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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4화

작가: 나설희
《배우는 자리에 앉으세요》 녹화장, 무대 뒤의 공동 분장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메이크업을 수정하며 말했다.

"야, 봤어? 계지원, 계 감독이 왔어. 계 감독이 출연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안 믿었거든. 그동안 계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우리 장안 방송국이 잘 나가긴 하나 봐.”

"나도 봤어, 방금 그 앞을 지나쳤는데 정말 잘생기고 키도 크더라. 연예인을 해도 정말 멋질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워.”

"뭐가 아쉬워! 계 감독이 감독을 안 했어 봐, 우리가 이렇게 많은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 있겠어? 영화랑 드라마도 재미있고, 계 감독이 카메라로 찍은 여배우는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업계 사람들이 계 감독 카메라 속에 못생긴 여배우는 없다고 말할 정도야. 그야말로 여배우들의 축복이지.”

"맞아. 내가 예전에 평범해 보이는 배우를 만났었는데 계 감독 눈에 띄어 단숨에 스타가 됐어. 심지어 계 감독 영화에 출현한 덕분에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라서 상도 탈 뻔했는데.....!."

말을 하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하면 실제 이름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분장실안에 듣는 귀가 여럿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쯤 되면 다들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육가희.

육가희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빨리 떠오른 여자 스타였다.

그녀의 뒤에는 강력한 배경이 있다고 한다.

계지원의 많은 주요 영화, 드라마도 모두 육가희가 여주인공을 맡았고, 그녀를 홍보하는데 완전히 열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계지원이 육가희를 밀어주는 것도 당연했고, 많은 사람들이 질투하는 것도 당연했다.

육가희는 육씨 가문의 딸이다.

육씨 가문이 육현경의 죽음으로 자산을 재정비하여 그룹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육씨 가문은 어쨌든 장안의 가장 큰 재벌그룹이다.

지금까지도 육씨 가문과 비교할 만한 자산을 갖고 있는 기업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육씨 가문의 삼대까지 평생 먹고 놀고 살아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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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좀 쉬었어." 예수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연예계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다. 갑자기 모든 게 방송들이 취소되고, 모든 작품에서 하차가 되고, 캐스팅이 전면 금지 되었다는 것은 연예계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는 얘기다. 그때 한채영이 화제를 바꾸었다. "야, 나 연예계 생활 10년 만에 이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야. 수진이 너도 긴장돼?” 예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나 어제 몇 차례 실수를 해서 밤에 잠도 잘 못 잤어.” "나도 그래. 어제의 리허설 때 잘 못했는데, 오늘도 그럴까 봐 걱정돼.” 한채영은 예수진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이번 대회 규칙은 1차 때, 심사위원들이 직접 후보를 뽑고, 예선 끝난 뒤 본선에 들어가서 관중 투표를 한대. 정말 예선도 통과 못 할까 봐 걱정돼.” "이번 시즌에서 감독이 차기작에 들어갈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왔다고 들었어. 분명 이미 생각해 놓은 주인공은 있을 테니 여주를 캐스팅하는 것은 아닐 거고, 화려한 조연들을 캐스팅하겠지? 정말 계지원 눈에 띄고 싶다!" 한채영이 말을 이어 나갔다. "참, 너 예전에 계 감독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어?" 한채영이 물었다."그거 방송도 안 됐어." 예수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그런 것 같더라." 한채영은 떨면서 말했다. "그래도 계지원이랑 친분이 있지 않아?” "아니, 없어.” 예수진은 바로 선을 그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심사위원들 중, 나를 뽑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야.” "왜? 왜 그렇게 생각해?” 예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원한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 한채영이 불쑥 내뱉었다. 예수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채영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지원이 예수진을 뽑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걸 들으니 조금은 다행스러웠다. 한채영이 예수진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자신이 본선에 진출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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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요.” 예수진은 부인하며 애써 농담으로 받아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도 아직 솔로에요.”“만약 그렇다면, 제 생각엔 아주 기대할 만한 연기력이던데요.”“감사합니다 선생님.” 예수진이 허리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방금 수진 씨의 연기를 보고 사실 저는 아주 감명받았어요.” 진호연이 말했다. “수진 씨 저희 같이 일했던 거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죠.” 예수진이 웃으며 말했다.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데뷔했지만, 그녀가 훨씬 더 빠르게 인기를 얻었었다.하지만 풍수는 돌고 도는 법이다.지금 그는 심사위원이 되었고, 그녀는 참가자가 되었다.“방금 장혜성 선생님과 모태범 감독님이 수진 씨 연기를 아주 잘 하셨다고 평가하셨으니, 저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수진 씨가 계속 이 무대에 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진호연은 그녀를 응원해 주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예수진은 다시 한번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고 몸을 세우며 계지원에게 시선을 옮겼다.모든 심사위원들이 한마디씩 했으며 계지원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녀는 그를 바라보았고 계지원과 눈이 마주쳤다.3년 동안 못 봐서 너무 낯설었고, 아무리 계지원의 외모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마치 아예 모르는 사람이 된 듯했다.이에 반해 그녀는 아주 많이 변해 있었다. 오늘 메이크업은 본인의 모습과 아주 달랐다.그녀의 입꼬리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었다.여기저기 카메라가 있으니, 표정 하나라도 잘 못 지었다가 기사를 장식하고 싶지 않았다.지금의 그녀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계지원은 한참을 아무 말도 없었다.그냥 그대로 예수진을 보며 마치 뼈마디가 훤히 보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계 감독님?” 사회자마저 기다리지 못하고 그를 불렀다.계지원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예수진을 훑었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태연하게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평가지를 정리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앞에서 다 잘 얘기해 주셔서 저는 할 말이 없네요.”“좋습니다.” 사회자가 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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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지원은 눈앞의 손을 보고 있었다.메이크업 때문인지 그녀의 손이 거칠어진 것 같았다.예수진의 손은 허공에서 민망하게 굳어 있었다.계지원이 한참 동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녀는 계지원이 공공장소에서 척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어쨌든 그녀 앞에 있던 배우들과는 모두 악수를 했으니까.그녀에게만 이렇게 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웃으며 손을 거두고 계지원 앞을 지나치며 진호연의 앞에 서서 비참한 모습으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그녀는 바로 지나쳐서 꺼내진 계지원의 손은 보지 못했다.배우들과 심사위원들이 서로 인사를 마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갔다.소이연은 공용 메이크업실에 앉아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한채영도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그녀 역시 앞 순서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비록 사회자가 2라운드에 진출한 사람들 명단 리스트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상 앞뒤가 구분된 것이었다.그녀는 마지막 한 사람이었다.“축하해 수진아, 너도 2라운드 진출했네.” 한채영이 기쁜 것처럼 말했다.“다행이야.”“왜 다행이야? 실력으로 올라간 거지!” 한채영이 그녀를 치켜세웠다.왜 이렇게 조롱하는 느낌이지.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는 오늘 연기로 올라갈 수 없었다.예수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단히 대답만 했다.그녀는 메이크업을 두껍게 한 탓에 거의 마지막으로 메이크업실을 나섰다.그녀가 걸어나가자, 복도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예수진 낙하산 아니야?! 네가 대신 올라갔어야 했는데, 우리 생각에 네가 예수진보다 연기 훨씬 더 잘했어.”누군가 자신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기에 예수진은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지금의 그녀는 정말 인생과 꿈을 위해 자신의 모든 모난 모습을 깎았다.그녀는 목소리가 들리자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고 다른 방향으로 방송국을 나서기로 결심했다.하지만 결국 실수로 복도에 있던 쓰레기통에 부딪혀 큰 소리를 내고 말았기에 험담을 하고 있던 배우들의 시선을 끌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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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5화

    백일잔치가 시작되기 전 예수진은 소이연과 친구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급히 다가왔다.“왜 혼자와?”“그럼 누구랑 와?”“우리 조카는?”“아, 엄마한테 맡겨놨어. 먹고 싸는 것밖에 할 줄 몰라서 재미없어.”“...”“그러는 너는 좀 어때?”“뭐가 어떠냐고?”“네 애 말이야.”예수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의 찻잔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아직 파티가 시작되기 전이라 차만 마시고 있던 남자들이었는데 송문수의 손에 들려있던 찻잔이 미끄러지면서 안에 있던 차가 흘러나온 것이다.송문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찻잔을 집어 들더니 휴지로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그 얼굴에서 당황스러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찻잔을 떨군 건 그저 우연이라는 듯 하도경, 육현경과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그를 보며 하지수도 입을 열었다.“잘 있지. 전에는 좀 힘들었는데 이젠 잘 먹고 잘 자.”“너 살 좀 찐 것 같아.”“응, 2킬로 넘게 쪘어.”“그럼 됐어.”하지수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던 예수진은 파티가 곧 시작한다는 말에 계지원과 함께 자리를 떴고 그녀가 떠나가 테이블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아마도 얘기를 다 나눈 남자들 때문인 것 같았다.가만히 있기도 뻘쭘했던 하지수가 주전자를 들려 하자 송문수가 빠르게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었다.“고마워.”하지수의 인사에 송문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한참 동안 둘 사이에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그러다가 결국 송문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 임신했어?”“응.”“빠르네.”송문수는 의미 없는 웃음으로 자신의 착잡한 마음을 감추려 했다.적어도 결혼한 다음에야 임신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송승우의 아이를 가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송문수는 자신의 생각이 점점 커지는 게 싫어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너 혼자 온 거야? 송승우는?”“서울 갔어.”“몸은 괜찮아졌어?”“응, 의족 해서 이젠 잘 다녀.”오랫동안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4화

    예수진은 빠르게 소이연에게 문자를 보냈다.[이연 언니, 송문수 왔어요. 진짜 올 줄은 몰랐는데 방금 안으로 들어갔어요!][내가 진짜 올 거라고 했잖아요.][내 매력이 그 정도일 줄 몰랐죠.]역시나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예수진에 어이없다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난 소이연은 송문수의 인영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하도 큰 키 덕분에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우뚝 솟아있는 송문수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문수야.”마찬가지로 그를 알아본 육현경이 인사를 건네자 송문수는 빠르게 그들에게로 다가갔다.“언제 왔어?”“어제 오후에.”“왔는데 왜 말도 안 해? 사업 잘된다고 이젠 우리도 모른 척하는 거야?”“아무리 잘 되봤자 내가 현경이만큼 돈이 많진 않아.”볼멘소리를 하는 하도경에 맞는 말로 반박하자 하도경도 딱히 할 말이 없는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언제 가?”“모레 비행기야, 내일 집 가서 부모님만 뵙고 가려고.”“그래서 우리 만날 시간은 없다 이거지?”“이번엔 시간이 좀 빠듯해, 거기 일도 많고. 오늘 보지 뭐, 술 제대로 마시자 한번.”“너 진짜 많이 변했어 송문수, 이렇게 진지하진 말아 줄래?”적응되지 않는 송문수의 말투에 하도경이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그럼 어쩌라고.”“나는...”판을 깔아주니 말하기 어려웠는지 하도경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술 마셔 그냥.”“그래.”또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둘은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파티의 주인공이 자리하기도 전에 술부터 마시기 시작했다.육현경이 그런 그들을 말리려 할 때 송문수의 옆에 문득 한 여자가 앉았다.그에 술잔을 들고 있던 송문수도 잠시 멈칫했다.굳이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아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을 주며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송문수를 한번 보던 소이연은 하지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지수 씨, 왔어요?”“네.”“혼자예요?”“네.”혼자라는 말에 송문수의 손은 아까보다 더 하얗게 질려버렸다.“혼자니까 더 조심해요 다닐 때.”“그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3화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서야 송문수는 마침내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캐나다에 있는 회사도 이제 정상적으로 흘러가자 귀국한 거였지만 그도 그냥 예수진 아들의 백일을 축하하러 온 것뿐이었다.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송문수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배가 부른 채로 있던 예수진이 벌써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백일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오랜만에 온 장안시였지만 송문수는 자신의 귀국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저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그런지 온통 먼지투성이여서 일단 도우미부터 부른 송문수는 아주머니가 정리를 마친 다음에야 침대에 몸을 뉘일 수 있었다.떠나기 전만 해도 이곳에서 사랑하던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는데.이제는 그 모든 게 다시는 들춰선 안 될 과거가 돼버린 것 같았다.해외에 있던 시간 동안 송문수는 부단히 하지수를 잊으려 애쓰고 있었다.물론 정말 잊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하지만 하지수와 송문수가 반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할 때도 같은 집에 살던 하지수는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그저 우연히 한 번, 그녀의 뒷모습이 화면에 스친 게 전부였다.몸을 뒤척이던 송문수는 내일의 백일잔치에 대해 생각했다.내일 가면 친구들이 무조건 술을 권할 텐데,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탓에 송문수는 지금 자신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그래도 푹 쉬면 조금은 낫겠지 싶어 그대로 잠을 청한 송문수는 이튿날 아침이 돼서야 눈을 떴다.언제부턴지 부모님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탓에 송문수는 이젠 밤을 새우는 게 오히려 힘겨웠다.그렇게 여유롭게 준비를 마친 그는 한 번 더 깔끔하게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집을 나섰다.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은 딱 적당한 시각에 집을 나선 그는 문득 옛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지었다.예전에는 어쩜 그리 특이하게 살아왔는지, 참으로 유치했던 것 같다.해외에서 반년 동안 혼자 살아서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2화

    “보름 넘게 준비한 건데 서두르는 건 아니지.”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는 일인데도 송문수는 참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갔다가 언제 와?”“그건 몰라. 상황 봐서 잘 되면 빨리 오는 거고 잘 안되면 못 오는 거지.”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송문수에 그의 결심이 바뀔 리 없다는 걸 알아챈 송승우는 그만 입을 다물고 하지수의 손을 맞잡았다.무의식중에 눈물을 흘리던 하지수는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빠르게 표정을 감췄다.“가자.”그리고는 송승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그녀는 송문수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마지막 작별인사도 전하지 않은 채 그렇게 헤어졌다.하지수의 몸에 감히 시선을 두지 못하던 송문수도 그녀가 송승우와 함께 차에 타서야 차창 너머로 비치는 그 뒷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그는 한참 동안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사실 캐나다도 송문수가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회사에 유능한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 아무에게나 CEO라는 직급을 쥐어 보내면 될 일이었지만 송문수는 본인이 가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여기서 다정하게 지내는 둘을 보고 있는 게 더 가슴 아플 것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어서.손 하나 잡았다고 이렇게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을 계속 보는 건 정말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이곳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송문수는 캐나다에 도착해서야 육현경과 소이연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출국 소식을 알렸다.그리고 언제 돌아갈지는 모른다는 말까지 남기자 다들 깜짝 놀랐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몸 잘 챙기라는 소리들뿐이었다.그리고 시간 되면 놀러 오라는 얘기들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는데 역시나 예수진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그녀는 굳이 송문수에게 따로 문자까지 보내며 물었다.[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이렇게 가겠다고? 다 버리고? 송문수, 너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해졌니? 내가 너였으면 당장이라도 송승우랑 싸웠어!][어차피 못 이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1화

    둘의 이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두 사람은 각각 손에 이혼 증명서를 들고 법원에서 나왔다.“이제 끝난 거지?”“네.”하지수에게 건네받은 이혼 증명서를 들춰보던 송승우는 안에 적힌 내용을 다 확인한 후에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혹시라도 돌발상황이 생길까 봐 따라온 건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의 이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송문수는 하지수를 보고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절차대로 서류만 제출했다.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송승우는 감정이란 게 저렇게 쉽게 사라질 수도 있나 싶었다.둘 사이에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혼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송승우는 다른 건 묻지 않았다.이제 두 사람이 이혼했으니 송승우는 저와 하지수도 떳떳해진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 송문수만 연락을 끊는다면 하지수를 다시 자기 여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그래서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송승우가 먼저 송문수를 불러세웠다.“시간 되면 집에 와서 밥이라도 먹어. 엄마 아빠가 전화해도 안 오던데, 많이 바쁜 거야?”“응.”“바쁘다고 가족들도 다 내팽개치는 건 아니지. 워라벨도 신경 써야지.”어른스러운 말투로 나무라듯 말하는 송승우를 송문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서울에서 일할 때 1년이 넘도록 안 오던 게 누군데.부모님이 굳이 송승우를 부르지 않은 건 그의 일에 방해가 될까 봐서였다.무튼 송승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일은 언제든지 시간을 뺄 수 있는 여유 적적한 일이라 여기는 사람.“언제 시간 되는지 알려주면 도우미들 시켜서 너 좋아하는 거...”“나 해외에 잠깐 나가봐야 해.”“뭐라고?”송문수가 송승우의 지루한 말을 끊으며 대답하자 송승우는 당황하며 물었다.“엄마 아빠가 말 안 했어?”“무슨 말이야 그게?”금시초문이었던 송승우는 하지수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녀 역시 처음 듣는 말인 것 같았다.“우리 회사 전기차 해외 매출이 자꾸 오르니까 전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500화

    그런데 그때, 협탁에 놓인 물과 알약 한 알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그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쪽지에는 “단기 피임약”이라는 말도 적혀있었다.그 약과 물을 번갈아 보던 하지수는 피가 차게 식는다는 게 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너무나도 명확한 송문수의 의사에 하지수는 가슴이 아려왔다.성인 남녀 둘이 충동적으로 서로를 원해서 가졌던 하룻밤이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걸 이렇게 약으로 알려주다니.알약을 집어 든 하지수는 참으로 처량하게 웃어 보였다....그렇게 점심이 다돼서야 하지수는 별장으로 돌아갔다.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탓에 그녀는 송승우가 몇 통의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 채 별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송승우는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얼굴로 이제야 들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달리 허영지와 송기명은 살갑게 하지수를 걱정해주었다.“지수야, 어제 어디 갔었어? 전화는 왜 꺼놓고. 수진이한테 전화했는데 네가 문수랑 같이 갔다고 해서 문수한테 연락해보니까 문수는 또 너랑 같이 있는 거 아니라고 그러던데.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지?”“없어요.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문수 씨 집에서 잔 것뿐이에요.”송문수 집에서 잤다는 하지수의 말에 송승우는 더는 못 참겠는지 언성을 높였다.“하지수, 너 나랑 한 약속 잊었어? 네가 어떻게 거기서 잠을 자!”“내가 무슨 약속을 했는데요?”송승우는 아무리 화가 났어도 저 질문에만큼은 답을 할 수 없었다.가스라이팅으로 어렵게 얻어낸 기회라는 걸 다른 사람한테는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나 문수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러니까 아직은 뭘 하든 합법적이란 소리죠.”“하지만...”“이혼하고 나서 얘기해요. 나 피곤해서 먼저 올라 가볼 게요.”몸도 마음도 다 힘들었던 하지수는 송승우를 화를 살필 겨를이 없었기에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그렇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목 끝까지 끌

  • 맙소사! 보스의 아들을 줍다니   제1499화

    “너 내일 후회할 거야.”이런 하지수를 앞에 두고 참는 건 송문수에게도 곤욕이었다.온몸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게 더 힘들었다.“후회 안 해.”“딱 하나 후회되는 게 있다면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한번 밖에 못 해봤다는 거야. 그리고 그 한 번도 진짜 별로였어.”“뭐?”아까부터 한번을 강조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그 한 번도 다 너한테 맞춘 거였잖아.”고작 한 번이라니, 그럴 리가.그런데 또 곱씹어 보니 둘이 함께 잔 건 한 번뿐인 것 같긴 했다.하지만 송승우와 그렇게 오래도록 사귀면서 송승우 방까지 들락날락하던 게 하지수인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서 저와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이번엔 내가 움직일 거야.”하지수는 잔뜩 풀린 눈으로 당차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나 또 밀어내면 그땐 진짜 물어버릴 거야.”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닥에 눕힌 뒤 그 위에 올라탔다.“반항하지 마.”곧바로 하지수의 입술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송문수는 정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이 상황에 그녀를 밀어내면 하지수가 정말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송문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걸 택했다.그렇게 내일 그녀의 원망도 다 받아낼 심산으로 송문수는 하지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이 밝아오자 하지수는 몸을 뒤척였다.온몸에 차에 깔리기라도 한 듯 무거웠고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던 그녀는 힘겹게 눈부터 떠보았다.익숙하고도 낯선 이곳은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송문수의 집이었다.그리고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의 기억 조각들이 하나하나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것들이 마침내 온전한 하나가 되었을 때,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대담한 모습을 그녀는 차마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술이 깬 지금에 와서는 절대 못 할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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