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박한 현비원경릉은 이 은자를 병사들에게 훨씬 값어치 있게 썼다.국가의 번영을 위해선 농지세에만 의존하기 어려우므로 역시 경제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그래서 원경릉이 밤에 우문호에게, “우리가 대주, 대흥(大興)과 관계가 좋은 이때 기세를 몰아서 무역을 개방해서 대대적으로 경제를 진작시키는 건 어때?”우문호가, “내 생각도 계속 이렇게 가난하게 지내는 건 아니라고 봐, 반드시 상업을 진흥 시켜야 지.”우문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상업진흥은 입으로만 부르짖는 구호로 끝나서는 안돼, 진정한 개혁을 하려면 때와 장소와 인간이 합을 이뤄야 하고 이건 단시간 내에 실행가능한 게 아니야. 결국 수상과 내각에 상정해서 회의를 해야 하고, 각 사람마다의 의견을 경청한 뒤 공통의 의견조율을 이뤄내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 않아.”원경릉은 태자와 황제의 고충을 절감한다. 우문호에 기댄 채 손가락으로 우문호 손바닥에 박힌 굳은 살을 매만지며, “능력 있는 사람이 더 일하는 거야, 아바마마를 위해 힘 좀 써봐, 집안 일은 자기가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다 처리할 수 있거든!”우문호가 고개를 숙여 원경릉에게 뽀뽀하고,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이 전부 이해했고, 심지어 당신의 사고방식과 내 생각이 맞추지 않아도 딱딱 들어맞는 게 우린 천생연분이야, 평생 헤어지지 말자.”갑자기 감동적인 분위기로 몰고가자 원경릉이 피식 웃으면서도 마음이 따듯해 졌다.소답화는 경조부에 끌려갔고 소씨 집안은 50만냥을 모아서 경주(瓊州)로 유배 되는 소답화의 신병을 확보했다.현비는 원래 은자를 모으는데 그다지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나, 소답화가 잡혀가자 마자 바로 경주로 유배형을 받자 화도 나고 겁도 나서 그제서야 서둘러 은자를 모아 들였다.소씨 집안이 낼 수 있는 돈은 전부 소답화를 구명하기 위해 끌어 모았으나 현비에게 별로 거둔 게 없어 태후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태후에겐 자손이 많은 관계로 평상시 이것 저것 하사하느라 모아둔 은자가 어디 있겠어? 따라서 태후도 돕지 못하고 오히려
돈 내놔다음날 아침 일찍 우문호가 막 경조사 관아로 가려는 찰나, 경여궁에서 사람이 와서 ‘현비 마마가 아프시니 태자는 입궁해 병문안을 오라’고 했다.원경릉이 불평해도 소용없는 게 어제 자기를 오라고 했는데 안 갔다고, 오늘 바로 아들을 오라고 부르는데 무슨 수로 막겠냐고. 이건 태후의 조령에도 어쩔 수 없는게 어머니가 아프다는데 아들 된 도리로 입궁해서 문병하는 게 도리다.원경릉은 현비가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수작을 꾸미든 우문호가 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거절하지 않는 것도 아니게 아예 원경릉이 가기로 했다.경여궁에 도착한 원경릉을 보고 현비의 얼굴이 차가워지며, “넌 어떻게 왔니? 태후 마마의 조령이 있어서 못 오는 거 아니었어?”원경릉이 예를 취하고 현비의 도발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본문인 문안에만 치중해, “어마마마 좀 어떠신 지요?”현비는 고개를 돌리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좋은지 아닌지 보면 모르겠어?”현비가 약시중을 드는 궁녀에게 눈짓을 하니 궁녀가 예를 취하고 나갔다.현비가 원경릉에게, “어쨌든 네가 다섯째를 대신해 병수발을 들러 왔으니 와서 약을 먹여라.”원경릉이 조용히 현비를 보더니, 뜨거운 약이 담긴 그릇을 들고 가서 약을 현비에게 전해주고, “어마마마 약 드세요.”현비가 차갑게, “내가 약을 들고 마실 수 있으면 너한테 시중을 들라고 하겠니? 꿇어 앉아서 한 모금 씩 떠 넣어야지.”원경릉이 눈살을 찌푸리며, “어마마마,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기력이 넘치시고, 상태를 보니 병이 심하지 않으신 걸요. 약은 내려놓을 테니 직접 드세요.”“원경릉!” 현비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따귀를 때리려고 손을 들어올리는데 마침 원경릉이 내려놓던 약사발에 부딪혀, 결국 현비 손에 약사발이 뒤집어지고 넘친 약이 원경릉 손에 흘러내렸다, “네 눈에 도대체 내가 있기나 한 거니?”원경릉의 손바닥이 뜨거운 약때문에 발갛게 부어 올랐으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닥에 약사발 파편을 한쪽으로 차내며
원경릉 대들다현비는 음침한 눈으로 차갑게 원경릉을 노려보며,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원경릉도 현비에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한 푼도 더 낼 수 없습니다. 어마마마 똑똑히 들으셨습니까?”현비는 분노가 치솟아 올라, “네가 주던 말던 네 일이고, 다섯째가 주면 됐으니 말이나 전해, 만약 안 전하면 다 네 탓인 줄 알아, 썩 꺼져!”원경릉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군!원경릉이 현비에게 착한 며느리인 척 연기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섯째 본인은 모아 놓은 게 없고, 어마마마께 드린 70만냥과 초왕부에 지금 있는 은자는 전부 제 겁니다. 태상황 폐하께서 저에게 주신 거로 태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주겠다고 하면 주지만, 내가 주지 않겠다고 하면 태자도 가져올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소위 고부관계라는 것이 어마마마께서 저를 존중하고, 제가 어마마마를 존중하면 모두 행복합니다. 하지만 어마마마께서 저를 존중하지 않은 게 먼저였어요, 저도 어마마마의 쌀쌀맞은 뒤꽁무니에 붙어서 살살거릴 생각 전혀 없어요. 우리 각자 알아서 잘 살도록 하죠.”현비는 이런 불효 막심한 말을 듣고 분노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 “원경릉, 너 다섯째의 총애를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어? 50만냥은 네가 내놓고 싶어도 내놔야 하고, 내놓기 싫어도 내 놔야 해. 아니면 네……”원경릉이 갑자기 탁자를 탁 치자 현비가 깜짝 놀라서 얼른 고개를 들고 원경릉을 노려보는데, 오히려 원경릉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니면 뭐요? 절 죽이게요? 그래요, 어디 덤벼보세요, 그 생각 하루이틀도 아니고, 제가 애 낳을 때도 절 죽이려고 했잖아요? 태자의 얼굴을 봐서 어마마마와 시비를 안 가리는 거지, 제가 인자하고 대범해서도 아니고 얕잡아볼 만큼 약해서도 아닙니다. 태자가 곤란한 게 싫어서 였어요. 하지만 사사건건 들들 볶으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며느리 안 괴롭히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구는데 누가 이런 시어머니를 만나도 다 재수에 옴 붙은 거고 못
바닥난 북당의 재정원경릉이 화상 연고를 꺼내 자신의 손에 발랐다. 18살 아가씨 손이라 희고 부드러운데 탕약이 꽤 뜨거웠고, 아까 제때 찬물에 담그지 못해 이미 벌겋게 부어 상당히 아팠다.한 소리 퍼부을 땐 좀 통쾌한듯 싶었으나 지금 생각하니 전혀 기쁘지가 않은 것이 그 특이하고 귀하기 그지 없는 분이 자신의 시어머니고, 남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었다.사실 슬픈 일이다.그리고 원경릉을 더욱 슬프게 한 건 아바마마다. 원경릉이 70만냥을 내놨고, 소씨 집안 쪽에서 모은 것도 몇 십만 냥은 될 것이고, 아바마마가 현비에게 얘기한 금액이 결코 대충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비가 원경릉에게 얘기하면서 태자에게 전하라고 까지는 못했을 테니까.아바마마는 보기에 마치 소답화를 처벌할 것처럼 하지만 사실 돈을 갈취하는 것에 가깝다.갈취의 목적이 나라를 위해서지만.이게 원경릉의 가슴 속에 납덩이처럼 탁 내려앉아 묵직하니 괴롭다.더욱 괴로운 건 원경릉이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으로, 110만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레벨의 문제가 아니라 황제의 상태가 몇 십만 냥이든 110만냥이든 우선 챙기고 봐야할 정도로 절박하다는데 있다.원경릉이 처한 시대에 대응할 역사상의 왕조도 이런 상황에 놓인 적이 있다. 나라가 가난해 매관매직을 하거나 돈으로 형벌을 대신하는 방식이 시행되곤 했으나 대부분 개국 초기였다. 그러나 지금 북당은 안정기에 접어든 지 오래다.그럼 제일 큰 가능성은 북당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말이고, 이변이 없는 한 우문호가 될 다음 황제는 이런 누더기 같이 어려운 정국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지금 황제보다 더 수렁에 빠진 황제가 된다는 소리다.여기까지 생각하니 원경릉의 마음이 더욱 괴로워졌다.초왕부로 돌아온 뒤 현비가 경조부로 사람을 보내 우문호에게 입궁하도록 전했다는 걸 몰랐다.하지만 저녁에 서일이 먼저 돌아와 원래 말 전하길 좋아해서 입이 근질근질 한지 사식이에게 오늘 태자가 입궁했다가 나올 때 엄청 화를 내는 바람에 마차
소홍천과 우문호사식이가, “그럼 됐어요, 태자비 마마도 걱정 안하시는 데 우리가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어서 쉬세요.”“아이들 좀 보고.” 아가들의 천진무구한 웃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홍매원(紅梅苑)!소홍천은 홍매문의 문주로 경성에 분파 하나없이 그녀 본인도 사는 곳이 홍매원이다.오늘은 홍매원 대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안은 소홍천이 특히 좋아하는 붉은 초가 일렁이는 것이 우문호도 익숙하지만 오늘밤 상처를 싸매 준 뒤 보니 혼례식 초에 불을 붙여 놓은 것이라 끓어오르는 분노는 잠시 눌러 놓고 소홍천에게, “왜 또 혼례식 초를 붙여 놨어? 오매불망 시집가길 바라는 거야?”소홍천이 피로 얼룩진 솜과 수건을 한쪽으로 치우고 우문호에게 차를 따라주며 눈을 흘기더니, “남이사!”우문호가 진지하게, “그런데 너, 목 매고 죽을 생각대신 왕강 생각도 좀 해.”“험한 말 하게 하지 맙시다.” 소홍천이 새침한 얼굴로 찻잔도 빼앗아가며, “이런 얘기 한 번만 더 했다 가는 앞으로 여기 오지마요.”“널 위해서 라니까!”“절 위해서면 절 아내로 데려가든 지요, 저랑 태자비 마마랑 ‘용쟁호투’하게 만드시면, 전하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 겁니다.” 소홍천은 붉은 밧줄을 손에 쥐고 천천히 손목에 두 번 감더니 숙련된 솜씨로 동심결 매듭으로 묶는데 끝을 마무리하지 않고 우문호에게 내밀며, “대신 매듭 좀 지어줘요.”우문호가 매듭을 지어주고 답답하다는 듯, “혼자 동심결 매듭 묶을 수 있으면서 왜 마지막 한 매듭은 묶지 않았어?”소홍천이 눈을 굴리며 애교가 넘치는 미소를 짓더니, “행운을 나눠 받게요, 전하는 지금 최고로 복이 넘칠 때잖아요, 저한테 좀 나눠 주시면 안돼요? 어쩌면 전하의 이 매듭 덕에 제가 소원성취할지도?”우문호가, “사람이 물러설 줄을 알아야지, 죽자고 쥐고 있는 시답잖은 거 내려 놔, 다른 사람들한테는 통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해, 난 진상을 알잖아, 단순히 감정이 식은 거라고? 그 사람은
원경릉을 노린다고?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태자비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우문호가 태자가 아니라는 전제다.우문호의 아내는 오직 원경릉만 가능하기 때문이다.“만일 늑대파가 이 일을 맡으면 알거나 저지할 방법이 있을까?”소홍천이, “알 수 있죠, 늑대파에서 자객을 보낼 때 바로 알죠, 저지하는 거까지는……” 그녀가 한숨을 쉬고, “막는 건 불가능해요, 지금까지 늑대파가 마무리하지 못한 임무가 없거든요, 은자를 받기만 하면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목을 따서 가져 올 거예요.”우문호의 안색이 살벌 해졌다.소홍천이 우문호에게, “정말 전하 어마마마께서 태자비를 죽이려고 하는 게 확실한가요?”우문호가 어두운 목소리로, “오늘 궁에서 어마마마와 한바탕 싸웠어, 마지막에 한마디 하더군, 내가 지금 이렇게 불효자가 된 건 전부 원 선생이 망쳐 놓은 거라고, 당초에 원 선생이 아이를 낳을 때 즉시 결단을 내렸 어야 했다고. 이 말을 하는데 눈에 원한이 가득 차서 사람을 꽁꽁 얼려버리는 눈빛이었어.”“그건 태자비 마마를 죽이겠다고 말한 건 아니네요, 지나치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소홍천은 여전히 생각하길, 현비가 이렇게 비이성적일리가? 황태손의 생모를 죽이다니 여파가 얼마나 큰데!우문호가 재론의 여지도 없는 원망과 분노로, “내가 만약 쓸데없이 걱정하는 거면 이 밤중에 널 찾아 왔겠어? 모자는 생각이 통해. 내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걸 어마마마는 알고, 똑같이 어마마마 생각을 나도 알아. 지금 아바마마와 태상황 폐하 모두 원 선생에 대한 신임이 두터운데다 황실에 세 아들을 낳아주었지. 천신만고 끝에 큰 공을 세웠으니 어마마마는 원 선생의 털끝 하나도 건드려서는 안돼, 없애려면 몰래 하는 수밖에 없지. 자객을 고용하는 게 제일 편하고. 홍천, 이 일에 네가 신경 좀 써줘, 예사로 여길 수 없는 게 조금도 실수해선 안돼, 지난 두 번을 겪어서 내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그런 거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미리 대책을 세워 두는 게 맞다고 생
우문호의 상처를 봐주는 원경릉우문호가 소홍천에게, “홍천, 다른 방법은 소용없으니 늑대파 사람에게 연락할 수 있게 날 도와줘, 아니면 늑대파가 이 일을 받아들였는지 확인해줘.”백사문 문주가, “전하, 늑대문이 이 일을 맡았는지 여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허나 만약 일을 수락했다면 포기하게 하는 건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습니다.”우문호가 예를 취하며, “우선 귀찮으시겠지만 확실한 정보를 물어봐 주세요.”“전하 걱정 마세요, 이틀 내에 분명 소식이 있을 겁니다. 늑대문은 일을 맡기 전에 우선 조사를 한 뒤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일을 맡고 열흘 내에 행동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습니다.”열흘!우문호의 마음이 막막하고 초조 해졌다. 시간이 촉박하다.곧 날이 밝을 즈음 우문호는 초왕부로 돌아왔다.원경릉은 깊이 잠들어 있고 우문호는 침대 가에 앉아 쌔근쌔근 잠든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가슴이 타 들어가는 것이 어째 딱 이 시기인지, 스스로가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원경릉이 곁에 누가 있다고 느끼고 몽롱하게 눈을 뜨더니, 옷을 입은 채로 침대 곁에 앉아 있는 우문호에게서 실낱 같은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맡고는 잠이 확 깼다.“일어나지 마, 계속 자.” 우문호가 몸을 숙여 원경릉의 볼에 뽀뽀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숙면 뒤에 오는 쉰 목소리로, “상처는 어때?”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괜찮아, 작은 상처야.”“봐봐!” 원경릉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됐어, 괜찮아, 당신은 계속 자.”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끌어당기자 원경릉이 통증으로 작게 신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 우문호가 꼭 쥐었던 손목을 살살 펴서 원경릉의 손바닥을 보니 벌겋게 부어 있고, 한쪽엔 물집이 잡혀 있는 게 우무호의 미간도 찌푸려지며, “어떻게 된 거야?”원경릉은 현비의 일을 감추지 않고, “자기 어마마마 탕약 드시는 거 시중 들 때, 탕약을 엎으셨어.”“일부러?” 우문호의 눈빛이 삼엄해 졌
늑대파 이리 나리늑대파의 총본산은 수도권에 있지 않고 천자의 주변에 있다.하지만 늑대파의 총본산이 어디 있는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다녀갔거나 들어가더라도 이곳이 원래 이름 높은 늑대파인 줄 알 수가 없다.왜냐면 늑대파의 총본산은 기루 안에 있고, 그것도 수도권에서 제일 큰 기루로, 여기는 흥청거리며 휘황찬란해서 매일 밤 귀족과 부한 상인 및 부유한 시인 묵객들이 드나들며 돈을 쓰는 곳이다.기루의 이름은 초두취(梢頭醉)로 사장은 세칭 ‘이리 나리’라 불리는데 이름은 모르고 단지 검은 돈이 상당하고, 초두취 말고도 각 지역에 기루와 유곽, 기름집과 싸전, 비단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는데 안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제일 중요한 건 이리 나리가 올해 갓 서른이 된 미혼의 젊은 사람으로 명실상부한 다이아몬드 ‘미중년’이란 사실이다.이리 나리는 수도권 최고의 미남인데 어느 정도 아름답냐고? 그가 만약 여장을 하면 초두취의 명기들이 빛을 잃고 꼬리를 내릴 정도다.하지만 다들 ‘남자가 이렇게 유약해서 쓰나’ 생각한다. 강인함이 없고 겉으로 부드러우나 속은 알 수 없을 뿐더러 종일 서시(西施)처럼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병약한 모습이다.이리 나리를 자주 본 사람들은 이리 나리가 불치병에 걸려 얼마 못 살 거라 생각했지만 스무 살 때 초두취를 열어 지금까지 십년이 지나도록 멀쩡하게 살아있고 병약하긴 병약하지만 나날이 유유자적 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초두취에 없는 미인이 있을까? 그러니 이리 나리가 결혼을 안하고 천하의 모든 남자가 꿈에도 그리는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돈이며 외모에 여자까지 다 있으니 인생에 무슨 여한이 있을까?이리 나리의 거침없고 멋스러운 모습은 북당 남자들이 일생동안 궁극으로 추구하는 모습이었다.이리 나리는 별도의 저택이 없고, 초두취 후원에 살았다.초두취는 매우 커서 경성에 있는 왕부의 2배 정도 되고 후원과 앞쪽이 나뉘어져 있어 앞쪽에서는 장사를 하고 후원에서는 이리 나리가 살지만 사치스럽고 화려한 측면을 논하자면 후원이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
원경릉은 원가에서 이 혼사를 분명히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태군이 일곱째 아가씨를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에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가의 유일한 문제는 일곱째 아가씨 본인이었는데, 그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십중팔구 성공할 것이다.역시나, 다음 날 탕양과 함께 원가로 향한 원경릉은 원가에서 심지어 점쟁이까지 청해 두 사람의 사주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의 사주를 본 점쟁이는 한참 확인하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의 사주가 다소 상충합니다.”원 노태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디가 상충하는가?”“한 사람은 닭띠, 한 사람은 개띠입니다. 이는 닭과 개가 편치 않은 사주라, 혼사를 치른 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노태군은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그럼 바꾸면 되지! 이제 보니 우리 딸은 말띠다. 방금 헷갈렸었다.”“말띠요? 말띠라면 괜찮습니다. 말띠는 올해 연분이 따르는 해 입니...”노태군은 점쟁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다니 됐다. 이제 길일을 골라주게.”그러자 점쟁이는 다시 손을 펴고 계산하더니 말했다.“올해 좋은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연말쯤이어야...”“좋다. 이번 달 15일로 하지. 보름달이 뜨는 날, 사람도 오붓이 모이는 날이니, 좋지 않겠나?”점쟁이가 책자를 닫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예.”혼사는 원가에서 준비하니, 제시간에만 준비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15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원가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일을5일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 되었다. 준비할 시간도 아직 부족했는데, 혼례복을 만드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원가는 이미 일곱째 아가씨를 위해 혼례복을 준비해 두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새로 만들었기에, 지금껏 서랍 속에 쌓여 있는 혼례복만 해도 7~8벌이나 되었다.혼수도 일찌감치 마련해 두고, 혼담을 꺼낼 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오래전의 악몽이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탕양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녀가 혹시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스스로 뺨을 몇 대 때리고는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를 따라잡으려 죽자고 달려도, 끝내 그녀를 볼 수 없었다.그렇게나 빨리 도망간 건가?그렇게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쉬지도 않고 곧장 원가로 달려갔다.마침 서일과 사식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와 있던 참이었는데, 대문 앞에 도착하니, 탕 대인이 거지처럼 문지기 앞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문지기의 옷깃을 움켜쥔 채 다급히 묻고 있었다. “일곱째 아가씨는? 너희 일곱째 아가씨는 대체… 어디 있느냐?”그러자 문지기는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나 사나운 탕 대인을 본 적이 없어 더듬거리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일곱... 일곱째 아가씨께서... 탕 대인과 함께 약도성에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그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탕양이 소리쳤다.“아직... 아직 못 뵈었습니다…!”바로 그때, 서일이 다가와 문지기한테서 탕 대인을 떼어놓으며 말했다.“무슨 일이십니까?! 우선 손부터 놓으십시오. 옷이 다 찢어지겠습니다.”탕 대인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큰일이야… 내가 그녀를 망쳐 버렸네! 죽어도 이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네…!”“무슨 일입니까? 저희 고모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사식이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탕 대인은 비참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 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 나는 돌아온 줄 알고 있었네...”바로 그때,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원가의 노태군이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탕양이 고개를 들자, 노태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탕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
탕양은 지금까지 살면서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이 단 하나뿐이었다. 비록 그 일도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일로 그는 술에 취하면 정말로 이성과 기억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기에 그 후로 술을 마시더라도 되도록이면 취하지 않게 애썼다. 하지만 어젯밤은 예외였다. 그는 이곳 사람 모두를 믿고 있었기에 경계를 풀었던 것이다.남녀 간의 일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가 되어서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의부님! 의부님!"바로 그때, 문밖에서 호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탕양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호통쳤다."일단 들어오지 말거라!"그는 급히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서 옷을 찾아 황급히 입은 후, 이마를 문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문밖에서 호명이 물었다."이제 막 일어나신 겁니까? 아직도 취기로 힘드십니까?"탕양은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괜찮다. 무슨 일이더냐?""식사하시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아! 일곱째 아가씨께서 경성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계십니까?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 먼저 떠나셨더군요.""… 돌아갔다고?!"탕양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예!"호명이 그의 얼굴을 보다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의부님… 혹시 어젯밤 누구에게 맞으셨습니까?"탕양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는데, 그제야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동경을 찾아 얼굴을 비춰보았는데, 왼쪽 뺨에 여러 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그러자 어렴풋이 한 여인이 세게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붓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올랐다.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창백해진 안색으로 생각에 잠겼다.‘설마 내가 취기를 빌어... 그래서 떠난 것이었구나...’이번 사건은 목숨을 내놓고 속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말을 준비하거라! 어서!"탕양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