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후의 결심 그리고 밀실혜정후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내 사람이 되면, 그 여자의 뼈를 꺾고 살을 태우더라도 다른 사람한테 조금의 흔적도 발견되어서는 안된다.”심복은 알아듣고, “그리하겠습니다. 나리께서 비밀통로로 초왕비를 보내 신 후에 초왕이 들여보내도록 하겠습니다.”혜정후는 서탁에서 비수 하나를 꺼내 쥐고 놀다가 갑자기 비수를 탁자에 세게 찔러 넣는데, 칼자루 부분이 결국 들어가지 않자 그는 음산한 얼굴로: “우문호 이 자식, 네가 길 들지 않을 놈이란 걸 알아봤지.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우문호에게 경조부 부윤을 맡긴 건지 모르겠지만 상관없어. 우문호는 경조부 부윤이 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그 자리를 지킬 힘은 없으니까 말이야. 이번에 이 멍청한 여자가 제 발로 기어들어 온 김에, 그녀를 이용해 우문호를 아주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심연으로 떨어뜨려 주지.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게 말이야.”심복은 냉소를 띠며, “맞습니다. 나리께서 일전의 설욕을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혜정후는 그때의 치욕을 떠올리면 여전히 원통해서 가슴이 떨린다. “그때 우문호는 내 휘하의 선봉장 하나에 불과했으나 황자라는 신분을 믿고, 모든 장수들 앞에서 나를 쳐서 내 얼굴을 땅에 떨어뜨리고 심지어 잘못했으면 황제가 벌을 내릴 뻔 하지 않았나, 만약 백부께서 날 감싸주시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 성취도 없었을 것이다. 이 참에 내 가슴을 몇 년간이나 누르고 있던 납덩이를 오늘 청산할 것이다.”“나리 안심하십시오, 오늘 초왕이 조정의 고위 관리를 모함하고 제후의 집을 사적으로 침범한 죄를 분명히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심복은 고개를 들어, “그럼 초왕비는 어찌 처리할까요?”혜정후는 차갑게 웃으며, “기왕에 굴러들어 왔으니, 내가 그녀를 가지고 놀며 초왕을 모욕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알겠습니다, 나리의 분부를 기다렸다가 초왕비를 밀실로 보낸 뒤 잠시 별채에 두었다가 나리의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겠습니다.” 심복이 말했다.혜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무서워 한다고?” 혜정후(惠鼎侯)가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본후(本侯)는 너의 이러한 행동에 감탄스럽구나. 우문호를 위해 네 목숨마저 내놓을 줄이야.”원경릉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혜정후를 보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후작나리께서는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는 우문호를 위해서 이러는게 아닙니다.”“그래? 그럼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혜정후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가며 동시에 광기 어린 그의 두 눈동자가 원경릉을 몸을 위 아래로 훑었다.원경릉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소매 속으로 넣고 마취제를 찾았다. “여자들은 힘이 쎈 장군을 좋아하죠.” 원경릉이 야릇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한걸음 다가가자 혜정후가 의심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안타깝게도 제가 우문호를 잘못보았지 말입니다. 그는 저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체력도 별로지 뭡니까.” “그런가?” 혜정후는 옆에 있던 촛불을 꺼버리더니, 한 손으로 원경릉의 허리를 끌어 당겼다. 원경릉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문호 별거 아닙니다. 그쵸?”원경릉은 몽롱한 눈빛으로 혜정후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녀의 손은 자연스럽게 그의 등을 쓸어올렸다.“난 그가 정말 싫습니다.” 그녀의 손톱이 그의 살갗에 생채기를 남기자 혜정후는 온몸이 저릿해지며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원경릉은 두 손으로 그를 껴안고는 머리를 그의 가슴에 바짝 붙였다. 기회는 지금이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손톱이 스쳤던 살갗에 주사기를 꽂은 후 다른 손으로는 피부 근육을 잡았다.혜정후는 차가운 바늘이 몸에 닿자 놀란듯 한 눈빛으로 순식간에 그녀의 목을 조르고는 다른 한손으로 단번에 등 뒤에 꽂힌 주사기를 뽑았다. 분노에 가득찬 그가 원경릉의 뺨을 거세게 내리쳤다.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고?”혜정후가 그녀의 뺨을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그녀의 뺨이 얼얼하다 못해, 머리통 반이 날아간 느낌이 들었
한 시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서자, 뒤에서 다른 시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여자가 나리를 해쳤습니다! 못 도망가게 잡아요!”원경릉은 들통났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소매에 숨겨뒀던 가위를 꺼내 시녀의 귀를 찔렀다. 아무리 재간이 좋은 사람이라도, 귀를 직접 찔러 고막이 다치면 심한 통증으로 반격할 겨를이 없어진다. 시녀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원경릉이 발 빠르게 달아났다. 시녀의 비명소리를 듣고 수위(守卫)가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들어왔고, 원경릉은 황급히 옆 마당으로 도망갔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도망친 곳엔 적어도 스무 마리의 개들이 사납게 짖어 대고 있었다. 생고기를 먹고 자란 개들이라 그런지 사납고 복종성이 높아서 주인의 호령 한마디에 망설임 없이 적에게 달려들어 물어 뜯는다. 원경릉은 담벼락을 등지고 살금살금 물러서다 쫓아오던 추격병과 맞닥뜨렸다. “나리를 해치고 이렇게 쉽게 달아나겠다고?” 덩치가 큰 남자가 원경릉 앞에 서있었다.원경릉은 한 눈에 그를 알아 보았다. 그는 혜정후와 경성 기생집에 갔던 호위(护卫)였다. 앞 뒤가 모두 막히자 그녀는 절망했다. ‘이렇게 빨리 잡히게 되다니. 혜정후의 하반신을 못 쓰게 만들었으니, 나를 능지처참하지 않을까?’그 방에 있던 고문 도구들을 생각하니, 그녀는 차라리 개한테 목덜미를 물어 뜯겨 죽는게 나을 것 같았다.‘우문호는 내가 죽은 것을 알면 기뻐하지 않을까? 죽기 직전에 생각나는 사람이 뜻밖에도 우문호라니.’호위가 한걸음 한걸음 채찍을 들고 그녀에게 걸어왔다. 그의 음흉한 얼굴이 피에 굶주린 개들보다 무서웠다.원경릉은 의연하게 돌아서서 스무 마리의 큰 개들을 보았다. 그 개들이 그녀의 말을 알아 들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큰 소리로 개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내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거라! 나는 절대 굴하지 않을 것이야!”그녀의 말이 끝나자 개들이 달려오던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광기 어린 개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누그러졌다. 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원경릉은 빠르게 달려 쇠사슬을 밟았다. 그녀가 순조롭게 담을 넘는 듯 싶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뒤로 넘어진 그녀는 뒤통수가 돌에 부딪힌 것 같았다. 손으로 뒤통수를 만져보니 피가 묻어났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목숨을 걸고 달렸고, 개들도 따라왔다. 하지만, 개들은 그녀를 쫓는게 아닌 그녀를 쫓는 호위를 쫓았다. 개들의 보호 덕분에 그녀는 무사히 뒷문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뒷문으로 달려나오면서도 그녀는 안심할 수 없어 계속 달렸다. 그 곳에서 멀리 벗어나서야 작은 골목 귀퉁이에 주저 앉을 수 있었다. 심장이 빨리 뛰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머리도 아프고 얼굴도 아프고, 아파 죽겠다.’그녀는 바쁘게 약상자를 꺼내 가제로 소독약을 바른 후 머리를 싸맸다. ‘일단 왕부로 돌아가자. 여기에 있을 수는 없어. 만약 후부(侯府)사람들에게 걸린다면 난 죽은 목숨이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다리가 심하게 떨렸다. 운이 나빠 시공간을 초월해 2세대를 살아왔지만 이렇게 험한 일은 처음 겪어본다. 전생에서의 그녀는 누구에게 쫓겨 도망치기는 커녕, 수업도 한번 빼먹어 본적 없는 순박한 사람이었다. 오늘 그녀를 도왔던 개들이 생각이 났다. 앞으로 그 개들은 어떻게 될까?주인을 공격한 개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 밖에 없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들을 구할 수 있을까?원경릉은 문득 그녀에게 도망치라고 외쳤던 꼬리 짧은 검정 개가 생각이 났다. 혜정후는 잔인한 사람이다. 자손 번식의 도구에 상처를 입었으니 검정 개는 물론이고, 그녀를 도왔던 다른 개들도 용서를 하겠는가? 절대 안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원경릉은 머리가 아파왔다. ‘됐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방법을 찾아보자.’그녀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무시하며 자기 자신을 위안했다.그녀가 골목 어귀를 나와 주위를 살피려고 머리를 내밀었는데 마침 동쪽의 큰 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쭉 빼서 보니 덩치 큰 사내 십여명이 커다란 말을
행인들이 하는 말을 들은 원경릉은 마음이 이상해졌다. 우문호가 정말 혜정후부에 그녀를 구하러 간거면 어떻게 되는걸까? 저렇게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니, 혜정후의 저택을 수색하려는 모양인데, 황제의 성지(圣旨)를 받고 가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황제의 성지없이 후작(侯爵)을 조사하고, 만약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황제는 우문호에게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다. ‘우문호가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겠지?’원경릉은 차마 우문호를 따라가지 못하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가쁜 숨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원경릉이 도망간지 십여분이 지났을까. 혜정후가 정신을 차렸다. 후부에는 어의가 있었는데, 혜정후의 상처를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나리께서 더 이상 인도(人道) 할 수 없을까봐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혜정후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하반신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폈다. 그의 주위에 서있던 심복이 혜정후를 바라보았다. 심복은 난생 처음으로 혜정후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혜정후의 옷은 여기저기 개에게 뜯겨 찢어져 있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 “나리. 이해가 가지 않으시겠지만……, 초왕비가 도망갈 때 마당에 있던 모든 개들이 왕비가 도망갈 길을 터주었고 심지어 집안의 호위들을 물며 도망가게끔 도와주었습니다.”심복이 말했다.혜정후의 저택에 있는 스무 마리의 개들이 모두 그가 죄다 포려(苞藜)에서 데리고 온 것이다. 이 개들은 난폭해서 전문가들도 훈련 하기 버거워했지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 한번 복종을 하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복종을 하기로 유명했다.“전장에서 배신을 하다니, 죽여라!” 혜정후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예! 그리고 나리. 방금 보초가 말하길, 초왕이 곧 후부(侯府)에 도착한다고 합니다.”심복이 말했다.혜정후가 갑자기 눈빛이 바뀌더니 눈을 부릅뜨고 어의를 쳐다보며 말했다. “본후를 우문호를 만날 것이니 상처를 잘 싸매거라.”“나리, 하지만 부상 상태가
우문호는 혜정후의 몸에서 풍기는 피비린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혜정후는 멀쩡해 보이는데 이게 어디서 나오는 피비린내인가? 원경릉이 이미 참변을 당한 건 아니겠지?’이런 생각을 하니 우문호의 마음이 급해졌다. “본왕이 오늘 경조부의 병사들을 동원해 왕비 실종 사건을 조사하려고 하니 후작께서 협조 부탁드립니다.”혜정후는 날카로운 눈동자를 천천히 거두며 코웃음을 쳤다. “왕야의 위엄이 대단하십니다. 이미 병사들을 후부로 데리고 온 마당에 본후가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이 곳에서 왕비를 찾지 못한다면 본후는 황제께 가서 왕야를 죄를 물을 겁니다.”‘말끝마다 협박을 하는구나. 죄를 묻는다니 그게 어디 그렇게 간단하겠는가?’우문호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병사들 그리고 탕양. 너희는 집안 곳곳을 수색하거라! 암실, 땅굴 모두 철저하게 살펴보아라. 그리고 서일아! 너는 뒷문 쪽을 뒤져보거라.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아무도 내보내서는 안된다!”“예!”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신속하게 수색에 들어갔다.혜정후와 우문호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예전부터 혜정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경조부의 병사들을 데리고 왔으니 혜정후는 협조하고 싶지 않아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혜정후도 자존심이 있기에 우문호의 조사에 진심으로 협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왜 이렇게 당당한거지? 설마 혜정후가 원경릉을 이미 처리해버린 걸까?혜정후는 병사들이 자신의 저택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 불쾌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우문호를 보았다. “왕야 만약 병사들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이후는 본후가 알아서 해도 되겠지요?”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혜정후의 눈에서 뭔지 모를 음흉함을 느꼈다. 서일이 속았을 수도 있다. 혜정후 말대로 그가 원경릉을 납치하지 않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가 원경릉을 납치해서 후부로 데리고 오지 않았거나. 만약 원경릉이 정말 혜정
“왕야. 뒤뜰에 있는 밀실 안에 고문 도구로 가득찬 밀실을 발견했습니다.” 탕양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보고했다. 탕양이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고문 도구를 들고 다가와 우문호 앞에 놓았다.고문 도구에는 핏자국이 잔뜩 묻어있었다.혜정후는 의아하다는 듯 “이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밀실도 수색을 해야합니까?” 라고 물었다.“나리께서 고문 도구가 왜 필요하십니까?”우문호가 천천히 물었다.“말 안듣는 하인들을 처벌하려면 구형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후부에 기강이 섭니다.”혜정후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탕양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저택 곳곳을 뒤졌지만 왕비는 커녕 왕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서일은 제대로 본게 맞는거야? 만약 서일이 잘 못 본것이라면 정말 큰일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조부 병사들이 수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왕야. 개들이 갇혀있던 마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색했습니다.” 라고 말했다.“개들?” 우문호의 눈빛이 번뜩였다.“뭘 놀라십니까? 본후가 개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개들은 저택을 지키는 용도입니다. 만약 본후가 왕비를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다고 생각이 되면 개들이 있는 마당에 가서 찾아보시지요. 허나 개들이 난폭해서 무슨일이 벌어질지는 장담 못하니 조심하십시오.” 혜정후가 말했다.“왕야. 개들이 있는 마당은 병사들에게 가서 찾아보라고 하는게 좋겠습니다.” 탕양이 말했다.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그 곳은 본왕이 직접 수색한다.” 라고 말했다. 탕양은 우문호의 뛰어난 무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문호라도 스무 마리의 사나운 개들이 한번에 달려든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왕야. 위험합니다!” 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괜찮아.” 우문호가 담담하게 혜정후를 보며 “본왕이 후부에서 사고를 당한다면, 후작께서도 후일을 감당하셔야겠죠.” 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우문호는 어찌됐든 왕실의 친왕이다.우문호의 말을 들은 혜정후는 냉소를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문호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여기저기 피부가 찢긴 스무 마리의 사나운 개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짖어댔다. 개들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고 금방이라도 우문호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왕야 이래도 들어가시겠습니까?” 혜정후가 물었다.“왕야. 안됩니다!”옆에 있던 탕양이 우문호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탕양이 비록 개를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개들의 몸에 난 상처를 보니 금방 얻어 맞은 것이 분명했다. 외부의 자극으로 한껏 예민해진 개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 없었다. 대문을 막 지나자마자 한마리의 개가 우문호에게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우문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것도 잠시 구석에서 심복이 개들에게 손짓을 하자 개들이 미친듯이 달려와 우문호를 에워쌌다. 우문호는 마당 안쪽으로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었다. 개들이 몇 번 짖어대더니 우문호의 소매와 옷자락을 물어 뜯었다. “왕야 조심하십시오!” 탕양이 소리쳤다.우문호는 탕양의 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짧은 꼬리에 귀를 쫑긋 세운 사나운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번개처럼 우문호의 등을 향해 돌진했다. 우문호는 빠르게 몸을 돌려 피했지만 날카로운 발톱에 긁혀 목 뒤에서 피가 흘렀다. 병사들과 탕양이 우문호를 돕기 위해 들어가려고 하자 혜정후가 그 앞을 막아섰다. “멈추거라. 본후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마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탕양은 혜정후의 옆에 서 있는 심복이 쉴 새 없이 휘파람을 부는 것을 보았다. 가만보니 심복의 휘휘 소리가 개들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후작나리.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고의로 왕야를 해치려 하다니요!” 탕양은 크게 노했다.“고의? 본후가 왕야에게 이미 경고를 했지 않나? 기어이 들어가야겠다고 한건 왕야다.” 혜정후가 오만한 표정으로 탕양을 내려보았다.탕양은 치가 떨리는 표정으로 혜정후를 노려보았다. ‘만약 혜정후에게 사과를 하고 왕야를 마당에서 꺼낸다면, 마당 내부를 뒤질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왕야를 속수무책
양여혜는 급히 전문가 팀을 호출하고, 이전에 LR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사람들도 함께 불러 모았다.하지만 현재 데이터로는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고, 우문호가 계속해서 검사받아야 한다는 결론만 나왔다.그래서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확실히 확인하자며, 이곳에 며칠 더 머물도록 설득했다. 우문호가 바로 동의하긴 했지만, 원경릉과 함께 밖에 나가 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도 어쩌다 이곳으로 왔으니,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어하는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부모님과 휘종제를 뵈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원경릉은 연구소를 떠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했지만, 우문호가 그리 협조적이지 않자, 결국 양여혜와 상의해 하루만 외출하고 돌아와 검사를 계속 받기로 했다.양여혜가 말했다."그럼 가세요. 제가 멀리서 따라가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게요""수고 많으세요."원경릉이 답했다."어쩔 수 없죠. 그의 안전을 확실히 해야 하니까요."양여혜가 말했다.그녀는 잠시 멈칫하다, 원경릉을 위로했다."상태도 좋아 보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네, 괜찮을 거예요."원경릉도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양여혜는 그들에게 차를 준비해 준 후, 집에 있는 부모님을 잠시 들러서 보게 했다.원경릉의 부모님은 이미 퇴직했지만, 다시 병원으로 불려 가, 주 3일 진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만큼 바쁘지는 않았다.그들은 내년 계약이 끝난 후, 세계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그리고 손자를 보기 위해 딸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한동안 지낼 생각이었다.사위와 딸이 돌아오자, 그들은 아주 기뻐하며 식사를 준비했다. 원경릉과 우문호가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낸 거라, 반나절만 들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마음이 아팠다."앞으로는 바빠도 이렇게 급히 돌아오지는 말거라. 식사도 편히 못 하고, 차라리 집에서 푹 쉬어. 우리가 후년에 찾아가마."우문호는 이미 그들을 자기 부모처럼 여겼고, 그들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느끼며 답했다."비록
원경릉은 결국 그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이틀만 더 있지요. 혈액 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하고, 골수를 뽑아 상처도 아프지 않소?"“이미 다 나았네. 만져도 아무 느낌이 없소!”우문호는 당당하게 셔츠를 걷어 올려 상처를 보여줬다. 상처 위에는 아직 의료용 밴드가 붙어 있었기에, 원경릉은 될수록 물에 닿지 않게 그의 몸을 조심히 닦아주었다.“상처에 약을 발라야 하오.”원경릉이 말했다.그렇게 손을 뻗어 밴드를 찢었는데, 순간 화들짝 놀랐다. 상처가 거의 회복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제 밴드 갈 때는 약간의 피가 고여 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나았다니…?“이렇게나 빨리 나았습니까?”서일도 다가가서 살펴보며 매우 놀라워했다.우문호는 골수를 뽑고 나서, 상처가 아프다고 했는데, 서일은 그의 몸에 작은 구멍이 생긴 것을 보고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그래. 많이 나았다. 이번에 앓고 나니, 오히려 예전보다 정신이 더 맑아 졌다. 서일아, 내 머리 옆에 있던 흰머리도 사라지지 않았느냐?”우문호는 머리를 숙여서 서일이 볼 수 있게 했다.서일은 그의 머리카락을 자세히 살펴본 후,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흰머리뿐만 아니라, 눈가 주름도 없어졌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폐하, 어찌 더 젊어진 것 같습니다. 아닙니까, 마마?”서일의 말을 들은 원경릉은 깜짝 놀라, 우문호를 자세히 살폈다. 그의 피부는 훨씬 더 맑아 졌다. 하지만 병을 앓고 나서 햇빛을 거의 보지 않아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흰머리는 사실 뽑으면 그만이었다. 눈가 주름은 확실히 없어졌고, 피부의 탄력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예전에는 그가 30대 중반이었다고 느껴졌지만, 지금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처럼, 맑은 눈빛과 깔끔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잘생긴 미남이었다.우문호는 거울을 보곤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급히 원경릉을 끌어당겨 조용히 물었다.“혹시 휘종제처럼 그런 것을 한 것이오? 리프팅?”“무슨 소리요?”원경릉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웃음도 섞인 말을 했다.“어찌
다음 날 아침, 우문호는 골수 검사를 마친 후, 전신 검사를 진행했다.검사팀은 야근까지 하며 최대한 결과를 빨리 얻으려 노력했다.그동안 원경릉은 우문호가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문호는 어차피 건강을 회복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검사가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일과 함께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했기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고 믿어 마음을 놓고 서일과 함께 패드로 드라마를 시청했다.결과가 나오자마자, 양여혜는 바로 원경릉을 불렀다.“골수의 유전자 검사 결과… 돌연변이가 발견됐어요. 외부 자극이 아닌, 자가 자연 돌연변이에요. 또한, 발가락에 있는 그 덩어리, 조직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일종의 얼음 벌레와 비슷한 형태였어요. 이 얼음 벌레는 과거 사람 몸에서 발견된 적도 있어요.”“얼음 벌레? 그게 뭐죠?”원경릉은 조금 혼란스러웠다.“하지만 이전엔… 그 덩어리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요?”“처음엔 발견되지 않았죠. 하지만 주진 씨가 조직을 채취해 검사를 해보니, 그 얼음 벌레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어요. 생명력이 굉장히 강하고 벌레라고는 하지만 사실 세균이죠. 이 얼음 벌레가 어떻게 번식하는지, 혹은 이 얼음 벌레가 그의 혈액 생성 기능에 영향을 주어 혈소판 수치를 낮추었는지는 아직 모르고,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얼음 벌레 세균을 배양해서 더 나은 발견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그 후에가 되서야 어떻게 억제하는지, 죽일 수 있을지 알게 될 거예요.”“이 얼음 벌레는 얼음 속에서 사는 건가요? 하지만 그가 물린 곳은 호수였잖아요.”“아니요, 이 얼음 벌레는 처음 발견된 곳은 얼음 속이었지만, 여러 곳에서 살거나 휴면 상태로 있을 수 있어요.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기회를 엿보죠. 예를 들어 손으로 얼음 벌레를 만지거나, 작은 상처로 침투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얼음 벌레에 대한 많은 정보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 분야의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어요.”
서일이 뒤늦게 물었다.“이제 괜찮으신 겁니까?”“지금까지는 괜찮아요.”양여혜가 그를 한 번 보고 웃으며 말했다.“며칠 동안 잠도 못 주무셨는데… 검사하는 틈에 잠깐 주무시러 가세요.”서일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서서히 졸음이 몰려왔다. 우문호가 검사를 받으러 옮겨지는 것을 보고, 그는 바로 우문호의 병상에 쓰러져 잠들었다.우문호가 검사를 받고 돌아왔을 때, 서일은 이미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원경릉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다른 곳에서 쉬지 않고 굳이 다섯째의 병상에 자는 것이 너무 당황스럽게 느껴졌다.우문호도 서일을 아끼고 있기에 원경릉에게 말했다.“깨우지 말고 그냥 자게 두시오. 정말 깜짝 놀랐을 것이오. 나한테 주사를 놓았으니, 나한테 혹시 위험이 생기면 황제를 해친 죄를 얻을 것이라는부담이 얼마나 컸겠소.”원경릉은 그만 실소를 터트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실이 그러했긴 했다. 서일은 정말 적지 않게 일을 벌였다.옆 병실로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폐렴은 크게 호전되었고, 각 항도 정상값으로 돌아갔지만, 혈액 속의 마커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다행인 점은 현재로서는 세포나 림프의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세균 보고서도 나왔는데, 이전에 발견된 적이 없는 세균으로 확인되었다.그리고 우문호 발에 있던 작은 두드러기는 시간이 오래 지난 데다, 오랫동안 물에 잠겨있어, 참고가 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이전에 추측된 개미산도 없었다.모든 것은 마치 신비로운 사건처럼 맞물려 있었지만,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고열과 폐렴, 세균이 LR 주사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만 LR이 세균 감염 상태를 악화시킨 가능성이 있었다.란오가 연구실을 떠나며 양여혜에게 우문호의 혈액 상태를 계속 모니터링하도록 했다. 그는 마커 외에도 다른 이상이 발견되면 바로 알려달라고 했기에, 우문호는 아직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당분간 계속 그의 상태를 지켜보며 혈액 검사를 기다려야 했다.5일째 되는 날, 우
양여혜와 란오는 우문호에게 약을 투여하기 시작했다.원경릉은 병실 밖에서 서일와 함께 유리창 앞에서 지켜봤다. 파란 약이 큰 병에 섞여 천천히 우문호의 혈관으로 흘러 들어갔다.약이 매우 느리게,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천천히 원경릉의 마음속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망연하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결국 해결 방법은 란오의 혈액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란오의 신분에 대해 그녀 또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많은 사람들이 그를 좀비 왕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바이러스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가 어떤 바이러스와 공생한다고도 했다. 그 바이러스는 그의 유전자와 세포는 물론,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세포는 분열하고 재생했고, 유전자는 끊임없이 자기 수정을 하며,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변화했다.그의 혈액에서도 실제로 바이러스가 검출되었고, 그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오직 혈액을 통해 퍼져나갈 수 있었다.과학적 탐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알고 있는 일은 너무나 적었다.약을 투여한 후 1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호흡 곤란 증상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고, 열도 40도에서 38.8도로 떨어졌다.그렇게 2시간 후, 드디어 열이 떨어졌다.이때, 큰 병에 담겨 있는 약을 겨우 삼분의 일정도 사용한 상태였다.지금 상황으로 보아,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그 후, 혈압도 서서히 회복되었고, 혈압도 70까지 올라갔다.약물 투여 3시간 후, 수혈이 병행되었다.밤이 되자, 혈액 검사를 진행하였고 혈색소와 혈소판 상승, 백혈구도 감소하였고, 중성구 또한 정상으로 돌아왔다.이것은 감염 상태가 강력하게 통제되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원경릉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계속 그의 상태를 지켜봤다.상황이 다소 안정된 뒤, 호흡기가 제거 되었고, 원경릉도 안에서 그를 지킬 수 있었다.서일은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계속 대기했다. 의술에 전혀 알지 못하는 그는 이틀 동안 정신을
“지난 두 차례 실험 결과는 어땠나요?”그러자 란오가 휴대전화를 꺼내 실험 데이터를 불러왔다.“직접 보세요.”두 사람은 데이터를 확인했고 결과는 매우 이상적이었다. 바이러스와 세균 억제율이 95%에 달했고, 3개월간의 관찰에서도 이상 증상이 없었다.“이렇게나 이상적인 데이터인데, 당신은 망설이고 있는 것 같군요.”원경릉이 란오를 보며 말했다.“네. 남편분 상태가 특별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LR를 주입했고, 어떤 세균에 감염되었는지 모르고 있어요. 게다가 그의 혈액에서 마커가 발견됐어요. LR는 접촉한 적 없지만, 여혜 씨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어요. LR이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으니, 제 약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어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데, 그에 대한 선례가 없어서 확신할 수 없어요.”원경릉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연구소에서 이미 다섯째에게 최고의 항생제와 알부민을 투입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병세가 더욱 악화했다. 지금 상황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약은 하나도 없었다.양여혜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잘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너무 오래 고민하지는 마세요. 그의 상태가 그렇게 좋진 않으니깐요.”원경릉은 떨리는 손으로 와인을 들고 단숨에 한잔을 전부 들이켰다.“… 사용하겠습니다!”원경릉은 의약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많은 약을 투여했는데 효과가 없다는 것은 그 약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약들이 자신의 남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란오를 보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만약 약을 사용한 후, 그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거나... 혹시... 당신이 그를 도와줬으면 합니다. 설령... 설령 그가 그렇게 되더라도.”란오는 잠시 침묵한 후 입을 열었다.“그렇게 결정을 내리셨다면 도울게요.”양여혜는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결국 란오의 혈액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 오더라도, 예전처럼 되지 않을 거
양여혜는 바로 중환자실로 돌아가 전문가팀과 다음 계획을 논의했다.세균 감염과 약물 부작용이 원인일 가능성이 가장 컸지만, 둘 다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밤새 지켜봤지만, 우문호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혈압은 계속 올라가지 않았고, 고열도 가라앉지 않았다. 특효약도 폐렴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어, 그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될 것이 분명했다.다음 날 점심, 흉부 X-ray를 통해 폐렴이 악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호흡은 더욱 가빠져, 이제는 결국 인공호흡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은 버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서일과 함께 침대 옆을 지켰다.양여혜도 오랜 시간 함께 있다가, 결국 자리를 떠나 란오에게 전화를 걸어 숨도 못 쉴 만큼 질문을 퍼부었다. “란오 씨, 일단 당신의 혈액이 조금 필요할지도 몰라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고, 대비책으로 준비하려는 거예요. 지금 어디에 있어요? 어디에 있는 실험실이죠? 무슨 실험 중인가요? 당신의 혈액에서 바이러스를 추출했다고요? 확실한가요? 효과는 어때요? 잠시만 기다려요! 내가 바로 만나러 갈 테니, 직접 만나서 얘기해 봐요. 이쪽으로 와도 괜찮아요. 계속 기다릴 테니까 빨리 와주세요.”그렇게 세 시간 후,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연구소 앞에 멈춰 섰고 양여혜는 직접 나가서 맞이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였다. 그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풍기고 있었다. 마침 주진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밖으로 나온 원경릉은 그가 양여혜와 함께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남자는 원경릉에게 묘하게 낯선 느낌을 주었다. 순간 원경릉의 머릿속에는 피로 물든 어떠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양여혜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누구?”“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상황 아니에요. 소개할게요.”양여혜가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란오 씨, 이쪽은 원경릉 씨예요. 서로 인사 나누세요.”란오가 손을
원경릉은 곁에서 지켜보았는데, 다리가 몹시 떨리고 있었다. 이전에 그를 잃을 뻔한 고통을 겪은 적 있었기에, 이번 생에서는 절대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채혈 검사를 마쳤지만, 또 여러 항목의 분석이 필요했다.바이러스 세균 팀의 한 전문가는 세균 감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세균인지 알아내려면 무조건 배양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결과를 바로 알 수는 없었다.고열은 계속되고 있었고, 호흡 곤란도 심해졌다. 만약 더 나아지지 않으면, 인공호흡기를 써야 할 상황이었다.원경릉은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이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듯, 그녀와 어떤 의식 교류도 하지 않았다.이 점도 너무 이상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안심이 되기도 했다.아이들이 아버지에게 위험이 닥쳤음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우문호가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그녀는 이런 부모와 자식 간의 의식 연결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믿음 없이는 견딜 수 없었다.다행히 우문호는 응급처치를 통해 목숨을 부지했다. 호흡은 점차 안정됐지만, 혈압은 여전히 오르지 않아, 집중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했다.X-ray 결과도 나왔고, 폐렴이었다. 그것도 매우 심각한 폐렴이었으며, 최소 일주일 이상 진행된 것으로 보였다.원경릉이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리자, 양여혜가 서둘러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커피 한 잔을 건네줬다.그러고는 원경릉의 창백한 얼굴과 부어오른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말했잖아요. 아직 방법이 남아 있어요.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 쉽게 쓰지 않았을 뿐이에요.”“무슨 방법인데요? 왜 쓸 수 없어요?”원경릉은 절박한 표정으로 양여혜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지금 바로 써요! 그가 무사하다는 걸 확신하고 싶어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요.”“알겠어요, 알겠어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일단 진정하세요.”“진정할 수가 없어요...”원경릉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바로 양여혜에게 전화를 걸었고, 양여혜는 직접 헬리콥터를 보내 그들을 연구소로 이송해주었다.이송 중 우문호의 호흡은 점점 어려워졌고, 혈압도 심각하게 낮았으며 쇼크 지수도 무서우리만치 높았다. 원경릉은 내내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긴장한 탓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녀는 자기 능력을 사용해 상황을 파악하려 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가로막힌 것처럼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마음이 급하면 능력이 제어되지 않을 수 있으니깐요. 억제제를 한 대 놓을 테니 더는 무리하지 마세요. 얼굴이 다 창백해졌어요.”양여혜가 설득했다.“안 돼요! 능력을 유지해야 해서 억제제를 맞으면 안 됩니다.”하지만 원경릉은 곧바로 거절했다. 이런 상황에 능력까지 억제해 버린다면 그녀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알겠어요. 하지만 진정하세요. 우리에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양여혜가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방법인데요?”원경릉은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눈으로 양여혜에게 물었다.“그 연구 데이터, 찢어진 적이 있었던 거죠?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지금 조사 중이에요. 실종된 그 전문가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찢어진 페이지에 대해서 일부 단서를 얻었어요. 그 페이지에는 약물이 세포 변이를 유발한다는 데이터를 담고 있었어요. 그녀 자신도 변이를 겪었기 때문에 그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아요.”원경릉은 경악했다.“변이요? 용량 문제 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나요?”“분명 용량 문제는 아닐 거예요. 우문호 씨에게는 얼마나 투여했죠?”“실험용 쥐에게 투여한 양의 두 배 정도요!”“그렇다면 용량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더욱 커져요. 아마도 다른 원인이 있을 거예요. 주사를 맞기 전에 어떤 증상이 있었나요? 혹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질환이라도 있었나요?”원경릉이 울먹이며 대답했다.“주사를 맞기 전 열이 났었어요.”“열이라면, 세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