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런 제왕과 화가 난 정후말씀을 못하신다고?주명취는 넋이 나간 듯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너무 잔인해요, 너무 잔인합니다.”제왕은 의혹의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왜? 누가 잔인한 거요?”주명취는 할아버지의 그 냉정한 눈빛을 떠올리고 다시 이번 잔혹한 행동을 떠올렸다. 오랜 세월 본처로 살았건만, 그저 희상궁에 대한 험담 한 마디 했다는 이유로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어야 하다니.주명취는 문득 겁이 났다.제왕의 품에 몸을 파묻고 그녀는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연로하신 데, 이런 화를 입으셨으니,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제왕은 주명취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위로한다, “물어보니, 주부의 어느 계집종이 보약을 뜨거운 물이라고 할머니께 잘못 가져다 드렸는데, 할머니께서 몸이 허약하셔서 보약을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지라 성대가 망가져 소리가 나지 않게 되었다고 해요. 다음날 어의를 청해 맥을 짚어보니 괜찮다고 합니다.”주명취는 마음속으로 제왕의 멍청함을 꾸짖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변명조차 제왕은 믿고 있다.이런 단순한 바보에게 앞으로 어떻게 그녀가 의지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태자의 지위를 빼앗을 수나 있을까? 주명취가 가장 먼저 직감적으로 느낀 건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점이다.만약 문호 오빠였으면 진작에 사건을 통찰하는 비범함으로 앞으로 방비를 강화해 안전하게 그녀를 보호했을 것이다.우문호를 떠올리자 주명취의 마음이 아려 온다.그때 우문호를 함정에 빠뜨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전력을 다해 제왕을 밀고 있었고, 태상황의 병도 위중해서 문호 오빠를 돌아볼 여지가 없었기에 주명취는 눈물을 머금고 우문호를 포기했다. 그녀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싫었기에 몰래 사람을 시켜 정후부의 둘째 부인에게 접근해, 둘째부인이 정후에게 꾀를 전하게 하고 공주부에서 일이 터졌을 때, 주명취는 일부러 원경릉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처음엔 그저 황제가 체면을 중시하니 기껏해야 문호 오빠가 원경릉을 후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다초어의는 이 날도 여전히 와서 우문호의 상처를 치료하며 이 봉합선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자, 탕양이 사람을 시켜 원경릉을 모시고 왔다.원경릉은 초어의에게: “이건 녹는 실이라 인체에 흡수되요, 실밥 빼낼 필요 없어요.”“녹는 실을 만들 수가 있습니까? 대단해요, 대단해!” 초어의는 감탄하며 말했다.우문호는 오히려 상당히 괴로워하며, “그 말은 앞으로 이 실을 달고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 아니냐?”“맞아요, 실 없으면 죽고 실 있으면 살죠.” 원경릉이 비꼬듯이 말했다.요 이틀간 같이 있는게 유쾌해서 자연스럽게 서로 웃긴 소리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됐다.서일은 초어의의 의술에 탄복하며 왕야의 상처를 치료하는 틈에 얼른 앞으로 나가 가르침을 청하며, “어의, 요즘 내 몸이 이상한데, 날 좀 봐줄 수 있겠습니까?”“서시위님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초어의는 겸손하고 온화해서 서일이 일게 왕부의 시위라고 함부로 보지 않는다.“요즘 계속 졸고, 머리가 멍한 게, 방귀가 잦고 냄새가 심합니다. 입냄새도 심하고 머리에 기름이 끼고 엉덩이에도 종기가 몇개나 났습니다. 어의, 이리 와서 내 종기를 좀 봐 주십시오, 특히 이게……” 말하며 어의를 병풍 뒤로 끌고 간다.원경릉이 바로 병풍 앞에 앉았는데 서일의 옷 벗는 소리가 들려 상당히 어색했다.우문호는 병풍 쪽으로 화를 내며: “서일, 당장 방에 가서 벗어.”병풍안에서 서일의 긴 방귀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리더니 막판에 거의 폭발음 같은 것이 울리며 순간 뚝 하고 그쳤다.“딱 이 냄새예요, 어의, 보세요, 저 무슨 병인가요.” 서일은 우문호의 열 받은 모습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어의는 코를 막고 밖으로 도망가며, “알았어요, 서시위, 무슨 병인지 알았습니다, 비허곤습(脾虛困濕)으로 비위가 약해지고 소화기능이 떨어진 것이니 돌아가서 이틀 치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냄새가 심해서 원경릉은 숨을 멈춘 채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탕양이 얼른 뒤를 따라 나오며 우문호는 기다시피
정후부의 초대진심으로 항복이다.천천히 시선을 넓혀, “그럼 어서 나한테 이혼장 써주면 되겠네, 나보다 더 예쁜 여인을 왕비로 맞으면 돼지.”우문호는 마음 속으로 열이 뻗쳤지만, “조만간 그럴 거야.”왕비 노릇하기 싫다는 것처럼 말하는데, 자기가 되겠다고 달려든 거 아닌가?우문호는 화제를 바꿔, “방금 탕양 말이 정후부 사람이 다녀갔다 던데.”“너 계속 거기 앉아 있을 거야?” 우문호는 어쩔 줄 모른다.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왕야가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아서, 왕비의 책임을 다하도록 여기서 널 돌보겠다고 했어.”“누가 너한테 돌봐 달라고……” 우문호가 이렇게 말하다가 곧 뜻을 알아차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희 아버님 초조하신 가 보다.”“왕야 덕분이지, 이건 시작에 불과할 것 같지만.”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화를 내며: “우린 비겼으니까 누구도 말 꺼내기 없기다.”“말도 못 꺼내냐, 왕야 너 켕기는 게 얼마나 많은 거야?”“원경릉!” 우문호가 일갈하며, 그녀의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니 다시 마음이 약해서 말을 삼키고, “네 입을 꿰매지 못한 게 진짜 한이다.”원경릉의 눈이 아래를 향해, “봉합하게? 왕야는 내가 아직 완전히 숙련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너 지금 내 덕에 다 나았잖아?”우문호는 기가 막히고 창피하기도 해서, “이 일은 다시 거론하지 말자, 다시 거론하면 일가족을 멸할 줄 알아.”원경릉은 킥킥거리며, 바로 비꼬아 주려다 탕양이 다시 정후부 하인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봤다.“왕비 마마, 정후부 사람이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탕양이 말했다.원경릉은 살짝 눈을 들고, “무슨 일이야?”그 하인은 초왕을 보더니, 황급히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며, “소인 왕야를 뵙습니다, 왕비마마를 뵙습니다.”“무슨 일이냐?” 초왕이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하인은 이런 엄숙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를 듣고 이빨을 덜덜 부딪히며, “예…… 후작 나리께서 소인에게 마마께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정후의 생각과 둘째 노마님의 방문어의가 진찰을 마치자 정후는 비로소 어의와 서일을 만류해 본관에서 차를 마셨다.정후는 넌지시 서일에게, “왕야의 상처는 좀 나아지셨나?”“후작 나리께서 마음 졸이셨지요, 왕야는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서일은 역시 바깥이 제격이다.“그러면……” 정후는 웃으며, “왕비마마는 손수 왕야를 돌보시는가? 내 딸이 우리집에서 워낙 응석받이로 자라서, 왕야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왕야는 왕비마마께 화를 내신 적이 없습니다.” 서일이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애먼 소리를 하는데 당연히 이건 탕양이 당부한 것으로, 만약 정후가 왕비와 왕야의 관계가 공고하다는 것을 알면 함부로 왕비마마를 못살게 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정후는 그다지 믿지 못하겠지만, 하인이 말하길 왕비마마가 왕야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는 건 직접 눈으로 봤다고 하니 혹시 원경릉이 정말 초왕의 환심을 산 게 아닐까?어의가 여기서 절묘한 어시스트를 펼치는데, 어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탄식하길: “왕야와 왕비마마의 사이가 정말 좋으시기도 하지, 요 며칠 왕야의 상처를 치료하시느라, 왕비마마께서 내내 옆에 계셨으니.”당연히 어의는 원경릉이 다가온 게 어의를 몰래 스승으로 삼으려는 의도인 것을 몰랐다. 원경릉은 한의학은 잘 모르지만 한의학 요법은 신뢰하는 것이, 무릇 약물 연구 개발을 이렇게 오래 하다 보면, 한약에서 얻어낸 성분으로 약을 만든 경험도 있기 마련이다. 말라리아와 홍반성 루프스를 치료하는 아르테미시닌도 개똥쑥에서 직접 추출하거나, 개똥쑥의 함량이 비교적 높은 청호산(青蒿酸)에서 추출해 반합성하여 만든다. 그래서 요 며칠 원경릉은 계속 어의에게 한의학을 배우는 방법을 생각했다.정후는 초어의의 말을 듣고, 이건 믿을 만하다고 여겼다.초왕이 왜 원경릉에 대한 관점을 바꿨는지는 상관없고, 어찌 됐든 잘된 일이지만 지금 주씨 가문엔 밉보인 게 확실하고 되돌릴 여지도 없으니 차라리 초왕에게 기대하는 편이 낫다.초왕은
초왕을 보러 온 정후부 둘째 노마님 일행둘째 노마님의 태도는 점점 더 온화해 지며, “왕야를 방해 하는 건 아니겠죠? 만약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왕비께서 저희 대신 안배를 좀 해 주세요.”원경릉이: “안배할 필요 없어요, 직접 소월각에 가시면 초왕은 안에 있습니다.”난씨가 이 말을 듣고, 일부러 의아한 척 하며, “왕야와 왕비마마가 같은 방을 쓰지 않으세요? 두 분은 부부인데다 아직 후궁도 없는데 왜 각방을 쓰세요?”이런 극도로 도발적인 말을 원경릉은 다행히 그 자리에서 직접 듣지 못했으나 희상궁이 옆에서: “왕야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으셔서 왕비마마의 잠을 방해할까 소월각을 옮겨 가셨습니다.”난씨는 희상궁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 넌 누구지? 왜 한번도 본적이 없지?”“희상궁입니다, 태상황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지요, 태상황 폐하께서 초왕부에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을까 싶어 희상궁을 출궁시켜 제 시중을 들게 하셨죠.” 원경릉이 평소처럼 말했다.둘째 노마님이 이 얘기를 듣고, 얼른 일어나 희상궁에게 예를 갖추며, “태상황 폐하 곁에 계시던 희상궁이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실례했습니다.”“둘째 노마님 괜찮습니다, 전 한낱 종입니다. 주인을 모실 뿐이지요.”희상궁의 주인은 초왕비다. 둘째 노마님 일행은 초왕비를 전혀 공경하지 않으면서, 초왕비의 종인자신에게 예를 갖추다니, 이게 대체 어느 나라 법도란 말인가?희상궁의 비유를 둘째 노마님은 당연히 알아 차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상궁은 태상황 폐하 곁에 있던 사람으로 어엿한 궁녀신데, 저는 봉호를 받은 것이 없으니 예를 갖추는 것이 마땅하지요.”희상궁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이미 참기 힘들었다.봉호를 받은 게 없는 몸이, 그래 이번엔 또 무슨 법도를 내세우려나? 인사 예절은 인사 예절일 뿐이다. 이 점을 강조할 필요 없다.원경병은 원경릉을 보고, “사람들이 요즘 언니랑 왕야가 잘 지낸다는데 정말이야?”원경병은 매사 대놓고 말하는 편으로 알고 싶으면
우문호는 서일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흰 비단 옷을 입고 허리에 금옥 허리띠를 두른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 햇빛이 비쳤다. 환하게 빛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병든 군주 같았다. 느리게 한걸음 한걸음 걷는 그의 모습이 매우 힘겹게 보였다.힘겨게 도착한 우문호는 원경릉을 본 순간 미간이 부드럽게 풀리며 입가에 살짝 미소가 드리웠다. “왕야 괜찮으십니까?” 둘째 노마님이 서둘러 안부를 물었다. 옆에 있던 난씨가 놀란 듯 벌떡 일어났다. 우문호는 원경릉에서 둘째 노마님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둘째 노마님. 본왕은 괜찮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원경릉의 곁으로 다가가서는 살짝 짜증 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화가 났습니까? 오늘은 본왕을 보러오지도 않고, 화내지 마시지오." 원경릉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야 도대체 어쩌자는거야? 나를 위해서 일부러 다정한 척 하는건가? 사실 이럴 필요는 없는데.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화안났습니다."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가 안났으면 됐습니다. 오늘 본왕과 함께 밖에 나가자고 했던거 아직 유효합니까?”라고 하였다.‘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아. 손님이 계십니다.” 우문호는 난감한 표정으로 둘째 노마님을 보았다. “그래요? 그럼 못 나가는 건가요?”“시간이 늦었네요. 늙은이는 돌아가 봐야겠습니다.”둘째 노마님이 서둘러 채비를 했다. “이렇게 일찍이요? 좀 더 앉아계시지요.” 우문호가 적극적으로 둘째 노마님에게 말했다. “아니옵니다. 늙은이가 아직 할일이 있습니다. 제가 시간이 있으면 왕야와…… 왕비님을 찾아뵙겠습니다.”둘째 노마님이 말을 하며 난씨와 원경병에게 눈빛을 보냈다. 원경병은 “방금 누이께서도 제게 여기서 며칠 묵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럼……” 둘째 노마님은 재빨리 우문호의 안색을 살피더니 그의 표정이 그닥 불쾌해 하지 않는 것 같자 “그럼 왕비를 잘 모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신경쓰이게
“네가 궁 안에서 술에 취했고, 건곤전에서 일어났던 일이 기억이 안나느냐?”우문호는 하얗게 질린 원경릉의 표정이 우습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원경릉은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탁자 위로 올라가 욕을 퍼부은 것이 기억이 났다. 그 상황에서도 다행스럽게 그녀에게 약간의 이성이 버티고 있었기에 아무도 못알아 듣는 영어로 욕을 했었다.하지만, 세상에…… 건곤전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니.“구사의 말에 의하면 황조부께서 너 때문에 놀라서 나한상에 숨어 찍 소리도 내지 않으셨다는데!” 우문호의 말에 원경릉의 머릿 속에서 끊겼던 필름이 이어지는 듯 했다. 원경릉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좌절했다. 그녀는 그런 그녀가 웃겨 죽겠다는 듯한 표정의 우문호의 얼굴에 화가 났다. “모두 너! 당신 때문이라고!”우문호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 말 다신 하지마. 우린 비긴거야.”비기긴 뭘 비겨!?원경릉은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우문호의 처지도 나아지지 않았고 그를 미워해봤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다. 입궁해서 사죄를 드려야겠습니다.”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며 “환복하고 먼저 나가계시면 나도 금방 환복하고 나갈게.”라고 말했다.우문호는 딱히 내키지 않는다는 듯 느릿느릿 일어섰다. “어쨌든 본왕의 상처도 많이 괜찮아졌으니 궁에 같이 들어가서 네가 황조부께 변명을 할때 몇마디 거들어 주겠다.”“고마워!” 원경릉은 태상황을 보면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가 같이 가 준다니 내심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그 시각, 원경병은 지낼 곳을 고른 후에 바로 봉의각으로 돌아왔을 무렵 옷을 차려입고 나가는 우문호와 원경릉을 보았다. “두분 어디가십니까?”“입궁을 해야해. 여기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원경릉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원경병이 그녀의 표정을 보고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얼른 궁으로 들어가보라고 손짓했다. 원경릉은 가끔 자신의 여동생이 어른스럽고 이해심도 많은 것 같다고 느꼈다.
우문호는 아프다는 듯 가슴을 문질렀다. 이 사태만 진정되면 반드시 원경릉은 아무도 없는 암실로 데리고 가서 개를 풀어 물어 뜯도록 냅둘 것이다. 씩씩거리는 그를 보니 원경릉은 속이 다 시원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 불안감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이도 잠시 파랗게 질린 우문호의 얼굴을 보니 자신이 너무 세게 물었나 후회가 밀려왔다. “미안.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고의는 아니야.”우문호는 그녀의 진실한 눈빛에 마음이 흔들리는 자기 자신을 다잡았다. ‘마음 약해져서는 안된다. 지금 이 여자는 미안한척 하고 있는거다 절대 믿으면 안된다.’“어휴.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미친 여자처럼 돌변해서 미안해요.” 원경릉은 의기소침해진 표정으로 끊임없이 그에게 사과를 했다. “저는 당신이 정말 나를 위해주는 것을 압니다. 제 친정까지 와서 저를 도와주시고, 제가 술에 취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주절거렸던 것도 기억해주고……. 사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항상 당신의 말에 반박하고, 대들고……”우문호는 진정이 된듯 냉소를 띄며 “됐다. 본왕은 사사건건 알고 싶지 않다.” 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그의 말이 고마웠다. “저는 왕야가 도량이 넓은 분인걸 압니다. 앞으로 태후마마 앞에서 제 칭찬을 좀 많이 해주십시오.”“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했다. 본왕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왕야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남자 다루기 은근 쉽네. 칭찬 몇마디 툭툭 건네면 바로 넘어온다니까.’사실 우문호는 원경릉이 수작을 부리는 것을 눈치챘지만, 눈 한번 딱 감고 맞장구 쳐주기로 했다. 이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였지만, 오히려 궁에 들어가는 그의 마음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원경릉과 혼인을 한지 1년. 그 동안 매번 궁으로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궁에서 그를 아끼는 모든 이들의 눈에 근심이 가득했었다.마차가 궁으로 점점 가까워질 수록 그는 이유없이 기분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생각이 훨씬 개방적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기에 의식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도 아버지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대에서 한 번, 즉위 후에 또 한 번 의식을 치렀다.주 아가씨는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객사 일꾼에게 소식을 물었다.그러자 일꾼은 황제가 곧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혼례요? 정혼 아니었습니까?”“정혼? 정혼이라니? 그럼 이미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되었는데, 어찌 바로 혼례를 하지 않다는 것이냐?”“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정혼한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미래의 황후가 북당 사람이 맞느냐?”일꾼이 말했다.“예. 북당 출신의 아가씨라고 합니다. 게다가 황제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었습니다.“택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경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 은인의 언니라는 말을 믿다니 말이다.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녀와 혼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혼사를 어찌 장난처럼 다룰 수 있단 말인가?택란은 경천 황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저 정치적인 판단에서만큼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택란은 원래 이틀 정도만 량주를 둘러본 뒤 바로 궁으로 들어가 알현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혼례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며칠 더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궁으로 들어가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가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차리면, 정혼식을 진행할지 말지 애매해질 것이기에, 택란은 며칠 동안 객사에 머물며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그렇게 살펴보던 중, 주 아가씨가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안왕과 위왕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칠 동안 다른 나라 사절들은 계속 장관에 묵고 있었는데, 택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 무렵 장관으로 갔다.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이 이미 황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