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과 현비의 대결현비가 비릿한 웃음을 웃으며, “그래, 네가 무슨 착한 사람이겠어? 갖은 수단으로 명예나 추구하지. 문둥산 사람들을 위해 넌 나와 소씨 집안과 척을 졌지. 지금 소씨 집안에 일이 생겨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채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타 죽었는데 넌 왜 억울하다고 나서질 않느냐?”원경릉도 웃으며, “현비 마마, 천하의 모든 일은 이익이란 단어에서 못 벗어나는 법입니다. 문둥산 일은 저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니 전심전력을 다하지만, 소씨 집안은 수차례 저를 죽이려고 했는데 다 죽어도 시원찮 을 판에 뭐 때문에 제가 나서서 억울함을 호소합니까? 사람이 많이 죽지 않아 안타까울 뿐입니다.”황후와 귀비는 모두 놀라 자빠졌다. 태자비가 미쳤나? 현비는 지금 자극을 받으면 안되는데 이렇게 말한다는 건 현비를 완전히 더 미치고 돌게 만드는 거 잖아?현비가 이 말을 듣고 아니나 다를까 미친듯이 화가 치밀어 우문령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소리치길, “이리 와, 당장 이리 오지 못해?” 우문령은 고통으로 다시 소리를 지르며 현비를 잡자, 현비는 비녀로 휘젓는 우문령의 손에 몇 번 휙휙 그었더니 우문령이 고통으로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원경릉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갑게 웃으며, “제가 왜 가야 돼요? 마마께서 자기 딸을 죽이는데 저랑 무슨 상관이예요? 딱 제 생각이랑 맞네요. 제가 온 건 아바마마께서 제가 어린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는 걸로 보시게 연극한 거라고요. 죽이고 싶으면 죽이세요. 공주가 죽으면 전 새언니로 의무를 다해 지전을 많이 태울 게요.”황후가 노해서, “됐다, 태자비, 내가 널 입궁하라고 한 게 잘못이었구나.”귀비는 원경릉의 속뜻을 간파했다. 현비는 인질을 교환하는 걸 원하지 않을 게 분명한 것이 공주를 이용해 황제를 위협하고자 하기 때문으로 태자비를 오라고 한 건 태자비를 괴롭히려는 심산일 뿐이다. 방금 덕비처럼 말이다.그런데 태자비는 현비를 충동질해서 소씨 집안의 이익을 잊게 만들고 오직 원한에만 몰두해서 인질 교환을 이루려고 하고 있다
원경릉을 죽이려는 현비현비가 분이 치밀어 올라, “너만 아니었어도 소씨 집안이 오늘에 이르진 않았어, 설사 내가 소씨 집안을 구하지 못한다 해도 너랑 같이 지옥에 가서 우리 집안 사람들에게 조리돌림을 하겠어.”현비는 미친 사람처럼 원경릉을 자기 앞으로 끌고 와서 손을 마치 쇠로 된 집게처럼 앞에서 원경릉의 목을 누르고 비녀를 들고 원경릉의 등을 연속으로 몇 번이나 찌르는데 찌를 때마다 선혈이 나왔다.사람들이 보고 구하지도 못하고 모두 혼비백산했다. 황후가 귀비의 어깨를 부축하고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는데, “사람 죽네, 아이고 사람 죽네.”원경릉이 쓰러지며 눈가가 충혈되고 등허리의 격한 고통을 참으며 소매에서 바늘을 더듬어 현비의 한쪽 팔을 꽉 잡고 뒤로 비틀어 정맥을 만지더니 바로 마취주사를 찔렀다.원경릉이 숙련된 덕인지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순식간에 정맥 위치를 판단했다. 현비가 반응을 보이려 할 때 마취약이 이미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조용히 다섯까지 세자 등이 무겁다고 느껴지는 것이 현비가 그녀 뒤로 쓰러졌다.원경릉은 혼미한 가운데 사식이에게 일으켜져 경여궁 안으로 안겨 들어갔다. 게슴츠레 눈을 뜨자 사식이가 초조한 얼굴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어의는 어디 갔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다.뒤에 황후가 현비를 묶어 안으로 끌고 오라고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원경릉의 의식은 맑았지만 목 뒤에 통증이 너무 심했다. 그 와중에도 사식이에게 농담을 던지며, “내 등에 구멍이 일고여덟개는 뚫린 거 있지.”사식이가, “열두개요!”원경릉은 경여궁 사랑채에 안겨 들어와 또 엎드린 자세다. 한숨을 쉬며 통증은 줄어들지 않고 어지럽기 시작한 것이, “12개라고, 솜씨 대단하시네, 아이고, 또 엎드려 있네, 태자 전하께서 곤장 맞았을 때 같아.”말을 하고 있는데 눈이 감겼다. 두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고통으로 신음하며 울었다.사식이는 원경릉이 두려워하는 줄 알고 조용히 위로하며,
폭풍전야드디어 명원제가 왔다.어서방에서 세 시진을 고뇌한 끝에 최종적으로 황실 어른들과 대신들이 합의를 도출했다. 태자는 태후를 시해한 모친을 둬서는 안되나 예친왕이 최종적으로 내놓은 계책이 반드시 오늘 밤 이 일을 마무리 지어 내일 아침 조정에서 선포하면 조용히 입막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명원제가 어서방을 나오자마자 목여태감이 얼른 보고했더니 그제서야 화를 내며 사람을 데리고 경여궁으로 갔다.원경릉의 상처는 이미 처치를 마쳤고, 엄격하게 말하면 상처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통증은 어쩔 수 없다.문제의 비녀를 주워 탁자에 올려 두었는데 명원제가 격노해서 그것을 보니 익숙한 비녀인지라. 그 비녀는 바로 자신이 현비에게 준 것으로, 끝을 상당히 예리하게 갈은 것이 머리에 하는데 굳이 저렇게 갈 필요가 있을까, 현비는 누군가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걸까?명원제가 뒤져보게 하니 현비의 장신구 상자의 비녀는 거의 모두 이렇게 예리하게 갈려져 있었다.명원제는 현비를 죽여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 더이상 기다릴 수 없는 것이, 공주의 혼례가 8일 뒤 였기 때문이다.명원제는 그러나 바로 현비를 처분하지 않고 태자비를 위로하고 그녀를 건곤전에 가서 기다리게 했다.명원제는 황후, 귀비에게 벌을 내리며 두 사람이 후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으니 육궁을 협력하여 다스리는 권한을 잠시 덕비에게 맡기고 두 사람은 후궁의 어떤 일도 처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것이 일벌 백계라는 것을 알고, 황제도 사실 그들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속으론 현비가 이들을 끌어들인 것을 욕했다.명원제가 어서방으로 돌아가 우문 가문의 수장, 예부상서, 의례 총관을 같이 어서방으로 불러 알현하고 다음으로 태자를 오라고 해서 건곤전에서 기다리게 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입궁한 것을 전혀 모르다가 궁인이 와서 바로 입궁하라고 하니, 만아가 그제서야 궁에서 왔던 사람이 얘기한 사정을 우문호에게 알렸다.우문호가 마음을 다잡고 곧장 말을 달려 입궁했다.목여태감이 궁
결전의 날을 맞는 두 사람“응!” 우문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 조금 있다가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아마 폐 태자 건이겠지. 황후 마마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 아바마마께서 황실 어르신과 대신들을 소집해 회의를 하셨다더라.”우문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됐으니까 우린 그 일에 신경 쓰지 말자.”원경릉이 작게 한숨을 쉬며, “하지만…… 어마마마는…… 아바마마께서 쉽게 용서하시지 않을 지도.”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친은 황조모를 다치게 했고, 동생을 다치게 했고 이제 원경릉까지 다치게 했다. 화가 났다, 화가 치민다. 모친과 연을 끊을 수 없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모친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우문호는 결코 미워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우문호의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다.두 사람은 손을 잡고 앉아 아무 말 없지만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건 똑같다. 단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뿐이다.사식이도 나가고 빛은 어스름한 땅거미에 자리를 뺏기고 밖에 하나 둘 풍등이 켜지면서 창으로 빛이 스며든다.잠시 후 상선이 직접 궁인을 데리고 음식을 가져왔는데, 혈을 보해주는 탕이 있는 것이 태자비에게 마시라고 했다.원경릉은 먹고 싶지 않고, 우문호도 넘어가지 않지만 원경릉을 먹이려고 우문호가 음식을 나한상에 몇 개 올려 놨다.두 사람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마치 한 사람의 목숨을 끝내는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은 둘 다 미워하면서도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다.건곤전밖에 바람이 부는 소리에도 그들은 벌벌 떨었다.특히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누군가 와서 폐하께서 어명을 내려 이미 현비를 사사했다고 할 까봐 두려움에 떨었다.둘은 시간 문제일 뿐 조만간 있을 일임을 알고 있지만, 마음이 온통 거기에 쏠렸다.“어릴 때부터,” 우문호가 그릇을 내려놓고 말을 시작하는데, “어마마마는 나에게 형제 간에 우애가 있어야 한다, 어른을 존경해야 한
운명의 순간잠시 후 태상황이 들어와서 우문호는 얼른 원경릉을 부축해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태상황이 됐다며 앉더니, “둘 다 다쳤으니 다들 앉거라.”처연한 얼굴로 둘을 쳐다보고 태상황이, “과인도 많은 말 않겠다. 조금 있다가 황제가 너희들에게 조서를 발표할 텐데, 너희들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황제의 제안을 수락해야 한다. 대국이 중요하니 말이다.”우문호가 조용히, “폐 태자 건입니까? 손자는 바라고 있고 개의치 않습니다.”태상황이 기가 차서, “넌 개의치 않아도 사람들은 개의하지. 다른 사람이 개의하는 거면 네가 개의치 않아도 괜찮지 않은 거야. 네 아바마마가 오늘 중신을 소집해 상의한 것이 어떻게 하면 태자의 지위에 널 그대로 둘 수 있느냐 였다. 네 위치가 막중하니 다소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할 것이다.”우문호는 의외라, “절 폐하지 않는 것입니까?”그럼 다른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거지? 이 일은 감출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북당 태자의 생모가 태후를 시해한 비라니, 태자도 역모의 죄를 벗어날 수 없다.“네 아바마마의 뜻대로 처리하자. 과인의 뜻은 여전히 그것이다. 대국이 중요해!” 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태상황이 원경릉에게 부드러운 눈빛으로, “상처는 아직 아프냐?”원경릉이 불쌍하게, “아파요!”태상황이 입을 내밀고, “아프면 참아라, 과인에게 아프다고 해도 못 도와줘.”원경릉이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럼 왜 물어보는데?’태상황이 일어나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목여태감이 직접 와서 둘을 어서방으로 데려갔다.원경릉은 부축을 받으며 걷는데 상처가 등이지만 걸을 때 상처가 벌어지며 아프다.우문호도 비녀에 찔린 곳이 견갑골(肩胛骨) 위치라 원경릉의 고통을 알기에 원경릉을 보호하며 걸어갔다.어서방에 도착하자 우문령도 부축을 받고 와 있었다.우문령은 안색이 초췌하고 창백한데 우문호와 원경릉을 보더니 입술을 움찔거리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궁인들의 부축을 뿌리치고 우문호에게 달려와 가슴에 파묻혀 흐느끼며
대망의 발표위태부, 소요공, 주재상 세사람도 태자의에 앉아있고 모두 질서 정연하게 우문호 일행을 보고 있는 가운데, 명원제가 엄숙한 표정으로 가운데 앉아 있다.세 사람은 앞으로 나가 예를 취하고 자리에 앉았다.우문호는 이 상황을 보고 속으로 감이 와서 얼굴색이 변했지만 참고 침묵을 지켰다.명원제가 입을 열어, “요 며칠 궁에서 발생한 일은 짐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리라 믿네. 짐이 올해 상업을 크게 신장시키고 대주와의 상업 왕래를 촉진해 상업세를 다시 걷어 국고를 보충할 중차대한 시기로, 우리 북당은 향후 3~5년 사이 큰 변동을 겪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태자의 지위는 흔들려서는 안될 것 일세. 국본이 견고해야만 조정과 후궁에 분쟁이 없기 때문이지.”명원제의 목소리는 상당히 무기력하고 피곤해서 새해 초하루에서 지금까지 고작 육 칠일이 지났건만 아주 폭삭 늙은 것처럼 귀밑머리가 반백이 되었다.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이 느껴진다.“하지만,” 명원제가 말을 이어, “태자의 생모 현비가 덕을 잃어 작금에 태자의 지위에 대한 논쟁이 분분한 바 일세. 북당은 대대로 다음 군주를 세울 때 황자의 생모는 조건이 있네. 정결하고 현덕하며, 품행이 고결하여 향후 후궁이 내정에 간여하지 않고, 외척이 정치를 어지럽히지 않을 것을 보증해야 하지. 허나 태자의 생모 현비는 덕을 잃고 패악을 일삼아 그 행실이 인륜을 저버린 바 천하 어머니의 본으로 삼을 수 없음이라. 따라서 천자가 법을 어겨도 백성과 같은 죄로 다스리듯, 짐은 현비가 저지른 악행을 추궁할 것을 결정하고 누구든 이에 의의를 제기하거나 죄를 사해줄 것을 요구할 경우 같은 죄를 물을 것이다.”명원제가 이 말을 하고 우문호와 우문령을 흘깃 보니,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는데, “그러나 짐이 방금 말했듯 북당은 태자를 폐위할 수 없으므로, 짐이 황실의 어른 및 중신들과 상의한 결과 덕비에게 아이가 없으니 태자와 공주를 덕비의 양자로 들이게 하고, 덕비는 오늘부로 황귀비로 봉하여 황후를
운명의 밤어서방에서 딱 한 명이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다.바로 황후다.황후는 정말 생각치도 못했다. 겨우겨우 현비를 없앴더니, 덕비를 좋게 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비록 덕비와 좀더 잘 지내긴 했지만 후궁들 중에 덕비가 제일 박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오히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셈이 아닌가.‘현비야, 넌 정말 어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반편생을 고생해서 전부 덕비만 좋은 일 시켰어.’의식은 합덕전(合德殿)에서 거행되었는데 자녀가 절한 뒤, 덕비가 황귀비에 봉해져 황귀비의 첩지를 받았다. 황후는 이제 황귀비와 같이 서로 의지할 수 있으니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난다’고 하고, 황제의 정실 부인의 신분으로 우문호와 우문령 오누이는 황귀비를 효를 다해 섬기라고 훈시했다.우문호는 내내 목석처럼 가만 있어서 만약 원경릉이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제때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덕비의 눈엔 눈물이 어린 채 우문호를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더니, “태자는 옥체를 보중하시게.”우문호는 ‘예’하는데 마치 자기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텅텅 빈 소리가 났다.예식을 마치고 명원제는 경여궁으로 가고, 목여태감을 시켜 두 사람은 건곤전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우문호의 마음이 문득 아득해 지며 황제가 경여궁으로 갈 게 틀림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 큰 일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어마마마에게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꽉 잡고 건곤전 안으로 들어가자, 태상황도 아직 잠들지 않은 채 담배를 피우며 있고 안풍친왕은 가고 없다.태상황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 정신이 맑아지는 탕을 가져오게 해서 셋이 마셨다.다바오가 건곤전 밖에서 뛰어들어와 태상황의 발 아래 기어가자, 태상황이 담뱃대를 내려놓고 한 손으로 안아 올려 가슴에 안고 쓰다듬었다.모두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강아지 입에서 나오는 ‘헥헥’ 소리가 편안해 지는데, 다바오는 이내 잠들었다.태상황이, “올해가 지나가려면 아직 멀었나?”며칠, 불과 며칠이 일년 같다.우문령이
현비와 독대하는 명원제현비는 의자에 두 손을 뒤로 묶여 있는데 한동안 소란을 피우다가 결국 밧줄을 풀지 못한 채 전신에 힘이 하나도 없는 나머지 조용해 졌다. 명원제가 들어온 것을 보고 고개를 들어 산발한 머리에 음침한 표정으로 비웃음을 띠고, “폐하께서 드디어 납시셨군요.”명원제가 현비 맞은 편에 앉아 일 장 정도 거리를 두고 현비를 쳐다보는데 실망과 증오, 혐오가 가득한 눈빛이다.현비가 눈치채고 눈물을 떨구더니 오히려 웃으며, “폐하 신첩에게 실망하셨습니까? 하지만 폐하께서도 신첩을 실망시키셨습니다. 신첩이 폐하께 시집온지 이십 여년인데 폐하의 마음 속에 신첩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까?”현비는 콧소리가 심했는데 눈은 이미 빨갛게 부어서 마치 짓이겨 놓은 썩은 복숭아 같다.명원제가 입을 열어, “원래 다시는 자네를 보고싶지 않았으나 방금 자네 말 대로 이십 여년의 세월동안 이러구러 살아온 정이 있으니 역시 짐이 직접 자네에게 얘기하는 것이 마땅하겠어.”현비가 황제를 보고 미약하게, “폐하 만약 신첩을 죽이시려 거든 성지 한 줄이면 됩니다. 공주의 결혼이 끝나면 신첩 죽을 수 있습니다. 신첩이 이제 폐하와 담판을 할 자격도 없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오셨는지요?”“자네는 짐과 뭘 담판하고 싶었지?” 명원제의 눈빛이 냉담해 졌다.현비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눈빛으로, “신첩은 폐하께서 소씨 집안에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씨 집안은 날로 커지는데 소씨 집안은 날로 추락해 조정에 소씨 집안의 세력이 없습니다. 폐하, 소위 현명한 사람을 뽑을 때 피붙이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소씨 집안에 이토록 모질게 대하시는 지요?”“소씨 집안? 자네 마음 속엔 그저 소씨 집안 뿐이군. 자네 아들 딸은? 어찌 걔들에 대한 말 한마디가 없어?”“그들도 폐하의 아들 딸이니 폐하께서 당연히 소홀히 대하시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신첩이 못 마땅한 것은 신첩이 낳은 아이가 태자가 되었는데, 왜 폐하께서는 신첩의 신분을 올려주지 않으십니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