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서자, 뒤에서 다른 시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여자가 나리를 해쳤습니다! 못 도망가게 잡아요!”원경릉은 들통났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소매에 숨겨뒀던 가위를 꺼내 시녀의 귀를 찔렀다. 아무리 재간이 좋은 사람이라도, 귀를 직접 찔러 고막이 다치면 심한 통증으로 반격할 겨를이 없어진다. 시녀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원경릉이 발 빠르게 달아났다. 시녀의 비명소리를 듣고 수위(守卫)가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들어왔고, 원경릉은 황급히 옆 마당으로 도망갔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도망친 곳엔 적어도 스무 마리의 개들이 사납게 짖어 대고 있었다. 생고기를 먹고 자란 개들이라 그런지 사납고 복종성이 높아서 주인의 호령 한마디에 망설임 없이 적에게 달려들어 물어 뜯는다. 원경릉은 담벼락을 등지고 살금살금 물러서다 쫓아오던 추격병과 맞닥뜨렸다. “나리를 해치고 이렇게 쉽게 달아나겠다고?” 덩치가 큰 남자가 원경릉 앞에 서있었다.원경릉은 한 눈에 그를 알아 보았다. 그는 혜정후와 경성 기생집에 갔던 호위(护卫)였다. 앞 뒤가 모두 막히자 그녀는 절망했다. ‘이렇게 빨리 잡히게 되다니. 혜정후의 하반신을 못 쓰게 만들었으니, 나를 능지처참하지 않을까?’그 방에 있던 고문 도구들을 생각하니, 그녀는 차라리 개한테 목덜미를 물어 뜯겨 죽는게 나을 것 같았다.‘우문호는 내가 죽은 것을 알면 기뻐하지 않을까? 죽기 직전에 생각나는 사람이 뜻밖에도 우문호라니.’호위가 한걸음 한걸음 채찍을 들고 그녀에게 걸어왔다. 그의 음흉한 얼굴이 피에 굶주린 개들보다 무서웠다.원경릉은 의연하게 돌아서서 스무 마리의 큰 개들을 보았다. 그 개들이 그녀의 말을 알아 들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큰 소리로 개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내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거라! 나는 절대 굴하지 않을 것이야!”그녀의 말이 끝나자 개들이 달려오던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광기 어린 개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누그러졌다. 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원경릉은 빠르게 달려 쇠사슬을 밟았다. 그녀가 순조롭게 담을 넘는 듯 싶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뒤로 넘어진 그녀는 뒤통수가 돌에 부딪힌 것 같았다. 손으로 뒤통수를 만져보니 피가 묻어났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목숨을 걸고 달렸고, 개들도 따라왔다. 하지만, 개들은 그녀를 쫓는게 아닌 그녀를 쫓는 호위를 쫓았다. 개들의 보호 덕분에 그녀는 무사히 뒷문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뒷문으로 달려나오면서도 그녀는 안심할 수 없어 계속 달렸다. 그 곳에서 멀리 벗어나서야 작은 골목 귀퉁이에 주저 앉을 수 있었다. 심장이 빨리 뛰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머리도 아프고 얼굴도 아프고, 아파 죽겠다.’그녀는 바쁘게 약상자를 꺼내 가제로 소독약을 바른 후 머리를 싸맸다. ‘일단 왕부로 돌아가자. 여기에 있을 수는 없어. 만약 후부(侯府)사람들에게 걸린다면 난 죽은 목숨이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다리가 심하게 떨렸다. 운이 나빠 시공간을 초월해 2세대를 살아왔지만 이렇게 험한 일은 처음 겪어본다. 전생에서의 그녀는 누구에게 쫓겨 도망치기는 커녕, 수업도 한번 빼먹어 본적 없는 순박한 사람이었다. 오늘 그녀를 도왔던 개들이 생각이 났다. 앞으로 그 개들은 어떻게 될까?주인을 공격한 개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 밖에 없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들을 구할 수 있을까?원경릉은 문득 그녀에게 도망치라고 외쳤던 꼬리 짧은 검정 개가 생각이 났다. 혜정후는 잔인한 사람이다. 자손 번식의 도구에 상처를 입었으니 검정 개는 물론이고, 그녀를 도왔던 다른 개들도 용서를 하겠는가? 절대 안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원경릉은 머리가 아파왔다. ‘됐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방법을 찾아보자.’그녀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무시하며 자기 자신을 위안했다.그녀가 골목 어귀를 나와 주위를 살피려고 머리를 내밀었는데 마침 동쪽의 큰 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쭉 빼서 보니 덩치 큰 사내 십여명이 커다란 말을
행인들이 하는 말을 들은 원경릉은 마음이 이상해졌다. 우문호가 정말 혜정후부에 그녀를 구하러 간거면 어떻게 되는걸까? 저렇게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니, 혜정후의 저택을 수색하려는 모양인데, 황제의 성지(圣旨)를 받고 가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황제의 성지없이 후작(侯爵)을 조사하고, 만약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황제는 우문호에게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다. ‘우문호가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겠지?’원경릉은 차마 우문호를 따라가지 못하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가쁜 숨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원경릉이 도망간지 십여분이 지났을까. 혜정후가 정신을 차렸다. 후부에는 어의가 있었는데, 혜정후의 상처를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나리께서 더 이상 인도(人道) 할 수 없을까봐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혜정후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하반신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폈다. 그의 주위에 서있던 심복이 혜정후를 바라보았다. 심복은 난생 처음으로 혜정후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혜정후의 옷은 여기저기 개에게 뜯겨 찢어져 있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 “나리. 이해가 가지 않으시겠지만……, 초왕비가 도망갈 때 마당에 있던 모든 개들이 왕비가 도망갈 길을 터주었고 심지어 집안의 호위들을 물며 도망가게끔 도와주었습니다.”심복이 말했다.혜정후의 저택에 있는 스무 마리의 개들이 모두 그가 죄다 포려(苞藜)에서 데리고 온 것이다. 이 개들은 난폭해서 전문가들도 훈련 하기 버거워했지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 한번 복종을 하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복종을 하기로 유명했다.“전장에서 배신을 하다니, 죽여라!” 혜정후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예! 그리고 나리. 방금 보초가 말하길, 초왕이 곧 후부(侯府)에 도착한다고 합니다.”심복이 말했다.혜정후가 갑자기 눈빛이 바뀌더니 눈을 부릅뜨고 어의를 쳐다보며 말했다. “본후를 우문호를 만날 것이니 상처를 잘 싸매거라.”“나리, 하지만 부상 상태가
우문호는 혜정후의 몸에서 풍기는 피비린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혜정후는 멀쩡해 보이는데 이게 어디서 나오는 피비린내인가? 원경릉이 이미 참변을 당한 건 아니겠지?’이런 생각을 하니 우문호의 마음이 급해졌다. “본왕이 오늘 경조부의 병사들을 동원해 왕비 실종 사건을 조사하려고 하니 후작께서 협조 부탁드립니다.”혜정후는 날카로운 눈동자를 천천히 거두며 코웃음을 쳤다. “왕야의 위엄이 대단하십니다. 이미 병사들을 후부로 데리고 온 마당에 본후가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이 곳에서 왕비를 찾지 못한다면 본후는 황제께 가서 왕야를 죄를 물을 겁니다.”‘말끝마다 협박을 하는구나. 죄를 묻는다니 그게 어디 그렇게 간단하겠는가?’우문호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병사들 그리고 탕양. 너희는 집안 곳곳을 수색하거라! 암실, 땅굴 모두 철저하게 살펴보아라. 그리고 서일아! 너는 뒷문 쪽을 뒤져보거라.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아무도 내보내서는 안된다!”“예!”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신속하게 수색에 들어갔다.혜정후와 우문호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예전부터 혜정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경조부의 병사들을 데리고 왔으니 혜정후는 협조하고 싶지 않아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혜정후도 자존심이 있기에 우문호의 조사에 진심으로 협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왜 이렇게 당당한거지? 설마 혜정후가 원경릉을 이미 처리해버린 걸까?혜정후는 병사들이 자신의 저택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 불쾌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우문호를 보았다. “왕야 만약 병사들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본후가 알아서 해도 되겠지요?”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혜정후의 눈에서 뭔지 모를 음흉함을 느꼈다. 서일이 속았을 수도 있다. 혜정후 말대로 그가 원경릉을 납치하지 않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가 원경릉을 납치해서 후부로 데리고 오지 않았거나. 만약 원경릉이 정말 혜정
“왕야. 뒤뜰에 있는 밀실 안에 고문 도구로 가득찬 밀실을 발견했습니다.” 탕양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보고했다. 탕양이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고문 도구를 들고 다가와 우문호 앞에 놓았다.고문 도구에는 핏자국이 잔뜩 묻어있었다.혜정후는 의아하다는 듯 “이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밀실도 수색을 해야합니까?” 라고 물었다.“나리께서 고문 도구가 왜 필요하십니까?”우문호가 천천히 물었다.“말 안듣는 하인들을 처벌하려면 구형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후부에 기강이 섭니다.”혜정후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탕양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저택 곳곳을 뒤졌지만 왕비는 커녕 왕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서일은 제대로 본게 맞는거야? 만약 서일이 잘 못 본것이라면 정말 큰일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조부 병사들이 수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왕야. 개들이 갇혀있던 마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색했습니다.” 라고 말했다.“개들?” 우문호의 눈빛이 번뜩였다.“뭘 놀라십니까? 본후가 개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개들은 저택을 지키는 용도입니다. 만약 본후가 왕비를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다고 생각이 되면 개들이 있는 마당에 가서 찾아보시지요. 허나 개들이 난폭해서 무슨일이 벌어질지는 장담 못하니 조심하십시오.” 혜정후가 말했다.“왕야. 개들이 있는 마당은 병사들에게 가서 찾아보라고 하는게 좋겠습니다.” 탕양이 말했다.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그 곳은 본왕이 직접 수색한다.” 라고 말했다. 탕양은 우문호의 뛰어난 무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문호라도 스무 마리의 사나운 개들이 한번에 달려든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왕야. 위험합니다!” 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괜찮아.” 우문호가 담담하게 혜정후를 보며 “본왕이 후부에서 사고를 당한다면, 후작께서도 후일을 감당하셔야겠죠.” 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우문호는 어찌됐든 왕실의 친왕이다.우문호의 말을 들은 혜정후는 냉소를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문호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여기저기 피부가 찢긴 스무 마리의 사나운 개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짖어댔다. 개들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고 금방이라도 우문호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왕야 이래도 들어가시겠습니까?” 혜정후가 물었다.“왕야. 안됩니다!”옆에 있던 탕양이 우문호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탕양이 비록 개를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개들의 몸에 난 상처를 보니 금방 얻어 맞은 것이 분명했다. 외부의 자극으로 한껏 예민해진 개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 없었다. 대문을 막 지나자마자 한마리의 개가 우문호에게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우문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것도 잠시 구석에서 심복이 개들에게 손짓을 하자 개들이 미친듯이 달려와 우문호를 에워쌌다. 우문호는 마당 안쪽으로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었다. 개들이 몇 번 짖어대더니 우문호의 소매와 옷자락을 물어 뜯었다. “왕야 조심하십시오!” 탕양이 소리쳤다.우문호는 탕양의 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짧은 꼬리에 귀를 쫑긋 세운 사나운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번개처럼 우문호의 등을 향해 돌진했다. 우문호는 빠르게 몸을 돌려 피했지만 날카로운 발톱에 긁혀 목 뒤에서 피가 흘렀다. 병사들과 탕양이 우문호를 돕기 위해 들어가려고 하자 혜정후가 그 앞을 막아섰다. “멈추거라. 본후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마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탕양은 혜정후의 옆에 서 있는 심복이 쉴 새 없이 휘파람을 부는 것을 보았다. 가만보니 심복의 휘휘 소리가 개들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후작나리.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고의로 왕야를 해치려 하다니요!” 탕양은 크게 노했다.“고의? 본후가 왕야에게 이미 경고를 했지 않나? 기어이 들어가야겠다고 한건 왕야다.” 혜정후가 오만한 표정으로 탕양을 내려보았다.탕양은 치가 떨리는 표정으로 혜정후를 노려보았다. ‘만약 혜정후에게 사과를 하고 왕야를 마당에서 꺼낸다면, 마당 내부를 뒤질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왕야를 속수무책
혜정후의 눈동자가 살기에 가득찼다. 그는 피에 굶주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본후가 그날 장부에서 한 말이 기억나십니까? 본후가 네 목숨을 쥐락 펴락 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할 만큼 고통 속에 너를 살게하리라.”혜정후의 몸에서 나던 피비린내가 더욱 짙어졌고, 그의 눈에는 원한이 가득찼다.우문호는 절망감에 빠졌다. ‘원경릉은 죽었겠구나.’어찌된 영문인지 우문호는 자신의 앞날은 걱정되지 않았다. 부황은 언제나 우문호를 못마땅해 왔지만 이러한 일로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있었다.우문호는 막다른 길에 몰린 짐승처럼 애처롭지만 마지막까지 맹렬하게 싸울 준비가 된 모습이었다.“만약 본왕이 철저하게 조사해 원경릉이 여기에 있었고, 후작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밝혀진다면, 본왕은 후작의 뼛가루로 원경릉의 무덤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왕야는 자기가 정말 뭐라도 되는줄 아시나 봅니다. 왕야는 지금부터 분주히 자기 앞가림부터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바쁘실테니 제 목숨은 나중에 생각하시지요.” 혜정후는 우문호가 가소롭다는 듯 크게 웃었다.우문호는 이가 갈렸다. 우문호 평생에 있어 공주부에서 겪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이런 굴욕을 겪은 적이 었었다.심복이 손을 모으고 앞으로 나와 혜정후 앞에 섰다. “후작나리. 지금 입궁하시겠습니까?”혜정후는 웃음을 멈추고 심복에게 손짓했다. “말을 준비하거라. 그리고 주수보님을 모셔오거라. 본후는 왕야와 함께 어전으로 가서 이 일을 논의해봐야겠다.” “왕야…….”탕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철수하거라!” 우문호가 소리쳤다.탕양은 지금까지 후부에서 일어난 일들이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이 느껴졌다. 경조부 병사들도 우문호의 부름에 황송해하며 길을 나섰다가 지금은 책임을 물어야 하는 재수없는 상황에 처했다.만약 문서 절도 죄가 확정이 된다면 이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현장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일언반구 없이 모두 철수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는 혜정후
병사들이 달려들자 군참모들도 달려가서 원경릉을 부축했다. 혜정후는 무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무의식적으로 심복을 쳐다보았다. 원경릉을 본 심복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원경릉이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것을 본 우문호가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가서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웃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원경릉은 몹시 당황해하며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기대 흐트러질 것 같은 정신을 붙잡았다. “저 사람이 그랬습니다! 황제께서 왕야를 경조부윤에 임명한 이유를 말하라고 나를 납치하고 고문을 했습니다.”원경릉이 혜정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울먹였다.우문호가 몸을 돌려 혜정후를 쳐다보았다.“후작나리.” 우문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드리웠다. “말은 준비되셨겠지요? 입궁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본왕과 함께 경조부로 가시겠습니까?”혜정후는 굳은 얼굴로 우문호를 노려보다가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수보님을 경조부로 모시지요.”혜정후는 원경릉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원경릉을 보는 혜정후의 눈 속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지금 이 순간 혜정후는 우문호보다 원경릉을 더 꼴보기 싫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숙여 조용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원경릉은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듯 그의 품 속에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몇 분 흘렀을까 원경릉를 안고 있던 우문호의 손에 피가 잔뜩 묻어났다.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탕양을 불렀다. “탕양. 왕비를 먼저 궁으로 모시거라.”원경릉은 가련한 얼굴을 천천히 들고는 마당 안쪽의 개들을 손으로 가리켰다.“왕야. 혜정후가 개를 풀어 또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 개들도 모두 끌고 가야합니다.”“다 죽여라!” 우문호가 마당의 개들을 보고 소리쳤다.“안돼!” 원경릉이 소리를 질렀다. “안됩니다. 죽여서는 안됩니다.”우문호는 그런 원경릉이 이상하다는 듯 실눈을 뜨고 그녀를 보았다. ‘이 여자 똑바로 서있을 힘도 없으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