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유강후는 멈칫했다. 그럼에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탐하고 싶은 욕구가 더 세졌다.입안에서 퍼지는 비릿한 피 맛에 온다연은 이성을 되찾았다. 유강후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조금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손으로, 제가 손으로 해줄 테니까 제발 그만해줘요.”유강후는 두어 번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녀를 놓아줄지 말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2초쯤 지났을까, 그의 큰 손이 부드러운 그녀의 작은 손을 감싸며 내렸다.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내가 하라는 대로 해.”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온다연은 팔이 부러질 듯 저렸다. 그제야 유강후는 그녀를 놓아주었다.여전히 부족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덮쳐야 그의 욕망이 채워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온다연은 그를 똑바로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온천탕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커다란 수건을 들어 자신의 몸에 두른 후 슬리퍼를 신을 새도 없이 잽싸게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그 뒤로 그녀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유강후가 사람을 불러 그녀의 방 문을 억지로 열었을 때 그녀는 이불 속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게다가 같은 말만 반복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안 돼요...”“제발...”“삼촌, 안 돼요...”의사를 불러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약을 먹이고 나서야 그녀는 더는 중얼거리지 않았다.의사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했는지 그녀의 방에서 떠나기 전 계속 우물쭈물 눈치만 보고 있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도련님, 제 오지랖일 수 있겠지만 이 아이는 원래부터 마음에 상처가 있고 낯을 가리는 아이예요.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아 주세요. 두 사람은 아직 젊으니까 사랑을 나눌 시간은 많잖아요. 천천히 다가가야 이 아이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거예요.”늙은 의사는
그녀는 여전히 그를 두려워하고 밀어내고 있었다.이건 그의 계획이 아니었다.수영장 사건 이후로 그녀의 마음속에 그는 이미 무서운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것 같았다. 아마 그녀는 평생 그날 일을 잊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비록 극단적이긴 했지만, 그가 원하는 상황 중 하나이기도 했다.그녀의 마음과 몸을 전부 갖고 싶었다.손이든 입술이든 발이든, 혹은 다른 부위든 그녀의 처음과 끝은 전부 그의 것이고 반드시 그의 것이어야 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쉽게 손에 넣었지만 온다연은 쉽지 않았다. 온다연은 그가 지금까지 제일 정성을 쏟아붓는 상대이거니와 제일 오래 기다리고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을 벗어난 탓에 점차 인내심이 사라지고 있었고 예상보다 빨리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빨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결정한 만큼 어느 정도의 희생이 필요했다. 온다연의 이런 반응도 전부 그의 예상 범위에 있었다.이건 그의 탓이 아니었다. 10년 전 제 발로 유씨 가문을 나간 건 그녀였으니까.그녀가 먼저 하찮은 작은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고.그녀가 매번 고양이처럼 숨어 그를 유혹했고.그녀가 그날 방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아 그에게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했고.그녀가 3년 전에 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3년 동안 그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원래는 5년을 계획했지만 3년으로 줄여버렸다.모든 것 하나하나 전부 그녀의 탓이었다.그는 이미 10년이나 자유롭게 살게 해주었다. 그녀가 성인이 되기 전에 덮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봐준 것이었다.그랬기에 지금 힘들어한다고 해도 응당 그녀가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이마에 올려두었던 손은 천천히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 덕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거렸고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 작게 중얼거렸다.“하니야.”이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강후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다.그 고
저녁때가 되니 온다연은 이제 좀 살 것 같았다.다만 여전히 정신은 흐릿하여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다.집사는 저녁을 차린 후 나가버렸다. 집 안에는 유강후와 온다연만 남게 되었다.유강후가 그녀를 안기도 전에 온다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삼촌, 제 핸드폰은요?”거의 하루 만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전과 똑같이 나른했다. 다만 삼촌이라고 부를 때 여전히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고 아직도 그가 조금 두려운 듯했다. 그래도 그의 예상보다 하루 일찍 그녀가 입을 연 것이다.그는 온다연이 이틀 정도 지나야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가 거의 지날 때쯤 입을 연 것을 보니 그녀는 그의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았다.“일단 밥부터 먹어. 다 먹고 나면 새 핸드폰으로 사 오라고 할게.”온다연은 다소 조급해졌다.“그럼 제가 쓰던 핸드폰은요?”바삐 움직이던 손이 멈추었다.“버렸어. 너무 낡아서.”온다연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꼬리라도 밟힌 고양이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어디에 버렸는데요?”그가 말해주면 바로 달려가 주워올 기세였다.유강후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말투도 어딘가 차가웠다.“그 작은 상자랑 같이 버렸어. 다연이 네가 얌전히만 있으면 원하는 걸 다 줄 수 있어.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없겠지.”그 말에 온다연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조금 전까지 씩씩대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개를 푹 숙인 채 식탁으로 걸어가 앉았다.유강후는 전복죽을 그릇에 담아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번에 그녀는 전처럼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고 있어도 반항하지 않았다.꼭 이미 그의 손에 길들어진 사람처럼.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정상적인 체온에 유강후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사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은 효과가 아주 강한 약이었다. 원래부터 그를 두려워하고 있던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스킨쉽을 했으니 말이다. 마지막 과정을
온다연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한참 지나서야 새 핸드폰을 받아들었다.핸드폰을 완전히 손에 넣기도 전에 유강후가 물었다.“주한은 누구지?”온다연은 순간 당황했다.“아, 제 그림을 사간 고객님이에요. 몸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거든요. 저한테 매달 그림을 한 폭씩 그려서 달라고 하면서 1년 치 그림값을 줬거든요.”유강후는 짤막하게 대답하곤 다시 건넸다.“그랬군, 너한테 서른 통 넘게 전화를 하던데.”온다연은 핸드폰을 받자마자 뒤로 숨겼다. 이내 무언가 눈치챈 듯 핸드폰을 꽉 움켜쥐면서 작게 중얼거렸다.“이미 60만 원을 저한테 줬거든요. 그래서 아마 연락이 되지 않으니까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 걸 거예요.”유강후의 시선은 핸드폰을 든 그녀의 손으로 향했고 조금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그 자그마한 그림 한 폭이 4만 원 넘는다는 거야?”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네, 조금 귀찮기도 해요. 그 손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거든요. 본인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말씀하기도 했어요. 저도 더는 그리고 싶지 않아서 돈을 돌려주기로 했거든요.”이때 제대로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바람이 불어 들어오면서 그녀의 하얀 치맛자락이 하늘하늘 움직였고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도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그녀의 모습은 아주 아름다웠고 유난히도 얌전해 보였다.유강후는 그녀를 보더니 양팔을 뻗어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뒤로 감추었다.이번은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아프게 할 때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의 옷을 꽉 잡으면서 멈춰주길 바랐다.“삼촌, 아파요. 살살해줘요.”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강후는 멈춰주지 않았다.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켜 그의 욕망을 건드려 버렸다.그는 그녀를 안아 올려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허리에 매달리게 하면서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다
“여긴 천연 온천이라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나랑 아이한테도 좋다고 하더군요.”“자성 씨한테서 들은 건데 이 호텔 지분 절반은 강후 것이라고 하더군요. 강후 것이면 그럼 당연히 유씨 가문 것이고 내 아이의 것이기도 하죠. 우린 우리 가문의 호텔로 온 거니까 가서 제일 좋은 방으로 내달라고 해요.”정원의 무성한 나무 풀숲 사이로 온다연은 개량 한복을 입은 심미진을 발견했다. 심미진은 살짝 부어오른 배를 만지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있었다.유씨 가문의 사용인인 장혜선이 심미진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다.“사모님, 미래 그룹은 안씨 가문의 산업이에요. 유씨 가문과 연관이 없어요. 셋째 도련님 어머님 쪽 재산이니 그래도 방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심미진은 민망해진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뭐요. 어차피 강후는 유씨 가문 사람이잖아요. 나중에 강후가 가진 재산도 전부 유씨 가문의 재산이 될 텐데 설마 팔이 바깥으로 굽겠어요? 아무리 강후의 어머니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결국 나중엔 전부 아들에게 물려줄 거잖아요.”그녀는 거만한 모습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내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유 씨 성을 이어받을 아이라고요. 강후의 미래 친조카라고요. 친조카. 친조카가 삼촌의 덕을 보는 게 뭐 어때서요?”장혜선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네, 사모님 말씀이 맞으십니다.”그러더니 갑자기 심미진의 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도 날카로워졌다.“이건 전부 온다연 그 X 때문이에요. 그 X 때문에 내가 매일 사모님들 모임에서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거라고요. 내가 사모님들과 친해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렸어요. 그 X만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치밀어요. 아직도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정말로 어디 모르는 곳에서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다시는 내가 하는 일 방해하지 않게.”배를 만지던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그래도 내게 아들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본처면 뭐해요, 어차피 아들도
날은 어느새 어두워졌지만 온다연은 여전히 휴식실에서 나오지 않았다.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의지하며 그녀는 휴식실의 작은 침대에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문이 천천히 열리고 키 큰 남자가 휴식실로 들어왔다.남자는 길고 마디마디 선명한 손으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조금 간지럽게 느껴진 그녀는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가 방에서 퍼진 시원한 우디향을 맡게 되었다.비몽사몽 한 모습으로 갑자기 나오는 재채기를 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삼촌...”방은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다. 유강후는 셔츠 한 장을 몸에 걸치고 있었고 하얀 셔츠는 달빛에 반사되어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덕에 온다연은 정신이 확 들었다.하지만 빠르게 유강후의 손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목소리에서는 차가움이 뚝뚝 떨어졌다.“오후 내내 여기 있었던 거야?”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부드러운 손으로 유강후의 손목을 잡았다.“삼촌, 저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고개를 떨군 그녀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해 웅얼거리며 말했다. 그래서인지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유강후는 멈칫하더니 그녀를 안았다.“그 사람들 때문이야?”온다연은 그의 셔츠를 꼭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야 작게 말했다.“저 오늘 그 사람들 봤어요.”유강후는 침묵했다.어두웠던 탓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는 것도 보지 못했다.시간이 꽤 흐른 뒤, 유강후는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배 안 고파?”온다연은 갑자기 머리를 그의 어깨에 파묻으며 비비적거렸다.“삼촌, 우리 다른 곳으로 가요, 네?”유강후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몸이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다만 그는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여기 온천은 상처 회복에 좋으니까 며칠 뒤에 떠나자. 그때가 되면 더는 병원으로 가지 않아도 될 거야.”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은 한 손도 올려 그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마지막으로 구경해 본 게 언제였을까?아마 4년 전일 것이다. 주한이 떠나간 뒤로 더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몸은 다시 허공에 붕 떴다. 유강후가 또 그녀를 안아 올린 것이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두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꼭 인형을 안고 있는 것처럼 품에 꽉 끌어안았다.두려움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당연히 거부감도 들었지만 온다연은 자기 생각대로 했다.그녀는 버둥대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최대한 몸이 떨려오지 않도록 애를 썼다.유강후는 이 자세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꽤나 오랜 시간 그녀를 안고 가만히 있었다.두 사람은 모두 얇게 입고 있었다. 그런데 찰싹 붙어 있으니 온다연은 그의 신체에 변화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느껴지는 뜨거운 온기에 그녀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그녀는 너무도 불편했지만, 그는 계속 그녀를 끌어안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허리가 뻐근해져 몸을 살짝 버둥대며 자세를 바꿔보려고 했다.그러나 움직이자마자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가슴팍으로 꽉 끌어안았고 자세를 바꿔 자신과 마주 앉게 했다.너무도 야릇하고 민망한 자세가 만들어졌다. 그녀는 거의 그의 몸과 찰싹 붙어 있었고 그의 심장 소리도 들려왔다. 심지어 옷감 사이로 뜨거운 그의 온기도 생생하게 느껴졌다.그녀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고 있었고 그의 옷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은 땀으로 축축해졌다.유강후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자신의 몸에 비비더니 큰 손으로 그녀의 발을 잡았다.그녀의 발은 그녀의 손처럼 작고 부드러웠다. 발가락도 동글동글하니 만지기만 해도 얼마나 귀여운지 알 수 있었다.게다가 그저 크기만 작을 뿐 살집이 조금 있었고 만지면 아주 말랑거렸다.꼭 말랑거리는 느낌에 중독된 사람처럼 그녀의 한쪽 발만 한참 만지작거렸다.온
유하령은 노크하면서 웃으며 말했다.“분명 나은별 씨는 아닐 거예요. 오늘 나은별 씨랑 만났었거든요. 삼촌, 언제부터 집안에 여자 숨기는 취미가 생기신 거예요? 얼른 나오세요. 우리 아빠가 아직도 삼촌 기다리고 계시잖아요.”온다연은 더욱 긴장해졌다. 버둥거리며 유강후의 몸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화가 난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유하령, 자꾸 선을 넘는구나.”유리방이라 방음은 그다지 잘 안 되었다. 유강후의 분노가 섞인 차가운 목소리는 그대로 유하령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유강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유하령은 또 한 번 간 크게 기어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삼촌, 빨리 나오세요. 상의할 것이 있다고요.”말을 마친 후 방 문 앞에서 사라졌다.유강후는 일어나 옷을 입었다. 안고 있던 온다연만 의자에 홀로 남겨둔 채 허리를 굽혀 이마에 뽀뽀했다. 그제야 그는 온다연의 이마는 이미 축축할 정도로 땀이 나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손바닥도 축축했다.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휴지를 뽑아 이마와 손바닥을 세심하게 닦아주었다.“다연아, 예전에는 몰랐는데...”“삼촌!”순간 온다연이 갑자기 말허리를 잘랐다. 뒷말을 듣고 싶지 않은 모양새였다.“전 예전에 대해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발 제가 여기 있다는 거 그 사람들한테 알리지 말아요.”유강후는 그윽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손을 들어 그녀의 입술을 쓸면서 다소 차가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사람들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온다연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가 풀면서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삼촌, 나은별 씨랑은 언제 약혼해요?”유강후의 손이 멈추었다. 순간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온다연, 혹시 그날만 기다리고 있는 거야?”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내리깐 채 그의 두 눈을 피했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목소리에선 쌀쌀함이 느껴졌다.“다연아, 그날만 손꼽아 기다린대도 소용없어.”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드러운
유강후는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10일.”“온다연, 너 계속 이러면 아기 퇴원하는 날에도 못 볼 줄 알아.”그 말을 듣고 얼어붙은 온다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알고 있다. 정말 그를 화가게 한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아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꾹 참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심하게 때려서 그런지 유강후는 온다연의 걷는 자세가 살짝 잘못된 걸 발견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던지고 걷어찼던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온다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이권도 그곳에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덩이를 맞은 걸 모든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면서도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반지를 주워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유강후가 아기로 협박을 하니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온다연은 유강후에 대한 호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70점이었다면 이제는 50점밖에 되지 않았다.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고선 마지못해 바닥에 있는 반지를 주웠다.온다연이 휴게실로 돌아오자 유강후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끼워줘.”그 모습은 어찌나 무자비하고 싸늘한지 마치 인정머리 없는 제왕 같았다.온다연은 화가 나서 반지를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으며 유강후에게 반지를 끼웠다.유강후는 반지를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래치가 없는 걸 보고선 마음속의 분노가 절반 가라앉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온다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온다연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보니 유강후도 마음이 반쯤 풀렸다. 그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네가 말해봐.
유강후는 그저 말없이 가만히 온다연을 쳐다봤고 온다연은 그의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서야 힘을 풀었다.유강후는 곧바로 다시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내리쳤다.심지어 전보다 더 무자비해졌다.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온다연은 목 놓아 울부짖었다.“미워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날 때릴 자격이 없잖아요.”유강후는 얼굴빛 변한 온다연을 보고선 가슴이 아픈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또 함부로 버릴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더욱이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버릴 거예요. 평생 찾지 못하게 바다에 던질 거라고요. 때려죽이든 마음대로 해요.”일말의 작은 연민은 온다연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졌다.유강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손까지 떨었다.결혼반지라는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버렸으면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온다연이 이해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들어 세게 두 번 정도 내리쳤다.전보다 훨씬 힘을 주어서 그런지 온다연은 괴로움에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울었다.울면서도 잊지 않고 유강후를 비난했다.“분명히 은별 씨 편을 들었으면서...”“차라리 때려죽여요. 그러면 은별 씨랑 결혼해도 되잖아요.”“우리 이제 그만해요.”...온다연이 말할수록 유강후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고 끝내 또 세게 때렸다.분노와 두려움, 공포와 고통의 감정이 뒤섞이자 저도 모르게 주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너무 아파... 주한아, 나 좀 도와줘.”“그만 때려요.... 아픈단 말이에요.”...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굳어버렸다.주한... 온다연은 주한에게 도움을 청했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숨이 멎을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방금 뭐라고 했어?”온다연은 심하게 울부짖은 탓에 목소리가 잔뜩 쉬었다.“뭐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나 괴롭히고 때릴 줄밖에 모르잖아요. 싫어요. 아저씨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 놔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솟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안긴 방금 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마치 유강후가 키우는 고양이나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별반 다를게 없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온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싫어요.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유강후는 고집불통인 온다연의 모습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눈앞에 있는 반지는 그가 이 생에 받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이다.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온다연은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쳤다.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여러 번 짓밟는 격이다.유강후는 머리가 피가 쏠릴 정도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우라고.”온다연은 유강후가 화난 걸 알았지만 그녀도 같은 상황이기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분명히 나은별을 밀어낼 수 있었음에도 유강후는 기댈 수 있게 팔을 내어주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면 차라리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온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싫어요. 그리고 제가 나은별 씨를 먼저 때렸어요. 아저씨가 아끼는 사람을 때려서 가슴이 아파요? 그럼 다시 날 때리면 되겠네.”유강후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네가 언제 가슴 아프다고 했어?”욕하고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해도 되지만, 유독 이 반지를 떨어뜨린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그의 마음과 진심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는 해동이다.“주워서 깨끗하게 닦아.”유강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온다연 마음속의 작은 화산이 완전히 폭발하였고 곧바로 눈앞의 반지를 발로 차버렸다.“주울 생각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싼 반지는 아저씨한테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나은별 씨한테 더 비싼 거로 사달라고 하세요.”온다연의 발차기에 반지는 더 멀리 날아갔다.유강후는 너무 화가 나서 목의 핏줄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으르릉거렸다.“온다연, 넌 오늘 혼 좀 나야겠다.”그
나은별은 손톱이 살을 피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강후 씨, 이제 내 말은 믿지도 않는 거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연 씨가 먼저 손쓴 걸 봤는데도 여전히 내 문제라는 거야?”유강후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조아영을 바라봤다.“조세진이 그쪽 아버지?”조아영은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차마 유강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맞아요.”유강후의 말투는 단호했다.“아버지한테 전해. 파산할 거니까 미리 마음 준비하라고.”조아영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울부짖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유강후는 무자비했다.“들리는 그대로야. 오늘부터 조씨 가문은 너 때문에 파산하게 될 거야. 기대해.”조아영은 고개를 번쩍 들고 마지막으로 발악했다.“분명히 저 여자가 먼저 때렸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죠?”유강후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먼저 때렸다고? 그래서 뭐? 내가 있는 한 다연이가 사람을 때려죽여도 잘했다고 칭찬할 거야. 너 같은 인간을 수없이 많이 봤어. 내가 너보다 지위가 낮았다면 그런 표정이랑 행동으로 말했을까?”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유강후는 곧바로 경호원에게 말했다.“은별이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다른 사람 전부 다 내보내. 당장.”나은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강후 씨,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유강후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선 뒤를 돌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며 경호원에게 말했다.“내가 왔을 때 여기에 사람이 남아있으면 너희들도 끝장인 줄 알아.”경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네, 도련님.”나은별은 멀어지는 유강후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에서는 악의가 번쩍였다.‘유강후, 날 이렇게 대한다는 거지? 두고 봐, 나도 더는 안 참아.’경호원들은 나은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의무적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얼른 가시죠. 도련님이 분부했으니 저희는
유강후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나은별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 계속 비틀거렸다.밀어내려고 할수록 나은별은 그의 옷을 한사코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온다연의 눈에 비친 이 장면은 마치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연인 같았다.순간 어려서부터 각별한 사이로 자라온 소꿉친구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나은별의 말대로 유강후는 어쩌면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지금처럼 행동하는 걸 수도 있다.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내가 때렸어요. 왜요? 가슴 아파요?”그 말에 화가 난 유강후는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온다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온다연은 싸늘하게 웃었다.“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죠.”이때 반지를 수정하려고 자리를 잠깐 비운 직원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수정된 반지와 함께 걸어왔다.“다연 씨, 요청하신 대로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온다연은 번쩍 돌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이제 필요 없으니까 환불해 줘요.”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몸을 떨었다.“그러기만 해봐.”온다연은 시선은 여전히 그의 팔에 기대어있는 나은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두 사람 결혼해요. 아주 천생연분이네.”그 말을 한 뒤 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환불해 줘요. 이제 필요 없어졌거든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직원은 정석대로 안내했다.“죄송합니다. 이니셜이 새겨진 특별 제작한 반지라 환불이 불가합니다.”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앞으로 걸어가더니 반지를 집고 땅바닥에 내던졌다.“그럼 버릴게요.”단단한 반지가 바닥에 닿자 몇 미터 높이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유강후는 자신이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온다연, 당장 주워.”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힐끗 보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분노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유강후는 단번에 나은별을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온다연의 눈에 비친 살기는 두피를 저리게 했고, 손에 칼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나은별을 찔렀을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했다.사람들은 온다연처럼 몸집이 작은 여자가 어디서 폭발적인 힘이 나왔는지 몰랐고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악의를 품고 있는데 이해되지 않았다.조아영은 체면을 잃었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온다연을 때릴 기세였다.“미친X. 남의 남자 친구를 뺏은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사람을 때려?”“하여튼 가정 교육을 못 받으면 이렇다니까. 세컨드인 걸 아무리 즐겨도 그렇지 어떻게 당사자 여자 친구를 떄려?”“내가 오늘 너 죽여버릴 거야.”그러나 조아영의 손이 온다연에 닿기도 전에 손목이 잡혔다.우드득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조아영은 반대편 벽에 내동댕이쳐졌다.불과 몇 초안에 일어난 일에 다들 눈을 의심하여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들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는지 주위 사람들은 몰랐으나 눈앞의 이 훤칠한 남자가 마치 조아영을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살벌하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누군가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끌어당겨 몸 곳곳을 확인했다.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럭했다.“왜 가만히 있어. 다른 사람이 때리려고 하면 소리라도 질러야지.”이때 옆에 있던 조아영이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눈 잘못됐어요? 저 여자가 은별이를 때렸다고요. 은별이가 어떻게 맞았는지 두 눈 뜨고 똑바로 봐봐요.”유강후는 그제야 바닥에 앉아 있는 나은별이 눈에 들어왔다.평소의 매력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이고 머리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헝클어져 있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누군가를 때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우리 다연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이때 옆에 있던 직원이 용기 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희가 봤습니다. 이 여성분이 먼저 손을 쓴 게...”“닥쳐.”유강후는 버럭 호통을 쳤다.“내가 말하라고 했어?
온다연은 망설임 없이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고 뒤로 힘껏 밀쳤다.힐을 신은 여자는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온다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누구신데 남 일에 참견하는 거죠? 경고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넘어질 뻔하던 일행을 나은별이 부축했다.여자는 나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감히 밀쳐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듯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럼에도 분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달려들어 온다연을 치려고 했다.이때 나은별이 팔을 붙잡았다.“조아영, 그만해. 때릴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야.”나은별은 온다연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내가 화내면서 뺨 한 대 치길 바랐던 건 아니죠? 솔직히 그 모습을 강후 씨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잖아요. 내가 유하령처럼 멍청해 보여요?”“온다연, 내가 너처럼 천한 여자를 한두 번 본 것 같아? 매달려도 소용없으니까 포기해. 유씨 가문이랑 강씨 가문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할까? 너처럼 가진 것 하나없는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강후 씨랑 만나.”“유하령이 말해줬으니까 순진한 척 그만해. 너 복수하려고 강후 씨를 만나는 거잖아. 엄청 친한 친구가 있었다며? 널 구하려고 다른 사람 손에 죽었다던데 맞아? 죽기 전에 영상까지 찍혔다며? 아참, 유하령이 그 영상을 나한테 보내줬어.”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죽일 듯이 나은별을 노려봤다.나은별은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고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그 남자애가 너한테 소중한 존재라고 들었어. 죽은 사람의 마지막 체면을 지켜주고 싶으면 좋은 말로 할 때 강후 씨 곁에서 떨어져. 안 그러면 내가 그 영상 인터넷에 확 뿌려버릴 거야. 죽어서도 고통스럽게...”짝.온다연은 나은별의 따귀를 세게 한 대 갈겼다.눈빛에는 독기가 가득했고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 살벌했다.“유하령이랑 똑같은 인간인 줄은 몰랐네요. 당신 같은 인간은 살 자격도 없어요.”나은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은별은 이권을 여러 번 찾아가 유강후가 왜 만나주지 않느냐고 물었다.이권도 처음에는 예의 바르게 대했지만 찾는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더는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이실직고하게 되었고 온다연이 싫어해서 만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그 후로는 나은별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나씨 가문과 유씨 가문의 혼담이 취소된 걸 누가 소문냈는지 유강후에게 아기가 생겼고 그 상대가 나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라는 것까지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그 이후로 나은별과 나씨 가문은 경원의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온갖 조롱과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유강후와 결혼하는 건 나씨 가문의 일방적인 바람이었을 뿐 유강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은별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나씨 가문의 투자자들은 하나둘씩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회사는 지금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가장 역겨운 점은 예전에 빌붙으려고 양손 가득 선물 챙겨서 찾아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이라도 한 듯 문전성시를 이루던 나씨 가문은 하루아침에 적막해졌다.배은망덕한 사람들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른 나씨 가문 어르신은 명절날에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나은별은 이런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있다.사람들이 추측하며 수군거릴 때 아무런 대처 없이 묵인한 유강후가 그 원인의 중심이다.그동안 나씨 가문을 통해 미래 그룹에 빌붙으려던 사람들까지 발걸음을 멈췄다.나은별은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이익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하늘에서 땅이 아닌 지옥으로 떨어지는 케이스를 수없이 많이 봐왔기에 이런 우여곡절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이익 때문에 등을 돌린 인간이 아닌 사건의 원흉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나은별은 온다연이 유강후에게 빌붙어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초라한 자신에 비해 전보다 안색도 좋아지고 예쁜 얼굴마저 더 정교해진 온다연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게다가 입고 있는 옷의 패턴
온다연은 순순히 그의 품에 안겨 몰래 눈물을 닦았다.“보석상에서 가지러 가도 된다고 연락왔는데 아직 안 갔어요. 결혼식 며칠 전에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유강후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지금 가지러 가자. 어떤 건지 너무 보고 싶어.”옷 갈아입을 때 유강후는 특별히 가장 마음에 드는 슈트를 입었다.그러고는 온다연에게 넥타이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온다연은 너무도 많은 넥타이에 흠칫하다가 다시 신중하게 골랐다.유강후는 캐비닛 앞에 서서 열심히 넥타이를 고르는 온다연이 귀여운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온다연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을 때 유강후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외출 준비할 때 아내인 온다연이 옷과 넥타이를 골라주며 신경 써주는 이 상황을 수년동안 기다렸다.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상상이 현실로 되었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온다연은 매우 열심히 넥타이를 골라주고 있다.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너무 무리한 탓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유강후는 뒤에서 온다연을 끌어안고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골랐어?”온다연은 회색 넥타이를 꺼냈다.“오늘 입은 옷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뻐요.”유강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예쁜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 다연이가 좋아하면 그게 뭐든 나도 좋아.”온다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아저씨, 그만해요.”빨갛게 달아오른 온다연의 귀를 본 유강후는 더 이상 참지 못했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선 한참이나 키스를 한 후에야 놓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보석상에 도착했다.임정아는 안목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얼리 브랜드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연은 가성비가 좋고 흔치 않은 남성용 반지를 골랐다.온다연이 집 사려고 모아둔 금액이었으니 싼값은 아니었다.하지만 유강후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도 있으니 긴장된 마음을 늦추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시계에 비하면 훨씬 싼 값이니까.그런데 의외로 유강후는 매우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