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 142화

Author: 유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명원제는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 방금 손대학사가 다녀갔는데, 그는 입이 방정맞기로 소문난 사람이라서, 만약 우문호가 어서방을 청소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소문이 삽시간에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었다.

“고개를 들거라!” 명원제의 목소리가 그의 왼쪽에서 들렸다.

우문호는 걸레를 들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비파를 안아 반쯤 얼굴을 가리고서는 “부황!”이라고 외쳤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명원제는 입술이 씰룩거렸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아 웃음을 참았다.

“못난 놈. 넌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같다!”

우문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

“목여야. 제독고를 발라주거라!” 명원제가 명령했다.

“제독고?” 목여태감이 어리둥절해하며 “여기……” 라고 말했다.

“어서 빨리!”

목여태감은 서랍 안에서 작은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상자를 꺼내어 우문호가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왕야. 제독고는 조금 쓰라립니다. 참으세요”

“예 괜찮습니다. 전 본래 아픔을 잘 못느낍니다.” 우문호는 태감을 시켜 자신에게 연고까지 발라주는 부황에게 감동했다.

그러나 목여 태감의 눈빛이 약간 우문호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우문호는 뭔가 이상했다. 이러한 생각도 잠시 제독고를 바르자마자 온 몸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었다. 이게 어딜봐서 조금 쓰라리는 정도인가? 연고가 뼛 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살살! 살살 바르세요!”

“이까짓 고통도 참지 못하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어?” 명원제가 말했다.

우문호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명을 삼켰다. 그는 방금 목여태감이 자신을 불쌍하게 본 이유를 알것 같았다. 제독고를 바르고 난 곳은 마치 그의 피부가 아닌 것 같았다. 저릿저릿하더니 이내 감각이 없었다.

게다가 눈꺼풀은 점점 부풀어서 이제 눈동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가보거라!” 명원제는 우문호의 꼴을 보더니 어서방 청소하는 벌을 면해주었다.

“예. 물러가겠습니다.” 우문호는 황급히 두 손을 맞잡아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부은 눈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문간에
Locked Chapter
Continue to read this book on the APP

Related chapters

  • 명의 왕비   제 143화

    원경릉은 빗자루 대를 어깨에 걸치고는 “내가 왜 닥쳐야해? 어차피 이제 가봐야합니다. 상선께서 녹두탕을 준비해두셨다고 해서 그거 마시러 갈겁니다. 당신은 여기 혼자 남아서 천천히 미쳐가시든가요!”이 둘은 사이가 좋아질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문호는 구사의 부축을 받아 침상에 누웠다. 그는 퉁퉁 부어 비뚤어진 입으로 연신 원경릉의 욕을 했다.구사는 듣다 듣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 우문호에게 물었다.“왕야.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왜 그리 왕비를 괴롭히십니까?”“구사” 우문호는 화가 나서 침상을 두드렸다. “구사는 그녀가 방금 나한테 한 말은 듣지 못한겁니까? 감히 나에게 원숭이 엉덩이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왕야. 제가 하나만 묻겠습니다. 왕야는 이전의 왕비와 지금의 왕비 언제가 더 싫은겁니까?” 구사는 뒷짐을 지고 우문호에게 물었다.“다 싫어요.” 우문호가 대답했다.“예전에는 왕야는 왕비와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잖습니까? 왜 지금은 왕비 말 끝마다 다 대답하며 화내고, 또 도를 지나치는 행동을 하고, 도대체 왕비께서 변한겁니까? 아님 왕야께서 변한겁니까?” 구사가 물었다.구사의 말을 듣고 우문호는 갑자기 멍해졌다.‘그러게. 왜 지금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다 신경쓰이는거지? 이전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잖아. 내가 그녀를 너무 미워하고 증오해서?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된거지?’그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떠올렸다. 그녀가 최근에 한 일을 돌이켜보니 때로는 밉기도 하고, 가끔은 우문호 자신보다 일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도 했으며, 또 아주 가끔은 조금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그녀가 과도를 휘두르며 술주정을 부릴 때 말이다.그는 그가 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원경릉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호흡이 빨라지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도대체 왜?“왕야. 잘 생각해보십시오.” 구사는 이 한마디를 남긴채 밖으로 나갔다.우문호는 두 손을 뒷통수에 대고는 누워 눈을 가늘게 떴다. 상

  • 명의 왕비   제 144화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며 태상황에게 말했다. “이제 다섯째 얘기는 그만하고 검사 시작하겠습니다.”태상황은 누워서 옷을 걷어 젖히고는 차가운 청진기가 배에 닿기를 기다렸다. “과인도 한번 들어보자.”태상황이 말했다.“들리시죠? 이제 박동 수를 세십시오.” 원경릉은 그의 귀에 청진기를 걸어주며 말했다.태상황은 쿵쿵 뛰는 심장소리에 안도했다. 심장소리를 듣고있노 라니 마치 자장가를 틀어둔 듯 잠이 왔다.“박동 수가 몇이죠?” 일 분이 지났다고 짐작한 그녀가 태상황에게 물었다.“오십 육 번” 태상황이 노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원경릉이 다가와 다시 한번 들었다.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진전이 있네요.”상선도 호기심에 다가와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게 뭡니까? 재밌습니까? 소인도 해볼 수 있습니까?”“예. 물론이죠. 이걸 가슴에 두고 귀에 걸면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원경릉은 웃으며 청진기를 상선에게 주었다.상선은 그녀의 지시대로 청진기를 귀에 걸었다. “정말 신기합니다. 안에서 누가 북을 치는 것 같습니다!”“이런건 어디에서 살 수 있습니까? 소인의 집에도 하나 두고 싶습니다.” 그는 청진기를 만지작 거리며 원경릉에게 물었다.“제가 나중에 물어보겠습니다. 있으면 하나 사드릴테니 매일 태상황님의 심장 박동 소리를 관찰해 주십시오.” 원경릉이 답했다.“예. 알겠습니다!” 상선이 기쁘게 대답했다.푸바오가 어슬렁거리며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원경릉 발 밑에 왔다. 원경릉은 허리를 숙여 푸바오를 안아들었다. 푸바오는 혀를 내밀어 그녀의 손을 핥았다. 그녀는 그런 푸바오가 귀엽다는 듯 “장난꾸러기!” 라고 말했다. 긴 혀에서 침을 뚝뚝 떨어뜨리는 푸바오의 기분이 좋아보였다.“푸바오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상선이 말했다.“개는 영리하고 사람을 볼줄 압니다.” 원경릉이 푸바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지? 푸바오?”그러자 푸바오가 그녀를 보고 “왕왕”짖었다.상선은 웃으며 푸바오를 보았다. “어찌 푸바오

  • 명의 왕비   제 145화

    “왕비가 태상황님을 모시고 산책을 나가겠다고 했고, 태상황님께서도 허락을 하셨답니다.”명원제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태상황이 오랜 병치례로 건곤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밖으로 나가는구나 하는 안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보아하니 부황께서 손자 며느리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 우문호가 얼떨결에 보석을 얻었어.’따사로운 햇살 아래 태상황이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려보았다.“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구나.” 태상황이 탄식했다. 그런 태상황을 보며 원경릉이 빙그레 웃었다.“태상황님 이렇게 나와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사람의 몸은 기계와 같아서 자꾸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노후됩니다.”태상황은 이 말을 듣고 “그 말은 과인이 익히 들었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이 괜한 말을 했다 하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이라 주워담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익히 들었다고?’ 원경릉은 태상황이 익히 들었다는 말을 듣고 살짝 멍해졌다. “태상황님께서 제가 방금 한 말을 익히 들어보셨다고요?”“누가 그랬더라?” 태상황이 상선을 보며 물었다.상선은 고개를 저으며 “소인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왜 못들었어? 방금 그 말이 나는 귀에 익은 말이다.” 태상황이 말했다. “너는 기억력이 안 좋구나!”하며 상선에게 화를 냈다.“제가 늙어서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상선이 탄식했다.“태상황님 잘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말했습니까?”태상황이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 기억이 났다. 소요공이 말했다!”“소요공?” 원경릉은 소요공이 누군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소요공! 너도 모르는 것이냐? 너도 늙은게로구나.” 태상황은 아득히 먼 옛일을 떠올린 것 같았다. “아마 과인보다 몇 살 더 먹었을 거야. 전부터 병을 달고 살았다고 하던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태상황님 걱정마시지오. 소요공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답니다.” 상선이 답했다.원경릉은 소요공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 명의 왕비   제 146화

    귀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후와 현비도 앉아 있기 애매한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경릉이 태상황제를 부축하여 호숫가를 몇 걸음 걸었을까. 갑자기 몰려오는 피곤함에 태상황이 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원경릉이 외투의 앞을 잘 여며주었다.“됐다. 너는 어찌 이리 세심한 것이냐?” 태상황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히 이렇게 해야죠. 오늘 꽤 걸으셨지 않습니까. 땀 났을 때 찬 바람을 쐬면 안됩니다.”“새파랗게 어린게 어른 행색을 하는구나.” 태상황이 목을 쳐드니 원경릉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던 태상황이 저 멀리서 황후와 여자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태상황이 기운 없는 듯 “귀찮게 시리.” 라고 말했다. 원경릉이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곧게 서서 손을 모으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도 귀찮습니다.’황후, 귀비, 현비 그 뒤로는 궁인들이 따라 오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뜰이 사람으로 가득 들어찼다. 원경릉은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는 “황후마마, 귀비마마, 현비마마. 알현하옵니다.” 라고 하였다. 사실 원경릉의 문안이 잘못되었다. 관례에 따라 황후는 모후라 부르고 귀비는 적귀모비 그리고 현모비라고 불러야 했다. 하지만 태상황이 앞에 있으니 그 누구도 원경릉이 틀렸다고 비판하거나 관례를 들먹이지 않았다. 그저 그 셋은 앞으로 걸어 나와 인사를 했다. “신첩들 태상황님을 알현하옵니다.”태상황은 오늘따라 온화한 미소로 “다들 왔구나.” 라고 했다.“오늘 날씨가 좋아서 신첩들이 함께 나왔습니다. 태상황님께서는 몸이 어떠신지요?” 황후가 한걸음 더 앞으로 나와 공손하게 말했다.“좋다. 내가 몸이 안좋으면 이렇게 나와 돌아다닐 수 있겠나?” 태상황의 얼굴에 힘이 가득했다. “태상황님의 건강이 북당의 행복이옵니다. 그렇죠 초왕비?” 현비가 웃으며 원경릉을 보았다.원경릉은 잠깐 멍을 때리다가 현비의 물음에 당황했다. ‘방금 뭐라고 한거지? 제복이라고 했나?’“예, 제복입니다.” 원경릉은 방금 현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당

  • 명의 왕비   제 147화

    원경릉은 현비의 묘한 표정을 감지했다. 현재 태상황이 원경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현비와 정후부에서는 원경릉에게 별다른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뜻이 결코 그들이 그녀의 편이라는 것이 아니다. 주씨 가문이나 주명취가 나선다면 상황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게다가 우문호가 경조부윤을 맡게 되었다. 이는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을 던지는 꼴인데, 이 파장이 얼마나 거셀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명원제가 초왕인 우문호를 고깝게 보는 것은 궁 안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던 사실이다. 원래 이치대로라면 명원제는 절대 초왕에게 경조부윤이라는 중임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결정이 명원제의 뜻이 아닌 태상황이 뒤에서 힘을 쓴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지금 태상황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초왕비인 원경릉이었고, 그래서 그녀가 초왕을 경조부윤 자리에 올리기 위해 힘을 썼을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추측했다. 한순간에 눈엣가시였던 초왕이 황제의 총애를 얻게 되다니.‘만약 초왕이 황태자 자리에 오를 마음이 있다면?’우문호가 암살당할 뻔한 그날을 생각하니 원경릉은 소름이 끼쳤다.“본왕의 등을 좀 긁어줘라!” 옆에서 우문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등 뒤에 베개를 두고는 몸을 움직여 등을 긁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퉁퉁 부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혼자 긁어” 원경릉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우문호가 휘청거리며 두 손을 내밀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원경릉은 그의 얼굴을 보기만해도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두 손은 족발 같았다. 보아하니 옷으로 가려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벌에 쏘인 모양이다. ‘진짜 딱하네.’원경릉은 우문호가 꼴 좋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켠으로는 불쌍했다.“어디가 가려워?” 그녀는 손톱이 짧아서 옆에 있던 까끌한 천을 들어 그의 가려운 부분을 긁었다. “아니! 그냥 손을 넣어. 여기 옷깃 사이로!” 우문호가 몸을 베베꼬며 말했다.원경릉은 반쯤 무릎을 꿇고 일어나 그의 옷깃 사

  • 명의 왕비   제 148화

    원경릉이 옷깃에서 손을 확 빼내며 그를 밀쳤다. “뭐야!”“내가 뭘?”우문호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놀랐다. “네 얼굴!” 원경릉이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켰다. ‘와…… 우문호 이렇게 밝히는 남자였어?’그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네가 가까이 와서 그런거다. 나는 네가 민망할까봐 고개를 돌린 것 뿐이고”“그래서 내 잘못이라고?”“그럼 본왕의 잘못이라는 거냐? 내가 널 끌어당기기라도 했느냐?”그는 자세를 꼿꼿하게 고쳐세우며 “게다가 뭐가 대단하다고? 그리고 우리 사이에 다 봐놓고 뭘 그러느냐? 나도 뭐 딱히 네 몸과 닿고 싶지 않았어”라고 말했다.“이전엔 내가 당신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그런거고!’“누가 치료해 달라고 그랬어?”“진작에 내가 알아봤어야 했는데. 당신하고는 말이 안통해. 당신같은 종자는 자손이 끊겨야해!” 원경릉은 화가 나서 우문호에게 쏘아 붙였다. “너는 본왕의 왕비다. 내 자손이 끊기면, 너의 자손도 없는거야.”“나를 궁 밖으로 내쫓기로 우리 약속했잖아.” 원경릉이 그를 가만히 보았다.“너를 출궁하기 전에, 네가 부황에게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봐. 네가 일 년 안에 손자를 안겨드리겠다고 했던 말.”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일년. 변수가 너무 많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부황께 그렇게 말씀 드릴 필요가 없었는데.”우문호는 원경릉의 말을 듣고 마음 속에 울화가 치밀었다. 둘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멀리 떨어져 앉았다. 부중(府中)으로 돌아온 원경릉은 곧장 봉의각으로 돌아갔다. 원경병은 기상궁이 끓여준 팥죽을 먹고 있었는데, 원경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왜 지금에서야 오십니까?”“일이 좀 지체돼서……” 원경릉은 가만이 팥죽을 보았다. “상궁님 저도 한 그릇 주세요.”“무슨 일이 지체되었습니까?” 원경병이 물었다.“사소한 일입니다.” 원경릉은 원경병을 힐끗 보았다. 원경병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이 원경병이 원주(原主)를 많이 아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좀 똑부러지

  • 명의 왕비   제 149화

    “아버지가 혼사를 다 결정해놨다고? 왜 나는 그걸 몰랐지?” 원경릉이 경악을 금치못했다. 원경병은 막 열 다섯이 되지 않았는가? 이리 급히 혼사를 치른다고?“이미 내 사주팔자도 그 쪽으로 보냈다고 해요.”“누구한테?” 원경릉이 물었다.“주대유(褚大有)”“주대유가 누구야?”옆에 있던 기상궁이 “주수보에 조카입니다. 벌써 서른이 훌쩍 넘었다고 하는데, 이 전에 혼인한 세명의 정실(正妻)들이 다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고작 열 다섯 여자아이를 서른 중반의 남자한테 시집을 보낸다고? 말도 안돼!” 화난 원경릉의 손이 벌벌 떨렸다. 정후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딸을 이렇게 물건 넘기듯이 넘기려고 하다니!“아버지께서 말하길 나이가 많긴 하지만 이미 혜정후까지 봉해졌으니 우리 쪽보다는 귀한 신분이라고 하셨습니다.”“그래서 어쩌라고?” 원경릉이 화가 난듯 물었다.“어쩔 수 없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원경병이 고작 열 다섯살이라고 할지라도 집안 끼리의 혼인을 자신이 이래라 저래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원경릉이 기상궁에게 “혜정후는 인품이 어떱니까?” 라고 물었다.“왕비. 왕야께 물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왕야께서 열 다섯부터 혜정후를 따라 참전했고,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는 직접 전쟁에서 통솔하셨습니다.”원경릉이 원경병를 보며 “혜정후. 아마 진작 알아봤겠지?”라고 물었다.“알아봤죠. 무척 괴팍한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원경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원경릉은 원경병이 단순히 여기에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라 혼인을 피하기 위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열 다섯살. 고작 중학생 나이인데.정후는 자신의 앞길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이기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왕비께서 초왕의 총애를 얻어 아버지의 출세를 도왔더라면! 내가 혜정후에게 시집가지 않아도 됐습니다!” 원경병이 원경릉을 바라보며 말했다.원경릉은 화가 나서 붉어질 것 같은 얼굴을 간신히 숨겼다.

  • 명의 왕비   제 150화

    우문호에게 아쉬운 소리해가며 부탁을 할 생각을 하니 원경릉은 내심 내키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순순히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우문호가 정후에게 혼사에 관해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정후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혼사를 막을지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 원경병은 생각은 단순하기 그지없구나.’허나 우문호가 마음먹고 도와준다면 그는 틀림없이 방법을 찾을 것이다.“우선 방에 들어가 쉬고, 이 일은 좀 더 생각해보는게 좋겠어.”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병은 괴로운 마음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원경병은 자신의 말을 원경병이 신경도 쓰지 않을 줄 알았다. 그저 모 아니면 도 라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구했을 뿐이다. 하지만 원경릉이 의외로 고민하는 듯 보이니 원경병도 내심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원경릉이 방금‘좀 더 생각해보자’라고 하니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었다.원경릉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본 적이 없었다. 이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혼인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말에 복종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초왕과 혼인을 했다. 혼인을 했다고 지금 초왕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나? 그것도 아니다.정후는 딸을 내세워 모험을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딸은 출세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는 옳지 않다. 모든 사람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게 이 시대의 여자라고 해도 말이다.지금 원경릉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녀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원망과 원한, 증오 뿐이다.원경릉이 무언가 결심한 눈빛을 기상궁을 보며 “왕야가 무엇을 즐겨 먹습니까?” 라고 물었다.“자소 오리” 기상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원경릉이 초왕에게 부탁을 하려는 건가?“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주세요.” 원경릉이 말했다.“왕비. 아무래도 이 일에 손을 떼시는 것이 좋겠어요. 왕비가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고, 만약 왕야께서 나서서 정후부에 찾아가 원경병의 혼사에 관여하게 되면 정후는 아마 초왕의 총애를 얻었다고

Latest chapter

  • 명의 왕비   제 3033화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 명의 왕비   제 3032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 명의 왕비   제 3031화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명의 왕비   제 3030화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 명의 왕비   제 3029화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 명의 왕비   제 3028화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 명의 왕비   제 3027화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 명의 왕비   제 3026화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

  • 명의 왕비   제 3025화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상인, 인근 주와 현의 관리, 무림 사람들, 강호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안지여는 그동안 사교의 폭이 넓고, 각계각층 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있어 이번에 생일잔치란 이름을 빌려 그들 모두 한자리에 모아 대사를 논의하고자 했다.안지여는 너무 오래 기다려왔다. 전에 시기를 놓치고 이제 우문호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이때가 대사를 치를 적기였다.우문호가 몇 년 더 북당을 다스리고 나면 그에게 더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몰랐다.그래서 조정이 사람을 파견한다는 소식에 그는 기뻤다. 이를 빌미로 조정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천문 세가의 무덤도 생일잔치 후 태워버릴 계획으로, 물론 완벽한 구실을 붙여 백성들에게 설명할 생각이었다.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온 건, 안지여에게 아주 완벽한 빌미를 제공해 주는 셈이었다. 모든 것을 이리 부마 탓으로 돌리고 백성들에게 조정이 저지른 일이라고 알리면 천문 세가를 그토록 떠받들던 풍도성 백성들은 조정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안지여는 부마 이리율을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그의 내력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부이자 늑대파 문주라고 했으나 그건 전부 민간에 있을 때 신분에 불과했다. 결국 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는 길을 택한 이 사람은 극도로 지위와 재산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이런 사람을 다루기 어렵지 않은 건, 안지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부마 이리율의 마음 저 밑엔 상인이란 출신을 벗어던지고 상류 계층에 들어 후작 세가가 된 후 2~3세대가 지나면 철저하게 이전 상인의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목표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생일까지 아직 이틀 남았다.안지여는 두번 다시 소여쌍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은 가야 했다. 그의 생일잔치에 소여쌍이란 성주 부인이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성주 부부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해서,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허상을 심어주려는 것뿐이었다.소여쌍은 풍도성 동쪽 무쌍거에 살고 있었다. 혼인하던 그해부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