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놔다음날 아침 일찍 우문호가 막 경조사 관아로 가려는 찰나, 경여궁에서 사람이 와서 ‘현비 마마가 아프시니 태자는 입궁해 병문안을 오라’고 했다.원경릉이 불평해도 소용없는 게 어제 자기를 오라고 했는데 안 갔다고, 오늘 바로 아들을 오라고 부르는데 무슨 수로 막겠냐고. 이건 태후의 조령에도 어쩔 수 없는게 어머니가 아프다는데 아들 된 도리로 입궁해서 문병하는 게 도리다.원경릉은 현비가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수작을 꾸미든 우문호가 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거절하지 않는 것도 아니게 아예 원경릉이 가기로 했다.경여궁에 도착한 원경릉을 보고 현비의 얼굴이 차가워지며, “넌 어떻게 왔니? 태후 마마의 조령이 있어서 못 오는 거 아니었어?”원경릉이 예를 취하고 현비의 도발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본문인 문안에만 치중해, “어마마마 좀 어떠신 지요?”현비는 고개를 돌리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좋은지 아닌지 보면 모르겠어?”현비가 약시중을 드는 궁녀에게 눈짓을 하니 궁녀가 예를 취하고 나갔다.현비가 원경릉에게, “어쨌든 네가 다섯째를 대신해 병수발을 들러 왔으니 와서 약을 먹여라.”원경릉이 조용히 현비를 보더니, 뜨거운 약이 담긴 그릇을 들고 가서 약을 현비에게 전해주고, “어마마마 약 드세요.”현비가 차갑게, “내가 약을 들고 마실 수 있으면 너한테 시중을 들라고 하겠니? 꿇어 앉아서 한 모금 씩 떠 넣어야지.”원경릉이 눈살을 찌푸리며, “어마마마,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기력이 넘치시고, 상태를 보니 병이 심하지 않으신 걸요. 약은 내려놓을 테니 직접 드세요.”“원경릉!” 현비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따귀를 때리려고 손을 들어올리는데 마침 원경릉이 내려놓던 약사발에 부딪혀, 결국 현비 손에 약사발이 뒤집어지고 넘친 약이 원경릉 손에 흘러내렸다, “네 눈에 도대체 내가 있기나 한 거니?”원경릉의 손바닥이 뜨거운 약때문에 발갛게 부어 올랐으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닥에 약사발 파편을 한쪽으로 차내며
원경릉 대들다현비는 음침한 눈으로 차갑게 원경릉을 노려보며,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원경릉도 현비에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한 푼도 더 낼 수 없습니다. 어마마마 똑똑히 들으셨습니까?”현비는 분노가 치솟아 올라, “네가 주던 말던 네 일이고, 다섯째가 주면 됐으니 말이나 전해, 만약 안 전하면 다 네 탓인 줄 알아, 썩 꺼져!”원경릉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군!원경릉이 현비에게 착한 며느리인 척 연기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섯째 본인은 모아 놓은 게 없고, 어마마마께 드린 70만냥과 초왕부에 지금 있는 은자는 전부 제 겁니다. 태상황 폐하께서 저에게 주신 거로 태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주겠다고 하면 주지만, 내가 주지 않겠다고 하면 태자도 가져올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소위 고부관계라는 것이 어마마마께서 저를 존중하고, 제가 어마마마를 존중하면 모두 행복합니다. 하지만 어마마마께서 저를 존중하지 않은 게 먼저였어요, 저도 어마마마의 쌀쌀맞은 뒤꽁무니에 붙어서 살살거릴 생각 전혀 없어요. 우리 각자 알아서 잘 살도록 하죠.”현비는 이런 불효 막심한 말을 듣고 분노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 “원경릉, 너 다섯째의 총애를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어? 50만냥은 네가 내놓고 싶어도 내놔야 하고, 내놓기 싫어도 내 놔야 해. 아니면 네……”원경릉이 갑자기 탁자를 탁 치자 현비가 깜짝 놀라서 얼른 고개를 들고 원경릉을 노려보는데, 오히려 원경릉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니면 뭐요? 절 죽이게요? 그래요, 어디 덤벼보세요, 그 생각 하루이틀도 아니고, 제가 애 낳을 때도 절 죽이려고 했잖아요? 태자의 얼굴을 봐서 어마마마와 시비를 안 가리는 거지, 제가 인자하고 대범해서도 아니고 얕잡아볼 만큼 약해서도 아닙니다. 태자가 곤란한 게 싫어서 였어요. 하지만 사사건건 들들 볶으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며느리 안 괴롭히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구는데 누가 이런 시어머니를 만나도 다 재수에 옴 붙은 거고 못
바닥난 북당의 재정원경릉이 화상 연고를 꺼내 자신의 손에 발랐다. 18살 아가씨 손이라 희고 부드러운데 탕약이 꽤 뜨거웠고, 아까 제때 찬물에 담그지 못해 이미 벌겋게 부어 상당히 아팠다.한 소리 퍼부을 땐 좀 통쾌한듯 싶었으나 지금 생각하니 전혀 기쁘지가 않은 것이 그 특이하고 귀하기 그지 없는 분이 자신의 시어머니고, 남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었다.사실 슬픈 일이다.그리고 원경릉을 더욱 슬프게 한 건 아바마마다. 원경릉이 70만냥을 내놨고, 소씨 집안 쪽에서 모은 것도 몇 십만 냥은 될 것이고, 아바마마가 현비에게 얘기한 금액이 결코 대충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비가 원경릉에게 얘기하면서 태자에게 전하라고 까지는 못했을 테니까.아바마마는 보기에 마치 소답화를 처벌할 것처럼 하지만 사실 돈을 갈취하는 것에 가깝다.갈취의 목적이 나라를 위해서지만.이게 원경릉의 가슴 속에 납덩이처럼 탁 내려앉아 묵직하니 괴롭다.더욱 괴로운 건 원경릉이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으로, 110만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레벨의 문제가 아니라 황제의 상태가 몇 십만 냥이든 110만냥이든 우선 챙기고 봐야할 정도로 절박하다는데 있다.원경릉이 처한 시대에 대응할 역사상의 왕조도 이런 상황에 놓인 적이 있다. 나라가 가난해 매관매직을 하거나 돈으로 형벌을 대신하는 방식이 시행되곤 했으나 대부분 개국 초기였다. 그러나 지금 북당은 안정기에 접어든 지 오래다.그럼 제일 큰 가능성은 북당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말이고, 이변이 없는 한 우문호가 될 다음 황제는 이런 누더기 같이 어려운 정국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지금 황제보다 더 수렁에 빠진 황제가 된다는 소리다.여기까지 생각하니 원경릉의 마음이 더욱 괴로워졌다.초왕부로 돌아온 뒤 현비가 경조부로 사람을 보내 우문호에게 입궁하도록 전했다는 걸 몰랐다.하지만 저녁에 서일이 먼저 돌아와 원래 말 전하길 좋아해서 입이 근질근질 한지 사식이에게 오늘 태자가 입궁했다가 나올 때 엄청 화를 내는 바람에 마차
소홍천과 우문호사식이가, “그럼 됐어요, 태자비 마마도 걱정 안하시는 데 우리가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어서 쉬세요.”“아이들 좀 보고.” 아가들의 천진무구한 웃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홍매원(紅梅苑)!소홍천은 홍매문의 문주로 경성에 분파 하나없이 그녀 본인도 사는 곳이 홍매원이다.오늘은 홍매원 대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안은 소홍천이 특히 좋아하는 붉은 초가 일렁이는 것이 우문호도 익숙하지만 오늘밤 상처를 싸매 준 뒤 보니 혼례식 초에 불을 붙여 놓은 것이라 끓어오르는 분노는 잠시 눌러 놓고 소홍천에게, “왜 또 혼례식 초를 붙여 놨어? 오매불망 시집가길 바라는 거야?”소홍천이 피로 얼룩진 솜과 수건을 한쪽으로 치우고 우문호에게 차를 따라주며 눈을 흘기더니, “남이사!”우문호가 진지하게, “그런데 너, 목 매고 죽을 생각대신 왕강 생각도 좀 해.”“험한 말 하게 하지 맙시다.” 소홍천이 새침한 얼굴로 찻잔도 빼앗아가며, “이런 얘기 한 번만 더 했다 가는 앞으로 여기 오지마요.”“널 위해서 라니까!”“절 위해서면 절 아내로 데려가든 지요, 저랑 태자비 마마랑 ‘용쟁호투’하게 만드시면, 전하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 겁니다.” 소홍천은 붉은 밧줄을 손에 쥐고 천천히 손목에 두 번 감더니 숙련된 솜씨로 동심결 매듭으로 묶는데 끝을 마무리하지 않고 우문호에게 내밀며, “대신 매듭 좀 지어줘요.”우문호가 매듭을 지어주고 답답하다는 듯, “혼자 동심결 매듭 묶을 수 있으면서 왜 마지막 한 매듭은 묶지 않았어?”소홍천이 눈을 굴리며 애교가 넘치는 미소를 짓더니, “행운을 나눠 받게요, 전하는 지금 최고로 복이 넘칠 때잖아요, 저한테 좀 나눠 주시면 안돼요? 어쩌면 전하의 이 매듭 덕에 제가 소원성취할지도?”우문호가, “사람이 물러설 줄을 알아야지, 죽자고 쥐고 있는 시답잖은 거 내려 놔, 다른 사람들한테는 통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해, 난 진상을 알잖아, 단순히 감정이 식은 거라고? 그 사람은
원경릉을 노린다고?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태자비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우문호가 태자가 아니라는 전제다.우문호의 아내는 오직 원경릉만 가능하기 때문이다.“만일 늑대파가 이 일을 맡으면 알거나 저지할 방법이 있을까?”소홍천이, “알 수 있죠, 늑대파에서 자객을 보낼 때 바로 알죠, 저지하는 거까지는……” 그녀가 한숨을 쉬고, “막는 건 불가능해요, 지금까지 늑대파가 마무리하지 못한 임무가 없거든요, 은자를 받기만 하면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목을 따서 가져 올 거예요.”우문호의 안색이 살벌 해졌다.소홍천이 우문호에게, “정말 전하 어마마마께서 태자비를 죽이려고 하는 게 확실한가요?”우문호가 어두운 목소리로, “오늘 궁에서 어마마마와 한바탕 싸웠어, 마지막에 한마디 하더군, 내가 지금 이렇게 불효자가 된 건 전부 원 선생이 망쳐 놓은 거라고, 당초에 원 선생이 아이를 낳을 때 즉시 결단을 내렸 어야 했다고. 이 말을 하는데 눈에 원한이 가득 차서 사람을 꽁꽁 얼려버리는 눈빛이었어.”“그건 태자비 마마를 죽이겠다고 말한 건 아니네요, 지나치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소홍천은 여전히 생각하길, 현비가 이렇게 비이성적일리가? 황태손의 생모를 죽이다니 여파가 얼마나 큰데!우문호가 재론의 여지도 없는 원망과 분노로, “내가 만약 쓸데없이 걱정하는 거면 이 밤중에 널 찾아 왔겠어? 모자는 생각이 통해. 내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걸 어마마마는 알고, 똑같이 어마마마 생각을 나도 알아. 지금 아바마마와 태상황 폐하 모두 원 선생에 대한 신임이 두터운데다 황실에 세 아들을 낳아주었지. 천신만고 끝에 큰 공을 세웠으니 어마마마는 원 선생의 털끝 하나도 건드려서는 안돼, 없애려면 몰래 하는 수밖에 없지. 자객을 고용하는 게 제일 편하고. 홍천, 이 일에 네가 신경 좀 써줘, 예사로 여길 수 없는 게 조금도 실수해선 안돼, 지난 두 번을 겪어서 내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그런 거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미리 대책을 세워 두는 게 맞다고 생
우문호의 상처를 봐주는 원경릉우문호가 소홍천에게, “홍천, 다른 방법은 소용없으니 늑대파 사람에게 연락할 수 있게 날 도와줘, 아니면 늑대파가 이 일을 받아들였는지 확인해줘.”백사문 문주가, “전하, 늑대문이 이 일을 맡았는지 여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허나 만약 일을 수락했다면 포기하게 하는 건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습니다.”우문호가 예를 취하며, “우선 귀찮으시겠지만 확실한 정보를 물어봐 주세요.”“전하 걱정 마세요, 이틀 내에 분명 소식이 있을 겁니다. 늑대문은 일을 맡기 전에 우선 조사를 한 뒤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일을 맡고 열흘 내에 행동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습니다.”열흘!우문호의 마음이 막막하고 초조 해졌다. 시간이 촉박하다.곧 날이 밝을 즈음 우문호는 초왕부로 돌아왔다.원경릉은 깊이 잠들어 있고 우문호는 침대 가에 앉아 쌔근쌔근 잠든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가슴이 타 들어가는 것이 어째 딱 이 시기인지, 스스로가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원경릉이 곁에 누가 있다고 느끼고 몽롱하게 눈을 뜨더니, 옷을 입은 채로 침대 곁에 앉아 있는 우문호에게서 실낱 같은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맡고는 잠이 확 깼다.“일어나지 마, 계속 자.” 우문호가 몸을 숙여 원경릉의 볼에 뽀뽀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숙면 뒤에 오는 쉰 목소리로, “상처는 어때?”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괜찮아, 작은 상처야.”“봐봐!” 원경릉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됐어, 괜찮아, 당신은 계속 자.”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끌어당기자 원경릉이 통증으로 작게 신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 우문호가 꼭 쥐었던 손목을 살살 펴서 원경릉의 손바닥을 보니 벌겋게 부어 있고, 한쪽엔 물집이 잡혀 있는 게 우무호의 미간도 찌푸려지며, “어떻게 된 거야?”원경릉은 현비의 일을 감추지 않고, “자기 어마마마 탕약 드시는 거 시중 들 때, 탕약을 엎으셨어.”“일부러?” 우문호의 눈빛이 삼엄해 졌
늑대파 이리 나리늑대파의 총본산은 수도권에 있지 않고 천자의 주변에 있다.하지만 늑대파의 총본산이 어디 있는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다녀갔거나 들어가더라도 이곳이 원래 이름 높은 늑대파인 줄 알 수가 없다.왜냐면 늑대파의 총본산은 기루 안에 있고, 그것도 수도권에서 제일 큰 기루로, 여기는 흥청거리며 휘황찬란해서 매일 밤 귀족과 부한 상인 및 부유한 시인 묵객들이 드나들며 돈을 쓰는 곳이다.기루의 이름은 초두취(梢頭醉)로 사장은 세칭 ‘이리 나리’라 불리는데 이름은 모르고 단지 검은 돈이 상당하고, 초두취 말고도 각 지역에 기루와 유곽, 기름집과 싸전, 비단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는데 안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제일 중요한 건 이리 나리가 올해 갓 서른이 된 미혼의 젊은 사람으로 명실상부한 다이아몬드 ‘미중년’이란 사실이다.이리 나리는 수도권 최고의 미남인데 어느 정도 아름답냐고? 그가 만약 여장을 하면 초두취의 명기들이 빛을 잃고 꼬리를 내릴 정도다.하지만 다들 ‘남자가 이렇게 유약해서 쓰나’ 생각한다. 강인함이 없고 겉으로 부드러우나 속은 알 수 없을 뿐더러 종일 서시(西施)처럼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병약한 모습이다.이리 나리를 자주 본 사람들은 이리 나리가 불치병에 걸려 얼마 못 살 거라 생각했지만 스무 살 때 초두취를 열어 지금까지 십년이 지나도록 멀쩡하게 살아있고 병약하긴 병약하지만 나날이 유유자적 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초두취에 없는 미인이 있을까? 그러니 이리 나리가 결혼을 안하고 천하의 모든 남자가 꿈에도 그리는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돈이며 외모에 여자까지 다 있으니 인생에 무슨 여한이 있을까?이리 나리의 거침없고 멋스러운 모습은 북당 남자들이 일생동안 궁극으로 추구하는 모습이었다.이리 나리는 별도의 저택이 없고, 초두취 후원에 살았다.초두취는 매우 커서 경성에 있는 왕부의 2배 정도 되고 후원과 앞쪽이 나뉘어져 있어 앞쪽에서는 장사를 하고 후원에서는 이리 나리가 살지만 사치스럽고 화려한 측면을 논하자면 후원이
태자비를 없앤다고?“왜 말이 없어? 어!” 이리 나리가 다시 무겁게 침향목 차탁을 두드리자 최상품의 침향목에 한 줄기로 금이 갔다.“나리……” 네모난 얼굴의 부하가 염치 불구하고 앞으로 나와, “아니면 물릴 까요?”이리 나리가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 “물려? 우리 늑대파가 성립된 이래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있어? 거래를 물린 적이 있어?”“그건……” 네모난 얼굴의 부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리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이리 나리는 냉랭하게, “거래를 이미 받아들였으니 물릴 수는 없지만, 늑대파의 규칙을 깰 수는 없어.”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태자비는 정말 무공을 모른다고.수하들이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며 어째야 좋을지 모른다.“태사부!” 이리 나리가 목청을 울리며 소리치자 목의 파란 힘줄이 드러나며 확실히 분노했음을 알 수 있다.염소 수염을 기르고 태사부 분위기를 풍기는 태사부가 문에서 줄달음쳐 오며 입으로, “나리, 소인 여기 있습니다.”“이 일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이리 나리가 튀어나온 이마를 주무르며 상당히 걱정했다. 진짜 너무 걱정이 됐다.태사부는 계속 문 가에서 듣고 있어서 이리 나리가 어느 대목에서 화가 났는지 알고, “나리, 지금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이 목표인물에게 무공을 가르쳐서 100등 안에 들어오면 그때 손을 쓰는 것이고, 두번째는 저희 늑대파 규칙에 이런 조항이 있지요, 만약 이 여자가 남편을 배신하고 아이를 버리면 죽일 수 있다.”이리 나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응, 응, 무공을 가르치는 건 시간이 너무 걸려, 안되지 싶다. 두번째는 가능하군.”태사부가 음산하게 웃으며, “나리, 사실 두번째가 더 어렵습니다. 목표인물은 태자비예요, 미래의 황후인데 어떻게 남편과 자식을 버리겠습니까? 천하의 남자는 다 태자보다 못한 것을…… 그야 당연히 이리 나리께서는 예외로 하늘에서 유배 온 신선 같은 분이시니 태자와 비할 바가 아니지요, 하지만 나리께서 나서실 수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