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해요, 듣겠어요! 전 죽고 싶지 않으니, 우리까지 연루시키지 말아요. 세상에 남자는 많죠, 당신도 나도 다 남자잖아요, 근데 문제는 아가씨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잖아요.”“아가씨같이 예쁜 여자가 죽은 남자와 영혼결혼식을 한다니 정말 아쉽네요,”“언제 시작이죠? 으스스한 분위기 좀 봐봐요, 너무 오싹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영혼결혼식에 참석한 몇몇 겁이 많은 남자들은 오싹한 분위기에 벌벌 떨었다.“조금만 기다려봐요, 강씨 가문의 수장님께서 혈귀천마조직과 합세해서 이도현의 머리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했다네요!”“맞아요, 수장님께서 혈귀한테 강씨 가문의 약물인 취신선을 줬고 그쪽에도 그 약물을 이용해 이도현의 머리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네요.”옆에서 뭇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던 한 남자가 상황을 설명했다.“수장님께서 아가씨한테 이도현의 머리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못해서 결혼식을 시작도 못하고 있는 거예요.”“말도 안 돼요! 혈귀가 이도현을 죽일 수 있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왜 말이 안 돼요! 다들 취신선이 어떤 약물인지 알잖아요, 그걸 내어줬는데 당연히 성공하겠죠.”“맞아요! 취신선이라면 그럴 만도 해요, 우리 강씨 가문의 취신선이 신선도 홀릴 수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데 이도현을 홀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죠.”“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도현이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고 해도 취신선의 매력에 빠지면 도살당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죠.”하지만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아직 의문을 품었다.“아니, 취신선이 그렇게 효과가 있다면 이도현이 애초에 우리 강씨 가문에서 소란을 피웠을 때 왜 쓰지 않았을까요? 그때 이도현을 한 방에 처리했다면 가문의 그렇게 많은 고수들이 죽는 일은 없었겠죠.”“누가 그 귀한 취신선을 매일 갖고 다녀요! 그날은 아무도 이도현이 나타나서 날뛸 줄 몰랐고 게다가 그때 우리가 모두 이도현의 실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그날의 치욕이 있었던 거잖아요.”“하지만 이번에는 수장님과 혈귀
강유란은 강유연을 엄청나게 아꼈고 그녀의 말은 무조건 들어줬다.그는 구씨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위해 어릴 때부터 강유연에게 구경명과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다. 그러므로 강유연과 구경명을 죽마고우에서부터 서로 없으면 못 사는 연인 사이까지 발전한 건 강유란과도 큰 관련이 있었다.만약 그가 나서서 이 모든 것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아마 강유연이 구경명에게 빠지지도 않았을 거고 지금처럼 과부를 자처하면서 죽은 사람과 영혼결혼식을 하겠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강유란은 자기가 강유연의 인생을 망쳐놓고 그녀를 해친 것 같아 너무 후회됐다.아니! 그는 이도현의 등장으로 모든 일이 꼬여버렸다고 생각했다.이도현이 구경명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강유연과 구경명은 아름다운 한 쌍으로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알콩달콩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강유란은 이도현에 대한 증오의 마음이 더욱 커졌고 무조건 그를 죽여서 딸에게 그의 머리를 선물해 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강유란은 자기가 그렇게 해야만 강유연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행복을 다시 찾을 거로 믿었다.그는 생각을 마치고 강유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회자에게 말했다.“그럼 시작하지.”사회자는 지시에 따라 결혼식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여러분, 길시가 다 되었으니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고 이제부터 결혼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사회자의 결혼식을 알리는 멘트와 함께 홀에서는 으스스한 분위기와는 상반된 흥겨운 꽹과리와 북소리가 시작되었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묘한 분위기에 두피가 저릿해 났고 등에서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경쾌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강유연과 구경명의 결혼식이 정식이 정식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알렸다.강유연은 관 속에 있어 일어날 수 없는 구경명을 대신해 그의 위패를 안고 결혼식을 진행했다.“하늘이 주신 좋은 인연에 감사드리며 첫 절을 하늘에 올리겠습니다.”강유연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구경명의 위패를 안고 하늘을 향해 절을 했다.“부모
“이도현!”강유란은 이를 악물고 이도현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지만, 그의 내심에는 충격과 수많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그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다른 사람들도 그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혈귀에게 가문의 귀한 약물인 최신선까지 줬는데 이도현을 죽이지 못했다는 게 가능해? 최신선으로도 이도현을 꺾을 수 없다니...’하지만 강유란은 깨진 관 속에 구경명의 절반만 남은 시체를 안고 울부짖는 강유연을 보면서 더 이상 복잡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고, 그의 얼굴은 더욱 굳어지면서 순식간에 이도현에 대한 원한으로 들끓었다.“죽여! 당장 저놈을 죽여!”강유란의 명령에 기다리고 있던 엄청나게 많은 무사 부대가 이도현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죽어! 이 짐승아, 죽어!”“죽어!”무사들 중에는 중급 강자, 왕급계 강자와 황급계 강자 등 여러 등급의 실력을 갖춘 강자들이 있었지만, 이도현을 죽이기에는 역부적이였다.이도현이 여유롭게 음양부채를 펼치자, 음양의 힘이 홀 전체를 뒤덮었고 엄청난 힘에 의해 무사들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하나둘 검은 시체로 변했다.이를 지켜보던 강유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남은 무사들에게 소리쳤다.“당장 저놈의 목을 베어라!”그의 명령과 함께 또 한 무리의 고수들이 이도현을 향해 돌진했다.“죽어!”고수들은 이도현에게 돌진하면서 미리 손에 쥐어있던 독약들을 그에게 퍼부었다.의술은 사람을 죽일 수도, 구할 수도 있다.강씨 가문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의술을 계승하는 뼈대 있는 집안이었다.그들 가문이 수많은 강적을 헤쳐가면서 오랜 시간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건 뛰어난 의술과 무술 실력뿐만 아니라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독약 때문이기도 했다.예를 들어, 강씨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최신선은 제국급 강자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강한 약물이었다.그렇게 독약은 강씨 가문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하지만 그 독약이 이도현의 몸에 수없이 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등도 나타나지 않았다.여
이도현이 손에 들고 있던 음양부채를 다시 한번 흔들자, 여러 갈래의 음양 힘들이 강씨 가문의 고수들을 하나둘씩 공격했고 그들도 이도현을 공격하기 전에 검은 시체로 변했다.음양부채는 며칠 동안 복원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불러왔다.이전 음양부채에서 너무나 뜨거운 불길이 나오면서 가는 곳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검게 변하게 했다면 음면을 복원하면서 음양동체의 효과를 내게 되었고 이제는 얼음과 불이 뒤엉킨 듯한 더욱 으스스한 느낌을 받게 하는 힘이 생겼다.강유란은 가문의 고수들이 맥없이 이도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그는 분노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도현! 네가 간이 부었구나, 이 늙은이의 손에 죽임을 당해야 정신 차리지.”이에 강유란은 직접 몸을 날려 이도현을 향해 공격했다.그의 두 손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보라색 빛이 춤을 추고 있었고 강대한 힘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이도현을 향해 돌진했다.“이제야 늙은이가 직접 나서는군!”이도현도 강유란의 공격에 발맞춰서 들고 있던 음양부채를 휙휙 휘두르면서 계속해서 달려드는 고수들을 가볍게 물리치고는 강유란을 향해 연신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쾅!”허공에서 이도현의 발과 강유란의 두 손이 부딪히며 순간적으로 굉음을 내면서 강한 힘을 뿜어냈다.강유란은 이도현의 힘에 밀려 자신도 모르게 홀 대문까지 날아가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오래된 대문이 산산조각 났다.그는 몸에서 느껴지는 심한 통증을 간신히 참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도현을 향해 다시 한번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이도현, 오늘 정말로 우리 강씨 가문과 끝장을 볼 생각인 건가? 당신의 내공을 봐서라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네! 지금 순순히 곤륜옥의 열쇠를 내놓고 자리를 뜬다면 가문의 수장으로서 과거 우리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을 없었던 걸로 하고 더 이상 집안 그 누구도 당신을 건드리지 않도록 하겠네!”이도현은 승리한 것처럼 말하는 강유란의 말투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강유란이 약물을 삼키는 순간 그의 몸에서 강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공포의 힘에 직격탄을 맞은 주변 책걸상들은 산산이 부서졌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 광경은 지켜보던 강씨 가문의 자제들은 창백한 얼굴로 연신 뒷걸음쳤다.강유란은 두 손을 모아 그 강력한 힘을 모은 뒤 이도현을 향해 밀어붙였다.“쾅!”강력한 장력이 천지를 뒤덮으면서 이도현을 향해 휘몰아쳤고, 이도현도 질세라 음양부채를 휘저으며 강유란의 공격을 받아쳤다.“쿵!”광음과 함께 강씨 가문의 홀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분오열되면서 집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모든 사람은 그 충격으로 하나같이 땅에 쓰러졌고 여기저기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하지만 강유란과 이도현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몸을 날려 공중에서 또 공격을 이어 나갔다.강유란은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잠재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강씨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특별한 담약을 복용했다.물론 그 담약에는 엄청난 부작용도 존재했다. 복용하고 나서 반년 안 체내에 모든 힘이 빠지면서 보통 사람으로 변했고 온몸이 극도로 쇠약해지면서 한순간이라도 수양을 소홀히 하면 작은 병으로 숨질 수도 있었다.그러나 강유란은 지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도현을 죽이지 않는다면 가문 전체가 망한다는 것을 알기에 담약의 부작용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게다가 이도현을 죽이고 강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강유란에게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담약을 먹고 강력한 힘을 얻어 이도현을 죽이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었다.“짐승아! 죽어!”강유란과 이도현은 서로 강력한 주먹으로 맞서 싸웠고 두 사람의 주먹이 공중에서 부딪히는 순간 굉음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이도현은 강유란이 담약을 복용한 후 강력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 힘은 전투에서 만나본 상대 중 가장 강력한 힘이었고, 숙련된 내공만이 그 힘을 다룰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강유란의 진정한 내공과 힘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은 천지를 뒤흔드는 힘을 발휘하면서 몇십 번의 공격을 주고받았다.강렬한 충격으로 강 씨 집 주변은 폭탄을 맞은 듯 아수라장이 되었다.강유란은 시간이 흐르면서 담약의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자꾸만 정신이 산만해졌다.이 정도 레벨의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엄청나게 나쁜 결과가 생기기 마련이었다.이도현은 강유란이 집중 못 하는 틈을 타서 그의 어깨를 공격했고 그 충격으로 강유란의 한쪽 팔 전체가 일그러졌다. “윽...”강유란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참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이도현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옆차기로 강유란의 가슴을 단숨에 걷어찼다.“쾅!”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유란의 가슴뼈가 부러지면서 중심을 잃고 거꾸로 날아갔다.강유란은 수십 미터를 날아가서야 땅에 내동댕이쳐졌고 한참 동안 온몸을 벌벌 떨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수장님...”강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어리둥절했고 몇몇은 미친 듯이 강유란에게로 달려가서 그를 구하려고 했다.그러나 이도현은 손에 음양부채를 들고 맹렬하게 흔들면서 강유란을 구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공격했고 그 강력한 힘의 공격에 강씨 가문의 몇몇 자제들은 한 순간 시커먼 시체로 변해버렸다.“누가 또 감히 이 싸움에 끼어든다면 그 끝은 저 사람들과 똑같을 것이야!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어디 한번 해봐!”이도현의 싸늘한 목소리가 사신처럼 울려 퍼지자, 남은 사람들은 눈으로만 분노할 뿐 감히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이도현은 시큰둥한 눈초리로 그들을 훑어보다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강유란 앞까지 와서 그를 계속 걷어차면서 말했다.“날 죽인다면서? 이 정도 실력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해? 담약으로 잠재력을 끌어올려서 신체기능을 높여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너는 내 앞에서는 그저 쓸모없는 인간일 뿐이야!”이도현은 잠깐 숨을 고르더니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하하하! 나 하나 죽이겠다고 혈귀와도 손을
강유란은 그제야 이도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을 후회했고 그가 아량을 베풀 때 복수에 눈이 멀어 혈귀와 손을 잡고 또 한 번 건드려서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도 후회했다.강유란은 이도현이 또 걷어차려고 드는 다리를 필사적으로 잡으면서 구걸했다.“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날 죽이지 말고 살려줘! 날 포함해서 우리 강씨 가문에서 다시는 당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없게 할 테니까 제발 그만 놔줘, 부탁이야...”강유란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비겁하게 용서를 빌었다.그러나 이도현은 강유한의 거듭되는 구걸에도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그는 오히려 이러한 가문의 수장은 동정할 가치가 없고 그들을 놓아주는 거야말로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과 같은 노릇이라고 생각했다.게다가 강씨 가문이 전에 남궁 일가를 학살할 때, 그쪽 가문의 수장이 아무리 선처를 구해도 자비를 베풀기는커녕 남녀노소 나이 불문하고 모조리 죽였었다.그렇기에 이도현은 이런 짐승과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악을 악으로 처단해야 한다고 믿었다.“헉!”강유란은 있는 힘껏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던 중 이도현은 발로 그의 머리를 꾹 짓밟았다.그 충격으로 강유란은 잠시 온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을 받다가 결국 이도현의 발힘에 의해 머리가 두 동강 났다.머리가 깨지는 둔탁한 소리에 장내는 쥐 죽은 듯 더 고요해졌다.강씨 가문의 자제들은 바닥에 머리가 두 동강이 난 수장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그 어떠한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고 두려움이 서린 눈빛으로 이도현의 처벌을 기다릴 뿐이었다.하지만 이도현은 남은 사람들은 한번 훑어볼 뿐 더 이상의 살인은 하지 않았다.그는 자기가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인다면 남궁 가문을 학살하던 강씨 가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이도현이 대학살을 벌인다면 그의 사부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였다.“오늘 내가 너희들을 죽이지 않을 테니, 너희가 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복수를 원한
이도현은 자신이 감지한 기운에 따라 강 씨 집 뒷산으로 향했고 거기서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방금 그 강한 기운이 이 동굴에서 방출된 것이 틀림없었다.“강 노인... 이 배신자야! 날 좀 내보내 줘, 여기서 나가게 해줘...”“강 씨 이 나쁜 놈들! 날 좀 내보내 달라고! 내가 여기를 나가게 되는 날, 바로 당신 강씨 가문이 멸망하는 날이 될 거야! 얼른 내보내 달라고!”동굴 속에서 노호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고 그 목소리에는 엄청난 분노와 증오가 섞여 있었다.목소리에 담긴 우렁찬 기세만 보아도 동굴 속에 갇힌 사람이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이도현은 동굴 속의 사람이 풍기는 기운으로부터 적어도 제국급 강자라는 것과 강씨 가문의 원수일 거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그는 동굴 속에 강씨 가문의 늙은 괴물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졌다.동굴로 향하는 이도현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동굴의 끝에는 용암 동굴이 있었고 그 안에는 거대한 천연 연못이 있었으며 연못의 중앙에는 거대한 돌이 수면 위로 돌출되어 있었다.그 돌 위에 머리를 길게 풀어 헤친 노인이 쇠사슬에 두 손과 두 발이 묶여서 서있었다.그 노인은 이도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강 씨네 짐승들! 오늘은 밥도 가져오지 않는 거야? 빨리 밥이든 술이든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이도현은 노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난 강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야, 그들 때문에 여기 갇혀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누구입니까?”“이놈아, 감히 날 속이려고! 강씨 가문의 사람도 아닌데 어찌 여기에 올 수 있어! 강 노인이 또 무슨 음모와 계략을 꾸미는 거야, 이 짐승 같은 놈아, 밥이나 빨리 주고 가!”노인은 강씨 가문에 관한 말만 나오면 적대적인 반응을 드러냈다.그리고 그가 말한 강씨 가문의 강 노인은 전 세대의 수장임이 틀림없었다.이도현은 그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믿거나 말거나 상관은 없지만
이날 밤, 이도현은 여전히 노영식네 집에 머물렀고 주현진이 잠자리를 정리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잠자리는 침대가 아니라 온돌 바닥이었다.도시 사람들에게는 낯선 온돌방이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보기 흔한 것이었다. 온돌방은 구들장 밑이 비어있어 날이 추워지면 아궁이에 불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뜨거운 열기가 구들장 밑을 지나면서 머지않아 집이 따뜻해지게 된다.이도현은 온돌방이 정말 편하게 느껴졌다. 특히 형수가 준비해 준 우유 향이 나는 꽃무늬 이불을 덮으니 더욱 편안했다.형수가 수유 기간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이도현이 나쁜 마음을 품어서 심리작용이 생겨서인지 오늘따라 이불에서 나는 우유 향이 그날 밤보다 더 짙게 느껴졌다.게다가 불빛 아래에서 그는 하얀 이불 위에 지도 같이 생긴 자국이 한 둘레 한 둘레 있는 것을 보고 우유 향이 그 자국에서 풍겨 나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헐! 설마 형수가 이 이불을 계속 덮었던 거 아니지? 이것이 설마 모유의 흔적이 아니겠지? 세상에나! 이건...”이도현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아주 많이 혼란스러웠다!‘형수는 이 이불을 덮고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한 거야? 설마... 내가 그 상대는 아니겠지!’이날 저녁 이도현은 잠을 설쳤다.이튿날 아침 일찍 이도현은 얼떨결에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주현진인 것이 분명했다.노영식이 이토록 적극적일 리가 없었다.“지안이 양아버지! 일어나셨어요? 아침 식사하셔야죠!”주현진의 제법 부드러운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형수님,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네요! 얼른 일어날게요!”이도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뜨면서 말했다.“양아버지도 참, 무슨 별말씀을요! 얼른 일어나서 세수하고 식사하세요! 아침상 다 차려놨어요!”주현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녀의 초롱초롱한 큰 눈을 보고 이도현은 마음이 뒤숭숭해졌다.다행히도 주현진은 몇 마디만 하고 방을 나갔다. 아니면 이도현은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이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다섯 사람은 다
“그래도...”이도현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기세라 그는 하는 수없이 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이름은 제가 지어줄게요. 지안 어때요? 지혜롭고 평안하게 자라라는 뜻이에요!”“지안! 노지안, 좋아요. 뜻도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사람은 일생에 무슨 일을 하든 돈을 얼마나 갖고 있든 권력이 얼마나 크든, 지혜롭고 평안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죠! 지안, 좋은 이름이네요!”노문호가 제일 먼저 말했다.“지안! 좋아요! 그럼 이 녀석을 앞으로 지안이라고 부릅시다!”노영식도 기뻐하며 말했다.“지안! 우리 아기 앞으로 지안이라고 불러야겠네! 지안, 지안아, 얼른 와서 양아버지께 절을 올려야지!”주현진은 아이를 안은 채 흥분하며 말했다.“그래! 지혜롭고 평안하게! 지안! 참 훌륭한 이름이야!”노영식의 부모는 모두 착실한 시골 사람이라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주현진은 아이를 안은 채 이도현에게 절했다. 시골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하는 것은 성의를 표시하는 제일 성실한 행동이었다.이번에 이도현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피할 수 없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형수가 아이를 안고 절도 올렸으니 이도현은 빼도 박도 못 하고 양아버지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 아이에게 첫 대면 선물을 안 줄 수가 없었다.만약 무사 집안이었다면 이도현은 반드시 자신의 무도 비법 또는 담약, 보검 같은 것을 아이에게 선물해줬을 것이었다.하지만 그의 양아들은 평범한 사람이고 일반 백성인 만큼 제일 현실적인 것을 선물해주는 것이 좋았다.이런 생각이 들자 이도현은 손을 옷 안으로 넣고는 음양탑 에드워드 가문의 보물 창고에서 챙긴 황금 두 덩어리를 찾아냈다.그러고는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하여 한 개의 금덩이로 만든 후 그들 앞에 꺼냈다.“형수! 제가 아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어요. 당장은 이 금덩이밖에 드릴 게 없네요. 나중에 훌륭한 장인을 만나면 이 금덩이로 아이에게 장수 목걸이나 만들어
“도현 씨! 전에 약속했잖아요! 우리한테 아이가 생긴다면 도현 씨가 아이의 양아버지가 되겠다고. 지금 이렇게 아이를 안아 왔어요! 도현 씨가 싫지 않다면 우리 아이를 양아들로 받아주시죠!”주현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도현에게 말했다.“이건...”이도현은 조금 난감했다.만약 이도현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양아버지가 되는 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었다. 배은망덕한 사람만 아니라면 양아버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문제는 이도현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원수가 수없이 많았다. 만약 원수들에게 그한테 양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지게 된다면 노영식네 가족은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도현은 그들의 은인이 아니라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형수, 먼저 일어나세요! 이 일은 제대로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는 형수네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이도현은 허리를 숙여 주현진을 일으켜 세웠다.“영식이 형, 형수, 두 사람은 저의 처지를 모르세요. 모든 걸 얘기해 드릴 수는 없지만, 저한테 많은 원수가 있다는 것만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저를 건드릴 수는 없지만, 형네 가족을 괴롭힐까 봐 걱정이에요!”“제가 형네 가족을 하찮게 여겨서 형의 아이를 양아들로 삼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두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이 아이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되어서 그래요!”이도현은 잔잔하게 얘기를 꺼냈다.이 말을 들은 노영식 부부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이어서 단호하게 말했다.“도현 씨, 우리는 두렵지 않아요!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길 수 있는 것도 다 도현 씨가 만들어 준 것이잖아요. 도현 씨와 우리는 이미 정해진 운명인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요?”형수의 이 말은 오해의 여지가 컸다.‘아이가 생길 수 있는 것이 내가 만들어 준 것이라니... 무슨 말을...’“저기... 형수... 형! 저는 정말로 두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이런 말을 하면
풍성한 요리에 술안주도 많이 장만했다. 그리고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좋은 술을 오늘 특별히 두 병이나 샀다.물론 형수는 이도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커서 이처럼 진수성찬을 준비한 것이었다.이도현은 이 집안의 가장 큰 은인이라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기고 이 한의원에서 일할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지금 매달의 수입은 이 집안 예전의 일 년 수입에 가까웠다. 요 몇 개월 동안 그녀는 이미 이삼백만 원정도 모았다.이삼백만 원이 도시에서는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그들이 생활하는 시골에서는 목돈이었다.게다가 그 금액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집에서 일하고 평소에 돈 쓸 곳도 별로 없었기에 한 달 생활비는 십만 원이면 충분했고 나머지는 전부 저축했다.그녀는 행복해지는 길에서 희망을 찾은 것 같았고, 집안의 살림살이도 갈수록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도현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품어서는 안 될 생각 외에 무엇보다 이도현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노영식 부부의 아이는 노영식의 부모가 돌보고 있었다. 두 노인이 고대하던 손자가 세상에 태어난 거라 두 사람은 아이를 엄청 애지중지했다.두 노인이 계속 아이를 돌보았기에 노영식 부부는 아이를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었다. 주현진이 아이에게 수유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동안 거의 두 노인이 아이를 돌보았다.두 사람은 이도현이 온 것을 보고 보살님이 강림하신 것처럼 대했다. 그들은 하마터면 이도현 앞에서 무릎 꿇고 그를 맞이할 뻔했다.영감은 이도현이 자기 집안의 큰 은인이자 구원자라고 하면서 집에서 억지로 이도현에게 장생의 위패를 하나 세워주었다. 그러고는 매일 향을 피워 이도현을 위해 축복을 빌었고 그가 오래오래 백 살까지 살 수 있기를 기도했다.이도현은 저주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현재 내공으로는 몇백 살까지 거뜬히 살 수 있건만, 백 살까지 살라는 것은 수명을 단축하는 것이었다.이도현도 당연히 이것이 그들의 제일 진심
이도현은 형수가 차린 밥상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 문제라도 생길까 봐 다급하게 말했다.“형수, 저 먹고 왔어요! 번거롭게 차리지 않으셔도 돼요!”이도현은 말을 마치고 급히 노문호에게 눈길을 돌렸다.그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수유 중인 형수의 가슴이 너무도 풍만하여 이도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기세는 이도현이 침을 놓을 때보다 더 매서웠다.“노 선생, 그동안 잘 계셨나요? 집안에도 별일 없으시죠?”이도현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그럼요, 무탈합니다! 그저 한의원이 너무 바쁠 따름이죠. 게다가 도현 씨의 명성이 자자하여 한동안 많은 사람이 도현 씨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가 없다니까 그냥 돌아갔어요.”“그래도 우리 한의원이 이제 많이 유명해져서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어요. 도현 씨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 늙은 몸이 곧 쓰러졌을 거예요.”“좋은 소식이네요. 이건 노 선생의 의술이 뛰어나기에 백성들이 다 믿고 맡긴다는 거잖아요.”이도현이 웃으며 대답했다.“에잇! 놀리지 말아요! 저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도현 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가서 좀 쉬다가 일하러 와요! 저는 계속 일해야 하니까 이만 가볼게요. 도현 씨가 돌아온 걸 축하할 겸 우리 저녁에 영식이네 집에 모여서 밥 먹어요!”“그... 괜찮을까요? 또 형수를 귀찮게 해야 하는데.”솔직히 말해서, 이도현은 형수 집에 가서 밥 먹고 싶지 않았다. 형수의 요리가 맛없는 것도 아니고, 꽃무늬 이불이 푹신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형수가 무서울 뿐이었다.“귀찮을 게 뭐 있어요. 도현 씨는 아이의 양아버지이고, 한집안 식구끼리 이런 말을 하면 섭섭하죠! 계속 그런 말을 하면 저희를 무시하는 거로 여길 거예요!”이도현이 거절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형수가 다급하게 말했다.이도현은 형수가 다급하게 그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고 더는 거절하지 못했다. 더 거절하면 그가 찔리는 것이 있어서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도현 씨, 현진
“이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내가 방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지. 이 젊은이는 부귀의 상이고 걸음걸이도 씩씩한 데다가 온몸에서 은은한 보라색 빛을 반짝이고 있어. 딱 봐도 부귀영화를 누릴 상이지, 절대 그렇게 소질 없는 사람이 아니야! 이제야 믿겠어? 내 말이 맞는다는 거!”제일 먼저 반응한 할아버지께서 나서서 이도현을 가리키며 듣기 좋은 단어만 골라서 칭찬했다.그러나 이도현은 계속 입을 삐죽거렸다. 바로 이 할아버지께서 조금 전까지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았는데, 지금에 와서 말을 바꾸다니 참으로 낯가죽이 두꺼운 사람이었다.“그러니까! 나도 그랬지. 이 젊은이는 딱 봐도 복이 있고 부귀한 사람이라고. 근데 너희는 귓등으로 듣기만 했어!”다른 사람도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이신의, 만나서 반갑네. 난 이춘식이야. 우리 같은 이씨로서 오백 년 전에 한 가족이었을 거야. 넌 정말 우리 이씨 가문에 큰 체면을 세워줬어!”“이신의, 난 김두만이라 하고 나의 외할아버지도 성이 이씨야. 우리도 한 집안이라고 볼 수 있어!”“이신의, 나도 이씨 성을 가진 외할아버지가 있는데, 자네와 똑같이 생겼어!”수염이 새하얗고 이가 싹 빠진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이도현은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연세가 이렇게 많으신 분이라면 이분의 외할아버지는 진작에 돌아가셨을 건데, 이렇게 나와 친한 척한다고! 자기 외할아버지더러 날 저승으로 데려가라는 거야 뭐야!’ “퉤! 뻔뻔스럽기는! 고아 주제에 어디 감히 외할아버지가 있다고 이신의와 친한 척하려고 해! 우리 어머니의 외할아버지야말로 이씨야!”뻔뻔한 사람이 또 한 명 나타났다.이도현은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이 어르신들이 너무 무서웠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할뿐더러 그럴듯하게 말하여 진짜인 줄 알았다. 이것도 모종의 경지라고 볼 수 있는 정도였다.이도현은 황급히 한의원 안으로 도망쳤고 그제야 고요함을 되찾았다.“도현 씨, 돌아왔군요! 하하하... 이 자식, 왜 이제야 돌아왔
이도현은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쭈뼛쭈뼛하게 내디딘 걸음을 도로 거두었다. 그는 성급 고수보다 눈앞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이도현이 자신이 이곳의 의사라고 설명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노영식이 한 할머니를 부축하면서 걸어 나왔다.“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만 떠드세요! 다 진료해드릴 테니까 새치기하지 말고 줄 서서 기다리세요.”“신의 양반, 우리가 진료 보는 데 방해하려고 떠들어댄 것이 아니라, 반반하게 생긴 도시 사람이 염치없이 새치기하려고 해! 규칙을 어기려고 해!”한 할아버지가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도현은 이 말을 듣고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이런! 내가 언제 염치없이 굴었어?’“새치기! 누가 새치기했어요?”노영식이 물었다.“이 사람이요!”“바로 저 젊은이예요. 도덕심이라고는 일도 없어요!”“맞아요! 염치가 전혀 없어요! 우리가 온 오전 줄을 서도 새치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저 사람은 오자마자 새치기했어요. 그러고도 도시 사람이라고! 퉤!”또 한차례의 비난을 받은 이도현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그냥 들어가서 일하려는 것뿐인데,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잠깐 사이에 벌써 세 번이나 욕을 먹었어. 게다가 한의원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 설사 내가 진짜 진료받으러 왔다고 해도, 새치기하면 어때서? 한번 욕하면 그만이지, 끝없이 욕할 줄이야. 시골 사람이 제일 순박하다고 들었건만 왜 이 어르신들은 이렇게 다르지?’“이도현 씨... 돌아왔어요...”노영식은 이도현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기뻐하며 그에게 달려갔다.이도현은 손을 뻗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는 오늘 운이 안 좋았다.“언제 돌아온 거예요? 미리 전화하지 그랬어요. 저희가 알았으면 마중하러 가는 건데!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삼촌이 이도현 씨를 오랫동안 그렸어요... 그리고 저의 아내도 거의 매일 밤 이도현 씨 얘기를 했어요. 도현 씨가 돌아오기만 하면 아이의 양아버지로 모시겠다고!”노영식은 감
조금 거친 섬섬옥수로 능수능란하게 계산기를 눌렀는데 그런 진지한 모습이 여자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듯했다.그 여자는 다름 아닌 노영식의 아내, 이도현의 형수였다.한의원이 확실히 아주 바빠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낳은 지 몇 달도 안 되는 형수가 이렇게 나와서 일을 도울 리 없었다.그러나 형수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한 것을 보아하니 그녀가 이 일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긴 한의원에서 일하면 한 달에 오십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고 게다가 지금 월급이 올랐을지도 모른다. 이건 농촌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일자리였다.그리고 지금 부부가 모두 한의원에서 일하기에 한 달에 최소 백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무조건 농촌에서 고소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더군다나 부부가 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가정을 돌볼 수 있었다. 일도 지체하지 않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이 일자리는 그야말로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것 못지않았다.이도현은 이 부부가 하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잔뜩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질투에 눈이 멀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이 부부도 충분히 빡세게 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형수는 아이를 낳은 지 겨우 몇 달밖에 안 되는데 벌써 일하러 나왔다.백성들은 역시나 응석받이로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1년은 쉬었을 것이었다.물론 도시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좋으니 휴식을 많이 취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거 아니겠어?이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의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겨우 두 발짝 걸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웠다.“에잇! 거기! 앞에 총각! 너 뭐 하는 거야! 양심이 있다면 뒤에 가서 줄을 서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 서고 있는 게 안 보이냐? 빨리 가서 줄 서!”“맞아! 맞아! 뒤에 가서 줄 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는 거 못 봤냐! 어디서 새치기야! 뒤에 가서 얌전히 줄 서! 참! 요
이도현은 이 가족의 감사 인사를 마다하고는 남자에게 앞으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앙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어떤 일이든 도가 지나치면 본연의 가치를 잃기도 하는데 좋은 마음에서 출발한 일도 나쁜 일로 만들 수 있었다.특히 이번 일처럼, 만일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은 신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것이었다.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남자는 사람을 불러 아내와 아이를 들것에 싣고 산에서 내려왔다. 떠날 때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절의 스님을 쳐다보았다.그 표정은 마치 앞으로는 이곳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고, 돈을 어디에 쓰든 절대 너희 같은 양심 없는 가짜 스님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이도현도 떠나갔다. 그는 재물을 탐내고 하마터면 사람까지 죽일 뻔한 이곳에 1분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머무르다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질까 두려웠다.물론 그는 아무것도 폭로하지 않았다. 마치 하늘과 땅에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도리를 이루었다.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만약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 세상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었다.만물이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도리가 있는 법이고, 하물며 나쁜 사람은 그들보다 한층 더 나쁜 사람에게 응징받을 것이기에 이도현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이도현이 보기에는 이 스님들이 구제 불능한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어젯밤 이도현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임산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스님이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여자의 남편이 너무 미신을 믿어서 출산을 앞둔 아내를 데리고 부처님께 예배드리러 왔다가 이런 일이 생겼던 것이었다.누가 옳은지 그른지, 또 누구의 책임인지 분명히 따질 수 없었다.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