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먼저 볼일 보세요. 제가 이선생님을 모시고 아버지 상태를 좀 볼게요.” 조강이 말하며 이도현을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이도현은 냉기가 온몸을 감싸는 기이한 기운을 느꼈다. 방 전체가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방 안의 침대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보았다. 노인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아 보였고 얼굴 전체가 검게 그을린 듯 했으며 눈은 초점 없이 창밖을 응시하며 생기가 전혀 없었다. 노인은 백발이 성성하며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이 노인의 모습은 마치 사람이 아닌 듯한 기괴한 느낌을 풍겼다. 노인에게 다가가자 이도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노인의 몸에는 여러 기운이 얽혀 있었다. 원한의 기운, 죽음의 기운, 살기와 음흉한 나쁜 기운이 섞여 있었다. 그는 내력을 눈에 집중해 보았다. 노인의 몸은 이 사악한 기운들에 둘러싸여 있어 그의 생명력과 양기마저 심하게 억눌려 있었다. ‘이건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잖아!’ 이도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조강아, 저자는 누구냐? 왜 우리 집에 왔어?” 노인은 언짢은 기색을 띠며 차갑게 물었다. “아버지, 이분은 제가 모신 이선생님이에요. 아버지 병을 치료해 드리려고요.” “내가 무슨 병에 걸렸다고 그래? 병 없어. 이틀만 누워 있으면 다 나아.” 노인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이틀 누워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요? 더 누워 있다가는 장례식 준비를 해야 할 걸요?” 이도현이 차갑게 말했다. “이 자식이, 날 저주해?” 노인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저주라니요? 제가 저주할 필요도 없죠.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것을 만났는지 본인이 더 잘 알잖아요. 이틀만 누워 있으면 괜찮아진다고요? 혹시라도 검은 당나귀 발굽 두 개 쥐고 있으면 염라대왕도 어쩌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이도현은 비꼬듯 말했다. 이도현은 노인이 품속에 두 개의 당나귀 발굽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조강은 미안한 듯 이도현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다른 의사도 불렀는지 몰랐어요. 정말 죄송해요.” 이도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당신들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른 훌륭한 분을 초청했으니 저는 빠지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죠.” 이제 이도현의 마음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살벌했던 시절이었다면 오늘 같은 상황에서 말은 안 했을지라도 이 가족의 일은 절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더라도 그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평온하게 괜찮다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였다면 살려주지는 못하더라도 이도현의 손바닥 한 대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도현은 마음에 아무런 동요 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방을 나섰다. 발소리가 들리자 그는 순순히 조강을 따라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예전 같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이렇게까지 굽히며 참았을 리가 없었다. 역시나 마음가짐이 변한 덕분이었다. 많은 것을 겪고 나니 이해할 줄도 알게 된 것이다. 이도현이 방으로 들어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조강의 장모가 현관문을 열고 매우 공손하게 신의를 맞이했다. “장신의님,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조강아, 빨리 장신의님께 차를 대접해 드려라. 장신의님께서 좀 쉬실 수 있도록 해.” 장모의 목소리에는 극진한 환대가 담겨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먼저 환자부터 보겠습니다.” 장신의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도현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장모가 초대한 대단한 인물이 누군가 했더니 자신의 제자인 장신의였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스승인 자신을 내쫓아놓고 제자를 불러 병을 진찰하다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조강의 장모는 아부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사람들이 너를 신의라고 부른다지만 이렇게 허술한 태도로 어떻게 신의라는 칭호를 감히 자처할 수 있느냐?” 이도현은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호통을 쳤다. 그의 꾸짖는 말에 조강와 장모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특히 장모는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했다. 장지민은 그녀가 온갖 노력을 들여 완성에서 어렵게 모셔 온 신의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기분이 상해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친구들에게 무슨 낯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스승을 모욕하는 말을 듣고 장지민은 이도현의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누구야! 당장 이리 나오지 못해?” 장지민이 문밖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이 건방진 자를 혼쭐내 주려고 했지만 문밖에 나타난 이도현을 보자마자 멍해졌다. 순간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어, 어라?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감히 당장 나오라고 했다고? 맙소사!’ 장지민은 나이가 꽤 많은데도 거의 기절할 뻔했다. 한의학에서는 스승을 부모처럼 존경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그는 방금 자기 스승에게 당장 나오라고 말한 셈이었다. 이건 마치 자기 아버지에게 늙은이, 당장 이리 나오라고 외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무사할 수 있겠는가? “당장 나오라고? 참으로 위세가 대단하구나, 장신의님. 나와 보았으니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이도현은 냉담한 얼굴로 장지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 스승님...” 장지민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 자리에서 곧장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 조강과 장모는 그저 망연자실한 채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이 든 장지민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도현이 장지민의 스승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두 사람의 나이 차이로 보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승님이라니... 장신의님, 제가 감히 당신의 스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얼른
연장자인 장지민은 이도현이라는 어린 녀석에게 혼이 나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스승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장지민은 공손하게 말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이 환자를 살리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나가서 황포, 붓, 그리고 주사를 가져오세요!”이도현이 아까 자신을 쫓아냈던 장모를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아까 장지민이 이도현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을 본 장모는 이제서야 이도현이야말로 진짜 고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남편의 목숨이 이도현의 손에 달려있으니 뺨을 맞는 일이 있더라도 참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포, 붓, 주사를 들고 조강이 방으로 들어왔다. 이들이 도굴꾼이라 그런지 이런 물건들은 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나가세요. 내가 들어오라고 하기 전에는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 제 말을 따르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면, 절대 제 탓하지 마세요.”이도현은 냉정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이도현 선생님, 선생님이 지시하지 않는 한 절대 방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이도현의 차가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조강은 화내지 않고 공손하게 말한 뒤 방에서 나갔다.“넌 옆에서 지켜봐. 오늘 내가 너에게 한의학이 얼마나 깊이 있는 학문인지 깨닫게 해주마. 지금 네가 아는 것들은 겨우 피상적인 지식일 뿐이다. 앞으로도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단순한 추측으로 처방을 내리는 일이 있다면 다시는 나에게 의술을 배웠다고 말하지 마라! 비록 내가 너에게 직접 의술을 가르치진 않았지만 내가 준 필기록들만으로도 평생 공부할 수 있을 거다. 네가 나를 스승이라 부를 자격은 있다.”이도현은 주사를 만들며 엄숙하게 말했다.한쪽에 서 있던 장지민은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처럼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이도현의 교육이 끝난 후 장지민은 공손하게 말했다.“스승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비
금색 부적의 허상이 번쩍이더니 곧바로 사라지며 조강의 장인 몸속으로 파고들었다.물론, 이 허상은 오직 이도현만이 볼 수 있었다.“이 선생님, 이게 무슨 수법이죠? 뭔가 효과가 있는 것 같네요. 전보다 그렇게 춥진 않은 느낌이에요!”장인은 놀란 눈으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별거 아닙니다. 몇 장의 부적으로 몸에 있는 살기와 악기, 원한을 몰아낸 것뿐입니다. 당신들은 아무 이유 없이 남의 집에 쳐들어가서 물건을 가져갔는데 그게 당신이라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원한이 없겠냐고요? 그러니까 욕심부리지 마세요. 이번엔 살기와 부딪힌 것에 불과했지만 다음번엔 당신이 정말 돌이킬수 없는 일을 겪게되면 그때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이도현은 다시 부적 한 장을 집어 들고 방금과 같은 동작을 취했다. 두 번의 부적을 사용 후, 장인은 상태가 훨씬 좋아진 것을 느꼈고 그의 몸은 다시 온기를 느끼기 시작했으며 변화된 몸 상태를 느끼며 말했다.“욕심이라고요? 세상에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욕망 앞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옛말에 천 냥 있으면 만 냥을 바라고 황제가 되면 신선이 되고 싶다는 말이 있잖아요. 누구도 욕망을 완전히 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 일을 하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번 생에 쓸 만큼 돈을 벌면 그만두자고요. 하지만 사람이 무언가를 얻을수록 욕망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집이 생기면 차가 갖고 싶고 차를 가지면 더 큰 집과 더 좋은 차, 더 많은 돈을 원하게 되죠. 그렇게 되면 매일 스스로에게 말하게 됩니다. 큰 집을 사면 그만두자고요. 그런데 큰 집을 사고 나면 또 좋은 차를 사면 그만두자고 하게 되면서 끝이 없는 겁니다. 욕망 때문에 결코 만족할 수 없으니까요.”이도현은 그의 말을 듣고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당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정말 모르세요? 당신 딸과 외손자가 죽을 뻔한 거 몰라요? 정말 이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합니까?”이 말을 들은 장인은 순간 놀라며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긴장한
이도현은 갑자기 화가 났다. 집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무슨 일이라고?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말해!”말하는 사이 이도현의 몸에서 저절로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스승님, 먼저 진정하세요! 사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날 사모님을 찾아뵀을 때 사모님이 등자월 씨랑 나눈 대화를 들었어요!”장지민은 이도현의 반응에 겁을 먹고 말했다.“뭐라고 했는데?”“다섯번째 선배님이 억지로 결혼하게 될 거라면서 무슨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어요. 사모님께서 이 일을 스승님께 말해야 할지 고민 중이셨어요.”“뭐라고? 뭐라고 했다고?”순간, 이도현의 몸에서 살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마치 맹수처럼 흉포한 기운을 풍겼다.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분위기에 장지민은 저절로 몸을 떨었다.이도현 역시 자신의 몸속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분노가 폭발하면서 마음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그는 곧바로 자신의 상황을 자각하고 몸을 이완하며 내공으로 억누르며 정신을 차렸다.그는 머리가 맑아진 후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 일어난 일이냐?”이도현의 차가운 기운이 가라앉자 장지민은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바로 지난 이틀 사이의 일이에요. 저는 스승님이 이미 알고 계신 줄 알았어요!”“흥! 내가 뭘 알고 있었다고? 이렇게 중요한 일을 숨기다니, 다들 무슨 생각인 거야! 가자, 완성으로 돌아간다!”이도현은 즉시 전화를 들어 노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잠시 일이 생겨서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울 것 같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돌아갈게요.”노문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편히 다녀오라고 말했고 월급도 그대로 지급하겠으니 빨리 돌아오라고 말했다.노문호의 목소리에서는 이미 이도현을 가족처럼 여기며 한의원의 한 식구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느껴졌다.그는 언젠가 이도현이 떠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전화를 끊은 이도현은 곧바로 신영성존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올 헬기
“꺼져! 이 계집애야! 도련님은 내꺼야! 꿈속에서도 내꺼라고... 도련님... 오빠...”...방 안에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하인들이 가득했는데 그녀들은 원래 잠들어 있다가 헬기 소리에 모두 깨어났다.하녀들은 이도현을 보자마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각자 제멋대로 행동하며 가슴과 목을 만지며 추태를 부렸다. 이 상황은 너무나도 황당했다.이도현은 이미 육감을 열어둔 상태라 이들이 하는 행동과 말들이 모두 똑똑히 들렸다. 그는 그저 황당하고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마치 늑대 무리가 끊임없이 자신을 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도현 오빠... 돌아오셨군요!”거실에 막 도착했을 때 한지음이 잠옷 차림으로 나왔다. 그녀는 이도현을 보자마자 쏟아지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이도현의 품에 안겼다.“내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너희는 나한테 이 사실을 계속 숨기려 했냐? 다섯번째 선배가 강제로 결혼 당하게 생겼는데 이렇게 큰일을 나한테 숨기다니!”이도현은 한지음을 안은 채 불만스럽게 말했다.“도현 오빠, 미안해요! 저도 말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세번째 선배가 오빠께서 수련 중이니까 이 일은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본인들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오빠의 심경에 영향을 주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봐 말하지 말라더라고요.”한지음은 죄책감을 느낀 듯 고개를 숙이며 어린아이처럼 이도현 앞에서 작아졌다. “말도 안 돼!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다섯번째 선배가 강제로 결혼 당하게 생겼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 내가 가지 않으면, 선배를 구해내지 않으면 내가 수련하며 마음을 단련한 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 셈이냐! 지금 선배들은 어디 있지? 다섯번째 선배에게 간 거냐?” 이도현은 화를 내며 물었다.“도현 오빠, 제발 화 풀어요. 이게 다 제 잘못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요. 세번째 선배, 여덟번째 선배, 아홉번째 선배는 이미 떠났고 열번째 선배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본 이도현은 갑작스러운 진수성찬에 약간의 소화불량을 느꼈다. 아침에 등자월의 이불 속에서 겨우 빠져나왔을 때 그는 다리가 조금 후들거렸다.어쩔 수 없었다. 겨우 집에 한 번 온 만큼 집에 있는 두 여인을 한꺼번에 만족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여인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실컷 즐기지 않으면 다음번에 언제 다시 이도현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두 여인에게 이도현의 앞으로 1년 동안의 수확을 미리 바치게 되었다. 이도현의 1년 치 수확물은 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이 두 여인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참으로 비통했다.텅 빈 곡주머니를 질질 끌며 그는 다리가 풀린 채로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출발했다.바닥에서 잠옷을 입은 두 여인은 멀어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어젯밤의 추억 덕분에 그를 떠나보내기 아쉬워 더 큰 그리움이 밀려왔다....한편, 고무계의 한 성채에 있는 거대한 저택의 정문에는 기부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곳은 바로 고무계의 기씨 가문이었다.기씨 가문은 이 마을에서 손꼽히는 가문 중 하나로 많은 고수들을 보유하고 있어 이삼급 종파를 능가하는 실력을 자랑했다.마을 서쪽 대부분의 땅을 차지한 이 가문은 수십 리에 걸친 영역을 소유하고 있었다. 비록 가문의 주거지였지만 규모나 체계 면에서는 파벌과 다를 바가 없었다.이 저택의 한 누각에 염국에서 명성을 떨치고 여러 고수를 통솔하는 용팀의 팀장이자 네 명의 최고 고수인 사대용왕을 거느린 인물, 기화영이 있었다.기화영은 염국에서 가장 신비롭고 강력한 권력을 가진 특수 조직의 팀장으로 이름을 떨쳤다.그녀는 이미 세속의 옷을 벗어 던지고 고풍스러운 한복을 입고 있었다.밝은 황금빛의 나풀거리는 치마와 고전적인 장식이 더해지자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욱 돋보였다.원래도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그녀는 지금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맑고 순수해 보였고 세속의 때가 묻지 않
이도현은 형수가 차린 밥상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 문제라도 생길까 봐 다급하게 말했다.“형수, 저 먹고 왔어요! 번거롭게 차리지 않으셔도 돼요!”이도현은 말을 마치고 급히 노문호에게 눈길을 돌렸다.그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수유 중인 형수의 가슴이 너무도 풍만하여 이도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기세는 이도현이 침을 놓을 때보다 더 매서웠다.“노 선생, 그동안 잘 계셨나요? 집안에도 별일 없으시죠?”이도현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그럼요, 무탈합니다! 그저 한의원이 너무 바쁠 따름이죠. 게다가 도현 씨의 명성이 자자하여 한동안 많은 사람이 도현 씨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가 없다니까 그냥 돌아갔어요.”“그래도 우리 한의원이 이제 많이 유명해져서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어요. 도현 씨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 늙은 몸이 곧 쓰러졌을 거예요.”“좋은 소식이네요. 이건 노 선생의 의술이 뛰어나기에 백성들이 다 믿고 맡긴다는 거잖아요.”이도현이 웃으며 대답했다.“에잇! 놀리지 말아요! 저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도현 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가서 좀 쉬다가 일하러 와요! 저는 계속 일해야 하니까 이만 가볼게요. 도현 씨가 돌아온 걸 축하할 겸 우리 저녁에 영식이네 집에 모여서 밥 먹어요!”“그... 괜찮을까요? 또 형수를 귀찮게 해야 하는데.”솔직히 말해서, 이도현은 형수 집에 가서 밥 먹고 싶지 않았다. 형수의 요리가 맛없는 것도 아니고, 꽃무늬 이불이 푹신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형수가 무서울 뿐이었다.“귀찮을 게 뭐 있어요. 도현 씨는 아이의 양아버지이고, 한집안 식구끼리 이런 말을 하면 섭섭하죠! 계속 그런 말을 하면 저희를 무시하는 거로 여길 거예요!”이도현이 거절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형수가 다급하게 말했다.이도현은 형수가 다급하게 그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고 더는 거절하지 못했다. 더 거절하면 그가 찔리는 것이 있어서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도현 씨, 현진
“이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내가 방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지. 이 젊은이는 부귀의 상이고 걸음걸이도 씩씩한 데다가 온몸에서 은은한 보라색 빛을 반짝이고 있어. 딱 봐도 부귀영화를 누릴 상이지, 절대 그렇게 소질 없는 사람이 아니야! 이제야 믿겠어? 내 말이 맞는다는 거!”제일 먼저 반응한 할아버지께서 나서서 이도현을 가리키며 듣기 좋은 단어만 골라서 칭찬했다.그러나 이도현은 계속 입을 삐죽거렸다. 바로 이 할아버지께서 조금 전까지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았는데, 지금에 와서 말을 바꾸다니 참으로 낯가죽이 두꺼운 사람이었다.“그러니까! 나도 그랬지. 이 젊은이는 딱 봐도 복이 있고 부귀한 사람이라고. 근데 너희는 귓등으로 듣기만 했어!”다른 사람도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이신의, 만나서 반갑네. 난 이춘식이야. 우리 같은 이씨로서 오백 년 전에 한 가족이었을 거야. 넌 정말 우리 이씨 가문에 큰 체면을 세워줬어!”“이신의, 난 김두만이라 하고 나의 외할아버지도 성이 이씨야. 우리도 한 집안이라고 볼 수 있어!”“이신의, 나도 이씨 성을 가진 외할아버지가 있는데, 자네와 똑같이 생겼어!”수염이 새하얗고 이가 싹 빠진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이도현은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연세가 이렇게 많으신 분이라면 이분의 외할아버지는 진작에 돌아가셨을 건데, 이렇게 나와 친한 척한다고! 자기 외할아버지더러 날 저승으로 데려가라는 거야 뭐야!’ “퉤! 뻔뻔스럽기는! 고아 주제에 어디 감히 외할아버지가 있다고 이신의와 친한 척하려고 해! 우리 어머니의 외할아버지야말로 이씨야!”뻔뻔한 사람이 또 한 명 나타났다.이도현은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이 어르신들이 너무 무서웠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할뿐더러 그럴듯하게 말하여 진짜인 줄 알았다. 이것도 모종의 경지라고 볼 수 있는 정도였다.이도현은 황급히 한의원 안으로 도망쳤고 그제야 고요함을 되찾았다.“도현 씨, 돌아왔군요! 하하하... 이 자식, 왜 이제야 돌아왔
이도현은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쭈뼛쭈뼛하게 내디딘 걸음을 도로 거두었다. 그는 성급 고수보다 눈앞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이도현이 자신이 이곳의 의사라고 설명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노영식이 한 할머니를 부축하면서 걸어 나왔다.“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만 떠드세요! 다 진료해드릴 테니까 새치기하지 말고 줄 서서 기다리세요.”“신의 양반, 우리가 진료 보는 데 방해하려고 떠들어댄 것이 아니라, 반반하게 생긴 도시 사람이 염치없이 새치기하려고 해! 규칙을 어기려고 해!”한 할아버지가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도현은 이 말을 듣고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이런! 내가 언제 염치없이 굴었어?’“새치기! 누가 새치기했어요?”노영식이 물었다.“이 사람이요!”“바로 저 젊은이예요. 도덕심이라고는 일도 없어요!”“맞아요! 염치가 전혀 없어요! 우리가 온 오전 줄을 서도 새치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저 사람은 오자마자 새치기했어요. 그러고도 도시 사람이라고! 퉤!”또 한차례의 비난을 받은 이도현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그냥 들어가서 일하려는 것뿐인데,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잠깐 사이에 벌써 세 번이나 욕을 먹었어. 게다가 한의원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 설사 내가 진짜 진료받으러 왔다고 해도, 새치기하면 어때서? 한번 욕하면 그만이지, 끝없이 욕할 줄이야. 시골 사람이 제일 순박하다고 들었건만 왜 이 어르신들은 이렇게 다르지?’“이도현 씨... 돌아왔어요...”노영식은 이도현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기뻐하며 그에게 달려갔다.이도현은 손을 뻗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는 오늘 운이 안 좋았다.“언제 돌아온 거예요? 미리 전화하지 그랬어요. 저희가 알았으면 마중하러 가는 건데!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삼촌이 이도현 씨를 오랫동안 그렸어요... 그리고 저의 아내도 거의 매일 밤 이도현 씨 얘기를 했어요. 도현 씨가 돌아오기만 하면 아이의 양아버지로 모시겠다고!”노영식은 감
조금 거친 섬섬옥수로 능수능란하게 계산기를 눌렀는데 그런 진지한 모습이 여자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듯했다.그 여자는 다름 아닌 노영식의 아내, 이도현의 형수였다.한의원이 확실히 아주 바빠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낳은 지 몇 달도 안 되는 형수가 이렇게 나와서 일을 도울 리 없었다.그러나 형수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한 것을 보아하니 그녀가 이 일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긴 한의원에서 일하면 한 달에 오십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고 게다가 지금 월급이 올랐을지도 모른다. 이건 농촌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일자리였다.그리고 지금 부부가 모두 한의원에서 일하기에 한 달에 최소 백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무조건 농촌에서 고소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더군다나 부부가 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가정을 돌볼 수 있었다. 일도 지체하지 않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이 일자리는 그야말로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것 못지않았다.이도현은 이 부부가 하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잔뜩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질투에 눈이 멀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이 부부도 충분히 빡세게 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형수는 아이를 낳은 지 겨우 몇 달밖에 안 되는데 벌써 일하러 나왔다.백성들은 역시나 응석받이로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1년은 쉬었을 것이었다.물론 도시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좋으니 휴식을 많이 취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거 아니겠어?이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의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겨우 두 발짝 걸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웠다.“에잇! 거기! 앞에 총각! 너 뭐 하는 거야! 양심이 있다면 뒤에 가서 줄을 서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 서고 있는 게 안 보이냐? 빨리 가서 줄 서!”“맞아! 맞아! 뒤에 가서 줄 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는 거 못 봤냐! 어디서 새치기야! 뒤에 가서 얌전히 줄 서! 참! 요
이도현은 이 가족의 감사 인사를 마다하고는 남자에게 앞으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앙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어떤 일이든 도가 지나치면 본연의 가치를 잃기도 하는데 좋은 마음에서 출발한 일도 나쁜 일로 만들 수 있었다.특히 이번 일처럼, 만일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은 신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것이었다.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남자는 사람을 불러 아내와 아이를 들것에 싣고 산에서 내려왔다. 떠날 때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절의 스님을 쳐다보았다.그 표정은 마치 앞으로는 이곳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고, 돈을 어디에 쓰든 절대 너희 같은 양심 없는 가짜 스님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이도현도 떠나갔다. 그는 재물을 탐내고 하마터면 사람까지 죽일 뻔한 이곳에 1분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머무르다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질까 두려웠다.물론 그는 아무것도 폭로하지 않았다. 마치 하늘과 땅에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도리를 이루었다.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만약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 세상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었다.만물이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도리가 있는 법이고, 하물며 나쁜 사람은 그들보다 한층 더 나쁜 사람에게 응징받을 것이기에 이도현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이도현이 보기에는 이 스님들이 구제 불능한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어젯밤 이도현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임산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스님이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여자의 남편이 너무 미신을 믿어서 출산을 앞둔 아내를 데리고 부처님께 예배드리러 왔다가 이런 일이 생겼던 것이었다.누가 옳은지 그른지, 또 누구의 책임인지 분명히 따질 수 없었다. 다행
이게 그들이 말한 보호란 말인가! 보호해 준다고 해놓고, 아내는 이 절에서 죽을 뻔했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남자는 정말 후회스러웠다. 과거의 자신이 그저 미련한 바보 같았다. 자신의 월급 절반을 절에 바치고 돈을 그렇게 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막 정신을 차린 여자가 배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여보. 나 배가 너무 아파. 아마 곧 낳을 것 같아. 여보 나 좀 살려줘.” 이도현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휴. 하느님! 당신이 나를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의술은 자신 있지만, 출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남자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사라곤 그 혼자뿐이었다.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이 일은 그의 몫이었다. “세상에 대체 어떻게 이 타이밍에 애를 낳겠다는 거야? 조금만 더 참아서 내일 병원에서 낳으면 안 되나? 이 시점에서 출산이라니,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 아니야?” 이도현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단순한 치료가 아니다. 그는 해본 적도 없는 출산을 도와야 했다. “신의여! 제발 제 아내를 구해주세요! 그녀가 곧 아이를 낳아요!” 남자는 이도현 앞에 달려와 애원했다. “어서 뜨거운 물을 다시 준비해라. 정말 너희 집안에 큰 빚을 져서 갚는 것 같은 기분이다! 너는 남고 나머지는 다 나가라!” 이도현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네.”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급히 방을 나갔고, 겁먹은 동생만 남았다. “뭐 하려고 멀뚱히 서 있어! 얼른 산모의 바지를 내려! 안 내리면 입으로 애를 낳게 하려는 거야? 아이고! 너도 여자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냐?” 이도현은 짜증을 내며 그녀를 나무랐다. 당황한 여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언니의 바지를 내렸다.그 후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침대 시트로 여인의 하체를 가렸다. 그는 여인에게 침을 놓으며 기를 돌게 했다. 정신없이 손을 움직인 지 약 30분
어떤 것들은 정말 믿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한 이도현은 지금은 깊이 믿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행히 이도현은 얼마 전 주씨의 아내와 그의 장인과 관련된 일을 겪고 나서, 미리 대비해 몇 가지 부적을 더 준비해 두었다. 음양탑에 보관해 두면 급하게 필요할 때 주사와 황지를 찾아다녀야 했다. 주사는 약국이나 특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집에 비축해 둘 법한 물건이다. 그러니 대비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지금처럼 바로 쓸 수 있게 말이다. 이도현은 임산부의 동생을 돌려세우고 그녀를 방에서 잠시 나가게 한 후, 황색 부적 한 장을 꺼내 임산부의 몸에 대고 몇 번 그리며 주문을 중얼거렸다. 임산부의 기운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비로소 멈췄다. 이 과정을 거친 그는 상당히 지쳤다. 몇십 분 동안 정신과 체력이 크게 소모되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 언니는 어떤가요? 왜 아직 깨어나지 않는 거죠?” 여동생은 이도현의 치료가 끝나자 조급히 물었다. “나는 의사이지, 신선이 아니야.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는 법이야. 가서 그녀의 남편을 불러 몸을 따뜻한 물로 닦아 주게 해.” 이도현은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그의 의술은 뛰어났지만, 이 여인의 상태는 이미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억지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고, 마치 염라대왕과 생명을 놓고 다투는 것과 같았다. 만약 그렇게 빨리 효과가 난다면, 그는 진정 신선이 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여동생은 무언가 할 말이 있었지만, 방금 이도현이 보인 위엄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고 언니의 남편을 불러왔다. 두 사람은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여인의 몸을 따뜻한 물로 닦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 덕분에 여인의 미약했던 숨소리가 점차 강해지더니, 마침내 여인이 신음하며 눈을 떴다. “살았다! 내 아내가 살아났어. 그녀가 죽지 않았어.” 남자의 격한 말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
곧 이도현의 차가운 시선이 절 안의 스님들에게 향했다. 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람을 살리는 동안 방해라도 한다면, 즉시 지옥으로 보내주겠다!”“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너희들이 듣든 말든 상관없지만, 감히 방해하려 한다면, 그 순간 너희의 마지막이 될 거다!”이도현은 말을 마치며 손을 휘저어 은침 하나를 던졌다. 은침은 대전 앞에 서 있는 돌사자를 명중했다.쿵!큰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사자가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이 광경을 본 절의 스님들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까지 하고 있던 생각들은 한순간에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마치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뒤로 물러섰다.이 정도로 강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작은 침 하나를 사용했을 뿐인데 돌사자가 산산이 부서져 버리다니, 이게 그들의 몸에 닿기라도 한다면 무사할 리 없었다.아무리 그들이 뚱뚱하다 해도 이런 강한 힘을 버틸 수는 없었다.“뭘 멍하니 서 있느냐! 빨리 방을 찾아서 이 사람을 안으로 옮겨!” 이도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이도현의 위압적인 분위기 아래, 스님 몇 명이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한 여인을 한 방으로 옮겨놓았다.“모두 나가라! 그리고 따뜻한 물을 준비해라. 내 허락 없이 누구도 들어오면 안 돼!”“너는 따라 들어와라!” 이도현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한 여인을 가리켰다. 아마도 이 부부의 친척일 터였다.“저요?” 여인은 자신을 가리키며 놀란 듯 물었다.“들어와!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따라 해! 산모와 어떤 사이냐?” 이도현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녀는 제 언니예요.”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돌사자를 산산조각 내는 이도현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대답을 들은 이도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여인을 한 번 더 보고, 남편을 보며 더욱 할 말을 잃었다.아내가 이 지경인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아내와 처제를 데리고 산속으로 오다니, 대체
“스님. 제 아내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심장이 뛰고 있어요!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남자는 거의 무너질 듯한 목소리로 떨며 외쳤다.보아하니,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이런 스님들을 믿는 걸까? 그리고 아내가 이렇게 배가 부른데, 병원이 아닌 이 산으로 온 이유는 뭘까?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으면서 병원에 안 가는 경우가 있을까? 산간 마을이라고 해도 최소한 마을 의사나 경험 많은 산파나 어르신을 부르기라도 할 것이다.이 남자는 참으로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아내를 데리고 이 깊은 산속에 와서 아이를 낳으려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아미타불! 시주님, 이 여 시주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을 편히 하세요. 이번 생의 죄업은 이미 갚았고, 업보도 끝났으니, 다음 생엔 반드시 큰 부귀와 건강을 누릴 것입니다!”“시주님, 이제 길을 비켜주세요. 이 썩은 껍데기를 태워버리게 해주세요. 아미타불, 꽃이 피고 지고, 사람이 나고 죽고,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생로병사는 모두 정해진 법입니다. 이 모두가 전생의 업이고 현세의 결과입니다. 시주님, 왜 그리 집착하십니까?”스님은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고선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이를 본 이도현은 속이 끓어올랐다. 대체 이게 무슨 허튼소리인가.스님의 신호를 받고, 젊고 힘센 스님 몇 명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남자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다른 곳으로 옮겨 불태우려는 참이었다.이쯤 되자, 이도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이건 두 생명이 달린 일인데,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멈춰!” 이도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단번에 여인을 태우려는 스님들을 발로 차며 막아섰다.“뭐 하는 거에요!” 여인을 태우려던 스님이 분노하며 소리쳤다.“뭐 하는 거냐고? 사람을 구하려는 거지. 저 여인은 아직 죽지 않았는데도 네가 사람을 태우려 하니, 정말 출가한 사람 맞는 거냐? 출가한 자는 자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