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은 차를 몰고 돌아가는 길에 육민이 왜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마 그녀와 루카스를 같이 있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육민은 루카스와 육현경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유를 깨달은 그녀는 육민의 흥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육민은 그녀의 삶의 이유였다. 그래서 육민이 기뻐하고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그녀는 육민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별장으로 돌아왔다. 육민은 이미 루카스와 밥을 먹고 있었다. 육민은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는 재빨리 그녀를 불렀다. "엄마, 루카스가 배고프다고 해서 먼저 먹고 있었어요.” "응, 괜찮아." 소이연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향했다. 루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엄마, 방금 루카스가 점심 먹고 서울로 간다고 말했어요." 육민은 서운해하며 말했다. "응, 알고 있어." 소이연은 육민에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루카스에게 말했다. "이따가 문씨 아저씨한테 너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라고 했어.” "고마워.” 루카스는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육민은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육민은 겨우 열 살밖에 안 되었지만, 언젠가 부모님 덕분에 연애 전문가가 될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루카스는 방으로 돌아가 짐을 싸서 떠날 준비를 했다.소이연은 사실 급한 업무도 없었고 루카스가 떠난다고 생각해니 회사에 다시 갈 생각이 없어졌다. 그녀는 방에 들어가 좀 누워있으려고 위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루카스가 걸어 나오는 걸 보았다. 그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 시선을 피했는지 모르겠다. 왠지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잘 가." 소이연은 무심한 듯 가볍게 말했다. 루카스도 소이연을 돌아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스쳐가는 순간 소이연은 갑자기 발이 꼬였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곤두박질치려고 했
이마에 멍이 든 것 같았다. 루카스는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켜 세울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엄마!" 그러자 뒤에서 육민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이연이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아래층에서 뛰어온 것 같았다. 문씨 아저씨도 육민의 뒤를 따라 올라오며 소이연이 바닥에 넘어져 코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보고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연 씨! 아이고, 어떻게 해요? 빨리, 빨리 주치의 불러올게요.” "엄마, 엄마 아파요? 피가 나요......" 육민은 바닥에 주저앉아 걱정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젊은 사람이 이렇게 넘어져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돌아서서 떠났다. 소이연은 루카스의 싸늘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소이연은 평생, 평생 이 악랄한 남자를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절대로, 죽어도 왕래하지 않을 것이다! ...... 루카스가 장안을 떠난 후 소이연은 그와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을 것이고 절대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떠난 후 소이연은 매일 밤 루카스가 사용했던 베개와 이불을 덮고 잤다. 정말 오랜만에 맡는 향기였다. 육현경과의 냄새와 비슷한 루카스의 냄새를 맡고 그녀는 잠을 잘 수 있었다.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매일 밤 몇 시간씩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것은 큰 축복이었다. 하지만 소이연은 루카스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감사는 정말 그가 떠나던 날 그녀의 몸을 무자비하게 놓아버린 순간 바로 없어져 버렸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멍이 든 이마로 회사에 간 것을 생각하면 루카스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었다. 루카스가 떠난 다음 날, 소이연은 집에서 택배를 받았다. 육민에게서 온 택배였다. 평소 육민은 물건을 구입할 때도, 인터넷 쇼핑을 할 때도 다 그녀의 이름으로 구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육민의 이름으로 택배가 와서 소이연은 조금 놀랐다. 그래서 소이연은 택배
오후가 되자, 육민은 학교에서 돌아왔고,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문씨 아저씨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오늘 저한테 온 택배가 있나요?” "택배요?" 문씨 아저씨는 의아해했다. "네 방 책상 위에 있어. 마침 엄마가 집에 있을 때 와서 네 방에 가져다 놨어." 소이연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엄마!" 육민이 예의 바르게 말하며 재빨리 위층으로 뛰어올랐다. "아기 도련님, 조심해요. 그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해요. 엄마 이마에 있는 멍도 아직 안 풀렸어요!" 문씨 아저씨는 아래층에서 큰소리로 육민에게 주의를 주었다. 소이연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오므렸다. 이마에 생긴 큼지막한 멍 때문에 그녀는 출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루카스가 다시 생각났고 오전에 봤던 그 친자확인서가 생각났다. 소이연의 감정은 순간순간 정말 끊임없이 변했다. 육민은 책상 위의 택배를 신이 나서 쳐다보았다. 원래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 예민한 육민이었지만 너무 신이 나서 택배가 개봉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재빨리 봉투를 집어 들고 그 안의 친자확인서를 꺼내며 흥분한 얼굴로 결과지를 보았다. 결과지를 본 육민은 마치 돌기둥처럼 오랫동안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소이연은 육민이 걱정되어 그의 방 문 앞으로 왔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육민을 가만히 지켜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는 기적이 그렇게 많이 일어나지 않아.” 육민은 소이연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분명 아빠인데, 어떻게 아닐 수가 있지? 하지만 친자확인 결과지에는 루카스가 육민의 친부가 아닐 가능성이 99.99%라고 적혀있었다. 사실 소이연도 그 결과지를 봤을 때 가슴이 아팠다. 루카스가 육현경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결과지를 보는 순간 육현경이 한 번 더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결과지는 그녀의 눈앞에서 멀어져
육민이 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루카스는 정말 아빠가 아니라는 소리인가!그도 과학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사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샘플 오류밖에 없습니다.” "뭐가 오류라고요?" 육민은 순간 긴장했다. "저희에게 보내신 검사 샘플이, 의뢰인께서 검사하고 싶은 두 사람의 샘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의뢰인과 A의 샘플을 검사하려고 했는데, 의뢰인과 B의 샘플을 제출했다면 검사 오류가 날 수 있어요. 이전에 이런 사 오류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쪽에서는 설명했다. "그 외에는 아직까지 검사 오류가 있었던 사례는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전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육민은 전화를 끊고 자신이 보낸 머리카락을 생각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이 머리카락을 잘못 보냈다고 믿고 싶지, 루카스가 자신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맞다! 육민은 무엇인가 떠올랐다. 루카스의 머리카락을 들고 가다가 문씨 할아버지와 부딪혔던 기억이 났다. 그때, 문씨 할아버지의 몸에서 머리카락을 찾았는데 그 머리카락이 루카스의 것이 아니면 문씨 할아버지의 것이었을 수 있다. 이것이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이다! 생각을 마친 육민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소이연을 찾았다. 소이연은 벌써 감정을 추스른 육민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놀랐다. 역시 어린이의 회복력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우 강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걱정했다. 육민은 물었다. “엄마, 루카스가 또 올까요?"소이연은 미간을 좁혔다. 육민은 목표를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안 올 거야, 엄마랑도 우연히 만난 사이라 앞으로는 만날 기회가 없을 거야. 민민, 엄마도 네 아빠가 살아 계시기를 바라지만......” "엄마, 나 정말 못 믿어요?" 육민이 약간 감정이 격해진 듯 말했다.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했잖아.”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민민." 소이연은 굳은 표정으
소이연의 마음은 또 한 번 아팠다.그녀는 육민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약속했다. "엄마가 널 잘 돌봐줄게.” "저도 엄마를 잘 보살펴 줄게요!" 육민은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소이연과 육민은 암묵적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루카스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보름이 지났다. 천우진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에 언제 갈 것인지 물었다. 지난번에 그녀는 외할아버지에게 이번 달에 얼마동안 서울에 지내겠다고 약속했다. 역시 약속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그녀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약속을 어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육민도 겨울방학중이라, 천우진은 특히 육민을 데리고 오라고 강조했다. 소이연은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는 했지만, 다행히 육민이 며칠 동안 겨울 캠프에 참가해서 일주일 후에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약속을 다음 주로 미룰 수 있었다. 소이연은 오늘 장안 방송국에 일정이 있었다. 그녀의 회사는 '《배우님 자리에 앉아주세요》 '의 의상을 협찬으로 제공했기에 소이연은 프로그램 녹화가 진행 중인 지금, 그들의 광고 시간과 장소를 다시 결정하기로 결심했다. 이전에 협의된 내용과 약간의 차이가 있고, 회사의 고위 경영진이 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그녀가 직접 나서야 했다. 그녀는 승용차를 타고 방송국 입구에 도착했다. 방송국 사람들은 이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소이연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앞으로 나와 그녀를 방송국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방송국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소이연은 익숙한 사람을 본 듯했다. 그녀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다시 보니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소 이사님, 왜 그러세요?" 방송국 고위 경영진이 재빨리 물었다. "방금 지인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보았나 봐요." 소이연이 담담하게 말했고, 고위 경영진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혔다 소이연은 여전히 미심쩍어 하며 물었다. "오른쪽으로 가면 어디로 가는 건가
《배우는 자리에 앉으세요》 녹화장, 무대 뒤의 공동 분장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메이크업을 수정하며 말했다. "야, 봤어? 계지원, 계 감독이 왔어. 계 감독이 출연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안 믿었거든. 그동안 계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우리 장안 방송국이 잘 나가긴 하나 봐.” "나도 봤어, 방금 그 앞을 지나쳤는데 정말 잘생기고 키도 크더라. 연예인을 해도 정말 멋질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워.” "뭐가 아쉬워! 계 감독이 감독을 안 했어 봐, 우리가 이렇게 많은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 있겠어? 영화랑 드라마도 재미있고, 계 감독이 카메라로 찍은 여배우는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업계 사람들이 계 감독 카메라 속에 못생긴 여배우는 없다고 말할 정도야. 그야말로 여배우들의 축복이지.” "맞아. 내가 예전에 평범해 보이는 배우를 만났었는데 계 감독 눈에 띄어 단숨에 스타가 됐어. 심지어 계 감독 영화에 출현한 덕분에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라서 상도 탈 뻔했는데.....!." 말을 하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하면 실제 이름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분장실안에 듣는 귀가 여럿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쯤 되면 다들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육가희. 육가희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빨리 떠오른 여자 스타였다. 그녀의 뒤에는 강력한 배경이 있다고 한다. 계지원의 많은 주요 영화, 드라마도 모두 육가희가 여주인공을 맡았고, 그녀를 홍보하는데 완전히 열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계지원이 육가희를 밀어주는 것도 당연했고, 많은 사람들이 질투하는 것도 당연했다. 육가희는 육씨 가문의 딸이다. 육씨 가문이 육현경의 죽음으로 자산을 재정비하여 그룹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육씨 가문은 어쨌든 장안의 가장 큰 재벌그룹이다.지금까지도 육씨 가문과 비교할 만한 자산을 갖고 있는 기업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육씨 가문의 삼대까지 평생 먹고 놀고 살아도 갖고
"그냥 좀 쉬었어." 예수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연예계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다. 갑자기 모든 게 방송들이 취소되고, 모든 작품에서 하차가 되고, 캐스팅이 전면 금지 되었다는 것은 연예계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는 얘기다. 그때 한채영이 화제를 바꾸었다. "야, 나 연예계 생활 10년 만에 이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야. 수진이 너도 긴장돼?” 예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나 어제 몇 차례 실수를 해서 밤에 잠도 잘 못 잤어.” "나도 그래. 어제의 리허설 때 잘 못했는데, 오늘도 그럴까 봐 걱정돼.” 한채영은 예수진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이번 대회 규칙은 1차 때, 심사위원들이 직접 후보를 뽑고, 예선 끝난 뒤 본선에 들어가서 관중 투표를 한대. 정말 예선도 통과 못 할까 봐 걱정돼.” "이번 시즌에서 감독이 차기작에 들어갈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왔다고 들었어. 분명 이미 생각해 놓은 주인공은 있을 테니 여주를 캐스팅하는 것은 아닐 거고, 화려한 조연들을 캐스팅하겠지? 정말 계지원 눈에 띄고 싶다!" 한채영이 말을 이어 나갔다. "참, 너 예전에 계 감독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어?" 한채영이 물었다."그거 방송도 안 됐어." 예수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그런 것 같더라." 한채영은 떨면서 말했다. "그래도 계지원이랑 친분이 있지 않아?” "아니, 없어.” 예수진은 바로 선을 그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심사위원들 중, 나를 뽑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야.” "왜? 왜 그렇게 생각해?” 예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원한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 한채영이 불쑥 내뱉었다. 예수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채영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지원이 예수진을 뽑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걸 들으니 조금은 다행스러웠다. 한채영이 예수진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자신이 본선에 진출할
이 순간, 마치 자신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역시 사람은 자신이 없을 때 자기 자신을 더더욱 부정해야 한다.예수진이 등장하기 전, 육가희의 무대가 있었다.그녀의 무대는 뮤지컬 형식으로, 현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육가희는 최근 무대 위에서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예수진도 TV를 보았는데, TV에서는 육가희가 출연한 프로그램이 자주 보였고, 그녀의 가장 처음 유치한 연기부터 지금처럼 성숙해져서 무대 위에서 여유가 있어질 때까지, 어쩔 수 없이 육가희가 잘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심지어 그녀는 다음 순서로 자신이 무대에 올랐을 때, 육가희가 띄워놓은 현장 분위기를 망쳐버리지는 않을지 생각하고 있었다.그때 스태프가 그녀에게 준비하라는 신호를 주었다.그녀는 대기실에서 몸을 일으켰다.주변에 있던 몇 사람이 그녀를 응원해 주었다.사실 다들 멍청하지 않다. 예수진에게 미움받으면 망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진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는 한,예수진에게 쉽게 호의를 표현해서 불똥이 튀게 하지 않을 것이다.연예계는 항상 이렇게 현실적이었다.예수진은 돌아와 모든 준비를 마쳤다.그녀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컸고, 당연히 자신의 생활이 더욱 나아지길 바란 것도 배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엄청나게 가난한 건 아니였지만, 더 좋아질 수 있다.그녀는 백스테이지로 향하며 깊게 숨을 쉬었다.사회자가 무대를 소개하는 것을 듣고,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무대로 올라갔다.예선 무대이기 때문에 자기소개 없이 무대에 서자마자 공연을 시작해야 했다.많은 사람들이 무대가 끝나고도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은 없었고, 몇몇은 나중에 별도 녹화를 했고, 몇몇은 정말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연예계는 영향력이 전부이다.그녀는 무대 중앙에 서서 10분 동안 상황극을 했다.이때 관중석은 육가희의 연기가 끝난 뒤 아직 어수선해 있었다.심사위원들도 여전히 웃음을 띠며 현장 분위기에 물들어 있었다.장혜성이 갑자기 묻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
결국 송승우에게 차 키를 내어준 하지수가 허영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뒤 자연스레 뒷좌석에 타려 하는데 송승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지수야, 넌 앞에 타.”“어머니랑 같이 앉을게요.”“장안시에 길은 나도 잘 몰라서 알려줄 사람이 필요해.”단호한 그의 말을 하지수가 거절하기 어려워하자 허영지가 나서며 말했다.“그럼 내비게이션 켜. 바로 윌런 호텔로 갈 거야, 호텔 사장이랑 얘기 다 끝나서 아마 우리 기다리고 있을 거야.”말을 마친 허영지는 또 일부러 하지수를 보며 말했다.“지수는 나랑 같이 타자, 말동무해줘.”“네, 어머니.”제 옆에 앉지 않아도 된다고 저렇게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좋아하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표정을 굳힌 채로 운전석에 올라탔다.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켜고 윌런 호텔로 출발하자 허영지가 하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수야, 어제 내가 한 말 그냥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무슨 말이요?”“너랑 문수 아이 얘기 말이야.”“아, 네.”“그냥 대답만 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애가 생기지.”허영지가 거리낌 없이 남사스러운 말을 하자 하지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문수 씨랑도 얘기했어요.”“문수도 알겠대?”“네.”“그럼 난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지?”하지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허영지는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나는 할머니 될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그런 허영지와 반대로 하지수가 송문수의 아이를 낳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송승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고 있었다.윌런 호텔에 도착한 뒤 세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 사무실로 향해 파티 당일의 규모와 배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비즈니스적인 자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꺼리던 송승우는 얘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그렇게 심심해하던 송승우는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허영지와 하지수도 담긴 사진이었지만 그 둘은 파티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
“미안해 문수 씨... 평소엔 이때가 아니라서 나도 몰랐어...”“응.”이 일은 애초에 하지수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녀를 탓할 수도 없었던 송문수는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한탄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수를 만나는 날만 기다리며 3년 동안 아무와도 관계를 하지 않았던 그인지라 오늘에서야 비로소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겠다고 기뻐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또 일주일을 더 기다리게 된 이 상황에 송문수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한숨을 쉬는 송문수를 본 하지수는 그가 자신에게 실망한 줄로 알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다음에 다시 할까?”하지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송문수는 이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 생리 끝나면 당장 해.”자신한테 자꾸 일이 생겨버려 송문수가 다른 사람을 찾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하지수는 확신에 찬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리며 청심환을 하나 먹고는 말했다.“그럼 편히 자, 난 내 방 가서 잘게.”“어디 간다는 거야?”“내 방 가야지.”“하지수, 네 발로 직접 내 방 찾아와 놓고 이제 돌아가겠다는 거야?”갑자기 터진 생리 때문에 관계를 못 가진 것도 화가 나는데 사람까지 가버리겠다는 말을 들은 송문수는 언짢은 티를 팍팍 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나 생리 와서 어차피 못하잖아.”“그게 왜?”“아까 문수 씨도 생리 끝나면 하자고 했잖아. 지금 하는 건 나도 좀...”송문수가 되묻자 하지수는 아주 난감해하며 답했다.“하지수, 넌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아까 너 안 놔줬으면 여기 진작에 피바다 됐어.”“...”“관계까지 할 사이에 뭘 내외를 하고 그래. 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앞으로 쭉 같이 자자고? 나랑?”“왜, 싫어?”“아니.”당연히 싫진 않았지만 하지수는 그저 송문수가 관계도 없는 잠을 자신과 함께 자겠다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그렇게 순진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빨리 와서 자. 아까 너무 움직였더니 피곤해.”송문수가 먼저 침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눕자 하
송문수의 입술이 하지수의 입술을 지나 그녀의 귓가에 닿을 때, 이런 식의 스킨십은 처음 해보는 하지수는 온몸이 떨려왔다.태어나서 딱 한 번, 송문수와 차에서 해본 게 전부인 그녀는 송문수의 유혹을 당해내지 못하고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에 자신의 고개를 비볐다.그렇게 하지수를 안달 나게 하던 송문수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걸 확신하고는 점차 행동을 대범하게 하기 시작했다.자연의 섭리인 것마냥 물 흐르듯 움직임을 이어나가던 송문수가 갑자기 멈췄을 때 하지수는 온몸이 뜨거워 나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온몸이 나른해진 그녀는 송문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한참 지나 송문수가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가 그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제 아래에 누워있는 하지수를 보며 정말 이성을 잃을까 봐 걱정된 송문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문수 씨?”하지만 하지수는 아까는 그렇게 늑대처럼 달려들던 사람이 갑자기 말도 안 하고 거친 숨만 연신 내뱉는 게 이상했다.“문수 씨...”“지수야.”송문수가 한참 만에 입을 열자 그 숨결에 의해 뜨겁게 달궈진 피부에는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곧 자신이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아주 아름다운 순간이었는데 다른 여자들한테는 다 곁을 내주면서 왜 자기 앞에서는 갑자기 멈추는 건지 하지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본인이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 송문수가 싫어하는 걸까 봐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송문수가 잔뜩 실망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 생리 왔어.”“뭐?”송문수의 말에 깜짝 놀란 하지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송문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속옷에 피 묻어있어, 아마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수치스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이틀 뒤가 예정일인데 왜 갑자기 오늘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민망해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하마터면 넘
송문수는 자신의 떨림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하지수도 그의 몸 아래에서 떨리고 있었다.송문수는 이미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예전의 그라면 이미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맡겼을 것이다.그는 조심스럽게 지수에게 다가갔다.지수는 온몸이 긴장돼 있었고 두 손은 이불을 꼭 쥐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송문수의 몸 아래에 있게 됐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지금, 그의 숨결은 몹시 거칠고 심장 소리는 우뢰처럼 커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바를 몰라 했고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그때, 송문수의 입술이 서서히 하지수의 입술에 와닿았다.송문수의 심장은 더욱 격렬히 뛰고 있었고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지수의 두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두 입술이 맞닿은 그 순간, 두 사람은 머리가 하얘졌다.둘만의 공간, 둘만 나누는 부드러운 촉감, 온몸으로 느끼는 서로의 떨림……이것이 진짜 입맞춤이었다.하지수의 뇌리에는 갑자기 전에 송문수의 차에서 나눴던 관계가 스쳐 지나갔다. 단지 관계를 위한 관계였을 뿐, 사실 그녀는 아무런 떨림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굴욕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었다.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오히려 그녀가 리드하고 있었다.송문수가 조심스러워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리드했다.그는 그녀의 유혹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둘은 더더욱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두 사람의 심장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얼마 동안 키스를 나눴는지 가늠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주 길게 또 아주 짧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입술을 뗀 두 사람의 얼굴은 너 나 할 것 없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이런 경험은 송문수도 처음이였다. 능수능란해야 마땅한 그는 지수와의 키스 후 고장 난 사람처럼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방금 전의 달콤하고도 아름다웠던 키스에 사로잡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온 밤을 그녀와 보내고 싶었다.그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천천히
그는 너무 기뻐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러면 오늘밤에 같이 자는 거 어때?”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푸!” 송문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조금 전에 마시던 물을 내뿜었다.“싫으면 말고…” 송문수의 격한 반응에 지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런 거 아니야.” 송문수는 다급히 해명했다.지수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로 전에 문수가 분명히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송문수는 연신 입을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너랑 같이 자는 게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그럼 나 먼저 씻을게.”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네 방에서 잘까? 아니면 내 방?”“난 다 좋아.”“그러면 네 방에서 자자. 네 방이 더 크니까.”“그러자.”“나 씻을게.”“응.”“너도 빨리 씻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수는 얼굴이 타오르듯 빨개졌다.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송문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하지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송문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그는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어 숨도 안 쉬어지고 물컵을 들고 있던 손도 떨릴 지경이였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로서는 남녀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하지수라니, 송문수는 머리가 하얘졌다.그는 남아있던 물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나서 바로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기 시작했다.오늘 밤이 지나면 둘 사이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송문수는 샤워를 마쳤다.평소라면 몇분이면 끝낼 샤워를 오늘에는 한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씻었다. 행여나 깨끗이 못 씻었을지 몇 번이나 더 씻은 후 겨우 욕실을 나와 침대에서 하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지수가 이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지수는 더 오래 걸렸다.아마도 그와 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