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비를 만나러 간 원경릉원경릉이 바로 나가서 궁에서 온 사람을 보고 상황을 물어본 뒤 만아에게 분부하길, “이 일은 일단 태자전하께 알리지 말고, 나는 사식이와 입궁하마.”사식이는 오늘 막 원씨 집안에서 설을 보내고 돌아왔다가 이 일을 만나 상당히 긴장했다.사식이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니 태자전하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그럴 필요 없어, 태자 전하는 서재에서 이리 나리와 얘기 중이니 차분히 계시도록 하자.”이 일을 만약 우문호가 안다면 궁으로 달려가 더욱 어지러워질 가능성이 크다.원경릉은 현비가 뭘 하고 싶은 지 알았다.원경릉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만아에게 당부하길, 만약 태자 전하께서 자기가 어디 있는지 찾으시면 정후부에 할머니를 보러 갔다고 하라고 했다.원경릉은 마차에서 약 상자를 열었는데 마취약이 준비되어 있었다.이건 효과가 짧은 정맥 마취제로 대체로 낙태에 사용되는데 5초면 마취가 되고 5분에서 8분이면 깨어나니 시간은 충분하다.주사바늘에 고무마개를 씌우고 소매속에 감췄다. 현비가 뭘 하려는 지 원경릉은 대략 명확했다.현비는 자기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소씨 집안을 싸고 도는 성격을 보아하니 분명히 목숨을 걸고 소씨 집안에 은덕을 베풀어 주길 바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에게 엄청난 증오를 품고 있으므로 죽기 전에 당연히 원경릉을 상대하고 싶겠지. 그래서 우문령을 인질로 원경릉을 입궁 시키려는 것이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못 할 게 없다.마차가 궁에 들어서자 마자 바로 경여궁으로 가는데 두번째 궁문을 지나자 마차는 더이상 들어갈 수 없어 원경릉은 마차에서 내려 뛰어갔다.경여궁 앞에 도착해 원경릉은 사식이에게 뒤쪽으로 담을 넘어 들어가 기회를 봐서 현비 앞에 달려들라고 했다.원경릉은 경여궁에 들어가기 전 옷 매무새를 고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귓가에 우문령이 쉰 목소리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미 상당히 미약하다.마당에 들어가자 황후와 귀비가 원경릉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일제
원경릉과 현비의 대결현비가 비릿한 웃음을 웃으며, “그래, 네가 무슨 착한 사람이겠어? 갖은 수단으로 명예나 추구하지. 문둥산 사람들을 위해 넌 나와 소씨 집안과 척을 졌지. 지금 소씨 집안에 일이 생겨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채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타 죽었는데 넌 왜 억울하다고 나서질 않느냐?”원경릉도 웃으며, “현비 마마, 천하의 모든 일은 이익이란 단어에서 못 벗어나는 법입니다. 문둥산 일은 저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니 전심전력을 다하지만, 소씨 집안은 수차례 저를 죽이려고 했는데 다 죽어도 시원찮 을 판에 뭐 때문에 제가 나서서 억울함을 호소합니까? 사람이 많이 죽지 않아 안타까울 뿐입니다.”황후와 귀비는 모두 놀라 자빠졌다. 태자비가 미쳤나? 현비는 지금 자극을 받으면 안되는데 이렇게 말한다는 건 현비를 완전히 더 미치고 돌게 만드는 거 잖아?현비가 이 말을 듣고 아니나 다를까 미친듯이 화가 치밀어 우문령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소리치길, “이리 와, 당장 이리 오지 못해?” 우문령은 고통으로 다시 소리를 지르며 현비를 잡자, 현비는 비녀로 휘젓는 우문령의 손에 몇 번 휙휙 그었더니 우문령이 고통으로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원경릉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갑게 웃으며, “제가 왜 가야 돼요? 마마께서 자기 딸을 죽이는데 저랑 무슨 상관이예요? 딱 제 생각이랑 맞네요. 제가 온 건 아바마마께서 제가 어린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는 걸로 보시게 연극한 거라고요. 죽이고 싶으면 죽이세요. 공주가 죽으면 전 새언니로 의무를 다해 지전을 많이 태울 게요.”황후가 노해서, “됐다, 태자비, 내가 널 입궁하라고 한 게 잘못이었구나.”귀비는 원경릉의 속뜻을 간파했다. 현비는 인질을 교환하는 걸 원하지 않을 게 분명한 것이 공주를 이용해 황제를 위협하고자 하기 때문으로 태자비를 오라고 한 건 태자비를 괴롭히려는 심산일 뿐이다. 방금 덕비처럼 말이다.그런데 태자비는 현비를 충동질해서 소씨 집안의 이익을 잊게 만들고 오직 원한에만 몰두해서 인질 교환을 이루려고 하고 있다
원경릉을 죽이려는 현비현비가 분이 치밀어 올라, “너만 아니었어도 소씨 집안이 오늘에 이르진 않았어, 설사 내가 소씨 집안을 구하지 못한다 해도 너랑 같이 지옥에 가서 우리 집안 사람들에게 조리돌림을 하겠어.”현비는 미친 사람처럼 원경릉을 자기 앞으로 끌고 와서 손을 마치 쇠로 된 집게처럼 앞에서 원경릉의 목을 누르고 비녀를 들고 원경릉의 등을 연속으로 몇 번이나 찌르는데 찌를 때마다 선혈이 나왔다.사람들이 보고 구하지도 못하고 모두 혼비백산했다. 황후가 귀비의 어깨를 부축하고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는데, “사람 죽네, 아이고 사람 죽네.”원경릉이 쓰러지며 눈가가 충혈되고 등허리의 격한 고통을 참으며 소매에서 바늘을 더듬어 현비의 한쪽 팔을 꽉 잡고 뒤로 비틀어 정맥을 만지더니 바로 마취주사를 찔렀다.원경릉이 숙련된 덕인지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순식간에 정맥 위치를 판단했다. 현비가 반응을 보이려 할 때 마취약이 이미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조용히 다섯까지 세자 등이 무겁다고 느껴지는 것이 현비가 그녀 뒤로 쓰러졌다.원경릉은 혼미한 가운데 사식이에게 일으켜져 경여궁 안으로 안겨 들어갔다. 게슴츠레 눈을 뜨자 사식이가 초조한 얼굴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어의는 어디 갔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다.뒤에 황후가 현비를 묶어 안으로 끌고 오라고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원경릉의 의식은 맑았지만 목 뒤에 통증이 너무 심했다. 그 와중에도 사식이에게 농담을 던지며, “내 등에 구멍이 일고여덟개는 뚫린 거 있지.”사식이가, “열두개요!”원경릉은 경여궁 사랑채에 안겨 들어와 또 엎드린 자세다. 한숨을 쉬며 통증은 줄어들지 않고 어지럽기 시작한 것이, “12개라고, 솜씨 대단하시네, 아이고, 또 엎드려 있네, 태자 전하께서 곤장 맞았을 때 같아.”말을 하고 있는데 눈이 감겼다. 두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고통으로 신음하며 울었다.사식이는 원경릉이 두려워하는 줄 알고 조용히 위로하며,
폭풍전야드디어 명원제가 왔다.어서방에서 세 시진을 고뇌한 끝에 최종적으로 황실 어른들과 대신들이 합의를 도출했다. 태자는 태후를 시해한 모친을 둬서는 안되나 예친왕이 최종적으로 내놓은 계책이 반드시 오늘 밤 이 일을 마무리 지어 내일 아침 조정에서 선포하면 조용히 입막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명원제가 어서방을 나오자마자 목여태감이 얼른 보고했더니 그제서야 화를 내며 사람을 데리고 경여궁으로 갔다.원경릉의 상처는 이미 처치를 마쳤고, 엄격하게 말하면 상처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통증은 어쩔 수 없다.문제의 비녀를 주워 탁자에 올려 두었는데 명원제가 격노해서 그것을 보니 익숙한 비녀인지라. 그 비녀는 바로 자신이 현비에게 준 것으로, 끝을 상당히 예리하게 갈은 것이 머리에 하는데 굳이 저렇게 갈 필요가 있을까, 현비는 누군가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걸까?명원제가 뒤져보게 하니 현비의 장신구 상자의 비녀는 거의 모두 이렇게 예리하게 갈려져 있었다.명원제는 현비를 죽여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 더이상 기다릴 수 없는 것이, 공주의 혼례가 8일 뒤 였기 때문이다.명원제는 그러나 바로 현비를 처분하지 않고 태자비를 위로하고 그녀를 건곤전에 가서 기다리게 했다.명원제는 황후, 귀비에게 벌을 내리며 두 사람이 후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으니 육궁을 협력하여 다스리는 권한을 잠시 덕비에게 맡기고 두 사람은 후궁의 어떤 일도 처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것이 일벌 백계라는 것을 알고, 황제도 사실 그들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속으론 현비가 이들을 끌어들인 것을 욕했다.명원제가 어서방으로 돌아가 우문 가문의 수장, 예부상서, 의례 총관을 같이 어서방으로 불러 알현하고 다음으로 태자를 오라고 해서 건곤전에서 기다리게 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입궁한 것을 전혀 모르다가 궁인이 와서 바로 입궁하라고 하니, 만아가 그제서야 궁에서 왔던 사람이 얘기한 사정을 우문호에게 알렸다.우문호가 마음을 다잡고 곧장 말을 달려 입궁했다.목여태감이 궁
결전의 날을 맞는 두 사람“응!” 우문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 조금 있다가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아마 폐 태자 건이겠지. 황후 마마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 아바마마께서 황실 어르신과 대신들을 소집해 회의를 하셨다더라.”우문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됐으니까 우린 그 일에 신경 쓰지 말자.”원경릉이 작게 한숨을 쉬며, “하지만…… 어마마마는…… 아바마마께서 쉽게 용서하시지 않을 지도.”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친은 황조모를 다치게 했고, 동생을 다치게 했고 이제 원경릉까지 다치게 했다. 화가 났다, 화가 치민다. 모친과 연을 끊을 수 없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모친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우문호는 결코 미워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우문호의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다.두 사람은 손을 잡고 앉아 아무 말 없지만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건 똑같다. 단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뿐이다.사식이도 나가고 빛은 어스름한 땅거미에 자리를 뺏기고 밖에 하나 둘 풍등이 켜지면서 창으로 빛이 스며든다.잠시 후 상선이 직접 궁인을 데리고 음식을 가져왔는데, 혈을 보해주는 탕이 있는 것이 태자비에게 마시라고 했다.원경릉은 먹고 싶지 않고, 우문호도 넘어가지 않지만 원경릉을 먹이려고 우문호가 음식을 나한상에 몇 개 올려 놨다.두 사람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마치 한 사람의 목숨을 끝내는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은 둘 다 미워하면서도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다.건곤전밖에 바람이 부는 소리에도 그들은 벌벌 떨었다.특히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누군가 와서 폐하께서 어명을 내려 이미 현비를 사사했다고 할 까봐 두려움에 떨었다.둘은 시간 문제일 뿐 조만간 있을 일임을 알고 있지만, 마음이 온통 거기에 쏠렸다.“어릴 때부터,” 우문호가 그릇을 내려놓고 말을 시작하는데, “어마마마는 나에게 형제 간에 우애가 있어야 한다, 어른을 존경해야 한
운명의 순간잠시 후 태상황이 들어와서 우문호는 얼른 원경릉을 부축해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태상황이 됐다며 앉더니, “둘 다 다쳤으니 다들 앉거라.”처연한 얼굴로 둘을 쳐다보고 태상황이, “과인도 많은 말 않겠다. 조금 있다가 황제가 너희들에게 조서를 발표할 텐데, 너희들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황제의 제안을 수락해야 한다. 대국이 중요하니 말이다.”우문호가 조용히, “폐 태자 건입니까? 손자는 바라고 있고 개의치 않습니다.”태상황이 기가 차서, “넌 개의치 않아도 사람들은 개의하지. 다른 사람이 개의하는 거면 네가 개의치 않아도 괜찮지 않은 거야. 네 아바마마가 오늘 중신을 소집해 상의한 것이 어떻게 하면 태자의 지위에 널 그대로 둘 수 있느냐 였다. 네 위치가 막중하니 다소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할 것이다.”우문호는 의외라, “절 폐하지 않는 것입니까?”그럼 다른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거지? 이 일은 감출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북당 태자의 생모가 태후를 시해한 비라니, 태자도 역모의 죄를 벗어날 수 없다.“네 아바마마의 뜻대로 처리하자. 과인의 뜻은 여전히 그것이다. 대국이 중요해!” 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태상황이 원경릉에게 부드러운 눈빛으로, “상처는 아직 아프냐?”원경릉이 불쌍하게, “아파요!”태상황이 입을 내밀고, “아프면 참아라, 과인에게 아프다고 해도 못 도와줘.”원경릉이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럼 왜 물어보는데?’태상황이 일어나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목여태감이 직접 와서 둘을 어서방으로 데려갔다.원경릉은 부축을 받으며 걷는데 상처가 등이지만 걸을 때 상처가 벌어지며 아프다.우문호도 비녀에 찔린 곳이 견갑골(肩胛骨) 위치라 원경릉의 고통을 알기에 원경릉을 보호하며 걸어갔다.어서방에 도착하자 우문령도 부축을 받고 와 있었다.우문령은 안색이 초췌하고 창백한데 우문호와 원경릉을 보더니 입술을 움찔거리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궁인들의 부축을 뿌리치고 우문호에게 달려와 가슴에 파묻혀 흐느끼며
대망의 발표위태부, 소요공, 주재상 세사람도 태자의에 앉아있고 모두 질서 정연하게 우문호 일행을 보고 있는 가운데, 명원제가 엄숙한 표정으로 가운데 앉아 있다.세 사람은 앞으로 나가 예를 취하고 자리에 앉았다.우문호는 이 상황을 보고 속으로 감이 와서 얼굴색이 변했지만 참고 침묵을 지켰다.명원제가 입을 열어, “요 며칠 궁에서 발생한 일은 짐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리라 믿네. 짐이 올해 상업을 크게 신장시키고 대주와의 상업 왕래를 촉진해 상업세를 다시 걷어 국고를 보충할 중차대한 시기로, 우리 북당은 향후 3~5년 사이 큰 변동을 겪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태자의 지위는 흔들려서는 안될 것 일세. 국본이 견고해야만 조정과 후궁에 분쟁이 없기 때문이지.”명원제의 목소리는 상당히 무기력하고 피곤해서 새해 초하루에서 지금까지 고작 육 칠일이 지났건만 아주 폭삭 늙은 것처럼 귀밑머리가 반백이 되었다.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이 느껴진다.“하지만,” 명원제가 말을 이어, “태자의 생모 현비가 덕을 잃어 작금에 태자의 지위에 대한 논쟁이 분분한 바 일세. 북당은 대대로 다음 군주를 세울 때 황자의 생모는 조건이 있네. 정결하고 현덕하며, 품행이 고결하여 향후 후궁이 내정에 간여하지 않고, 외척이 정치를 어지럽히지 않을 것을 보증해야 하지. 허나 태자의 생모 현비는 덕을 잃고 패악을 일삼아 그 행실이 인륜을 저버린 바 천하 어머니의 본으로 삼을 수 없음이라. 따라서 천자가 법을 어겨도 백성과 같은 죄로 다스리듯, 짐은 현비가 저지른 악행을 추궁할 것을 결정하고 누구든 이에 의의를 제기하거나 죄를 사해줄 것을 요구할 경우 같은 죄를 물을 것이다.”명원제가 이 말을 하고 우문호와 우문령을 흘깃 보니,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는데, “그러나 짐이 방금 말했듯 북당은 태자를 폐위할 수 없으므로, 짐이 황실의 어른 및 중신들과 상의한 결과 덕비에게 아이가 없으니 태자와 공주를 덕비의 양자로 들이게 하고, 덕비는 오늘부로 황귀비로 봉하여 황후를
운명의 밤어서방에서 딱 한 명이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다.바로 황후다.황후는 정말 생각치도 못했다. 겨우겨우 현비를 없앴더니, 덕비를 좋게 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비록 덕비와 좀더 잘 지내긴 했지만 후궁들 중에 덕비가 제일 박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오히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셈이 아닌가.‘현비야, 넌 정말 어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반편생을 고생해서 전부 덕비만 좋은 일 시켰어.’의식은 합덕전(合德殿)에서 거행되었는데 자녀가 절한 뒤, 덕비가 황귀비에 봉해져 황귀비의 첩지를 받았다. 황후는 이제 황귀비와 같이 서로 의지할 수 있으니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난다’고 하고, 황제의 정실 부인의 신분으로 우문호와 우문령 오누이는 황귀비를 효를 다해 섬기라고 훈시했다.우문호는 내내 목석처럼 가만 있어서 만약 원경릉이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제때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덕비의 눈엔 눈물이 어린 채 우문호를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더니, “태자는 옥체를 보중하시게.”우문호는 ‘예’하는데 마치 자기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텅텅 빈 소리가 났다.예식을 마치고 명원제는 경여궁으로 가고, 목여태감을 시켜 두 사람은 건곤전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우문호의 마음이 문득 아득해 지며 황제가 경여궁으로 갈 게 틀림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 큰 일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어마마마에게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꽉 잡고 건곤전 안으로 들어가자, 태상황도 아직 잠들지 않은 채 담배를 피우며 있고 안풍친왕은 가고 없다.태상황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 정신이 맑아지는 탕을 가져오게 해서 셋이 마셨다.다바오가 건곤전 밖에서 뛰어들어와 태상황의 발 아래 기어가자, 태상황이 담뱃대를 내려놓고 한 손으로 안아 올려 가슴에 안고 쓰다듬었다.모두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강아지 입에서 나오는 ‘헥헥’ 소리가 편안해 지는데, 다바오는 이내 잠들었다.태상황이, “올해가 지나가려면 아직 멀었나?”며칠, 불과 며칠이 일년 같다.우문령이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