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가문의 두 형제는 아주 바람직하게 생겼다. 유자성은 40이 넘는 나이었지만 여전히 점잖고 위엄이 있었으며 그의 기세는 누구라도 탄복할 정도였다.유강후는 당연히 더 잘생겼다. 차갑고 귀티가 흐르는 냉미남 유형에 그 나이대에 보기 힘든 상위 포식자의 맹렬한 기운이 흘러넘쳤다.겉모습으로만 봐도 두 형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랐다.멀지 않았던지라 창가에 서서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유자성의 목소리는 묵직했다.“염지훈은 말도 잘하고 일도 척척 잘하지. 젊은이 중에서도 꽤나 잘생긴 축에 속하니까 하령이 짝으로 맺어주는 거 어떻게 생각해?”유강후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차가웠다.“하령이만 마음에 든다면 상관없죠.”말을 마친 뒤 그는 틈이 생긴 창문과 커튼 쪽을 보았다.유자성은 동생의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염씨 가문은 수완이 좋아. 집안도 꽤나 좋고 흠잡을 데가 별로 없지. 하지만 같은 사업인으로서 생각하면 우리 유씨 가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유강후는 유리방을 빤히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형, 유씨 가문이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만 해도 끝이 보이는데 정말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그래.”유자성은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무리 잘 되고 싶어도 이제 더는 안 될 거야.”이때 심미진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하령이는 염지훈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최근 두 달 동안 매일 염씨 가문으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잖아요. 젊으니까 가끔 마음 조절이 않나 봐요. 그래도 약혼식은 될수록 빨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속도위반으로 먼저 임신하기라도 하면 저희 가문의 이미지에도 안 좋잖아요.”그러자 유자성은 아주 언짢은 어투로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야? 내 딸은 그런 아이가 아니야.”심미진은 더는 입을 열 수가 없었고 과일을 가져와 껍질 까는 척했다.유강후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커튼을 내리려던 온다연이 손이 멈추었다.“우리 두 가문도 그동안 많은 교류를 해왔잖아.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이기도 하고. 비록 너희 둘 사이가 조금 틀어지긴 해도 3년이나 지났으면 이젠 화를 풀 때가 되지 않았나? 대충 화 풀고 날 잡아서 결혼해.”유자성은 이내 고개를 돌려 유리방을 힐끗 보면서 들으라는 듯 조금 크게 말했다.“네가 밖에서 고양이를 키우든 개를 키우든 상관없어. 어차피 돈만 쥐여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아직 놀고 싶은 네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아무나 곁에 두지 마. 유씨 가문의 문턱은 누구나 넘을 수 있는 게 아니란다.”유강후의 안색이 변하고 목소리가 싸늘해졌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형은 형 일에나 신경 써요.”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시간도 늦었으니 형도 돌아가세요. 나도 이젠 쉬어야겠으니까.”유자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 말하려던 순간 심미진이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쉬겠다고 하잖아요. 우린 그냥 돌아가요. 가족끼리 언제든지 다시 모일 수 있잖아요. 형제 사이에 자꾸 상처가 되는 말 하려고 하지 말아요.”유자성의 표정이 다소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심미진의 말대로 그냥 돌아갔다.두 사람은 함께 나갔다. 유하령은 바로 유강후의 곁으로 달려와 팔을 잡으면서 애교를 부렸다.“삼촌, 부탁할 거 있는데 꼭 도와줘야 해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뭘 갖고 싶은 건데. 알아서 사. 난 시간 없으니까.”그러자 유하령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댔다.“삼촌 지난번이랑 완전히 딴 사람 같아요. 만난 지 두어 번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엄청 밉네요.”이내 또 애교를 부리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삼촌은 예전에 나랑 민준이를 아주 예뻐해 줬잖아요. 혹시 애완견이라도 키우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나랑 민준이를 방치해 두고 있는 거죠. 나 삐질 거예요.”유강후는 별수 없이 유하령을 밀어냈다.“예의라곤 하나도 없네. 애완견을 키우고 있다니, 내가 네 선물 사 오지 않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니? 지난달에 네
분명 날은 춥지 않았지만, 원래부터 추위를 자주 탔던 온다연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풀면서 또 움켜쥐기를 반복했다.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더는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또 얼마나 지났을까, 유리방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체향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곧이어 커다란 손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온다연은 고개를 돌려 유강후의 손길을 피해버렸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빛이 차가워지고 팔을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확 끌어안으면서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게 했다.예상대로 온다연은 그의 팔을 잡더니 힘껏 자기 몸에서 떼어냈고 이내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었다.방 안은 조금 어두웠고 침대도 크지 않았다. 온다연이 꿈틀대며 뒤로 물러서자 순간 침대에서 떨어졌다.유강후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졌다.작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울지도 않고 아프다고 소리를 내지 않아 꼭 숨소리마저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유강후는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침대를 지나쳐 그녀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도망갔다.그러나 그녀의 두 다리는 유강후의 두 팔보다 빠르지 못했다. 벌떡 일어난 순간 바로 그에게 붙잡혀 버렸다.방은 어두웠기에 상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온다연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고 울고 있는 듯했다.유강후는 미간을 확 구겼다.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또 피해버렸다.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다연아?”온다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면서 다시 도망치려는 자세를 보였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커튼을 열었다.달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온다연은 그녀의 팔을 확 잡았다. 그리고 세게 깨물었다.온 힘을 다해 깨물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빠르게 그의 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유강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녀가 깨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느새 그녀가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피해버렸다. 그녀는 하악질을 해대는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손대지 말아요!”유강후의 눈빛이 더 차갑게 식어갔다. 얇은 입술도 일자가 되었고 두 사람 사이로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정원의 불빛에 그의 그림자는 문에 비쳤다. 온다연의 그림자는 그의 그림자에 삼켜졌다.원래부터 위압감이 느껴지는 그였지만 차갑게 굳은 얼굴을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더 심하게 느껴졌다.그의 커다란 그림자 속에 갇힌 온다연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화가 났고 숨 막혔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느껴지는 위압감에 그녀는 숨쉬기가 힘들어졌고 문에 기댄 채 주르륵 주저앉았다.바닥은 아주 차가웠다. 전부 조약돌이었던지라 엉덩이가 너무 아플 것 같았지만 그녀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마치 생기를 잃은 작은 짐승처럼 보였다.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리곤 거실로 들어갔다.소파 위에 그녀를 내려놓더니 티브이를 켰다.온다연이 그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채널을 돌렸다.“무한테크의 주가는 또다시 바닥을 쳤습니다. 무한테크의 고승철 회장은 떨어지는 회사 주가를 결국 붙잡지 못했습니다.”“무한테크는 한때 국내에서 AI 기술을 만들어 유명세를 떨친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파산의 길을 걷고 있어 많은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저희가 취재한 바로는 다른 자본이 무한테크에 개입해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현재 고승철 회장은 최선을 다해 내려가는 주가를 붙잡고 있다고 합니다...”...경제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온다연은 티브이에 집중했다. 한참 티브이를 보고 있으니 그녀도 점차 진정되었다.유강후는 약상자를 가져왔다. 그녀를 안아 올려 자신의 무릎에 앉힌 후 돌에 까진 발을 치료해 주었다.이번엔 반항하지 않았다.방금 그녀는 신발도 신지 않고 정원에 깔린 돌을 밟았다. 부드러웠던
유하령이라는 세글자에 온다연의 손가락이 움찔 떨렸다.유강후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조금만 더 시간을 줘.”요 며칠, 그는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한꺼번에 알게 됐고 그 모든 것들이 그를 분노케 했다.그가 없는 몇 년간, 아니, 그가 경원시에 있었던 그 시간에도 온다연은 유 씨네 집에서 영상보다 더한 대우를 받았다. 그녀를 괴롭힌 주모자가 누군지 온갖 방법을 써 알아봤지만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다.누군지는 몰라도 어둠 속에 꼭꼭 숨은 인물이었다.물론 의심 가는 사람은 있었다. 심지어 그 의심의 화살이 친형에게까지 갔지만 그렇다 할 증거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그리고 만약 이 모든 게 정말 유씨 집안 사람 중 누군가의 짓이라면 분명히 이렇게 해야만 하는 목적이 있을 테고 그건 생각보다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또한 중요한 점은 아직 대놓고 배후를 찾아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가는 유씨 가문이 하루아침에 가루가 되어 흩어질 테고 그렇게 되면 그 누구에게도 득은 아닐 것이다. 가문은 물론이고 미래 그룹 또한 불안정해지고 나아가서는 무너지고야 말 테니까.그런 건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유강후 본인도 말이다.그러니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주모자가 누구든 놓아줄 생각은 없다. 반드시 찾아내 이런 짓을 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줄 것이다.다만 온다연은 그때를 기다리는 게 조금 힘든 듯했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말했다.“조금만 기다려줘. 고씨 가문은 그저 시작일 뿐이야.”온다연은 그 말에 침묵으로 답했다.비스듬히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자 그녀의 앞머리가 부드럽게 날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 탓에 그녀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삼촌은 유하령이 좋아요?”유강후는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속눈썹을 바라보며 되물었다.“네가 볼 때는 어떤데?”온다연의 얼굴색은 여전히 혈색 하나 없었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나
길게 뻗은 팔에 안 어울리는 밴드 두 개가 떡하니 붙어져 있어 보기 거슬렸다.온다연은 귀가 빨갛게 물든 채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미안해요.”그 모습에 유강후는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다시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자기 어깨를 가리켰다.“어깨에도 있어. 여기도 발라줘.”온다연은 그 말에 이틀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나 얼굴 전체가 빨개져 버렸다.당시 그녀는 확실히 세게 깨물었고 피까지 났었다.어깨에 남겨진 상처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가 옷을 입고 있는 바람에 볼 수가 없었다.이에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유강후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을 미세하게 웃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옷 벗겨서 봐.”온다연은 잠깐 망설이다 손을 들어 그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갔다.이미 몇 번 풀어봤기에 빨리 벗길 수 있었다.절반 정도 푼 다음 그녀는 옷을 조금 벗겨 상처를 확인했다. 오늘 물린 곳처럼 아파 보이지는 않았지만 껍질이 살짝 벗겨져 있었고 이빨 자국은 어느새 푸르게 멍이 들어있었다.이걸 보면 당시 그녀가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온다연은 손을 들어 멍이 든 곳을 살살 매만지며 물었다.“아파요?”유강후는 까만 눈을 그녀의 두 눈에 고정한 채 말했다.“깨무는 게 좋으면 몇 번 더 물어도 돼.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안 닿는 곳을 물어.”그 말에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이 남자는 꼭 이런 부끄러운 말을 입에 내야 속이 시원한 걸까?그녀는 그를 째려보았다.“삼촌 진짜!”유강후는 그녀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살짝 삐진 듯 구는 모습 또한 사랑스러웠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다른 쪽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이쪽도 물어봐.”온다연은 이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마조히스트인가? 지금도 이렇게나 아파 보이는데 또다시 물라고?유강후는 웃는 듯 마는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얼마 안 가 유강후는 옷을 전부 다 벗어버리고 가운 하나만 걸친 채 욕실로 들어갔다.물소리가 들려오고서야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의 침실은 바로 옆방이었다.이대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면 오늘 저녁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그 생각으로 몸을 천천히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갑자기 유강후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리고 이내 물소리가 멎더니 그가 물기 가득한 채로 욕실에서 나왔다.온다연은 그를 힐끔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유강후는 지금 허리춤에 타올 하나만 두르고 있어 잔 근육들로 뒤덮인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물기를 닦지 않은 탓에 작은 물방울들이 그의 목을 따라 가슴으로 내려가 이내 복근까지 흘러내렸다.그는 이쪽으로 걸어오며 손에 든 마른 타올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그 움직임으로 근육들이 미세하게 떨리며 언뜻언뜻 핏줄도 튀어나왔다.게다가 그가 허리춤에 있는 타올을 세게 밑으로 내린 바람에 지방 하나 없는 듯한 치골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정말 섹시함을 그대로 두르고 나온 듯했다.온다연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머릿속으로는 그가 자신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밀어붙이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녀의 심장은 멋대로 뛰었고 이제는 목까지 빨개져 버렸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싶지만 생각을 그만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개는 자꾸 위로 들리고 시선은 자꾸 그를 찾았다.고개를 들어 그를 본 순간, 유강후의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끌어당겨 버렸다.온다연은 화들짝 놀라 고작 1초 정도 보고는 금세 다시 고개를 숙여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무언가 얘기하더니 곧바로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강후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 그저 무섭기만 했는데 지금은 심장이 고장 날 듯한 떨림만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다가오면 올수록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은 유강후에 몸을 완전히 맡기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온다연은 조금 반항하는가 싶더니 이내 천천히 눈을 감고 혀로 그의 입술을 조금씩 두드렸다.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유강후는 대단한 자극이라도 받은 듯 몸이 굳어지더니 이내 그녀의 입술을 피가 날 듯이 깨물었다.이에 온다연은 아프다며 소리 냈다.“아파...”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풀어주고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온다연, 날 이렇게 만든 건 너야.”그러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옷 안을 휘저었다.온다연은 지금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유강후는 아주 손쉽게 그녀의 속살을 움켜쥐었다.말랑한 감촉에 이성을 잃은 뻔하면서도 다른 한 손은 허리에서 천천히 내려오더니 그녀의 다리를 서서히 벌려갔다.온다연은 그의 손길에 머리가 아득해져 저도 모르게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이 행동은 그에게 있어 응하겠다는 사인과 다름없었다.얼마 안 가 온다연은 자신의 허리에 뜨거운 무언가가 닿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가운이 전부 다 젖혀져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을 깨달았다.순간 너무 놀랐던 것인지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그걸 눈치챈 유강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쉬, 착하지. 무서워하지 마. 아프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이다음으로 그가 무엇을 할 건지 알고 있다.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발버둥 쳤다.하지만 유강후가 그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고 그녀의 손을 잡아 또다시 거칠게 위로 올렸다.온다연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느끼며 흐느꼈다.“아파요, 삼촌. 아프다고.”유강후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고 온몸에 열기가 돌았다.“조금만 있으면 아프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이제 곧 울 것 같았다.“상처가 아프다고. 너무 아파. 상처 벌어진 것 같아요.”그 말에 유강후의 몸이 뚝 하고 굳었다. 그는
온다연은 체구가 작고 연약해 보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반면 유강후는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에다 차가운 표정까지 더해지니 교통경찰은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상황을 믿게 되었다.교통경찰은 곧바로 말했다.“혹시 신분증 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유강후는 냉랭한 목소리로 답했다.“저희는 부부입니다. 지금 말다툼 중이니 제발 끼어들지 말아 주세요.”그러자 온다연은 바로 외쳤다.“아니에요! 저 이 사람 몰라요. 경찰관님, 저 도와주세요!”이 말을 끝내자마자 온다연은 힘껏 유강후의 손을 뿌리치고 바로 차에서 내려 몇 걸음 만에 계단으로 뛰어올랐다.유강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경찰이 제지했다.“일단 검문에 협조해 주시죠!”이미 육교 위로 올라가고 있는 온다연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뜨더니 유강후는 경찰을 매몰차게 밀치며 말했다.“비켜!”이 말에 경찰들도 얼굴빛이 바뀌며 강경하게 그를 붙잡았다.“신분증을 보여주시지 않으면 경찰서로 모셔야겠습니다!”이때 뒤따라온 경호원들이 황급히 차에서 내려와 경찰에게 신분증을 건넸다.“죄송합니다. 여기 신분증입니다!”경찰은 신분증을 꼼꼼히 확인한 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되돌려주며 말했다.“다음부터는 주차나 정차를 신중히 하세요.”하지만 그사이 온다연은 이미 육교 중간에 서 있었다.유강후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따라가. 놓치지 말고!”그러나 이곳은 번화가였고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다.경호원이 뒤쫓아 갔을 때, 온다연은 이미 맞은편 쇼핑몰로 들어가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두 시간 후, 온다연은 시 외곽의 한 영상 제작소 대형 세트장에 나타났다.그녀의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은 임정아는 화가 나서 들고 있던 밀크티를 바닥에 던져버렸다.“그 사람, 인간도 아니에요!”“다연 씨 아들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다니... 다연 씨를 뭘로 본 거예요?”“전화했을 때부터 안 좋은 일이 생긴 줄 알았어요. 그래도 이건 너무 지나치잖아요!”
“그만해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으니까.”온다연은 그의 말을 한마디도 더 듣고 싶지 않았다.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피로감이 몰려왔다.‘어떻게 해야 내 아이를 찾고 이 악마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그녀는 자신의 나약함을 이토록 증오했던 적이 없었다.유강후의 강압적인 통제 아래 그녀는 자신의 아이조차 지킬 수 없었다.아이는 이미 그의 손에 넘어갔고 온다연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완전히 맞서 싸울 용기도 없었다.‘무엇을 카드로 삼아야 아이를 되찾을 수 있을까?’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있을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때, 유강후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무튼 지금 상황은 이런데 넌 원하는 게 뭐야? 어떻게 해야 네 화가 풀릴 수 있을지 말해줘. 계속 이렇게 버티면 나도 힘들어.”온다연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그 얼굴은 그녀가 본 얼굴 중 가장 잘생긴 얼굴이었다.하지만 이 얼굴의 주인은 심장이 없었다.아니, 심장은 있었다.그저 온다연을 위한 심장이 아니었을 뿐이다.‘이 모든 게 내 잘못이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내가 멍청하게 믿고 따라갔으니까.’“사람 목숨은 아저씨한테 중요하지 않죠? 왜냐하면 고통받는 건 아저씨 자신이 아니니까!”유강후는 그녀를 지그시 응시했다. 온다연의 영혼까지 꿰뚫으려는 듯 말이다.“온다연,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그런 말 하면 나도 괴로워.”그러나 온다연은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말했다.“괴롭다고요? 아저씨는 쉽게 유씨 가문 사람들을 용서하잖아요. 근데 다른 사람에게는 왜 그렇게 무자비해요?”유하령의 다리가 부러지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유강후는 그녀에게 치명타를 가하지 않았고 그녀를 비호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곧 유강후는 온다연의 손목을 붙잡고 낮게 말했다.“다연아, 유자성의 뒤에는 우리 아버지가 있어. 아버지는 내가 형과 대립하는 거로 몇 번이나 병원에 실려 갔어. 내가 직접 손
차는 장례식장 방향으로 빠르게 달렸다.온다연은 창밖으로 보이는 복잡한 도심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이 공허함으로 물들었다.이 도시에서 21년을 살며 거의 떠나본 적이 없었지만 이곳은 그녀를 키워준 곳이자 동시에 끝없는 고통을 안겨준 곳이었다.이토록 화려한 곳에서 왜 이렇게 많은 악이 생겨나는 걸까?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연약한 이들에게 손을 뻗어 상처를 주는 걸까?그들의 삶과 생명을 조종하며 병적인 만족감을 얻는 걸까?그녀는 어릴 적부터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모든 걸 가지며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하지만 설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악마 중 하나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제 유강후는 그녀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그녀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온준휘의 생명을 끊었다.악귀들과 다를 바 없었다.아니, 어쩌면 더 끔찍했다!그 사람들은 온다연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주었고 그들의 악은 망설임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증오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었다.그러나 유강후가 준 것은 그녀의 뼛속까지 각인되게 만들 철저히 계획된 고통과 기만이었다.그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온다연은 무심코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입꼬리가 비틀리며 냉소가 흘러나왔다.‘그 사람이 좋아했던 게 이 얼굴이지. 그 여자의 얼굴이 이랬으니 내 얼굴도 비슷해서 끌렸던 거겠지. 취향이 정말 변함없네. 이 얼굴이 망가진다면 그 사람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여전히 다정한 척하며 날 기쁘게 하려고 애쓸까?’그때 뒤따라오던 경호원이 전화를 받더니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동교 묘지로 바로 가세요.”묘지에 도착하자 유강후가 검은 정장을 입고 어머니 묘비 앞에 서 있는게 보였다.그의 뒤에는 경호원 두 명이 각각 유골함을 들고 있었다.온다연이 다가오자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기분은 좀 나아졌어? 오늘 눈은 좀 보여?”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의
하지만 온다연의 눈에는 흐릿한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몇 걸음 달리자마자 바닥에 넘어졌고 다시 일어나 쫓아가려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쓰러졌다.유강후는 이런 온다연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았다.“그만해. 준휘는 이미 죽었어!”온다연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외쳤다.“놔! 유강후, 이건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만든 결과라고!”“당신이 사람들한테 막으라고 했잖아!”“다 당신 때문이야!”“놓으라고!”곧 유강후는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내 잘못 있어. 내가 정확히 지시하지 않아서 아래 사람들이 내가 준휘를 싫어한다고 오해했고 그것 때문에 응급처치 타이밍을 놓쳤어.”“하지만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나는 그 애가 죽길 원한 게 아니라고!”“너희 아버지조차도 살릴 의도가 없었던 적은 없어!”“온다연, 정신 좀 차려!”하지만 온다연은 이미 감정이 폭발해 그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유강후, 당신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당신의 말 한마디, 심지어 한 문장부호조차 믿지 않아!”“꺼져, 밖에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들 많잖아. 나한테 집착하지 마. 이제 당신한테 마음 줄 일은 없어!”“비켜!”그녀는 울면서 소리쳤고 목소리는 이미 쉰 상태였다.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울다 보니 유강후는 온다연의 눈이 더 나빠질까 두려워 그녀의 손발을 제압했다.그리고 의사에게 신호를 보내 진정제를 주사하도록 지시했다.차가운 약물이 피부 속으로 스며들자 온다연은 울면서 비명을 질렀다.“유강후, 또 나한테 뭐 주사했어?”“날 뭐로 보는 거야? 아이 낳는 기계? 아니면 애완동물?”“이렇게 대하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증오할지 알아?”“놓으라고!”“준휘야... 누나가 정말 미안해...”...결국 두 번의 진정제를 맞은 뒤 온다연은 힘을 잃고 깊은 잠에 빠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인평 병원의 큰 병실 안이었다.의사가 다른 약물도 주사했는지 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온다연은 벽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몇 명의 간호사가 그녀 곁을 지나가며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어떻게 죽을 수가 있지?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도 않았잖아. 처음 들어왔을 때도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는데.”“위에서 압박이 들어와서 못 살리게 했다더라. 불쌍해. 아마 누군가를 잘못 건드린 거겠지.”“듣자 하니 유 대표님이 그렇게 지시했다던데...”“조심해. 이런 말 하다가 들키면 일자리 잃을 수도 있어.”“정말 끔찍해. 고작 열세네 살 아이가 누나를 지키려다가 자기 친아버지에게 맞아 죽었다니.”“그리고 또 죽은 사람이 친아버지라던데, 혈액에서 대량의 알코올이 나왔대. 술 먹고 폭주했겠지.”“돈 많은 사람들이란... 어린애까지 이렇게 잔인하게 다루다니.”“그만 말하고 빨리 가자.”...간호사들의 대화 소리가 점차 멀어졌고 복도 밖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따뜻했지만 온다연의 온몸은 차가워 떨고 있었다.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만큼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었고 등은 금세 식은땀으로 젖었다.‘이게 진실이었던 거야?!’온준휘의 죽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그는 분명 살아날 수 있었다.그러나 유강후가 살리게 두지 않았다.그래서 응급처치의 황금시간을 놓친 것이었다!하지만 소년은 아직 어렸다.제대로 성장할 기회도 없이 생명을 빼앗겨 버렸다.온다연은 자신이 유강후와 다를 바 없는 살인자임을 깨닫고 고통에 몸부림쳤다.그녀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와 분노로 가득 차 속으로 외쳤다.‘차라리 그때 유강후의 심장을 찔러버렸어야 했는데! 그 사람이 진정한 악마인데!’바로 그때, 유강후가 전화를 마치고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는 그녀의 눈물이 가득한 얼굴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닦아주려 했다.그러나 온다연은 갑자기 폭발하듯 소리쳤다.“꺼져, 이 악마야!”“유강후, 죽어야 할 사람은 너야!”유강후는 몸이 굳어 그녀를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뭐라고 했어? 죽어야 할 사람이 누구라고?”
“아빠랑 이모가 말하시는 거 몰래 들은 적이 있어요. 누, 누나는 어쩌면 아빠의...”갑자기 그의 입에서 대량의 피가 쏟아지며 숨쉬기조차 어려워졌다.온다연은 온준휘가 이상해진 것을 감지하고 급히 물었다.“많이 힘들어? 괜찮아?”그러고는 문 쪽으로 돌아서며 소리쳤다.“의사! 의사 선생님 빨리 와주세요!”온준휘는 힘겹게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누, 누나는... 아마도...”목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졌고 그는 겨우 힘을 짜내며 말했다.“친자식... 이... 아닐 수도... 새...”그러다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다해 외쳤다.“나를 도와... 우리 엄마를... 구해줘요...”그리고 힘겹게 이어진 그의 마지막 말.“세상은 너무 괴로워요. 누나. 나, 나...”온다연이 말문을 열기도 전에 소년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바로 그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상황을 확인한 의료진은 온준휘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을 알아챘다.하지만 문밖에 살아있는 ‘악마 같은 존재’가 서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손을 댈 수 없었다.혼란스러운 응급처치가 이어졌고 결국 병실은 조용해졌다.의사는 온다연 앞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죄송합니다.”온다연은 의료진의 응급처치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진 못했지만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고 있었다.그녀는 온준휘에게 큰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하지만 그 소년은 온준용이 온다연을 때릴 때 자신의 작은 몸으로 그녀를 보호했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악마 같은 온준용과 몸싸움을 벌였다.‘분명 살릴 수 있었어. 근데 왜?’온다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살리지 못한 건가요? 분명 그렇게 심한 부상은 아니었잖아요...”그러자 의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최적의 응급처치 시간을 놓쳤습니다. 많은 일들이... 저희의 통제를 벗어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그때 유강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온다연을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사람들은
“온준휘 씨가 골든 타임을 놓쳤습니다. 방금 호흡이 갑자기 멈췄고... 아마도 살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유강후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소리야? 인평 병원에서 최고 실력을 가진 의사를 데려오라고 했잖아!”비서는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었다.“온준휘 씨가 온준용 씨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이 대표님이 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조금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까 대표님께서... 사모님 병실 앞에서 말씀하신 거로 모두들 대표님이 치료를 하지 말라고 한 줄로...”“이 멍청한 놈들!”유강후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내가 언제 치료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야!”겁에 질린 비서는 몸을 떨며 대답했다.“아까... 사모님 병실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들렸습니다...”“말도 안 돼!”유강후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응급실로 향했다.“구해! 만약 살리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책임을 묻는지 두고 보라고!”그가 응급실 문에 도착했을 때, 의사가 막 나온 참이었다.유강후는 그를 붙잡으며 다그쳤다.“무슨 상황이에요?”그러자 의사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이번에는 겨우 살렸습니다. 하지만 방금 뇌출혈 증상이 추가로 발생했습니다...”유강후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다른 의사들을 추가로 데려와요. 인평 병원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당장 모셔 오라고요!”하지만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소용이 없습니다. 이제는... 편안히 보내주는 것이 나을 겁니다.”그 순간, 간호사가 급히 나와 말했다.“교수님, 환자가 누나를 보고 싶어 합니다. 누나분 여기 계신가요? 연락할까요? 제가 보기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안색이 굳어진 채로 유강후는 비서를 향해 냉정하게 말했다.“다연이 데리고 와.”이렇게 말한 뒤, 그는 직접 응급실로 들어갔다.침대에 누운 소년은 이미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고 마지막 힘을 다해 유강후를 바라보았다.그가 온 것을 확인한 소년의 눈에는 실망감이
“아저씨랑 같이 잤던 걸 생각하면 역겨워요!”유강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온다연, 방금 한 말 당장 취소해.”그러나 온다연은 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왜 내가 취소해야 하죠? 그런 짓들 아저씨가 다 해놓고 난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저씨는 본인이 안 더럽다고 생각해요? 아저씨랑 잤던 걸 떠올리면 토하고 싶어요!”분노로 인해 유강후는 손이 떨릴 정도였다.분명 아이를 챙기지 못한 건 그의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분노를 터뜨리며 막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주한의 옛집에 다녀온 뒤로 완전히 달라졌다.‘주희가 무슨 말을 했기에 이렇게 변한 거야?’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더럽다고? 나랑 같이 있었던 기억이 역겹다고?”“며칠 전 내 밑에서 그렇게 열심히 부르짖던 사람이 누군데?”이 말은 칼처럼 온다연의 가슴에 박혔다.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 순간, 그녀는 치욕감과 분노로 치를 떨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속이고 가지고 놀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했던 것이다.이를 악문 채 온다연은 낮게 외쳤다.“그따위 기술로? 날 즐겁게 했다고요? 역겨워요!”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강후는 순식간에 그녀를 침대 가장자리로 밀쳐 눕혔다.그러자 깜짝 놀란 온다연이 외쳤다.“뭐 하는 거예요? 미쳤어요? 문밖에 경호원이 있다고요!”하지만 유강후는 온다연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고 거칠게 그녀의 옷을 벗겼다.온다연은 문이 열려 있다고 착각한 채로 계속해서 격렬히 저항했다.그녀의 반항은 그의 독점 욕구를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결국 그녀는 유강후의 거친 욕망에 굴복해야 했다.짧은 폭력적인 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모두 지쳐 침묵 속에 잠겼다.온다연은 몸을 떨며 침대 구석으로 몸을 웅크린 채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유강후는 피로 물든 어깨에서 통증을 느끼며 옷을 여몄다.곧 바닥에 꽂혀 있는 칼을 보고 그는 문을 열어 경호원에게 명령했다.“
단순히 반지를 끼우는 것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도대체 왜?’갑자기 그녀는 유강후의 손목을 잡아들고 있는 힘껏 그 손을 깨물었다.이번에는 정말로 사납고 거칠었다. 마치 그의 살점을 떼어내고 싶은 것처럼 강하게 문 것이다.이내 피가 손목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지만 온다연은 멈추지 않았다.이마저도 부족하다고 느끼며 그녀는 더 깊게 물었다.유강후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위에서 회계 조사가 들어와서 못 나갔어. 그래서 아이를 보러 오지 못한 거야.”온다연은 속으로 비웃었다.‘거짓말! 당신 말 중에 진심이란 게 한 번이라도 있었어?’그녀의 분노는 더욱 타올랐고 이로 인해 유강후의 손목을 더 세게 물었다.유강후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날 피를 보게 해서 화가 풀릴 거면 차라리 날 두 번 찔러. 이렇게 어설프게 굴지 말고.”그러더니 갑자기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칼을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자, 한 번 해봐.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이야.”순간, 온다연은 칼을 잡아 들더니 망설임 없이 그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그러나 시야가 흐릿했던 탓에 칼은 유강후의 가슴이 아니라 어깨 아래쪽을 꿰뚫고 말았다.비록 작았지만 칼은 날카로웠고 깊숙이 파고들었다.곧바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둘 다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온다연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칼을 놓아버렸다.그리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 했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야 때문에 두 발짝도 못 가 책상에 부딪혔다.책상 위 물건들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사진 두 장도 함께 떨어졌다.유강후는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찌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하여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보고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천천히 사진을 주워들었다.사진 속에는 주한이 있었다.한 장은 주한의 단독 사진으로 소년의 맑고 깨끗한 모습이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