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은 인상을 찌푸렸다.소이연이 어쩔 수 없이 연회장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문서아는 기고만장해서 뒤돌아갔다.그런데 이때.“지지직!”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문서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탑 브라 디자인인 드레스를 입었는데 찢어지는 바람에 살색의 가슴 패드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았기에 그녀는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곁에 있던 소나은도 식겁했지만 문서아를 가려주지 않았다. 쳐다만 보다가 그녀와 좀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문서아는 자신의 가슴을 막고는 육민을 노려보았다.문서아의 치마 자락 끝에는 깨끗하고 윤기도는 작은 구두가 있었다. 육민이 저지른 것이다.그는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아줌마, 설마 어린 저한테 배상하라고 하시는 건 아니죠? 저 이제 여섯 살밖에 안되었는데...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화가 치밀어 오른 문서아는 목까지 빨개졌다.이 애새끼가 날 골탕을 먹이려고 내가 했던 말을 반복해?육현경의 아들이 아니었으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었을 거야.“아줌마, 드레스가 다 찢어졌는데 연회장에 계속 남아있는 건 실례 아닌가요? 저의 할아버지와 아빠한테 실례인 것 같은데요.”육민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면서 순진무구하게 말했다.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역시 유전자의 힘인가?여섯 살짜리 애가 이렇게 잘 대처할 줄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야. 정말 똑똑하다니깐.복수를 할 생각도 없었는데 속이 시원하다!“아!”문서아는 치밀어 오르는 울화에 못 이겨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어린애한테도 질 거라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문덕수와 임지효는 딸의 고함소리에 제꺽 달려왔다. 딸의 처참한 행색에 두 사람의 낯빛은 어두워졌다.문덕수는 정장 외투를 벗어 문서아한테 걸쳐주었고 그로 하여 더 이상의 노출을 막을 수 있었다.“아빠, 쟤가 저의 드레스를 일부러 밟았어요. 흑.”문덕수를 본 문서아는 목놓아 울었다.문덕수와 눈이 마주친 육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서아는 제자리에 얼어있었다. 육현경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적잖게 놀란 모습이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소리를 질렀다.“육현경 씨, 소이연이 뭐 좋은 여자인 줄 아나 본데요. 금방 귀국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이 년이 얼마나 남자를 후리고 다녔는지 모르죠? 알아주는 걸레라고요! 18살 때부터 걸레라고 소문이 자자했고 아니나 다를까 아빠도 없는 애를 임신했어요. 지금도 봐봐요. 저의 오빠랑 헤어지지도 않았으면서 현경 씨한테 꼬리치는 것 좀 봐요! 이 년한테 속지 마세요!”그녀의 말에 주위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저 여자가 소이연이었어. 육 씨 도련님을 어떻게 꼬셨기에... 대단하네요.”“입고 있는 드레스만 17억이라잖아요. 꼬시려고 애쓴 게 티 나네요. 이런 큰돈을...”“육 씨 작은 도련님이 소이연이라는 여자한테 엄마라고 하던데. 설마 저 여자 육씨 작은 도련님 마음부터 사로잡은 게 아닐까요?”“보통 여자가 아닌 건 확실하군요.”문서아는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입꼬리를 올렸다.소이연, 기분이 어때? 육현경 씨 앞에서 정체가 폭로된 기분 말이야.현경 씨가 소이연 너 같은 여자와 더 엮이고 싶을까? 그럴 리가!소이연 너, 절대 육현경 씨랑 잘될 수 없어. 절대 용납 못해!“소이연 씨는 18살에 안 좋은 일을 겪어서 임신했을 뿐입니다. 이 일은 이연 씨 인생에서 가장 아픈 상처이자 트라우마이지 오점이 아닙니다. 그녀의 아픈 과거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처럼 조롱하고 상처를 들추기 보단요!”육현경의 차가운 목소리는 모두에게 경고하는 것 같았지만 소이연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었다.“현경 씨는 이 년한테 속은 거예요! 이 여자는 걸레...”문서아는 되려 흥분해서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지금 이 순간부터 제 귀에 소이연 씨에 관한 조롱이거나 험담이 들린다면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그녀를 손가락질하는 것은 결국 저를 손가락질하는 것과 같으니깐요. 제가 무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
“미안해요.”문서아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오늘 느낀 수치심은 한평생 잊기 힘들 것이다.“괜찮아.”소이연은 더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는데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대인배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문서아는 그녀의 모습에 더더욱 괴로워했다.문덕수는 문서아가 사과한 뒤 육현경에게 물었다.“육 씨 도련님, 저희 이만 가봐도 될까요?”“앞으로 이런 일은 없도록 하세요.”“네! 제가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문덕수는 문서아를 끌어당기더니 초라한 뒷모습만 남기고 떠났다.그들이 떠난 후, 연회장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하지만 육현경과 소이연을 지켜보는 눈길은 여전히 존재했다.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두 사람이 어떻게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오늘 좀 바빠서요. 좀만 기다려 줘요. 집까지 데려다줄게요.”“아니에요. 저 혼자 가도 되는걸요...”“기다려 줘요.”육현경은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그의 말에는 거절할 수 없는 마력이 있었다.자상한데 박력 넘치기까지 한 이 남자를 어쩌면 좋아...“민아, 엄마 곁에 꼭 붙어있어.”육현경은 아들에게 당부했다.“네! 맡겨만 주세요!”육민은 차렷 자세를 하고서 대답했다.육현경은 만족한단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떠났다.소이연은 걸음을 재촉하는 육현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사색에 잠겼다.그렇게 바쁜데도 나 때문에 와준 거라고?감동이긴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엄마, 그네 타러 가요.”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육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민아, 아까는 고마웠어.”“괜찮아요, 엄마. 아빠가 그러셨어요. 남자라면 엄마를 보호해 줘야 된다고요.”육민은 앳된 목소리로 당차게 말했다.그 바람에 소이연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내렸다.그녀는 육민의 고사리 같은 손을 쥐고는 연회장을 나섰다.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던 소나은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여유롭고
“계 감독님, 오랜만에 뵙네요.”소이연이 먼저 잔을 들었다.“이연 씨는 위도 안 좋으시니 적당히 즐기시는 게 좋겠어요.”계지원도 함께 잔을 들었다.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혔다.친한 사이가 아니라 그런지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만 흘렀다.“현경이 말이에요.”계지원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참 괜찮은 애에요.”현경? 아, 육현경.소이연은 그제야 계지원이 누구를 말하는지 깨달았다.계지원은 청수 할아버지의 양아들이라 육현경과 가깝게 지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소이연은 육현경에 대해 말하기 싫었기에 대꾸하지 않았다.“늦었으니 먼저 가볼게요.”계지원은 와인잔을 우아하게 내려놓았다.청수 할아버지도 댁으로 돌아가셨고 육현경만이 연회장에 온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조심히 들어가세요.”소이연은 미소를 지었고 계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어 보였다.계지원 이 남자는 이름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젠틀하고 지성미가 넘쳐나는 사람이기에 쉽게 호감을 사는 유형이었다.계지원이 떠난 후, 하도경과 송문수도 집으로 돌아갔다. 연회장을 나서기 전에 모두 소이연을 힐끗 바라보았지만 소이연은 못 본 척 했다.아직도 육현경 이 인간을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야?취기가 올라서 힘든데...이때 그녀는 마침 육현경이 가든으로 가는 것을 보았지만 따라가지는 않았다.가든.“예수진.”육현경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예수진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이거 놔.”“어디에 있었던 거야? 전화도 안 받고.”“신경 꺼.”예수진은 육현경의 손을 뿌리쳤다.“비서 차에 타고 집으로 가.”육현경은 어린애를 달래듯 말했다.예수진은 인상을 찌푸렸다.“싫어. 이 시간에 집 가는 사람이 어딨어? 좀 있다 친구랑 약속 있어.”“몇 시인데 친구를 만나? 이 늦은 밤에 약속이라고?”“21세기 사람 맞아? 11시밖에 안되었는데 뭐라는 거야.”“너 내일 촬영 있어.”“알아. 제시간에 도착...”“명진아.”육현경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
소이연과 육현경은 거리를 둔 채 걷고 있었다.선남선녀라 그런지 뒷모습도 보기 좋았다.그들의 외모는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모두 소이연과 육현경이 연인일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차 안.소이연은 머리가 어지러웠다.아, 너무 많이 마셨나 봐...그녀는 다른 때와 달리 과음했다. 문서인과 사귀고 있을 때 그리고 문 씨 그룹에 출근할 때는 이런 적이 없었다.그런데 오늘 밤은...오늘 밤은 감성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나는 내가 다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마저도 내 착각이었지. 날 비판하는 목소리가 하나 둘 들려올 때마다 흔들리는 내 모습이 싫어.그녀가 사색에 잠긴 사이,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육현경은 차창에 기대 곤히 잠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 그리고 아기 같은 숨소리.육현경은 차에서 내려 소이연을 안았다.소이연은 불편함을 느꼈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몸에 힘이 풀린 탓에 인상만 찌푸릴 뿐, 반항은 하지 못했다.“비밀번호 뭐예요?”육현경은 그녀를 안고서 물었다. 섹시한 중저음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소이연은 기분 탓인지 아니면 취해서인지 몸을 가눌 수 없었다.“제 생일...”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도어록이 열렸다.“문이 열렸습니다.”도어록의 알림음과 함께 육현경은 문을 열어 그녀와 함께 들어갔다.신발 수납장에는 두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육현경은 저도 몰래 미소를 지었고 남성용 슬리퍼를 꺼내 신고 소이연의 집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푹신한 침대에 누운 소이연은 불편한 듯 끙끙거렸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육현경의 정장 외투와 몸에 딱 맞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육현경은 그녀가 신고 있는 하이힐을 벗겨주었다.뽀얀 속살과 함께 드러난 것은 발목에 난 상처였다. 하이힐을 신어서 껍질이 벗겨진 것이다.육현경은 일어나서 소이연이 걸친 검은색의 정장 외투를 벗겼으나 몸에 딱 붙는 드레스에 손을 낼 엄두가 나지 않아서인지
“제가 너무 늦었죠.”육현경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중저음 목소리에는 그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었다.소이연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딱 좋아요.”모든 것이 딱 좋았다.육현경의 심장이 더 거칠게 뛰었다. 소이연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볼을 쓰담아주었고 눈물을 닦아주었다.소이연의 몸이 조금씩 달아올랐다.두 사람의 시선이 한곳에서 엉켰다.묘한 기류 속에서 무언가가 불타고 있었다...육현경은 소이연에게로 다가갔고 그녀는 싫지 않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남녀, 한 공간 그리고 늦은 시간.숨겨왔던 감정이 불타올라 엉키는 지금.육현경은 소이연의 부드럽고 윤기 있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려 했다.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볼 뽀뽀가 되긴 했지만 육현경의 뜨거운 눈빛은 오로지 소이연에게로 향했다.“미안해요.”소이연은 정중하게 거절했다.육현경은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앉았다.“제가 너무 급했네요.”그의 말에 소이연은 움찔했다.분명 아무 사이도 아닌데.분명 육현경이 화를 낸 것도 아닌데.그런데 그녀는 이유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마치 그녀가 누군가의 마음을 짓밟은 것처럼 말이다.육현경은 말을 마치고 나서 나가려 했다.“저는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해요.”소이연은 다급히 해석했다.육현경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소이연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제가 18살 되던 해, 저의 술잔에 누군가 약을 탔어요. 그러고 나서 모르는 남자와 성관계를 했고 깨어난 후 저는 메스꺼움만 느낄 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하지 못했어요.”육현경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그 뒤로 어떤 남자와 신체 접촉이 있어도 몸이 거부반응을 해요. 마음이 불편하고 몸도 굳어져요. 본능적인 거부반응이죠.”소이연은 조심스럽게 육현경을 쳐다보았다.“현경 씨한테만 그런 게 아니에요.”그녀는 벌떡 일어서더니 욕실로 달려갔고 급한 마음에 욕실 문을 제대로 닫지 못했다. 욕실에서는 고통스러운 구역질 소리가 들려왔
한 편.예수진은 울며 겨자 먹기로 육 씨 저택에 돌아왔다.그녀는 들어가는 길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지수야, 너 왜 우리 외할아버지 생신 파티에 안 왔어? 송문수 그 개자식은 어쩌고.”“나 오늘 야근이야. 아직도 퇴근 못했어.”“네가 그런다고 송 씨 가문에서 알아줄 것 같아? 송문수 그 자식이 너한테 감사해할 것 같냐고. 걔 주변에 널린 게 여자야!”“딱히 송문수를 위해 하는 건 아니야. 나를 위해서 하는 거지.”“입만 살아가지고는.”예수진은 이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몸에 딱 붙어서 불편했던 드레스를 벗기 위해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고는 손을 등 뒤로 뻗었다. 드레스가 허리춤까지 벗겨지던 찰나.욕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계지원이 문 앞에 서있었다.예수진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으나 못 본 척 하고는 드레스를 벗었다.“아무튼 송문수 그 개자식을 생각하면 네가 백배 더 아까워.”“알아.”“아, 말이 길어졌네. 나 요즘 장안시에서 촬영해. 시간 되면 만나자. 그 말 하려고 전화한 거야.”“그래.”“나 금방 집에 도착했어. 너도 그만하고 퇴근해. 집에 가서 푹 쉬란 말이야.”“응. 끊을게.”전화를 끊은 예수진은 자신을 등지고 서있는 계지원을 쳐다보았는데 귀가 새빨개져있었다.그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걸었다.“계 감독님은 그 많은 여자를 봤으면서 왜 이러시는 거죠? 감독님 답지 않게.”계지원은 쑥스러워했다.“내 방의 욕실에 물이 새서... 그리고 네가 돌아올 줄 몰랐어.”그는 왜 그녀의 욕실에서 샤워했는지 설명했다.“오빠가 하도 난리를 쳐서요.”예수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근데 문서아랑 함께 있을 시간 아닌가? 빨리 끝났나 봐요? 시시하게.”계지원은 뭐라고 대답할지 몰랐다.“저 씻고 쉬어야 하니까 욕실 다 쓰셨으면 나가주세요, 외삼촌.”예수진의 말에 그는 대답했다.“너 옷 갈아입고...”“갈아입었어요.”계지원은 다시 그녀를 마주향해 섰다.예수진은 박시한 사이즈의
그녀 방안의 책상 위에는 컵이 놓여있었다. 노란 끼가 도는 것으로 보아 꿀물인 것 같았고 종이도 한 장 남겨져있었다.“꿀물이 숙취에 좋대요. 깨나서 아침 꼭 먹어요. 빈속에 토하면 위에 안 좋으니깐요. 저 일주일 동안 출장 가요. 저를 기다려 줘요.”정갈한 글씨체는 육 씨 연회 초대장에 쓰여 있는 글씨체와 똑같았다.소이연은 꿀물을 한 모금 마셨다.목 넘김이 부드러운 건지 마음속이 따뜻한 건지 알 수 없었다.설레는 감정이 드는 게 얼마만인지.어제 육현경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 한 게 설마... 일주일 동안 출장 가서 날 못 보니까 그런 건가?소이연은 컵을 내려놓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 더럽혀진 드레스를 벗고는 샤워했다.더럽혀진 드레스는 쓰레기통에 넣었다.공짜로 얻은 거라 그런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그녀는 객실의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숙취 때문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육현경이 남긴 말이 생각났다.“깨나서 아침 꼭 먹어요. 빈속에 토하면 위에 안 좋으니깐요.”그녀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하던 중,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하고는 한쪽에 놓았다.접시에 잘 담아서 식탁에 앉아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는데 문서인이 보낸 카카오톡 문자가 떴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문자를 확인했다.여러 장의 사진이었는데 사진 속 육현경은 예수진의 손목을 꽉 잡고 있었으나 예수진은 인상만 찌푸릴 뿐, 다른 반항은 없었다.묘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사진이었다.문서인은 또 문자를 보내왔다.“소이연, 말 좀 들어. 육현경이 너한테 진심일 것 같아? 네가 좀 이쁘장하니까 놀아보는 거지. 내가 장담하는 데, 육현경 같은 남자한테 널린 게 여자야. 넌 그중 한 명일 뿐이고.”그녀는 육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육현경이 예수진을 좋아한다던 그 말.소이연은 토스트를 먹으면서 그에게 답했다.“애도 아닌데 놀아보면 뭐 어때?”그러고는 문서인을 삭제했다.문 씨 별장.문서인은 일찍 일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
회의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들은 혹시나 방금 들은 말이 착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송승우는 믿을 수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장난만 치고 아무것도 해낸 적 없었던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제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요. 다음 주 수요일쯤, 크레지 씨가 직접 회사로 와서 계약서에 사인하실 거라고 하셨어요.”송문수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정말인가요?”오 이사님이 가장 먼저 물었다. 이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다른 이사님들도 모두 송문수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이사님들뿐만 아니라 송기명까지도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거라 생각했었다. 기술 투자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즉시 프로젝트를 멈추고 더 이상의 손실을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다.그동안 들인 노력과 돈이 헛된 것으로 된다고 해도, 아쉽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면서, 이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면서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기술 투자를 따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국제적인 협력 또한 쉽지 않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경쟁 관계도 존재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성사한 것이었다.“금방 크레지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송문수도 감격스러운지 여러 번 반복했다.“정말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오 이사님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다른 이사님들도 다들 같은 말만 반복했다.“문수 씨, 정말 대단하세요!”“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크레지 씨한테서 기술 투자를 따내다뇨... 크레지 씨는 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문수 씨, 이번에 정말 큰 공을 세우셨어요. 만약 이번 기술 투자가 실패했다면 회사는 최소 3년에서 5년 동
그녀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송기명과 허영지도 아마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니 말이다.그러나 송문수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해줬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유독 송승우만은 계속해서 송문수의 능력을 부정했고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하지수는 송승우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그러자 그때, 송문수의 전화가 울렸다.전화 화면을 확인한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송승우는 송문수의 행동을 지켜보며 마치 트집이라도 잡은 것처럼 말했다.“송문수, 회의 중에 개인 전화를 받으면 안 되는 거 몰라?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송문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회의실 구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송승우는 더 화가 났다.그때, 오 이사님이 그를 꾸짖었다.“승우 씨, 지금 문수 씨는 이 회사의 회장입니다. 이 회사에 발을 들인 이상 문수 씨의 말대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수 씨가 전화를 언제 받든 그건 문수 씨가 결정할 일입니다. 저희도 문수 씨랑 여러 번 회의를 해봤어요. 진짜 급하고 중요한 전화가 아닌 이상 회의 중에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송승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송문수 이놈, 비밀리에 오 이사님이랑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왜 오 이사님께서 계속 송문수를 감싸주겠어?’이렇게 생각한 그는 다른 이사님들을 둘러보았다.다른 이사님들도 송문수가 회의 중에 전화를 받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듯했다. 다들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송승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도대체 송문수가 이 사람들에게 뭘 해 줬길래 다들 이렇게 그를 감싸는 걸까?’회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조용히 송문수가 전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송승우는 점점 더 짜증이 났지만 다들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도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한참 지나서야 송문수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송문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송승우가 바로 입을 열었다.
송문수가 말을 마치자 모든 이사들이 손을 들어 찬성했다.송승우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큰 소리로 물었다.“그렇게 애쓰던 프로젝트가 물거품으로 된다니까요?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요? 프로젝트를 포기하면 무조건 손해를 볼 거예요.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송문수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 찰나, 오 이사님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승우 씨, 정말 회사 상황을 제대로 알고 오신 거 맞으세요?”“당연히 알고 왔죠.”송승우는 당당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지금 승우 씨가 하는 말들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만...”오 이사님은 원래 직설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도 상대가 송승우였기에 지금까지 나름대로 배려를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사실 저는 예전부터 문수 씨를 별로 좋게 보지 않았어요. 문수 씨가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한 지는 좀 오래 되었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일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문수 씨는 정말로 회사를 위해 애쓰고 있어요. 저도 회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문수 씨의 진심을 느꼈거든요.”“하지만 승우 씨는... 정말 실망입니다. 승우 씨는 지금 회사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요.”“오 이사님!”송승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이사님께서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절 이런 식으로 평가하는 건 제 인생 그 자체를 모독하는 겁니다.”“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사실 문수 씨가 대리 회장님을 맡게 되었을 때, 전 더 심하게 말했었거든요. 하지만 문수 씨가 회사를 관리하는 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저는 그냥 아버지의 노력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왜 그렇게 저를 비난하시는 거죠?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그래서 물어봤잖아요. 정말 회사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냐고 말입니다. 만약 정말 회사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왜 회사가 자금 파산의 문턱에 있는지 알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송승우는 송문수의 말투에서 그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형, 직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우리 차량을 사용하라고 하는 건 불법이야. 노동법을 위반하는 거라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구매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만약 형 말대로 강요하면 말이야.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신고해 버리면 우리는 법적 처벌을 받게 돼. 그러면 송씨 그룹도 끝장나는 거고. 원래부터 상태가 별로 안 좋은 데다가 평판까지 나빠지면 그때는 정말 파산이야.”“직원한테만 할인해 준다고 하면 되잖아. 할인까지 해주는데 직원들이 왜 반대하겠어?”송승우가 그의 말에 반박했다.“직원한테만 할인해 준다고? 그럼 얼마나 할인할 건데? 몇 퍼센트가 적당할까?”송문수가 따져 물었다.“형, 제대로 생각해 보긴 한 거야? 할인 때문에 회사가 손해를 보는 건 일단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직원마다 상황이 다르잖아. 가정 형편도 다 다르고... 게다가 만약 산 지 얼마 안 된 자동차가 있다고 생각해 봐. 할인을 해준다고 해도 나라면 안 살 것 같거든?”“그래도 필요한 직원들도 있을 거 아니야?”송승우의 얼굴이 확실히 어두워졌다.“송문수,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내 생각을 부정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형인데... 날 이런 식으로 대해도 되는 거야?”“기술 투자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을 때, 형도 내가 지금까지 노력해서 낸 성과를 바로 부정해 버렸잖아.”송문수가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그 말을 들은 송승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송문수의 말이 맞았기에 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사회니까 우리가 의견을 낸다고 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잖아. 이사님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해. 제 생각에 동의하는 이사님들은 손을 들어줄 수 있으신가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할인을 해주고 직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우리 신에너지 자동차를 사용하게 하자는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지금 이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적자를 보고 있어요. 만약 기술 투자에 실패하면 계속해서 적자가 날 겁니다.”송문수가 그의 말을 반박했다.“물론 이 프로젝트를 포기한다는 건 기술 투자에 실패한 상황을 전제로 생각한 플랜일 뿐입니다. 만약 기술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저희는 당연히 이 프로젝트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저희는 지금 단지 앞으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전략을 세우는 중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미리 대비하고 회사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 나갈지 명확히 하자는 거죠.”“난 네가 기술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송승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네가 해외에서 협상을 할 때부터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기술 투자가 실패할 경우를 생각해서 계획을 세워야 돼.”송승우는 모든 이사들 앞에서 송문수의 능력을 부정해 버렸다.송문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어릴 적부터 집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송문수는 송승우 앞에 서면 항상 자기가 그보다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송승우가 안 될 거라 말하면 정말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송문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송승우는 태연하게 말을 덧붙였다.“그러니까 제 말은 기술 투자가 성공할 경우에 대해서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기술 투자 없이 바로 전략을 세워야 해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길 원합니다.”“형, 지금 이미 생산한 신에너지 자동차도 팔리지 않고 있어.”송문수가 말했다.“그건 네가 마케팅을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거지.”송승우가 대답했다.“지금까지의 홍보 결과만 따르면 다들 저희의 에너지 자동차를 불합격품이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송승우는 한 마디씩 똑똑하게 말했다.“그래서 저는 저희부터 몸소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송문수가 그를 바라봤다.“간단하지 않나요? 저희조차 회사에서 생산한 신에너지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어떻게 우리의 제품을 믿겠어요?”송승우가 이렇게 제
회의실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모든 사람의 관심이 송승우에게 쏠렸다. 그중 대부분 사람들은 송승우를 칭찬하고 있었다.그는 송문수와 달리 갑자기 회사로 찾아왔음에도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송승우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이제야 겨우 인정받기 시작한 송문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흘낏 바라보며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는 걸 살폈다.송문수는 물론, 하지수도 마찬가지로 송승우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불쾌해하고 있었다.회사는 이미 송문수가 관리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회사는 전보다 안정한 상태로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승우가 합류하는 게 흐름을 방해할까 봐 하지수는 걱정이 되었다. 이사들도 분명 송승우를 더 믿는 듯했다.하지만 송승우는 회사를 관리해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연구에만 집중해 온 데다가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과학 연구는 전혀 다른 분야였고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물론 하지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송승우도 좋은 마음으로 회사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는 것이었기에 그녀가 불만을 늘어놓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송문수도 아마 같은 생각일 듯했다.“문수야, 내가 왔는데 기쁘지 않아?”송승우가 송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연히 기쁘지.”송문수가 대답했다.“형이 와서 도와준다면 나야 당연히 좋지. 형은 머리가 좋잖아. 형이 있으니까 회사도 더 잘될 거야.”“그 말이 네 진심이길 바랄게.”송승우는 약간 비웃으며 말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송문수에게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하지만 송문수도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저희는 지금 기술 투자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아직 저에게 연락을 주지는 않았지만 전 개인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죠. 하지만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으면 저희의 프로젝트에 지장을 줄 겁니다.”“일단 첫째는 많은 직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하지수는 뒷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방금까지 송승우와 일 얘기를 나눴기에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업무 생각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기술 투자 쪽에서도 아직 아무 소식 없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송씨 그룹이 큰돈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방금 형이 너한테 같이 가자고 했었잖아. 왜 따라가지 않은 거야?”송문수가 갑자기 꺼낸 말에 하지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바람에 송문수가 갑자기 말을 걸 줄 몰랐던 것이다.그녀는 잠깐 생각을 하고 나서야 송문수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하지수는 미세하게 이마를 찡그리며 대답했다.“내가 왜 승우 씨를 따라가야 되는데?”“너 우리 형을...”송문수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가락을 움켜쥐어지고 있었다.“더 이상 우리 형을... 좋아하지 않는 거야?”송문수는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수가 어떤 대답을 할지 몰랐기에 그의 가슴은 요동치고 있었다.“응. 없어.”하지수는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그 순간, 송문수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전에 우리 형 많이 좋아하지 않았어?”그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예전에는 그랬지.”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많은 일을 겪었잖아. 좋아하는 감정도 점점 사라지더라고.”그녀는 이어서 말했다.“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세월의 흐름을 버텨내기 힘든 것 같아.”송승우에 대한 감정이 이렇게 빠르게 식을 줄은 그녀조차도 몰랐던 것이었다.송문수는 점점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제 아무 감정도 없는 거면 우리 형이랑 가까이 지내지 마. 멀리 떨어져서 지내. 조금의 여지라도 줘서는 안 돼.”“알겠어.”하지수가 대답했다.그녀는 더 이상 송승우에게 어떤 기대나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송승우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기술 투자가 실패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생각해 본 적은 있으세요? 실패하면 회사가 또다시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요?”“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일 이사님들과 논의할 예정입니다. 기술 투자가 실패할 경우 회사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의할 것입니다.”하지수가 설명했다.“기술 투자가 실패한다고 해도 다른 플랜을 준비할 예정이고요.”송승우는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순간,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하지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문수 씨랑 생각하고 있었던 플랜이 있긴 하거든요. 만약 기술 투자가 정말 실패하게 된다면 그때는 신에너지 자동차에 대한 연구개발과 판매를 포기할 것입니다.”“그럼 손실은 어떻게 할 건가요? 육현경 씨한테서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잊은 겁니까? 그냥 갚지 않을 생각인가요?”송승우는 다소 흥분하며 말했다.“당연히 갚아야죠. 문수 씨 친구이긴 하지만 업무적으로 엮이면 말이 또 달라지거든요.”하지수가 단호하게 말했다.“송씨 그룹이 지금까지 해오던 사업 분야에서 수익을 내면 되죠. 그러면 조금씩이라도 갚을 수 있잖아요?”“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해 놓고 그냥 포기하겠다는 건가요?”송승우는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포기해 버리면 완전히 손해를 본 것으로 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다른 플랜으로 이득을 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제때에 손실을 멈춰야죠.”하지수가 말했다.“사람들이 기술력을 의심하고 있는 데다가 기술 투자까지 받지 못하게 되면 앞으로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겁니다. 사회적 리스크도 많이 부담해야 할 거고요. 그럴 경우 회사 주식이 하락할 뿐만 아니라 손실이 커질 뿐입니다.”송승우가 또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하지수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물론 내일 이사님들과 함께 논의하고 나서 결정해야 되겠죠. 송씨 그룹이라고 해서 저희만의 회사가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