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비와 명원제의 마지막명원제가 계속, “그리고, 자네 머리로 짐이 왜 공주를 이리율과 짝지어 주려 하는지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자네는 한사코 혼사를 방해하고 반대했지. 짐이 시행하는 국책을 가로막고 결국엔 공주를 경여궁에서 인질로 잡기까지 마다치 않고 공주의 얼굴을 상하게 하고 태자비까지 다치게 했어. 마음으로도 입으로도 온통 소씨 집안 소씨 집안만 줄창 읊어 댄 주제에 어미로 낯짝을 들 수 없어 죽고 싶어야 마땅해.”“신첩이 어찌 공주를 다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현비가 고개를 저으며 통곡하는데 눈물이 빗물처럼 떨어지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은 불쌍하기 그지 없는데, “신첩이 공주를 잡고 있긴 했어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신첩 마음 속으로 소씨 집안을 생각했던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인과 효를 숭상하시지요, 그 중에 효가 먼저 아닙니까, 신첩은 효를 다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입니까?”“현비,” 명원제의 얼굴에 노기 외에 복잡한 심정이 지나가는데 어릴 때 부부가 되어 20여년을 함께 했다. 살아온 정이 있어 이렇게 만나러 온 것인데, 이런 모습을 보고 명원제는 고개를 흔들며, “자네는 효도를 했지. 그러나 오늘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데 소씨 집안에 누가 자네 때문에 괴로워 하나? 가슴 아파 하는 사람이 있어? 태후 마마를 시해했다는 소식이 궁밖으로 나간 뒤에 소씨 집안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도망갔어. 왜 도망갔는지 모르겠어? 현비 자네와 자기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연을 완전히 끊어버린 거야. 당신들이 전에 손잡고 얼마나 많은 불미스런 일을 저질렀어? 하지만 인과응보는 오늘 당신한테만 돌아오겠지. 자네의 효심이 참된 것이면 소씨 집안 가족들이 당신을 살려 달라고 구명 했어야 마땅해. 꽁지가 빠져라 내빼는 게 아니라. 반대로 자네가 희생으로 삼았던 아들과 딸은 지금 건곤전에서 자네 때문에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고 있어. 영이 우는 소리 안 들려? 영이는 오늘 하마터면 자네 손에 죽을 뻔 했어. 그런데도 자네는 입만 열면 소씨 집안
현비에게 가는 길우문령이 울며 와서, “어마마마께 먹을 것 좀 가져다 드릴 수 있어요? 종일 실랑이를 벌이느라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하셨어요.”목여태감이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가능하지요!”우문령이 서둘러 준비시키며 상처 난 몸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현비에게 뜨거운 밥을 해드리려고 분주하다.찬합이 준비되고 목여태감이 원경릉을 맞으러 와서, “태자비 마마 가시지요.”원경릉이 우문호를 보는데 마음이 너무 괴롭다. 우문호가 알고 있는 사실을 원경릉도 안다. 황제가 방금 현비를 만났는데, 현비 태도가 초지일관 나빴다면 태자비가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분명 현비의 태도가 바뀌어 혹시 뉘우치는 마음이 든 게 아닐까 황제가 특별히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원경릉은 현비가 너무 밉지만 현비가 죽으면 우문호가 슬퍼할 게 틀림없기 때문에 차라리 현비가 살아있는 게 백배 낫다. 왜냐면 현비가 살아 있어도 황제는 현비를 궁에 둘 리 없는 것이 어쨌든 모두 황귀비를 태자의 어머니로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끌어 안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걱정 말고.”우문호도 원경릉을 안아 주며 거의 애원하다시피, “자극……하지 마!”원경릉은 마음이 아파서 돌아서 눈물을 흘렸다.현비 넌 도대체 네 아들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셈이야?우문령은 계속 울며 따라가려 했지만 우문호에게 잡혀 우문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빠, 어떻게 해? 어떡해?”우문호가 우문령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며 암담한 눈빛으로, “전부 맡기는 수밖에.”밖은 추워서 원경릉은 나가자마자 벌벌 떨었고, 목여태감이 앞장 서는데 발걸음이 약간 휘청거렸다. 요 며칠 그렇게 많은 일이 터졌으니 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하다.건곤전을 나오는데 황귀비의 가마가 밖에 있고 황귀비도 서성이고 있는 것을 보니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목여태감이 원경릉에게, “방금 소인이 왔을 때도 황귀비께서는 여기 계셨습니다.”원경릉이 잠시 생각하더니, “태감, 잠시만 기다려줘요.”원경릉이 황귀비
경여궁에서원경릉은 황귀비가 정말 공주를 자기 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안다. 사실 이 일이 없었으면 어쩌면 감정이 더욱 순수했을 텐데 지금 총체적으로 복잡해지고 말았다.하지만 이 모든 건 황귀비와 상관없다. 황귀비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됐을 뿐이다.원경릉이 황귀비의 손을 맞잡고 작은 소리로, “태자 전하께서 곁에 계시니 안심하셔도 돼요. 돌아가서 쉬세요. 날이 추워서 감기 듭니다.”황귀비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목이 메이는지, “태자비, 믿어줘, 나도 폐하께서 선포하시기 전엔 몰랐어. 그때 사람이 그렇게 많아서 나도 거절할 수 없었던 거야, 무슨 영화를 탐해서가 아니라.”원경릉이 어찌 모를 수가 있나? 그래서 마음 놓으시라고, “쓸데없는 생각 마세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린 본심만 잘 지키면 되지요.”황귀비가, “반평생을 궁에서 지내며 많은 걸 봐와서 어미 신분으로 그들을 아낄 수 있기를 바랬고, 늘 그렇게 해왔는데 막상 이런 감투를 쓰고 나니 도리어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네.”원경릉이 가만 있었다.황귀비가 정신을 차리고,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인가?”원경릉이 목여태감을 바라보며 “경여궁에 가는 길입니다.”황귀비 안색이 살짝 변하며 알았다는 듯, “그래, 가보게.”원경릉이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목여태감을 따라 가는 길에 밤바람이 뼈속까지 스며들며 칼로 베는 듯 얼굴을 때렸다.궁 안은 근하신년이라고 여기저기 초롱을 달고 오색천으로 장식했는데, 칠흑 같은 어둠이 불빛에 조금씩 내몰리고 있으나 여전히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경여궁 입구에 도착하자 입구엔 침침한 붉은 등이 걸려 있고, 등불의 빛은 어둠에 삼켜진 듯 서서히 잠식당하면서 가냘프게 흔들린다.궁문 앞에는 철갑을 입은 금군이 서 있다. 손에 장검을 들고 두 줄로 서서 조각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심지어 눈썹조차 까딱하지 않은 채 차갑고 강경한 모습이다.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 선 궁인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전부
현비의 발악현비의 두 손은 더이상 뒤로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두 손을 쓸 수 있도록 풀어주었으나 두 다리와 몸은 여전히 의자에 묶여 있다.현비는 온 사람이 원경릉인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해서 차갑게, “폐하께서는 어찌 이리도 매정하십니까? 모자가 마지막으로 한 번 보겠다는 소원마저 저버리실 수가. 정말 너무 매정하시구나.”원경릉의 등이 이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막상 현비를 보니 상처가 벌어지는 고통이 느껴지며 천천히 걸어가 맞은 편에 앉았다. 이 의자는 방금 명원제가 앉았던 그 자리다.“아바마마께서,” 원경릉이 입을 열자 잔뜩 쉰 목소리가 갈라지며, “당신이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저더러 듣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말씀하세요. 한 마디 한 마디 그대로 태자에게 전하겠습니다. 절대로 감추지 않을 겁니다.”현비가 주먹으로 의자 팔걸이를 내리치며, “좋아, 그럼 가서 우문호에게 전해, 너 원경릉이 우리 모자를 갈라 놓고, 네가 날 죽였으니 우문호에게 너를 죽이라고 해.”원경릉은 현비의 증오에 가득한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마세요. 이 말 그대로 전하겠습니다.”“네가 감히 올 생각을 해? 왜 좋아 죽겠어? 소씨 집안과 내 지금 처지를 보니 기분 좋아?” 현비가 퉤하고 침을 뱉았으나 원경릉 발 앞에 떨어졌다. 현비가 뱉은 침에 핏줄이 섞인 것이 보인다.원경릉이 무릎의 옷 매무새를 고친 뒤 고개를 들고, “제가 기분 좋을 게 뭐가 있죠? 당신에게 일이 생기면 상처받는 사람은 태자와 공주예요. 저는 두 사람이 당신 때문에 상처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원경릉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목여태감의 냉정한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보아하니 현비의 광란을 막을 방법이 없다.그래도 원경릉은 시도해 보는데, “전에 제가 잘못했습니다. 여기서 당신께 사죄 드려요. 절 용서해 주세요.”현비가 부득부득 이를 갈며, “웃기고 있네, 한 마디도 못 믿어. 위선 떨지 마. 내가 우문호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 마디야, 가서 전해. 만약 여전히 낳고 키워준 정을
현비의 죽음원경릉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전 여기 남겠습니다. 남편을 대신해 마마를 보내 드리겠어요.”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 그러시지요, 하지만 곁에 다른 사람은 안됩니다.”밖에서 어떤 궁인이 붉은 등을 떼 내자 흑암이 순식간에 좌중을 석권해 원경릉은 순간 기절할 것 같아 기둥에 기댔다.구사가 원경릉의 곁을 지나가는데 마치 우문령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고, 우문호의 침통한 눈빛을 본 것처럼 가슴이 저릿했다.전신에 힘이 풀려 궁인이 와서 부축해 주지 않았으면 원경릉은 바닥에 털썩 주저 앉을 뻔 했다.구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현비는 질겁해서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태자를 만날 거야, 폐하를 만날 거야, 태후 마마를 만날 거야……”구사가, “마마, 하나를 고르시지요!”“싫어, 아직 15일이 안 됐어. 아직 공주 결혼식이 안 됐다고…… 공주는 모친상 기간에 시집을 갈 수 없어. 이 혼사는 저주받은 거야. 오지 마!” 현비의 목소리가 스산하고 처참한 것이 밤 하늘을 나는 부엉이처럼 절망의 빛을 띠었다.목여태감이, “현비 마마 걱정 마세요. 공주 마마는 이미 황귀비 마마를 모친으로 모셨습니다. 공주 마마께서 출가하실 때 당연히 모친의 축복을 받을 것이니 크게 복된 혼인입니다. 공주 마마는 행복하실 것이니 마마께서는 안심하시고 길을 떠나시지요.”원경릉이 천천히 안으로 돌아가 휘장 곁에 기대 현비가 미쳐 날뛰는 것을 봤다. 쟁반을 들어 엎고 독주를 쏟고 비수를 ‘챙강’ 바닥에 던졌는데, 유독 흰 비단만 바람에 날려 현비의 무릎에 말려 있었다. 미친 듯이 비단을 밀쳐내며 공포에 가득 찬 얼굴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목여태감이 얼른, “마마께서 흰 비단을 고르셨으니 소인이 마마를 도와드리겠습니다!”목여태감이 흰 비단을 펼치자 비단은 백사처럼 하늘로 올라가더니 대들보에 걸려 아래로 늘어뜨려 졌다. 목여태감이 비단을 걸고 매듭을 지었다.현비는 흰 비단을 죽어라 잡아 뜯으며 소리치는데, “우문호, 빨리 와, 저들이 어마마마를 죽이려 해. 어서
현비를 보내고원경릉이 얼른 손을 내밀어 우문호를 잡고 우문호도 원경릉의 팔을 잡고, “원 선생, 어마마마가 돌아가셨어.”원경릉이 우문호를 안고 울기 시작했다.우문호는 멍청히 목여태감과 구사를 보더니 원경릉을 안아 일어나서 낮은 목소리로, “어마마마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 싶어.”두 사람은 휘청거리며 들어갔다.바람이 경여궁 안으로 밀어닥쳐서 휘장이 하늘로 펄럭이고 얼굴과 몸을 때리며 ‘파바박’ 소리를 냈다.우문호가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데 호흡을 멈췄다가 다시 심호흡을 하는 것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것 같다.현비의 죽은 모습은 흉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살아있을 때보다 한참 침착해 보였다. 시체의 얼굴은 목여태감이 수습했고 눈은 감겨 있지 않지만 옷과 머리는 잘 가다듬어져 있다.우문호는 눈가가 흐려지며 손을 뻗어 현비의 얼굴을 만지고 두 손으로 현비의 눈을 가리더니 눈물이 얼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우문령이 울면서 뛰어들어와 현비의 몸에 달려들어 대성통곡했다.용화전.태후는 이미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 휘장을 열어젖히고, “누가 우느냐?”상궁이 달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태후 마마 우는 사람 없습니다. 악몽을 꾸신 것은 아니신 지요?”“현비였다. 현비가 울고 있었어.” 태후가 얼른 내려오려 했다.상궁이 부축하며 작은 소리로,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현비 마마께서 목을 매셨다고 합니다.”태후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하며 한참을 있다가, 침통한 눈물을 흘리며, “죽었느냐?”“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상궁이 말했다.태후가 숨이 안 쉬어지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죽었……구나. 죽었어. 산 사람은 덜 고통받겠지.” 태후가 침대에 누워 중얼거리는데 백발이 된 머리를 베개에 늘어뜨리고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어서방.목여태감이 돌아와 명을 수행했음을 보고했다.명원제는 엄숙한 표정으로 용상에 앉아 있는데 피곤한 기색이다.조용히 목여태감의 말을 듣더니 종이로 상소를 눌러 놓고 황
태자를 폐위하라목여태감은 마음이 아팠다. 황제 곁에 이렇게 오래 있다 보니 황제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가장 잘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황제가 얘기한 그대로 황제는 자신조차 매정하게 대해서 궁에 있는 그 누구보다 허름한 것을 먹고 마셨다. 그게 바로 수라를 늘 혼자 하는 이유다.나라의 대사를 위해서는 본인의 희로애락은 많은 경우에 감추지 않을 수 없다. 황제의 어깨엔 너무도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다.바람이 불어 황제의 탁자에 있던 화선지가 날아가고 명원제는 뭔가를 쓰려고 했으나 붓을 들고 한참을 있어도 결국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명원제는 경여궁 사람을 전부 바꿔서 현비가 죄를 짓고 죽었다고 해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황후와 황귀비는 짐작하고 있으나 감히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명원제는 비밀리에 장사를 지내고 대외적으로는 현비가 여전히 중병을 앓고 있으며 병세가 호전되지 않은 것으로 했다.정월 초여드레, 조정 아침회의가 열리고 아직 선포가 있기도 전에, 과연 어떤 사람이 앞장 서 상소를 올려 발의하길 태자의 생모가 불경하고 불효한 대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앞장 서 상소를 올린 사람은 바로 분수에 만족하며 한동안 자중하고 있던 기왕이다.기왕은 자신만만하게 경전을 인용하고 심지어 후궁과 외척의 난까지 언급하며 태자의 생모는 반드시 품행이 단정해야 하며, 명예를 실추시키는 요소가 혈통에 이어져 향후 황실의 계승자에게 영향을 주면 안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쌀쌀맞게, “소신은 북당 강산의 천만년 대계를 위해 아바마마께서 태자 우문호를 폐위 시키고, 다른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북당 황실의 혈통이 향후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울러 우문호가 경조사 부윤을 맡을 뒤로 범인을 오인한 사건이나 미결안이 많이 쌓인 것으로 볼 때, 중임을 담당할 역량이 부족함을 알 수 있으니 아바마마께서는 이점 숙고하여 주십시오.”기왕이 제기한 안건은 조정의 많은 대신들과 협의를 거쳤지만 동조하기 쉽지 않은 것이, 일단 혈통이
희비가 엇갈리는 여씨와 소씨덕비를 배출한 여씨 집안(汝家)사람들이 서둘러 무릎을 꿇고 성은에 감읍했다. 그들이 얼른 성은에 감사하기면 하면 누가 비난을 하던 황제의 결정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여씨 집안은 무장 출신의 무인들로 한동안 그래도 괜찮았던 것이 국경지대에 항상 작은 소요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난 2년간 물밑 충돌은 있었으나 표면적으론 평온해서 무장이 나설 일이 없는 지라 무능하게 이삼 년을 지내온 고로, 조정에서의 위치도 난감했는데 이제 덕비가 황귀비가 되었으니 태자도 자기 사람이 되었다. 기뻐서 웃다가 턱이 빠질 지경이다.기왕은 그 자리에서 바로 바보취급을 당했는데 아바마마께서 우문호를 덕비의 자식으로 삼으실 거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 그야 말로 청천벽력이었다.이런 편법이 과거에도 있긴 있었지만 서열이 낮은 황자들에게나 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총애하는 비빈이 아이가 없을 때 상대적으로 품계가 낮은 빈첩의 아이 중에 황자를 데려와 족보에서 비의 이름 아래 써서 황자의 신분을 높이고 비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일개 황자가 아닌 태자로 태자가 다른 비빈을 어머니로 삼다니 역시 역사상 유래가 없다.기왕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며 무의식적으로 안왕을 보니, 한가한 표정으로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고 있다. 어쩐지 안왕부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더라니. 그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아바마마의 냉정한 눈빛을 마주하고 기왕은 여전히 최후의 발악을 하는데, “현비 마마께서 아직 살아 계신데 태자가 어찌 다른 사람을 어머니로 모실 수가 있습니까?”아무도 기왕의 말을 받아 이어가지 않는 게 족보와 성지에 이미 다 기록이 되어 이 일은 이미 사실이지 상의할 문제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시화 된 것은 수정을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떠들어봤 자 속마음만 들킬 뿐이다.기왕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특히 아바마마의 그 냉정한 눈빛을 대하니 자신의 미래가 캄캄하게 느껴졌다.제일 즐거운 건 덕비의 아버지와 오빠들로
이 점에 대해 양여혜는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 전문가의 팀원들도 말한 적이 없었고, 그녀가 이전에 컴퓨터에서 봤던 데이터도 지금 노트의 데이터와 일치했다. 그러나 노트에는 찢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보아하니, 그녀는 다섯째의 병이 나은 뒤 다시 한번 돌아가 조사를 해야 할 듯했다.그래도 이번에 과다 투여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그녀가 물건을 정리하며 말했다."서일, 돌아가서 쉬거라. 마지막 일만 마무리하고 바로 궁으로 돌아갈 것이다.""예. 마마도 일찍 쉬세요!"서일은 나가는 김에 죽은 쥐를 처리하려 손을 뻗었다. 그는 어찌 사람보다 훨씬 작은 쥐로 약물 실험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곳의 의원은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약을 실험하고 있었다."다치지 말거라. 해부할 것이니!"원경릉은 즉시 그를 제지했다."해부요? 해부까지 해야 합니까?"서일은 쥐를 든 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죽은 것도 모자라 해부까지 하다니, 쥐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그래. 해부해야 한다."원경릉은 습관적으로 약상자에서 메스를 꺼내려 했으나, 약상자를 소월궁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서일에게 말했다."서일, 소월궁으로 가서 내 약상자를 가져 오너라. 절대 안에 있는 것을 건드리지 말거라. 알겠느냐?""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서일은 말하자마자 약상자를 가지러 소월궁으로 달려갔다.소월궁에 오자, 잠들어 있는 우문호의 모습을 보았다. 열 때문인지, 악몽을 꾸는 것인지 그는 얼굴을 찡그린 채 불편한 모습이었다. 목여 태감이 곁에서 지키며 이따금 따뜻한 수건으로 그의 이마를 닦아주고 있었다.서일은 발소리를 죽이고 약상자를 집어 들어 황급히 원경릉에게 전해주었다.약상자를 연 원경릉은 서일이 놓은 주사기를 보고 멈칫했다."어찌 주사기가 두 개인 것이냐? 하나만 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섯째에게 몇 대를 놓은 것이냐?""두 대요!"서일이 서둘러 말했다. 그러더니 약상자 속 주사기 위치를 가리키며 말했다."여기 하나 더 놓
"예!"서일은 주사기를 내려놓고는, 옆에 있던 또 다른 주사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하지만 방금 그 약과는 색이 다릅니다.""네가 무엇을 안다고 그러냐? 어떤 약은 색을 더하기도 한다. 붉은 약이나, 노란 약을 본 적 없는 것이냐? 전에 수보가 사용했던 약도 노란색이었다.""맞는 말씀입니다!"서일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주사를 놓았다. 그렇게 치료가 끝나자마자 우문호가 바로 눕고는, 다시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주사를 맞았으니, 조급히 올 필요 없다고 전하시게. 늦은 시각이라, 길도 어두울 텐데 서두르다 다칠라."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일에게 말했다."서 대인, 폐하를 잘 보살펴주시게. 바로 다녀오겠네."서일이 답했다."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더 빨리 다녀올 수 있습니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달려 나갔다.우문호는 약기운 때문인지 다행히 어지럼증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잠에 들었는데, 목여 태감은 여전히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옆을 지키며 안쓰럽게 바라보았다.그는 황제의 운명이 참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태상황을 모셨을 때, 태상황도 밤낮으로 정무를 처리하며 후궁 문제까지 챙겨야 했다. 지금의 황제는 후궁 걱정은 덜었지만, 조정의 관한 걱정은 끝이 없었다.목여 태감은 우문호의 창백하고 여윈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했다.목여 태감은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 명했다. 목여 태감은 그가 더 편히 잘 수 있도록 그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서일은 실험실로 향했는데, 원경릉이 모든 실험용 쥐를 다시 잡아 와 쥐들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었다. 서일이 들어오는 것을 본 후, 그녀가 노트를 내려놓고 물었다."곧 돌아가마. 다섯째는 어떠냐? 열은 내렸느냐?""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주사를 놓았으니 서두르지 않으셔도 된다고 폐하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서일이 약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주사를 놓았다고?"원경릉은 서일이 주사를 놓을 줄 알자, 조금 놀랐다."예. 주사 놓는
체온을 측정해 보니 무려 40도였다.“고열이오. 또 다른 증상은 없소?”원경릉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 병까지 든 다섯째가 안쓰러워졌다.우문호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소. 그저 재채기 몇 번에 조금 어지럽고, 코가 막히며 목이 약간 찌릿한 정도네. 별일 아니네.”원경릉은 서둘러 청진기를 꺼내 심장과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비를 맞아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듯했고,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다.그녀가 말했다.“해열제를 먼저 먹고 주사를 맞은 후, 푹 자고 나면 내일 괜찮아질 것이오.”그녀는 해열제를 찾아내자, 서일이 바로 물을 준비해 왔다. 우문호는 해열제를 삼킨 뒤, 바로 물을 마셨다.이는 그가 약을 먹을 때 늘 하는 습관이었다.원경릉은 주사기를 꺼내 약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사기를 손에 들자마자, 우문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꼭 이걸 맞아야 하오?”“주사를 맞으면 빨리 낫습니다. 바쁘다 하지 않았소?”원경릉이 부드럽게 그를 달랬다. 우문호는 약은 한 움큼씩 먹을 수 있는 반면, 주사는 몹시 무서워했다.옆에서 서일도 말을 보탰다.“아프지 않습니다. 금방 끝날 겁니다.”“근육 주사가 제일 빠르오. 정말 안 아플 거라네.”원경릉이 웃으며 덧붙였다.우문호는 바쁜 나랏일을 떠올리며 더 이상 아프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주사의 아픔을 참기만 하면 내일 나은 몸으로 조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좋소. 그럼 빨리 낫게 두 대 놓으시게!”우문호가 용기를 내어 웃으며 말했다.“마마…!“그때 밖에서 녹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쥐들이 갑자기 우리를 부수고 탈출했습니다. 궁녀를 시켜 잡았지만, 두 마리나 놓쳐 버렸습니다.”원경릉은 쥐들이 대나무 우리를 부술 정도로 강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급히 주사기를 약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다섯째, 조금 있다가 돌아와서 다시 주사 놓겠소.”그러자 우문호
이 약은 사실 원경릉이 맡은 프로젝트가 아닌, 그녀의 실험실에 있던 다른 전문가팀이 진행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전문가가 뜻밖의 사고로 행방불명이 되면서 양여혜가 그녀에게 팀을 이끌고 연구를 이어가도록 했다.원경릉은 연구 단계에 처한 약을 약상자에 넣어 가져온 후 실험용 쥐에게 주사했다. 그녀는 궁에 간단한 실험실을 마련해 실험용 쥐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기본적인 작업을 했다. 하지만 심도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현대로 돌아가야만 했다.부부는 각자의 일로 바삐 보내며, 이삼일 동안 식사도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전형적인 바쁜 부부의 모습이었다.며칠 밤을 상의한 끝에 우문호는 과거시험 문제를 정하고 주 시험관을 명했다. 그리고 천제를 올려, 이번 과거시험에서 나라에 유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늘에 기원했다.그렇게 천제 의식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의식은 중단되었다. 제단 위에 있는 우문호와 대신들은 비에 흠뻑 젖었지만, 의식을 끝까지 마쳐야 했다. 천제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비를 맞은 탓에 연신 재채기 했다.그는 궁으로 돌아가자마자 녹주가 끓여준 생강차를 연거푸 두 그릇 마셨다. 원경릉이 아직 돌아오지 않자, 우문호는 다시 어서방으로 가서 내각에서 올린 상소문을 검토했다. 내각에서 올리는 상소문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일반적인 문제는 냉정언이 먼저 확인한 후, 바로 처리했다.자시까지 바삐 보내고 난 후, 우문호는 몸 상태가 점점 이상하고 어지럽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문턱에 앉아서 졸고 있는 목여 태감을 보며,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버거움을 느꼈다.황위에 오른 후, 우문호는 거의 아픈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달아 밤을 새우고 비까지 맞은 데다 환절기에 찬바람을 맞으니 감당하기에 더욱 어려웠다.하지만 우문호는 일을 마저 처리하려 억지로 애를 썼다.목이 조금 말랐지만, 목여 태감을 깨우기 귀찮아진 그는 차갑게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을 이어갔다. 상소문을 보자마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물었다.“참, 아이들과 그룹… 채팅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계란이가 이 일을 안다고 한 적 있소?”“우린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소.”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나도 들어갈 수 있소?”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 안 될 것이오. 그룹 채팅은 단지 별칭일 뿐, 당신이 현대에서 본 통신 앱과 같은 것이 아니오. 우리는 의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라, 당신은 함께할 수 없소.”“그렇군.”우문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원경릉은 그가 조금 서운해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를 안고 말했다.“당신도 참. 지금까지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당신한테 숨긴 적 없이 모두 말해줬으니,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계란이가 모르고 있다가 속상해할까 봐 걱정되는 것 뿐이라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시오. 계란이는 아직 사내를 좋아할 나이가 아니오.”우문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의 노파심으로 인해 작은 문제도 크게 보기 마련이었다.이 드넓은 세상을 아이들이 마음껏 탐험하는 것은 괜찮지만, 혹여나 아이들이 속상해할까 봐 늘 걱정이었다.한편, 요즘 다섯째는 과거시험으로 인해 바쁜 일상에 조금 지쳐 있었다.과거 시험장은 항상 부정행위로 난무하는 곳이었다. 과거로 인재를 등용하려는 조정의 목적과 달리, 일부 관리들은 그저 돈 벌 기회로 여길 뿐이었다.그래서 지금 주 시험관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지난해까지는 냉 수보가 항상 주 시험관을 맡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시험관들의 부정행위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이 일로 우문호는 3년에 한 번씩 화를 내곤 했다.올해 냉 수보는 주 시험관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겠다고 말하고 이 직책을 내려놓았다.최근 새로운 세금 제도를 추진하느라 바쁜 터라, 주 시험관직까지 겸할 시간이 없었다. 이에 우문호가 직접 시험관 선발 과정을 엄격히 관리하기로 했다.북당
택란은 순간 단순히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보답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린 황제는 어린 시절부터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기에, 란이라는 자의 언니와 몇 년을 함께 보내며 정이 생겼을 가능성이 충분했다.어쨌든, 단순히 은혜를 갚기 위해 은인의 언니와 결혼하는 것은 말이 안 되었고, 다소 억지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왜 그 란이라는 사람이 정말 자신의 은인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사람을 데려갔을지도 의문이었다. 어쩌면 일을 맡은 부하가 임무를 대충 하며 거짓말을 꾸며냈으니, 어린 황제가 그 란이라는 사람에 대한 은혜 때문에 섣불리 믿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어린 시절의 감정이 가장 순수한 법이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오직 발전만을 목표로 합니다!”주 아가씨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감정 문제는 공주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아직 어리기도 하기에 혼담은 스무 살까지 미뤄도 늦지 않았다. 아니면 그녀처럼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한편,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냉명여가 짐을 싸는 택란을 보며 물었다.“누나, 멀리 가는 것입니까?”“금국 량주에 다녀오려고 한다.”택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싸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그러자 냉명여의 눈이 반짝였다.“량주요? 그럼 나도 데려가면 안 됩니까? 량주에 변신술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가고 싶으냐? 그래.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말을 잘 들어야 한다!”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잘 듣겠습니다! 꼭 약속하지요!”냉명여가 급히 다짐했다.“좋다. 그럼 가서 짐을 싸거라. 내일 출발할 것이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택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냉명여는 기쁜 얼굴로 쏜살같이 방으로 달려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때, 이를 본 주 아가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데려간다니요? 아직 어린아이인데… 귀찮게 굴지 않을까요?”“괜찮소. 지금 아직 어리니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해야 하오. 계속 저택 안에만 두면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는 아이로 자랄 뿐이네. 그건 냉 대인과 홍엽 아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