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로 돌아오는 내내 원경릉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난 현비의 덕을 본 게 하나도 없는데, 왜 빚은 나보고 떠안으라는 거지? 도대체 팔십만 냥을 어떻게 마련하라는 거야…….’왕부로 돌아온 그녀는 회계방으로 들어가 주판을 들고 미친 듯이 계산기를 두들겼다. 잠시 후, 그녀의 계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목여 태감과 호부상서(戶部尚書)가 초왕부로 들어왔다. 태감은 어명이 적힌 종이를 꺼내어 읽었는데 그 내용이 태자비가 현비를 위해 칠십만 냥을 지불하고, 현비는 가지고 있는 십만 냥을 내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회계방 안에 있던 금고 하나가 마차에 운반되어 실려나가는 것을 보고 얼굴이 죽상이 되었다. ‘내가 써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은화를 어처구니 없이 빼앗기는구나! 부황께서는 성격도 급하시지 어찌 바로 가져가시나! 우리가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러시나?’목여 태감은 원경릉에게 다가와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태자비께서 효심이 참 깊으십니다.”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호부상서는 태자비가 북당을 위해 칠십만 냥의 은화를 기부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호부를 운영할 은화가 부족했는데 이렇게 태자비가 기부를 해주는 호부상서는 입꼬리가 귀까지 걸렸다.원경릉은 실성한 표정으로 떠나가는 마차를 바라보았다.“칠십만 냥이 이렇게 증발하는구나!”그녀의 서글픈 외침 또한 하늘로 증발했다.목여 태감은 타고 온 마차에 오르며 원경릉에게 들어가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사식이와 만아의 부축을 받아 겨우 대청에 앉았다. 그녀는 말할 기운도 없다는 듯 대청 기둥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식이와 만아는 마음이 몹시 아렸다. 그러나 그녀들 또한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원경릉이 북당을 위해 은화를 기부했다고만 생각했다. 사식이는 원경릉의 대담한 결정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칠십만 냥이라는 큰 금액을 기부하시다니! 태자비 정말 대단하십니다!”“지금 몇 시지?”원경릉은 사식이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유시(저녁 6시)가 지났으니 태자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들고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보았다.“무슨 일이야? 기분 안 좋아? 누가 건드렸지?”원경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미소를 지었다.“기분 나쁜 거 없는데? 저녁을 많이 먹었더니 체했나 봐.”우문호는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거짓말, 너 오늘 저녁밥도 안 먹었다며, 왜 한순간에 돈이 없어지니까 속이 뒤집혔어?”우문호의 말을 들은 원경릉은 하마터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써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칠십만 냥을 그냥 빼앗겼는데 어찌 속이 뒤집히지 않겠는가?“아니라니까. 아까 부황과 호비 마마와 점심을 먹었는데 그때 체한 것 같아.”원경릉이 말했다.“오늘 입궁했었어?”“응. 부황께서 입궁하라고 하셨어.”“부황이 분명 너에게 은화를 달라고 했지? 내가 부황께 말씀 다 드렸는데 왜 또 너를 부르신 거지? 내가 이틀이면 은화를 마련할 수 있다고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말이야. 오늘 저녁에 구사와 냉정언에게 각각 십만 냥의 은화를 빌렸어.”“은화를 빌렸다고?”“응. 두 사람 모두 3년 안에 이자 없이 원금만 갚으라고 했으니 걱정 마. 그나저나 은화가 마련되는 대로 부황께 말씀드린다고 했더니…… 성격도 급하시지. 부황께은 내 마음이 바뀔까 봐 너를 불렀나 봐.”“……”원경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설마 부황께서 은화를 가져가셨어?”“응.” 원경의 낯빛이 이내 어두워졌다.“그럼 내가 내일 이십만 냥을 다시 왕부 금고에 채워둘게.”“근데, 왜 이십만 냥이야?”“나더러 처음엔 오십만 냥을 내라고 하더라고? 내가 그만한 은화가 어딨겠어? 먹고 죽어도 없다고 했지.”“뭐? 오십만 냥?”“그렇다니까! 내가 부황께 현비도 부황의 부인이지 않냐며, 현비가 잘못했으면 부황도 일정 부분 보조를 해야 한다고 했지. 나는 죽어도 이십만 냥 이상은 보조하지 못한다고 했어. 그리고 남은 벌금은 소씨 가문이 부담하게 했지.”“뭐라고? 이십만 냥?”우문호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십만 냥…… 너무 많지?
원경릉은 침상에 가부좌 자세로 앉아 복식호흡으로 자신을 진정시켰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야…… 돈이라는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야. 일단 의학원 규모는 크게 할 필요가 없으니 작게 만들어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고 조어의 보고 운영을 해보라고 해야지. 그리고 졸업한 학생들은 혜민의서에서 일할 수 있게 체계를 확립하고 그 후에 규모를 늘리고 학생들을 많이 모으면 돼.’ 원경릉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자기합리화를 했더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우문호를 보았다.“이제 자자!”우문호는 아까보다 표정이 나아진 그녀의 손을 잡고 침상에 누웠다. 그 역시도 현비 때문에 지출되는 은화가 아까웠지만, 지금 은화보다 중요한 것은 옆에 누워있는 원경릉이었다. 십만 냥을 더 주었다고 해도 원경릉이 줬다면 충분히 용서가 됐다. 우문호는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을 땐 운동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원경릉에게 침상 운동을 하자며 허리에 손을 얹으려던 찰나 그녀가 휙 고개를 돌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줘야 해?”“뭘 얼마나 줘?”“됐다. 너랑 나랑 이런 얘기를 해서 뭐해. 네 돈이나 내 돈이나 그게 그건데. 초왕부의 은화를 채우려면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꺼내와야 한단 말이지……”“뭐라는 거야?”“다섯째…… 사실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원경릉은 그와 눈을 맞추고 조용히 말했다.“그게 뭔데?”“부황께서 나를 속였어. 부황은 초왕부에서 칠십만 냥을 가져가셨어.”우문호는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뭐라고?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지? 칠십? 칠십만 냥이라고?”원경릉은 우문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응. 처음엔 팔십만 냥을 요구하셨고, 내가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더니 칠십만 냥을 가져가셨어.”“세상에…… 내가 미친 듯이 그를 설득해서 이십만 냥으로 떨어뜨려놨는데, 여우 같은 부황이 너를 속이다니. 넌 그걸 믿고 그냥 줘버린 거야? 전에 십 원 한 장에 덜덜 떨던 원경릉은 어디가고 칠십만 냥을 한 번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부황이 칠십만 냥을 초왕부에서 가져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황과 원경릉 두 사람에게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십 원 한 장에도 벌벌 떠는 원경릉이 우문호의 모친인 현비의 죄를 덮기 위해 칠십만 냥을 내준 것을 생각하니 그녀에게 매우 감동했다. 특히 지금같이 의학원을 지어야 하는 시기에 은화도 부족할 텐데, 원경릉은 큰 결심을 하고 은화를 보조했을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이니 생각하지 말자. 나중에 황조부께 은화 좀 보태달라고 하지 뭐.”“황조부께서는 금광을 가지고 계시잖아. 근데 왜 거기서 나오는 자금은 조정에 쓰지 않으시는 거야? 부황께서 오죽하면 자식인 우리의 등골을 빼먹으려 하겠어?”“금광은 만약 일어날 전쟁을 대비해 남겨둔 거야. 현재 금광에서 나온 자금은 군사비용으로 일정 부분 사용되고 있어.”“아, 그렇구나.”“응. 매년 쓰이는 군사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그 비용을 줄이려면 대주와의 동맹이 필요해. 두 나라가 함께 힘을 합쳐 북방과 선비를 방어한다면 군사비용에 쓸 돈을 백성들에게 쓸 수 있지. 지금 북당에 자금이 필요해.”원경릉은 부황이 가져간 칠십만 냥의 은화가 백성들에게 쓰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풀렸다. 하지만 부황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은 여전히 용서되지 않았다.*다음날 경여궁. 명원제는 목여 태감을 시켜 경여궁에 자신의 뜻을 선포했고, 성지를 받은 현비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문호…… 이 일을 정말 황상에게 알렸단 말이야? 정신 나간 놈!’목여 태감은 주저앉은 현비에게 다가가 말했다.“마마, 황상께서는 그래도 마마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횡령하신 금액에 벌금 오십만 냥만 몰수하고 다른 형벌은 면하신 겁니다. 만약 다른 관리가 횡령을 저질렀다면 바로 사형이 내려졌을 겁니다.”“……”“맞다! 마마님, 태자비께서 칠십만 냥을 마련해 주었으니 이 금액은 제외하고 마마님께서 마련하시면 됩니다.”현비는 태감의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뭐?
목여태감은 명원제에게 현비가 성지를 확인했고 오십만 냥을 뱉어낼 것이라고 전했다.명원제는 머리가 아픈 듯한 손으로 두 눈을 감싼 채 태감에게 말했다.“태자비의 칠십만 냥은 북당이 태자비에게 빚을 진 것으로 기록해두고, 호부(戶部)에게 현비와 소답화가 벌금을 내면 그 즉시 병부(兵部)에 보내라고 해라. 겨울이 오기 전에 장병들에게 두툼한 겨울옷을 만들어 줘. 그리고 연말에 세금이 거둬지면 첫째로 태자비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두 사람이 검소하니 망정이지 다른 왕부였으면 아마 난리가 났을 거야.”목여 태감은 명원제의 말을 듣고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폐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이미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했으니 월말이면 대부분의 세금이 걷힐 겁니다.”명원제는 태감의 말을 듣고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어찌 걱정하지 않겠는가? 올해 남쪽에는 수재가 들었고 북쪽에는 한재가 들어 백성들이 많은 피해를 입어 주와 현들에서는 피해를 입은 백성들에 한 해 세금을 감면했으며 조정에서도 많은 은화를 써 집을 잃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본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북당은 대흥(大興), 대양(大梁), 대월(大月)과 함께 전성기에 이름을 날렸고, 비옥한 평야에 강을 끼고 있어 경작지로 적합해 단시간에 큰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명원제가 황제가 된 후에는 해마다 재해가 들어 농작물 피해가 심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국고는 텅 비었고, 명원제는 매일이 근심으로 가득했다. 이러한 상황에 현비와 그의 친족이 백성들의 피 같은 돈으로 장난을 치다니. 명원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당장 두 사람의 목을 단두대로 끌고 가고 싶었지만, 두 사람이 죽으면 횡령한 은화는 누가 채울 것이냔 말이다. 명원제는 은화를 돌려받기 위해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려둔 것이다. 게다가 우문호가 태자가 된 마당에 현비를 처형하면 우문호의 명예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만약 조정의 관리들이 우문호를 끌어내리고 다른 친왕을 태자로 만들려고 한다면 당파는 또 나뉘게 될 것이고
급박한 현비원경릉은 이 은자를 병사들에게 훨씬 값어치 있게 썼다.국가의 번영을 위해선 농지세에만 의존하기 어려우므로 역시 경제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그래서 원경릉이 밤에 우문호에게, “우리가 대주, 대흥(大興)과 관계가 좋은 이때 기세를 몰아서 무역을 개방해서 대대적으로 경제를 진작시키는 건 어때?”우문호가, “내 생각도 계속 이렇게 가난하게 지내는 건 아니라고 봐, 반드시 상업을 진흥 시켜야 지.”우문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상업진흥은 입으로만 부르짖는 구호로 끝나서는 안돼, 진정한 개혁을 하려면 때와 장소와 인간이 합을 이뤄야 하고 이건 단시간 내에 실행가능한 게 아니야. 결국 수상과 내각에 상정해서 회의를 해야 하고, 각 사람마다의 의견을 경청한 뒤 공통의 의견조율을 이뤄내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 않아.”원경릉은 태자와 황제의 고충을 절감한다. 우문호에 기댄 채 손가락으로 우문호 손바닥에 박힌 굳은 살을 매만지며, “능력 있는 사람이 더 일하는 거야, 아바마마를 위해 힘 좀 써봐, 집안 일은 자기가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다 처리할 수 있거든!”우문호가 고개를 숙여 원경릉에게 뽀뽀하고,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이 전부 이해했고, 심지어 당신의 사고방식과 내 생각이 맞추지 않아도 딱딱 들어맞는 게 우린 천생연분이야, 평생 헤어지지 말자.”갑자기 감동적인 분위기로 몰고가자 원경릉이 피식 웃으면서도 마음이 따듯해 졌다.소답화는 경조부에 끌려갔고 소씨 집안은 50만냥을 모아서 경주(瓊州)로 유배 되는 소답화의 신병을 확보했다.현비는 원래 은자를 모으는데 그다지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나, 소답화가 잡혀가자 마자 바로 경주로 유배형을 받자 화도 나고 겁도 나서 그제서야 서둘러 은자를 모아 들였다.소씨 집안이 낼 수 있는 돈은 전부 소답화를 구명하기 위해 끌어 모았으나 현비에게 별로 거둔 게 없어 태후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태후에겐 자손이 많은 관계로 평상시 이것 저것 하사하느라 모아둔 은자가 어디 있겠어? 따라서 태후도 돕지 못하고 오히려
돈 내놔다음날 아침 일찍 우문호가 막 경조사 관아로 가려는 찰나, 경여궁에서 사람이 와서 ‘현비 마마가 아프시니 태자는 입궁해 병문안을 오라’고 했다.원경릉이 불평해도 소용없는 게 어제 자기를 오라고 했는데 안 갔다고, 오늘 바로 아들을 오라고 부르는데 무슨 수로 막겠냐고. 이건 태후의 조령에도 어쩔 수 없는게 어머니가 아프다는데 아들 된 도리로 입궁해서 문병하는 게 도리다.원경릉은 현비가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수작을 꾸미든 우문호가 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거절하지 않는 것도 아니게 아예 원경릉이 가기로 했다.경여궁에 도착한 원경릉을 보고 현비의 얼굴이 차가워지며, “넌 어떻게 왔니? 태후 마마의 조령이 있어서 못 오는 거 아니었어?”원경릉이 예를 취하고 현비의 도발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본문인 문안에만 치중해, “어마마마 좀 어떠신 지요?”현비는 고개를 돌리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좋은지 아닌지 보면 모르겠어?”현비가 약시중을 드는 궁녀에게 눈짓을 하니 궁녀가 예를 취하고 나갔다.현비가 원경릉에게, “어쨌든 네가 다섯째를 대신해 병수발을 들러 왔으니 와서 약을 먹여라.”원경릉이 조용히 현비를 보더니, 뜨거운 약이 담긴 그릇을 들고 가서 약을 현비에게 전해주고, “어마마마 약 드세요.”현비가 차갑게, “내가 약을 들고 마실 수 있으면 너한테 시중을 들라고 하겠니? 꿇어 앉아서 한 모금 씩 떠 넣어야지.”원경릉이 눈살을 찌푸리며, “어마마마,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기력이 넘치시고, 상태를 보니 병이 심하지 않으신 걸요. 약은 내려놓을 테니 직접 드세요.”“원경릉!” 현비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따귀를 때리려고 손을 들어올리는데 마침 원경릉이 내려놓던 약사발에 부딪혀, 결국 현비 손에 약사발이 뒤집어지고 넘친 약이 원경릉 손에 흘러내렸다, “네 눈에 도대체 내가 있기나 한 거니?”원경릉의 손바닥이 뜨거운 약때문에 발갛게 부어 올랐으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닥에 약사발 파편을 한쪽으로 차내며
원경릉 대들다현비는 음침한 눈으로 차갑게 원경릉을 노려보며,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원경릉도 현비에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한 푼도 더 낼 수 없습니다. 어마마마 똑똑히 들으셨습니까?”현비는 분노가 치솟아 올라, “네가 주던 말던 네 일이고, 다섯째가 주면 됐으니 말이나 전해, 만약 안 전하면 다 네 탓인 줄 알아, 썩 꺼져!”원경릉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군!원경릉이 현비에게 착한 며느리인 척 연기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섯째 본인은 모아 놓은 게 없고, 어마마마께 드린 70만냥과 초왕부에 지금 있는 은자는 전부 제 겁니다. 태상황 폐하께서 저에게 주신 거로 태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주겠다고 하면 주지만, 내가 주지 않겠다고 하면 태자도 가져올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소위 고부관계라는 것이 어마마마께서 저를 존중하고, 제가 어마마마를 존중하면 모두 행복합니다. 하지만 어마마마께서 저를 존중하지 않은 게 먼저였어요, 저도 어마마마의 쌀쌀맞은 뒤꽁무니에 붙어서 살살거릴 생각 전혀 없어요. 우리 각자 알아서 잘 살도록 하죠.”현비는 이런 불효 막심한 말을 듣고 분노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 “원경릉, 너 다섯째의 총애를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어? 50만냥은 네가 내놓고 싶어도 내놔야 하고, 내놓기 싫어도 내 놔야 해. 아니면 네……”원경릉이 갑자기 탁자를 탁 치자 현비가 깜짝 놀라서 얼른 고개를 들고 원경릉을 노려보는데, 오히려 원경릉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니면 뭐요? 절 죽이게요? 그래요, 어디 덤벼보세요, 그 생각 하루이틀도 아니고, 제가 애 낳을 때도 절 죽이려고 했잖아요? 태자의 얼굴을 봐서 어마마마와 시비를 안 가리는 거지, 제가 인자하고 대범해서도 아니고 얕잡아볼 만큼 약해서도 아닙니다. 태자가 곤란한 게 싫어서 였어요. 하지만 사사건건 들들 볶으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며느리 안 괴롭히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구는데 누가 이런 시어머니를 만나도 다 재수에 옴 붙은 거고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