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신수민을 바라봤던 이영호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애당초 신수민의 부모님도 허락한 혼인을 신수민이 자기 발로 차버렸었다. 그러니 이영호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신수민은 하얀 치마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선녀 같은 그녀의 모습에 이태호는 잠시 넋이 나갔다. 그녀는 도도한 여신의 아우라를 숨길 수가 없었다.“어때요? 예뻐요?”신수민은 자기를 뚫어져라 보는 이태호 때문에 얼굴이 빨개졌다.“너무 예뻐요. 이 치마가 수민 씨를 위해 만든 것처럼 너무 잘 어울려요!”이때, 이태호의 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영호 씨, 여긴 어떻게?”갑작스러운 이영호의 등장에 신수민이 적잖게 놀랐다. 이류 가문의 도련님인 그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신씨 가문마저 그 앞에서 덜덜 떠니 말이다.이에 이태호가 몸을 돌려 이영호를 봤다.“당신이 이영호군요. 결혼 예물로 20억이라니, 참으로 대단한걸요?”이영호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수민아, 이놈 누구야? 설마 남자친구야? 날 버렸으면 적어도 부잣집 놈이랑 만나야지, 이 거렁뱅이 같은 놈은 뭐야! 이건 날 모욕하는 거나 다름이 없어!”“거렁뱅이?”이태호는 두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왜? 치게? 내가 누군지 알지? 우리가 태생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이영호는 고개를 들고 이태호를 깔보듯 내려다봤다. 그의 뒤에 있던 4명의 보디가드들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태호 씨, 참아요!”잔뜩 화가 난 이태호를 보며 신수민이 깜짝 놀랐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그녀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태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내 말에 순종하겠다고 맹세하는 게 아니었다. 안 그러면 눈앞의 사람은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신수민의 말 대로 이태호는 가만히 있었다.“걱정하지 마요. 안 싸워요.”이영호는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눈알이 뒤집어질 듯했다.“야, 얼른 손 놓지 못해?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이때, 이영호 옆에 있던 여자가 비웃기 시작했다.“오빠, 아직도 모르겠어요? 저 여자가 외로움을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예요? 오빠 몰래 얼마나 많은 남자를 만났을지 모르는 일이죠. 그러니까 이 여자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돼요.”이태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그만 하세요.”“오빠, 이 사람이 날 때리려고 해!”여자는 얼른 이영호 뒤에 숨어 어쩔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신수민은 이태호를 붙잡고 그를 진정시켰다.“영호 씨, 제가 그런 여자로 보이나요? 그리고 영호 씨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인데, 대낮에 이렇게 여자랑 다녀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제가 영호 씨의 사랑한다는 말을 믿을 수 없는 거예요!”이에 이영호의 여자가 맞받아쳤다.“영호 오빠는 돈이 많잖아, 밖에서 여자 좀 만나면 안 돼? 순진한 척하지 마. 영호 오빠를 찬 주제에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어?”짝!그러나 이때, 이영호가 그녀의 뺨을 때렸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이었다.“젠장, 조용히 해! 수민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넌 수민이 발뒤꿈치도 못 따라잡았어!”“오빠...”여자는 억울했지만 반박할 용기가 없었다.“꺼져!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이영호가 밖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여자는 할 수 없이 신수민을 한번 째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직원들은 멀찌감치 서서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이영호가 매번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가끔 예쁜 직원의 엉덩이를 만져도 그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못했다. 기분이 좋다면 그가 팁으로 몇십 만 원을 주기 때문이다. 하여 남의 매장에서 소란을 피워도 나서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여자가 떠난 후 이영호는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는 두 팔을 축 늘어뜨렸다.“신수민, 네가 그런 여자가 아니라면 이놈이 누군지 똑바로 말해. 안 그러면 오늘 이놈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야.”“고작 3명이서 날 상대한다고?”이태호는 어이가 없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세 보디가드가
신은재까지 들먹인 이상 이태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영호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욱!이영호는 바닥에 꿇어앉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이태호를 쳐다봤다.“태호 씨, 왜 이렇게 충동적이에요!”신수민은 깜짝 놀랐다. 이영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이류 가문의 도련님이었기에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더 이상 참을 수 없어!”이태호가 분노의 들숨 날숨을 몰아쉬었다.“가만히 서서 뭐해? 얼른 죽여!”이영호는 고통을 참으며 겨우 일어난 후 명령을 내렸다.“엄마!”이 상황을 목격한 은재는 깜짝 놀라 엄마의 다리를 껴안았다. 이를 본 이태호는 순간 후회스러웠다. 자기 때문에 딸이 놀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보디가드들은 이미 가까이 다가왔고 큰 주먹을 휘둘렀다. 하여 이태호는 반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퍽! 퍽! 퍽!그가 주먹 몇 번을 날리자 보디가드들은 그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 채 그대로 고꾸라졌다.“악!”모두 가슴을 움켜쥔 채 바닥에서 뒹굴었다.“젠장! 일어나!”이태호의 실력에 흠칫 놀란 이영호는 뒤로 물러나며 명령했다.“도련님, 갈비뼈가 끊어진 것 같습니다! 악!”보디가드 중 한 명이 겨우 일어나며 말했다.“저희 갈비뼈도 나간 것 같습니다!”“젠장!”이영호는 보디가들이 이태호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너 딱 기다려! 절대 이렇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이영호는 할 수 없이 보디가드들을 데리고 뒤꽁무니를 뺐다.이태호 뒤에 서 있던 신수민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 역시 이태호의 실력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와! 아빠가 이겼어요!”겁에 질려있던 신은재는 헐레벌떡 도망치는 이영호를 보고 박수를 쳤다.이태호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고 아이의 볼에 뽀뽀했다.“무서워할 필요 없어.”“아빠가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어요. 나쁜 사람들 모두 도망쳤어요!”이태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은재도 아빠처럼 강해지고 싶어?”“네!”이태호가 미소를 지었다.“그래. 은재가 조금만 더
“네, 알겠습니다.”인턴 직원은 목소리마저 떨렸다. 이태호가 이씨 가문의 도련님을 때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곧 신수민은 여러 벌을 입어봤고 모두 그녀와 잘 어울렸다.“여태껏 입은 거 모두 포장해줘요. 얼마예요?”이태호가 인턴을 보며 물었다.“다, 다요?”인턴은 흠칫 놀랐다. 여태까지 입어본 7, 8벌의 옷을 모두 합하면 족히 6천만 원은 되기 때문이다.“네, 다 줘요.”이태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신수민은 이태호의 진심이 고마웠지만 이렇게 비싼 옷을 받기 너무 부담스러웠다.“괜찮아요.”“손님, 세일 가격으로 총 5천 9백만 원입니다.”인턴이 말했다.“다 포장해줘요.”이태호는 커다란 봉지를 끌고 계산하러 갔다.“뭐야? 다 산다는 거야?”멀찍이 서 있던 여성 직원이 두 눈을 껌뻑였다. 그녀는 남루한 옷차림의 이태호가 6천만 원에 달하는 소비를 할 거라 생각지도 않았다. 이태호는 원래 그녀의 손님이었다. 방금 그가 소비한 금액이라면 이번 성과금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루에 몇십 만원의 옷을 팔아도 수입이 넉넉했다. 한 벌에 몇백 만원에 달하는 옷은 한 달에 한 벌도 안 팔릴 때가 많았다.“저 사람한테 진짜 돈이 있는 거야?”다른 직원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이렇듯 거금을 쓰는 고객을 처음 맞이하는 인턴은 긴장하기 시작했다.“어떻게 결제하시겠어요?”“현금이요!”이태호는 봉지를 펼치고 안에서 현금을 꺼냈다.“5천 9백만 원이라고 했죠? 여기 6천만 원이요. 나머지는 팁으로 줄게요. 고맙습니다.”“잠시만요, 손님! 너무 많습니다.”인턴은 예상을 벗어난 팁에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괜찮으니까 그냥 받아요.”이태호는 옷을 챙기고 신수민과 신은재한테로 향했다.“야, 너 오늘 운 좋다? 이렇게 많은 팁은 나도 받아본 적이 없어!”“게다가 성과금까지, 진짜 대박이야!”“이제 이 매장 정직원이 되는 건 시간 문제겠네? 오늘 우리한테 한 턱 쏴!”다른 직원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좋아요. 저
은재한테 옷 여러 벌을 사준 후 이태호는 부모님한테 드릴 옷도 샀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자기 옷을 사러 갔다.“이거 괜찮네요. 한번 입어봐요.”신수민은 이태호의 몸매를 살피며 말했다.이태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옷을 챙긴 후 피팅룸으로 향했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고 신수민은 잠시 넋을 잃었다. 잘생긴 얼굴에 옷까지 멋지게 입으니 그야말로 훈남이 따로 없었다.“어때요?”이태호는 아직 어색하기만 했다.신수민은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잘 어울려요. 몇 벌 더 살까 봐요.”“그래요, 자기 말 대로 할게요.”“칫, 방금 제 말을 듣지도 않고 싸웠잖아요! 이영호의 성격이라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 다음번에 만나면 제대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요.”“제가 사과해야 해요? 내 아내를 넘보고 딸까지 들먹였는데 제가 왜 사과해요? 때려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죠!”이태호는 불쾌했지만 어두운 표정의 신수민을 보고 얼른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 다음엔 끝까지 참을게요.”세 가족은 쇼핑몰을 나섰다.“오늘 돈 많이 썼네요. 이제 1억 2천 정도 남았겠네요.”이태호의 말에 신수민이 으쓱거렸다.“왜요? 돈 쓰고 나니까 마음이 아파요?”이태호가 웃으며 대꾸했다.“전혀. 그냥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살면서 이렇게 큰돈을 처음 써본 거라.”미친 어르신한테서 받은 카드에 든 돈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비록 어마어마한 액수는 아니지만 결코 적지는 않았다.“이제 집에 가죠. 부모님이 선물을 받으면 무척 좋아하실 것 같아요.”“벌써 집에 가려고요? 이제 차 사러 가죠? 현금을 들고 다녀봤자 짐밖에 안 되니까 얼른 써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차가 있으면 앞으로 다니기도 편리할 것 아니에요.”“와, 엄마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어요. 아빠는 돈을 많이 벌었어요. 예이!”신은재가 폴짝폴짝 뛰었다.“그래요. 그럼 차 사러 가요. 앞으로 은재를 유치원에 데려다줄 수 있겠네요.”신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이태호는 어떤 차를 살지 고민이 되었다. 돈도 많으니 적어도 아우디는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돈 좀 있다고 허풍 떨지 말아요. 부모님께서 피땀 흘리며 번 돈을 이렇게 흥청망청 쓰면 어떡해요? 친척들한테도 돌려줘야 할 돈이 있다면서요? 지난번에 태호 씨 부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신수민은 화가 났다.“돈이 있다고 마음대로 쓰면 안 돼요! 은재랑 나, 그리고 부모님한테 사는 건 그렇다 쳐도 빚도 있는 마당에 비싼 차를 왜 사는 거예요?”그녀는 진짜로 화를 냈다.그러나 어차피 그녀가 그의 말을 믿지 않으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돈 많은 티를 아직 내지 않는 게 좋았다. 이번 기회에 친척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제대로 시험해보고 싶었다. 돈 많은 티를 냈다가 모두 그를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할지도 모른다.“알겠어요. 더 이상 허풍 치지 않을게요. 자기 말에 따를게요.”신수민이 그제야 발길을 멈췄다.“그냥 싸구려 차를 사요. 탈 수 있는 차면 되죠.”“맞아요. 탈 수 있으면 되는 거죠.”이태호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신수민이 현모양처인 건 확실했다. 정희주였다면 분명 비싼 차를 사려고 떼라도 부렸을 것이다.“일단 친척들한테 진 빚을 다 돌려주고 은재 유치원부터 알아봐요. 지금 유치원 학비도 만만치 않은데, 아낄 수 있으면 아껴야죠.”신수민이 쓴웃음을 지었다.세 사람은 차를 산 후 바로 집으로 향했다.“근데 제가 원주 호텔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집으로 향하던 중 이태호가 신수민을 보며 물었다.“집으로 찾아갔었는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원주 호텔에서 하현우랑 정희주가 결혼한다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행여 소란을 피우러 간 게 아닐까 하고 찾아간 거죠. 거기서 진짜 소란을 피우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신수민은 이태호를 흘겨봤다.“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좀 자제해요. 전 그냥 가족이랑 조용하게 살고 싶어요.”“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다 보상해줄 거니까.”이때, 이태호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오늘 부모님 만나러 가는 거네요.”
“여보, 큰일 났어, 큰일!”마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태식이 아내의 소리에 깜짝 놀랐다.“무슨 일이야?”연초월의 당황한 표정에 이태식은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연초월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방금 시장에서 장 보고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오늘 정희주와 하현우 결혼식에서 누군가가 소란을 피웠다고 그랬어. 그리고 태수라는 사람이 몇백 명을 이끌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대!”“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결혼식에서 소란을 피웠다고?”이태식은 아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하씨 집안한테 밉보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연초월이 다급하게 말했다.“태호가 아침부터 나갔어! 방금 급하게 찾아온 여자도 태호가 집에 없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어디론가 갔잖아! 그럼 태호인 게 분명한데, 어떡해?”“그 사람들이 뭐라고 했어? 벌써 오후가 됐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거면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몰라!”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우리 아들 어떡해! 진짜 다친 건 아니겠지? 또다시 감옥에 들어가면 그냥 죽어버릴 래!”연초월의 불안함이 극도에 달했다.이때, 자그마한 차량이 집 앞에 멈춰섰다.“누구야?”이태식과 연초월은 어안이 벙벙했다. 곧이어 새 차에서 이태호와 신수민이 모습을 드러냈다.“태호야! 이, 이게 뭐야?”연초월은 이태호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이건 어디서 난 차야?”“제가 산 거예요.”“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차를 사?”연초월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입은 새 옷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원래 좋은 차로 사려고 했는데 수민 씨가 허락하지 않아서 작은 차로 샀어요.”이태호는 옆에 있는 여자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런 아내가 있는 건 행운이었다.“수민 씨?”이태식은 신수민을 자세히 보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이분이 널 찾으러 왔던 분이잖아! 치마로 갈아입어서 알아보지 못 할 뻔했네.”“엄마, 아빠, 정식으로 소개할게요. 여긴 제 아내이며, 이 아이는 제 딸이에요.”이태
두 사람은 신수민이 입은 치마를 보고 흠칫 놀랐다. 설마 아들이 돈 많은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인가?“이 사람이 매달 두 분한테 돈을 드렸던 거예요.”이태호가 말했다.“수민이라고 했나? 앉아, 편하게 앉아.”이태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연초월은 아들을 끌고 구석으로 향했다. 이태식도 뒤를 따랐다.“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아가씨가 예쁘게 생겼지만 너무 갑작스럽잖아! 한번 갔다가 온 분이셔? 우리는 돈도 없는데 괜찮은 거야?”연초월은 걱정이 앞섰다.이태호는 두 사람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래? 그러니까 이 아가씨가 신씨 집안의 딸이란 말이야?”이태식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당시 신씨 집안에 있었던 일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신씨 집안의 딸과 잤다는 남자가 이태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몇 년 동안 우리한테 돈을 준 거였어? 대가문의 아가씨가 모든 걸 버리고 네 아이를 낳았으니까 네가 상상도 못 할 고생을 했을 거야. 그러니까 태호 네가 잘해줘야 해! 알겠지?”이태식이 말을 이어갔다.“그래, 이런 여자는 드물어. 너를 몇 년 동안이나 기다렸다는 건 적어도 그 희주보다 천 배 만 배는 나아! 우리를 싫어하지만 않았으면 좋을 텐데.”이태호가 웃으며 답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으니까.”이윽고 그는 차 트렁크를 열고 쇼핑백을 꺼냈다.“이건 모두 엄마, 아빠를 위해 산 옷들이에요.”“너 왜 이렇게 옷을 많이 샀어? 아내랑 아이한테 사줘야지!”연초월은 아들을 야단치기 바빴다.“다 사줬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이태호는 은재를 보며 말했다.“은재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인사드려.”은재는 아직 낯선 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아이고, 우리 손녀 귀엽네!”아들이 장가가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던 연초월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이태식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눈물을 보였다.이태호는 신수민을 보며 말했다.“엄마, 아빠한테
이태호가 고개를 들어 비석 위의 이름들을 살펴보았다. 랭킹 1위는 구동빈이라는 사람인데 뒤에는 이자의 천부적인 자질과 이름을 새길 때의 내공이 기록되어 있다.[구동빈, 성황 선체, 31살 때 8급 성자 경지로 돌파했고 성공 고전 내에서 같은 경지의 세 사람을 격살하여 천교 랭킹에 이름을 올려 성공 도운의 감오 한 가닥을 장려한다.]그의 뒤를 이은 랭킹 2위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었다.[무명, 반왕 도골, 성공 고전 내에서 같은 경지의 아홉 명을 격살했고 천마일존을 진압하였으며 선도 법칙을 한 오리 깨달아서 천교 랭킹에 이름을 올려 성신의 빛 한 오리를 장려한다.][...]이태호는 빠르게 훑어본 후 랭킹 10위 내에 있는 수사들의 이름과 소개를 모두 보고 나서 저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어쩐지 주변의 제자들은 모두 이 고금 천교 랭킹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이 비석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모두 성공 고전의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여러 가지 보상이 있는데 도운과 성신의 빛과 같은 최고의 보상이 있는가 하면 별빛의 힘과 같은 일반적인 보상도 있었다.그러나 일단 이 비석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자라면 나중에 모두 자라나서 적어도 성황급 강자로 될 수 있었다.이태호도 마음이 들떠서 자신의 천부적 재질로 이 비석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지 어떤 보상을 받을지 궁금했다.다만 그가 시작하기도 전에 비석에 문득 새 이름이 나타났다.[오수혁, 구조금룡(九爪金龍) 혈맥, 요선 후인, 30세에 불과한 나이에 7급 성자 경지에 이르러 천교 랭킹92위에 이름을 올려 성신의 빛 한 오리를 장려한다.]이 구절이 나타나면서 요족 천교 오수혁의 이름이 비석에 새겨졌다.주변의 사람들은 오수혁이 성신의 빛을 받은 것을 보자 큰 충격을 받고 발칵 뒤집어졌다.“제길. 성신의 빛을 장려했다니. 이것을 단련할 수 있다면 주변의 별들을 감지할 수 있고 별빛의 힘을 흡수하거나 성신과 관련된 신통을 수련하는데 모두 큰 도움이 될 거야.”“오수혁이 이렇게 빨리
이 찬란한 별빛 속에서 어렴풋이 허황된 고전이 허공에서 내려오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이 광경을 본 현장의 모든 사람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성, 성공 고전이 열린 거야?”“성공 고전 맞아. 전설에 따르면 이곳이 바로 성공 전장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곳이야.”“신선으로 비승할 수 있는 기연이 바로 거기에 있대.”“비승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을까? 지금 창란 세계의 모든 성지와 세가의 천교들이 여기에 있으니 치열하게 싸우겠는데.”“...”지금 현장이 시끄러워졌다.이태호를 공격했던 오수혁, 예진기 등도 안색이 확 변했고 얼굴에 희색을 띠었으며 더 이상 이태호를 공격하지 않았다.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중 이 허황된 고전은 점차 희미한 상태에서 뚜렷한 실체를 드러냈다.바로 이때 이태호는 고전의 전모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이 고전은 전체적으로 이름 모를 청동으로 만들어졌고 거대하고 웅장해 보이며 별하늘에 우뚝 솟아올랐다.그리고 안에는 은하수로 가득 찬 것처럼 무수한 별빛을 내뿜었으며 상고시대의 황폐한 기운을 발산하였다.“쿵!”성공 고전이 완전히 단단한 실체를 이루자 주변의 허공에서 성공 전장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성지를 맞이하는 것처럼 윙윙거렸다.은하수에서 떨어진 듯한 별빛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로 통하는 통로를 이루었다.통로가 형성된 순간, 천교들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올라갔다.가장 앞에 선 전성민은 고개를 돌려 이태호를 보고 기쁜 어조로 말했다.“이 사제, 우리도 얼른 들어가자.”성공 고전이 나타나자 주변의 천교들은 모든 정신을 마지막의 신선으로 비승할 기연에 집중해서 당분간은 그들 둘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이태호를 매우 증오한 명운택과 오수혁도 이미 이태호의 앞에서 사라졌다.전성민의 말에 이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를 따라서 성공 통로로 들어갔다.그는 은하수를 깔아 놓은 듯한 통로를 밟고 성공 고전의 대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대문 앞에는 하나의 검은색 비석이
예진기는 이태호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고 방금 그가 오기 전에 이미 신식으로 이태호와 명운택의 대결을 구경하였다.그러나 예진기와 같은 성자에게 있어서 이태호의 실력은 그저 그랬다.기껏해야 진전 제자의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방금 오수혁과 명운택이 물러선 것은 이태호가 가진 성왕 호신부와 전성민의 체면을 봐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원래 예진기는 이태호와 같은 수준의 ‘개미’를 안중에 둔 적이 없었다. 게다가 혼원성지는 이태호와 갈등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이태호가 자기의 앞을 막으니 그의 마음속에 분노의 불길이 확 타올랐다.“죽음을 자초하는군!”그가 대갈일성한 후 주먹을 들고 이태호를 향해 던졌다.그 주먹의 빛은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났고 뿜어져 나온 파멸의 기운은 이태호마저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호는 제자리에 서서 꿈쩍하지도 않았다.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해서 미친 듯이 체내에 있는 천지의 힘을 운행하면서 머리 위에 있는 현황봉에 주입하여 현황봉이 눈부신 금빛을 발산하게 하였다.펑.충격파가 지나간 후에도 이태호가 여전히 꿋꿋하게 앞을 막고 있는 것을 보자 예진기는 체면이 구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언제부터 개미와 같은 4급 성자 따위가 당당한 성자의 길을 막을 수 있었지?같은 시각에 앞으로 다가온 명씨 가문의 신자 명운택은 냉소를 지었다.“그러니까 왜 그랬어?”명운택은 마치 곧 죽을 사람을 보는 듯한 냉혹한 시선으로 이태호를 바라보았다.마지막 영패가 나타나자 현장에 영패가 없는 10여 명의 천교 중 누가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북해의 만족 백가민, 서역 불문 대뇌음사의 불자 법웅 스님, 그리고 동황의 허씨 가문, 부광성지의 몇몇 성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뜨거운 시선으로 저 영패를 바라보았다.기연을 찾지 못하게 막는 것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이태호가 앞을 막고 있으니 가만둘 리가 없었다.특히 원래 이태호를 죽이고 싶은 오수혁은 큰 별의 근처에 온 후 주저하지 않고
허공이 파열되었고 강풍이 휘몰아쳤다.이때 큰 별의 옆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이를 본 전성민은 무거운 표정으로 이태호에게 신식으로 전음했다.[이 사제, 잠시 후에 잘 부탁할게.]말을 마친 그의 몸에서 갑자기 7급 성자 경지의 기운을 내뿜었다. 그는 가장 먼저 허공을 밟고 지극히 빠른 속도로 영패를 향해 날아갔다.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부광성지의 성자 예진기는 움직이는 전성민을 보자 콧방귀를 뀌었다.“흥. 저 영패는 우리 부광성지 거야.”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바로 손을 들어 전성민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무시무시한 주먹의 빛은 거대한 힘과 함께 수 리 내의 별하늘을 꿰뚫었다.한편으로 명씨 가문의 구역 내에서 명운택은 영패가 나타난 것을 보고 바로 족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자네들은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어. 이 영패는 내가 꼭 가질 거야.” 심씨 가문의 구역 내에서 신자 심인경은 흥분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흐르는 빛으로 변해서 날아갔다.다음 순간, 산과 바다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기운이 이 별하늘의 근처에서 폭발했다.심인경은 망설임 없이 손을 들자 7척이나 된 장검을 꺼냈다.이 장검은 온통 금빛으로 반짝이면서 최상급 영보의 기운을 내뿜었고 주변 수십 리 내의 수사들은 피부가 보이지 않는 검빛에 의해 에이는 것 같았고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것 느낌이 들었다.이미 수십 장 밖으로 날아간 심인경은 재빨리 심씨 가문의 족인과 심무영에게 전음하였다.[시간을 끌어줘.]이때 심인경, 예진기 등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방금 큰 별에 도착한 창란 세계의 모든 대세력의 천교가 움직였다.이태호는 요지성지에서 온 변청하가 손을 흔들자 칠색 무지개와 같은 띠가 허공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이 띠는 그녀의 몸을 감싸면서 영혼마저 떨게 하는 무서운 기운을 내뿜었다.이것은 틀림없이 최상급 영보였다.“쫘아악!”이 띠에서 영광이 번쩍이더니 빠르게 날아가면서 가장 먼저 날아간 전성민의 앞을 막았다.다행히도 전성민의 반응
“듣자 하니 저자의 체내에 한 조각의 선골이 있대, 진정한 선인의 뼈야. 그래서 비승하기 직전까지는 아무런 장벽도 없다고 하더라.”“지도윤은 정말 괴물과 같은 존재지. 수련한지 10년도 안 되었는데 이미 7급 성자 경지로 돌파해서 지씨 가문의 신자로 되었어.”“...”동황 지씨 가문의 신자 지도윤?이태호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이 소년의 정체를 알게 된 후 다소 놀라웠다.얼마 후에 창란 세계의 9대 성지, 8대 가문의 천교들이 줄줄이 나타날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성공 영패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그때 가면 필연코 피 터지는 쟁탈전을 벌일 것이 분명했다.이태호가 사색에 잠겼을 때 팽배한 기운이 별하늘의 먼 곳에서 전해왔다.다음 순간, 열 몇 가닥의 붉은 색 빛줄기가 연달아 나타났다.빛줄기마다 거의 7급 성자 경지의 기운을 발산했는데 이들은 틀림없이 창란 세계의 진정한 천교들이었다.성자(聖子)가 아니면 8대 가문의 신자들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이 빛줄기들이 나타난 순간, 주변의 수사들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어서 봐, 맨 앞에서 날고 있는 미녀가 바로 요지성지의 성녀 변청하야. 소문에 따르면 요지 성녀는 선인 아래의 제1신체(神體)인 명월선체(明月仙體)를 가졌대.”“이런 괴물과 같은 체질을 가져서 요지성지의 성황 노조는 변청하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보배처럼 여겨서 종래로 시련에 참여시키거나 기연을 쟁탈하는 전쟁에 참여하게 한 적이 없었대. 근데 이번 성공 전장에 참여할 줄은 몰랐네.”“두 번째는 음양성지(陰陽聖地)의 성자 황보경이야.”“저 황보 성자는 천부적 자질이 뛰어나서 신체 랭킹에서 10위 안에 든 만상지체(萬相之體)를 각성해서 어떤 신통과 술법도 모두 모방할 수 있다고 들었어.”“황보경 뒤에 있는 자는 혼원성지(混元聖地)의 성자 예진기야. 그야말로 더욱 대단한 천교라고 할 수 있지. 어린 나이에 이미 혼원선경의 참뜻을 깨달았대. 소문에 따르면 이 자는 예전에 외문의 노복에 불과했는데 후에 대단한 기연을 얻어서 9급 신단을
오수혁과 전성민의 대화를 들은 명운택의 표정이 변했다.그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하다가 마지막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이태호에게 말했다.“네가 운이 좋을 줄 알아. 오늘은 일단 네놈의 목숨은 살려주마, 나중에 보자고.”말을 마친 명운택은 음침한 표정으로 명씨 가문의 구역으로 돌아가서 가부좌 자세로 앉은 후 재빨리 단약 두 알을 꺼내서 복용하였다.한편으로, 오수혁과 전성민도 마찬가지였다.방금 대전을 마친 후 두 사람은 많은 영력을 소모하지 않았으나 이어지는 성공 영패 쟁탈전과 아홉 개의 영패가 모이면 열릴 성공 고전에 들어가서 기타 보물과 기연을 쟁탈하기 위해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두 사람도 자연스럽게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원래 일촉즉발 했던 상황이 마치 황당한 연극처럼 한순간에 조용해져서 주변에서 구경했던 내공이 낮은 수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를 본 이태호는 탁한 기운을 깊이 내뱉었다.그의 예상이 맞았다.최상급 영보 이화 현황봉과 종주 선우정혁이 준 성왕 호신부를 사용하니 원래 그를 죽이겠다고 고함치던 오수혁과 명운택은 함부로 덤비지 못하게 되었다.그가 가진 성왕 호신부를 꺼리는 이유도 있지만 그를 죽일 때 너무 많은 천지의 영기를 소모하면 이어지는 쟁탈전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까 봐 두려워하는 이유도 있었다.그러나 이태호에게 있어서 그는 성공적으로 가장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였다.성공 고전이 열릴 때까지 오수혁과 명운택의 첫 목표는 그가 아닐 것이었다.잠시나마 이태호는 매우 안전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이런 생각에 이태호는 묵묵히 호신부를 보관하였고 단약을 꺼내서 복용하면서 단전 내에 소모된 영기를 보충하기 시작했다.이들의 싸움이 황당한 연극처럼 막을 내릴 때 갑자기 비웃음이 가득한 큰 웃음소리가 사람들의 귓가에 퍼졌다.“하하. 성자나 신자가 하나 뒤질 줄 알았는데 아쉽네.”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극히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고 주변의 지수풍화를 파멸시키는 여러 빛줄기가 큰 별의 근처에 나
게다가 성왕 호신부는 성왕급 수사가 정혈로 정제해야 했다. 대세력의 출신이 아니고 배경이 별로 없는 일반 성자급 제자는 거의 갖기 어려운 것이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태연자약하게 싸움 구경하고 있던 심인경도 미간이 찌푸려졌고 새까만 눈동자에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다.그도 이태호가 성왕 호신부를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흥미롭군. 어떤 성왕급 대능력자가 미리 이태호의 능력을 알아보고 투자를 했단 말이네.’이런 생각에 심인경은 이태호에 대한 경멸의 태도를 버리고 그를 자신과 같은 수준의 천교로 간주하게 되었다.한편으로 북해 만족의 구역 내에서 즐겁게 구경하고 있는 소주 백가민은 이태호의 몸에 나타난 방어 방패를 보고 눈에서 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원래 이번 싸움이 보잘것없고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명씨 가문와 요족이4급 성자 경지의 이태호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실력과 배경이 있을 줄이야.“태일성지라고 했나? 재미있네.”백가민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같은 시각에 요족 천교 오수혁과 마주한 전성민은 이태호의 몸에서 발산한 성왕급 수사의 기운을 느낀 후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그는 속으로 놀라워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이태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가 태일성지로 돌아가면 처벌받지는 않겠지만 종문 장로가 당부한 일을 망쳤으니 장로들이 그에 대한 인상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태일성지의 체면을 보호하기 위해 전성민은 할 수 없이 이태호의 앞에 나서서 지지하는 것이었다.그의 실력은 7급 성자 경지에 이르렀지만 혼자서 두 명의 7급 성자급 수사를 당해낼 수 없었다.지금 명운택이 이태호를 공격하고 있는데 오수혁이 그의 앞을 막아서 이태호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그가 초조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뜻밖에 이태호가 성왕 호신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니 어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는가?그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오수혁을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오 도우, 이태호가 우리 태일성지의 제자인 동시
다음 순간, 성왕급 강자의 기운이 이태호의 몸에서 솟아올랐다.팽배한 기운과 빛기둥은 순식간에 이태호의 주변에 둥근 보호캡을 형성했다.원래 살기등등한 명운택은 이 광경을 보자 순간 멈칫하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성왕 호신부?”지금 이 순간, 명운택은 마음이 조마조마해졌고 진퇴양난에 빠졌다.그는 이태호가 오만방자하게 굴 수 있는 건 이런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성왕급 수사가 성공 전장에 들어올 수 없지만 성왕급 수사의 신통 공법이 성공 전장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사실 성왕 호신부를 가지고 있는 천교들은 적지 않았다.어쨌든 성자나 신자는 각 대세력이 애지중지하게 아낀 보배 제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목숨을 중요시하였다.그래서 성공 전장에 들어오기 전에 각 종문이나 가문의 성왕급 장로들은 아끼는 제자들에게 호신부를 주면서 절체절명의 위기 때 사용하라고 알려주었다.동시에 상대방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셈이었다.명운택은 이태호를 대단한 뒷배가 없는 촌뜨기 수사라고 생각했었다.방금 전성민이 이태호를 적극 지지한다고 했을 때도 그는 그냥 전성민의 체면만 고려했지 이태호를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아무리 봐도 이태호는 4급 성자 경지에 불과했고 성자(聖子)나 신자들과는 전혀 비교할 수가 없었다.전성민이 이태호를 적극 지지한다고 했지만 태일성지의 제자가 그렇게 대단한가?그가 이태호를 죽여도 태일성지는 절대로 4급 성자 경지의 보잘것없는 수사 때문에 성지에 못지않은 명씨 가문과 척지지 않을 것이었다.그러나 이태호가 호신부를 꺼낸 순간, 상황이 완전 달라졌다.이는 이태호의 뒤에 성왕급 수사가 그를 아끼고 보호해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태호의 몸에서 갑자기 나온 성왕의 기운에 방금까지만 해도 살기등등한 명운택은 얼떨떨해졌고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수사들도 대경실색했다.“와, 성왕 호신부다.”“세상에, 이태호가 어느 성왕급 강자의 눈에 든 거야?”
명운택과 같은 천교는 동일한 경지의 상대를 가볍게 억압할 수 있는 기세를 가졌다.고작 4급 성자급 수사 따위가 아무리 대단해도 7급 성자급 수사의 상대로 될 수 없고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심무영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옆에 있는 심인경은 오히려 사색에 잠겼다.심인경은 불꽃처럼 강렬한 눈빛으로 이태호의 머리 위에 있는 이화 현황봉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7급 성자 경지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깨지지 않는 걸 보니 이 최상급 영보는 범상치 않은 것 같군.’같은 시각에 북해 만족의 구역 내에서 소주 백가민은 웃음을 머금고 전투 상황을 지켜보았다.북해의 만족은 중주 성지와 동황 세가 사이의 싸움에 개입한 적이 별로 없었다.그래서 그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태호가 명운택의 공격을 막아낸 것을 보자 다소 의아해했다. 이 두 천교에 비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는 수사들의 마음속에 엄청난 파도를 일으켰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헐, 죽지 않았다니.”“4급 성자급 수사가 7급 성자급 수사의 신통 공격을 막아냈어. 맙소사, 창란 세계의 역사상 없었던 일이지?”“오현까지 죽였으니 이태호는 확실히 보통 사람이 아니야.”“...”다들 놀라워하고 있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이태호는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명운택과 오수혁의 협동 공격에 이태호가 전성민의 지지를 받았어도 마지막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왜냐하면 오수혁이 전성민의 앞을 막아서 전성민은 이태호를 거의 도와주지 못한 상황이었다.그리고 명운택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기에 이태호가 최상급 영보를 갖고 있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최상급 영보는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기보다 내공이 훨씬 강한 천교와 맞서 싸운다면 언젠가 깨지게 될 것이었다.게다가 명운택과 같은 천교는 어찌 최상급 영보가 없을 수 있겠는가?명운택은 고개를 들고 이화 현황봉을 바라보자 그도 현황봉에서 발산한 빛이 방금보다 많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냉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