 기뻐하지 않을까? 죽기 직전에 생각나는 사람이 뜻밖에도 우문호라니.’호위가 한걸음 한걸음 채찍을 들고 그녀에게 걸어왔다. 그의 음흉한 얼굴이 피에 굶주린 개들보다 무서웠다.원경릉은 의연하게 돌아서서 스무 마리의 큰 개들을 보았다. 그 개들이 그녀의 말을 알아 들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큰 소리로 개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내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거라! 나는 절대 굴하지 않을 것이야!”그녀의 말이 끝나자 개들이 달려오던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광기 어린 개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누그러졌다. 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원경릉은 빠르게 달려 쇠사슬을 밟았다. 그녀가 순조롭게 담을 넘는 듯 싶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뒤로 넘어진 그녀는 뒤통수가 돌에 부딪힌 것 같았다. 손으로 뒤통수를 만져보니 피가 묻어났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목숨을 걸고 달렸고, 개들도 따라왔다. 하지만, 개들은 그녀를 쫓는게 아닌 그녀를 쫓는 호위를 쫓았다. 개들의 보호 덕분에 그녀는 무사히 뒷문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뒷문으로 달려나오면서도 그녀는 안심할 수 없어 계속 달렸다. 그 곳에서 멀리 벗어나서야 작은 골목 귀퉁이에 주저 앉을 수 있었다. 심장이 빨리 뛰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머리도 아프고 얼굴도 아프고, 아파 죽겠다.’그녀는 바쁘게 약상자를 꺼내 가제로 소독약을 바른 후 머리를 싸맸다. ‘일단 왕부로 돌아가자. 여기에 있을 수는 없어. 만약 후부(侯府)사람들에게 걸린다면 난 죽은 목숨이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다리가 심하게 떨렸다. 운이 나빠 시공간을 초월해 2세대를 살아왔지만 이렇게 험한 일은 처음 겪어본다. 전생에서의 그녀는 누구에게 쫓겨 도망치기는 커녕, 수업도 한번 빼먹어 본적 없는 순박한 사람이었다. 오늘 그녀를 도왔던 개들이 생각이 났다. 앞으로 그 개들은 어떻게 될까?주인을 공격한 개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 밖에 없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들을 구할 수 있을까?원경릉은 문득 그녀에게 도망치라고 외쳤던 꼬리 짧은 검정 개가 생각이 났다. 혜정후는 잔인한 사람이다. 자손 번식의 도구에 상처를 입었으니 검정 개는 물론이고, 그녀를 도왔던 다른 개들도 용서를 하겠는가? 절대 안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원경릉은 머리가 아파왔다. ‘됐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방법을 찾아보자.’그녀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무시하며 자기 자신을 위안했다.그녀가 골목 어귀를 나와 주위를 살피려고 머리를 내밀었는데 마침 동쪽의 큰 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쭉 빼서 보니 덩치 큰 사내 십여명이 커다란 말을
행인들이 하는 말을 들은 원경릉은 마음이 이상해졌다. 우문호가 정말 혜정후부에 그녀를 구하러 간거면 어떻게 되는걸까? 저렇게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니, 혜정후의 저택을 수색하려는 모양인데, 황제의 성지(圣旨)를 받고 가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황제의 성지없이 후작(侯爵)을 조사하고, 만약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황제는 우문호에게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다. ‘우문호가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겠지?’원경릉은 차마 우문호를 따라가지 못하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가쁜 숨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원경릉이 도망간지 십여분이 지났을까. 혜정후가 정신을 차렸다. 후부에는 어의가 있었는데, 혜정후의 상처를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나리께서 더 이상 인도(人道) 할 수 없을까봐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혜정후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하반신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폈다. 그의 주위에 서있던 심복이 혜정후를 바라보았다. 심복은 난생 처음으로 혜정후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혜정후의 옷은 여기저기 개에게 뜯겨 찢어져 있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 “나리. 이해가 가지 않으시겠지만……, 초왕비가 도망갈 때 마당에 있던 모든 개들이 왕비가 도망갈 길을 터주었고 심지어 집안의 호위들을 물며 도망가게끔 도와주었습니다.”심복이 말했다.혜정후의 저택에 있는 스무 마리의 개들이 모두 그가 죄다 포려(苞藜)에서 데리고 온 것이다. 이 개들은 난폭해서 전문가들도 훈련 하기 버거워했지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 한번 복종을 하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복종을 하기로 유명했다.“전장에서 배신을 하다니, 죽여라!” 혜정후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예! 그리고 나리. 방금 보초가 말하길, 초왕이 곧 후부(侯府)에 도착한다고 합니다.”심복이 말했다.혜정후가 갑자기 눈빛이 바뀌더니 눈을 부릅뜨고 어의를 쳐다보며 말했다. “본후를 우문호를 만날 것이니 상처를 잘 싸매거라.”“나리, 하지만 부상 상태가
우문호는 혜정후의 몸에서 풍기는 피비린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혜정후는 멀쩡해 보이는데 이게 어디서 나오는 피비린내인가? 원경릉이 이미 참변을 당한 건 아니겠지?’이런 생각을 하니 우문호의 마음이 급해졌다. “본왕이 오늘 경조부의 병사들을 동원해 왕비 실종 사건을 조사하려고 하니 후작께서 협조 부탁드립니다.”혜정후는 날카로운 눈동자를 천천히 거두며 코웃음을 쳤다. “왕야의 위엄이 대단하십니다. 이미 병사들을 후부로 데리고 온 마당에 본후가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이 곳에서 왕비를 찾지 못한다면 본후는 황제께 가서 왕야를 죄를 물을 겁니다.”‘말끝마다 협박을 하는구나. 죄를 묻는다니 그게 어디 그렇게 간단하겠는가?’우문호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병사들 그리고 탕양. 너희는 집안 곳곳을 수색하거라! 암실, 땅굴 모두 철저하게 살펴보아라. 그리고 서일아! 너는 뒷문 쪽을 뒤져보거라.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아무도 내보내서는 안된다!”“예!”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신속하게 수색에 들어갔다.혜정후와 우문호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예전부터 혜정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경조부의 병사들을 데리고 왔으니 혜정후는 협조하고 싶지 않아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혜정후도 자존심이 있기에 우문호의 조사에 진심으로 협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왜 이렇게 당당한거지? 설마 혜정후가 원경릉을 이미 처리해버린 걸까?혜정후는 병사들이 자신의 저택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 불쾌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우문호를 보았다. “왕야 만약 병사들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본후가 알아서 해도 되겠지요?”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혜정후의 눈에서 뭔지 모를 음흉함을 느꼈다. 서일이 속았을 수도 있다. 혜정후 말대로 그가 원경릉을 납치하지 않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가 원경릉을 납치해서 후부로 데리고 오지 않았거나. 만약 원경릉이 정말 혜정
우문호는 즉시 얼굴에 기쁨을 띠며 종이를 구겼다.“뭘 가져왔는가? 한 잔 마시겠네. 지금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네!”목여 태감이 바로 들어와 차를 올리며 말했다.“어의가 처방한 화기와 열을 내려주는 약입니다. 약간 달면서도 쓴맛이 나는데, 등심초와 하기초, 그리고 연심을 조금 넣어, 열을 내리기에 제일 맞을 겁니다. 폐하께서 쓴맛을 싫어하실까 봐 꿀대추도 하나 넣었습니다!”그는 약을 탁자 위에 놓고 부채를 찾아 부쳐주려 했지만, 우문호는 이미 손으로 약그릇을 들어 가까이 가져가 불며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날씨가 조금 추운 탓에 약이 미지근한 상태로 전달되어, 몇 번 불어 마시기에 딱 적당했다.그는 약을 단번에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은 후, 목여 태감을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자네가 세심하군. 앞으로 짐의 기거와 음식은 자네가 더 신경 쓰게.”“이것은 소신의 본분입니다!”목여 태감은 다소 감격하며 말했다.“자네는 짐이 원로 신하들과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모르네. 앞으로 자네가 옆에 있으면서 짐을 도와 몇 마디 해주시게. 도통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목여 태감이 안쓰럽게 말했다.“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폐하가 계신 곳에는 항상 제가 함께하며 결코 폐하 홀로 싸우지 않게 하겠습니다.”우문호의 침울했던 눈빛이 갑자기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 선생이 언제나 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기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늘 그의 삶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우문호 부모님의 생신도 잊지 않았고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돌보며 곁을 함께 했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은 자기 일도 바쁘게 처리하고 있었다.가끔 피곤하다고 느낄 때 그녀를 떠올리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곤 했다.“폐하? 지금 황후마마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까?”목여 태감은 바로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조금 있으니, 소월궁으로 돌아가 황후마마와 함께 식사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좋네. 어서 돌아가세!”
목여 태감은 필요에 대한 결핍을 느꼈다.사실 우문호는 그가 힘들까 봐 걱정되어 그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태상황을 그렇게 오랜 세월 모셨으니 그의 노고가 매우 컸고, 그가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를 바랐던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계속 바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한가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무공도 뛰어난 데다 신체 능력도 젊은이들보다 크게 뒤떨어지지도 않았다.갑자기 그를 쉬게 하면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리고 현재 어서방이든 소월궁이든, 그가 비록 그곳에 있긴 했지만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일을 처리할 때 그를 시키는 일은 전혀 없었다. 매번 그 스스로 나서서 하려고 했다. 어쩌면 우문호가 그를 늙어서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태감!” 원경릉이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약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폐하께서 요즘 늦게 주무시고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지셨네. 몸에 열이 많은 것 같은데, 태감이 보기에 어의를 불러 몇 해열탕을 몇 첩 지어야 할 것 같소?”목여 태감은 긴장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열이 오르셨다고요? 그렇다면 어의를 불러 맥을 짚어 봐야 합니다.”“맥을 짚을 필요는 없네. 내가 보아하니 열이 오른 것 같네. 태감이 약 몇 첩을 지어 잘 달인 뒤 어서방으로 보내 주시게.” 목여 태감이 다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인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아주 바빠 보였다. 다시 활력이 생긴 것 같았다.원경릉은 몇 자 적고는 녹주를 시켜 어서방으로 보내 우문호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의정 논의가 잠시 쉬어가는 시기에 들여보냈고, 그의 공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녹주는 쪽지를 받아 어서방 밖에서 기다리다가, 잠시 틈이 생기자 어전 시위에게 전달하며 황제께 전해 드리라고 했다. 이어서 황후 마마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덧붙였다.우문호는 오늘 대신들과 아주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가 이전에 발탁했던 한
원경릉은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잘 생각 하셨소, 내 사람을 시켜 전골을 내오라 하겠소.”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아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그는 스스로가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큰 행운은 그녀를 만난 것이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가슴 벅찼다.그는 그저 아톰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만약 아톰의 마음속에 일곱째 아가씨가 없다면, 아톰이 평생 장가를 가지 않는다 해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몇 마디 잔소리를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는 안타까웠다.둘은 전골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날들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최근 공무가 바빠 식사 후에 보고를 가져와 검토하였고 원경릉은 옆에서 그를 보필하며 이따금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밤은 고요했지만 아주 평화로웠다.보고를 다 읽었을 때는 이미 자시가 되어 있었다. 목여 태감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와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고 재촉했었다.우문호는 아직 잠이 오지 않았지만 원 선생이 그 때문에 밤을 새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녀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그에게 며칠 후에 어딘가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겸사겸사 양여혜가 이끄는 다른 팀의 신약 데이터도 살펴보고, 추 상궁의 피를 조금 뽑고 돌아가 검사해서 약의 억제 효과를 확인하려 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돌아와 조정을 해야 했다.“얼마나 가 있는 것이오?” 우문호가 물었다.“일주일 정도. 나도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소. 추 상궁 쪽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오.” 원경릉이 답했다.“그럼 좋소. 내 경호까지 바래다 드리겠소.”“필요 없소.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번거롭지 않소!”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가 말했다. “알겠소. 아이들도 가고, 냉정언이랑 홍엽도 떠나고, 서일도 가고, 탕양도 가고, 이제 당신까지 가니,
“급한 일이 아니면 일단 잠시 미뤄 두게. 짐이 자네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으니…”“정말 급한 일입니다. 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탕양은 말을 마치자마자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몸을 돌려 쏜살같이 도망치듯 달려갔다.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 정말 재빠르게 도망치는군. 누가 잡아먹겠다고 했나, 그저 속마음을 좀 털어놓으려 했을 뿐인데. 저 이기적인 놈, 내 또 누구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목여 태감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폐하, 탕 대인께서는 폐하께서 잔소리하실까 봐 그러시는 겁니다!” “짐이 언제 잔소리를 했단 말이냐? 몇 번…아니 열몇 번, 많아야 백 번 정도 말했을 뿐이지 않나?” 우문호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네 그럼요, 폐하께서는 잔소리하지 않으십니다!” 목여 태감이 웃으며 말했다. 황제가 탕 대인을 매우 아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었다. 황제는 그가 홀로 밖에서 고생하는 것을 안쓰러워하며, 집에는 그를 정성껏 보살펴 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짐이 그를 설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사람마다 뜻이 있는 법이고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면 내버려두는 수밖에. 다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네. 사람의 일생이란, 정말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붙잡아야 하는 법 일세.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가 되어 한평생을 되돌아보며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겠나?”“짐도 잔소리가 좀 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저 이 일에 대해서만 잔소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야. 감정적인 일은 억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급하구나.”목여 태감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있었다. 이전 사례로 보아 황제는 또 한동안 탕 대인 일로 잔소리를 늘어놓을 터였다. 탕 대인 일이라면 황제가 탕 대인보다 더 안달복달이었다.정말이지, 태감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황제만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우문호는 소월궁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원경릉은 책을 보면
탕양은 손을 뻗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을 살짝 눌렀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안내인도 있고, 지도도 있으니, 독산 어디든 원하시는 곳에 가실 수 있습니다. 사람을 써서 사전에 모든 위험을 제거해 드릴 겁니다. 아시겠지만 독산에 위험이 제거되면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을 들일 수 있습니다. 어떠십니까?”“관광지로 개발한다고요? 그거 참 기발한 생각이네요. 하지만 그렇다면 독산을 저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군요?” 일곱째 아가씨는 냉소했다.“15년 동안은 아가씨께서 독점하시고, 그 후에는 수익의 3할을 가져가시는 겁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개발, 물론 좋은 일이다. 좋은 곳, 좋은 경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가 말한 것처럼 입장료를 받고 조정의 협력까지 더해진다면 꽤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어쨌든 조정은 다섯 곳의 성지를 발전시키려 할 테니,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려 할 것이다.게다가 황제는 현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총력을 쏟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되고 북당이 점점 부유해지니 돈을 좀 들여서 놀러 다니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고, 이는 장기적인 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다.그녀도 이제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 봐야 했다. 독산은 정말 좋은 곳이고, 그녀의 꿈이 깃든 곳이다. 독산에서 여생을 보낸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원 가문의 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계약하죠!”이렇게 성급하게 5백만 냥짜리 거래를 결정하는 것은 평소 신중했던 일곱째 아가씨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부자에게 있어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번쯤 돈을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일곱째 아가씨께서는 역시 호탕하시군요! 과연 여장부십니다!” 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첨은 그만 하시고, 말씀하시지요. 제 안내인은 어디 있나요? 제가 직접 한번 가 보고, 정말 독산 전체를 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공부에서 오는 길입니다. 복지 시설 건립 건에 작은 문제가 생겼거든요. 지금은 다 처리했습니다.” “탕대인께서 나서셨으니, 안 될 일이 없겠죠.” 일곱째 아가씨는 탕양의 일 처리 능력을 인정하였다.그녀는 차 재료를 넣고 잠시 끓인 후, 탕 대인에게 따라 주며 말했다. “입술이 바싹 말라 다 트셨네요. 어서 드세요.”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탕양은 차를 받아 들고 몇 번 불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차가 뜨거웠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말 몹시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그가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 “저를 찾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탕양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단에서는 혹시 약도성 재건 사업에 참여할 생각을 해 보셨는지요? 안심하십시오,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저는 민간 상단입니다. 어떻게 성 재건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분명 문제없을 겁니다.” 탕양이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탕 대인, 이런 좋은 일을 어쩌다 저희 상단이 맡게 된 것입니까? 혹시 대인께서 뒤에서 저희를 위해 힘써 주신 건 아니신지요? 어쨌든 호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은혜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민간 상단이 약도성의 재건에 참여하려면 막대한 은화를 지출해야 하는데, 재건 이후 그녀의 상단에 돌아갈 이익은 아마 봉토 정도 일 것이다.약도성은 택란 공주의 영지이고, 철광이 많으며, 정세도 이미 안정되었으니 채굴은 시간문제이다.하지만 광산은 예로부터 조정의 소유였으니, 민간 상단에 봉해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설령 봉토를 내린다 해도 쓸모없는 산지나 몇 개 주어질 뿐일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 일을 엄청난 호재라고 말한 것은 탕양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함일 뿐, 사실 그녀는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탕양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