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현은 눈앞의 오능 스님에서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자상하면서도 천하를 제패하던 패기가 돋보이는 스님의 몸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완전히 상반되는 두 개의 그림자가 말도 안 되게 그의 눈앞에서 융합되었다.“둘째 선... 노스님, 남의 일에 참견하고 싶은 건가? 당신도 죽고 싶어?”이도현은 하마터면 이름을 잘못 부를 뻔했다.“스읍...”공작제국의 모든 사람은 이도현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쥐 죽은 듯이 있었다. 그들은 두피가 저려나고 식겁해서 죽을 것 같았다.‘헐. 이 자식 너무 날뛰는 거 아니야?’‘감히 저런 말투로 태상황제에게 대들다니? 설마 태상황제가 수십 년 전에 이미 고무계의 최강자로 손꼽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모든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채 얼어 있었다.그들은 이도현의 오만방자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그러나 노스님은 이도현의 건방진 말을 듣고 전혀 분노하지 않았다.“아미타불. 소승은 비록 시주의 내력을 모르지만, 젊은 나이에 이토록 내공을 쌓은 거 보면 분명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것 같네.”“자네의 자질은 무도계에서 앞길이 창창할 것인데 왜 살육에 눈이 멀어지려고 하는가?”“자네 정도의 내공이면 손에 피를 많이 묻힐수록 심경에 영향을 미쳐 앞으로 경계를 돌파할 때 심마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거 알지 않는가? 심마는 자네의 악한 기운에 따라 강해질 거야. 그때가 되면 자칫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될 수 있다네.”“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살심을 버리고 도를 닦게.”“시주와 공작제국의 원한에 대해 소승도 요해한 바가 있어. 이 일은 공작제국이 먼저 잘못했다는 거 인정하지.”“하지만 시주도 공작제국의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가? 시주에게도 잘못이 있으니 이번 일은 단순히 공작제국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양쪽 모두 잘못이 있으니 이 일을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게 어떤가? 시주, 지금 이곳을 떠나주게.”그 자라에 있던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들은 우리 공작제국을 나약하고 무능한 제국으로 보지 않겠어요? 황궁에 쳐들어와서 왕후까지 죽인 자의 털끝을 하나라도 건드리지 않았을뿐더러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려보내면 공작제국의 체면은 바닥까지 떨어질 거예요.”“공작제국의 위세, 존엄 그리고 체면을 다 버리겠다는 겁니까?”공작상제는 마지막 말을 거의 외치듯이 말했다.그는 아버지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 어릴 적부터 우러러보던 아버지의 위대하고 웅장한 형상은 한순간에 철저히 무너졌다.아들이 살해당해서 사람을 보내 복수를 시켰더니, 원수가 찾아와서 그의 병사를 죽이고 형제를 죽였다. 하여 그는 아버지를 불러 제대로 복수할 생각이었다.그러나 복수는커녕 너의 잘못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으니 그 누구도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고 화가 날 것이다.공작상제 대신 어떤 사람이라도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겁을 먹고 존 것이라 단정했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공작제국의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이었다.노스님은 아들의 추궁에 잠깐 화가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랑 따지는 건데? 이게 다 네가 아들을 잘못 가르쳐서 생겨난 사단인데 무슨 면목으로 그런 말을 해? 네가 애초에 아들을 잘 가르쳤다면 오늘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지금이라도 너의 아들을 잘 가르쳐. 그렇지 않으면 우리 조상의 가업은 조만간 네 손에서 망할 거다!”“군자는 정무에 근면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래야 백성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나라가 한마음으로 강성해질 수 있다.”“그러나 네 밑에서 자란 자식은 온갖 횡포와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지. 소승은 전부터 너의 구황자가 국내 곳곳에서 제멋대로 굴며 백성을 억압했다고 들었다. 그런 구황자를 네가 훈계한 적이 있기는 해?”“그가 만약 보통 집안의 아이였다면 기껏해야 사람 몇 명을 해치고 그에 따르는 처벌을 받겠지. 그러나 그는 황실 사람이라 사람을 해치면 몇 명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안 돼. 이 짐승 같은 녀석, 그럴 리 절대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마. 난 잘못한 게 없어. 네가 나의 아들을 죽이고 공작제국의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왜 내가 사과를 해야 하지? 말도 안 돼...”노스님이 말을 하기도 전에 공작상제가 먼저 참지 못하고 말했다.공작상제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도현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한 나라의 군주이고 제왕인 그가 어찌 잘못할 수 있는가? 만천하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는 잘못할 리가 없다.왕이자 황제인 그가 어찌 잘못할 수 있는가? 이 말을 듣자 이도현은 경멸의 미소를 지었다.“그럼 더 얘기할 것도 없어.”“오능 스님, 이제 봤나?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아들이야.”“방금 아들에게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고 하더니 당신도 마찬가지네. 아버지 말을 안 듣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자식이 어디 있어? 저렇게 버럭버럭 대들 때는 바로 싸대기를 날렸어야지.”“다 오냐오냐 키워서 생긴 버르장머리야. 황제 네 놈, 똑똑히 들어. 황제는 당신의 직업일 뿐이지 신분이 아니야. 황제가 되니까 정말 천하무적이라도 된 줄 아나 본데? 참 어이가 없네.”이도현은 말을 가리지 않고 부자를 한바탕 욕했다.솔직히 말해서 황제를 욕하니까 속이 다 후련했다.비록 싹수없는 행위이지만 형수님을 대신하여 화풀이를 제대로 한 셈이다.정적.온 궁전은 다시 한번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모든 사람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들은 귀신 보듯 이도현을 바라보았다.이도현은 오늘 한번 또 한 번 그들의 황권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 놓았고, 금기를 깨뜨렸다.이도현은 그들이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이도현의 말을 듣고 노스님과 공작상제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문무백관과 수많은 금위군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아미타불. 시주, 소승이 이렇게까지 양보했건만 꼭 사람을 궁지로 몰아붙일 생각인가? 시주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
“시주, 이번 일은 확실히 우리 공작제국이 잘못했네. 소승이 공작제국을 대신해서 사과할 테니까 이쯤에서 그만 멈추지. 만약 정말로 싸운다면 양쪽 모두 크게 다칠 걸세.”“나더러 멈추라고? 이 쓰레기 황제가 사람을 시켜 일반인에게 손을 섰다니까. 내가 의술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친구는 이미 황천길을 걸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고작 멈추라는 말 한마디로 넘어가겠다는 거야?”이도현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이도현도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노스님이 방금 한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이도현은 강대하고 남 두려울 것이 없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다 그처럼 강한 것이 아니었다.그의 선배들은 세속계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일지 모르지만, 고무계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노스님만 놓고 보아도 둘째 선배와 비슷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그리고 다른 선배들에 비하면 노스님이 훨씬 강했다.그의 몇몇 선배도 노스님의 상대가 아닌데 한지음, 조혜영, 오민아와 같은 보통 사람은 더군다나 상대가 안 되고 노문호, 주현진과 같은 일반인은 더욱 말할 것 없었다.만약 공작제국이 정말로 그를 보복한다면 그는 마지막까지 몇 사람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도현은 지금까지 부질없는 일을 한 것밖에 안 된다.게다가 이도현은 공작제국을 멸망시키겠다는 목적을 갖고 고무계로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원하고 말고를 떠나서 하나의 제국을 멸망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오직 한 나라의 통치자를 소멸한 뒤 그 기반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이 원래의 나라를 잊게 하는 것만이 진정한 멸망이었다.“그럼 시주는 무엇을 원하는지? 바라는 보상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보시오.”노스님은 선황제로서 이럴 때일 수록 자신의 성의를 잘 표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건 당신들이 어떻게 보상해줄 건지에 달렸어. 하지만 난 많은 물건에 관심이 없고 유독 약재에 흥미가 많아. 게다가 내 친구가 하마터면 황천길을 걸을
“아바마마...”공작상제는 똥 밟은 표정으로 선무상제를 노려보았다.그 시각 그는 정말로 이 늙은이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날 도와주기는커녕 내 보물 창고와 약전에 있는 묘약을 다 이놈한테 주라고 하다니. 이럴 거면 부르지도 않았지. 이 많은 사람이 아바마마가 얼마나 겁쟁이인지 보게 하려고 한 게 아닌데.’“얼른 움직이지 못해?”선무상제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 소리에 공작상제는 바로 겁을 먹었다.공작상제는 즉위하기 이전에 선무상제 밑에서 수년 동안 압박을 당했다. 그렇게 생긴 심리적 두려움은 평생 갈지도 모른다.비록 선무상제는 지금 까까머리 스님이지만 그의 방금 한마디에 공작상제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무릎까지 꿇었다.이건 모두 마음속 깊이 숨어있던 두려움 때문에 생긴 조건 반사였다. 모든 것은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네... 아바마마. 가서... 가서 약재를 캐오거라...”공작상제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체면을 잃을 대로 다 잃었다.“오늘 내가 한 말들을 잘 기억하게. 이 일은 이렇게 넘어가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그 누구도 이 일을 꺼내지 마. 네 망나니 아들은 죽어도 싼 놈이다.”“앞으로 아들딸을 잘 가르치고 다시는 조상의 얼굴에 먹칠해서는 안 돼. 알겠어?”노스님은 또 자기 아들을 한바탕 훈계했다.“아바마마, 노여움을 푸십시오. 아바마마의 가르침을 새겨듣겠습니다.”공작상제는 비록 화가 잔뜩 났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이도현을 죽도록 미워했다.‘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이도현을 산산조각내고 말 거야.’그는 속으로 이렇게 맹세했다.“노스님, 당신의 아들은 별로 내키지 않는 것 같은데. 당신이 떠나고 나면 날 무조건 건드릴 것 같은데 그때 가서 나를 탓하지 마.”이도현은 자신을 향한 공작상제의 적의를 느끼고는 고의로 말했다.“아미타불. 시주, 걱정하지 말게.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선무상제가 맹세했다.사실 노스님은 공작제국의 황궁
“그 담약들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선학 부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내공도 올라갈 수 있을 거야.”이도현은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약재를 바라보았다. 그는 극도로 만족했다. 이런 약재들은 살인하는 것보다 훨씬 값졌다.“아미타불. 시주, 약재들은 다 여기에 있어. 어때? 마음에 드나?”노스님이 말했다.“만족해. 만족하다 마다. 너무 만족해. 스님의 성의를 제대로 느꼈어. 아주 좋아. 당신 아들도 참. 당신 절반만큼만 사람 물정을 알았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노스님, 사실 난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 매번 궁지에 몰려서 하는 수 없이 죽인 거지. 분명 다른 해결 방안이 있는데 왜 손을 쓰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싸움으로는 나를 이기지 못하니까 그냥 희생당하는 거지. 참 죄악이야. 죄악.”“노스님, 이 약재들은 잘 받을게. 당신도 도행이 좀 있는 스님 같은데 내 손에 죽은 이들이 제도할 수 있도록 도경 좀 읽어줘. 당신에게 선행을 베풀 기회를 주는 거야. 나를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이만 가볼게.”이도현은 아주 얄미운 말투로 말하고는 손을 휙 저어 그의 앞의 놓인 약재들을 전부 음양탑에 거두어들였다.그러고는 표묘신공을 밟고 사람들의 앞에서 사뿐히 사라졌다.이도현이 떠나자 모든 사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황궁 안에는 오직 공작상제만 화가 나서 벌벌 떨고 있었다.그는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그는 어두운 얼굴색으로 선무상제를 쳐다보며 바닥에서 일어섰다.그는 분노가 가득 찬 눈으로 선무상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왜? 왜? 도대체 왜 그러셨습니까?”“저의 체면이 아바마마 때문에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제국의 체면도 완전히 구겨졌습니다. 저를 도와 적을 해치우는 게 싫으셨다면 오지 말았어야죠. 도대체 왜 오셨습니까?” “일이 커질까 무서우시면 공작사의 다른 선배를 보내면 됐잖습니까. 왜 오셨습니까? 저를 망신시키려고 왔습니까?”“가
공작상제는 분노에 차 자리에서 떠나버렸다! 남겨진 문무백관들은 제자리에서 눈이 휘둥그러진 채 멍하니 공작상제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의 얼굴엔 충격과 불안이 가득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 방금 들은 그 무례한 말이 정말 공작상제가 한 것이라니. 그는 폐하의 아바마마이자 선황제가 아니신가. 아들로서! 제위에 오른 후계자로서 아버지한테 꺼지라고 소리치다니! 세상을 뒤엎으려는 것인가? 그뿐만 아니라 그는 ‘고집불통 한 자는 죽여도 좋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게 자식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말인가? 얼어붙었다. 그들은 완전히 얼어버렸다! 문무백관들은 머리가 쭈뼛 서고 발끝까지 서늘한 공포가 몰려왔다. 그들의 시선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태상황을 향했고 모두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공포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태상황! 진정하십시오. 방금 폐하께서 하신 말씀은 그저 이도현 때문에 분노가 극에 달해 나온 것이지 결코 태상황을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부디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현연진은 분노로 쓰러질 듯한 태상황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하하! 참으로 못난 자식이구나! 불효자식! 공작제국의 대업은 결국 너 같은 놈의 손에서 망할 것이다!” “이런 짐승 같은 행동을 한다니. 너는 공작상제의 군왕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욕보이고 자기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니! 공작제국이 너 같은 놈에게 맡겨진다면 이 제국은 반드시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내가 어리석었다! 너 같은 놈에게 황위를 물려주다니!” “좋다! 덕이 없는 자는 상제가 될 자격이 없다. 이 자리에서 물러나라!”노스님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고함을 쳤다. 그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얼굴이 새하얘진 문무백관들을 내려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저 자식에게 전하라. 즉시 퇴위 준비를 하라고 말이다!” “공작제국의 대제 자리는 덕을 갖춘 자만이 이어받을 수 있다. 아버지를 업신여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대제를 폐위시키는 것이 공작제국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하지만 이 망나니 같은 자식이 그를 너무 화나게 했다. 그러나 많은 신하의 설득에 의해 노스님은 마음속 깊은 분노를 억제하며 아까처럼 격분하지 않았다. 마음속의 불길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만하겠다! 모두 일어나라! 그놈에게 전해라. 잘 판단하라고! 제국을 멸망의 길로 이끌고 싶지 않다면 그 젊은이를 건드리지 말라고!” “만약 그가 자기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내가 직접 그를 대제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흠! 짐승 같으니. 이 불효자식! 나는 그와 같은 자식을 두지 않았다! 짐승보다 못한 놈!” 노스님은 분노를 토하며 돌아서서 황궁을 떠났다.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궁 안의 모든 문무백관은 충격에 빠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공작제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마치 바람처럼 빠르게 퍼져 나갔다. 많은 대종파가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들었다. “세속 세계에서 온 자가 공작제국 황궁에 쳐들어가 수만 대군을 처치하고 공작제국의 무왕과 전왕을 죽였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확실한 소식인가?” “공작상제가 진국종을 울렸고 공작사의 스님이 내려왔단 말인가?” “뭐라고! 선무상제가 직접 하산하여 그 사람에게 사과했다는 말인가?” “자미각의 호법 장로가 전장에서 도망쳤고 귀령문 태상 장로가 죽임을 당했다고?” “공작상제와 그의 부황 선무상제가 결렬했다고?” “세속 세계에서 온 그자의 이름이 이도현인가? 그가...” 이 일련의 소식은 마치 바람처럼 고무계의 곳곳에 퍼져 나갔다. 고무계는 매우 광범위했지만 이 소식이 퍼져나가는 속도는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고무계의 여러 세력은 모두 공작제국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공작제국 내부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마치 국가들 간의 첩보전처럼 각국의 간첩들이 항상 몇 명씩 잠입해 있는 것이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고무계의 크고 작은 세력,
그 정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홀처럼 많은 불을 삼켜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열기를 뿜어내던 불은 점점 작아졌다. 육각형 건물에서 쏘아져 나오던 불빛도 모두 정 안으로 흡수되었다.이도현을 밀어붙이던 그 태양 그림도 점점 작아지더니 점점 정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태양대전 밖의 태양신전 사람들은 멍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태양왕과 에릭도 마찬가지였다.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그렇게 크지도 않은 정이 태양대전의 커다란 불을 다 흡수해 버렸다니. 게다가 진법의 위력까지 줄어들게 만들다니.“오마이갓... 저건 뭐야! 정이 어떻게 불을 흡수할 수가... 이럴 수가! 이게 설마 동양 전설 속의 그 성물이야?”“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오마이갓... 정말 너무 무서운 녀석이야! 정말 무서워... 도대체 뭐 하는 놈인 거야.”“동양은 대체 뭐 하는 곳이지? 염국은 참 신비로운 나라야... 이런 신비한 힘을 눈앞에서 직접 보다니...”“전하, 이제 어떡하죠? 이러다가는 태양대전이 무너질 겁니다. 태양대전이 무너지면 끝장입니다. 얼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엥겔스 마법사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얘기했다.“어떡해! 이제 어떡해! 누가 좀 얘기해 봐. 저 동양인 손에 든 물건이 대체 뭔지! 왜 태양대전의 불을 흡수할 수 있는 건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거야! 설마... 정말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하는 거야? 염국의 그 신화들이 정말 실제 이야기인 거야?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태양왕은 정을 들고 있는 이도현의 행동에 겁을 먹고 말았다. 태양왕은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물건이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그마한 정이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다니. 정말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 정은 결국 블랙홀처럼 태양대전의 모든 불을 다 삼켜버렸다. 그러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전하, 지금은 놀랄 때가 아닙니다. 얼른 수단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대전이 파괴되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넌 내가 이 태양대전 안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해? 왜 그렇게 자신만만해? 이 태양대전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해?”이도현이 차갑게 웃으면서 물었다.“오마이갓. 지금 이 멍청한 원숭이가 뭐라는 거야.”태양왕이 과장한 액션으로 웃으면서 말했다.“벌레만도 못한 주제에 우리 태양신전의 태양대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려는 거야? 오마이갓. 농담도 참. 엥겔스 마법사, 들었어? 이건 내가 올해 들은 가장 웃긴 농담이야. 하하하.”태양왕은 웃으면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그 표정과 동작은 절대 연기가 아니었다.“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건 제가 들은 가장 웃긴 농담입니다.”엥겔스 마법사가 옆에서 거들었다. 다만 말투는 약간 어쩔 수 없이 대답하듯 가식적이었다.왜냐하면 엥겔스는 진법에 대해서는 염국인들이 더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진법은 애초에 염국에서 시작되기도 했고 실력과 이해 또한 염국이 가장 뛰어나니까 말이다.그리고 이 태양대전도 사실은 아주 오래전 염국인이 만든 진법이었다.엥겔스 마법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염국인인 이도현이 그들보다 진법에 능통하여 태양대전을 풀어버릴까 봐서였다. 태양대전이 무너지면 태양신전은 꼼짝없이 죽을 것이다.하지만 이내 엥겔스 마법사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 일어났다.태양대전 속의 이도현이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그러면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내가 너희들이 아끼는 태양대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말을 마친 이도현은 정을 하나 꺼내 들었다. 정은 염국인들의 성물이었다. 왜냐하면 염국인들의 이해에 따르면, 정에는 자연의 섭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염국에는 정과 얽힌 신화들도 많았다.이도현은 음양탑에서 이 정을 얻은 후 딱 한 번 사용했다. 그것도 연단을 하기 위해서 쓴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을 받을 때, 이도현은 이 정의 특점을 기억했었다. 이것은 전 세계의 어떠한 불도 집어삼키는 정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태양대전의 불을 삼키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이... 이
손가람은 진법에 갇힌 이도현을 보면서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밖에 앉은 손가람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아까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어때? 그 자식이 진법에 갇혔나?”손가람이 화를 풀고 있을 때 태양왕이 태양신전의 장로들을 데리고 도착했다.“태양왕 전하를 뵙습니다. 이도현은 이미 진법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손가람이 공경하게 얘기했다.“하하하, 잘됐네. 수고했어, 손 장로. 이 공은 내가 잊지 않으리. 누구든지 이 태양진법 안에 갇히게 되면 저절로 고분고분해질 거야. 하하하.”태양왕이 흥분해서 얘기했다.“존경하는 태양왕 전하. 축하드립니다!”에릭이 얼른 아부하면서 입을 열었다.“하하하, 좋아. 얼른 가서 다른 장로와 마법사들에게 알려라. 진법을 잘 제어하라고. 이 동양인에게 살 희망조차 주지 말라고 말이야!”태양왕이 으스대면서 얘기했다.“알겠습니다, 존경하는 태양왕 전하. 충신인 이 에릭이 지금 당장 명령을 전하겠습니다.”에릭은 태양왕의 개처럼 바로 시키는 일을 하러 갔다.개노릇도 오래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숙련된다. 에릭은 태양왕의 개로 오랜 시간 일하며 이미 이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태양왕은 불에 휩싸인 이도현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이도현, 나는 태양신전의 왕이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유감이군. 너를 이곳에 가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널 해치고 싶은 건 아니야. 그저 너한테 얘기할 게 있어서 그래. 만약 네가 가만히 있어 준다면 너를 꺼내주지.”진법 안의 이도현은 날아오는 공격들을 피하면서 물었다.“무슨 얘기지? 한 번 들어나 보자.”“그래, 역시 시원시원해서 좋아. 나는 너처럼 단도직입적인 사람이 좋아. 그러니 나도 솔직하게 얘기하겠어. 칠색 동백꽃을 내놔. 그리고 곤륜옥에서 얻은 모든 물건을 다 나한테 내놔! 네가 모든 비책과 보물들을 꺼내놓는다면, 그리고 곤윤옥의 신비한 힘도 꺼내놓는다면 널 살려주도록 하지. 어때?”태양왕이 큰 소리로 물었다.진법 안의 이도현은 불빛을 상대하면서 소리쳤다.“
손가람은 미간을 찌푸리고 진중한 시선으로 이도현을 쳐다보았다. 그는 눈앞의 이도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이도현은 모든 것을 다 알면서 자진하여 태양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이걸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이도현은 개의치 않고 태양대전 중의 선학신침으로 걸어갔다. 태양대전이 무슨 진법인지 알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절대적인 실력 앞에서 다른 술수들은 소용없으니까 말이다.테이블 앞에 온 이도현이 바로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붉은색의 선학신침이 놓여있었다. 태양의 빛을 받은 선학신침은 익숙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이도현이 손을 휘저어 선학신침을 손에 넣었다.그리고 그가 선학신침을 갖게 된 그 순간, 육각형 건물의 각 위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이윽고 그곳에서 불같은 빛이 하늘로 치솟더니 공중에서 커다란 구 모양의 불을 만들어냈다.그 불은 마치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뜨거웠다.불은 그치지 않고 점점 커갔고 너무 뜨겁고 밝아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새 육각형의 건물은 이 불로 뒤덮여버렸다. 이도현도 그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용암 같은 비가 하늘에서 내려와 태양 그림 위에 쏟아졌다. 이도현은 빠르게 그 용암들을 다 피해버렸다.용암을 맞은 태양 그림은 갑자기 각성한 것처럼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힘까지 흡수해 더욱 많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어느덧 건물뿐만이 아니라 건물 주변의 바닥도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태양대전은 이 불로 완벽히 감싸져 있었다.쿵.태양 그림에서 불빛이 쏘아 나오더니 이도현을 공격했다.이도현은 또 빠르게 몸을 놀려 피했다. 발밑은 이미 불바다가 되어 이도현은 공중에 떠 있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태양대전은 이도현에게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제단에서 또 불빛이 쏘아져 나와 이도현을 공격했다.“젠장...”이도현은 놀라서 욕설을 뱉으며 또 공격을 피했다.하
그리고 태양 그림 중앙에는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상자 하나가 있었다.그 상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이도현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이도현은 바로 알게 되었다. 이건 선학신침의 기운이라고 말이다. 이도현은 선학신침의 기운을 잘 알고 있었다.드디어 찾았구나!이도현은 속으로 기뻐했다.손가람이 이도현에게 태양신전에 선학신침이 있다고 했을 때, 이도현은 믿지 않았다. 그저 본인을 유인해 가려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태양신전에 진짜 선학신침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태양신전에서 이도현에게 던진 미끼가 진짜 미끼여서 다행이었다.함정을 만드는 데 있어서 동양인은, 그중에서도 특히 염국인들은 세상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강했다. 염국인이 만든 함정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으면서 덫에 걸려들 것이다.하지만 그것도 예전의 일이 되었다.이제는 서양인들이 기술 면에서 발달하여 염국인들을 넘어서게 되었다.그 당시의 염국에는 부패한 관료들이 많았다. 그리고 국왕이 백성을 통치하기 위해 폐관 쇄국을 실행하며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했고 발전을 싫어했다. 그래서 어느덧 이런 것들은 미신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도현은 그런 사람들이 웃겼다. 폐관을 실행하여 외부의 것은 배우지 않으려 하지만 또 선조들이 남겨준 지혜는 미신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던지, 함정과 책략 면에서는 동양인을, 특히 염국인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 보면 서양에서 쓰는 무기들도 원래는 다 동양에서 만든 것이었다.물론 서양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니지만, 책략과 함정 면에서는 동양인을 따라올 수 없었다.“이도현 씨, 아마 이도현 씨도 뭔가를 느꼈을 겁니다. 제가 이도현 씨를 속인 게 아니에요!”이도현의 표정을 본 손가람이 웃으면서 얘기했다.“속인 게 아닌지 맞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거예요. 원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못 참겠네요. 이런 비열한 수는 세
“도착입니다. 이도현 씨, 이 앞이 바로 태양신전의 대문입니다.”손가람은 자만하는 이도현을 못 봐줄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이제 태양신전에 거의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손가람은 인내심이 다 해 이도현에게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른다.“벌써 도착이라니. 그러면 길을 안내해요. 나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것도 다 꺼내고 덤비세요. 굳이 숨기면서 연기할 필요 없어요.”이도현이 직설적으로 얘기했다.“이도현 씨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태양신전은 그저 이도현 씨와 친구가 되고 싶은 거랍니다. 그래서 이번에 발견한 선학신침을 이도현 씨에게 드리려는 것이고요. 그러니 이렇게 자꾸만 태양신전을 모독하거나 깔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손가람이 약간 화가 난 것처럼 얘기했다.“하하하, 그래요? 연기 좀 그만해요. 힘들지도 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당신은 나한테 화를 7번 냈고 15번이나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 감정들을 다 억눌렀죠. 불편하지도 않아요?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당신은 도합 21번이나 참았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나한테 손을 댔거나 화병으로 죽었을 겁니다.”이도현은 손가람의 연기에 같이 놀아나 줄 생각이 없는 듯 바로 얘기했다.손가람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도현을 쳐다보았다.손가람은 이도현이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 몰랐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도현은 손가람의 호흡, 느껴지는 기운을 다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소름이 돋아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손가람은 본인이 오는 길에 화를 몇 번 냈는지, 몇 번이나 살기를 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도현은 그걸 모두 알아차리고 기억했다.“하하하, 이도현 씨, 오해입니다. 저는 이도현 씨에게 그런 감정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농담도 참. 제가 만약 분노하거나 살기를 가졌다면 그건 이도현 씨를 향한 감정이 아니라 이도현 씨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향한 감정일 겁니다.
“설마 태양신전에 잡혀가는 사람인가?”“그럴 리가! 저 이도현이라는 사람, 꽤 대단한 사람 같던데. 손가람 혼자서 이도현을 이길 순 없을 거야!”“그건 모르는 일이지. 손가람도 쉬운 사람은 아니야.”한 사람이 얘기했다.“얼른 소문을 내. 그 동양인이 태양신전의 사람과 같이 태양신전으로 가고 있다고.”“어서... 가서...”...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이도현을 먹잇감 보듯이 지켜보았다. 하지만 손가람의 뒤를 따르는 이도현을 보면서, 아무도 이도현을 건드리지 못했다.태양신전과 척을 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지금 이도현을 건드리는 것은 태양신전의 지위에 도전하는 것과 같았다.태양신전과 사탄 지옥 조직은 성지의 양대세력이다. 두 조직이 양대세력으로 불리는 것은 다른 세력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태양신전의 사람들이 이도현을 데리고 가니 다른 사람들은 뭐라 할 수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태양신전으로 향하는 길, 이도현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도현을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이도현을 훑어보고 있었다.이도현은 손가람이 속한 조직이 성지에서 영향력이 있는 조직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도현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이도현은 지금 이 상황이 나름 만족스러웠다. 손가람 덕분에 불필요한 걱정을 덜었기 때문이다.“이도현 씨! 바로 앞이 태양신전입니다. 곧 도착할 수 있어요.”손가람이 뒤를 돌아 이도현을 보면서 얘기했다.손가람의 말투에는 오만함과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도현은 손가람이 쓸데없이 나댄다고 생각했다.“왜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는 거죠?”이도현이 싸늘한 말투로 물으면서 불만을 드러냈다.손가람은 이도현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줄 몰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이어 나갔다.“이도현 씨, 오해입니다. 우리 태양신전은 성지에서 가히 1등이라고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
“선학신침?”이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손가람이 선학신침을 알고 있을 줄 몰랐다.“그렇습니다! 바로 선학신침입니다!”손가람은 이도현의 표정이 변한 것을 보고 환한 웃음을 드러냈다.“저는 이도현 씨가 태허산의 제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태허산은 의술에 능하여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죠. 태허산은 또 아주 대단한 침술을 갖고 있는데, 그게 바로 대대로 내려오는 선학신침입니다! 선학신침은 몇 년 동안 보이지 않아 사라진 줄로만 알았지만 마침 태양신전에서 우연히 선학신침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도현 씨가 성지에 왔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겁니다. 이도현 씨와 함께 태양신전에 가서 이 신침이 정말 선학신침인지 알아보려고 말입니다.”손가람은 아주 조리 정연하게 얘기했다.사실 손가람도, 이도현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선학신침을 이용해 이도현을 유인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그런 더러운 본질을 그럴싸한 말로 감싸니 꽤 듣기 좋았다.“그러면 앞장서요.”이도현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길을 떠났다.이도현이 성지에 온 원인이 바로 선학신침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이제 선학신침이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상대방이 이도현을 위해 함정을 짜놓았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하하하, 역시 이도현 씨는 말이 잘 통하는군요. 태허산의 제자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쇼. 전 그저 이도현 씨와 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손가람은 반복해서 얘기하며 강조했다.“말 다 했습니까? 얼른 앞장서요!”이도현이 귀찮다는 듯 얘기했다.손가람은 그저 입술을 비죽 내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동양인, 특히 염국인들은 예의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손가람은 예의가 없는 이도현이 불쾌하게 느껴졌다.억지로 가식적인 미소를 짓느라 어느새 얼굴 근육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할 줄 아는 아부란 아부는 다 했지만 이도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그런 이도현을 보면서 손
손 장로는 꽤 오래전에 이곳에 왔었다. 지금은 6, 70대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살았다.“당신은 누굽니까.”이도현이 차갑게 물었다.“저는 손가람이라고 합니다. 이도현 씨를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네요.”손 장로가 대답했다.“손가락?”이도현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뭔 이런 이상한 이름이 다 있지?’“하하하, 역시 농담도 재밌군요. 제 이름은 손가람입니다. 손 씨에 가자, 람자를 쓰고 있죠.”손가람이 해명했다.하지만 속으로는 예의 없는 이도현을 욕하고 있었다.‘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노인을 상대로 이름으로 놀리는 게 재미있나? 누가 미쳤다고 이름을 손가락이라고 지어! 정말 어이없군.’“당신도 동양인이네요?”이도현이 물었다.“네. 맞습니다. 전 연경시 출신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죠. 지금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이도현 씨 같은 훌륭한 고수를 만나서 영광입니다. 젊은 나이에 이런 기능을 익혔으니 정말 자랑스럽네요. 동방에서는 천년에 한 번씩 천재가 나온다고 하더니, 그게 바로 이도현 씨인 것 같습니다!”손가람은 이도현을 칭찬하면서 얘기했다. 원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손가람은 온화한 얼굴로 웃으면서 이도현과 얘기했다.하지만 이도현한테는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이도현은 그저 차갑게 손가람에게 대답했다.“쓸데없는 말이 많네.”“하하하, 이도현 씨는 말이 적은 편인가 봅니다. 다 같은 출신 사람으로서 타지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저를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손가람은 가볍게 웃으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다.“난 당신이랑 친하지 않은데 왜 굳이 그래야 하죠? 이곳에 온 목적을 얘기해 봐요!”이도현은 체면을 봐주지 않고 밀어붙였다.왜냐하면 이 시점에 나타난 낯선 사람은 의심스러웠으니까 말이다. 이도현은 손가람에게 불순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곳은 성지다. 사람 사이의 불신이 가득한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