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이 옷깃에서 손을 확 빼내며 그를 밀쳤다. “뭐야!”“내가 뭘?”우문호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놀랐다. “네 얼굴!” 원경릉이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켰다. ‘와…… 우문호 이렇게 밝히는 남자였어?’그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네가 가까이 와서 그런거다. 나는 네가 민망할까봐 고개를 돌린 것 뿐이고”“그래서 내 잘못이라고?”“그럼 본왕의 잘못이라는 거냐? 내가 널 끌어당기기라도 했느냐?”그는 자세를 꼿꼿하게 고쳐세우며 “게다가 뭐가 대단하다고? 그리고 우리 사이에 다 봐놓고 뭘 그러느냐? 나도 뭐 딱히 네 몸과 닿고 싶지 않았어”라고 말했다.“이전엔 내가 당신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그런거고!’“누가 치료해 달라고 그랬어?”“진작에 내가 알아봤어야 했는데. 당신하고는 말이 안통해. 당신같은 종자는 자손이 끊겨야해!” 원경릉은 화가 나서 우문호에게 쏘아 붙였다. “너는 본왕의 왕비다. 내 자손이 끊기면, 너의 자손도 없는거야.”“나를 궁 밖으로 내쫓기로 우리 약속했잖아.” 원경릉이 그를 가만히 보았다.“너를 출궁하기 전에, 네가 부황에게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봐. 네가 일 년 안에 손자를 안겨드리겠다고 했던 말.”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일년. 변수가 너무 많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부황께 그렇게 말씀 드릴 필요가 없었는데.”우문호는 원경릉의 말을 듣고 마음 속에 울화가 치밀었다. 둘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멀리 떨어져 앉았다. 부중(府中)으로 돌아온 원경릉은 곧장 봉의각으로 돌아갔다. 원경병은 기상궁이 끓여준 팥죽을 먹고 있었는데, 원경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왜 지금에서야 오십니까?”“일이 좀 지체돼서……” 원경릉은 가만이 팥죽을 보았다. “상궁님 저도 한 그릇 주세요.”“무슨 일이 지체되었습니까?” 원경병이 물었다.“사소한 일입니다.” 원경릉은 원경병을 힐끗 보았다. 원경병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이 원경병이 원주(原主)를 많이 아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좀 똑부러지
“아버지가 혼사를 다 결정해놨다고? 왜 나는 그걸 몰랐지?” 원경릉이 경악을 금치못했다. 원경병은 막 열 다섯이 되지 않았는가? 이리 급히 혼사를 치른다고?“이미 내 사주팔자도 그 쪽으로 보냈다고 해요.”“누구한테?” 원경릉이 물었다.“주대유(褚大有)”“주대유가 누구야?”옆에 있던 기상궁이 “주수보에 조카입니다. 벌써 서른이 훌쩍 넘었다고 하는데, 이 전에 혼인한 세명의 정실(正妻)들이 다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고작 열 다섯 여자아이를 서른 중반의 남자한테 시집을 보낸다고? 말도 안돼!” 화난 원경릉의 손이 벌벌 떨렸다. 정후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딸을 이렇게 물건 넘기듯이 넘기려고 하다니!“아버지께서 말하길 나이가 많긴 하지만 이미 혜정후까지 봉해졌으니 우리 쪽보다는 귀한 신분이라고 하셨습니다.”“그래서 어쩌라고?” 원경릉이 화가 난듯 물었다.“어쩔 수 없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원경병이 고작 열 다섯살이라고 할지라도 집안 끼리의 혼인을 자신이 이래라 저래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원경릉이 기상궁에게 “혜정후는 인품이 어떱니까?” 라고 물었다.“왕비. 왕야께 물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왕야께서 열 다섯부터 혜정후를 따라 참전했고,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는 직접 전쟁에서 통솔하셨습니다.”원경릉이 원경병를 보며 “혜정후. 아마 진작 알아봤겠지?”라고 물었다.“알아봤죠. 무척 괴팍한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원경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원경릉은 원경병이 단순히 여기에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라 혼인을 피하기 위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열 다섯살. 고작 중학생 나이인데.정후는 자신의 앞길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이기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왕비께서 초왕의 총애를 얻어 아버지의 출세를 도왔더라면! 내가 혜정후에게 시집가지 않아도 됐습니다!” 원경병이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원경릉은 화가 나서 붉어질 것 같은 얼굴을 간신히 숨겼다.
우문호에게 아쉬운 소리해가며 부탁을 할 생각을 하니 원경릉은 내심 내키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순순히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우문호가 정후에게 혼사에 관해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정후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혼사를 막을지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 원경병은 생각은 단순하기 그지없구나.’허나 우문호가 마음먹고 도와준다면 그는 틀림없이 방법을 찾을 것이다.“우선 방에 들어가 쉬고, 이 일은 좀 더 생각해보는게 좋겠어.”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병은 괴로운 마음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원경병은 자신의 말을 원경병이 신경도 쓰지 않을 줄 알았다. 그저 모 아니면 도 라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구했을 뿐이다. 하지만 원경릉이 의외로 고민하는 듯 보이니 원경병도 내심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원경릉이 방금‘좀 더 생각해보자’라고 하니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었다.원경릉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본 적이 없었다. 이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혼인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말에 복종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초왕과 혼인을 했다. 혼인을 했다고 지금 초왕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나? 그것도 아니다.정후는 딸을 내세워 모험을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딸은 출세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는 옳지 않다. 모든 사람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게 이 시대의 여자라고 해도 말이다.지금 원경릉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녀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원망과 원한, 증오 뿐이다.원경릉이 무언가 결심한 눈빛을 기상궁을 보며 “왕야가 무엇을 즐겨 먹습니까?” 라고 물었다.“자소 오리” 기상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원경릉이 초왕에게 부탁을 하려는 건가?“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주세요.” 원경릉이 말했다.“왕비. 아무래도 이 일에 손을 떼시는 것이 좋겠어요. 왕비가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고, 만약 왕야께서 나서서 정후부에 찾아가 원경병의 혼사에 관여하게 되면 정후는 아마 초왕의 총애를 얻었다고
오리 요리로 청탁할 틈을 노리는 원경릉“보기엔 붓기가 가라앉았는데, “ 원경릉이 미소를 띄고 칭찬하며, “이 말 안 할 수가 없네, 왕야는 진심 잘 생겼다니까, 부어서 이런 거지, 보면 그런대로 잘 생기지 않았어?”“헛소리 다했으면 빨리 꺼져.” 우문호는 약간 열이 나는듯 하고 전신에 힘이 없는 것이 이 말벌이 독하긴 독하구나 싶지만, 그래도 원경릉만큼 독하진 못하다.“별 일 없으면 왕야 식사 시중을 들고 싶은데. 직접 자소오리(紫蘇鴨子, 차조기 오리요리) 만들어 왔거든. 술도 한 병 곁들여서, 왕야 이리 와서 나랑 한 잔해.” 원경릉이 손을 뻗어 우문호를 부축했다.“건드리지 마!” 우문호는 손을 뿌리치며 노기충천해서, “너 이 독한 것아.”원경릉이 간절하게, “왕야는 통이 크니까 나처럼 이런 소녀랑 대결하지 말았어 야지. 이번 일은 확실히 내가 잘못했네, 숨지도 않고 소리도 지르지 말고 바닥에 조신하게 서있었어야 했는데, 말벌이 나를 쏘게, 아이고, 어쩌다 왕야를 쏴서, 진짜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지.”“너 지금 나 토해서 죽는 거 보고 싶은 거지?” 우문호가 몸을 돌려 단추구멍만 해진 눈을 겨우 뜨니 원경릉의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추는 표정이 보였다, “기회는 한 번, 말할 거야 말 거야? 안 할 거면 꺼져.”“술도 마시……”원경릉이 우문호의 얼굴을 보니 진짜 못났다, “됐다, 너 지금 얼굴 너무 심하게 부어서 술 못 먹겠어, 밥 먹자, 자소오리는 처음인데 냄새 진짜 죽이지 않아? 안심해. 나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그냥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게 방법은 아닌 거 같아서, 이 생활 계속 해야 하는 거잖아? 모름지기 인화가 중한 법이지.”이 말은 지극히 논리 정연하고 이치에 합당해서 맺혔던 마음도 풀리게 만들어 우문호마저 받아들이려고 한다.우문호 생각에도 줄곧 다투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인데, 심지어 예전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원경릉이랑 다투는 것이니 말해 뭐할까.게다가 그녀는 지금 그렇게 싫지도 않고, 어쩌면 각박하게
혜정후에 대해 듣게 되는 원경릉기왕 이렇게 된 이상 원경릉은 사양하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 “왕야한테 두 명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원경릉은 알고 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얕은 데에서 깊은 데로 들어가야 한다. 듣는 사람을 곤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본론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누구?” 우문호는 역시 반감을 나타내지 않는다.“소요공(逍遙公).”우문호의 안색이 약간 변하며, “그 두사람에 대해 물어봐서 뭐하게?”“태상황 폐하가 그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듣고, 그냥 호기심에.”“그 사람에 대해서는 나는 아는게 하나도 없으니, 물어봐도 소용없어.” 우문호가 싫은 얼굴로 말했다.원경릉은 약간 의혹이 드는 게, 이 소요공이란 사람은 전임 재상이 아닌가? 우문호가 어째서 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탕양이 옆에서 눈짓하는 것을 곁눈질로 본 원경릉은 자연스럽게 소요공이 우문호와 원한 관계였음을 알고, “그럼 됐어, 두번째 사람에 대해서 물어볼 게, 혜정후(惠鼎侯) 주대유(褚大有)는?”우문호는 미간을 찡그리는 것이겠지만 붉게 부어 오른 미간이 일순간 번질거리며, “그 사람?”“그 사람은 행동거지가 어때?” 원경릉이 우문호의 표정을 보고 좋은 대답이 나올 거 같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한 마디로, 악랄해!” 우문호는 차갑게 말했다.원경릉이 악랄이란 단어의 의미를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은 놀랍게도 우문호의 성격은 함부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고, 오직 원경릉에 대해서만 악독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혜정후에 대해 악랄하단 한 단어로만 표현해? 네가 진짜 얼마나 속 좁은 인간인지 알겠다.“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원경릉이 서둘러 말했다.“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거야?”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조금 망설이더니, “우리 아버지가 동생을 그 사람한테 시집 보낸데.”우문호가 당황했지만 곧 냉정하게: “그럼 이제 여동생 장사 지낼 일만 남았네.”원경릉이 너무
티격태격하는 원경릉과 우문호“왕야께서 그와 부딪히는 게 많아 결국 황제 폐하 앞에서 상황을 고하니, 폐하께서 조사를 분부하셨으나 오히려 그런 일이 없었던 것으로 되었습니다. 왕야는 이로 인해 황제 폐하께 심하게 질책을 당하셨는데, 군의 원수(元帥)를 무고한 죄였지요.” 탕양이 말했다.원경릉은 가슴을 부들부들 떨며, “그렇다면, 그가 살해한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전부 입다물게 했단 말이야?”“한 명만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삼방부인의 친정 아버지인, 육주(陸州) 지부(知府)로 삼방부인이 죽었을 때 마침 아버지 육지부(陸知府)가 수도에 있어 딸의 시체를 봤더니 전신에 상처가 나 있고,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한 데다가 뱃속에 아이가 있었는데 직접 때려서 유산을 시킨 것을 알았습니다. 육지부가 당연히 가만 있지 않고 이 일을 조사하려 했으나……”“결국?” 탕양이 갑자기 말을 멈추자 원경릉이 다급하게 물었다.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조사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육지부가 미쳤거든요.”원경릉은 전신이 덜덜 떨리고 전신의 모든 구멍에서 분노가 터져 나와 머리카락까지 쭈뼛하게 서는 기분이 들며, “아무도 변태를 고치지 못한 거야?”우문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도 심하게 맞긴 했지.”“누가 때렸어? 잘 때렸네.” 원경릉이 이를 갈며, “누가 왜 차라리 때려 죽이지?”“소요공!” 우문호가 원경릉을 흘끔 쳐다보고 말했다.“소요공?” 원경릉은 어안이 벙벙했다. 소요공은 나이가 많은데 과연 그를 심하게 때릴 수 있었을까? 힘과 권세! 원경릉은 소요공에게 꼭 인사 드리러 가겠다고 결심했다. 탕양이 말하길: “혜정후는 삼방부인이 죽은 뒤에 소요공의 조카 손녀와 결혼하고 싶다며, 심지어 주재상에게 중매를 부탁했지요. 혼담은 성사가 되었지만, 누가 알았겠습니까, 소요공이 이를 알고 용머리 지팡이로 혜정후를 심하게 팼는데, 혜정후가 삼일 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굉장히 잔인하게 때렸다고 합니다.”“용머리 지팡이? 이름은 굉장히 무시무시할
혜정후와의 결혼을 말리려 친정에 간 원경릉원경릉은 우문호의 약점이 뭐가 있는지 머리를 쥐어 짰다.맞아, 주명취. 하지만 이건 우문호의 역린(逆鱗)이기도 한데, 그의 약점을 틀어 쥠과 동시에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꼴이라 뒤끝이 장난 아닐 것 같다.“됐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고 안되면 내가 직접 혜정후를 만나면 될 거 아냐.” 원경릉은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우문호는 콧방귀를 뀌며, 원경릉이 직접 혜정후를 만난다고? 원경릉이 그럴 베짱이 있으면 내가 원경릉 노비다.우문호가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니라, 정후부가 감히 주씨 가문에 맞설 수 없다는 말이다.원경릉은 말이 떨어지자 마자 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라 다음날, 녹주를 시켜 혜정후에게 인사첩을 보냈는데, 혜정후는 왕비가 만나자는 요청을 거절한다는 직접적인 답장을 정후부에 보내지 않고, 혜정후가 요 며칠 집에 없다고 둘러서 말했다.녹주는 초왕부로 돌아와 화를 내며, 원경릉 앞에서: “혜정후도 마마님을 그다지 존중하질 않습니다. 분명히 집에 있었어요, 문지기가 가서 보고할 때 혜정후 대감이 마침 복도에 계신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녹주야, 말이 많구나!” 기상궁이 호통을 쳤다.원경릉은 아무렇지도 않게: “혜정후는 잘 나가는 후작이니, 거드름을 피우고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도 정상이지.”“헤정후 대감은 왕야마저도 업신여기는 거예요.”“그야 당연하지, 지난날 왕야도 휘하의 장수에 불과하지 않았느냐.” 지난날 아랫사람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게다가 그 아랫사람한테 미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원경릉은 속수무책이다.정상적인 혼인절차에 따라 혜정후가 정후부를 예를 갖춰 대한다면 어찌 장차 처형이 될 원경릉과 만나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그가 아예 문전박대 하는 것은 정후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표시다.바꿔 말해, 이 결혼은 대등하지 않다.“왕비 마마, 가서 정후 대감께 사정하시는 게 어떠세요?” 녹주가 말했다.“차라리 옥황상제에게 가서 사정하겠다!”
오빠 원륜문과 사촌 새언니 난씨의 입장원경릉이 미소를 띠고, “고마워요, 알려주시기 전엔 할머니를 찾아볼 생각을 못했어요.”하지만, 할머니를 누가 찾아 뵙는 걸 싫어한다고? 둘째 노마님이? 손녀가 병이 위중한 할머니를 찾아 문병하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황씨는 열 받아서 머리가 지끈거리며, “열 받아 죽겠네, 하나도 나아진 게 없어, 철이 없어.”원경릉은 어머니를 내버려두고 바로 나갔다.문을 나가다가 누군가와 거의 부딪힐 뻔 했다.원경릉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 몸을 세우고 앞에 선 사람을 쳐다보는데,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푸른 옷을 한 벌로 입은 잘 생긴 젊은 남자다.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며, “오빠!”이 사람은 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의 오빠 원륜문(元倫文)으로 서길사(庶吉士,한림원의 진사 벼슬 중 하나)다.전에는 가문의 자랑이었으나, 언사가 방자하다며 주씨 집안의 미움을 산 까닭에 지금은 한림원(翰林院)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한량이다.“천방지축으로 뭐하고 있어?” 원륜문이 엄숙하게 말했다.“일이 있어서, 실례해요.” 원경릉은 원씨 집안 사람들에게 호감도 없고, 원륜문이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내는 것도 귀찮다.안에서 황씨가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리자, 원륜문은 원경릉의 손목을 잡아 끌고, “너 또 왜 어머니를 화나게 했어?”“엄마가 화내는 걸 좋아하는 걸 어떡해.”“무례하게 굴지마라!” 원문륜은 얼굴을 굳히더니 호통을 쳤다.원경릉은 속으로 울화가 치미는데 황씨에게 화를 낼 수 없고, 마침 원륜문이 시체처럼 얼굴을 굳히자 화가 끓어올라, “무례한 게 무정한 것보다 나아.”“무정하다니?” 원문륜이 화를 냈다.“자기 친 딸을 혜정후같은 악인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는데 무정한 게 아니고 뭐야?” 원경릉이 차갑게 말했다.“누가 혜정후한테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데?” 원문륜은 얼굴색이 확 변했다.원경릉은 그를 보고, “오빠 몰랐어? 아버지가 둘째를 혜정후한테 시집 보낸데, 이 참에 주씨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고 싶으신 거지.”“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