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가문의 두 형제는 아주 바람직하게 생겼다. 유자성은 40이 넘는 나이었지만 여전히 점잖고 위엄이 있었으며 그의 기세는 누구라도 탄복할 정도였다.유강후는 당연히 더 잘생겼다. 차갑고 귀티가 흐르는 냉미남 유형에 그 나이대에 보기 힘든 상위 포식자의 맹렬한 기운이 흘러넘쳤다.겉모습으로만 봐도 두 형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랐다.멀지 않았던지라 창가에 서서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유자성의 목소리는 묵직했다.“염지훈은 말도 잘하고 일도 척척 잘하지. 젊은이 중에서도 꽤나 잘생긴 축에 속하니까 하령이 짝으로 맺어주는 거 어떻게 생각해?”유강후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차가웠다.“하령이만 마음에 든다면 상관없죠.”말을 마친 뒤 그는 틈이 생긴 창문과 커튼 쪽을 보았다.유자성은 동생의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염씨 가문은 수완이 좋아. 집안도 꽤나 좋고 흠잡을 데가 별로 없지. 하지만 같은 사업인으로서 생각하면 우리 유씨 가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유강후는 유리방을 빤히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형, 유씨 가문이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만 해도 끝이 보이는데 정말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그래.”유자성은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무리 잘 되고 싶어도 이제 더는 안 될 거야.”이때 심미진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하령이는 염지훈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최근 두 달 동안 매일 염씨 가문으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잖아요. 젊으니까 가끔 마음 조절이 않나 봐요. 그래도 약혼식은 될수록 빨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속도위반으로 먼저 임신하기라도 하면 저희 가문의 이미지에도 안 좋잖아요.”그러자 유자성은 아주 언짢은 어투로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야? 내 딸은 그런 아이가 아니야.”심미진은 더는 입을 열 수가 없었고 과일을 가져와 껍질 까는 척했다.유강후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커튼을 내리려던 온다연이 손이 멈추었다.“우리 두 가문도 그동안 많은 교류를 해왔잖아.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이기도 하고. 비록 너희 둘 사이가 조금 틀어지긴 해도 3년이나 지났으면 이젠 화를 풀 때가 되지 않았나? 대충 화 풀고 날 잡아서 결혼해.”유자성은 이내 고개를 돌려 유리방을 힐끗 보면서 들으라는 듯 조금 크게 말했다.“네가 밖에서 고양이를 키우든 개를 키우든 상관없어. 어차피 돈만 쥐여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아직 놀고 싶은 네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아무나 곁에 두지 마. 유씨 가문의 문턱은 누구나 넘을 수 있는 게 아니란다.”유강후의 안색이 변하고 목소리가 싸늘해졌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형은 형 일에나 신경 써요.”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시간도 늦었으니 형도 돌아가세요. 나도 이젠 쉬어야겠으니까.”유자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 말하려던 순간 심미진이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쉬겠다고 하잖아요. 우린 그냥 돌아가요. 가족끼리 언제든지 다시 모일 수 있잖아요. 형제 사이에 자꾸 상처가 되는 말 하려고 하지 말아요.”유자성의 표정이 다소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심미진의 말대로 그냥 돌아갔다.두 사람은 함께 나갔다. 유하령은 바로 유강후의 곁으로 달려와 팔을 잡으면서 애교를 부렸다.“삼촌, 부탁할 거 있는데 꼭 도와줘야 해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뭘 갖고 싶은 건데. 알아서 사. 난 시간 없으니까.”그러자 유하령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댔다.“삼촌 지난번이랑 완전히 딴 사람 같아요. 만난 지 두어 번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엄청 밉네요.”이내 또 애교를 부리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삼촌은 예전에 나랑 민준이를 아주 예뻐해 줬잖아요. 혹시 애완견이라도 키우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나랑 민준이를 방치해 두고 있는 거죠. 나 삐질 거예요.”유강후는 별수 없이 유하령을 밀어냈다.“예의라곤 하나도 없네. 애완견을 키우고 있다니, 내가 네 선물 사 오지 않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니? 지난달에 네
분명 날은 춥지 않았지만, 원래부터 추위를 자주 탔던 온다연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풀면서 또 움켜쥐기를 반복했다.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더는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또 얼마나 지났을까, 유리방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체향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곧이어 커다란 손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온다연은 고개를 돌려 유강후의 손길을 피해버렸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빛이 차가워지고 팔을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확 끌어안으면서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게 했다.예상대로 온다연은 그의 팔을 잡더니 힘껏 자기 몸에서 떼어냈고 이내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었다.방 안은 조금 어두웠고 침대도 크지 않았다. 온다연이 꿈틀대며 뒤로 물러서자 순간 침대에서 떨어졌다.유강후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졌다.작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울지도 않고 아프다고 소리를 내지 않아 꼭 숨소리마저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유강후는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침대를 지나쳐 그녀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도망갔다.그러나 그녀의 두 다리는 유강후의 두 팔보다 빠르지 못했다. 벌떡 일어난 순간 바로 그에게 붙잡혀 버렸다.방은 어두웠기에 상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온다연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고 울고 있는 듯했다.유강후는 미간을 확 구겼다.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또 피해버렸다.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다연아?”온다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면서 다시 도망치려는 자세를 보였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커튼을 열었다.달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온다연은 그녀의 팔을 확 잡았다. 그리고 세게 깨물었다.온 힘을 다해 깨물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빠르게 그의 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유강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녀가 깨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느새 그녀가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피해버렸다. 그녀는 하악질을 해대는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손대지 말아요!”유강후의 눈빛이 더 차갑게 식어갔다. 얇은 입술도 일자가 되었고 두 사람 사이로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정원의 불빛에 그의 그림자는 문에 비쳤다. 온다연의 그림자는 그의 그림자에 삼켜졌다.원래부터 위압감이 느껴지는 그였지만 차갑게 굳은 얼굴을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더 심하게 느껴졌다.그의 커다란 그림자 속에 갇힌 온다연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화가 났고 숨 막혔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느껴지는 위압감에 그녀는 숨쉬기가 힘들어졌고 문에 기댄 채 주르륵 주저앉았다.바닥은 아주 차가웠다. 전부 조약돌이었던지라 엉덩이가 너무 아플 것 같았지만 그녀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마치 생기를 잃은 작은 짐승처럼 보였다.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리곤 거실로 들어갔다.소파 위에 그녀를 내려놓더니 티브이를 켰다.온다연이 그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채널을 돌렸다.“무한테크의 주가는 또다시 바닥을 쳤습니다. 무한테크의 고승철 회장은 떨어지는 회사 주가를 결국 붙잡지 못했습니다.”“무한테크는 한때 국내에서 AI 기술을 만들어 유명세를 떨친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파산의 길을 걷고 있어 많은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저희가 취재한 바로는 다른 자본이 무한테크에 개입해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현재 고승철 회장은 최선을 다해 내려가는 주가를 붙잡고 있다고 합니다...”...경제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온다연은 티브이에 집중했다. 한참 티브이를 보고 있으니 그녀도 점차 진정되었다.유강후는 약상자를 가져왔다. 그녀를 안아 올려 자신의 무릎에 앉힌 후 돌에 까진 발을 치료해 주었다.이번엔 반항하지 않았다.방금 그녀는 신발도 신지 않고 정원에 깔린 돌을 밟았다. 부드러웠던
유하령이라는 세글자에 온다연의 손가락이 움찔 떨렸다.유강후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조금만 더 시간을 줘.”요 며칠, 그는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한꺼번에 알게 됐고 그 모든 것들이 그를 분노케 했다.그가 없는 몇 년간, 아니, 그가 경원시에 있었던 그 시간에도 온다연은 유 씨네 집에서 영상보다 더한 대우를 받았다. 그녀를 괴롭힌 주모자가 누군지 온갖 방법을 써 알아봤지만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다.누군지는 몰라도 어둠 속에 꼭꼭 숨은 인물이었다.물론 의심 가는 사람은 있었다. 심지어 그 의심의 화살이 친형에게까지 갔지만 그렇다 할 증거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그리고 만약 이 모든 게 정말 유씨 집안 사람 중 누군가의 짓이라면 분명히 이렇게 해야만 하는 목적이 있을 테고 그건 생각보다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또한 중요한 점은 아직 대놓고 배후를 찾아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가는 유씨 가문이 하루아침에 가루가 되어 흩어질 테고 그렇게 되면 그 누구에게도 득은 아닐 것이다. 가문은 물론이고 미래 그룹 또한 불안정해지고 나아가서는 무너지고야 말 테니까.그런 건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유강후 본인도 말이다.그러니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주모자가 누구든 놓아줄 생각은 없다. 반드시 찾아내 이런 짓을 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줄 것이다.다만 온다연은 그때를 기다리는 게 조금 힘든 듯했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말했다.“조금만 기다려줘. 고씨 가문은 그저 시작일 뿐이야.”온다연은 그 말에 침묵으로 답했다.비스듬히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자 그녀의 앞머리가 부드럽게 날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 탓에 그녀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삼촌은 유하령이 좋아요?”유강후는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속눈썹을 바라보며 되물었다.“네가 볼 때는 어떤데?”온다연의 얼굴색은 여전히 혈색 하나 없었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나
길게 뻗은 팔에 안 어울리는 밴드 두 개가 떡하니 붙어져 있어 보기 거슬렸다.온다연은 귀가 빨갛게 물든 채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미안해요.”그 모습에 유강후는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다시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자기 어깨를 가리켰다.“어깨에도 있어. 여기도 발라줘.”온다연은 그 말에 이틀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나 얼굴 전체가 빨개져 버렸다.당시 그녀는 확실히 세게 깨물었고 피까지 났었다.어깨에 남겨진 상처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가 옷을 입고 있는 바람에 볼 수가 없었다.이에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유강후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을 미세하게 웃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옷 벗겨서 봐.”온다연은 잠깐 망설이다 손을 들어 그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갔다.이미 몇 번 풀어봤기에 빨리 벗길 수 있었다.절반 정도 푼 다음 그녀는 옷을 조금 벗겨 상처를 확인했다. 오늘 물린 곳처럼 아파 보이지는 않았지만 껍질이 살짝 벗겨져 있었고 이빨 자국은 어느새 푸르게 멍이 들어있었다.이걸 보면 당시 그녀가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온다연은 손을 들어 멍이 든 곳을 살살 매만지며 물었다.“아파요?”유강후는 까만 눈을 그녀의 두 눈에 고정한 채 말했다.“깨무는 게 좋으면 몇 번 더 물어도 돼.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안 닿는 곳을 물어.”그 말에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이 남자는 꼭 이런 부끄러운 말을 입에 내야 속이 시원한 걸까?그녀는 그를 째려보았다.“삼촌 진짜!”유강후는 그녀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살짝 삐진 듯 구는 모습 또한 사랑스러웠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다른 쪽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이쪽도 물어봐.”온다연은 이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마조히스트인가? 지금도 이렇게나 아파 보이는데 또다시 물라고?유강후는 웃는 듯 마는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얼마 안 가 유강후는 옷을 전부 다 벗어버리고 가운 하나만 걸친 채 욕실로 들어갔다.물소리가 들려오고서야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의 침실은 바로 옆방이었다.이대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면 오늘 저녁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그 생각으로 몸을 천천히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갑자기 유강후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리고 이내 물소리가 멎더니 그가 물기 가득한 채로 욕실에서 나왔다.온다연은 그를 힐끔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유강후는 지금 허리춤에 타올 하나만 두르고 있어 잔 근육들로 뒤덮인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물기를 닦지 않은 탓에 작은 물방울들이 그의 목을 따라 가슴으로 내려가 이내 복근까지 흘러내렸다.그는 이쪽으로 걸어오며 손에 든 마른 타올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그 움직임으로 근육들이 미세하게 떨리며 언뜻언뜻 핏줄도 튀어나왔다.게다가 그가 허리춤에 있는 타올을 세게 밑으로 내린 바람에 지방 하나 없는 듯한 치골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정말 섹시함을 그대로 두르고 나온 듯했다.온다연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머릿속으로는 그가 자신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밀어붙이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녀의 심장은 멋대로 뛰었고 이제는 목까지 빨개져 버렸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싶지만 생각을 그만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개는 자꾸 위로 들리고 시선은 자꾸 그를 찾았다.고개를 들어 그를 본 순간, 유강후의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끌어당겨 버렸다.온다연은 화들짝 놀라 고작 1초 정도 보고는 금세 다시 고개를 숙여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무언가 얘기하더니 곧바로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강후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 그저 무섭기만 했는데 지금은 심장이 고장 날 듯한 떨림만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다가오면 올수록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은 유강후에 몸을 완전히 맡기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온다연은 조금 반항하는가 싶더니 이내 천천히 눈을 감고 혀로 그의 입술을 조금씩 두드렸다.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유강후는 대단한 자극이라도 받은 듯 몸이 굳어지더니 이내 그녀의 입술을 피가 날 듯이 깨물었다.이에 온다연은 아프다며 소리 냈다.“아파...”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풀어주고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온다연, 날 이렇게 만든 건 너야.”그러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옷 안을 휘저었다.온다연은 지금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유강후는 아주 손쉽게 그녀의 속살을 움켜쥐었다.말랑한 감촉에 이성을 잃은 뻔하면서도 다른 한 손은 허리에서 천천히 내려오더니 그녀의 다리를 서서히 벌려갔다.온다연은 그의 손길에 머리가 아득해져 저도 모르게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이 행동은 그에게 있어 응하겠다는 사인과 다름없었다.얼마 안 가 온다연은 자신의 허리에 뜨거운 무언가가 닿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가운이 전부 다 젖혀져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을 깨달았다.순간 너무 놀랐던 것인지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그걸 눈치챈 유강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쉬, 착하지. 무서워하지 마. 아프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이다음으로 그가 무엇을 할 건지 알고 있다.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발버둥 쳤다.하지만 유강후가 그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고 그녀의 손을 잡아 또다시 거칠게 위로 올렸다.온다연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느끼며 흐느꼈다.“아파요, 삼촌. 아프다고.”유강후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고 온몸에 열기가 돌았다.“조금만 있으면 아프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이제 곧 울 것 같았다.“상처가 아프다고. 너무 아파. 상처 벌어진 것 같아요.”그 말에 유강후의 몸이 뚝 하고 굳었다. 그는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