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밤어서방에서 딱 한 명이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다.바로 황후다.황후는 정말 생각치도 못했다. 겨우겨우 현비를 없앴더니, 덕비를 좋게 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비록 덕비와 좀더 잘 지내긴 했지만 후궁들 중에 덕비가 제일 박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오히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셈이 아닌가.‘현비야, 넌 정말 어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반편생을 고생해서 전부 덕비만 좋은 일 시켰어.’의식은 합덕전(合德殿)에서 거행되었는데 자녀가 절한 뒤, 덕비가 황귀비에 봉해져 황귀비의 첩지를 받았다. 황후는 이제 황귀비와 같이 서로 의지할 수 있으니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난다’고 하고, 황제의 정실 부인의 신분으로 우문호와 우문령 오누이는 황귀비를 효를 다해 섬기라고 훈시했다.우문호는 내내 목석처럼 가만 있어서 만약 원경릉이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제때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덕비의 눈엔 눈물이 어린 채 우문호를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더니, “태자는 옥체를 보중하시게.”우문호는 ‘예’하는데 마치 자기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텅텅 빈 소리가 났다.예식을 마치고 명원제는 경여궁으로 가고, 목여태감을 시켜 두 사람은 건곤전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우문호의 마음이 문득 아득해 지며 황제가 경여궁으로 갈 게 틀림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 큰 일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어마마마에게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꽉 잡고 건곤전 안으로 들어가자, 태상황도 아직 잠들지 않은 채 담배를 피우며 있고 안풍친왕은 가고 없다.태상황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 정신이 맑아지는 탕을 가져오게 해서 셋이 마셨다.다바오가 건곤전 밖에서 뛰어들어와 태상황의 발 아래 기어가자, 태상황이 담뱃대를 내려놓고 한 손으로 안아 올려 가슴에 안고 쓰다듬었다.모두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강아지 입에서 나오는 ‘헥헥’ 소리가 편안해 지는데, 다바오는 이내 잠들었다.태상황이, “올해가 지나가려면 아직 멀었나?”며칠, 불과 며칠이 일년 같다.우문령이
현비와 독대하는 명원제현비는 의자에 두 손을 뒤로 묶여 있는데 한동안 소란을 피우다가 결국 밧줄을 풀지 못한 채 전신에 힘이 하나도 없는 나머지 조용해 졌다. 명원제가 들어온 것을 보고 고개를 들어 산발한 머리에 음침한 표정으로 비웃음을 띠고, “폐하께서 드디어 납시셨군요.”명원제가 현비 맞은 편에 앉아 일 장 정도 거리를 두고 현비를 쳐다보는데 실망과 증오, 혐오가 가득한 눈빛이다.현비가 눈치채고 눈물을 떨구더니 오히려 웃으며, “폐하 신첩에게 실망하셨습니까? 하지만 폐하께서도 신첩을 실망시키셨습니다. 신첩이 폐하께 시집온지 이십 여년인데 폐하의 마음 속에 신첩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까?”현비는 콧소리가 심했는데 눈은 이미 빨갛게 부어서 마치 짓이겨 놓은 썩은 복숭아 같다.명원제가 입을 열어, “원래 다시는 자네를 보고싶지 않았으나 방금 자네 말 대로 이십 여년의 세월동안 이러구러 살아온 정이 있으니 역시 짐이 직접 자네에게 얘기하는 것이 마땅하겠어.”현비가 황제를 보고 미약하게, “폐하 만약 신첩을 죽이시려 거든 성지 한 줄이면 됩니다. 공주의 결혼이 끝나면 신첩 죽을 수 있습니다. 신첩이 이제 폐하와 담판을 할 자격도 없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오셨는지요?”“자네는 짐과 뭘 담판하고 싶었지?” 명원제의 눈빛이 냉담해 졌다.현비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눈빛으로, “신첩은 폐하께서 소씨 집안에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씨 집안은 날로 커지는데 소씨 집안은 날로 추락해 조정에 소씨 집안의 세력이 없습니다. 폐하, 소위 현명한 사람을 뽑을 때 피붙이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소씨 집안에 이토록 모질게 대하시는 지요?”“소씨 집안? 자네 마음 속엔 그저 소씨 집안 뿐이군. 자네 아들 딸은? 어찌 걔들에 대한 말 한마디가 없어?”“그들도 폐하의 아들 딸이니 폐하께서 당연히 소홀히 대하시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신첩이 못 마땅한 것은 신첩이 낳은 아이가 태자가 되었는데, 왜 폐하께서는 신첩의 신분을 올려주지 않으십니
현비와 명원제의 마지막명원제가 계속, “그리고, 자네 머리로 짐이 왜 공주를 이리율과 짝지어 주려 하는지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자네는 한사코 혼사를 방해하고 반대했지. 짐이 시행하는 국책을 가로막고 결국엔 공주를 경여궁에서 인질로 잡기까지 마다치 않고 공주의 얼굴을 상하게 하고 태자비까지 다치게 했어. 마음으로도 입으로도 온통 소씨 집안 소씨 집안만 줄창 읊어 댄 주제에 어미로 낯짝을 들 수 없어 죽고 싶어야 마땅해.”“신첩이 어찌 공주를 다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현비가 고개를 저으며 통곡하는데 눈물이 빗물처럼 떨어지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은 불쌍하기 그지 없는데, “신첩이 공주를 잡고 있긴 했어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신첩 마음 속으로 소씨 집안을 생각했던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인과 효를 숭상하시지요, 그 중에 효가 먼저 아닙니까, 신첩은 효를 다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입니까?”“현비,” 명원제의 얼굴에 노기 외에 복잡한 심정이 지나가는데 어릴 때 부부가 되어 20여년을 함께 했다. 살아온 정이 있어 이렇게 만나러 온 것인데, 이런 모습을 보고 명원제는 고개를 흔들며, “자네는 효도를 했지. 그러나 오늘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데 소씨 집안에 누가 자네 때문에 괴로워 하나? 가슴 아파 하는 사람이 있어? 태후 마마를 시해했다는 소식이 궁밖으로 나간 뒤에 소씨 집안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도망갔어. 왜 도망갔는지 모르겠어? 현비 자네와 자기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연을 완전히 끊어버린 거야. 당신들이 전에 손잡고 얼마나 많은 불미스런 일을 저질렀어? 하지만 인과응보는 오늘 당신한테만 돌아오겠지. 자네의 효심이 참된 것이면 소씨 집안 가족들이 당신을 살려 달라고 구명 했어야 마땅해. 꽁지가 빠져라 내빼는 게 아니라. 반대로 자네가 희생으로 삼았던 아들과 딸은 지금 건곤전에서 자네 때문에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고 있어. 영이 우는 소리 안 들려? 영이는 오늘 하마터면 자네 손에 죽을 뻔 했어. 그런데도 자네는 입만 열면 소씨 집안
현비에게 가는 길우문령이 울며 와서, “어마마마께 먹을 것 좀 가져다 드릴 수 있어요? 종일 실랑이를 벌이느라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하셨어요.”목여태감이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가능하지요!”우문령이 서둘러 준비시키며 상처 난 몸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현비에게 뜨거운 밥을 해드리려고 분주하다.찬합이 준비되고 목여태감이 원경릉을 맞으러 와서, “태자비 마마 가시지요.”원경릉이 우문호를 보는데 마음이 너무 괴롭다. 우문호가 알고 있는 사실을 원경릉도 안다. 황제가 방금 현비를 만났는데, 현비 태도가 초지일관 나빴다면 태자비가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분명 현비의 태도가 바뀌어 혹시 뉘우치는 마음이 든 게 아닐까 황제가 특별히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원경릉은 현비가 너무 밉지만 현비가 죽으면 우문호가 슬퍼할 게 틀림없기 때문에 차라리 현비가 살아있는 게 백배 낫다. 왜냐면 현비가 살아 있어도 황제는 현비를 궁에 둘 리 없는 것이 어쨌든 모두 황귀비를 태자의 어머니로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끌어 안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걱정 말고.”우문호도 원경릉을 안아 주며 거의 애원하다시피, “자극……하지 마!”원경릉은 마음이 아파서 돌아서 눈물을 흘렸다.현비 넌 도대체 네 아들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셈이야?우문령은 계속 울며 따라가려 했지만 우문호에게 잡혀 우문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빠, 어떻게 해? 어떡해?”우문호가 우문령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며 암담한 눈빛으로, “전부 맡기는 수밖에.”밖은 추워서 원경릉은 나가자마자 벌벌 떨었고, 목여태감이 앞장 서는데 발걸음이 약간 휘청거렸다. 요 며칠 그렇게 많은 일이 터졌으니 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하다.건곤전을 나오는데 황귀비의 가마가 밖에 있고 황귀비도 서성이고 있는 것을 보니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목여태감이 원경릉에게, “방금 소인이 왔을 때도 황귀비께서는 여기 계셨습니다.”원경릉이 잠시 생각하더니, “태감, 잠시만 기다려줘요.”원경릉이 황귀비
경여궁에서원경릉은 황귀비가 정말 공주를 자기 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안다. 사실 이 일이 없었으면 어쩌면 감정이 더욱 순수했을 텐데 지금 총체적으로 복잡해지고 말았다.하지만 이 모든 건 황귀비와 상관없다. 황귀비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됐을 뿐이다.원경릉이 황귀비의 손을 맞잡고 작은 소리로, “태자 전하께서 곁에 계시니 안심하셔도 돼요. 돌아가서 쉬세요. 날이 추워서 감기 듭니다.”황귀비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목이 메이는지, “태자비, 믿어줘, 나도 폐하께서 선포하시기 전엔 몰랐어. 그때 사람이 그렇게 많아서 나도 거절할 수 없었던 거야, 무슨 영화를 탐해서가 아니라.”원경릉이 어찌 모를 수가 있나? 그래서 마음 놓으시라고, “쓸데없는 생각 마세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린 본심만 잘 지키면 되지요.”황귀비가, “반평생을 궁에서 지내며 많은 걸 봐와서 어미 신분으로 그들을 아낄 수 있기를 바랬고, 늘 그렇게 해왔는데 막상 이런 감투를 쓰고 나니 도리어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네.”원경릉이 가만 있었다.황귀비가 정신을 차리고,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인가?”원경릉이 목여태감을 바라보며 “경여궁에 가는 길입니다.”황귀비 안색이 살짝 변하며 알았다는 듯, “그래, 가보게.”원경릉이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목여태감을 따라 가는 길에 밤바람이 뼈속까지 스며들며 칼로 베는 듯 얼굴을 때렸다.궁 안은 근하신년이라고 여기저기 초롱을 달고 오색천으로 장식했는데, 칠흑 같은 어둠이 불빛에 조금씩 내몰리고 있으나 여전히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경여궁 입구에 도착하자 입구엔 침침한 붉은 등이 걸려 있고, 등불의 빛은 어둠에 삼켜진 듯 서서히 잠식당하면서 가냘프게 흔들린다.궁문 앞에는 철갑을 입은 금군이 서 있다. 손에 장검을 들고 두 줄로 서서 조각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심지어 눈썹조차 까딱하지 않은 채 차갑고 강경한 모습이다.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 선 궁인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전부
현비의 발악현비의 두 손은 더이상 뒤로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두 손을 쓸 수 있도록 풀어주었으나 두 다리와 몸은 여전히 의자에 묶여 있다.현비는 온 사람이 원경릉인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해서 차갑게, “폐하께서는 어찌 이리도 매정하십니까? 모자가 마지막으로 한 번 보겠다는 소원마저 저버리실 수가. 정말 너무 매정하시구나.”원경릉의 등이 이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막상 현비를 보니 상처가 벌어지는 고통이 느껴지며 천천히 걸어가 맞은 편에 앉았다. 이 의자는 방금 명원제가 앉았던 그 자리다.“아바마마께서,” 원경릉이 입을 열자 잔뜩 쉰 목소리가 갈라지며, “당신이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저더러 듣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말씀하세요. 한 마디 한 마디 그대로 태자에게 전하겠습니다. 절대로 감추지 않을 겁니다.”현비가 주먹으로 의자 팔걸이를 내리치며, “좋아, 그럼 가서 우문호에게 전해, 너 원경릉이 우리 모자를 갈라 놓고, 네가 날 죽였으니 우문호에게 너를 죽이라고 해.”원경릉은 현비의 증오에 가득한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마세요. 이 말 그대로 전하겠습니다.”“네가 감히 올 생각을 해? 왜 좋아 죽겠어? 소씨 집안과 내 지금 처지를 보니 기분 좋아?” 현비가 퉤하고 침을 뱉았으나 원경릉 발 앞에 떨어졌다. 현비가 뱉은 침에 핏줄이 섞인 것이 보인다.원경릉이 무릎의 옷 매무새를 고친 뒤 고개를 들고, “제가 기분 좋을 게 뭐가 있죠? 당신에게 일이 생기면 상처받는 사람은 태자와 공주예요. 저는 두 사람이 당신 때문에 상처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원경릉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목여태감의 냉정한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보아하니 현비의 광란을 막을 방법이 없다.그래도 원경릉은 시도해 보는데, “전에 제가 잘못했습니다. 여기서 당신께 사죄 드려요. 절 용서해 주세요.”현비가 부득부득 이를 갈며, “웃기고 있네, 한 마디도 못 믿어. 위선 떨지 마. 내가 우문호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 마디야, 가서 전해. 만약 여전히 낳고 키워준 정을
현비의 죽음원경릉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전 여기 남겠습니다. 남편을 대신해 마마를 보내 드리겠어요.”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 그러시지요, 하지만 곁에 다른 사람은 안됩니다.”밖에서 어떤 궁인이 붉은 등을 떼 내자 흑암이 순식간에 좌중을 석권해 원경릉은 순간 기절할 것 같아 기둥에 기댔다.구사가 원경릉의 곁을 지나가는데 마치 우문령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고, 우문호의 침통한 눈빛을 본 것처럼 가슴이 저릿했다.전신에 힘이 풀려 궁인이 와서 부축해 주지 않았으면 원경릉은 바닥에 털썩 주저 앉을 뻔 했다.구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현비는 질겁해서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태자를 만날 거야, 폐하를 만날 거야, 태후 마마를 만날 거야……”구사가, “마마, 하나를 고르시지요!”“싫어, 아직 15일이 안 됐어. 아직 공주 결혼식이 안 됐다고…… 공주는 모친상 기간에 시집을 갈 수 없어. 이 혼사는 저주받은 거야. 오지 마!” 현비의 목소리가 스산하고 처참한 것이 밤 하늘을 나는 부엉이처럼 절망의 빛을 띠었다.목여태감이, “현비 마마 걱정 마세요. 공주 마마는 이미 황귀비 마마를 모친으로 모셨습니다. 공주 마마께서 출가하실 때 당연히 모친의 축복을 받을 것이니 크게 복된 혼인입니다. 공주 마마는 행복하실 것이니 마마께서는 안심하시고 길을 떠나시지요.”원경릉이 천천히 안으로 돌아가 휘장 곁에 기대 현비가 미쳐 날뛰는 것을 봤다. 쟁반을 들어 엎고 독주를 쏟고 비수를 ‘챙강’ 바닥에 던졌는데, 유독 흰 비단만 바람에 날려 현비의 무릎에 말려 있었다. 미친 듯이 비단을 밀쳐내며 공포에 가득 찬 얼굴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목여태감이 얼른, “마마께서 흰 비단을 고르셨으니 소인이 마마를 도와드리겠습니다!”목여태감이 흰 비단을 펼치자 비단은 백사처럼 하늘로 올라가더니 대들보에 걸려 아래로 늘어뜨려 졌다. 목여태감이 비단을 걸고 매듭을 지었다.현비는 흰 비단을 죽어라 잡아 뜯으며 소리치는데, “우문호, 빨리 와, 저들이 어마마마를 죽이려 해. 어서
현비를 보내고원경릉이 얼른 손을 내밀어 우문호를 잡고 우문호도 원경릉의 팔을 잡고, “원 선생, 어마마마가 돌아가셨어.”원경릉이 우문호를 안고 울기 시작했다.우문호는 멍청히 목여태감과 구사를 보더니 원경릉을 안아 일어나서 낮은 목소리로, “어마마마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 싶어.”두 사람은 휘청거리며 들어갔다.바람이 경여궁 안으로 밀어닥쳐서 휘장이 하늘로 펄럭이고 얼굴과 몸을 때리며 ‘파바박’ 소리를 냈다.우문호가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데 호흡을 멈췄다가 다시 심호흡을 하는 것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것 같다.현비의 죽은 모습은 흉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살아있을 때보다 한참 침착해 보였다. 시체의 얼굴은 목여태감이 수습했고 눈은 감겨 있지 않지만 옷과 머리는 잘 가다듬어져 있다.우문호는 눈가가 흐려지며 손을 뻗어 현비의 얼굴을 만지고 두 손으로 현비의 눈을 가리더니 눈물이 얼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우문령이 울면서 뛰어들어와 현비의 몸에 달려들어 대성통곡했다.용화전.태후는 이미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 휘장을 열어젖히고, “누가 우느냐?”상궁이 달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태후 마마 우는 사람 없습니다. 악몽을 꾸신 것은 아니신 지요?”“현비였다. 현비가 울고 있었어.” 태후가 얼른 내려오려 했다.상궁이 부축하며 작은 소리로,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현비 마마께서 목을 매셨다고 합니다.”태후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하며 한참을 있다가, 침통한 눈물을 흘리며, “죽었느냐?”“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상궁이 말했다.태후가 숨이 안 쉬어지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죽었……구나. 죽었어. 산 사람은 덜 고통받겠지.” 태후가 침대에 누워 중얼거리는데 백발이 된 머리를 베개에 늘어뜨리고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어서방.목여태감이 돌아와 명을 수행했음을 보고했다.명원제는 엄숙한 표정으로 용상에 앉아 있는데 피곤한 기색이다.조용히 목여태감의 말을 듣더니 종이로 상소를 눌러 놓고 황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