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후의 결심 그리고 밀실혜정후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내 사람이 되면, 그 여자의 뼈를 꺾고 살을 태우더라도 다른 사람한테 조금의 흔적도 발견되어서는 안된다.”심복은 알아듣고, “그리하겠습니다. 나리께서 비밀통로로 초왕비를 보내 신 후에 초왕이 들여보내도록 하겠습니다.”혜정후는 서탁에서 비수 하나를 꺼내 쥐고 놀다가 갑자기 비수를 탁자에 세게 찔러 넣는데, 칼자루 부분이 결국 들어가지 않자 그는 음산한 얼굴로: “우문호 이 자식, 네가 길 들지 않을 놈이란 걸 알아봤지.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우문호에게 경조부 부윤을 맡긴 건지 모르겠지만 상관없어. 우문호는 경조부 부윤이 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그 자리를 지킬 힘은 없으니까 말이야. 이번에 이 멍청한 여자가 제 발로 기어들어 온 김에, 그녀를 이용해 우문호를 아주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심연으로 떨어뜨려 주지.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게 말이야.”심복은 냉소를 띠며, “맞습니다. 나리께서 일전의 설욕을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혜정후는 그때의 치욕을 떠올리면 여전히 원통해서 가슴이 떨린다. “그때 우문호는 내 휘하의 선봉장 하나에 불과했으나 황자라는 신분을 믿고, 모든 장수들 앞에서 나를 쳐서 내 얼굴을 땅에 떨어뜨리고 심지어 잘못했으면 황제가 벌을 내릴 뻔 하지 않았나, 만약 백부께서 날 감싸주시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 성취도 없었을 것이다. 이 참에 내 가슴을 몇 년간이나 누르고 있던 납덩이를 오늘 청산할 것이다.”“나리 안심하십시오, 오늘 초왕이 조정의 고위 관리를 모함하고 제후의 집을 사적으로 침범한 죄를 분명히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심복은 고개를 들어, “그럼 초왕비는 어찌 처리할까요?”혜정후는 차갑게 웃으며, “기왕에 굴러들어 왔으니, 내가 그녀를 가지고 놀며 초왕을 모욕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알겠습니다, 나리의 분부를 기다렸다가 초왕비를 밀실로 보낸 뒤 잠시 별채에 두었다가 나리의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겠습니다.” 심복이 말했다.혜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무서워 한다고?” 혜정후(惠鼎侯)가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본후(本侯)는 너의 이러한 행동에 감탄스럽구나. 우문호를 위해 네 목숨마저 내놓을 줄이야.”원경릉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혜정후를 보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후작나리께서는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는 우문호를 위해서 이러는게 아닙니다.”“그래? 그럼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혜정후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가며 동시에 광기 어린 그의 두 눈동자가 원경릉을 몸을 위 아래로 훑었다.원경릉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소매 속으로 넣고 마취제를 찾았다. “여자들은 힘이 쎈 장군을 좋아하죠.” 원경릉이 야릇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한걸음 다가가자 혜정후가 의심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안타깝게도 제가 우문호를 잘못보았지 말입니다. 그는 저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체력도 별로지 뭡니까.” “그런가?” 혜정후는 옆에 있던 촛불을 꺼버리더니, 한 손으로 원경릉의 허리를 끌어 당겼다. 원경릉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문호 별거 아닙니다. 그쵸?”원경릉은 몽롱한 눈빛으로 혜정후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녀의 손은 자연스럽게 그의 등을 쓸어올렸다.“난 그가 정말 싫습니다.” 그녀의 손톱이 그의 살갗에 생채기를 남기자 혜정후는 온몸이 저릿해지며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원경릉은 두 손으로 그를 껴안고는 머리를 그의 가슴에 바짝 붙였다. 기회는 지금이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손톱이 스쳤던 살갗에 주사기를 꽂은 후 다른 손으로는 피부 근육을 잡았다.혜정후는 차가운 바늘이 몸에 닿자 놀란듯 한 눈빛으로 순식간에 그녀의 목을 조르고는 다른 한손으로 단번에 등 뒤에 꽂힌 주사기를 뽑았다. 분노에 가득찬 그가 원경릉의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고?”혜정후가 그녀의 뺨을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그녀의 뺨이 얼얼하다 못해, 머리통 반이 날아간 느낌이 들었
한 시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서자, 뒤에서 다른 시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여자가 나리를 해쳤습니다! 못 도망가게 잡아요!”원경릉은 들통났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소매에 숨겨뒀던 가위를 꺼내 시녀의 귀를 찔렀다. 아무리 재간이 좋은 사람이라도, 귀를 직접 찔러 고막이 다치면 심한 통증으로 반격할 겨를이 없어진다. 시녀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원경릉이 발 빠르게 달아났다. 시녀의 비명소리를 듣고 수위(守卫)가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들어왔고, 원경릉은 황급히 옆 마당으로 도망갔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도망친 곳엔 적어도 스무 마리의 개들이 사납게 짖어 대고 있었다. 생고기를 먹고 자란 개들이라 그런지 사납고 복종성이 높아서 주인의 호령 한마디에 망설임 없이 적에게 달려들어 물어 뜯는다. 원경릉은 담벼락을 등지고 살금살금 물러서다 쫓아오던 추격병과 맞닥뜨렸다. “나리를 해치고 이렇게 쉽게 달아나겠다고?” 덩치가 큰 남자가 원경릉 앞에 서있었다.원경릉은 한 눈에 그를 알아 보았다. 그는 혜정후와 경성 기생집에 갔던 호위(护卫)였다. 앞 뒤가 모두 막히자 그녀는 절망했다. ‘이렇게 빨리 잡히게 되다니. 혜정후의 하반신을 못 쓰게 만들었으니, 나를 능지처참하지 않을까?’그 방에 있던 고문 도구들을 생각하니, 그녀는 차라리 개한테 목덜미를 물어 뜯겨 죽는게 나을 것 같았다.‘우문호는 내가 죽은 것을 알면 기뻐하지 않을까? 죽기 직전에 생각나는 사람이 뜻밖에도 우문호라니.’호위가 한걸음 한걸음 채찍을 들고 그녀에게 걸어왔다. 그의 음흉한 얼굴이 피에 굶주린 개들보다 무서웠다.원경릉은 의연하게 돌아서서 스무 마리의 큰 개들을 보았다. 그 개들이 그녀의 말을 알아 들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큰 소리로 개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내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거라! 나는 절대 굴하지 않을 것이야!”그녀의 말이 끝나자 개들이 달려오던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광기 어린 개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누그러졌다. 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원경릉은 빠르게 달려 쇠사슬을 밟았다. 그녀가 순조롭게 담을 넘는 듯 싶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뒤로 넘어진 그녀는 뒤통수가 돌에 부딪힌 것 같았다. 손으로 뒤통수를 만져보니 피가 묻어났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목숨을 걸고 달렸고, 개들도 따라왔다. 하지만, 개들은 그녀를 쫓는게 아닌 그녀를 쫓는 호위를 쫓았다. 개들의 보호 덕분에 그녀는 무사히 뒷문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뒷문으로 달려나오면서도 그녀는 안심할 수 없어 계속 달렸다. 그 곳에서 멀리 벗어나서야 작은 골목 귀퉁이에 주저 앉을 수 있었다. 심장이 빨리 뛰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머리도 아프고 얼굴도 아프고, 아파 죽겠다.’그녀는 바쁘게 약상자를 꺼내 가제로 소독약을 바른 후 머리를 싸맸다. ‘일단 왕부로 돌아가자. 여기에 있을 수는 없어. 만약 후부(侯府)사람들에게 걸린다면 난 죽은 목숨이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다리가 심하게 떨렸다. 운이 나빠 시공간을 초월해 2세대를 살아왔지만 이렇게 험한 일은 처음 겪어본다. 전생에서의 그녀는 누구에게 쫓겨 도망치기는 커녕, 수업도 한번 빼먹어 본적 없는 순박한 사람이었다. 오늘 그녀를 도왔던 개들이 생각이 났다. 앞으로 그 개들은 어떻게 될까?주인을 공격한 개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 밖에 없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들을 구할 수 있을까?원경릉은 문득 그녀에게 도망치라고 외쳤던 꼬리 짧은 검정 개가 생각이 났다. 혜정후는 잔인한 사람이다. 자손 번식의 도구에 상처를 입었으니 검정 개는 물론이고, 그녀를 도왔던 다른 개들도 용서를 하겠는가? 절대 안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원경릉은 머리가 아파왔다. ‘됐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방법을 찾아보자.’그녀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무시하며 자기 자신을 위안했다.그녀가 골목 어귀를 나와 주위를 살피려고 머리를 내밀었는데 마침 동쪽의 큰 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쭉 빼서 보니 덩치 큰 사내 십여명이 커다란 말을
행인들이 하는 말을 들은 원경릉은 마음이 이상해졌다. 우문호가 정말 혜정후부에 그녀를 구하러 간거면 어떻게 되는걸까? 저렇게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니, 혜정후의 저택을 수색하려는 모양인데, 황제의 성지(圣旨)를 받고 가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황제의 성지없이 후작(侯爵)을 조사하고, 만약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황제는 우문호에게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다. ‘우문호가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겠지?’원경릉은 차마 우문호를 따라가지 못하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가쁜 숨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원경릉이 도망간지 십여분이 지났을까. 혜정후가 정신을 차렸다. 후부에는 어의가 있었는데, 혜정후의 상처를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나리께서 더 이상 인도(人道) 할 수 없을까봐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혜정후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하반신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폈다. 그의 주위에 서있던 심복이 혜정후를 바라보았다. 심복은 난생 처음으로 혜정후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혜정후의 옷은 여기저기 개에게 뜯겨 찢어져 있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 “나리. 이해가 가지 않으시겠지만……, 초왕비가 도망갈 때 마당에 있던 모든 개들이 왕비가 도망갈 길을 터주었고 심지어 집안의 호위들을 물며 도망가게끔 도와주었습니다.”심복이 말했다.혜정후의 저택에 있는 스무 마리의 개들이 모두 그가 죄다 포려(苞藜)에서 데리고 온 것이다. 이 개들은 난폭해서 전문가들도 훈련 하기 버거워했지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 한번 복종을 하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복종을 하기로 유명했다.“전장에서 배신을 하다니, 죽여라!” 혜정후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예! 그리고 나리. 방금 보초가 말하길, 초왕이 곧 후부(侯府)에 도착한다고 합니다.”심복이 말했다.혜정후가 갑자기 눈빛이 바뀌더니 눈을 부릅뜨고 어의를 쳐다보며 말했다. “본후를 우문호를 만날 것이니 상처를 잘 싸매거라.”“나리, 하지만 부상 상태가
우문호는 혜정후의 몸에서 풍기는 피비린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혜정후는 멀쩡해 보이는데 이게 어디서 나오는 피비린내인가? 원경릉이 이미 참변을 당한 건 아니겠지?’이런 생각을 하니 우문호의 마음이 급해졌다. “본왕이 오늘 경조부의 병사들을 동원해 왕비 실종 사건을 조사하려고 하니 후작께서 협조 부탁드립니다.”혜정후는 날카로운 눈동자를 천천히 거두며 코웃음을 쳤다. “왕야의 위엄이 대단하십니다. 이미 병사들을 후부로 데리고 온 마당에 본후가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이 곳에서 왕비를 찾지 못한다면 본후는 황제께 가서 왕야를 죄를 물을 겁니다.”‘말끝마다 협박을 하는구나. 죄를 묻는다니 그게 어디 그렇게 간단하겠는가?’우문호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병사들 그리고 탕양. 너희는 집안 곳곳을 수색하거라! 암실, 땅굴 모두 철저하게 살펴보아라. 그리고 서일아! 너는 뒷문 쪽을 뒤져보거라.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아무도 내보내서는 안된다!”“예!”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신속하게 수색에 들어갔다.혜정후와 우문호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예전부터 혜정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경조부의 병사들을 데리고 왔으니 혜정후는 협조하고 싶지 않아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혜정후도 자존심이 있기에 우문호의 조사에 진심으로 협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왜 이렇게 당당한거지? 설마 혜정후가 원경릉을 이미 처리해버린 걸까?혜정후는 병사들이 자신의 저택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 불쾌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우문호를 보았다. “왕야 만약 병사들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본후가 알아서 해도 되겠지요?”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혜정후의 눈에서 뭔지 모를 음흉함을 느꼈다. 서일이 속았을 수도 있다. 혜정후 말대로 그가 원경릉을 납치하지 않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가 원경릉을 납치해서 후부로 데리고 오지 않았거나. 만약 원경릉이 정말 혜정
“왕야. 뒤뜰에 있는 밀실 안에 고문 도구로 가득찬 밀실을 발견했습니다.” 탕양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보고했다. 탕양이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고문 도구를 들고 다가와 우문호 앞에 놓았다.고문 도구에는 핏자국이 잔뜩 묻어있었다.혜정후는 의아하다는 듯 “이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밀실도 수색을 해야합니까?” 라고 물었다.“나리께서 고문 도구가 왜 필요하십니까?”우문호가 천천히 물었다.“말 안듣는 하인들을 처벌하려면 구형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후부에 기강이 섭니다.”혜정후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탕양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저택 곳곳을 뒤졌지만 왕비는 커녕 왕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서일은 제대로 본게 맞는거야? 만약 서일이 잘 못 본것이라면 정말 큰일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조부 병사들이 수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왕야. 개들이 갇혀있던 마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색했습니다.” 라고 말했다.“개들?” 우문호의 눈빛이 번뜩였다.“뭘 놀라십니까? 본후가 개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개들은 저택을 지키는 용도입니다. 만약 본후가 왕비를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다고 생각이 되면 개들이 있는 마당에 가서 찾아보시지요. 허나 개들이 난폭해서 무슨일이 벌어질지는 장담 못하니 조심하십시오.” 혜정후가 말했다.“왕야. 개들이 있는 마당은 병사들에게 가서 찾아보라고 하는게 좋겠습니다.” 탕양이 말했다.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그 곳은 본왕이 직접 수색한다.” 라고 말했다. 탕양은 우문호의 뛰어난 무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문호라도 스무 마리의 사나운 개들이 한번에 달려든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왕야. 위험합니다!” 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괜찮아.” 우문호가 담담하게 혜정후를 보며 “본왕이 후부에서 사고를 당한다면, 후작께서도 후일을 감당하셔야겠죠.” 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우문호는 어찌됐든 왕실의 친왕이다.우문호의 말을 들은 혜정후는 냉소를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문호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여기저기 피부가 찢긴 스무 마리의 사나운 개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짖어댔다. 개들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고 금방이라도 우문호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왕야 이래도 들어가시겠습니까?” 혜정후가 물었다.“왕야. 안됩니다!”옆에 있던 탕양이 우문호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탕양이 비록 개를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개들의 몸에 난 상처를 보니 금방 얻어 맞은 것이 분명했다. 외부의 자극으로 한껏 예민해진 개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 없었다. 대문을 막 지나자마자 한마리의 개가 우문호에게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우문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것도 잠시 구석에서 심복이 개들에게 손짓을 하자 개들이 미친듯이 달려와 우문호를 에워쌌다. 우문호는 마당 안쪽으로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었다. 개들이 몇 번 짖어대더니 우문호의 소매와 옷자락을 물어 뜯었다. “왕야 조심하십시오!” 탕양이 소리쳤다.우문호는 탕양의 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짧은 꼬리에 귀를 쫑긋 세운 사나운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번개처럼 우문호의 등을 향해 돌진했다. 우문호는 빠르게 몸을 돌려 피했지만 날카로운 발톱에 긁혀 목 뒤에서 피가 흘렀다. 병사들과 탕양이 우문호를 돕기 위해 들어가려고 하자 혜정후가 그 앞을 막아섰다. “멈추거라. 본후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마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탕양은 혜정후의 옆에 서 있는 심복이 쉴 새 없이 휘파람을 부는 것을 보았다. 가만보니 심복의 휘휘 소리가 개들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후작나리.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고의로 왕야를 해치려 하다니요!” 탕양은 크게 노했다.“고의? 본후가 왕야에게 이미 경고를 했지 않나? 기어이 들어가야겠다고 한건 왕야다.” 혜정후가 오만한 표정으로 탕양을 내려보았다.탕양은 치가 떨리는 표정으로 혜정후를 노려보았다. ‘만약 혜정후에게 사과를 하고 왕야를 마당에서 꺼낸다면, 마당 내부를 뒤질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왕야를 속수무책
소요공은 얼굴을 찌푸리며 무상황을 한 번 쏘아보았다.하지만 무상황은 신경 쓰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물었다."요부인이 아이를 낳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오?"원 할머니는 말했다."의사로서 저는 그저 의견만 드릴 수 있습니다. 아이를 지킬지 말지는 그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무상황도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형식적인 말은 그만하고, 웃어른으로서 말해보라는 것이오."그러자 원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지하지 않습니다. 위험이 너무 크고,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를 포기한다면, 그녀는 후회할 것입니다."이것은 몹시 어려운 결정이었기에, 태상황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기다려야 하네. 만약 그들이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하네. 그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 이것도 어쩌면 지지하는 것이네."어른스러운 그의 말에 원 할머니가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그의 마음은 참 소중했다. 어쨌든 요부인은 더 이상 황실의 사람이 아니기에, 무상황은 사람을 보내 원경릉에게 명을 전했고, 원경릉은 곧바로 그 명에 응했다.사실 무상황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약을 처방하긴 했지만, 그녀는 요부인이 훼천을 설득하여 이 아이를 지킬 것이라 생각했다.말솜씨에서 훼천은 요부인에게 한참 뒤떨어지기 때문이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궁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요부인이 그녀에게 간절히 부탁한 것이었다."아이를 지켜보기로 결정을 내렸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게. 아이를 지키려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아이를 포기할 것이니. 그 후에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맡기고, 절대로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을 것이네."원경릉이 훼천을 바라보았는데, 훼천은 불안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의 창백한 안색으로 보아, 어젯밤 밤새 격한 토론을 했고, 훼천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부인이 애절하게 부탁하는 눈빛을 보며, 원경릉은
원 할머니는 요부인의 맥을 짚으며, 몇 가지 상황을 물었다.요부인은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원 할머니는 다시 맥을 짚은 후, 잠시 침묵을 지켰다. 무상황이 재촉하자, 그제야 원 할머니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상황이 정말 좋지 않구나. 기운과 폐기운이 부족하고 허약하며, 심장도 다쳤다. 몸이 찬 편이라 아이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정말 낳고 싶다면..."요부인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희망마저 끊어지자, 너무 슬펐다.훼천이 물었다."원 할머니, 그동안 몸조리를 잘 해왔는데 어찌 몸 상태가 이렇게 나쁠 수 있습니까?"기혈이 부족하고, 몸이 찬 편이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걱정으로 가득 찼다.원 할머니가 말했다. "워낙 허약하니,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몇 년 전, 지나치게 고생한 탓에 몸을 다쳤고, 그 후에 폐병에 걸려서 폐까지 상했다. 몸조리로 상황이 더 악회하진 않겠지만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니, 무리하며 아이를 낳으면 결국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할 것이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치료받아야 할 것이다. 침대에서의 생활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아홉 달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하지만 요부인의 눈에는 다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계속 누워 있으면, 이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까?""지킬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 아이를 지키려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원 할머니는 말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황후를 찾아보았느냐?""예. 오늘 황후가 오셨습니다."요부인이 말했다."무엇이라 했느냐?"요부인은 말했다."너무 심각하게 말하진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결정을 내리라 했지만, 아이를 남기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황후의 약이 나의 약보다 나을 것이다. 하지만 황후도 그렇게 말했다면, 정말 위험한 것이다. 사실 의원으로서, 우리도 그저 조언만 할 수 있는 법이다. 아이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위
원경릉은 못내 조금 흥분했지만, 이내 다시 차분해졌다.약상자에 어떤 약이 나타났든, 지금 상황에는 여전히 위험이 컸다. 그리고 그 약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요부인의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게다가 두 번째 층에는 출산 중 사용할 응급 약도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다 그들의 팔자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우문호는 말하면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어찌 고민할 때마다 이마를 찡그리는 것이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리프팅을 해야 하네.""당신은 리프팅 안 했소."원경릉은 웃으면서 말했다."난 괜찮소. 리프팅을 했든 안 했든, 예전보다 확실히 젊어 보이니 괜찮소."우문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어쨌든, 원경릉이 좋아하면 되었다."정말 리프팅 안 했소. 다 그 약 덕분이오."원경릉이 말했다."정말이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다행이오. 난 당신이 내가 늙었다고 싫어할 줄 알았소."원경릉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소? 사랑하는 사람의 흰머리를 볼 수 있다는 건, 사실 행복한 일이네."우문호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맞소."원경릉이 그의 품에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아마 오늘 밤 요부인과 훼천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오."정말 그러했다.모두가 나가자마자, 요부인이 약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훼천은 그녀 곁에 있었지만, 위로는 서투른 사람이라,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곁에 있었다.이 아이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오지 않았으면 이런 슬픔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삶도 잘 흘러갔을 것이다.왔지만 떠나니, 정말 상처가 될 뿐이었다. 앞으로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플 것이다."어르신을 찾으러 가겠네."요부인이 갑자기 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훼천은 누구를 말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숙왕부에 가려 하니, 함께 가시게."요부인이 벌
원경릉은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약을 다 처방한 후에 원경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일부터 약을 드시게. 잊을 수도 있으니, 며칠 동안 자주 올 것이네. 게다가 또..."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바로 그녀의 말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약을 먹는 과정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다.그들은 이 나이에 아이를 낳든, 낙태하든, 모두 위험이 따른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당부를 마친 후, 훼천이 그녀들을 배웅했다.모두 지금은 그들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이와 함께, 셋이 하루를 보낼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오늘 하루만이 남아 있었다.미색은 집을 나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한참 뒤 눈물을 닦고 나서 원경릉에게 물었다."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정말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그저 지지하기로 하지 않았느냐."미색 또한 이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원경릉은 더 이상 위험에 관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요부인의 목숨이 더 중요한 법이지요."미색은 말을 마친 후, 말을 타고 그곳을 떠났다."며칠 동안 계속 그녀의 곁을 지킬 셈 같아 보이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원용의가 말했다."그래. 나도 올 것이다."그러자 손왕비가 덧붙였다.한편, 궁에 돌아온 원경릉은 바로 실험실로 가지 않고,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셨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슬픔에 가득 찬 요부인의 얼굴만이 떠올랐다.강한 여자의 눈물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저녁 무렵, 다섯째가 돌아왔다. 그는 원경릉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는 대충 눈치챘다. 그는 다가가서 그녀를 안으며 물었다."요부인의 상태가 좋지 않소?""알아챈 것이오?""나이가 나이인지라."우문호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결국 아이를 포기하기로 했소?""그렇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원경릉은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