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2층 사무실 창가에서 이창덕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소 선생님. 소이연이 이미 직원들에게 잡혔습니다. 아마 쉽게 돌려보내지 않을 겁니다.”소승영은 소씨그룹 사무실에 앉아 시가를 피우며 전화를 받고 있다.“버릇을 고쳐줘야지.”“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목적에 달성한 소승영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늙은 생강이 더 맵다고 감히 자신한테 덤벼들다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지.“아버지. 소이연이 정말 공장으로 갔어요?”소나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참 겁도 없어. 그런 인간들 무리에 혼자 가다니. 그 인간들은 수준도 떨어지고 야만적인 걸 몰라? 그러게 왜 거기 가서 갇혔대?“상관하지 마라.”소승영은 전혀 소이연의 걱정을 하지 않았다.“오늘 네게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다.”“네.”소나은이 얌전하게 다가와 소승영 앞에 섰다.“문씨 가문에서 내게 연락이 왔다. 대외적으로 너와 문서인의 관계를 알리고 약혼식을 올리자고 하던데 왜 너는 망설이는 거냐?”소나은이 입술을 깨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아비에게 숨기는 게 있어?”“아버지, 지금은 문서인과의 관계를 밝히고 싶지 않아요.”“왜? 싫은 거야?”“좋아하지만… 우리 집안 상황이 걱정이 돼요.”소나은이 일부러 심호흡을 하며 마저 설명했다.“지금 언니와 육현경 사이를 알고 계시죠? 그때 육씨 어르신 칠순 생일에 아버지도 보셨을 거예요.”“육현경이 이연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다.”소승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육현경은 물론 육씨 가문에서도 스캔들로 더러워진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근데 제 눈에는 보였어요. 육현경이 언니를 좋아해요.”“이연이 꼬셨겠지. 남자들이란 예쁘게 생긴 여자들에게 워낙 저항력이 없다. 아빠도 다 지나온 사람…”소승영이 말끝을 흐렸다.딸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기엔 조금 껄끄러웠다.“아무튼 육현경은 그저 호기심에 그랬을 거다. 호기심이 사라지면 그땐 가차없
은하공장에서 소이연이 어떻게 설명을 해도 노동자들은 고집을 부렸다.소승영의 지시에 따르고 고의적으로 물의를 일으킨다는 걸 잘 알고 있다.오늘 목이 나갈 정도로 설득을 해도 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다.소이연은 결정을 내렸다.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슬며시 장문기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밖에 나가서 경찰을 불러와.”“근데 회장님 혼자서…”“걱정 마. 나 정도는 챙길 수 있어.”“알겠어요.”장문기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천천히 소이연과 떨어졌다.노동자들의 목표는 소이연이지 장문기가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장문기가 그 틈을 타 인파속을 비집고 나와 경찰에게 신고했다.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멘탈을 부여잡고 신고할 생각을 한 회장님에게 탄복했다.방금까지만 해도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 당황했었다.그저 오늘은 퇴근을 못하겠다는 한심한 생각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노동자들이 더 격노했다.“경찰이 떴다!”“분명 소이연이 신고한 거예요. 어떻게 신고를 할 수가 있어요?!”“우리 일을 처리해줄 마음이 없었던 거야!”노동자들은 초조했다.경찰들이 들어오며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공장 입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소이연은 그 틈을 이용해 빠져나왔다.“회장님 조심하세요!”장문기는 줄곧 소이연만 주시했다. 혹시라도 모를 사고가 일어날까 봐.한 노동자가 격분하면서 쇠막대기를 들고 소이연의 등을 향해 내리치려고 했다.소이연도 위험을 느끼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저 쇠막대기로 맞으면 전치 8주는 나올 것 같았다.하지만 경찰이 워낙 멀리 있어 막아줄 수도 없었다.탕!탁한 소리가 들린 순간 주변이 쥐 죽든 듯이 조용해졌다.쇠막대기를 들고 내리 치던 노동자도 깜짝 놀랐다.경찰이 달려와 그 노동자를 제압하고 꼼작 못하게 붙들었다.소이연은 두려웠지만 천천히 눈을 떴다.왠지 전혀 통증은 없고 누군가 자신을 꼭 안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고개를 돌려 봤더니 육
소이연은 망설이다가 육현경과 함께 차에 올랐다.“저기요!”그때 경찰이 다가와 닫으려는 차문을 잡았다.“같이 경찰서에 가셔서 진술하고 합의라도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장 비서. 네가 경찰서에 가. 승윤이 차가 여기서 기다릴 거야.”“알겠습니다. 회장님 먼저 병원으로 가세요.”소이연과 이명진이 양측에서 육현경을 부축하고 마이바흐 고급차에 올라탔다.정안시립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명진이 미리 육씨 개인 의사에게 연락했다.육현경은 뒷좌석에 기대 앉아 두 눈을 감고 있다.쇠막대기로 어디를 맞은 거야?소이연은 창백한 얼굴을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뼈와 장기도 다쳤나?차마 아래까지는 보지 못하고 택시 네이비만 쏘아봤다.빨리 달리라고 재촉하듯이 말이다.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의사들이 입구에 줄을 서 있었다.차에서 내리자 간호자들이 부축했다.“으윽.”육현경의 신음 소리에 소이연이 주먹을 꽉 쥐었다.많이 아픈 거야?소이연은 의사 뒤를 따라 응급실로 들어갔다.“걱정 마.”오히려 육현경이 위로를 해왔다.소이연은 아랫입술을 물고 안쓰럽게 쳐다보았다.육현경이 출장을 갔다 온 후 한 달이나 싸늘하게 대했다.육민이 있는 접대 자리에만 나가서 육민하고 놀아주고 육현경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래도 육현경은 늘 육민을 데리고 집에 왔었다.육민의 외로움을 달려주려고 데려오는 줄 알았는데.예상치도 못하게 오늘 육현경이 공장에 나타났다.걱정이 되어 수술실 앞에서 두 주먹을 꽉 쥐고 기다렸다.세 시간이 지나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렸다.간호사들이 육현경을 밀고 나왔다,이명진이 먼저 다가가 다급하게 물었다.“의사 선생님. 저희 대표님 괜찮으십니까?”소이연은 어떤 답이 나올지 너무나 무척 긴장되었다.“생명엔 지장이 없습니다. 등이 심하게 다쳤는데 근육 대부분이 손상되고 오른쪽 갈비뼈에 금이 가고 허리 부분이 스쳐서 3-4주 동안 입원하셔야 합니다.”그제야 이명진이 안심하고 소이연도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병실로 옮기겠습니다.”“감
소이연의 가슴이 떨렸다.감동받지 않았다면 순 거짓말이다.하지만…애써 자신의 정서를 누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다른 사람한테도 그러니?”다른 여자들한테도 목숨을 거냐고?“너.한.테.만.”육현경이 한 글자마다 강조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좀 특별하다는 건가?”육현경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왠지 질문에 다른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근데 공장에는 왜 왔어?”육현경이 대답하기 전에 소이연이 화제를 돌려버렸다.그의 개인적인 일을 물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이승윤이 네가 공장에 갔다고 했어. 네가 당할까 걱정이 돼서 간 거야. 그 시간에 도착해서 다행이지.”아니면 이 침대에 누워 있을 사람은 소이연이다.만약 정말 그랬다면 얼마나 슬퍼할지 상상도 못하겠다.소이연의 눈동자가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아버지가 직원들을 매수해서 그렇게 시킨 거야.”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예전부터 내가 은하그룹을 인수하는 걸 원하지 않으셨어. 나를 쫓아내기 위해서 그런 꿍꿍이를 꾸민 거야.”“내가 도와줄까?”“네가 끼어드는 게 싫어.”소이연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육현경이 바로 눈을 감아버렸다.그게 무슨 뜻인지 소이연은 알고 있다.“너까지 다치게 하다니 두고 봐. 내가 반드시 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은 한 명이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소이연의 눈빛이 점점 싸늘해졌다.소씨 가문에 대한 참을성도 이젠 한계를 넘어섰다.전에 성한 곳이 없이 상처를 받았지만 복수란 건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다.어쨌든 소 씨 성을 가진 이상 서로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아무 일도 없다 생각했었다.그런데 양보를 하면 할수록 이 인간들은 염치도 모르고 계속 괴롭혔다.이런 인간들에게 애초부터 선한 마음을 갖지 말았어야 했다.“알았어.”육현경이 대답했다.소이연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하고 시선이 닿는 범위 내에서 눈 감아 주기로 했다.그때 소이연의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번호를 확인하니 베란다로 가서 받았다.“회장님. 진술은 끝났습니다. 회장님을 해쳤던 유걸
게다가 육현경은 너무 완벽해서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았다.따뜻한 영양죽을 먹고 나니 속이 한결 좋아졌다.그동안 일만 하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배부르게 먹었더니 슬슬 피곤이 몰려와 소파에 기대어 잠들었다.눈을 떴을 때 이미 밤이 되었다. 누가 덮어줬는지 이불까지 덮고 있었다.“깼어?”그때 나지막한 굵은 소리가 들렸다.소이연이 깜짝 놀랐다. 여기 어딘지 까먹을 뻔했다.육현경은 그 반응이 왠지 귀여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소이연은 어색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애써 태연한 척하며 소파에서 일어섰다.벽에 걸린 시계를 봤더니 세 시간이나 잔 것이다.병간호를 한다면서 환자보다 더 자버렸다.“화장실 갈래?”소이연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어색한 분위기를 어찌 해보려고 했지만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더 어색해졌다.“내 말은…”“가고 싶어.”육현경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소이연이 물끄러미 쳐다봤다.“가면 안 돼?”육현경이 억울한 척 물었다.“아, 아니.”소이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물었다.“어떻게 할 거야? 뭐 세숫대야라도 갖고 올까?”“누워서 못해.”“그럼…”“일어날 수 있어.”“그럼 간호사 부를게.”“날 부축해주면 돼. 그리 무겁지 않아.”“…”무거운 문제가 아니잖아?소이연은 이를 악물고 조심스럽게 부축했다.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의사가 누워있으라고 했는데 이래도 되겠어?”“괜찮아.”소이연은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화장실이 급한 마당에 따져도 소용없다.육현경을 부축해 일어 세우자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아파?”소이연이 긴장하며 물었다.“아니.”“…”안 아픈 척 허세 부리긴.속으로 그렇게 말해도 아주 조심스럽게 화장실까지 부축해줬다.화장실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였다.“나 못 버티겠어.”그 말은 혼자 설 수 없다는 말이다.“금방 끝나.”“…”지금 빠르고 늦은 문제 아니라고!순순히 돌아서 등을 내주며 육현경이 기대게 했다.‘안 무겁기는 개뿔
소이연은 안간힘을 쓰며 육현경을 침대에 눕혔다.VIP병실은 스위트룸이라 간호사와 간병인은 거실에 있고 침실에 소이연과 육현경 둘만 있었다.비서 이명진은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두 사람이 한 방에 있으니 왠지 어색했다.“과일 먹을래?”소이연이 먼저 말을 걸었다.“응.”“사과 줄까?”방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사과였다.“그래.”“알았어.”소이연이 먼저 사과를 씻고 과도로 깎기 시작했다.워낙 과일을 잘 안 먹어서 집에 과일이 거의 없기도 했고 출국을 하든 문씨 집에 있든 바쁘고 지금 은하그룹을 관리하면서 정신없다 보니 직접 사과를 깎아 먹는 일이 없었다.그러다 보니 사과 껍질을 되는 대로 깎아버린 결과는 참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이걸 줘도 되나?’슬며시 고개를 들어 육현경을 봤다. 그의 눈이 웃고 있다.“다 깎았어?”“웃지 말고 먹어.”뒤에 숨긴 사과를 앞으로 내밀었다.사과를 보던 육현경이 평가했다.“참 정교하게 생겼네.”칭찬이야? 아님 비꼬는 거야?“안 먹을 거야?”“먹여줘.”“손이 없어?”“힘 없어.”아까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더라?어이없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입가에 가져갔다.육현경이 한입 베어 물 때 입술이 손가락에 살짝 닿았다.소이연은 입술에서 전해지는 온화한 촉감을 느끼고 살짝 떨었다.“엄청 달아. 너도 먹어볼래?”“난 괜찮아. 과일 잘 안 먹어.”소이연이 거절했다.그것도 다급하게 거절했다.육현경이 가볍게 웃으면서 사과를 한 입 한 입 천천히 먹었다.겨우 한 알을 다 먹었다.소이연은 얼른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기 바빴다.“위 안 좋아? 삼촌 말로는 네가 위출혈이 있다던데.”두 사람 분위기가 너무 어색한 건 싫어서 육현경이 먼저 화제를 돌렸다.“그날은 내가 너무 마셔서 그래.”소이연이 가볍게 받아쳤다.“그때 한 번만?”육현경이 다시 물었다.“아니…”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여자가 접대 자리에서 손해보지 않으려면 술을
겨우 저녁밥을 먹여주고 이명진은 도망치듯이 침실에서 나갔다.친절하게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소이연이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11시.집에 가려고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내 몸 좀 닦아줘.”육현경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소이연은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의사가 당분간 샤워하지 말라고 해서.”“…”알고는 있지만 몸을 닦아줘도 되나?“남자가 내 몸을 건드리는 건 익숙하지 않아.”육현경이 설명했다.소이연의 머릿속에 이명진과 간병인이 스쳐 지나갔다. 둘 다 남자다.“닦지 않으면 오늘 저녁 제대로 잠들지 못할 것 같아. 수고해줘.”소이연이 숨을 들이마셨다.옛사람들의 말로는 작은 은혜도 두 배로 갚으라 했거늘.하물며 육현경에게 받은 은혜는 작은 것이 아닌 이상 따뜻한 물을 받아 침대 옆에 놓았다. 그리고 수건을 꼭 짜서 육현경에게 다가갔다.“눈 감아. 먼저 얼굴부터 닦을게.”육현경이 눈을 감으며 협조했다.따뜻한 물수건으로 부드럽게 얼굴을 닦아내고 수건을 한 번 헹구고 이번엔 목을 닦아주었다.쇄골에 닿았을 때 소이연이 물었다.“몸도 닦아야 돼?”“응.”소이연은 수건을 놓고는 눈 딱 감고 환자복을 벗겼다.환자복 안에 감춰진 남자의 가슴이 눈에 띄었다.웃통을 벗은 남자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다.문씨네 연예인들이 모델 사진을 찍을 대도 웃통을 벗고 찍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까.하지만 이번은 왠지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육현경의 상반신 근육선은 완벽하고 섹시했다.수건을 통해서도 가슴 근육과 복근의 탄력이 느껴질 정도였다.소이연은 얼굴이 빨개지면서도 열심히 닦았다.팔뚝과 허벅지도 꼼꼼하게 닦았다.닦고나서 왠지 숨이 차는 것 같았다.지쳐서 인지 아님…소이연이 세숫대야를 들고 떠나려고 할 때였다.“여기 안 닦았어.”육현경이 일깨워주었다.소이연은 대야를 꽉 쥐면서 몸을 떨었다.이 자식이 점점 더 들이대네?“내가 할게.”육현경이 덧붙였다.그 말에 소이연이 이를 악물었다.왠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물
“일 다 보고 올게.”소이연은 그래도 승낙했다.“알았어.”육현경은 전혀 사양하지도 않고 활짝 웃어 보였다.소이연이 병원을 떠나자 그제야 이명진이 병실로 들어갔다.“대표님.”“화장실 갈 테니까 부축해줘.”육현경이 분부했다.“이렇게 좋은 기회에 왜 사모님한테 부탁하지 않았어요?”육현경이 흘겨보자 바로 말을 바꾸었다.“대표님은 그런 남자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요.”“…”육현경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그저 소이연에게 빈뇨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이명진이 부축해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육현경은 눈을 의심했다.“대표님 제가 바지를 벗겨 드릴까요?”이명진이 정성스럽게 시중을 들려 했다.대표님께서 사랑에 빠진 이후로 ‘총애’를 잃어서 아무리 아부해도 돌아온 건 싸늘한 태도였다.하지만 기회가 올 때마다 아첨하고 싶은 마음은 멈출 수 없었다.“나가!”육현경이 차갑게 말했다.뭐가 또 불만인데?이명진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에서 나왔다.육현경은 쓰레기 통에 버려진 수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내가 얼마나 싫었으면……이튿날 아침 소이연이 출근을 했을 때 소나은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소나은이 소이연 뒤를 따라 사무실까지 들어왔다.“언니. 어제 아빠가 몇 번을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화난 말투였다.“병원에 있었어. 배터리가 다 나갔기도 했고.”소이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충전을 했으면 아빠한테 전화라도 했어야지.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알아?”“정말 나를 걱정했을까?”소이연이 의자에 앉으며 차갑게 노려봤다.소나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역시 소이연을 속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나 할 일이 많아. 다른 일이 없으면 나가.”소나은은 반박도 못하고 나가버렸다.사무실에서 나가자마자 소승영에게 연락했다.…한편, 소이연의 휴대폰이 울렸다.소승영을 하루 종일 무시했으니 이젠 받아줘야 할 때다.“소이연! 이젠 내 전화도 안 받는다 이거냐?”“하.”소이연이 코웃음을 쳤다.“아빠 전화
“하지수, 너 미쳤어?”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을 강하게 바라보며 눈이 금세 충혈되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하지수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송문수를 때리며 분을 풀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수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째, 침대에 있는 여자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셋째, 돌아서서 그냥 떠날수도 있었다.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방금 떠났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그리고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송문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송문수는 서둘러 하지수의 옷을 올려주며 말했다.“하지수, 너 미쳤어?” 하지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억울한 모습에 송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리다니. 하지수가 버림받은 듯 처참한 마음이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송승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송문수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송문수, 나도 할 수 있어.”하지수는 절규하듯 말했다. “뭐?”송문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송문수의 눈에는 오직 하지수의 눈물만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너와 함께 잘 수 있어.”하지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에 차서 그녀는 계속 흐느꼈다. 송문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더 울릴 것 같았다. 송문수는 갑자기 그녀가 울어버릴까 두려워졌다. 어릴 적처럼. 그는 사실 매번 하지수를 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수의 시선이 항상 송승우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하지수는 그를 전혀 주목하
이렇게 보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금 송문수가 침대에 누웠을 때 하지수도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지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송문수는 찡그린 얼굴로 하지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지수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아!”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지수가 여자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침대는 어젯밤 하지수가 덮었던 것이고 지금은 다른 여자가 그 이불을 품고 있었다. 송문수는 정말 더럽지 않은가? 정말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었나?굳이 그녀가 잤던 침대에서 하겠다는 것인가?굳이 이렇게 그녀와 마주쳐야만 하는가? “뭘 하는 거야!”송문수가 하지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세서 하지수는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송문수는 본능적으로 하지수를 받쳤다. 다음 순간 그는 즉시 하지수를 놓아버렸다. “나가.”송문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문수는 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냉담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방금 송승우에게 송문수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지금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정말 아프게 맞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어 하얗게 변했다. 조용한 방에서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지수의 행동에 놀랐다. 이 여자는 그들과 함께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자극적 아닌가?아직 준비가 안 되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하지수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송승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승우는 그들 사이에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엉켜 있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하지수가 예전의 일로 송문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위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송문수는 차갑게 물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술을 마셨는지 전혀 몰랐고, 그냥 주소를 알려주었다.말을 마친 후 차 안에서 오랫동안 송문수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사실 전화를 끊고 나서 하지수는 후회와 놀라움을 느꼈다. 왜 송문수에게 전화했을까? 가장 도와주지 않을 사람은 송문수였다. 하지수는 경찰에 전화했야 했다. 아니면 보험사나 4S 매장에 전화해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하지수는 이미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송문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송문수는 오지 않고 전화로 물었다.“심각하게 다쳤니?”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아. 차 앞부분이 가드레일에 부딪혔고, 내 머리도 좀 긁힌 것 같아.” “우선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 그리고 보험 회사와 4S 매장에 연락해 손해를 평가받아.”송문수는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 “안 오니?”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하지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사고가 나서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오늘 밤의 사고는 하지수에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안 갈 거야.”송문수가 차갑게 말했다.“하지수, 너는 변호사잖아. 사고 후의 절차를 더 잘 알지 않을까?” 말을 마친 송문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때 그녀는 송문수에게 정말 실망했다. 어떤 정도로 실망했냐고?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다시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혼도 생각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 후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온몸이 피투성이인 송문수를 만났다. 옆에는 두 명의 경찰이 있었다. 하지수는 자신이 잘못 봤다고 생각해 달려가서 물었다. “송문수,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피투성이야?” “내 피가 아니야.”송문수는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구 거야?”
송승우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이제 막 한 관광지를 갔는데 다른 두 곳도 준비했어. 먼 곳도 아니야. 왜 벌써 피곤해? 아니면 오후에 일이 있어?” “아니에요.”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놀다 가자.”송승우가 농담처럼 말했다.“걱정하지 마, 미아로 만들지는 않을게.” “승우 오빠, 우리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송승우의 얼굴에 있는 미소가 서서히 굳어졌다. “지수야, 내가 그렇게 싫어?”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 오빠에게도 나에게도 송문수에게도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왜?”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나는 네 마음을 알아. 너는 송문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데 다시 거부하는 거야? 부모님이 강요한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부모님에게 잘 설명할게. 어떤 일이든 내가 감당할 거야.” “부모님 때문이 아니에요.”하지수가 그의 말을 끊었다.“이제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송승우는 멍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충격에 그는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의심했다. “지수야, 너 뭐라고 했어?” “예전에 오빠를 정말 좋아했어요. 결혼 준비 중에 오빠가 떠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왜 갑자기 결혼식에 도망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송문수와 결혼하기로 한 것뿐이에요. 오빠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은혜도 있지만 오빠한테 화가 난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지만 그건 예전 일이고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요.”하지수가 한 단어씩 강조하며 말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감정은 식기 마련이고 오빠를 향한 그리움은 이제 없어요. 지금은 송문수와 함께 있고 싶어요.” “송문수한테 미안해서 그래?”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계속 사
맛이 아주 좋았다. 송승우는 하지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동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송승우와 송문수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수는 두 사람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어?” “아주 맛있어요.” “다 먹을 수 있어?”송승우가 물었다. “다 못 먹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득 찬 작은 만두 한 바구니에서 그녀는 많아야 절반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괜찮으면 하나만 줘. 나도 아침을 안 먹었거든.”송승우가 말했다. “오빠 아침 안 먹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먹을 수도 있었잖아요.”하지수는 놀라서 물었다. “열고 나면 김이 빠져서 식으면 맛이 없잖아. 그리고 나도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어.” 하지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만두를 집어 송승우의 입술에 내밀었다. 만두가 작아서 송승우는 한 입에 물었다. 송승우의 입술이 하지수의 손가락에 닿았다. 하지수의 손가락이 잠시 굳었다. 그리고 그녀는 만두를 옆의 팔걸이에 놓았다.“편할 때 다시 먹어요.” 송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분명한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의 접촉이 지수도 부끄러워하겠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에는 특별히 재미있는 곳이 없지만 유적지가 많았다. 송승우는 첫 번째로 하지수를 성벽으로 데려갔다. 하지수는 체력이 괜찮았다. 송승우과 함께 오랫동안 걸었다. 송승우는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고대 인들이 남긴 지혜를 감상하며 하지수는 송승우의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우리도 인증샷 찍자.”송승우가 말했다. “네?” 송승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전환했다. “지수야, 조금 더 들어와야 찍혀.” 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송승우의 카메라에 나왔다. 하지만 거리를 두기로 했다. “웃어봐.”송승우가 말했다. “웃으면 안 예뻐요.”하지수가 거부했다. “말도 안 돼 너 웃으면 제일 예뻐.”송승우는
“가식 떨지 마!”송문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녀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정말로 호의로 말했다.“빨리 나가. 내 잠 방해하지 마!”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려 나갔다. 그녀는 원래 호텔 고객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아침을 준비해 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송문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하지수가 그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전화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수가 나가자 송문수는 화난 기색으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수에게 깨어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는 소리를 듣고 송승우가 전화한 것임을 눈치챘다. 어젯밤 송승우가 전화를 걸어 오늘 하지수와 함께 서울을 구경하자고 했을 때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거절했다. 그는 하도경과 약속이 있다고 했다. 사실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송승우는 송문수가 안 가면 자기가 하지수와 놀러 가겠다고 말했다.송문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송승우는 그에게 알리기 위해서만 말한 것 같고 하지수와의 관계 때문에 그에게 체면을 세워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체면을 참 중시하는구나!송문수는 소파에서 내려와 침대로 갔다. 하지수는 어떻게 사귀던 연인과 비밀 데이트를 할 수 있는데 자기는 소파에서 자야만 하는 것인가. 송문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큰 침대 위에 하지수의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송문수는 더욱 짜증이 났다. 원래 그는 하지수가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하지수가 최근 보여준 호의에 변화를 기대하고 착각한 것이었다.어쩌면 진짜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결국 송문수는 스스로를 모욕한 것이었다.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송승우를 좋아했으니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하지수는 급히 호텔 출입구로 나갔다.그녀는 지각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
송문수가 욕실에서 나왔다. 송문수의 몸에서 은은한 샴푸 향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수는 살짝 긴장했다.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침대에 누운 적은 단 한 번이었다. 그때는 매우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그 후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접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이불 속에 누운 하지수는 몸이 경직되어 숨조차 내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그 향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송문수가 침대에 오지 않는 것을 느끼며 방의 조명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하지수는 몰래 눈을 뜨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그때 송문수가 방금 자신이 누워 있던 의자에 몸을 눕히는 모습을 보았다. 송문수는 애초에 하지수와 같은 침대에서 잘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래서 하지수를 침대에 옮긴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그가 자고 싶었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답게 예의를 지키려는 것 같았다.송문수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를 소파에서 자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수의 마음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방금 생긴 작은 기대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오해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 하지수는 불안한 잠을 잤다.사실 송문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송문수에게는 큰 키와 체격 때문에 소파가 고역이었다.그는 몸을 뒤척이는 것도 두려웠고,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게다가 다리를 펼 수도 없어 쭈그려 웅크리고 자야 해서 매우 불편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하지수가 큰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수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송문수의 긴장감이 커졌다. 하도경 말이 맞아, 그렇게 많은 여자와 사귀던 남자가 정말 달라졌네! 다음 날. 하지수는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서둘러 음소거를 해제한 뒤 송승우의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송문수 역시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자마자 전화 소리에 깨
하지수는 송승우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지나갔으면 지나가야지.”하지수는 그와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송승우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하지수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사실 조금 피곤했지만 침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저 마음이 허전해지는 느낌으로 누워 있었다.송문수가 방에 들어섰을 때, 하지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 여자는 도대체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오후에도 소파에서 두 개의 담요조차 덮지 않고 자고 있었고, 지금도 핸드폰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핸드폰이 이불이 되냐?송문수는 짜증이 났다. 그는 큰 몸을 움직여 하지수를 안았다.하지수는 주위의 움직임을 느껴 이마를 찡그리며 불편하게 몸을 비틀었다.송문수는 순간 가슴이 멈췄다.그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긴장했다. 하지수가 곧 깨어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왜 그녀를 안았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그랬나?이때야 하지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수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송문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다. 다음 순간, 하지수가 그의 품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은 뒤 다시 잠이 든 것을 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고요한 모습으로 자는 것을 보고 송문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속에 혼잣말이 흘렀다. 뭐야, 대변호사라면서 경계심이 높다고?잠들어서 팔려 가고도 모르겠지. 송문수는 하지수를 안아 침대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낸 후 그는 도둑질이라도 한 듯 불안한 마음으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이럴 수가!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는데...하지수에게는 단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송문수는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떠나자 하지수는 눈을 뜨고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방금 깨어났었다. 순간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