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의 약 상자를 발견한 우문호소매 주머니 속에서 나온 건 두 가지 모양의 것이다.하나는 작고 정교한 상자로, 우문호는 이 상자를 본 적이 있지만 우문호가 봤을 땐 이렇게 작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종이 한 장으로 종이학 모양으로 접어져 있는데 펼쳐 보니, 아바마마께서 원경릉에게 하사한 황금 천냥 짜리 차용증으로 아래 국새가 찍혀 있다. 우문호의 머리 속이 복잡해 졌다. 줄곧 사람들의 멸시를 받아 온 여자로 미음을 받고 원성을 사던 사람이 어떻게 일순간 아바마마와 태상황 폐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지?우문호는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작은 단추를 스치니, ‘탁’하는 소리가 나며 열렸는데 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이상하다, 이 상자에 분명히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원경릉 말로는 그게 약이라고, 그리고 그 마취주사라는 것도 여기서 꺼내던데 전부 다 쓴 건가?다 쓴 거면 잘 됐다. 앞으론 우문호에게 대적할 수 없겠지.하지만 원경릉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상자면 숨겨줘야지, 암, 주정을 부리고 식칼 들고 덤비게 해주지.우문호는 상자를 들어 아무데나 침대 밑에 던져 넣었다.그리고나서 우문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상자가 바닥에 닿자 뜻밖에도 커진 것이다.원래부터 이 상자가 이상야릇하다고 생각했지만, 상자가 손가락 하나만한 크기에서 약 상자 크기로 커지는 걸 직접 자기 눈으로 보니 충격적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내 물건 훔쳤지?” 머리 위로 경악해서 쇳소리가 나는 원경릉의 목소리가 들린다.우문호는 고개를 들고 원경릉의 화난 눈과 마주치자 잠시 당황했으나 곧바로 약상자를 들고 일어나 침대 위에 놓고 약상자를 가리키며 화난 듯이 물었다: “얘기해봐. 이게 뭐야?”“약 상자잖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며, 아직도 어지러워서 머리가 잘 안 돌아 간다.“이 약상자는 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건데?” 우문호가 엄숙하게 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원경릉은 당황한 나머지 우문호에게 자기 물건을 훔친 죄를 추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
서로 비긴 걸로우문호가 평소처럼 말했다: “만약 못 믿겠으면, 이 상자를 가지고 입궁해 보던지, 네 머리가 목 위에 아무 일 없이 붙어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원경릉은 고대 시대에서 왕비 나부랭이를 하는 것이 이렇게 위험할 줄 상상도 못했다. 유구한 역사 속에 그 수많은 왕비들은 전부 아무일 없이 편안하게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거 아니야? 왜 원경릉 운명만 이렇게 기구해? 고대로 타임슬립한 지 고작 보름도 안 됐는데 원경릉은 벌써 반쯤 미쳐가고 있었다.이러나 저러나 죽음 뿐이라니 순간 의기소침해 지면서 우문호 앞에서 약상자를 들어 작게 축소시키고, 차용증서랑 같이 소매 주머니 속에 넣으며, 고개를 들고 턱을 하늘을 향해, “나 지금 자포자기 상태야, 앞으로 만약 날 괴롭히면 널 안고 콱 같이 죽어버릴 거야.”약상자가 갑자기 작아지자 우문호는 다시 한번 놀랐는데 원경릉의 말을 곱씹어보니, 오만방자한 것이 한이 없는지라 불같이 화를 내며, “식칼을 들고 베겠다고 난동을 부리더니, 아무도 베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만 상처 입힌 바보 멍청이가 감히 나를 위협해? 넌 낯짝도 없어?”“없어, 그래 난 아무것도 없다, 낯짝도 없고, 소양도 없고, 도덕도 없어, 어차피 이 목숨 부지 할 수 없으면, 제일 먼저 화를 당하는 건 너야.” 원경릉이 악랄하게 말했다.우문호는 의외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웃긴다고 생각했다.마치 개미 한 마리가 진흙 한모금을 머금고 호랑이랑 같이 ‘동귀어진(同歸於盡, 함께 죽을 생각으로 상대에게 덤벼들거나 상대와 함께 죽는 것)’ 하겠다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하하하!” 우문호는 큰 소리로 웃었다.원경릉의 안색이 이제서야 돌아왔다. 우문호가 파안대소 하는 것을 보고 전에 음산했던 모질고 독한 마음이 일소되어 정말 화가 나기도 하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하지만 원경릉은 우문호와 화해할 생각은 없으며, 그들의 앙심이 서로 얽혔을 뿐이다.우문호가 다 웃고 나자, 원경릉은 쌀쌀맞게: “웃지
원경릉 약 상자의 비밀원경릉은 당연히 우문호의 생각을 모르지만, 그저 양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니란 정도로 생각했다. 표면적인 패를 보면 우문호가 주명양과 결혼하는 것이 백 번 낫지만 주명양의 일생을 마치고 싶지 않아 이런 큰 기회를 흔쾌히 놓친다고 믿었다.완전 쓰레기인 줄 알았더니, 굳이 따지면 그냥 가정폭력남 정도다.“화해 하는 거다. 알았지?” 우문호가 원경릉을 보며 물었다.우문호의 말투가 좋은 것이, 카리스마도 우월감도 없고 원경릉을 바라보는 눈빛이 진실하다.원경릉은 지금 사방팔방이 다 적으로 둘러 쌓여 있어 우문호와 내전을 치를 필요도 사실 없다. 원경릉은 머리를 부여잡고 우문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진중하게: “화해 좋아, 하지만 조건이 있어.”“말해!” 우문호는 시원시원하다.“첫째, 또 그 얘기지만, 나한테 손대지 말 것.”“알았어!”“둘째, 다시는 후궁을 맞지 않는 방패막이로 나를 쓰지 말 것, 만약 혼사가 다시 거론된다는 가정하에.”우문호가 잠시 생각하더니, “알았어!”“셋째, 내 자유를 과도하게 간섭하지 말 것.”“이건 당연한 거고.” 우문호는 원래 원경릉을 간섭하고 싶지 않고, 이전엔 아예 원경릉을 상대조차 하기 싫었다.“넷째, 만약 기회가 되면 부탁이야 나랑 이혼해 줘. 우리 각자 행복하자.” 원경릉이 간절하게 얘기했다.우문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해,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다섯째……”우문호는 인상을 쓰며, “아직도 안 끝났어? 아니면 그냥 화해하지 말자.”“마지막으로 딱 한 개만.” 원경릉이 서둘러, “바로 내 약 상자에 관한 얘기는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우문호는 원경릉에 슬쩍 다가가며, “만약 내가 비밀을 지키려면 너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반드시 이 약상자가 어디서 왔고, 뭘 하는 거고, 왜 크기가 변하는지 나한테 얘기해줘야 겠어.”원경릉은 방금 머리속으로 날조할 스토리를 다 짜 뒀기에, 우문호의 말을 듣고: “이 약 상자 일은 나도 잘 모르지만, 열이 일
주명취를 꾸짖는 주재상원경릉은 사실 요 며칠동안 약 상자에 대해 대충 감을 잡고 있었는데, 약 상자는 원경릉의 실제 상황이나 그녀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대로 바뀌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현대에서 그녀의 죽음은 대뇌를 개발하는 약을 자기에게 주사했기 때문이다.연구 제조를 마친 약이 막 나왔을 때, 원숭이 몸에 주사하자 과연 원숭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 들었다. 연구가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땐, 원숭이가 그룹 총수가 보낸 양주를 몰래 훔쳐 마셔서 만취 상태로 달아났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원경릉이 대담하게 가설을 세웠다. 자신의 대뇌는 개발 되었으며, 개발 된 뒤 왜 영혼이 시공을 넘었는지, 아니면 관념만 탈출하게 되었는지 이 부분은 앞으로 연구가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물론 당장 연구할 조건이 안되고 그럴 틈도 전혀 없다. 사실 눈 앞에 닥친 상황이 생사의 갈림길이니 상당히 복잡하다.약 상자의 진동으로 두사람의 논쟁이 잠시 휴전상태가 되었다.어찌 됐든, 초왕부는 지금 전대미문의 화해의 시대를 맞아 오늘밤은 초왕 부부가 처음으로 같이 식사를 하는 뜻깊은 날이다. 이쪽은 화기애애한데 주부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오늘 제왕비가 친정으로 돌아왔고, 제왕은 일로 출타할 일이 있어 함께 오지 못했는데, 주재상이 일찍부터 돌아와 사람을 시켜 막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제왕비를 서재로 불러들였다.주명취가 서재로 들어가자 주재상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상황폐하가 중독된 일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주명취는 당황해서, “할아버지, 그 일을 손녀가 어찌 알겠습니까?”“넌 모른다?” 주재상의 눈빛이 맹렬하다.주명취는 생각을 해보더니, “기왕인가요?”“기왕은 바보가 아니야, 기왕이 이 시점에 태상황 폐하께 손을 쓰겠느냐?” 주재상이 주명취를 노려보며, “너 이 늙은이를 속이고 뒤에서 몰래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 아니냐?”주명취는 무고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손녀가 한 일은 전부 할아버지께서 분부하신 것에 따른 것으로 조금도 할아버지
주명취에게 진실을 말하게 하는 주재상주재상의 얼굴에서 노기가 서서히 사라지자, 태사의에 앉은 주재상은 오히려 우울하기 그지없어, “이게 마지막 기회다, 만약 네가 말하지 않으면 제왕비 노릇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주씨 가문에 말 잘 듣는 아가씨가 어디 한둘이냐.”“할아버지 손녀 말 좀 들어주세요, 손녀가 절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 주명취는 엉엉 울며 눈물이 눈에서 뺨을 타고 흘러 내리는데, 말할 수 없이 가련하고 처량해서 누구든 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재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줄곧 눈물을 믿지 않는다.“눈물을 거두고, 당장 나가거라!” 주재상은 차갑게 말했다.주명취의 얼굴에 마침내 두려움과 후회의 빛이 떠오르며, 급하게: “할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희상궁과 할아버지의 인연을 이용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어요, 확실히 제가 태상황 폐하의 약에 독을 넣으라고 희상궁에게 시켰습니다, 손녀는 그저 태상황 폐하께서 다시 좋아지셔서, 초왕이 다시 득세하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손녀도 큰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너는 어찌 희상궁과 나의 관계를 알았느냐?” 주재상의 목소리가 음산해서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주명취는 할아버지의 이런 무서운 표정을 본 적이 없어, 놀라서 입술을 덜덜 떨며 뭐든 다 줄줄 불며,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이 일은 할머니가 의견을 내신 거로, 할머니 말씀으론 희상궁이 널 책임질 거다, 네 뜻을 얘기만 하면 희상궁이 자기 목숨을 버리더라도 널 위해 하고자 할 거라고, 저도 안 믿었는데 희상궁에게 얘기했더니, 희상궁이 바로 알았다고 했어요.”말을 마치고 주명취는 다시 서둘러: “할아버지, 희상궁은 절대로 태상황 폐하를 시해하려 했던 사실을 입 밖에 낼 리 없고, 할아버지 이름이 거론될 일은 더더군다나 없으니 안심하세요.”주재상은 눈을 감고 얼굴 전체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게, 마치 나무토막 같다.주명취는 벌렁벌렁 가슴이 뛰어 손수건을 꼭 쥐고 어찌
주명취 동생 주명양을 만나다.키가 호리호리하고 용모가 수려한 남자, 주재상은 눈을 내리깔며, “왕비는?”“그녀는 총명한 사람이니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고 입단속을 철저히 할 것입니다.” 주재상은 눈을 감고 눈에 띈 살기를 거두었다.주명취는 서재를 떠나 바로 가지 않고 동생 주명양의 방으로 갔다.주명양은 올해 막 15살이 되었는데 용모가 주명취와 정말 흡사하지만 교만하고 자기자랑이 심한 편이라 주명취의 침착한 성정만 못하다.주명양이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의 병이 낫고 벼슬이 계속 높아져서, 이 때문에 주명양은 어릴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사랑을 받았고, 그 정도가 적자인 오빠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주명취는 사실 처음부터 할아버지는 동생을 초왕의 후궁으로 주실 생각이 없으셨던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만약 동생이 초왕부로 시집을 가면 정비의 자리는 조만간 동생 손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그래서 주명취는 주명양이 제왕의 후궁이 되는 것을 결사반대한 것으로, 이건 바로 정비인 주명취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할아버지가 주명취를 중용한 것은 그녀의 성격이 침착하기 때문으로 만약 자기가 사단을 일으키면 할아버지가 그녀를 버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여기까지 생각하고 주명취는 걱정 근심이 갈수록 더했지만 주명양을 만나니 여전히 큰 언니의 따듯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큰 언니,” 주명양이 주명취를 보고 뒤돌아오며 기뻐한다. 언니의 손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는 고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는 것이 방금 안에서도 가만 있질 않았음이 짐작이 간다, “언니한테 새 놀이 보여 줄게.” 주명취는 한 줄기 피비린내를 맡고 동생의 취미가 떠올랐다. 주명취는 진작부터 일고 있었지만 이번엔 또 누구를 괴롭혔나 걱정이다. 과연, 주명취를 끌고 간 곳에는 땅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하녀 하나가 보였는데, 그 하녀는 열 서너 살 즈음으로 머리 위에 그릇을 올려 놓았는데, 그릇 안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그 하녀가 누가 오는 것을 보고 아주 조금 움직이자, 자기도 모르
초왕과 결혼을 부추기는 주명취, 할머니의 변고주명양이 근심에 쌓여, “전에 엄마가 나를 초왕한테 시집보내려 했는데, 난 초왕한테 시집가기 싫었어, 그리고 후궁이라지 뭐야, 난 첩은 되고 싶지 않아.”주명취의 눈꼬리가 빛나며, “초왕은 그래도 나은 편이야, 태후께서도 초왕비를 심하게 질책하시진 않으실 걸, 초왕의 생모가 현비마마시고, 현비마마는 태후의 친조카거든, 이런 관계가 있으니 태후는 초왕부 사람들에게 상당히 관대하셔, 너도 봐, 초왕비가 혼인한 뒤로 입궁해서 문안한 적이 별로 없는데 태후께선 아무 말씀도 안하시잖아.”“초왕……”주명양의 머리속에 서서히 절세미남이 떠오르며,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성문에서 였는데 그 때는 전쟁에 승리를 거두고 조정으로 개선할 때라, 크고 멋진 준마를 타고 금빛 갑옷을 입은 모습이 위풍당당했다.사실 아주 어릴 때부터 초왕을 알고 지냈는데, 그때 초왕이 주부에 오면 모든 사람들이 초왕이 큰언니를 보러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주명양은 담담하게: “난 초왕에게 시집가고 싶지 않아.”주명취는 어리둥절해 하며, “왜?” 주명취는 사실 동생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 초왕이 올 때마다 주명양은 몰래 문 뒤에 숨어 훔쳐보곤 했으니까.“초왕은 원씨 집안 딸이랑 결혼했잖아, 원경릉같은 여자랑 결혼한 사람인데, 난 초왕 맘에 안 들어.” 주명양이 말했다.“초왕은 원씨 집안 사람의 흉계에 빠진 거야, 어쩔 수 없었던 거지, 게다가 할아버지께서 네가 혼례를 치르겠다고 하면 초왕이 원경릉과 헤어지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던 걸.”주명양은 주명취를 보면서 입꼬리를 올리고, “언니 왜 계속 나를 초왕한테 시집 보내려고 하는 건데?”주명취가: “언니는 널 위해서지, 초왕은 보기 드문 호남이라 그 사람한테 시집가면 분명 행복할거야.”주명양은 냉소를 지으며, “그래? 그렇게 좋은데 언니는 왜 안 갔어?”주명취는 눈빛이 다소 어두워지며, “그건 그 사람이 이미 원경릉이랑 결혼을 했기 때문이야.”“정후는 그때 공주부에서 왜 계략을
실망스런 제왕과 화가 난 정후말씀을 못하신다고?주명취는 넋이 나간 듯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너무 잔인해요, 너무 잔인합니다.”제왕은 의혹의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왜? 누가 잔인한 거요?”주명취는 할아버지의 그 냉정한 눈빛을 떠올리고 다시 이번 잔혹한 행동을 떠올렸다. 오랜 세월 본처로 살았건만, 그저 희상궁에 대한 험담 한 마디 했다는 이유로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어야 하다니.주명취는 문득 겁이 났다.제왕의 품에 몸을 파묻고 그녀는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연로하신 데, 이런 화를 입으셨으니,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제왕은 주명취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위로한다, “물어보니, 주부의 어느 계집종이 보약을 뜨거운 물이라고 할머니께 잘못 가져다 드렸는데, 할머니께서 몸이 허약하셔서 보약을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지라 성대가 망가져 소리가 나지 않게 되었다고 해요. 다음날 어의를 청해 맥을 짚어보니 괜찮다고 합니다.”주명취는 마음속으로 제왕의 멍청함을 꾸짖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변명조차 제왕은 믿고 있다.이런 단순한 바보에게 앞으로 어떻게 그녀가 의지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태자의 지위를 빼앗을 수나 있을까? 주명취가 가장 먼저 직감적으로 느낀 건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점이다.만약 문호 오빠였으면 진작에 사건을 통찰하는 비범함으로 앞으로 방비를 강화해 안전하게 그녀를 보호했을 것이다.우문호를 떠올리자 주명취의 마음이 아려 온다.그때 우문호를 함정에 빠뜨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전력을 다해 제왕을 밀고 있었고, 태상황의 병도 위중해서 문호 오빠를 돌아볼 여지가 없었기에 주명취는 눈물을 머금고 우문호를 포기했다. 그녀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싫었기에 몰래 사람을 시켜 정후부의 둘째 부인에게 접근해, 둘째부인이 정후에게 꾀를 전하게 하고 공주부에서 일이 터졌을 때, 주명취는 일부러 원경릉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처음엔 그저 황제가 체면을 중시하니 기껏해야 문호 오빠가 원경릉을 후궁으로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
북당의 황후가 의원을 이끌고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믿지 않았다. 약도성의 백성들조차 믿을 수 없었고, 감히 믿을 엄두도 없었다.우문택란이 이미 약도성에 왔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다들 그저 그녀가 약도성에 놀러 왔고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약도성의 성주로서 약도성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초토화되었고, 재건하려면 조정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북당의 조정이 약도성을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약도성 백성들은 줄곧 조정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조정이 이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황후가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도성은 조정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지진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원경릉 황후가 이끄는 의원들이 약도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밤낮없이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약도성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며 황후께서 약도성에 오신다고 얘기를 전했다.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적대시하고 북당을 적국으로 여겼던 약도성 백성들이, 이제는 원경릉을 환영하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이는 택란이 지진을 미리 알아차린 것과 구조 활동 덕분이었다.원경릉은 백성들의 뜨거운 환영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고,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어머니!”군중 속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릉은 단번에 딸을 찾아내고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택란은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머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많아요!"택란이 흐느끼며 말했다.원경릉은 딸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원경릉은 딸을 품에 꼭 안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
한 마을 주민이 눈물을 닦으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오. 조정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길 바라오. 우리가 죽어야 조정은, 이 약도성을 완전히 삼킬 수 있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소.”택란은 화가 나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왔잖냐! 빨리 계속 파시게!”주민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웬 꼬마가, 넌 누구냐?”택란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 속이라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약도성의 성주, 우문택란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산사태가 난 지역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작은 몸집이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작아 보였다.황실의 공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주가 이런 곳에 직접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어야 할 존재다.그녀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접근한 곳의 흙을 한 겹씩 옮겨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 요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가 급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약도성의 지진은 강북부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낡은 집도 무너졌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약도성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왕과 안왕은 신속히 구조 병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택란이 약도성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 여태껏 택란이 스승과 함께 떠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네 오빠들은 바로 병사를 데리고 약도성으로 향했다. 지진 발생 12 시진 후 약도성에는 8천 명 이상의 병사가 합류했다.약도성의 백성은 조정이 지원군을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이 약도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과거에도 가뭄, 메뚜기 떼, 산사태 등의 재난이 일어났지만, 북막조정은 몇 포대의 쌀만 보내며 형식적인 구조를 했을 뿐이다.약도성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그럼... 호명, 가십시다!”주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택란의 말을 믿었다.호명도 주 아가씨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지진이 생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귀찮게 한 정도로 끝날 테지만, 정말 지진이 발생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게다가 약도성의 백성들은 조정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더 미움을 사도 중요하지 않다.일행은 즉시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백성에게 넓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알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백성은 역시나 원치 않았다.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단호하게 명령한 일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 나갔다.그러나 문제는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떠난 후 많은 백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게다가 일부 폭도들은 이를 계기로 병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다.부분 병사가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는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은 거의 조정을 적대시하는 곳이었다. 너무 외진 곳이고 여인도 적은 곳이라, 이곳 남자들은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고, 금나라의 선동이 더해져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이 몇몇 마을에서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병사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백성을 깨우자, 폭도들이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압도당해 심하게 얻어맞았다.결국 병사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약도성에서 대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약 만 명 정도였다. 대부분 병사가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정이 백성을 괴롭힌다고 욕하며 약도성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주 아가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말했다.“성주께 말씀드려서 집을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호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를 찾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뱀이야! 부엌에 뱀이 들어왔다! 어서 뱀을 잡아! 성주께서 놀라시면 안 된다!”몇몇이 부엌으로 몰려가 한바탕 소동 끝에 뱀 세 마리를 잡아냈다. 비록 정원에 뱀이 나타나지만,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찌 집 안으로 들어온 걸까?택란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오?”공연이 서둘러 대답했다.“성주님,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뱀이 있습니다.”“뱀이 집 안으로 들어왔소?”택란은 뱀을 힐긋 보았다. 그 뱀은 독성이 없는 풀뱀이다.“어제 요리사가 쥐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오늘은 뱀이 여기저기 기어다니네. 정말 이상한 일이오.”“별일 아닙니다!”공연은 손을 씻고 와서 말을 이었습니다.“제가 성주님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택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직 정오였고, 태양이 세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약도성에 예전에 지진이 난 적이 있었느냐?”택란이 고개를 돌려 요리사에게 물었다.요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지진이요? 땅이 움직이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려서 집도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습니다.”“성주님 겁주지 말고 할 일 하시오.”공연은 택란이 놀랐을까 봐 걱정하며 요리사에게 떠나라 했다.택란은 방으로 돌아간 뒤, 꼬마 봉황을 불렀다.뱀, 곤충, 쥐, 그리고 새는 지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꼬마 봉황은 영적인 새이기에 더더욱 그렇다.꼬마 봉황이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꼬마 봉황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큰일이 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설마 지진이 나는 건 아니겠지?”택란은 바닥에 엎드려 귀를 대고 지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그녀의 청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기에, 지진이 오고 있다면 땅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하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택란은 이에 관해 세게 명을 내렸다.성내 백성들은 택란이 이 도시의 성주이자 진국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택란이 낭산의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낭산 도적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이곳의 백성들은 평생 황실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자, 감정이 폭발하여 약도성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황실에 대한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약도성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은 백여 명에 불과했고, 셈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서 원망은 쉽게 극대화되었다.특히 금나라 사람들이 부추기자,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처음엔 택란도 외출을 하곤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이 격렬해지자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가 날아왔다. 다행히 호명이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경호를 강화하면서 크게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양두는 백성들과 다투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자네들이 원망해야 할 대상은 북막의 황실과 진가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북당을 침략하려다 패배하는 바람에 약도성을 내놓은 것이오. 다들 그때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소? 전쟁을 지지해 놓고 이제 와서 북당을 원망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양두는 기세가 등등했고 욕도 도리가 있어, 백성들을 순간 잠잠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돌멩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양두는 머리를 감싸며 도망쳐야 했다.이들은 이성적으로 도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었다.호명은 상황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해, 택란에게 경성으로 돌아가길 권유했다. 하지만 택란은 단호히 거절했다. 첫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십 년이 지나도 변화는 없을 것이고, 약도성은 영원히 이 상태로 남을 것이다.호명은 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호를 더욱 강화했다.그는 주 아가씨에게도 특별히 경계를 강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