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겸손한 태도에 백진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가 너무 사람을 돈으로만 판단해서 문제네요, 하도 돈이나 권력만을 따지는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똑같이 변해가고 있었네요, 요즘 시대에 이태호씨처럼 정직한 사람은 보기 드물어요."같은 시각 백지연은 아버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빠, 방금 이태호 오빠랑 문을 들어서고 있을 때 백다해하고 백월금이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백지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백진수는 손을 뻗어 멈추라는 동작을 했다. "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 다 아니까 그만해도 돼, 비록 혼수상태에 빠져 있긴 했지만 배은망덕한 그 두 놈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거든, 감히 돈을 위해서 나한테 손을 댈 궁리를 했다는 게 괘씸하기도 하지, 심지어 너한테도 해를 입히려고 했다는게 용서가 안 돼."그러고는 주먹을 웅켜쥐며 말을 이었다. "이따 나가서 은혜도 모르는 저 놈들 은행카드와 신용카드를 몽땅 동결시키고 회사에서 쫓아낼거야, 백씨네에서 한 푼도 못 받고 빈털털이로 내보내 버릴 예정이야."백진수는 점차 격분해졌다. "친척 관계만 아니었어도 능력도 별로인 저들을 두 회사의 총지배인으로 임명하지도 않았어, 더욱이 한 사람당 고급 차와 고급 주택도 마련해주고 우리와 함께 생활하게까지 했는데, 이 정도면 내가 결코 얄팍한 사람은 아니잖아? 근데 어떻게 그런 못된 욕심을 부릴 수가..."화가 치밀어 오르는 백진수를 보며 이태호는 다급히 주의를 주었다. "성주님, 전보다 몸이 회전되긴 했지만 요 며칠동안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절대 노여워하시면 안 되세요."백진수는 이내 안정을 찾고 백진수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태호씨가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황천 길을 한 번 다녀와 보니 재물 보다 중요한게 건강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제 마음도 넓어진 듯 해요."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 말을 덧붙였다. "오늘 이태호씨에게 큰 신세를 졌는데 제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뭐든 마음 놓고 얘기하세요."이태호는
"사촌 오빠. 나았으니 잘됐어요. 우리 모두 걱정했어요!"백월금도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백진수는 속으로 냉소했다. 그가 전에 의식을 잃었을 때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듣지 않았다면 정말로 이 두 사람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백진수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여봐라!"하고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밖에서 경호원들이 뛰어 들어왔다.그러자 백진수는 "백월금, 백다해, 너희 둘이 전에 위층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못 들은 줄 알아? 다들 내가 죽기를 바라고 내 재산을 나누기를 바랬지. 그리고 내 딸을 죽이자고 했지? 허허, 나는 혼수 상태에 빠져서 눈을 뜰 수 없지만 너희가 하는 말은 다 들었어!"라고 말했다.백진수는 말을 마친 뒤 한발 앞서 상대방을 노려보며 "평소 나 백진수가 너희들에게 박하지 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들은 진짜 양심이 없는 짐승이야!"라고 말했다."설마? 백다해 정말 짐승 같은 새끼야!""그러게? 티가 안 나지만 그들은 평소에도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부하직원들을 자주 괴롭힌다고 하던데!"다른 백씨 집안의 친척들은 그 말을 듣고 서로 의논을 하며 두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사촌 동생, 오해했구나. 우리 그런 말 한 적 없어!"두 사람은 깜짝 놀랐지만 백다해는 이내 진정하고 백진수를 향해 "사촌동생, 네가 잘못 들었어. 아니면 네가 방금 혼수상태에 빠져서 환각이 생겼거나 혹은 꿈을 꿨거나. 나와 백월금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그러자 백월금도 "맞아요. 분명 얼떨결에 환각을 느꼈을 거에요. 우리가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에게 용기를 줘도 우리는 감히 그럴 수 없지요."라고 말했다."흥!"백진수는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넌 베개로 날 죽이려고 했는데, 또 뭘 못 하겠어? 오늘 이 선생이 나를 구하지 않았으면 아마 우리 백씨 집안 재산은 너희 둘께 됐을 거야?""사촌 오빠, 분명히 오해가 있어요!"백월금은 가슴에 손을 대고 "이봐요. 난 양심 있어요!"라고 말했다.
바로 그때 백씨네 집사가 백진수에게 걱정 어린 어조로 물었다.일가친척도 아닌데다 백씨네로 위해 삼십여 년의 청춘을 바친 이 노인을 바라보며 백진수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저 괜찮아요 집사님, 제 몸에 쌓여 있는 독극물을 이태호씨께서 거의 다 배출해 주셨습니다. 남아 있는 잔여물들은 이태호씨의 처방대로 한약을 지어 먹으면 깨끗하게 없어 질거고요."그의 말에 집사는 한시름이 놓였다. "명의님이 우리 주인님을 살려 주셨다니 대단히 감사합니다."줄곧 그 하인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이태호는 집사에게 웃으며 답했다. "별 말씀을요, 제가 지연의 친군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그는 말을 마치곤 종이와 펜을 요구해 처방전을 써서 집사에게 건네주었다."그런데 가주님이 집 밖에 잘 나가시지도 않았는데 왜 갑자기 중독 되신거예요?"고민해 보니 의혹이 잘 풀리지 않았던 집사는 백진수에게 물었다.머리가 복잡해져 해명하기도 귀찮았던 백진수는 손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들 수고가 많네요, 저도 이젠 다 괜찮아졌으니 여기에 모여 있지 말고 볼 일들 보세요.""알겠습니다."집사와 기타 백씨네 하인들은 밖으로 향했다.그러나 몇 걸음 가지도 않아 이태호는 아까 그 중년 여성을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어이, 거기 멈춰 서세요."이태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식겁해진 그 여성은 몸을 떨며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저한테 뭐 볼 일이라도 있으신거예요?"이태호가 왜 이아줌마에게 고함을 지르는지 예측이 안 됐던 백지연도 당혹스러웠다. "놀랬잖아? 우리 집에서 수년간 일해 온 이아줌마한테 왜 그래?"이태호는 이내 미소를 보였다. "그냥 땅에 뭘 떨어뜨렸길래 알려줄려고 했지."이태호는 땅에서 지갑 하나를 주워 그 여성에게 건네주었다. "이아줌마의 지갑이 떨어져 있길래 부른거예요.""어머, 감사합니다."언제 주머니에서 지갑이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혹여 이태호가 뭐라도 눈치 챘을 까 식은 땀만 흘리던 이아줌마는 그제야 안도하고 있었다."별 것도 아닌데요 뭐."이태호는 착한
"그러니까 시간이 흐른 뒤에 발작하는 그런 만성 독이었네, 일단 독이 퍼지기만 하면 치명적이라는 뜻인거지?"백지연은 곧이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휴, 우리가 오랫동안 일해 오신 이아줌마에게 얼마나 잘 해줬는데 그럴 분인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이태호는 담담하게 웃었다."언뜻 봐도 성실해 보이는 분이던데 아마도 누가 배후에서 지시한 걸꺼야, 단향을 놓은 것뿐인데 이렇게 일이 커질줄은 이아줌마도 몰랐을 거거든, 지금은 독도 다 제거됐으니까 이아줌마가 빠른 시일내에 배후에 있는 사람을 찾으러 갈거야, 우리는 아줌마를 미행하기만 하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 수 있을거고."백진수는 이태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역시 대단하구만, 의술도 뛰어나고 일을 세심하고 치밀하게 분석하는 능력도 특출나시고 정말 제가 두손 두발 다 들 정도로 존경스럽네."백지연 역시 뒤늦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어쩐지 이아줌마를 부를 때 마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만 같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라니, 떳떳하면 그런 반응일 수가 없을 텐데, 지금 보니 확실히 뭔가 찔리는 게 있어 보이네요."옆에 있던 백진수도 말을 덧붙였다."이태호씨의 말씀 대로 이아줌마가 매일 밤 제 방에 피어 놓은 단향과 몸 안에 독이 혼합되어 효과를 발휘했다면 이제부터는 단향을 피우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 나무의자를 계속 남겨 둬도 되지 않나?"몇 달 전 이아줌마가 숙면에 도움이 된다면서 백진수에게 단향을 추천했었는데얼마 동안 사용을 하고 나니 실로 잠이 잘 들기도 해서 백진수도 별다른 의심이 없이 지금껏 사용했던 것이다.오늘 이태호만 아니었으면 그는 무슨 이유인지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백진수의 물음에 이태호는 쓴웃음을 지었다."가주님, 목숨까지 위협한 의자에 아직도 미련이 남으신거예요? 소재는 물론이고 조각도 잘 돼 있는 보기 드문 보물이긴 해도 더 이상 사용하시면 안 되세요, 이따 정원으로 들고 나가서 태워 버리세요, 웬만하면 이아줌마가 알아챌 수 있게
"게다가 오빠가 오지 않았으면 저는 유일한 가족을 잃었을 거예요, 뭐로 보답해야 할 지..."백지연은 입을 오므리고 웃더니 이태호에게 몰래 뽀뽀할 작정으로 갑자기 달려 들었다.지난 번에도 대담한 이 계집애에게 습격을 당했던 이태호는 이번에는 미리 그녀의 행동을 예측하고곧장 오른 쪽으로 몇 미터 거리를 움직여 그녀를 피해 버렸다.섭섭해진 백지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뭐야? 내가 오빠 잡아먹기라도 할 까봐 그렇게나 멀리 도망간거야?"이태호는 가슴을 두드리며 답했다."내가 빨리 도망가지 않았으면 바로 기습했을 거면서! 진짜로 날 잡아 먹을 것 같았거든!""칫, 나한테 뽀뽀 받는 게 싫어요?"백지연은 이태호를 눈으로 흘겼다."대체 내가 어디가 꿀리는데요? 얼굴이 안 예뻐요? 다리가 가늘지 않아요? 뭐 몸매가 안 좋아요? 왜 자꾸 피하는 거예요? 나를 첩으로 데려 가도 오빠한테는 손해 볼 게 없잖아요."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와 줄곧 졸졸 호의를 표시하며 따라다니던 남자들도 전부 무시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던 백지연은 이태호의 반응에 진짜로 화가 났다.그것도 그런지라 이제는 스스로 아가씨의 신분을 내려놓고 이태호에게 구애했는데이태호는 그녀를 마치 남자한테 사랑을 받지 못 해 안달난 여자나 외모가 딸리는 여자인마냥 대했으니 말이다."켁켁, 지연이가 얼마나 예쁜데 무슨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문제는 내가 우리 아내외엔 다른 여자를 들일 계획이 없거든, 더군다나 나이도 어린 너를 보면 개구쟁이로 밖에 안 보이거든."이태호는 부자연스레 두 어번 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지금과 같이 쭉 오빠와 동생사이로 지내면 얼마나 좋아.""안 돼."백지연은 반박하고 나섰다."지금은 오빠 동생사이라 해도 앞으로는 관계를 더 발전시켜야 돼, 아무튼 날 떼어낼 생각하지 마."집요한 그녀를 보니 이태호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자 이태호는 세워진 차를 향해 몇 발짝 걸어 도착한 후 백진연에게 말했다."아가씨, 급한 일 있으면 제 번호로 연
잠시 마음을 추스린 이아주마는 방문을 나와 뒤에서 두 사람이 미행하고 있다는 걸 모른 채산책을 하고 있었다.한참을 걷자 몇몇 경호원들이 정원으로 나무의자를 옴겨 휘발유를 부은 뒤 장작불을 얹어 불을 붙이는 장면을 목격했다.이아줌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사실을 파악해야 되니 경호원들에게 걸어가 물었다."도이야, 성주님이 제일로 애지중지하는 이 귀한 나무의자를 지금 왜 태우고 있는 거야? 손님들 앞에서도 늘 자랑했었던 거잖아."도이라는 경호원이 답했다."저희야 모르죠, 가주님이 나무의자에 독이 스며 들었다면서 없애버리라고 했어요, 대하에선 두 눈 부릅 뜨고도 찾아 볼 수 없는 이 귀중한 보물을 태우라니 참...""아, 그렇구나."이아줌마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하던 산책을 계속 했다.한 편 집에 돌아온 이태호는 미리 퇴근해서 쉬고 있는 신수민이 눈에 들어왔다.이태호가 집에 들어서자 그녀는 이태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아버님, 어머님이 당신이 백성주님 병 치료해주러 갔다고 하던데?"이태호는 응했다."맞아, 다만 병은 아니고 누가 성주님에게 아주 음험한 독을 탔더라고, 사촌 형과 사촌 여동생까지 전부 성주님 목숨을 노리고 있었지 뭐야, 감회가 참 새로워, 일가친척들마저 믿을 수 없는 세상이니 말이야."신수민은 더욱 궁금해졌다."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좀 설명해 줄래?"이태호는 그제야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쯧쯧, 어떻게 친동생이 그럴 수가 있어, 그리고 사촌 형과 사촌 여동생은 독이 퍼져 기절해 있는 성주님을 그냥 베개로 숨막혀 죽일 궁리에 백지연도 없애 버려 백씨 자산을 몽땅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는 게 참으로 공포스러울 지경이야."백지연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휴, 어떻게 돈을 위해서 이토록 이성을 잃고 잔인해 질 수가 있어? 인간의 본능이 이런 건가?"이태호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백진수가 친동생인 백진운과 사이가 아주 돈독했었대, 또한 백진운은 해외에서 크게 사업을 하고 있고 돈도 충분
그녀의 말에 진땀이 난 이태호는 몸둘 바를 몰랐다."진심이야? 여보? 그 계집애가 걸핏하면 나한테 고백해서 수치스러워 죽겠는데 마음을 다스려주라니? 자기 남편이 뉘 여자한테 빼앗길 까 두렵지도 않아?""큭큭!"신수민은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또 허풍 치고 있네, 아가씨가 호불호가 분명한 그런 활발한 성격이어서 그렇지, 설마 당신한테 막 들이대서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신수민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아도 믿지를 않으니 이태호는 어이가 없었지만이내 다른 질문으로 화제를 옮겼다."아, 참, 우리 신씨 집안과 이영호가 속해 있는 이씨나 하씨네와 합작 관계가 얽혀 있는 거 아니지?"신수민은 순간 의문이 들었다."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 하씨라면은 줄곧 거래가 없었고, 이영호는 당신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내 환심을 사기 위해 신씨 집안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했었어, 그 기회를 노려 신민석 그 사람이 이씨네와 여러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어."정적이 잠시 흐르다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주로는 건축 자재 쪽으로 합작이 많아."이태호는 즉시 의견을 내놓았다."내일부터는그들과의 합작을 중단 시켜, 시간이 빠를수록 좋아, 안 그러면 큰 손실을 입을 거거든."신수민도 그의 말을 뒤따랐다."난 이영호 그 자식이 꼴 사나워서 다반수의 합작관계를 미리 다 중단 시켜 놓았어, 문제는 건축 자재쪽으로는 우리에게 남긴 이윤이 쏠쏠하니까 지금껏 보류한 거고, 근데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왜 그래?"이태호는 그녀의 물음을 답해 주었다."제갈네, 용씨네 그리고 백씨네까지 요시일내 이씨 집안을 강하게 탄압할 거야,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이씨네는 파산 위기에 놓일 거고, 그 전에 자기한테 알리는 거야.""뭐!"이류 명문가를 하룻밤사이에 몰락하게 만들다니? 보아하니 이태호가 손을 썼다는 걸 알아챈 신수민은 이태호가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겨졌다."알겠어,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막상 다가올 제재와 탄압을 이씨네와 하씨네가 당해내지 못한다는 것 또한 잘
"넵, 바로 문 닫을게요."한결 행복해진 이태호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궜다."혹시 키스해도 돼?"이태호는 몸매가 섹시하기 그지 없이 완벽한 신수민의 매혹적으로 붉은 입술을 보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애도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데 매일 밤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를 옆에 두고 만질 수도 없으니 안달이 안 날 수가 없었다.잠시 고민을 하던 신수민은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나 먼저 샤워하고 나와서 얘기해."신수민은 그 말만 남긴 채 홍당무우처럼 붉어진 얼굴을 하곤 신속히 욕실로 들어섰다.수줍어하는 신수민의 모습은 실로 곱고 매혹적이었으니 이태호는 더욱 흐뭇해졌다."먼저 샤워해야지!"욕실에서의 주루룩 흘러 내리는 물소리가 들려오자 이태호는 침대에 누워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어느덧 샤워를 끝낸 신수민은 수줍어하다 급히 욕실로 들어오는 바람에 잠옷과 속바지를 까먹고 챙기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머리가 띵해졌지만 곧 입술을 깨물며 이태호에게 부탁을 했다."남편, 내가 잠옷을 깜빡하고 챙기질 못 했네, 좀 가져다 줄래, 훔쳐보면 안 돼.""알겠어."이태호는 옷장을 열고 두리번 거리다 가장 짧은 슬립 잠옷 치마를 선택한 후 재차 신수민에게 말을 걸었다."자기야, 속옷과 속바지도 필요한 거야?""당연한 거 아니야!"신수민은 식식거리며 답했다."내가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켁켁, 그럼 나야 좋지."이태호는 어색한 기침을 하고 옷장을 뒤지다 또 욕실에 있는 신수민에게 물었다."자기야, 무슨 색 속바지를 줘야 돼? 핑크 아니면 블랙?""아무거나 다 돼..."이 자식이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신수민은 얼굴이 다시 후끈 달아 올랐다.옷을 다 챙기고 난 이태호는 문이 열린 틈사이로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시간이 조금 흐른 뒤 욕실에서 걸어나온 신수민은 슬립의 가장자리를 수줍게 잡아당기며 이태호를 노려 보았다."너 고의적으로 하도 많은 잠옷 중에서 하필 제일 짧은 치마를 고른 거지?"이태호는
맹동석이 자신의 추측을 확인하기도 전에 기타 봉주들도 잇달아 대전 입구에 도착했다윤하영, 진남구 등 8명의 봉주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갈 때 맹동석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그들은 가장 먼저 상석에 앉은 연장생을 주목했다.몇몇 봉주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자 연장생의 옆에 앉은 선우정혁은 그들이 연장생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그는 웃으면서 소개하였다.“성지에서 오신 대장로님께 인사를 드리라고 자네들을 부른 거네.”맹동석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성지에서 오셨다고요?”태일종의 성지라면 중주의 태일성지였다.봉주인 그들이 꿈에서도 들어가고 싶은 곳이었다.선우정혁은 맹동석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성지에서 오신 대장로님은 우리 태일종에서 며칠 머물다가 곧 이태호를 호송해서 중주 성지로 가실 거야. 수행과 관련된 궁금증이 있다면 대장로께 여쭤봐도 되네.”맹동석 등이 연장생의 신분을 듣고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선우정혁이 이어서 한 말을 들었다.이번에 맹동석뿐만 아니라 기타 여덟 명의 봉주도 모두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이태호를 중주성지로 호송하기 위해 왔다고?이태호는 천부적 재능이 출중해서 종문 겨루기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중주성지의 대장로까지 직접 나서서 호도자로 되어 이태호를 호송할 필요가 있을까?예전에 태일종의 겨루기 대회에서 1위를 한 자는 모두 자신이 영패를 가지고 중주로 갔다.다들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맹동석은 바로 성공 전장을 떠올렸다.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태호가...”상석에 앉아 있는 연장생은 반응이 빠른 맹동석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9급 성자급 수사가 이렇게 빨리 사실의 본질을 알아봤다는 것에 다소 놀라워했다.하지만 그도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이태호가 선연을 얻은 사실은 이미 온 창란 세계의 대세력에 알려졌고 머지않아 곧 천남으로 전해질 것이다.그리고 성공 전장에 같이 갔다 온 고준서 등 목격자도 있지 않은가.더구나 태일종은
남두식과 이태호가 담소를 나누던 중, 대장로가 다가와서 이태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잠시 후, 대장로는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운 표정으로 물었다.“태호야, 이번에 성공 전장에서 내공이 또 오른 것 같구나.”그의 기억에 이태호가 떠날 때 지금처럼 이렇게 큰 압박감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았다.그러나 한 달 만에 이태호는 환골탈태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이태호는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운이 좋아서 거기서 돌파했어요.”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한순간에 조용해졌다.‘운이 좋아서?’이태호가 떠날 때 방금 3급 성자 경지로 돌파했다. 그러나 방금 그의 말에 따르면 성공 전장에서 4급 성자 경지로 돌파했다는 뜻이었다.성자 경지에 이르면 내공을 높이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는가?그러나 대장로 등은 이미 이태호의 괴물과 같은 천부적 자질에 익숙해졌다.이태호의 경지가 또 높아졌다는 사실을 들은 후 대장로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자네와 은재는 모두 괴물이야. 네가 천청종에 있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돌파했는데 지금 은재도 너와 똑같아.”대장로의 부러워하면서도 못마땅한 표정에 이태호는 어이가 없어서 말없이 웃기만 하였다.남두식은 대장로의 말을 끊고 웃으면서 말했다.“됐소. 오늘 태호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축하 잔치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소?”사실 이태호가 없는 동안 남두식은 걱정돼서 오랫동안 안절부절못했다.그는 성공 전장이 너무 위험해서 예로부터 성지의 성자들도 적지 않게 죽었다고 들었다.딸인 남유하와 신수민 등 여인들이 마음에 병이 생길 정도로 매일 이태호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마음도 아팠다.이제 이태호가 무사히 돌아왔고 딸도 매일 슬퍼하지 않아도 되니 그는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은 이태호를 위해 축하 잔치를 준비하자는 말을 듣고 모두 흔쾌히 동의하였고 서둘러 식재료를 준비하러 갔다....이와 동시에. 제7봉의 대전 내에서 제7봉의 봉주 맹동석은 한창 종문의 사무를 처리하고 있었다.한 달 전에 종주 선
두 여인의 맑은 목소리가 이구동성으로 이태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는 하늘에 나타난 남유하와 백정연을 바라보았다.오늘 남유하는 흰 비단옷을 입었고 긴 머리카락을 드리웠다.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부는 옥처럼 희고 마치 새벽의 이슬을 머금은 복숭아꽃처럼 맑고 투명하며 콧대는 높고 입술은 유달리 부드러워 보였다. 참으로 그림속에서 걸어 나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옆에 있는 백정연은 주홍색 긴 치마를 입었고 온몸에서 활기와 생동감으로 넘쳤다.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매끄럽고 반짝였으며 검은 폭포처럼 허리까지 내려왔고 바람에 휘날리면서 부용꽃처럼 고귀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두 여인은 빠르게 이태호의 곁에 달려왔고 기쁨에 겨운 눈물을 가득 흘렸다.이태호는 손으로 두 여인의 붉은 눈시울을 닦아주면서 다정하게 웃어주었다.“왜 울어? 내가 돌아왔잖아.”그는 여인들을 데리고 정원에 온 후, 그녀들이 많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변화가 가장 큰 것은 신수민과 남유하였다.그가 떠날 때 신수민은 불과 5급 존황 경지였는데 지금은 7급 존황 경지로 돌파했고 백지연과 백정연 자매도 4급 존황 경지에서 6급 경지로 돌파했다.이런 실력은 중주 성지에서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태일종에서 상위권에 속하였다.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내가 없는 동안에 모두 열심히 수련했군.”눈물을 훔친 남유하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참, 은재는?”이태호는 이제야 딸 신은재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은재는 며칠 전에 폐관 수련하기 시작했어.”딸 얘기를 하자 신수민의 얼굴에 어머니로서의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은재의 천부적 자질은 당신보다 좋아요. 이번에 5급 존황 경지에 도전하려고요.”신은재가 한 달 만에 5급 존황 경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태호도 다소 놀랐다.그는 너무 빨리 돌파하면 기반이 불안정할 수 있다고 말해주려던 찰나,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 태호야, 돌아왔구나.”“돌
요광섬의 고풍스러운 정원에서 긴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황금빛 구름이 수놓은 흰색 장화를 신은 신수민은 지루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서 정원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옆에는 하얀 수선화 무늬의 치마를 입은 백지연이 앉아 있는데 주전자를 들고 영기가 넘친 따뜻한 차 두 잔을 따랐다.그녀는 한 잔을 신수민의 앞에 두고 나서 손바닥으로 턱을 괴면서 말을 건넸다.“언니, 태호 오빠가 떠난 지 한 달 넘었는데 언니의 넋까지 나간 것 같아요.”백지연의 농담에 신수민은 눈을 흘기면서 퉁명스럽게 답했다.“태호가 걱정돼서 그래. 한 달이나 지났는데 태호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그녀는 성공 전장이 지극히 위험하고 창란 세계의 모든 천교가 모였으며 7급 성자 경지의 성자와 신자들도 수두룩하다는 소문을 들었다.이태호는 떠나기 전에 3급 성자 경지에 불과했기에 신수민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백지연도 신수민의 말을 듣고 눈에 그리움과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그녀는 고개를 흔들고 마음속에 올라오는 초조함을 억누른 후 가슴을 두드리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태호 오빠는 강하니까 분명히 무사히 돌아올 거예요.”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요광섬 전체를 뒤흔드는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돌아왔다!”두 여인은 이 목소리를 들은 순간, 몸이 움찔했다.그녀들은 곧바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활짝 웃으면서 요광섬의 입구를 쳐보았다.신수민은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중얼거렸다.“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한편으로 백지연은 입을 가리고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태호 오빠, 진짜 맞죠?”이태호는 요광섬의 진법을 해제한 후 바로 신수민과 백지연의 앞에 도착했다. 두 여인이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이제 한 달 지났는데 남편도 몰라보는 건가?”이태호의 목소리가 다시 두 여인의 귓가에 울리자 그녀들은 드디어 이태호가 정말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자
옆에 있던 연장생은 이를 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자 공포스러운 성황의 힘으로 하늘을 뒤덮은 핏빛 먹구름을 순식간에 깨끗하게 몰아냈다.그러고 나서 그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이태호를 유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내공을 완성한 4급 성자 경지라... 내공이 좀 부족하군. 그런데 전성민이 네가 성공 전장에서 4급 경지의 내공으로 용족의 천교 오현을 죽였다고 하는데 사실이냐?”연장생의 질문에 이태호는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장로님.”“하하, 좋아!”연장생의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냈고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이태호를 바라보았다.그러고 나서 웃음을 머금고 옆에 있는 선우정혁에게 말했다.“먼저 자네 태일종으로 돌아가자.”선우정혁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연장생이 등장하고 육무겸과 풍석천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잠깐의 시간만 흘렀다.선우정혁의 분노가 가라앉기도 전에 두 성왕이 그의 눈앞에서 목숨을 잃었다.성황급 대능력자인 연장생의 요구에 그는 당연히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다른 건 몰라도 그가 태일성지에서 수련할 때 연장생은 이미 창란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성황급 수사였다.지금 그가 태일종의 종주로 된 지 수백 년이 지났으니 연장생의 실력은 더욱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바로 가시죠.”선우정혁은 말하고 나서 바로 허공을 찢고 연장생을 데리고 태일종을 향해 날아갔다.이들이 떠난 후 수십 리 밖의 공간에서 나온 맹호식과 송현아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연장생 등이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청허파의 문주 맹호식은 육무겸과 풍석천의 숨결이 빠르게 사라진 것을 느끼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천남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오.”옆에 있는 묘음문 문주 송현아의 아름다운 얼굴에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면서 말했다.“육무겸과 풍석천를 단번에 죽였다니. 이게 바로 성황급 강자의 무서운 실력인가요?”연장생의 닭을 잡듯이 두 성왕을 죽인 모습을 보자 송현아는 죽음의 문턱에 갔다 온 것처럼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아
두 성왕은 지극히 빠른 속도로 공간을 찢고 도망쳤다.허공에 서 있는 연장생은 그들의 뒷모습을 담담히 쳐다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그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육무겸을 노려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네놈이 자결하면 온전한 시체는 남겨두마.”성지의 제자에 손을 대는 것은 죽을 죄였다. 특히 이태호는 선연을 얻은 후 태일성지 장로들의 눈에 들어왔고 그의 신분도 높아졌으며 차세대 성자로 키울 작정이었다.그러나 당당한 성지의 제자가 하마터면 육무겸의 손에 죽을 뻔했으니 연장생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육무겸은 그의 말을 듣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주저하지 않고 바로 허공을 찢고 도망치려고 하였다.이에 연장생은 조롱 섞인 야유를 날렸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성왕급 수사는 그에게 있어서 장난감에 불과했다.연장생이 미간을 찌푸리자, 몸에서 내뿜은 성스러운 빛은 순식간에 주변 만 리에 이른 구역을 뒤덮었다.이 구역 내의 공간은 바로 봉쇄되었고 공간의 장벽도 더욱 견고해졌다.원래 허공을 찢고 도망치려던 육무겸은 공간이 봉쇄된 것을 보자 얼굴에 당황하기 그지없는 기색을 드러냈다.안하무인으로 살아온 육무겸은 비로소 얼음 구멍에 빠진 듯한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애걸했다.“연 장로님, 소인이 이성을 잃고 미련에 사로잡혀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연장생은 피식 웃으면서 조롱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방금 도도했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는 허공 통로의 입구에 있는 이태호의 앞에 다가가서 말했다.“젊은이, 이 자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그는 한손으로 공간이 봉쇄되어 움직일 수 없는 육무겸을 붙잡고 손끝에서 성스러운 빛을 내뿜으면서 육무겸의 육신을 꿰뚫고 그의 내공을 모두 폐해버렸다.그러고 나서 보이지 않은 공간의 힘으로 초주검이 된 육무겸을 이태호의 앞에 내던졌다.내공이 모두 폐하고 중상을 입은 육무겸은 사색이 되어 죽어가는 개처럼 바닥에 엎드렸다.그는 발악하면
선우정혁은 나타난 사람을 보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연 장로님, 드디어 오셨군요.”선우정혁은 예전에 태일성지의 제자로서 당연히 태일성지의 장로인 연장생을 알고 있었다.그는 이태호가 종문으로 돌아간 후 중주 성지에서 장로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방금 이태호를 맞이할 때 의식적으로 육무겸과 풍석천을 경계하지 않아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비록 그는 천남의 최강자로서 7급 성왕 경지의 내공을 가졌으나 단시간 내에 두 성왕급 수사의 협공을 격파할 수 없었다.특히 두 사람의 목표는 그가 아니었고 육무겸이 자신을 견제하고 동안 풍석천이 이태호를 공격하는 성동격서의 전략을 사용하였다.선우정혁이 무척 당황했고 이태호가 죽임을 당할 찰나에 연장생이 도착했다.허공 틈새에서 나온 연장생을 보자 그는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마음이 놓였다.연장생은 선우정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이태호를 바라보았다.이태호가 성왕급 수사와의 대결에서 몇 초식을 버티는 모습을 보자,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곧이어, 그는 시선을 이태호의 앞에 있는 풍석천에게 돌렸고 손을 들고 허공을 향해 오므리자 순식간에 보이지 않은 힘이 병아리를 잡듯이 풍석천을 자기 앞으로 끌어왔다.“성왕 주제에 겁도 없이 감히 우리 성지의 제자를 해치다니. 네놈들에게 한 수를 가르쳐 주겠다.”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손가락을 뻗어 풍석천을 향해 까닥였다.다음 순간, 천남 지역의 수만 리나 되는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짙은 먹장구름이 밀려왔으며 천둥 번개가 질주했다.연장생의 손가락에서 눈부신 빛줄기를 뿜어냈고 벌레를 밟아 죽인 것처럼 풍석천의 육신을 바로 피안개로 만들어버렸다.강력한 성왕의 신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도자기처럼 부서졌고 자고자대했던 풍석천은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허공 통로의 입구에 선 이태호는 풍석천이 갑자기 죽자 그를 엄습해 온 성왕의 위압도 순식간에 사라졌음을 느꼈다.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연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후 허공에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마어마한 기운이 밀물처럼 주변 수십 리의 구역을 뒤덮었다.이어서 얼어붙은 공간 내에 갑자기 높이가 수 장(丈)이나 되는 공간 틈새가 나타났다.은백색의 보선(寶船)이 공간 틈새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그다지 크지 않은 보선의 앞머리에는 해, 달, 별, 구름 등 문양이 수놓인 흰 장포를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나이는 예순 정도로 보이고 백발이지만 혈기왕성해 보였다.이 노인이 바로 태일성지의 대장로 연장생이었다.그가 성지 종문의 대전 내에서 이태호가 선연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곧바로 자음진인에게 천남에 와서 이태호를 보호하겠다고 청했다.태일성지에서 출발한 후 그는 수십 만리나 넘을 수 있는 전송진을 거쳐서 천남 지역에 도착했다.천남에 이른 후 연장생은 신식을 방출해서 성공 전장에서 천남에 내려오는 착륙지를 수색하다가 마침 육무겸과 풍석천이 이태호를 협공한 장면을 포착해서 주저하지 않고 공간을 찢고 나타난 것이었다.다행히 그는 이태호가 다치기 전에 도착했다.다채로운 보선을 조종해서 허공 틈새에서 나온 연장생은 살기등등한 풍석천이 이태호의 코앞까지 접근한 것을 보자 안색이 음침하기 그지없었다.다음 순간, 그의 몸에서 천지를 압도하는 공포스러운 위압을 발산했고 하늘이 무너지고 대지를 붕괴하게 할 수 있는 기운이 퍼져 나왔다.이 기운을 가장 먼저 느낀 풍석천은 대경실색했고 목소리는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떨렸다.“성...성황?!”성왕급 수사인 자신으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낄 수 있고 공간을 봉쇄할 수 있는 것은 성황급 대능력자가 틀림이 없었다.지금 천남에서 실력이 가장 강한 선우정혁도 7급 성자급 수사에 불과했다.그리고 상대방의 말에서 눈앞의 은발 노인은 태일성지의 사람이 분명했다.순식간에 풍석천의 등골에 식은땀이 났고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그가 육무겸과 손잡아서 이태호를 공격하는 것은 태일성지가 움직이기 전에 이태호가 대능력자로 성장하지 못하게 죽이려는 것이었다.그러나 태일성지의 움직임이 이렇게 빠를
선우정혁은 이제야 비로소 육무겸과 풍석천의 속셈을 꿰뚫어보았다.그는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감히 우리 태일종의 제자에게 손을 대다니. 죽을 작정이로군! 지금 이태호는 태일성지의 제자인데 네놈들이 그의 털끝이라도 다치게 한다면 신소문과 풍씨 가문은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거야!”선우정혁은 육무겸과 풍석천이 갑작스레 공격을 진행한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일반적으로 말하면 이런 상황에 먼저 친분을 쌓기 위해 너도나도 친한 척하지 않은가.진선 정혈을 얻은 이태호는 백년도 안 된 사이에 신선으로 비승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 두 사람은 친분을 쌓기는커녕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주변에 있는 맹호식은 육무겸과 풍석천이 어리석다는 듯 흘겨보았다.육무겸은 선우정혁의 말을 듣고 냉소를 머금고 대꾸했다.“흥, 우리 신소문만 이태호를 죽이려는 게 아니다. 이놈은 하늘이 높은 줄도 모르고 여러 성지에 미운털이 박혀서 내가 대신해서 처리해 주는 거야.”이에 선우정혁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붉은 빛이 번쩍이는 최상급 영보를 손에 쥐었다.한편으로, 허공 통로에서 막 걸어 나온 이태호는 선우정혁에게 인사하기도 전에 강렬한 살기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느꼈다.이어서 무서운 성왕급 기운이 밀물처럼 자신을 향해 엄습해 오면서 마치 큰 산의 제압을 받은 것 같았다.그가 반응했을 때 풍씨 가문의 가주 풍석천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덮쳐왔다.‘위험해!’위험을 느낀 이태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현황봉과 청광순, 그리고 성왕 호신부를 꺼냈다.이미 눈앞에 다가온 풍석천은 이를 보고 하찮게 여기는 표정으로 말했다.“고작 방어 영보로 성왕급 수사의 공격을 막겠단 거냐?”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주먹은 이미 현황봉을 향해 날아갔다.펑. 풍석천이 날린 주먹 한 방에 현황봉이 바로 날아갔다. 예전부터 줄곧 철벽 같은 방어장벽을 만들던 현황봉에 주먹 자국이 생겼고 빽빽한 균열이 나타났으며 원래 넘쳐흘렀던 영광은 순식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