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예수진은 울며 겨자 먹기로 육 씨 저택에 돌아왔다.그녀는 들어가는 길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지수야, 너 왜 우리 외할아버지 생신 파티에 안 왔어? 송문수 그 개자식은 어쩌고.”“나 오늘 야근이야. 아직도 퇴근 못했어.”“네가 그런다고 송 씨 가문에서 알아줄 것 같아? 송문수 그 자식이 너한테 감사해할 것 같냐고. 걔 주변에 널린 게 여자야!”“딱히 송문수를 위해 하는 건 아니야. 나를 위해서 하는 거지.”“입만 살아가지고는.”예수진은 이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몸에 딱 붙어서 불편했던 드레스를 벗기 위해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고는 손을 등 뒤로 뻗었다. 드레스가 허리춤까지 벗겨지던 찰나.욕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계지원이 문 앞에 서있었다.예수진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으나 못 본 척 하고는 드레스를 벗었다.“아무튼 송문수 그 개자식을 생각하면 네가 백배 더 아까워.”“알아.”“아, 말이 길어졌네. 나 요즘 장안시에서 촬영해. 시간 되면 만나자. 그 말 하려고 전화한 거야.”“그래.”“나 금방 집에 도착했어. 너도 그만하고 퇴근해. 집에 가서 푹 쉬란 말이야.”“응. 끊을게.”전화를 끊은 예수진은 자신을 등지고 서있는 계지원을 쳐다보았는데 귀가 새빨개져있었다.그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걸었다.“계 감독님은 그 많은 여자를 봤으면서 왜 이러시는 거죠? 감독님 답지 않게.”계지원은 쑥스러워했다.“내 방의 욕실에 물이 새서... 그리고 네가 돌아올 줄 몰랐어.”그는 왜 그녀의 욕실에서 샤워했는지 설명했다.“오빠가 하도 난리를 쳐서요.”예수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근데 문서아랑 함께 있을 시간 아닌가? 빨리 끝났나 봐요? 시시하게.”계지원은 뭐라고 대답할지 몰랐다.“저 씻고 쉬어야 하니까 욕실 다 쓰셨으면 나가주세요, 외삼촌.”예수진의 말에 그는 대답했다.“너 옷 갈아입고...”“갈아입었어요.”계지원은 다시 그녀를 마주향해 섰다.예수진은 박시한 사이즈의
그녀 방안의 책상 위에는 컵이 놓여있었다. 노란 끼가 도는 것으로 보아 꿀물인 것 같았고 종이도 한 장 남겨져있었다.“꿀물이 숙취에 좋대요. 깨나서 아침 꼭 먹어요. 빈속에 토하면 위에 안 좋으니깐요. 저 일주일 동안 출장 가요. 저를 기다려 줘요.”정갈한 글씨체는 육 씨 연회 초대장에 쓰여 있는 글씨체와 똑같았다.소이연은 꿀물을 한 모금 마셨다.목 넘김이 부드러운 건지 마음속이 따뜻한 건지 알 수 없었다.설레는 감정이 드는 게 얼마만인지.어제 육현경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 한 게 설마... 일주일 동안 출장 가서 날 못 보니까 그런 건가?소이연은 컵을 내려놓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 더럽혀진 드레스를 벗고는 샤워했다.더럽혀진 드레스는 쓰레기통에 넣었다.공짜로 얻은 거라 그런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그녀는 객실의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숙취 때문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육현경이 남긴 말이 생각났다.“깨나서 아침 꼭 먹어요. 빈속에 토하면 위에 안 좋으니깐요.”그녀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하던 중,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하고는 한쪽에 놓았다.접시에 잘 담아서 식탁에 앉아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는데 문서인이 보낸 카카오톡 문자가 떴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문자를 확인했다.여러 장의 사진이었는데 사진 속 육현경은 예수진의 손목을 꽉 잡고 있었으나 예수진은 인상만 찌푸릴 뿐, 다른 반항은 없었다.묘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사진이었다.문서인은 또 문자를 보내왔다.“소이연, 말 좀 들어. 육현경이 너한테 진심일 것 같아? 네가 좀 이쁘장하니까 놀아보는 거지. 내가 장담하는 데, 육현경 같은 남자한테 널린 게 여자야. 넌 그중 한 명일 뿐이고.”그녀는 육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육현경이 예수진을 좋아한다던 그 말.소이연은 토스트를 먹으면서 그에게 답했다.“애도 아닌데 놀아보면 뭐 어때?”그러고는 문서인을 삭제했다.문 씨 별장.문서인은 일찍 일
“소이연이 이미 육현경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도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면, 너랑 소나은 사이의 일도 머지않아 공개될 거다. 지금까지 계속 밝히지 않았던 건 소이연이 소란을 피울까 봐 그랬던 거고, 그녀가 스스로 약혼을 취소하도록 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이제 그럴 걱정은 없겠다. 그리고 이 일을 이렇게 계속 미루다가는 우리 문씨 가문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거다.”문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나은이한테 한마디만 하면 밝힐 거에요.”“소나은이랑 아주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서 어제 구긴 체면을 다시 살리는 거야.” 문덕수는 어제 일을 언급하며, 여전히 화를 감추지 못했다.“알겠어요.”문덕수는 지시를 하고 자리를 떴다. 문서인은 바로 소나은에게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소나은은 이제 막 잠에서 깨 침대에 앉아 신문과 SNS를 보고 있었다.어제 육씨 가문 연회에서 발생한 일이 유출된 곳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단 한 글자도 찾지 못했다. 역시 육씨 가문은 다른 가문과는 다르게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은 점 하나라도 공개적인 곳에 노출하지 않는구나.전화가 오는 걸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리고는 전화를 받았다. “서인 오빠.”“일어났어?”“방금 깼어.” 소나은은 일부러 하품을 했다. “어젯밤에 몇 시에 간 거야, 엄마, 아빠랑 같이 올 때 오빠 못 봤는데.”“조금 늦었어.” 문서인은 더 이상 어젯밤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대충 대답했다. “방금 아버지가 우리 관계도 일찍 공개하라고 하시네,”“뭐?” 소나은은 유난히 흥분하며 대답했다.“왜, 공개하기 싫어?”“아니.” 소나은은 황급히 부인했다. “우리 언니가 시끄럽게 할까 봐 걱정된다며? 나중에 가서 시끄럽게 하면 우리 두 가문 다 힘들어질 거야.”“소이연이 육현경한테 붙잡혀 있는데, 걔가 시끄럽게 할 것 같아?!” 문서인이 비꼬듯 말했다.소나은은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그녀는 이제 공개하기 싫어졌다.심지어 이런 감정이 더 이상 필요 없다
주말이 지나가고, 이틀 연속 야근했다.소이연은 진지하게 사무실에 앉아 기획안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는 디자인팀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소나은의 부하들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수화기를 들어 내선을 연결했다. “장 비서, 임원들 전부 소집해, 디자인팀 총괄 위로 전부 다. 30분 뒤에 회의할 거야. 주제는 다음 시즌 신제품 디자인 초안이고, 빠지는 사람 없게 해.”“네.”30분 뒤, 은하 그룹 VIP 회의실.모든 임원들이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이것도 단지 보여주기 위한, 즉 소이연이 그들의 꼬투리를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한 복종일 뿐이었다. 이들은 당연히 중요한 일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은하 그룹에 발을 담그고, 소이연이 내쫓기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며칠 간의 밤샘 작업 끝에 디자인팀이 드디어 다음 시즌 신제품 디자인 초안을 완성했습니다. 저는 아주 만족스러웠고, 임원분들께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소이연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단 한 번도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녀가 말을 시작하기 무섭게 모든 임원들이 제각기 속닥거리기 바빴다.소나은 역시 당황스러웠다.디자인팀은 최근 진행된 디자인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소이연은 디자인 초안이 완성되었다고 했다. 진행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번 주 내로 끝내지 못한다면 다음 판매 시즌에 맞추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녀는 소이연이 조롱당할 것이라 생각했다.소나은은 무표정으로 소이연이 가져온 디자인 초안을 훑어보았다.첫 번째 스타일부터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른 모든 임원진들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은하그룹이 고집해 오던 디자인을 완전히 새롭게 수정했을 뿐만 아니라 선명한 컬러와 유행 지난 빈티지를 과감하게 사용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고, 글로벌한 요소를 접목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트집을 잡으려던 임원들도 이 순간 모두 입을 꾹 닫았다. 언급할 수 있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디자인팀의 관리자들도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예수진?!” 소나은은 유난히 흥분해 말했다. “예수진은 연기도 그렇고 인기도 그렇고 거의 TOP 급이잖아, 연예계에서도 아주 핫하고, 우리 브랜드랑 협업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최소 몇십억은 될 거야. 우리 그만큼 투자할 수 있어?”“우리가 투자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난 그냥 네 의견이 궁금했을 뿐이야.”예수진은 확실히 패션계의 사랑을 받고 있고, 심지어 평소 사복으로도 걸어 다니는 아이콘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녀가 앰배서더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은하그룹의 패션 분야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인식될 것이다.“언니 마음에 든 사람이라면 당연히 부족하진 않겠지.” 소나은은 동의했다.소이연은 사실 속으로 예수진과의 협업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좋아.” 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어, 가서 볼일 봐.”소나은은 소이연을 응시하며 오늘 소이연의 행동이 지나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오늘 디자인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결국 묻지 않았다.오늘 그 디자인은 확실히 은하그룹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만약 그 작품이 그녀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업계에서 환대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물어봤다가 전부 물거품으로 만드느니, 모른 척 어물쩍 넘어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소나은이 사무실에서 나왔다.“나은아, 잠시만.” 소이연이 문 앞까지 나와 그녀를 불렀다.“왜 그래?”“오늘 일은 우선 비밀로 해, 확정되기 전까지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소이연은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곧 대답했다. “언니 걱정 마. 나도 다 이해해.”소이연은 미소를 지으며 눈짓으로 소나은을 배웅했다.그녀가 떠난 뒤, 소이연은 눈동자를 움직여 곁눈질로 한 직원이 비서실에서 자문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상 누군가의 스파이였다.오늘 그녀와 소나은의 교류는 분명 다른 임원들의 주의를 끌었다.그녀가 바라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소이연은 진지하게 이 일들을 생각해보
사실 어떤 사람들은 추천할 필요도 없이 공짜로 앰배서더를 따낼 수 있다.“제가 볼 땐 계 감독님이 제일 적합한 사람인데요.” 소이연은 확신에 가득 찼다.계지원도 거절하지 않았다. “제가 우선 예수진 씨 촬영 일정부터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전화를 끊고, 계지원은 카메라 앞에 앉았다. 방금 막 촬영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요 며칠 예수진 씨 촬영 일정 좀 가져다줘.” 계지원이 주변에 있던 스태프에게 말했다.“네. 감독님.”계지원은 촬영 일정을 자세히 보고 또 보다가 몸을 일으켜 촬영장 구석으로 걸어갔다.전화가 연결됐다. “현경아.”“응.”“소이연이 방금 나한테 전화 왔었어.” 계지원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전화 건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계지원이 살짝 웃었다. “나한테 예수진이랑 자리 좀 만들어달래. 앰배서더 따고 싶다고.”“그래?”“알겠다고 했어. 별일 없으면 오늘 저녁에 만날 거야.”촬영은 이제 막 시작해, 일정에는 여유가 있었다.“너 걔랑 되게 친하네.” 육현경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몹시 화난 목소리였다.“아니, 우연히 알게 된 거지.” 계지원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너한테 얘기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나 다시 일하러 간다.”전화는 곧바로 끊어졌다.계지원은 다시 한번 웃었다. 예상대로 쪼잔했다.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카메라 자리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니 예수진이 보였다.예수진은 그의 웃음 가득한 얼굴을 보며 아무런 감정 없이 그를 지나쳤다.“수진 씨.” 계지원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예수진은 걸음을 멈췄다.“오늘 오후에 두 장면밖에 없으니까 4시 정도면 끝나겠네요?”“그래서요?” 예수진은 무심하게 물었다.“제 친구가 그쪽이랑 앰배서더 관련 얘기 좀 하고 싶다는데, 저녁에 시간 되면 같이 밥이나 한 끼 먹….”“저 지수랑 같이 밥 먹기로 했어요.” 예수진은 바로 거절했다. “앰배서더 얘기하시려면 제 매니저한테 연락하시면 돼요. 저희 매니저님 연락처 가지고
2시, 소이연은 장문기를 데리고 장안시 외곽에 있는 촬영장으로 갔다.사극 촬영이기 때문에 사극 세트장을 새로 지었다.그녀는 스태프의 인도 하에 계지원을 찾아갔다.계지원은 카메라 앞에 앉아 감독하고 있었다.소이연이 온 것을 보고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업무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소이연도 그를 방해하지 않고 근처에 앉아 촬영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예수진과 남자 주인공 안홍준이 같이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배우분들 준비하세요.“제3장, 1번 카메라, 1회차, 액션!”안홍준이 예수진을 매섭게 벽으로 몰아붙여 두 사람은 초밀착 상태로 서로를 바라봤다.소이연도 촬영장 방문은 처음이라, 배우들이 빠르게 각자의 배역에 몰입하는 것을 보니 조금은 존경스러웠다.특히 예수진의 사람을 사로잡는 눈빛 연기가 빛났다.바로 이때.안홍준이 예수진의 입술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힘이 들어간 눈빛도 잠시, 예수진의 눈도 스르륵 감겼다.한줄기 눈물이 예수진의 눈에서 흘러내렸다.입술이 포개지려는 순간, 예수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피했다.두 배우는 카메라에서 벗어났다.“컷!”계지원은 촬영을 중단했다.“죄송합니다.” 예수진은 눈물을 닦으며 스태프들에게 사과했다.원래 이 장면은 키스신이었다.명백한 그녀의 NG였다.“배우분들 조금 쉬다 갈게요.” 계지원이 말했다. “다음 장면 먼저 찍읍시다.”예수진은 곧장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매니저는 급히 앞으로 나가 그녀에게 물을 건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수진 언니, 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 예수진이 대답했다.“오자마자 키스신이라니, 아직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수진 언니, 아니면 다인 언니한테 부탁해서 감독님한테 키스신 좀 나중에 찍자고 해볼까요?”“아니야.” 예수진이 말했다.보통 제작진은 남녀 주인공이 빨리 가까워질 수 있도록 키스신을 앞쪽에 배치한다.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서로 잘 아는 사이이건 말건 상관없는 일이다
소이연은 깊은숨을 들이켰다. 공과 사는 별개이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고개를 떨구고 휴대폰을 보니 메시지 알림이 왔다. 여전히 무시를 선택했다.낙성시.육현경은 육씨 그룹 지사의 고급스러운 사무실에 앉아 어두침침한 얼굴로 미동도 없는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명진은 그런 그의 옆에서 숨죽이고 있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이번 긴급 지사 점검은 분명 모든 지표가 아주 만족스러웠는데 대표님의 얼굴은 어두침침한 게, 마치 먹구름 같았다.“명진아.”“네, 대표님.”“내일 장안시로 가는 제일 빠른 비행기표 예약해 줘.”“내일은 나성 관계자들과 식사 일정이 있습니다.” 검사도 할 겸, 손님도 치를 겸이었다.“그럼, 내일 저녁 비행기.” 육현경은 말을 바꿨다.내일은 꼭 돌아가야 해.“……네.” 명진이 정중하게 대답했다.내일 저녁 접대가 끝나면 한밤중일 텐데!사모님 때문이겠지?!나성에 온 뒤로 계속 휴대폰만 확인하고, 회의할 때도 시도 때도 없이 까만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고……역시 사랑에 빠진 남자는 정상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긴 어렵다.......장안시, 촬영 세트장.두 번째 키스신 촬영.예수진은 감정을 가다듬고, 안홍준은 그 옆에서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빨리 익숙해지면 어색함을 그나마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스크립터가 말했다. “제3장, 1번 카메라, 2회, 액션!”두 배우는 빠르게 연기에 몰입했다.첫 번째 촬영의 동선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로 키스신으로 들어가면 되었다.안홍준은 예수진을 벽으로 몰아세우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입술이 다가가는 그 순간……“죄송합니다.” 예수진은 또 피했다.안홍준도 조금 당황스러웠다.“컷!”계지원이 카메라 앞에서 일어서 예수진과 안홍준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예수진 씨 잠시 나와보세요.”예수진은 입술을 문지르며 계지원의 뒤를 따라갔다.두 사람은 촬영장 구석으로 갔다.“제가 키스신 삭제해 드릴 테니까 다음 장면 준비하세요.” 계지원이 입
“하지수, 너 미쳤어?”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을 강하게 바라보며 눈이 금세 충혈되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하지수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송문수를 때리며 분을 풀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수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째, 침대에 있는 여자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셋째, 돌아서서 그냥 떠날수도 있었다.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방금 떠났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그리고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송문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송문수는 서둘러 하지수의 옷을 올려주며 말했다.“하지수, 너 미쳤어?” 하지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억울한 모습에 송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리다니. 하지수가 버림받은 듯 처참한 마음이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송승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송문수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송문수, 나도 할 수 있어.”하지수는 절규하듯 말했다. “뭐?”송문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송문수의 눈에는 오직 하지수의 눈물만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너와 함께 잘 수 있어.”하지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에 차서 그녀는 계속 흐느꼈다. 송문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더 울릴 것 같았다. 송문수는 갑자기 그녀가 울어버릴까 두려워졌다. 어릴 적처럼. 그는 사실 매번 하지수를 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수의 시선이 항상 송승우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하지수는 그를 전혀 주목하
이렇게 보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금 송문수가 침대에 누웠을 때 하지수도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지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송문수는 찡그린 얼굴로 하지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지수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아!”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지수가 여자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침대는 어젯밤 하지수가 덮었던 것이고 지금은 다른 여자가 그 이불을 품고 있었다. 송문수는 정말 더럽지 않은가? 정말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었나?굳이 그녀가 잤던 침대에서 하겠다는 것인가?굳이 이렇게 그녀와 마주쳐야만 하는가? “뭘 하는 거야!”송문수가 하지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세서 하지수는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송문수는 본능적으로 하지수를 받쳤다. 다음 순간 그는 즉시 하지수를 놓아버렸다. “나가.”송문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문수는 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냉담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방금 송승우에게 송문수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지금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정말 아프게 맞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어 하얗게 변했다. 조용한 방에서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지수의 행동에 놀랐다. 이 여자는 그들과 함께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자극적 아닌가?아직 준비가 안 되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하지수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송승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승우는 그들 사이에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엉켜 있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하지수가 예전의 일로 송문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위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송문수는 차갑게 물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술을 마셨는지 전혀 몰랐고, 그냥 주소를 알려주었다.말을 마친 후 차 안에서 오랫동안 송문수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사실 전화를 끊고 나서 하지수는 후회와 놀라움을 느꼈다. 왜 송문수에게 전화했을까? 가장 도와주지 않을 사람은 송문수였다. 하지수는 경찰에 전화했야 했다. 아니면 보험사나 4S 매장에 전화해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하지수는 이미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송문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송문수는 오지 않고 전화로 물었다.“심각하게 다쳤니?”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아. 차 앞부분이 가드레일에 부딪혔고, 내 머리도 좀 긁힌 것 같아.” “우선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 그리고 보험 회사와 4S 매장에 연락해 손해를 평가받아.”송문수는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 “안 오니?”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하지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사고가 나서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오늘 밤의 사고는 하지수에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안 갈 거야.”송문수가 차갑게 말했다.“하지수, 너는 변호사잖아. 사고 후의 절차를 더 잘 알지 않을까?” 말을 마친 송문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때 그녀는 송문수에게 정말 실망했다. 어떤 정도로 실망했냐고?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다시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혼도 생각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 후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온몸이 피투성이인 송문수를 만났다. 옆에는 두 명의 경찰이 있었다. 하지수는 자신이 잘못 봤다고 생각해 달려가서 물었다. “송문수,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피투성이야?” “내 피가 아니야.”송문수는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구 거야?”
송승우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이제 막 한 관광지를 갔는데 다른 두 곳도 준비했어. 먼 곳도 아니야. 왜 벌써 피곤해? 아니면 오후에 일이 있어?” “아니에요.”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놀다 가자.”송승우가 농담처럼 말했다.“걱정하지 마, 미아로 만들지는 않을게.” “승우 오빠, 우리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송승우의 얼굴에 있는 미소가 서서히 굳어졌다. “지수야, 내가 그렇게 싫어?”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 오빠에게도 나에게도 송문수에게도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왜?”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나는 네 마음을 알아. 너는 송문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데 다시 거부하는 거야? 부모님이 강요한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부모님에게 잘 설명할게. 어떤 일이든 내가 감당할 거야.” “부모님 때문이 아니에요.”하지수가 그의 말을 끊었다.“이제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송승우는 멍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충격에 그는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의심했다. “지수야, 너 뭐라고 했어?” “예전에 오빠를 정말 좋아했어요. 결혼 준비 중에 오빠가 떠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왜 갑자기 결혼식에 도망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송문수와 결혼하기로 한 것뿐이에요. 오빠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은혜도 있지만 오빠한테 화가 난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지만 그건 예전 일이고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요.”하지수가 한 단어씩 강조하며 말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감정은 식기 마련이고 오빠를 향한 그리움은 이제 없어요. 지금은 송문수와 함께 있고 싶어요.” “송문수한테 미안해서 그래?”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계속 사
맛이 아주 좋았다. 송승우는 하지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동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송승우와 송문수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수는 두 사람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어?” “아주 맛있어요.” “다 먹을 수 있어?”송승우가 물었다. “다 못 먹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득 찬 작은 만두 한 바구니에서 그녀는 많아야 절반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괜찮으면 하나만 줘. 나도 아침을 안 먹었거든.”송승우가 말했다. “오빠 아침 안 먹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먹을 수도 있었잖아요.”하지수는 놀라서 물었다. “열고 나면 김이 빠져서 식으면 맛이 없잖아. 그리고 나도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어.” 하지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만두를 집어 송승우의 입술에 내밀었다. 만두가 작아서 송승우는 한 입에 물었다. 송승우의 입술이 하지수의 손가락에 닿았다. 하지수의 손가락이 잠시 굳었다. 그리고 그녀는 만두를 옆의 팔걸이에 놓았다.“편할 때 다시 먹어요.” 송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분명한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의 접촉이 지수도 부끄러워하겠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에는 특별히 재미있는 곳이 없지만 유적지가 많았다. 송승우는 첫 번째로 하지수를 성벽으로 데려갔다. 하지수는 체력이 괜찮았다. 송승우과 함께 오랫동안 걸었다. 송승우는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고대 인들이 남긴 지혜를 감상하며 하지수는 송승우의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우리도 인증샷 찍자.”송승우가 말했다. “네?” 송승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전환했다. “지수야, 조금 더 들어와야 찍혀.” 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송승우의 카메라에 나왔다. 하지만 거리를 두기로 했다. “웃어봐.”송승우가 말했다. “웃으면 안 예뻐요.”하지수가 거부했다. “말도 안 돼 너 웃으면 제일 예뻐.”송승우는
“가식 떨지 마!”송문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녀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정말로 호의로 말했다.“빨리 나가. 내 잠 방해하지 마!”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려 나갔다. 그녀는 원래 호텔 고객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아침을 준비해 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송문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하지수가 그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전화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수가 나가자 송문수는 화난 기색으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수에게 깨어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는 소리를 듣고 송승우가 전화한 것임을 눈치챘다. 어젯밤 송승우가 전화를 걸어 오늘 하지수와 함께 서울을 구경하자고 했을 때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거절했다. 그는 하도경과 약속이 있다고 했다. 사실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송승우는 송문수가 안 가면 자기가 하지수와 놀러 가겠다고 말했다.송문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송승우는 그에게 알리기 위해서만 말한 것 같고 하지수와의 관계 때문에 그에게 체면을 세워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체면을 참 중시하는구나!송문수는 소파에서 내려와 침대로 갔다. 하지수는 어떻게 사귀던 연인과 비밀 데이트를 할 수 있는데 자기는 소파에서 자야만 하는 것인가. 송문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큰 침대 위에 하지수의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송문수는 더욱 짜증이 났다. 원래 그는 하지수가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하지수가 최근 보여준 호의에 변화를 기대하고 착각한 것이었다.어쩌면 진짜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결국 송문수는 스스로를 모욕한 것이었다.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송승우를 좋아했으니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하지수는 급히 호텔 출입구로 나갔다.그녀는 지각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
송문수가 욕실에서 나왔다. 송문수의 몸에서 은은한 샴푸 향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수는 살짝 긴장했다.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침대에 누운 적은 단 한 번이었다. 그때는 매우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그 후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접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이불 속에 누운 하지수는 몸이 경직되어 숨조차 내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그 향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송문수가 침대에 오지 않는 것을 느끼며 방의 조명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하지수는 몰래 눈을 뜨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그때 송문수가 방금 자신이 누워 있던 의자에 몸을 눕히는 모습을 보았다. 송문수는 애초에 하지수와 같은 침대에서 잘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래서 하지수를 침대에 옮긴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그가 자고 싶었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답게 예의를 지키려는 것 같았다.송문수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를 소파에서 자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수의 마음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방금 생긴 작은 기대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오해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 하지수는 불안한 잠을 잤다.사실 송문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송문수에게는 큰 키와 체격 때문에 소파가 고역이었다.그는 몸을 뒤척이는 것도 두려웠고,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게다가 다리를 펼 수도 없어 쭈그려 웅크리고 자야 해서 매우 불편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하지수가 큰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수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송문수의 긴장감이 커졌다. 하도경 말이 맞아, 그렇게 많은 여자와 사귀던 남자가 정말 달라졌네! 다음 날. 하지수는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서둘러 음소거를 해제한 뒤 송승우의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송문수 역시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자마자 전화 소리에 깨
하지수는 송승우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지나갔으면 지나가야지.”하지수는 그와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송승우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하지수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사실 조금 피곤했지만 침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저 마음이 허전해지는 느낌으로 누워 있었다.송문수가 방에 들어섰을 때, 하지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 여자는 도대체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오후에도 소파에서 두 개의 담요조차 덮지 않고 자고 있었고, 지금도 핸드폰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핸드폰이 이불이 되냐?송문수는 짜증이 났다. 그는 큰 몸을 움직여 하지수를 안았다.하지수는 주위의 움직임을 느껴 이마를 찡그리며 불편하게 몸을 비틀었다.송문수는 순간 가슴이 멈췄다.그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긴장했다. 하지수가 곧 깨어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왜 그녀를 안았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그랬나?이때야 하지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수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송문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다. 다음 순간, 하지수가 그의 품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은 뒤 다시 잠이 든 것을 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고요한 모습으로 자는 것을 보고 송문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속에 혼잣말이 흘렀다. 뭐야, 대변호사라면서 경계심이 높다고?잠들어서 팔려 가고도 모르겠지. 송문수는 하지수를 안아 침대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낸 후 그는 도둑질이라도 한 듯 불안한 마음으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이럴 수가!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는데...하지수에게는 단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송문수는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떠나자 하지수는 눈을 뜨고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방금 깨어났었다. 순간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