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현비의 묘한 표정을 감지했다. 현재 태상황이 원경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현비와 정후부에서는 원경릉에게 별다른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뜻이 결코 그들이 그녀의 편이라는 것이 아니다. 주씨 가문이나 주명취가 나선다면 상황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게다가 우문호가 경조부윤을 맡게 되었다. 이는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을 던지는 꼴인데, 이 파장이 얼마나 거셀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명원제가 초왕인 우문호를 고깝게 보는 것은 궁 안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던 사실이다. 원래 이치대로라면 명원제는 절대 초왕에게 경조부윤이라는 중임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결정이 명원제의 뜻이 아닌 태상황이 뒤에서 힘을 쓴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지금 태상황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초왕비인 원경릉이었고, 그래서 그녀가 초왕을 경조부윤 자리에 올리기 위해 힘을 썼을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추측했다. 한순간에 눈엣가시였던 초왕이 황제의 총애를 얻게 되다니.‘만약 초왕이 황태자 자리에 오를 마음이 있다면?’우문호가 암살당할 뻔한 그날을 생각하니 원경릉은 소름이 끼쳤다.“본왕의 등을 좀 긁어줘라!” 옆에서 우문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등 뒤에 베개를 두고는 몸을 움직여 등을 긁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퉁퉁 부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혼자 긁어” 원경릉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우문호가 휘청거리며 두 손을 내밀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원경릉은 그의 얼굴을 보기만해도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두 손은 족발 같았다. 보아하니 옷으로 가려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벌에 쏘인 모양이다. ‘진짜 딱하네.’원경릉은 우문호가 꼴 좋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켠으로는 불쌍했다.“어디가 가려워?” 그녀는 손톱이 짧아서 옆에 있던 까끌한 천을 들어 그의 가려운 부분을 긁었다. “아니! 그냥 손을 넣어. 여기 옷깃 사이로!” 우문호가 몸을 베베꼬며 말했다.원경릉은 반쯤 무릎을 꿇고 일어나 그의 옷깃 사
원경릉이 옷깃에서 손을 확 빼내며 그를 밀쳤다. “뭐야!”“내가 뭘?”우문호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놀랐다. “네 얼굴!” 원경릉이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켰다. ‘와…… 우문호 이렇게 밝히는 남자였어?’그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네가 가까이 와서 그런거다. 나는 네가 민망할까봐 고개를 돌린 것 뿐이고”“그래서 내 잘못이라고?”“그럼 본왕의 잘못이라는 거냐? 내가 널 끌어당기기라도 했느냐?”그는 자세를 꼿꼿하게 고쳐세우며 “게다가 뭐가 대단하다고? 그리고 우리 사이에 다 봐놓고 뭘 그러느냐? 나도 뭐 딱히 네 몸과 닿고 싶지 않았어”라고 말했다.“이전엔 내가 당신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그런거고!’“누가 치료해 달라고 그랬어?”“진작에 내가 알아봤어야 했는데. 당신하고는 말이 안통해. 당신같은 종자는 자손이 끊겨야해!” 원경릉은 화가 나서 우문호에게 쏘아 붙였다. “너는 본왕의 왕비다. 내 자손이 끊기면, 너의 자손도 없는거야.”“나를 궁 밖으로 내쫓기로 우리 약속했잖아.” 원경릉이 그를 가만히 보았다.“너를 출궁하기 전에, 네가 부황에게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봐. 네가 일 년 안에 손자를 안겨드리겠다고 했던 말.”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일년. 변수가 너무 많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부황께 그렇게 말씀 드릴 필요가 없었는데.”우문호는 원경릉의 말을 듣고 마음 속에 울화가 치밀었다. 둘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멀리 떨어져 앉았다. 부중(府中)으로 돌아온 원경릉은 곧장 봉의각으로 돌아갔다. 원경병은 기상궁이 끓여준 팥죽을 먹고 있었는데, 원경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왜 지금에서야 오십니까?”“일이 좀 지체돼서……” 원경릉은 가만이 팥죽을 보았다. “상궁님 저도 한 그릇 주세요.”“무슨 일이 지체되었습니까?” 원경병이 물었다.“사소한 일입니다.” 원경릉은 원경병을 힐끗 보았다. 원경병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이 원경병이 원주(原主)를 많이 아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좀 똑부러지
“아버지가 혼사를 다 결정해놨다고? 왜 나는 그걸 몰랐지?” 원경릉이 경악을 금치못했다. 원경병은 막 열 다섯이 되지 않았는가? 이리 급히 혼사를 치른다고?“이미 내 사주팔자도 그 쪽으로 보냈다고 해요.”“누구한테?” 원경릉이 물었다.“주대유(褚大有)”“주대유가 누구야?”옆에 있던 기상궁이 “주수보에 조카입니다. 벌써 서른이 훌쩍 넘었다고 하는데, 이 전에 혼인한 세명의 정실(正妻)들이 다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고작 열 다섯 여자아이를 서른 중반의 남자한테 시집을 보낸다고? 말도 안돼!” 화난 원경릉의 손이 벌벌 떨렸다. 정후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딸을 이렇게 물건 넘기듯이 넘기려고 하다니!“아버지께서 말하길 나이가 많긴 하지만 이미 혜정후까지 봉해졌으니 우리 쪽보다는 귀한 신분이라고 하셨습니다.”“그래서 어쩌라고?” 원경릉이 화가 난듯 물었다.“어쩔 수 없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원경병이 고작 열 다섯살이라고 할지라도 집안 끼리의 혼인을 자신이 이래라 저래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원경릉이 기상궁에게 “혜정후는 인품이 어떱니까?” 라고 물었다.“왕비. 왕야께 물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왕야께서 열 다섯부터 혜정후를 따라 참전했고,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는 직접 전쟁에서 통솔하셨습니다.”원경릉이 원경병를 보며 “혜정후. 아마 진작 알아봤겠지?”라고 물었다.“알아봤죠. 무척 괴팍한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원경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원경릉은 원경병이 단순히 여기에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라 혼인을 피하기 위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열 다섯살. 고작 중학생 나이인데.정후는 자신의 앞길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이기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왕비께서 초왕의 총애를 얻어 아버지의 출세를 도왔더라면! 내가 혜정후에게 시집가지 않아도 됐습니다!” 원경병이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원경릉은 화가 나서 붉어질 것 같은 얼굴을 간신히 숨겼다.
우문호에게 아쉬운 소리해가며 부탁을 할 생각을 하니 원경릉은 내심 내키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순순히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우문호가 정후에게 혼사에 관해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정후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혼사를 막을지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 원경병은 생각은 단순하기 그지없구나.’허나 우문호가 마음먹고 도와준다면 그는 틀림없이 방법을 찾을 것이다.“우선 방에 들어가 쉬고, 이 일은 좀 더 생각해보는게 좋겠어.”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병은 괴로운 마음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원경병은 자신의 말을 원경병이 신경도 쓰지 않을 줄 알았다. 그저 모 아니면 도 라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구했을 뿐이다. 하지만 원경릉이 의외로 고민하는 듯 보이니 원경병도 내심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원경릉이 방금‘좀 더 생각해보자’라고 하니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었다.원경릉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본 적이 없었다. 이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혼인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말에 복종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초왕과 혼인을 했다. 혼인을 했다고 지금 초왕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나? 그것도 아니다.정후는 딸을 내세워 모험을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딸은 출세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는 옳지 않다. 모든 사람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게 이 시대의 여자라고 해도 말이다.지금 원경릉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녀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원망과 원한, 증오 뿐이다.원경릉이 무언가 결심한 눈빛을 기상궁을 보며 “왕야가 무엇을 즐겨 먹습니까?” 라고 물었다.“자소 오리” 기상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원경릉이 초왕에게 부탁을 하려는 건가?“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주세요.” 원경릉이 말했다.“왕비. 아무래도 이 일에 손을 떼시는 것이 좋겠어요. 왕비가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고, 만약 왕야께서 나서서 정후부에 찾아가 원경병의 혼사에 관여하게 되면 정후는 아마 초왕의 총애를 얻었다고
오리 요리로 청탁할 틈을 노리는 원경릉“보기엔 붓기가 가라앉았는데, “ 원경릉이 미소를 띄고 칭찬하며, “이 말 안 할 수가 없네, 왕야는 진심 잘 생겼다니까, 부어서 이런 거지, 보면 그런대로 잘 생기지 않았어?”“헛소리 다했으면 빨리 꺼져.” 우문호는 약간 열이 나는듯 하고 전신에 힘이 없는 것이 이 말벌이 독하긴 독하구나 싶지만, 그래도 원경릉만큼 독하진 못하다.“별 일 없으면 왕야 식사 시중을 들고 싶은데. 직접 자소오리(紫蘇鴨子, 차조기 오리요리) 만들어 왔거든. 술도 한 병 곁들여서, 왕야 이리 와서 나랑 한 잔해.” 원경릉이 손을 뻗어 우문호를 부축했다.“건드리지 마!” 우문호는 손을 뿌리치며 노기충천해서, “너 이 독한 것아.”원경릉이 간절하게, “왕야는 통이 크니까 나처럼 이런 소녀랑 대결하지 말았어 야지. 이번 일은 확실히 내가 잘못했네, 숨지도 않고 소리도 지르지 말고 바닥에 조신하게 서있었어야 했는데, 말벌이 나를 쏘게, 아이고, 어쩌다 왕야를 쏴서, 진짜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지.”“너 지금 나 토해서 죽는 거 보고 싶은 거지?” 우문호가 몸을 돌려 단추구멍만 해진 눈을 겨우 뜨니 원경릉의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추는 표정이 보였다, “기회는 한 번, 말할 거야 말 거야? 안 할 거면 꺼져.”“술도 마시……”원경릉이 우문호의 얼굴을 보니 진짜 못났다, “됐다, 너 지금 얼굴 너무 심하게 부어서 술 못 먹겠어, 밥 먹자, 자소오리는 처음인데 냄새 진짜 죽이지 않아? 안심해. 나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그냥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게 방법은 아닌 거 같아서, 이 생활 계속 해야 하는 거잖아? 모름지기 인화가 중한 법이지.”이 말은 지극히 논리 정연하고 이치에 합당해서 맺혔던 마음도 풀리게 만들어 우문호마저 받아들이려고 한다.우문호 생각에도 줄곧 다투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인데, 심지어 예전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원경릉이랑 다투는 것이니 말해 뭐할까.게다가 그녀는 지금 그렇게 싫지도 않고, 어쩌면 각박하게
혜정후에 대해 듣게 되는 원경릉기왕 이렇게 된 이상 원경릉은 사양하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 “왕야한테 두 명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원경릉은 알고 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얕은 데에서 깊은 데로 들어가야 한다. 듣는 사람을 곤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본론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누구?” 우문호는 역시 반감을 나타내지 않는다.“소요공(逍遙公).”우문호의 안색이 약간 변하며, “그 두사람에 대해 물어봐서 뭐하게?”“태상황 폐하가 그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듣고, 그냥 호기심에.”“그 사람에 대해서는 나는 아는게 하나도 없으니, 물어봐도 소용없어.” 우문호가 싫은 얼굴로 말했다.원경릉은 약간 의혹이 드는 게, 이 소요공이란 사람은 전임 재상이 아닌가? 우문호가 어째서 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탕양이 옆에서 눈짓하는 것을 곁눈질로 본 원경릉은 자연스럽게 소요공이 우문호와 원한 관계였음을 알고, “그럼 됐어, 두번째 사람에 대해서 물어볼 게, 혜정후(惠鼎侯) 주대유(褚大有)는?”우문호는 미간을 찡그리는 것이겠지만 붉게 부어 오른 미간이 일순간 번질거리며, “그 사람?”“그 사람은 행동거지가 어때?” 원경릉이 우문호의 표정을 보고 좋은 대답이 나올 거 같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한 마디로, 악랄해!” 우문호는 차갑게 말했다.원경릉이 악랄이란 단어의 의미를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은 놀랍게도 우문호의 성격은 함부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고, 오직 원경릉에 대해서만 악독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혜정후에 대해 악랄하단 한 단어로만 표현해? 네가 진짜 얼마나 속 좁은 인간인지 알겠다.“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원경릉이 서둘러 말했다.“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거야?”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조금 망설이더니, “우리 아버지가 동생을 그 사람한테 시집 보낸데.”우문호가 당황했지만 곧 냉정하게: “그럼 이제 여동생 장사 지낼 일만 남았네.”원경릉이 너무
티격태격하는 원경릉과 우문호“왕야께서 그와 부딪히는 게 많아 결국 황제 폐하 앞에서 상황을 고하니, 폐하께서 조사를 분부하셨으나 오히려 그런 일이 없었던 것으로 되었습니다. 왕야는 이로 인해 황제 폐하께 심하게 질책을 당하셨는데, 군의 원수(元帥)를 무고한 죄였지요.” 탕양이 말했다.원경릉은 가슴을 부들부들 떨며, “그렇다면, 그가 살해한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전부 입다물게 했단 말이야?”“한 명만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삼방부인의 친정 아버지인, 육주(陸州) 지부(知府)로 삼방부인이 죽었을 때 마침 아버지 육지부(陸知府)가 수도에 있어 딸의 시체를 봤더니 전신에 상처가 나 있고,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한 데다가 뱃속에 아이가 있었는데 직접 때려서 유산을 시킨 것을 알았습니다. 육지부가 당연히 가만 있지 않고 이 일을 조사하려 했으나……”“결국?” 탕양이 갑자기 말을 멈추자 원경릉이 다급하게 물었다.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조사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육지부가 미쳤거든요.”원경릉은 전신이 덜덜 떨리고 전신의 모든 구멍에서 분노가 터져 나와 머리카락까지 쭈뼛하게 서는 기분이 들며, “아무도 변태를 고치지 못한 거야?”우문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도 심하게 맞긴 했지.”“누가 때렸어? 잘 때렸네.” 원경릉이 이를 갈며, “누가 왜 차라리 때려 죽이지?”“소요공!” 우문호가 원경릉을 흘끔 쳐다보고 말했다.“소요공?” 원경릉은 어안이 벙벙했다. 소요공은 나이가 많은데 과연 그를 심하게 때릴 수 있었을까? 힘과 권세! 원경릉은 소요공에게 꼭 인사 드리러 가겠다고 결심했다. 탕양이 말하길: “혜정후는 삼방부인이 죽은 뒤에 소요공의 조카 손녀와 결혼하고 싶다며, 심지어 주재상에게 중매를 부탁했지요. 혼담은 성사가 되었지만, 누가 알았겠습니까, 소요공이 이를 알고 용머리 지팡이로 혜정후를 심하게 팼는데, 혜정후가 삼일 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굉장히 잔인하게 때렸다고 합니다.”“용머리 지팡이? 이름은 굉장히 무시무시할
혜정후와의 결혼을 말리려 친정에 간 원경릉원경릉은 우문호의 약점이 뭐가 있는지 머리를 쥐어 짰다.맞아, 주명취. 하지만 이건 우문호의 역린(逆鱗)이기도 한데, 그의 약점을 틀어 쥠과 동시에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꼴이라 뒤끝이 장난 아닐 것 같다.“됐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고 안되면 내가 직접 혜정후를 만나면 될 거 아냐.” 원경릉은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우문호는 콧방귀를 뀌며, 원경릉이 직접 혜정후를 만난다고? 원경릉이 그럴 베짱이 있으면 내가 원경릉 노비다.우문호가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니라, 정후부가 감히 주씨 가문에 맞설 수 없다는 말이다.원경릉은 말이 떨어지자 마자 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라 다음날, 녹주를 시켜 혜정후에게 인사첩을 보냈는데, 혜정후는 왕비가 만나자는 요청을 거절한다는 직접적인 답장을 정후부에 보내지 않고, 혜정후가 요 며칠 집에 없다고 둘러서 말했다.녹주는 초왕부로 돌아와 화를 내며, 원경릉 앞에서: “혜정후도 마마님을 그다지 존중하질 않습니다. 분명히 집에 있었어요, 문지기가 가서 보고할 때 혜정후 대감이 마침 복도에 계신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녹주야, 말이 많구나!” 기상궁이 호통을 쳤다.원경릉은 아무렇지도 않게: “혜정후는 잘 나가는 후작이니, 거드름을 피우고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도 정상이지.”“헤정후 대감은 왕야마저도 업신여기는 거예요.”“그야 당연하지, 지난날 왕야도 휘하의 장수에 불과하지 않았느냐.” 지난날 아랫사람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게다가 그 아랫사람한테 미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원경릉은 속수무책이다.정상적인 혼인절차에 따라 혜정후가 정후부를 예를 갖춰 대한다면 어찌 장차 처형이 될 원경릉과 만나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그가 아예 문전박대 하는 것은 정후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표시다.바꿔 말해, 이 결혼은 대등하지 않다.“왕비 마마, 가서 정후 대감께 사정하시는 게 어떠세요?” 녹주가 말했다.“차라리 옥황상제에게 가서 사정하겠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생각이 훨씬 개방적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기에 의식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도 아버지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대에서 한 번, 즉위 후에 또 한 번 의식을 치렀다.주 아가씨는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객사 일꾼에게 소식을 물었다.그러자 일꾼은 황제가 곧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혼례요? 정혼 아니었습니까?”“정혼? 정혼이라니? 그럼 이미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되었는데, 어찌 바로 혼례를 하지 않다는 것이냐?”“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정혼한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미래의 황후가 북당 사람이 맞느냐?”일꾼이 말했다.“예. 북당 출신의 아가씨라고 합니다. 게다가 황제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었습니다.“택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경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 은인의 언니라는 말을 믿다니 말이다.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녀와 혼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혼사를 어찌 장난처럼 다룰 수 있단 말인가?택란은 경천 황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저 정치적인 판단에서만큼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택란은 원래 이틀 정도만 량주를 둘러본 뒤 바로 궁으로 들어가 알현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혼례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며칠 더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궁으로 들어가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가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차리면, 정혼식을 진행할지 말지 애매해질 것이기에, 택란은 며칠 동안 객사에 머물며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그렇게 살펴보던 중, 주 아가씨가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안왕과 위왕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칠 동안 다른 나라 사절들은 계속 장관에 묵고 있었는데, 택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 무렵 장관으로 갔다.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이 이미 황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