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두 사람이 키스했다.줌아웃에서 줌인, 이어서 클로즈업까지.클로즈업 부분에서는 안홍준이 혀를 내미는 것까지 명백히 보였다……예수진이 몸이 굳어갔고, 주먹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지만 밀어내지 않았다.“컷!” 사인이 떨어지기 전까지는.예수진은 안홍준을 세게 밀어냈다.안홍준은 예수진이 왜 화를 내는지 알 수 있었다. 방금은 그도 모르게 저지른 일이었다.예수진은 외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입술도 부드러워서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 없었다.감독이 컷 사인을 주지 않았거나, 예수진이 본인을 밀어내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계속 이어갔을 것이다.예수진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이번에는 통과인지 아닌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안홍준은 재빨리 쫓아갔다. “수진 씨.”예수진은 차가운 얼굴로 돌아봤다.“죄송합니다. 제가 방금……” 안홍준은 사과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감독님께서 저한테 좀 더 깊게 연기하라고 하셨고, 이렇게 하면 더 잘 나올 거라고 하셨어요. 물론 저희도 더 빨리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고요.”“계지원 감독님이 혀를 내밀라고 하셨다고요?” 예지원이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안홍준은 갑자기 예수진의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는 것을 느꼈다.아까는 화가 난 정도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증오로 바뀐 것 같다.이 순간 갑자기 눈시울도 붉어졌다.“계 감독님도 작품을 위해서죠.” 안홍준은 침묵했다.“허.” 예수진은 또 웃었다.아까는 키스신을 삭제해 준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남자 배우한테 여자를 조롱하라니.계지원의 위선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매니저를 데리고 휴게실로 돌아가 메이크업을 지워냈다.소이연은 이미 촬영장 밖의 차에서 예수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그 키스신은 그녀도 보고 있었고, 당연히 안홍준의 고의적인 행위도 지켜보았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 앞에 앉아있는 계지원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 같았다.“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예수진이 차에 타며 말했다.“아니요, 원래 오늘 할 일도 없었어요.” 소이연이
“예전에는 저희 아버지께서 은하그룹을 운영하셨어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맡게 된 거고요.” 소이연도 질질 끌지 않고 본론부터 얘기했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의 은하 패션은 확실히 평범하긴 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수진 씨 이건 다음 시즌 저희 제품 디자인인데 한번 둘러보세요.”예수진은 소이연을 한번 쳐다보았다. 이 여자에 대해 확실히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들은 바가 있었다. 예전에 아주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진의 눈에 소이연은 남자한테 매달리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게다가 다시 그녀의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문서인과 항상 묶여 있었다.하지만 방금 나눈 몇 마디 말로 소이연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매끄럽고 시원시원한 일 처리,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태도.역시 소문은 다 믿을 게 안 된다고 느껴졌다.예수진은 소이연이 건네준 노트북을 받아 디자인을 쭉 훑어보더니, 눈이 번쩍 뜨였다.소이연과 저녁을 먹으며 앰배서더 관련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으니, 사실 그녀는 쉬는 동안 휴게실에서 은하 패션에 대해 찾아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녀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앰배서더 자리를 거절할 수 없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가 강요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새로운 디자인은 은하 패션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방금 소이연이 말한 “지금은 아니에요.”라는 말은 잘난 척이 아니었다.“너무 좋은데요.” 예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만약 수진 씨도 우리 은하그룹의 패션 앰배서더 자리가 마음에 드신다면, 비용에 대해 이야기 나누시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소이연은 대화를 주도했다.“얼마나 주실 수 있는데요?” 예수진이 물었다.“제가 알기로 수진 씨의 앰배서더 비용은 보통 40억 선이죠.” 소이연은 예수진을 보며 말했다. “은하 그룹은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할인 해드릴게요.” 예수진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소이연은 의아했다.“할인 안 해드리면 제 다리 하나 부러져서 집에 못 가는 거 아니에
세 사람이 자리를 마무리할 때는 이미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소이연도 어지러워 눈앞이 흐렸지만, 본인이 주선한 자리인 만큼 그들을 바래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딸꾹.” 예수진이 술에 취해 딸꾹질을 했다. 역시 그녀도 흐린 눈을 하고 말했다. “됐어요, 지수가 데려다주면 돼요. 어차피 우리는 같은 방향이니까.”말을 하면서 예수진은 하지수를 끌고 룸을 나갔다.소이연은 허둥지둥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세 사람 모두 취해있었지만, 주정을 부릴 정도는 아니었다.특히 하지수는 정신이 아주 멀쩡했다.소이연도 원래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예수진과 처음 같이하는 술자리인 만큼 예수진에게 맞춰주었고, 예수진도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지수는 그런 예수진 앞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컨트롤했다.예수진은 하지수와 함께 검은색 승용차에 올랐다. 소이연은 그들을 배웅한 뒤에야 이승윤의 차로 돌아와 뒷좌석에 기대앉았다. 속이 조금 불편했다.그녀의 눈빛은 덤덤하게 창밖의 장안시의 야경을 향해 있었다. 네온사인 불빛이 하늘에 비쳤다.갑자기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소이연은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았다.메시지에는 “집 도착하면 꿀물 꼭 마셔.”라고 쓰여있었다.소이연은 답장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육현경이 떠난 후 그는 거의 매일 그녀에게 두세 통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모두 못 본 척하기로 했다.......승용차가 육씨 저택에 멈춰 섰다.예수진은 뒷좌석에 기대어 잠들었다.방금까지만 해도 차에서 육현경에게 전화해 오늘 소이연을 어떻게 취하게 했는지 자랑을 있는 대로 하더니 바로 곯아떨어졌다.하지수는 예수진이 술에 취하면 바로 잠들고, 일어나면 바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게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진정한 술꾼이었다.하지수가 차에서 내려 예수진을 방에 데려다주려던 그때였다.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계지원은 예수진을 그녀의 침대에 눕혔다. 눕히고 나서도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그의 눈에는 그녀의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과 새빨간 입술을 보고 있었다.머릿속에 갑자기 오늘 촬영한 예수진의 키스신이 떠올랐다……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기다란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에 올려 살포시 쓸어내렸다. 마치 그녀의 입에 묻은 더러운 무언가를 닦아내는 듯했다.그는 한참을 진지하게 닦아냈다.닦다 보니 그녀의 입술이 조금 부어오른 것 같았다.손가락을 치우려던 그때 계지원의 몸이 아래로 기울었다. 아주 미세하게 기울었다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다.방문이 닫혔다.깊게 잠든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 것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소이연은 머리가 조금 아팠다.술에 취한 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하려니 정말 끔찍했다.예수진은 정말 술을 너무 잘 마셨다.그녀가 돌아간 뒤 거의 밤새도록 토했다. 정말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 같았다.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해장을 했다.“이사님, 계약서 준비됐습니다. 예수진의 매니저 다인 씨도 전화로 계약서 작성하자고 했고요.” 장문기가 정중하게 말했다.소이연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아도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가자.”비록 어제는 예수진이 이랬다저랬다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육현경과의 관계가 있으니 이번 앰배서더 일은 너무 순조로워서 조금 불안하다.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까지는 마음속의 큰 돌을 내려놓지 못할 것 같다.“공식 홍보 전에는 우선 비밀로 해주세요.” 소이연은 장문기에게 신신당부했다.자연스럽게 예수진의 매니저에게도 말해두었다.“네.” 장문기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비서를 바꿔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아무 일도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다. 즉, 무슨 일이든 생겼을 것이다.소이연이 눈을 찡긋했다.갑자기 지금 회사의 대부분의 직원들은 아직도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소이연은
“잘게.”“미안, 내가 방해했구나.”육현경이 사과할 때마다 전혀 성의가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인사치레로 하는 말 같았다.나중에도 계속 ‘미안’할짓을 할 거면서 말이다.“무슨 일 있어?”“그냥 돌아왔다고 말하러 왔어.”“알았어.”소이연이 쌀쌀맞게 대했지만 육현경의 지친 모습을 보고 이내 목소리가 누그러졌다.“전화로 얘기하면 되는데 굳이 이 밤에 오고.”“너 휴대폰이 고장난 줄 알았어.”그 말 뜻은 자신의 메시지를 무시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요즘 정신없었어.”소이연이 대충 핑계를 댔다.“소연아...”“늦었어. 얼른 집에 가서 쉬어.”소이연이 바로 말을 잘라버렸다.“내일 출근해야 돼.”육현경은 뒷말을 삼키고 침묵했다.“조심히 가.”소이연이 문을 닫아버렸다.육현경은 이렇게 문전 박대를 받으면서 문이 닫히는 걸 보고만 있었다.‘착각이 아니야. 소연이 나를 피하고 있어.’그날 저녁에 느낄 수 있었다. 소이연이 점점 자신을 받아준다고 생각했었는데 무슨 일 때문에 또 천리 밖으로 밀어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육현경은 어쩔 수 없이 단지에서 나왔다.단지 입구까지 바래다주었던 택시는 이미 떠나고 없다.침울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이명진이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대표님.”“어디 있어?”육현경의 목소리가 싸늘했다.“사모님 댁에 가신 게 아니었어요?”“당장 튀어 와!”“네. 알겠습니다.”이명진은 기사에게 방향을 틀라고 손짓했다.대표님 혹시 쫓겨난 거야?사모님 대박, 정말 특이하신 분이라니까.다른 여자들은 대표님과 하룻밤이라도 자려고 옷을 막 벗고 달려드는데!이명진은 불이 나게 육현경 앞에 도착해 공손하게 문을 열어주었다.육현경이 노려보는 시선에 등골이 오싹했다.아, 분위기 어쩔 거야역시 공기는 한기가 들 정도로 추웠다.“휴대폰이랑 지갑 줘.”육현경의 분부에 이명진은 돈을 덜덜 떨며 건네주었다.“가죠!”택시가 떠나고 이명진이 홀로 떡하니 도로에 남겨졌다.지금 시간은 새벽 3시, 멀리 사
소이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패기 있게 회의실에서 나갔다.유봉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마흔을 넘은 나이에 새파랗게 어린 여자한테 위협을 당할 줄이야.홧김에 바로 소승영에게 연락했다.“상관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소승영은 전혀 소이연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져.”“알겠습니다.”유봉이 그제야 사악하게 웃었다.소이연, 너 언제까지 까불 수 있는지 두고 보자.…소이연은 장문기를 데리고 은하그룹 공장으로 갔다.노동자들이 파업을 해?갑자기 파업을 할 이유가 없었다.공장이 외곽에 있어 꽤 거리가 있었다.소이연은 점심도 먹지 않고 공장장 이창덕을 만나러 갔다.이창덕의 태도는 무례했다.생각하지 않아도 유봉과 한 통속이고 소승영의 사람이라는 걸 알수 있었다.“새 회장님께서 매우 젊으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젊은 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이창덕은 회장님이라도 부르면서 오히려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제 딸 나이와 비슷해 보입니다. 제 딸은 아직 아버지한테 애교만 부리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니. 정말 분통하네요.”소이연은 못 알아들은 척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유 부장님 말로는 노동자들이 파업했다고 하던데 무슨 일입니까?”“왜겠습니까? 월급이 너무 적아서 그러죠.”“은하그룹에서 주는 월급은 용역 일대에서 주는 것에 비해 합리적이고 복리후생도 다른 공장보다 더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그런데 회장님께서 서둘러 생산을 하라고 하면 노동자들이 밤을 새면서 해야 합니다. 야근수당도 없는데 누가 가만 있겠습니까?”소이연이 미간을 찌푸렸다.누구도 이런 말을 보고하지 않았다. 특수한 상황이라면 무조건 특수한 방법으로 처리했을 텐데 말이다.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지금은 꼭두각시처럼 소승영에게 계속 끌려 다니는 신세다.“회장님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없으면 저 일보러 가겠습니다.”이창덕이 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소이연은 입을 꾹 다물고 공장에서 나왔다.공장 입구에 도착하자
공장 2층 사무실 창가에서 이창덕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소 선생님. 소이연이 이미 직원들에게 잡혔습니다. 아마 쉽게 돌려보내지 않을 겁니다.”소승영은 소씨그룹 사무실에 앉아 시가를 피우며 전화를 받고 있다.“버릇을 고쳐줘야지.”“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목적에 달성한 소승영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늙은 생강이 더 맵다고 감히 자신한테 덤벼들다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지.“아버지. 소이연이 정말 공장으로 갔어요?”소나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참 겁도 없어. 그런 인간들 무리에 혼자 가다니. 그 인간들은 수준도 떨어지고 야만적인 걸 몰라? 그러게 왜 거기 가서 갇혔대?“상관하지 마라.”소승영은 전혀 소이연의 걱정을 하지 않았다.“오늘 네게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다.”“네.”소나은이 얌전하게 다가와 소승영 앞에 섰다.“문씨 가문에서 내게 연락이 왔다. 대외적으로 너와 문서인의 관계를 알리고 약혼식을 올리자고 하던데 왜 너는 망설이는 거냐?”소나은이 입술을 깨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아비에게 숨기는 게 있어?”“아버지, 지금은 문서인과의 관계를 밝히고 싶지 않아요.”“왜? 싫은 거야?”“좋아하지만… 우리 집안 상황이 걱정이 돼요.”소나은이 일부러 심호흡을 하며 마저 설명했다.“지금 언니와 육현경 사이를 알고 계시죠? 그때 육씨 어르신 칠순 생일에 아버지도 보셨을 거예요.”“육현경이 이연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다.”소승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육현경은 물론 육씨 가문에서도 스캔들로 더러워진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근데 제 눈에는 보였어요. 육현경이 언니를 좋아해요.”“이연이 꼬셨겠지. 남자들이란 예쁘게 생긴 여자들에게 워낙 저항력이 없다. 아빠도 다 지나온 사람…”소승영이 말끝을 흐렸다.딸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기엔 조금 껄끄러웠다.“아무튼 육현경은 그저 호기심에 그랬을 거다. 호기심이 사라지면 그땐 가차없
은하공장에서 소이연이 어떻게 설명을 해도 노동자들은 고집을 부렸다.소승영의 지시에 따르고 고의적으로 물의를 일으킨다는 걸 잘 알고 있다.오늘 목이 나갈 정도로 설득을 해도 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다.소이연은 결정을 내렸다.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슬며시 장문기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밖에 나가서 경찰을 불러와.”“근데 회장님 혼자서…”“걱정 마. 나 정도는 챙길 수 있어.”“알겠어요.”장문기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천천히 소이연과 떨어졌다.노동자들의 목표는 소이연이지 장문기가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장문기가 그 틈을 타 인파속을 비집고 나와 경찰에게 신고했다.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멘탈을 부여잡고 신고할 생각을 한 회장님에게 탄복했다.방금까지만 해도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 당황했었다.그저 오늘은 퇴근을 못하겠다는 한심한 생각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노동자들이 더 격노했다.“경찰이 떴다!”“분명 소이연이 신고한 거예요. 어떻게 신고를 할 수가 있어요?!”“우리 일을 처리해줄 마음이 없었던 거야!”노동자들은 초조했다.경찰들이 들어오며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공장 입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소이연은 그 틈을 이용해 빠져나왔다.“회장님 조심하세요!”장문기는 줄곧 소이연만 주시했다. 혹시라도 모를 사고가 일어날까 봐.한 노동자가 격분하면서 쇠막대기를 들고 소이연의 등을 향해 내리치려고 했다.소이연도 위험을 느끼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저 쇠막대기로 맞으면 전치 8주는 나올 것 같았다.하지만 경찰이 워낙 멀리 있어 막아줄 수도 없었다.탕!탁한 소리가 들린 순간 주변이 쥐 죽든 듯이 조용해졌다.쇠막대기를 들고 내리 치던 노동자도 깜짝 놀랐다.경찰이 달려와 그 노동자를 제압하고 꼼작 못하게 붙들었다.소이연은 두려웠지만 천천히 눈을 떴다.왠지 전혀 통증은 없고 누군가 자신을 꼭 안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고개를 돌려 봤더니 육
“하지수, 너 미쳤어?”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을 강하게 바라보며 눈이 금세 충혈되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하지수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송문수를 때리며 분을 풀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수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째, 침대에 있는 여자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셋째, 돌아서서 그냥 떠날수도 있었다.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방금 떠났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그리고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송문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송문수는 서둘러 하지수의 옷을 올려주며 말했다.“하지수, 너 미쳤어?” 하지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억울한 모습에 송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리다니. 하지수가 버림받은 듯 처참한 마음이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송승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송문수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송문수, 나도 할 수 있어.”하지수는 절규하듯 말했다. “뭐?”송문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송문수의 눈에는 오직 하지수의 눈물만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너와 함께 잘 수 있어.”하지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에 차서 그녀는 계속 흐느꼈다. 송문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더 울릴 것 같았다. 송문수는 갑자기 그녀가 울어버릴까 두려워졌다. 어릴 적처럼. 그는 사실 매번 하지수를 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수의 시선이 항상 송승우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하지수는 그를 전혀 주목하
이렇게 보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금 송문수가 침대에 누웠을 때 하지수도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지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송문수는 찡그린 얼굴로 하지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지수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아!”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지수가 여자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침대는 어젯밤 하지수가 덮었던 것이고 지금은 다른 여자가 그 이불을 품고 있었다. 송문수는 정말 더럽지 않은가? 정말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었나?굳이 그녀가 잤던 침대에서 하겠다는 것인가?굳이 이렇게 그녀와 마주쳐야만 하는가? “뭘 하는 거야!”송문수가 하지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세서 하지수는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송문수는 본능적으로 하지수를 받쳤다. 다음 순간 그는 즉시 하지수를 놓아버렸다. “나가.”송문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문수는 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냉담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방금 송승우에게 송문수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지금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정말 아프게 맞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어 하얗게 변했다. 조용한 방에서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지수의 행동에 놀랐다. 이 여자는 그들과 함께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자극적 아닌가?아직 준비가 안 되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하지수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송승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승우는 그들 사이에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엉켜 있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하지수가 예전의 일로 송문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위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송문수는 차갑게 물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술을 마셨는지 전혀 몰랐고, 그냥 주소를 알려주었다.말을 마친 후 차 안에서 오랫동안 송문수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사실 전화를 끊고 나서 하지수는 후회와 놀라움을 느꼈다. 왜 송문수에게 전화했을까? 가장 도와주지 않을 사람은 송문수였다. 하지수는 경찰에 전화했야 했다. 아니면 보험사나 4S 매장에 전화해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하지수는 이미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송문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송문수는 오지 않고 전화로 물었다.“심각하게 다쳤니?”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아. 차 앞부분이 가드레일에 부딪혔고, 내 머리도 좀 긁힌 것 같아.” “우선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 그리고 보험 회사와 4S 매장에 연락해 손해를 평가받아.”송문수는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 “안 오니?”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하지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사고가 나서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오늘 밤의 사고는 하지수에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안 갈 거야.”송문수가 차갑게 말했다.“하지수, 너는 변호사잖아. 사고 후의 절차를 더 잘 알지 않을까?” 말을 마친 송문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때 그녀는 송문수에게 정말 실망했다. 어떤 정도로 실망했냐고?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다시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혼도 생각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 후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온몸이 피투성이인 송문수를 만났다. 옆에는 두 명의 경찰이 있었다. 하지수는 자신이 잘못 봤다고 생각해 달려가서 물었다. “송문수,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피투성이야?” “내 피가 아니야.”송문수는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구 거야?”
송승우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이제 막 한 관광지를 갔는데 다른 두 곳도 준비했어. 먼 곳도 아니야. 왜 벌써 피곤해? 아니면 오후에 일이 있어?” “아니에요.”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놀다 가자.”송승우가 농담처럼 말했다.“걱정하지 마, 미아로 만들지는 않을게.” “승우 오빠, 우리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송승우의 얼굴에 있는 미소가 서서히 굳어졌다. “지수야, 내가 그렇게 싫어?”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 오빠에게도 나에게도 송문수에게도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왜?”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나는 네 마음을 알아. 너는 송문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데 다시 거부하는 거야? 부모님이 강요한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부모님에게 잘 설명할게. 어떤 일이든 내가 감당할 거야.” “부모님 때문이 아니에요.”하지수가 그의 말을 끊었다.“이제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송승우는 멍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충격에 그는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의심했다. “지수야, 너 뭐라고 했어?” “예전에 오빠를 정말 좋아했어요. 결혼 준비 중에 오빠가 떠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왜 갑자기 결혼식에 도망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송문수와 결혼하기로 한 것뿐이에요. 오빠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은혜도 있지만 오빠한테 화가 난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지만 그건 예전 일이고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요.”하지수가 한 단어씩 강조하며 말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감정은 식기 마련이고 오빠를 향한 그리움은 이제 없어요. 지금은 송문수와 함께 있고 싶어요.” “송문수한테 미안해서 그래?”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계속 사
맛이 아주 좋았다. 송승우는 하지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동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송승우와 송문수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수는 두 사람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어?” “아주 맛있어요.” “다 먹을 수 있어?”송승우가 물었다. “다 못 먹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득 찬 작은 만두 한 바구니에서 그녀는 많아야 절반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괜찮으면 하나만 줘. 나도 아침을 안 먹었거든.”송승우가 말했다. “오빠 아침 안 먹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먹을 수도 있었잖아요.”하지수는 놀라서 물었다. “열고 나면 김이 빠져서 식으면 맛이 없잖아. 그리고 나도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어.” 하지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만두를 집어 송승우의 입술에 내밀었다. 만두가 작아서 송승우는 한 입에 물었다. 송승우의 입술이 하지수의 손가락에 닿았다. 하지수의 손가락이 잠시 굳었다. 그리고 그녀는 만두를 옆의 팔걸이에 놓았다.“편할 때 다시 먹어요.” 송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분명한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의 접촉이 지수도 부끄러워하겠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에는 특별히 재미있는 곳이 없지만 유적지가 많았다. 송승우는 첫 번째로 하지수를 성벽으로 데려갔다. 하지수는 체력이 괜찮았다. 송승우과 함께 오랫동안 걸었다. 송승우는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고대 인들이 남긴 지혜를 감상하며 하지수는 송승우의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우리도 인증샷 찍자.”송승우가 말했다. “네?” 송승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전환했다. “지수야, 조금 더 들어와야 찍혀.” 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송승우의 카메라에 나왔다. 하지만 거리를 두기로 했다. “웃어봐.”송승우가 말했다. “웃으면 안 예뻐요.”하지수가 거부했다. “말도 안 돼 너 웃으면 제일 예뻐.”송승우는
“가식 떨지 마!”송문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녀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정말로 호의로 말했다.“빨리 나가. 내 잠 방해하지 마!”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려 나갔다. 그녀는 원래 호텔 고객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아침을 준비해 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송문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하지수가 그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전화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수가 나가자 송문수는 화난 기색으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수에게 깨어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는 소리를 듣고 송승우가 전화한 것임을 눈치챘다. 어젯밤 송승우가 전화를 걸어 오늘 하지수와 함께 서울을 구경하자고 했을 때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거절했다. 그는 하도경과 약속이 있다고 했다. 사실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송승우는 송문수가 안 가면 자기가 하지수와 놀러 가겠다고 말했다.송문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송승우는 그에게 알리기 위해서만 말한 것 같고 하지수와의 관계 때문에 그에게 체면을 세워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체면을 참 중시하는구나!송문수는 소파에서 내려와 침대로 갔다. 하지수는 어떻게 사귀던 연인과 비밀 데이트를 할 수 있는데 자기는 소파에서 자야만 하는 것인가. 송문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큰 침대 위에 하지수의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송문수는 더욱 짜증이 났다. 원래 그는 하지수가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하지수가 최근 보여준 호의에 변화를 기대하고 착각한 것이었다.어쩌면 진짜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결국 송문수는 스스로를 모욕한 것이었다.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송승우를 좋아했으니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하지수는 급히 호텔 출입구로 나갔다.그녀는 지각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
송문수가 욕실에서 나왔다. 송문수의 몸에서 은은한 샴푸 향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수는 살짝 긴장했다.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침대에 누운 적은 단 한 번이었다. 그때는 매우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그 후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접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이불 속에 누운 하지수는 몸이 경직되어 숨조차 내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그 향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송문수가 침대에 오지 않는 것을 느끼며 방의 조명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하지수는 몰래 눈을 뜨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그때 송문수가 방금 자신이 누워 있던 의자에 몸을 눕히는 모습을 보았다. 송문수는 애초에 하지수와 같은 침대에서 잘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래서 하지수를 침대에 옮긴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그가 자고 싶었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답게 예의를 지키려는 것 같았다.송문수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를 소파에서 자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수의 마음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방금 생긴 작은 기대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오해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 하지수는 불안한 잠을 잤다.사실 송문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송문수에게는 큰 키와 체격 때문에 소파가 고역이었다.그는 몸을 뒤척이는 것도 두려웠고,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게다가 다리를 펼 수도 없어 쭈그려 웅크리고 자야 해서 매우 불편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하지수가 큰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수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송문수의 긴장감이 커졌다. 하도경 말이 맞아, 그렇게 많은 여자와 사귀던 남자가 정말 달라졌네! 다음 날. 하지수는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서둘러 음소거를 해제한 뒤 송승우의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송문수 역시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자마자 전화 소리에 깨
하지수는 송승우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지나갔으면 지나가야지.”하지수는 그와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송승우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하지수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사실 조금 피곤했지만 침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저 마음이 허전해지는 느낌으로 누워 있었다.송문수가 방에 들어섰을 때, 하지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 여자는 도대체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오후에도 소파에서 두 개의 담요조차 덮지 않고 자고 있었고, 지금도 핸드폰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핸드폰이 이불이 되냐?송문수는 짜증이 났다. 그는 큰 몸을 움직여 하지수를 안았다.하지수는 주위의 움직임을 느껴 이마를 찡그리며 불편하게 몸을 비틀었다.송문수는 순간 가슴이 멈췄다.그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긴장했다. 하지수가 곧 깨어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왜 그녀를 안았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그랬나?이때야 하지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수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송문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다. 다음 순간, 하지수가 그의 품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은 뒤 다시 잠이 든 것을 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고요한 모습으로 자는 것을 보고 송문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속에 혼잣말이 흘렀다. 뭐야, 대변호사라면서 경계심이 높다고?잠들어서 팔려 가고도 모르겠지. 송문수는 하지수를 안아 침대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낸 후 그는 도둑질이라도 한 듯 불안한 마음으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이럴 수가!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는데...하지수에게는 단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송문수는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떠나자 하지수는 눈을 뜨고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방금 깨어났었다. 순간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