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씨 가문의 모든 하인은 눈앞의 이 사모님이 도련님의 지위보다 더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권재민의 마음속에서 강윤아의 지위는 은찬이보다 훨씬 높았다.윤아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집사님께 폐를 끼치기 싫어요. 이 물건은 제가 직접 사고 싶어서 그러니 안심하세요. 의사가 저에게 더 많이 돌아다니라고 했고 오늘 날씨가 꽤 좋아요.”윤아도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집에만 있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네, 그럼 기사님을 불러 모시겠습니다.”윤아가 마음을 굳히자 집사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요.”윤아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당으로 나가 운전사가 차를 몰고 오기를 기다렸다.윤아는 차에 오른 후 집을 떠났다.집사는 윤아가 떠나는 것을 보고 즉시 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대표님, 작은 사모님이 나갔습니다.”재민은 얼굴을 찡그렸다.“나가서 뭐 하는 데?”집사가 대답했다.“물건을 사러 나간다고 했어요.”재민은 약간 언짢은 듯 책상을 두드리며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이런 일은 하인을 불러서 하면 되지 않아?”집사는 조금 난처했다.“대표님, 작은 사모님께서 직접 가시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어요.”“그래, 알았어.”재민도 집사가 꼼꼼한 사람이라 윤아를 괴롭힐 정도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 사람을 보내서 따라가게 하고, 절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네.”누군가 윤아를 따라간다고 생각해도 별일 없을 것 같다.이제 송해나라는 큰 걱정거리도 없어졌으니 말이다.한편, 재민의 집을 엿보고 있던 사람은 윤아가 집에서 혼자 나가는 것을 보고 황급히 전화를 걸어 권현우에게 보고했다.현우는 지금 집에서 느긋하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정말?”현우는 영화를 잠시 멈추고 물었다.“이번에 텀블러나 뭐 챙긴 거 없었어?”지난번에 윤아가 나갔을 때 회사에 가서 재민에게 밥을 가져다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지키던 사람이 윤아가 나갔다고 하자, 현우는 얼른 하던 일을 내려놓고 서둘러 갔는데 결국, 태성 그
강윤아는 권재민의 사이즈를 종업원에게 알려주었고 종업원은 강윤아가 원하는 옷을 가지러 갔다.윤아는 카운터로 가서 돈을 내고 계산원에게 카드를 건네주었다.“아가씨, 포장 다 했어요.”종업원이 정성스럽게 포장한 옷을 윤아에게 건넸다.윤아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방금 산 아기 옷을 들려던 순간, 그 봉지들이 옆으로 넘어졌다.윤아는 눈을 들어 봉지를 넘어뜨린 장본인을 쳐다보았다.권현우는 황급히 말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녜요. 제가 주워드릴게요.”현우는 얼른 쭈그리고 앉아 윤아를 대신하여 봉지를 잡았다.일부러 그런 게 아닐 것 같아서 윤아는 그 사람 혼자 줍게 놔두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천천히 쭈그리고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윤아는 봉지를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 현우도 마침 그 봉지에 손을 뻗었고, 두 손이 닿았을 때 현우는 윤아의 손을 슬쩍 만졌다.윤아는 황급히 손을 움츠리며 화가 난 어투로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현우는 일부러 윤아의 손을 만지려 했지만, 그래도 억울한 척하며 윤아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말했다.“뭐가요? 봉지를 주워주려는 거잖아요.”현우는 말을 하면서 이미 가까이에 놓인 봉투 몇 개를 집어 들었다.윤아는 현우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자신이 너무 예민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우가 위험한 사람인 것 같아 윤아는 그가 들고 있던 봉지를 빼앗으며 말했다.“내가 할게요, 고마워요.”현우는 윤아의 거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 물건을 건네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아이고, 그냥 손만 거들면 되는 건데, 형수님이 필요하시면 도와달라고 해도 괜찮네요.”강윤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당신을 몰라요. 당신 형수도 아니예요.”“형수님,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어쨌든 나도 권 씨 가족인데요.”현우는 윤아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신사다운 모습을 보였다.윤아는 주먹을 쥐고 불만스러운 듯 그를 쳐다보며 순간적으
집에 돌아왔을 때, 강윤아는 권재민이 이미 집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의아해하며 재민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재민 씨, 오늘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요?”재민은 그녀의 배를 의식적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왜 혼자 장 보러 나가요. 그런 일은 하인에게 맡기면 되잖아요. 윤아 씨는 아직 임신 중이니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요?”윤아는 재민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거예요? 잠깐 나갔을 뿐인데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요.”윤아의 말에 재민은 고개를 저으며 속삭였다.“윤아 씨가 그냥 어린애였다면 걱정하지 않아요.”윤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밀어 재민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그럼 다음에 같이 나갈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러면 걱정 안 하겠죠?”권재민은 그녀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허리를 감싸 안았다.“음, 그럼 내가 잘 지켜줄 거예요.”밖에서 현우와 마주친 일에 대해 윤아는 재민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일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재민이 또 이렇게 많은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윤아는 정말 짜증 났지만, 지금 집에 와서 재민을 보니 모든 나쁜 기분도 다 사라졌다.한편, 권재아는 최근 한 친구가 국내에 놀러 온다고 재아에게 연락해서 마중나오라 오라고 했다.오랜 친구였으니, 재아도 두말없이 승낙했다.“좋아, 케이티, 너 내일 오후에 도착하지? 내가 꼭 제시간에 데리러 갈게.”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김소혜가 물었다.“뭐야? 너 내일 나갈 거야?”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친구 한 명이 귀국해서 함께 놀자고 해요. 그래서 내일 데리러 가겠다고 했어요.”소혜도 크게 개의치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케이티와 함께 밖에서 식사를 마친 재아는 케이티를 데리고 권씨 가문으로 데려가려 했다.마침 소혜도 집에 있었는데, 재아가 케이티를 데려오는 걸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예쁘게 생긴 케이티는 보기만
두 사람이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는 것을 보면서 옆에서 말을 하지 않던 권재아의 마음속에는 불길한 예감이 생겨났고, 왠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재아는 케이티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면 그 의도가 뻔했고 자신의 엄마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몇 번 관찰한 결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재아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사실 그때는 농담으로 자랑하고 싶었을 뿐인데, 오히려 케이티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속 마음에 두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하지만 이 일은 네가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 좋겠어. 어쨌든 이 녀석은 지금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이런 생각을 떨쳐버리는 게 났을 거야…….”“난…….”권재아의 말에 케이티는 겸연쩍게 침묵을 지켰다.“아이고, 무슨 헛소리야.”재아가 대답하기 도전에 소혜는 그녀의 손을 ‘탁’ 치며 입을 다물라고 했다.소혜는 표정이 빠르게 변하여 순간적으로 상냥한 웃음을 띄웠다.“재아 얘는 어려서부터 위아래가 없었으니 절대 마음에 두지 마라. 이모는 오히려 네가 사람이 아주 좋다고 생각해. 생긴 것도 시원시원하고 말투도 매우 단정하니 이 이모가 마음에 무척 들어.”“재민이란 놈은 종일 회사에서 빈둥빈둥 지낸다지만, 내가 보기엔 요 며칠 일정이 이렇게 급하지 않은 것 같으니 보고 싶으면 하루 약속을 잡고 만나 봐.”소혜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이렇게 하자, 내일 재아에게 데려다 달라고 해.”소혜는 권재아를 돌아보았다.권재아는 오히려 고개를 돌리며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엄마…….”“넌 아무 말 하지 말고 내가 가라면 가.”소혜가 짜증 내며 말했다.“그건…… 아닌 것 같아요. 휴식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섣불리 가면 좋지 않을 건데요?”케이티도 놀란 듯 말을 더듬었다.소혜는 어깨를 으쓱하며 상관없다고 했다.“아니야, 내가 너한테 가보라고 할 땐 당연히 해결할 방법
케이티는 어렸을 때부터 온갖 사람들을 만나왔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모두 보잘것없는 사람들에 불과했다.모두가 같은 듯 다른, 어떤 이는 가정을 망치고 어떤 이는 불량한 행실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케이티는 권재민 같은 남자를 전혀 만나본 적이 없었다.재민의 뼛속까지 서린 냉담함과 고귀한 분위기가 사람을 압도했다. 멀리서 봐도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 같았고 그의 앞에 선다면 누구라도 그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케이티는 그런 재민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권재아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케이티를 소개했다.“이 분은 내 친구, 케이티. 오늘 같이 왔는데, 괜찮지?”“당연히 괜찮지.” 재민은 차갑게 대꾸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봄날에 우뚝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빙산처럼.케이티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케이티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재민은 케이티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무심하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악수를 거절한 재민 때문에 머쓱해진 케이티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어이, 남자라면 좀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해. 여긴 네 전투장이 아니야. 무슨 지휘관처럼 행동하지 마! 내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굳이 그래야겠어? 무슨 약점이 있는지 없는지 조사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좀 마.”재아가 재민에게 행동을 조심하라고 눈짓했다. 그녀는 재민이가 강윤아 외에 다른 여성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김소혜가 말했듯, 어떻게든 두 사람을 연결해야 한다.“괜찮아요. 재민 씨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재민이 말하기도 전에 케이티는 자신도 모르게 재민을 바라보고는 그의 편을 들며 말했다. 케이티의 외모가 절세미인이라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빛났다. 오뚝한 코, 정교한 이목구비, 백옥 같은 피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따라서 케이티의 매력에 매료된 이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거의 모든
하지만 케이티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강윤아가 권재민을 왜 그렇게 친밀하게 대하는지, 게다가 방금 재민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도 뭔가 이상했다…….케이티는 눈을 몇 번 깜박이며 감정을 억누르고는 웃으며 물었다.“물론이죠. 그런데 외람된 말씀이지만 누구세요?”“제 아내입니다.” 윤아가 말하기도 전에 재민이 먼저 대답했다.재민의 대답을 들은 윤아의 얼굴이 붉어지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케이티는 잠시 멍 해졌다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권 대표님, 이렇게 젊은데 벌써 큰일을 해내시고 또 이렇게 예쁜 아내도 있다니, 권재아 씨가 말하지 않아서 몰랐어요.”“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랬다면 선물이라도 준비해 왔을 텐데, 빈손으로 와서 조금 난처하네요.”케이티는 재아를 탓하는 듯 말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불평하는지 아니면 단지 불쾌한 척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사실 우리 결혼도 급하게 진행되어서 준비를 많이 못 했어요. 그래서 친척이나 친구들도 거의 모르고 알린 적도 없어요.” 윤아가 재민을 바라보며 케이티에게 설명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랬군요…….” 케이티가 잠시 멈칫했다.“그러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더더욱 밖에서 제대로 식사를 해야겠네요. 여러분들이 저를 돌봐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요. 앞으로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케이티는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제가 오늘 여기 온 이유는…….” 윤아가 눈을 내리깔고 손에 든 텀블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윤아는 케이티의 호의와 열정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사라질까 걱정되었다. 어쨌든 케이티는 언니가 데려온 친구이고 금방 귀국한 사람인데 그녀의 식사 제안을 거절하기란 어려웠다.케이티는 텀블러를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고는 말했다.“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꼭 한 끼 대접할 게요.” 그동안 조용했던 재민은 윤아의 난처함을 알아차리고 말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재아와 케이티는 더 이상 그들을 붙잡을 수 없
강윤아는 별다른 생각 없이, 케이티의 건강을 염려하여 말없이 자리를 바꾸어주며 조용히 뒤쪽에 앉았다. 덕분에 케이티는 자연스럽게 권재민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가까이서 권재민의 모습을 보던 케이티는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볼이 빨개졌다. 그 후, 케이티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돌렸다.“솔직히 말해서, 권 대표님이 앞으로도 분명히 크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지금 더 많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는 건가요? 더 큰 기회를 만들 수도 있는데.”케이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정도 돈은 필요 없어요.” 재민은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매우 냉담하게 대답했다. 재민의 말에 케이티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차가운 재민을 바라보며 전에 느껴본 적 없는 떨림을 느꼈고 그 감정은 점점 더 강해져 통제할 수 없었다.그래서 케이티는 출발해서부터 계속해서 공동 대화 주제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재민이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며 말을 아꼈다.“도착했어요.” 재민은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케이티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쉬운 듯 차에서 내렸다.“방금 손님이 떠나서 좌석이 좀 부족할 수도 있어요. 여기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아니면 자리를 좀 더 만들어 드릴까요?”종업원이 물었다.테이블 크기가 2미터 정도여서 앉는다면 자리가 좁았다. 모두 바짝 붙어 앉을 수밖에 없었다.“괜찮아요, 이대로 할게요.” 케이티가 다른 이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권재아도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며 음식을 내오라고 지시했다.자리가 정해지자, 케이티는 재민의 옆자리에 바로 앉았다. 식사 도중, 케이티의 몸이 자연스럽게 재민 쪽으로 기울었다. 얇은 옷차림은 투명한 외투로만 덮여 있었고 가슴과 하얀 피부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무언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재민도 눈을 내리깔고 상황을 살피더니 이내 냉담하게 의자를 안쪽으로 옮겼다.소리를 들은 재아도 무언가를 깨
김소혜는 케이티와의 짧은 대화에서 케이티가 자기 아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케이티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기 아들 얘기를 할 때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보였다.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지 않았던가?그렇다면 윤아와 자기 아들을 어떻게든 떼어놓고 케이티와 재민이 단둘이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원래 윤아를 탐탁지 않아 했던 소혜는 케이티의 외모, 가문, 대화 방식이 모두 윤아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드는 여성을 며느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소혜는 재민이도 케이티에게 반드시 매료될 거라고 생각과 앞으로는 윤아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매우 기분이 좋았다.또한 소혜는 이미 좋은 계획을 세워놓은 듯 보였다.그날 권승호가 손자가 그립다며 재민과 윤아에게 은찬을 데리고 권씨 집안에 오라고 했다.승호가 은찬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윤아는 기뻤지만 지난번 일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었다.재민도 그런 윤아의 걱정을 알아채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어르신이 엄하시긴 해도 아이들한테 무슨 일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재민은 승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은찬이가 승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재민은 승호의 요청에 쉽게 동의했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걱정돼요.”“걱정 마요, 내가 있잖아요,”다시는 권씨 집안 사람들이 은찬을 해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윤아도 재민이가 옆에 있어 한시름 놓았다.은찬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승호가 평소에 엄격하긴 하지만 아이들은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차리는 법이기에 승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록 표정은 무서웠지만.윤아도 은찬이가 권씨 집안 저택에 가는 것을 크게 거부하지 않자 마음속의 걱정도 조금씩 사라졌다.곧이어 가족 셋이 권씨 집안 저택에 도착했다. 은찬이 가장 먼저 저택 안으로 뛰어들었다.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중앙에 앉아 TV를 보고 있지만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승호를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