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 139화

Author: 유애
“태상황께서도 다행히 건강에 큰 지장이 없고, 네가 이런게 처음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짐이 너에게 건곤전과 어서방 청소라는 벌을 내리겠다. 청소를 마치기 전에는 밥도 먹을 생각마라. 우문호! 너도 함께 벌을 받거라.”

우문호는 명원제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왜? 내키지 않느냐?” 명원제가 분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리가 있습니까!” 우문호가 재빨리 대답했다.

명원제는 한숨을 내쉬며 “너희 둘을 보고있노라면 짐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매번 이렇게 사고를 치는 것을 보니 궁에서 할일이 없어 심심한 모양이야! 넌 다친거 호전되면 날짜를 골라서 경조부(京兆府)로 오거라. 내가 너에게 일거리를 주겠다. 앞으로는 빈둥거리지말고 조정에 도움이 되어보거라!”

말을 마친 명원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상황 쪽을 보았다.

“부황께서는 이런 쓸모 없는 것들에게 마음 쓰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에게 연민조차 아깝습니다. 부황에 총애를 힘입어 무슨짓을 할지 모르는 것들입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명원제가 말했다.

“가보거라!” 태상황은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예상밖의 은은한 미소가 보였다.

명원제는 목여태감을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밖으로 나갔다.

문을 나서자마자 명원제에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원경릉이 주사를 부린것을 명원제가 몰랐겠는가? 그녀는 왜 술을 먹고 그 행패를 부린걸까? 어쨌든, 어서방에서 있었던 일로 분노해서 술주정을 부린 것 아닌가.

태상황이 늘 원경릉을 감싸서 꾸짖을 기회를 찾지 못했는데 이번엔 원경릉이 제발로 찾아와 벌을 받을 구실을 만들어주니 명원제는 속이 다 시원했다.

우문호는 명원제의 말에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부황께서 한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내가 잘못들은게 아닐까? 부황께서 나를 경조부로 보낸다고? 나를 그렇게 신임하고 있다는 말인가?’

경도(京都)에서 경조부는 가장 중요한 기관인데 명원제가 우문호를 그곳으로 파견한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빨리 가서 청소하거라!” 태상황이 버럭 소리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명의 왕비   제 140화

    우문호는 온 힘을 다해 바닥을 쓸었다. 바닥을 쓰는 것은 간단해 보여도 이 안에 숨은 과학 지식이 있다. 낙엽은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잘 흩어진다. 고로 너무 힘을 줘서 쓸면 빗자루가 내는 바람에 낙엽이 오히려 더 흩어지게 된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우문호는 낙엽을 잘 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이런 단순 노동으로 온 집중력을 빼앗기니 오히려 그의 마음이 편안해졌다.“왕야. 난각 쪽은 조심하십시오. 거기 위에 말벌집이 있습니다. 그 곳은 건들지마세요.” 상선이 충고했다.“말벌집?”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원경릉이 스쳤다. “예. 말벌들은 사나워서 낮에는 말벌집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이따가 밤에 불을 지펴 태울 예정입니다.”“그래요. 잘 알겠습니다.” 상선은 말을 마치고 태상황이 있는 건곤전으로 향했다.순간 우문호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곧장 탕양을 불렀다.“너는 가서 왕비에게 이 곳으로 오라고 하거라. 내가 어서방을 청소하겠다고 전하고.”탕양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왕야 어서방에는 보는 눈이 많은데 왕야께서 청소를 하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괜찮다. 구사가 그 곳에 있으니 문 앞에서 망을 보라고 하면 돼. 사람이 들어오면 내가 구석에 숨어있으면 된다.” 우문호는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탕양에게 말했다.탕양은 그의 말을 듣고는 바로 원경릉이 있는 어서방으로 향했다.원경릉은 탕양의 말을 듣고는 우문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하며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빗자루를 들고 건곤전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는 그 곳의 낙엽은 이미 다 치워진 상태였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본왕이 아무래도 힘이 더 세니, 마당은 내가 다 쓸어두었다. 네가 난각과 옆 뜰을 쓸어주면 된다.” “왕야 고마워요.” 원경릉은 그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우문호는 난각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쪽이다. 가서 쓸거라” 라고 말했다.“이거 마저 쓸고 갈게요.” 원경릉은 바

  • 명의 왕비   제 141화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원경릉은 저 멀리서 탕양이 우문호를 부축해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문호의 얼굴은 누구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퉁퉁 부어있었고, 왼쪽 눈꺼풀은 주먹만하게 부어있었다.“말벌에 쏘였습니까?” 원경릉은 우스꽝스러운 그의 얼굴에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으며 물었다.상선도 우문호가 말벌집을 건들였다는 소리에 놀라 한걸음에 달려나왔다. 상선은 우문호를 보고 놀랐다.“왕야. 소인이 분명 말벌집이 있으니 조심하시라고 경고를 했는데. 왜 벌에 쏘이신 겁니까?”“벌집이 있는지 누가 알았어요!” 우문호는 입 뻥끗하기도 괴로운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소인이 아까 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상선이 되물으며 우문호 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갔다.“아이고. 쏘인 곳이 아프시겠습니다. 얼른 어의에게 가셔야겠어요.”상선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이 상황을 지켜본 원경릉은 드디어 이해가 갔다. 우문호는 말벌집이 있다는 것을 먼저 알고 일부러 탕양을 시켜 자신이 어서방을 청소하겠다고 선심을 쓰는 척을 했고, 그녀가 말벌에 쏘이는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사악할 수가 있지?’“어의를 어서방으로 부르시지오. 왕야께서는 어서방을 청소해야 하지 않습니까?” 원경릉은 담담하게 말했다.“고약한 여자야! 말벌은 너를 쏘지 않고 왜 나를 쏜 것이냐?” 우문호의 퉁퉁 부은 입술이 우스꽝스럽게 움직였다.“제 발을 제가 찍는다는 말 아시지요?” 원경릉은 어깨를 으쓱이며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우문호의 말이 맞다. 처음에는 말벌들이 원경릉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이리 오지마!’하고 소리를 치자 말벌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꾸어 다른 쪽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녀도 이 일이 정말 신기했다.우문호는 화가 나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지만 원경릉 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빗자루를 들고는 어서방으로 향했다.탕양은 그런 우문호를 쳐다보았다. ‘왕야께서 일부러 왕비를 골탕먹이기 위해 말벌집을 건들이다니, 어쩜 왕야는 날이 갈수록 유치해진다는

  • 명의 왕비   제 142화

    명원제는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 방금 손대학사가 다녀갔는데, 그는 입이 방정맞기로 소문난 사람이라서, 만약 우문호가 어서방을 청소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소문이 삽시간에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었다.“고개를 들거라!” 명원제의 목소리가 그의 왼쪽에서 들렸다.우문호는 걸레를 들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비파를 안아 반쯤 얼굴을 가리고서는 “부황!”이라고 외쳤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명원제는 입술이 씰룩거렸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아 웃음을 참았다.“못난 놈. 넌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같다!”우문호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 “목여야. 제독고를 발라주거라!” 명원제가 명령했다.“제독고?” 목여태감이 어리둥절해하며 “여기……” 라고 말했다.“어서 빨리!”목여태감은 서랍 안에서 작은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상자를 꺼내어 우문호가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왕야. 제독고는 조금 쓰라립니다. 참으세요”“예 괜찮습니다. 전 본래 아픔을 잘 못느낍니다.” 우문호는 태감을 시켜 자신에게 연고까지 발라주는 부황에게 감동했다.그러나 목여 태감의 눈빛이 약간 우문호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우문호는 뭔가 이상했다. 이러한 생각도 잠시 제독고를 바르자마자 온 몸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었다. 이게 어딜봐서 조금 쓰라리는 정도인가? 연고가 뼛 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살살! 살살 바르세요!”“이까짓 고통도 참지 못하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어?” 명원제가 말했다.우문호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명을 삼켰다. 그는 방금 목여태감이 자신을 불쌍하게 본 이유를 알것 같았다. 제독고를 바르고 난 곳은 마치 그의 피부가 아닌 것 같았다. 저릿저릿하더니 이내 감각이 없었다.게다가 눈꺼풀은 점점 부풀어서 이제 눈동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가보거라!” 명원제는 우문호의 꼴을 보더니 어서방 청소하는 벌을 면해주었다.“예. 물러가겠습니다.” 우문호는 황급히 두 손을 맞잡아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부은 눈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문간에

  • 명의 왕비   제 143화

    원경릉은 빗자루 대를 어깨에 걸치고는 “내가 왜 닥쳐야해? 어차피 이제 가봐야합니다. 상선께서 녹두탕을 준비해두셨다고 해서 그거 마시러 갈겁니다. 당신은 여기 혼자 남아서 천천히 미쳐가시든가요!”이 둘은 사이가 좋아질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문호는 구사의 부축을 받아 침상에 누웠다. 그는 퉁퉁 부어 비뚤어진 입으로 연신 원경릉의 욕을 했다.구사는 듣다 듣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 우문호에게 물었다.“왕야.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왜 그리 왕비를 괴롭히십니까?”“구사” 우문호는 화가 나서 침상을 두드렸다. “구사는 그녀가 방금 나한테 한 말은 듣지 못한겁니까? 감히 나에게 원숭이 엉덩이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왕야. 제가 하나만 묻겠습니다. 왕야는 이전의 왕비와 지금의 왕비 언제가 더 싫은겁니까?” 구사는 뒷짐을 지고 우문호에게 물었다.“다 싫어요.” 우문호가 대답했다.“예전에는 왕야는 왕비와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잖습니까? 왜 지금은 왕비 말 끝마다 다 대답하며 화내고, 또 도를 지나치는 행동을 하고, 도대체 왕비께서 변한겁니까? 아님 왕야께서 변한겁니까?” 구사가 물었다.구사의 말을 듣고 우문호는 갑자기 멍해졌다.‘그러게. 왜 지금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다 신경쓰이는거지? 이전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잖아. 내가 그녀를 너무 미워하고 증오해서?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된거지?’그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떠올렸다. 그녀가 최근에 한 일을 돌이켜보니 때로는 밉기도 하고, 가끔은 우문호 자신보다 일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도 했으며, 또 아주 가끔은 조금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그녀가 과도를 휘두르며 술주정을 부릴 때 말이다.그는 그가 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원경릉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호흡이 빨라지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도대체 왜?“왕야. 잘 생각해보십시오.” 구사는 이 한마디를 남긴채 밖으로 나갔다.우문호는 두 손을 뒷통수에 대고는 누워 눈을 가늘게 떴다. 상

  • 명의 왕비   제 144화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며 태상황에게 말했다. “이제 다섯째 얘기는 그만하고 검사 시작하겠습니다.”태상황은 누워서 옷을 걷어 젖히고는 차가운 청진기가 배에 닿기를 기다렸다. “과인도 한번 들어보자.”태상황이 말했다.“들리시죠? 이제 박동 수를 세십시오.” 원경릉은 그의 귀에 청진기를 걸어주며 말했다.태상황은 쿵쿵 뛰는 심장소리에 안도했다. 심장소리를 듣고있노 라니 마치 자장가를 틀어둔 듯 잠이 왔다.“박동 수가 몇이죠?” 일 분이 지났다고 짐작한 그녀가 태상황에게 물었다.“오십 육 번” 태상황이 노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원경릉이 다가와 다시 한번 들었다.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진전이 있네요.”상선도 호기심에 다가와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게 뭡니까? 재밌습니까? 소인도 해볼 수 있습니까?”“예. 물론이죠. 이걸 가슴에 두고 귀에 걸면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원경릉은 웃으며 청진기를 상선에게 주었다.상선은 그녀의 지시대로 청진기를 귀에 걸었다. “정말 신기합니다. 안에서 누가 북을 치는 것 같습니다!”“이런건 어디에서 살 수 있습니까? 소인의 집에도 하나 두고 싶습니다.” 그는 청진기를 만지작 거리며 원경릉에게 물었다.“제가 나중에 물어보겠습니다. 있으면 하나 사드릴테니 매일 태상황님의 심장 박동 소리를 관찰해 주십시오.” 원경릉이 답했다.“예. 알겠습니다!” 상선이 기쁘게 대답했다.푸바오가 어슬렁거리며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원경릉 발 밑에 왔다. 원경릉은 허리를 숙여 푸바오를 안아들었다. 푸바오는 혀를 내밀어 그녀의 손을 핥았다. 그녀는 그런 푸바오가 귀엽다는 듯 “장난꾸러기!” 라고 말했다. 긴 혀에서 침을 뚝뚝 떨어뜨리는 푸바오의 기분이 좋아보였다.“푸바오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상선이 말했다.“개는 영리하고 사람을 볼줄 압니다.” 원경릉이 푸바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지? 푸바오?”그러자 푸바오가 그녀를 보고 “왕왕”짖었다.상선은 웃으며 푸바오를 보았다. “어찌 푸바오

  • 명의 왕비   제 145화

    “왕비가 태상황님을 모시고 산책을 나가겠다고 했고, 태상황님께서도 허락을 하셨답니다.”명원제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태상황이 오랜 병치례로 건곤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밖으로 나가는구나 하는 안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보아하니 부황께서 손자 며느리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 우문호가 얼떨결에 보석을 얻었어.’따사로운 햇살 아래 태상황이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려보았다.“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구나.” 태상황이 탄식했다. 그런 태상황을 보며 원경릉이 빙그레 웃었다.“태상황님 이렇게 나와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사람의 몸은 기계와 같아서 자꾸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노후됩니다.”태상황은 이 말을 듣고 “그 말은 과인이 익히 들었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이 괜한 말을 했다 하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이라 주워담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익히 들었다고?’ 원경릉은 태상황이 익히 들었다는 말을 듣고 살짝 멍해졌다. “태상황님께서 제가 방금 한 말을 익히 들어보셨다고요?”“누가 그랬더라?” 태상황이 상선을 보며 물었다.상선은 고개를 저으며 “소인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왜 못들었어? 방금 그 말이 나는 귀에 익은 말이다.” 태상황이 말했다. “너는 기억력이 안 좋구나!”하며 상선에게 화를 냈다.“제가 늙어서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상선이 탄식했다.“태상황님 잘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말했습니까?”태상황이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 기억이 났다. 소요공이 말했다!”“소요공?” 원경릉은 소요공이 누군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소요공! 너도 모르는 것이냐? 너도 늙은게로구나.” 태상황은 아득히 먼 옛일을 떠올린 것 같았다. “아마 과인보다 몇 살 더 먹었을 거야. 전부터 병을 달고 살았다고 하던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태상황님 걱정마시지오. 소요공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답니다.” 상선이 답했다.원경릉은 소요공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 명의 왕비   제 146화

    귀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후와 현비도 앉아 있기 애매한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경릉이 태상황제를 부축하여 호숫가를 몇 걸음 걸었을까. 갑자기 몰려오는 피곤함에 태상황이 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원경릉이 외투의 앞을 잘 여며주었다.“됐다. 너는 어찌 이리 세심한 것이냐?” 태상황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히 이렇게 해야죠. 오늘 꽤 걸으셨지 않습니까. 땀 났을 때 찬 바람을 쐬면 안됩니다.”“새파랗게 어린게 어른 행색을 하는구나.” 태상황이 목을 쳐드니 원경릉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던 태상황이 저 멀리서 황후와 여자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태상황이 기운 없는 듯 “귀찮게 시리.” 라고 말했다. 원경릉이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곧게 서서 손을 모으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도 귀찮습니다.’황후, 귀비, 현비 그 뒤로는 궁인들이 따라 오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뜰이 사람으로 가득 들어찼다. 원경릉은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는 “황후마마, 귀비마마, 현비마마. 알현하옵니다.” 라고 하였다. 사실 원경릉의 문안이 잘못되었다. 관례에 따라 황후는 모후라 부르고 귀비는 적귀모비 그리고 현모비라고 불러야 했다. 하지만 태상황이 앞에 있으니 그 누구도 원경릉이 틀렸다고 비판하거나 관례를 들먹이지 않았다. 그저 그 셋은 앞으로 걸어 나와 인사를 했다. “신첩들 태상황님을 알현하옵니다.”태상황은 오늘따라 온화한 미소로 “다들 왔구나.” 라고 했다.“오늘 날씨가 좋아서 신첩들이 함께 나왔습니다. 태상황님께서는 몸이 어떠신지요?” 황후가 한걸음 더 앞으로 나와 공손하게 말했다.“좋다. 내가 몸이 안좋으면 이렇게 나와 돌아다닐 수 있겠나?” 태상황의 얼굴에 힘이 가득했다. “태상황님의 건강이 북당의 행복이옵니다. 그렇죠 초왕비?” 현비가 웃으며 원경릉을 보았다.원경릉은 잠깐 멍을 때리다가 현비의 물음에 당황했다. ‘방금 뭐라고 한거지? 제복이라고 했나?’“예, 제복입니다.” 원경릉은 방금 현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당

  • 명의 왕비   제 147화

    원경릉은 현비의 묘한 표정을 감지했다. 현재 태상황이 원경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현비와 정후부에서는 원경릉에게 별다른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뜻이 결코 그들이 그녀의 편이라는 것이 아니다. 주씨 가문이나 주명취가 나선다면 상황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게다가 우문호가 경조부윤을 맡게 되었다. 이는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을 던지는 꼴인데, 이 파장이 얼마나 거셀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명원제가 초왕인 우문호를 고깝게 보는 것은 궁 안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던 사실이다. 원래 이치대로라면 명원제는 절대 초왕에게 경조부윤이라는 중임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결정이 명원제의 뜻이 아닌 태상황이 뒤에서 힘을 쓴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지금 태상황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초왕비인 원경릉이었고, 그래서 그녀가 초왕을 경조부윤 자리에 올리기 위해 힘을 썼을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추측했다. 한순간에 눈엣가시였던 초왕이 황제의 총애를 얻게 되다니.‘만약 초왕이 황태자 자리에 오를 마음이 있다면?’우문호가 암살당할 뻔한 그날을 생각하니 원경릉은 소름이 끼쳤다.“본왕의 등을 좀 긁어줘라!” 옆에서 우문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등 뒤에 베개를 두고는 몸을 움직여 등을 긁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퉁퉁 부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혼자 긁어” 원경릉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우문호가 휘청거리며 두 손을 내밀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원경릉은 그의 얼굴을 보기만해도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두 손은 족발 같았다. 보아하니 옷으로 가려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벌에 쏘인 모양이다. ‘진짜 딱하네.’원경릉은 우문호가 꼴 좋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켠으로는 불쌍했다.“어디가 가려워?” 그녀는 손톱이 짧아서 옆에 있던 까끌한 천을 들어 그의 가려운 부분을 긁었다. “아니! 그냥 손을 넣어. 여기 옷깃 사이로!” 우문호가 몸을 베베꼬며 말했다.원경릉은 반쯤 무릎을 꿇고 일어나 그의 옷깃 사

Latest chapter

  • 명의 왕비   제3377화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 명의 왕비   제3376화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 명의 왕비   제3375화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 명의 왕비   제3374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 명의 왕비   제3373화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 명의 왕비   제3372화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 명의 왕비   제3371화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 명의 왕비   제3370화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 명의 왕비   제3369화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