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오해했어도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이렇게 힘들게 루카스를 불렀는데 헛수고하고 싶지 않았다. ...... 루카스는 정오까지 잤다. 소이연이 떠난 후 그는 사실 잠들지 않았다. 어젯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해 너무 피곤했는데 잠을 잘 수 없었기에 불면증이 정말 힘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이연은 밤낮으로 잠을 못 잔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견뎌낸 거지?! 루카스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씻고 옷차림 단정히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서 육민이 낮은 소리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었다. 루카스가 내려가자 육민은 얼른 피아노 앞을 떠나 루카스에게 걸어갔다. “아빠, 일어나셨어요?” “루카스라고 불러.” "아… 알겠어요." 육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곧 자신과 그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곧 유전자 검사센터에 갈 생각이다. 그리고 반드시 결과를 자신의 아빠와 엄마에게 알려 자신이 아빠를 잘못 알아본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엄마는?" 루카스가 무심한 말투로 물었는데, 왠지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엄마는 회사에 일이 있으셔서 잠깐 나가셨어요." 육민이 대답했다. "엄마는 오늘 하루 종일 바쁠 거라고 점심 먹을 때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어요.” "그래?” 루카스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신경 안 쓰려할수록 더 많이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이 여자는 사람을 이용해 먹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일부러 그녀를 위해 돌아왔고, 오늘 떠날 줄 뻔히 알면서 인사도 안 하고 가버렸다? "아빠, 엄마 보고 싶어요?" 육민은 루카스의 표정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농담하는 거지?” 루카스는 경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전화해도 돼요. 내가 엄마한테 돌아오라고 하면 하던일을 챙겨서 돌아올 거예요.” "배고파.” 루카스가 말을 돌리며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반대하지 않았다.그가 반대하지
소이연은 차를 몰고 돌아가는 길에 육민이 왜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마 그녀와 루카스를 같이 있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육민은 루카스와 육현경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유를 깨달은 그녀는 육민의 흥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육민은 그녀의 삶의 이유였다. 그래서 육민이 기뻐하고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그녀는 육민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별장으로 돌아왔다. 육민은 이미 루카스와 밥을 먹고 있었다. 육민은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는 재빨리 그녀를 불렀다. "엄마, 루카스가 배고프다고 해서 먼저 먹고 있었어요.” "응, 괜찮아." 소이연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향했다. 루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엄마, 방금 루카스가 점심 먹고 서울로 간다고 말했어요." 육민은 서운해하며 말했다. "응, 알고 있어." 소이연은 육민에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루카스에게 말했다. "이따가 문씨 아저씨한테 너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라고 했어.” "고마워.” 루카스는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육민은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육민은 겨우 열 살밖에 안 되었지만, 언젠가 부모님 덕분에 연애 전문가가 될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루카스는 방으로 돌아가 짐을 싸서 떠날 준비를 했다.소이연은 사실 급한 업무도 없었고 루카스가 떠난다고 생각해니 회사에 다시 갈 생각이 없어졌다. 그녀는 방에 들어가 좀 누워있으려고 위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루카스가 걸어 나오는 걸 보았다. 그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 시선을 피했는지 모르겠다. 왠지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잘 가." 소이연은 무심한 듯 가볍게 말했다. 루카스도 소이연을 돌아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스쳐가는 순간 소이연은 갑자기 발이 꼬였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곤두박질치려고 했
이마에 멍이 든 것 같았다. 루카스는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켜 세울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엄마!" 그러자 뒤에서 육민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이연이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아래층에서 뛰어온 것 같았다. 문씨 아저씨도 육민의 뒤를 따라 올라오며 소이연이 바닥에 넘어져 코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보고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연 씨! 아이고, 어떻게 해요? 빨리, 빨리 주치의 불러올게요.” "엄마, 엄마 아파요? 피가 나요......" 육민은 바닥에 주저앉아 걱정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젊은 사람이 이렇게 넘어져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돌아서서 떠났다. 소이연은 루카스의 싸늘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소이연은 평생, 평생 이 악랄한 남자를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절대로, 죽어도 왕래하지 않을 것이다! ...... 루카스가 장안을 떠난 후 소이연은 그와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을 것이고 절대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떠난 후 소이연은 매일 밤 루카스가 사용했던 베개와 이불을 덮고 잤다. 정말 오랜만에 맡는 향기였다. 육현경과의 냄새와 비슷한 루카스의 냄새를 맡고 그녀는 잠을 잘 수 있었다.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매일 밤 몇 시간씩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것은 큰 축복이었다. 하지만 소이연은 루카스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감사는 정말 그가 떠나던 날 그녀의 몸을 무자비하게 놓아버린 순간 바로 없어져 버렸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멍이 든 이마로 회사에 간 것을 생각하면 루카스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었다. 루카스가 떠난 다음 날, 소이연은 집에서 택배를 받았다. 육민에게서 온 택배였다. 평소 육민은 물건을 구입할 때도, 인터넷 쇼핑을 할 때도 다 그녀의 이름으로 구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육민의 이름으로 택배가 와서 소이연은 조금 놀랐다. 그래서 소이연은 택배
오후가 되자, 육민은 학교에서 돌아왔고,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문씨 아저씨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오늘 저한테 온 택배가 있나요?” "택배요?" 문씨 아저씨는 의아해했다. "네 방 책상 위에 있어. 마침 엄마가 집에 있을 때 와서 네 방에 가져다 놨어." 소이연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엄마!" 육민이 예의 바르게 말하며 재빨리 위층으로 뛰어올랐다. "아기 도련님, 조심해요. 그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해요. 엄마 이마에 있는 멍도 아직 안 풀렸어요!" 문씨 아저씨는 아래층에서 큰소리로 육민에게 주의를 주었다. 소이연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오므렸다. 이마에 생긴 큼지막한 멍 때문에 그녀는 출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루카스가 다시 생각났고 오전에 봤던 그 친자확인서가 생각났다. 소이연의 감정은 순간순간 정말 끊임없이 변했다. 육민은 책상 위의 택배를 신이 나서 쳐다보았다. 원래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 예민한 육민이었지만 너무 신이 나서 택배가 개봉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재빨리 봉투를 집어 들고 그 안의 친자확인서를 꺼내며 흥분한 얼굴로 결과지를 보았다. 결과지를 본 육민은 마치 돌기둥처럼 오랫동안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소이연은 육민이 걱정되어 그의 방 문 앞으로 왔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육민을 가만히 지켜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는 기적이 그렇게 많이 일어나지 않아.” 육민은 소이연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분명 아빠인데, 어떻게 아닐 수가 있지? 하지만 친자확인 결과지에는 루카스가 육민의 친부가 아닐 가능성이 99.99%라고 적혀있었다. 사실 소이연도 그 결과지를 봤을 때 가슴이 아팠다. 루카스가 육현경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결과지를 보는 순간 육현경이 한 번 더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결과지는 그녀의 눈앞에서 멀어져
육민이 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루카스는 정말 아빠가 아니라는 소리인가!그도 과학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사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샘플 오류밖에 없습니다.” "뭐가 오류라고요?" 육민은 순간 긴장했다. "저희에게 보내신 검사 샘플이, 의뢰인께서 검사하고 싶은 두 사람의 샘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의뢰인과 A의 샘플을 검사하려고 했는데, 의뢰인과 B의 샘플을 제출했다면 검사 오류가 날 수 있어요. 이전에 이런 사 오류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쪽에서는 설명했다. "그 외에는 아직까지 검사 오류가 있었던 사례는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전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육민은 전화를 끊고 자신이 보낸 머리카락을 생각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이 머리카락을 잘못 보냈다고 믿고 싶지, 루카스가 자신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맞다! 육민은 무엇인가 떠올랐다. 루카스의 머리카락을 들고 가다가 문씨 할아버지와 부딪혔던 기억이 났다. 그때, 문씨 할아버지의 몸에서 머리카락을 찾았는데 그 머리카락이 루카스의 것이 아니면 문씨 할아버지의 것이었을 수 있다. 이것이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이다! 생각을 마친 육민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소이연을 찾았다. 소이연은 벌써 감정을 추스른 육민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놀랐다. 역시 어린이의 회복력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우 강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걱정했다. 육민은 물었다. “엄마, 루카스가 또 올까요?"소이연은 미간을 좁혔다. 육민은 목표를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안 올 거야, 엄마랑도 우연히 만난 사이라 앞으로는 만날 기회가 없을 거야. 민민, 엄마도 네 아빠가 살아 계시기를 바라지만......” "엄마, 나 정말 못 믿어요?" 육민이 약간 감정이 격해진 듯 말했다.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했잖아.”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민민." 소이연은 굳은 표정으
소이연의 마음은 또 한 번 아팠다.그녀는 육민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약속했다. "엄마가 널 잘 돌봐줄게.” "저도 엄마를 잘 보살펴 줄게요!" 육민은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소이연과 육민은 암묵적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루카스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보름이 지났다. 천우진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에 언제 갈 것인지 물었다. 지난번에 그녀는 외할아버지에게 이번 달에 얼마동안 서울에 지내겠다고 약속했다. 역시 약속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그녀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약속을 어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육민도 겨울방학중이라, 천우진은 특히 육민을 데리고 오라고 강조했다. 소이연은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는 했지만, 다행히 육민이 며칠 동안 겨울 캠프에 참가해서 일주일 후에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약속을 다음 주로 미룰 수 있었다. 소이연은 오늘 장안 방송국에 일정이 있었다. 그녀의 회사는 '《배우님 자리에 앉아주세요》 '의 의상을 협찬으로 제공했기에 소이연은 프로그램 녹화가 진행 중인 지금, 그들의 광고 시간과 장소를 다시 결정하기로 결심했다. 이전에 협의된 내용과 약간의 차이가 있고, 회사의 고위 경영진이 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그녀가 직접 나서야 했다. 그녀는 승용차를 타고 방송국 입구에 도착했다. 방송국 사람들은 이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소이연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앞으로 나와 그녀를 방송국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방송국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소이연은 익숙한 사람을 본 듯했다. 그녀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다시 보니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소 이사님, 왜 그러세요?" 방송국 고위 경영진이 재빨리 물었다. "방금 지인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보았나 봐요." 소이연이 담담하게 말했고, 고위 경영진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혔다 소이연은 여전히 미심쩍어 하며 물었다. "오른쪽으로 가면 어디로 가는 건가
《배우는 자리에 앉으세요》 녹화장, 무대 뒤의 공동 분장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메이크업을 수정하며 말했다. "야, 봤어? 계지원, 계 감독이 왔어. 계 감독이 출연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안 믿었거든. 그동안 계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우리 장안 방송국이 잘 나가긴 하나 봐.” "나도 봤어, 방금 그 앞을 지나쳤는데 정말 잘생기고 키도 크더라. 연예인을 해도 정말 멋질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워.” "뭐가 아쉬워! 계 감독이 감독을 안 했어 봐, 우리가 이렇게 많은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 있겠어? 영화랑 드라마도 재미있고, 계 감독이 카메라로 찍은 여배우는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업계 사람들이 계 감독 카메라 속에 못생긴 여배우는 없다고 말할 정도야. 그야말로 여배우들의 축복이지.” "맞아. 내가 예전에 평범해 보이는 배우를 만났었는데 계 감독 눈에 띄어 단숨에 스타가 됐어. 심지어 계 감독 영화에 출현한 덕분에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라서 상도 탈 뻔했는데.....!." 말을 하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하면 실제 이름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분장실안에 듣는 귀가 여럿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쯤 되면 다들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육가희. 육가희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빨리 떠오른 여자 스타였다. 그녀의 뒤에는 강력한 배경이 있다고 한다. 계지원의 많은 주요 영화, 드라마도 모두 육가희가 여주인공을 맡았고, 그녀를 홍보하는데 완전히 열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계지원이 육가희를 밀어주는 것도 당연했고, 많은 사람들이 질투하는 것도 당연했다. 육가희는 육씨 가문의 딸이다. 육씨 가문이 육현경의 죽음으로 자산을 재정비하여 그룹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육씨 가문은 어쨌든 장안의 가장 큰 재벌그룹이다.지금까지도 육씨 가문과 비교할 만한 자산을 갖고 있는 기업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육씨 가문의 삼대까지 평생 먹고 놀고 살아도 갖고
"그냥 좀 쉬었어." 예수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연예계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다. 갑자기 모든 게 방송들이 취소되고, 모든 작품에서 하차가 되고, 캐스팅이 전면 금지 되었다는 것은 연예계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는 얘기다. 그때 한채영이 화제를 바꾸었다. "야, 나 연예계 생활 10년 만에 이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야. 수진이 너도 긴장돼?” 예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나 어제 몇 차례 실수를 해서 밤에 잠도 잘 못 잤어.” "나도 그래. 어제의 리허설 때 잘 못했는데, 오늘도 그럴까 봐 걱정돼.” 한채영은 예수진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이번 대회 규칙은 1차 때, 심사위원들이 직접 후보를 뽑고, 예선 끝난 뒤 본선에 들어가서 관중 투표를 한대. 정말 예선도 통과 못 할까 봐 걱정돼.” "이번 시즌에서 감독이 차기작에 들어갈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왔다고 들었어. 분명 이미 생각해 놓은 주인공은 있을 테니 여주를 캐스팅하는 것은 아닐 거고, 화려한 조연들을 캐스팅하겠지? 정말 계지원 눈에 띄고 싶다!" 한채영이 말을 이어 나갔다. "참, 너 예전에 계 감독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어?" 한채영이 물었다."그거 방송도 안 됐어." 예수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그런 것 같더라." 한채영은 떨면서 말했다. "그래도 계지원이랑 친분이 있지 않아?” "아니, 없어.” 예수진은 바로 선을 그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심사위원들 중, 나를 뽑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야.” "왜? 왜 그렇게 생각해?” 예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원한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 한채영이 불쑥 내뱉었다. 예수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채영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지원이 예수진을 뽑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걸 들으니 조금은 다행스러웠다. 한채영이 예수진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자신이 본선에 진출할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