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가 유강후는 옷을 전부 다 벗어버리고 가운 하나만 걸친 채 욕실로 들어갔다.물소리가 들려오고서야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의 침실은 바로 옆방이었다.이대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면 오늘 저녁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그 생각으로 몸을 천천히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갑자기 유강후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리고 이내 물소리가 멎더니 그가 물기 가득한 채로 욕실에서 나왔다.온다연은 그를 힐끔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유강후는 지금 허리춤에 타올 하나만 두르고 있어 잔 근육들로 뒤덮인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물기를 닦지 않은 탓에 작은 물방울들이 그의 목을 따라 가슴으로 내려가 이내 복근까지 흘러내렸다.그는 이쪽으로 걸어오며 손에 든 마른 타올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그 움직임으로 근육들이 미세하게 떨리며 언뜻언뜻 핏줄도 튀어나왔다.게다가 그가 허리춤에 있는 타올을 세게 밑으로 내린 바람에 지방 하나 없는 듯한 치골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정말 섹시함을 그대로 두르고 나온 듯했다.온다연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머릿속으로는 그가 자신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밀어붙이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녀의 심장은 멋대로 뛰었고 이제는 목까지 빨개져 버렸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싶지만 생각을 그만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개는 자꾸 위로 들리고 시선은 자꾸 그를 찾았다.고개를 들어 그를 본 순간, 유강후의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끌어당겨 버렸다.온다연은 화들짝 놀라 고작 1초 정도 보고는 금세 다시 고개를 숙여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무언가 얘기하더니 곧바로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강후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 그저 무섭기만 했는데 지금은 심장이 고장 날 듯한 떨림만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다가오면 올수록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은 유강후에 몸을 완전히 맡기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온다연은 조금 반항하는가 싶더니 이내 천천히 눈을 감고 혀로 그의 입술을 조금씩 두드렸다.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유강후는 대단한 자극이라도 받은 듯 몸이 굳어지더니 이내 그녀의 입술을 피가 날 듯이 깨물었다.이에 온다연은 아프다며 소리 냈다.“아파...”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풀어주고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온다연, 날 이렇게 만든 건 너야.”그러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옷 안을 휘저었다.온다연은 지금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유강후는 아주 손쉽게 그녀의 속살을 움켜쥐었다.말랑한 감촉에 이성을 잃은 뻔하면서도 다른 한 손은 허리에서 천천히 내려오더니 그녀의 다리를 서서히 벌려갔다.온다연은 그의 손길에 머리가 아득해져 저도 모르게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이 행동은 그에게 있어 응하겠다는 사인과 다름없었다.얼마 안 가 온다연은 자신의 허리에 뜨거운 무언가가 닿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가운이 전부 다 젖혀져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을 깨달았다.순간 너무 놀랐던 것인지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그걸 눈치챈 유강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쉬, 착하지. 무서워하지 마. 아프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이다음으로 그가 무엇을 할 건지 알고 있다.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발버둥 쳤다.하지만 유강후가 그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고 그녀의 손을 잡아 또다시 거칠게 위로 올렸다.온다연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느끼며 흐느꼈다.“아파요, 삼촌. 아프다고.”유강후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고 온몸에 열기가 돌았다.“조금만 있으면 아프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이제 곧 울 것 같았다.“상처가 아프다고. 너무 아파. 상처 벌어진 것 같아요.”그 말에 유강후의 몸이 뚝 하고 굳었다. 그는
어둠 속 유강후은 손가락으로 온다연의 입술을 매만지다가 마지막에는 입꼬리 근처를 배회했다.그는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너한테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그의 눈치를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렇다고 확실히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그럴 만한 담은 없었다.“조금, 아주 조금요.”그 대답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그걸 눈치챈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이불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정말 조금이요...”그때 유강후가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덥석 잡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온다연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에 하루빨리 날 받아들일 생각이나 해. 내가 오늘은 넘어간다고 해도 내일도 너를 가만히 놔둘까?”그는 갑자기 그녀의 귓불을 입에 물었다.“마음 같아서는 널 지금 당장 씹어먹고 싶어.”그 말과 함께 세게 깨무는 바람에 온다연은 숨을 헙하고 들이켰다.“아파요.”유강후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이제야 아파? 아까 발이 그렇게 됐을 때는 왜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해?”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주위가 어두웠기에 지금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의 호흡과 심장 소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시각이 기능을 못 하는 탓인지 나머지 감각들이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온다연은 방안 곳곳에 온통 유강후의 냄새로 꽉 찬 것 같았다. 시원한 우디향과 그의 숨결이 어우러져 공기 중에 떠돌아 그녀의 귀와 코 그리고 눈과 피부 등 공기와 맞닿은 모든 것에 스며들어 혈관 깊숙이 들어와 이윽고 심장에 뿌리를 내려 그녀의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불행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온다연은 자기가 생각하고도 화들짝 놀라 왼쪽 가슴을 꾹 눌렀다. 정말 유강후의 숨결이 심장에 자리 잡은 것 같아 순간 겁이 나기 시작했다.그때 유강후가 갑자기 그녀를 감싸던 이불을 끌어 내리고 그녀에게 몸을 겹쳐왔다.그
유씨 집안 사람들이 없으니 이 호텔도 나름 편하게 느껴졌다. 정원도 예쁘고 온천도 좋았고 휴식 코너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신선한 과일들과 맛있는 디저트가 놓여있었다.온다연은 디저트를 하나 들고 휴식 코너의 의자에 누워 느긋하게 뉴스를 시청했다. 그러다 며칠 전 밥 먹을 때 만났던 안경 쓴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그는 양복 차림에 머리를 한 올도 남기지 않고 싹 다 뒤로 올렸으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온다연은 어딘가 모르게 이 남자가 불편했다. 웃을 때면 소름이 돋았고 시선이 마주칠 때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이에 그녀가 몸을 일으켜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자 남자가 한발 빠르게 옆으로 다가와 그녀의 옆에 앉아버렸다.“나 그쪽 누군지 알아요. 유씨 집안 막내 도련님이 데려온 파트너, 맞죠?”온다연은 이대로 가버리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남자는 온다연을 아래위로 몇 번 훑더니 안경을 매만지며 씩 웃었다.“유강후 씨 안목이야 뭐 예전부터 좋았죠. 매번 유강후에게 지목당한 여자는 몸값이 몇 배로 뛰었고요. 나한테로 올래요? 이전 몸값의 3배를 줄게요.”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두어 걸음 떼기도 전에 그가 손목을 덥석 잡아 왔다.“내 말 아직 안 끝났는데?”남자는 양아치 기질이 다분했고 온다연을 하찮은 여자 보듯 바라보았다.온다연은 침착하게 대꾸했다.“저기요. 저는 그쪽이 누군지도 모르고요, 지난번에 얼굴 한 번 본 게 다예요. 그리고 당신과 얘기 나눌 생각 없으니까 당장 이손 풀어요.”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날 모른다고? 경원시에서 어떻게 날 모를 수가 있지? 혹시 뭐 괜히 튕기는 거야? 몸이나 파는 년 주제에 유강후한테 대주면서 나한테는 못 대줘?”온다연은 그의 모욕적인 말에 언성을 높였다.“지금 당장 이거 놓으세요!”임도현은 혀를 찼다.“유강후랑 침대에서 좀 뒹굴었다고 몸값이 하늘로 치솟은 것 같아? 막 부잣집 아가씨라도 된 것 같고 그래? 이
아직 이른 시간이라 라운지 바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고 모든 룸의 문이 닫혀 있는 가운에 제일 안쪽에 있는 큰 룸 앞에만 두 명의 웨이터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룸을 지키고 있었다.온다연은 자기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몰랐다. 그렇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가려는데 방금 봤던 그 룸 문이 거칠게 열렸다.“꺼져. 앞으로 이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마. 내 말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지?”천 쪼가리 하나만 입은 젊은 여자 한 명이 거칠게 땅바닥에 내쳐졌다. 문을 열어젖힌 남자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어딜 감히 도련님 물건을 건드려? 죽으려고. 당장 꺼져. 앞으로 내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너는 앞으로 이 바닥에서 끝이야.”내쳐진 여자는 그 말에 사색이 되어서는 바닥을 기며 싹싹 빌었다.“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저한테 딸린 식구가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불쌍한 사람 하나 구제하신다 생각하고 한 번만 봐주세요.”“안 꺼져?!”여자는 남자의 발에 의해 멀리 날아갔고 맞은편 벽에 허리를 세게 부딪혔다.룸 문이 매정하게 닫히고 여자는 이렇게 물러날 수 없다는 듯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문을 두드리며 울며불며 빌었다.그러자 문밖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웨이터가 그녀의 양팔을 붙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온다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다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때 어떤 남자가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룸 쪽으로 끌고 갔다.“뭘 멀뚱멀뚱 보고 있어. 빨리 들어가지 않고.”그리고 어느새 뒤에는 두세 명의 남자가 더 서 있었다. 그들 뒤에는 젊은 여자들 여러 명이 예쁘게 단장한 채 서 있었다.남자는 거칠게 온다연의 손목을 잡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온다연은 지금 스포티한 옷을 입고 있었고 속살 하나 드러내지 않았다. 배를 까고 얇은 천 하나만 입은 여자들 사이에 그녀는 단연 눈에 띄었다.뒤에 있던 남자가 온다연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옷이 이게 뭐야? 왜 안 갈아입었어?
온다연은 다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두 명의 남자가 다가와 그들을 앞으로 끌고 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너희들한테 기회야. 지금 제일 중앙에 앉아 있는 남자는 경원시 제일 유명한 유씨 가문의 막내 도련님, 유강후고 그 왼쪽에 있는 남자는 한씨 가문의 후계자 한이준이야. 그 옆의 두 명은 옆 나라의 재벌가 도련님들이고 오른쪽에 있는 두 명의 중동 남자는 석유 왕국의 왕자님들이지. 내가 이런 정보를 주는 이유가 뭔지 알지? 오늘 너희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야.”남자가 말을 마치자 어느새 온다연을 포함한 여자들이 남자들 가까이에 도착했다.뒤에 있던 남자는 어느새 앞으로 나와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대표님들,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신입들을 데리고 왔습니다.”남자가 여자들을 소개할 때 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뒤로 물러서 여자들 뒤에 숨더니 조용히 룸을 나가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인사를 마친 남자가 도망가는 온다연의 손목을 잡아 거칠게 끌어당기더니 제일 앞에 세워놓았다.“누구 손 한번 탄 적 없이 모두 깨끗합니다. 보다시피 이제 막 성인이 됐고요.”남자가 힘을 가한 탓에 온다연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하필 넘어진 곳에서 고개만 들면 유강후가 보였다.순간,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온다연에게로 쏟아졌다.온다연은 고개를 한껏 숙인 채 눈앞에 있는 남자의 구두만 바라보았다. 그건 유강후의 신발이었다.순간 비참하고 모욕적인 감정이 마음속에서 끓어올랐고 이대로 그냥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먹을 꽉 말아쥐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그때 남자가 아부하기 위해 유강후를 콕 집어 말했다.“도련님, 어떠십...”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남자의 무릎을 세게 걷어차 버렸다.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곧바로 유강후의 구두가
온다연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방금 유강후가 사람을 때리는 모든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다.반항 한번 없이 맞고 있는 남자를 보며 그녀는 자신이 맞았던 광경이 떠올랐다.유하령과 그녀의 친구들에 의해 바닥에 쓰러져 맞고 있을 때, 자신도 이 남자처럼 비참하고 불쌍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역시 유씨 가문 사람들은 다 같은 핏줄이라 그런지 사람 때리는 모습마저 닮아있었다.한이준의 말에 웨이터들은 피범벅이 된 남자를 룸에서 끌어냈다.온다연은 끌려가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 발로 들어온 거예요, 도련님.”도련님이라는 아주 익숙하고도 낯선 호칭이 들려왔다.유강후는 몸을 돌려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온다연은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말아쥐고 다시 말했다.“도련님이요.”유강후의 얼굴은 점점 더 차가워져 갔고 목소리는 점점 더 서늘해졌다.“누가 널 이곳으로 데리고 들어왔어?”온다연은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제 발로 들어온 거예요. 혹시 제가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걸까요, 도련님?”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말에 가시가 있었다.평소의 그녀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이제껏 유강후의 앞에서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인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여자는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을 내뱉었다. 게다가 이 여자는 유강후의 손아귀에 있는 여자였다.거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와 유강후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온다연, 방금 한 말 다시 해봐.”온다연은 손톱으로 손바닥을 아프게 긁으며 아까 유강후의 옆에 있었던 여자들을 힐끔 바라보았다.두 사람 모두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어렸다.유강후는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 마치 애완동물처럼 쉽게 다룰 수 있는 그런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그리고 그녀도 그의 후궁 컬렉션 중 한 명인 걸까?온다연은 순간 메슥거림이 밀려와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줄곧 머릿속으로 이 세글자가
그때 집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모시고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이곳의 주인은 유강후이고 온다연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순순히 집사를 따라 다시 돌아갔다.도착해보니 언제 배달을 해온 것인지 흰색 장미가 거실과 침실 그리고 정원 테이블, 심지어는 온천 풀 안에도 놓여있었다.평소라면 꽃향기를 즐겼겠지만 지금은 속이 안 좋아 집사가 건네주는 약도 얼마 안 가 또다시 토해내고야 말았다.또한 간단한 디저트도 입에 넘기지 못한 채 그대로 뱉어냈다.저녁 식사 전에 맞춰 유강후가 돌아왔다.밖은 붉은 노을이 지고 있어 아직 밝았다.유강후는 정원 의자에 앉아 있는 온다연의 앞에 나타났다.흰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검은색 바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아주 깔끔한 차림이었다.다만 겉은 이렇게 깔끔하고 고고하면서 잔인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다닌다.유시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매정하다. 유강후를 시작으로 유하령 그리고 유민준까지 모두 똑같은 인간들이다.찬 바람이 불어오자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유강후는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표정이 어두운 것이 아까의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어색한 적막만 흐르고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러다 유강준이 발걸음을 옮겨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몇 분 후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갈아입은 옷은 역시 흰색 셔츠였고 다만 스트라이프가 아닐 뿐이었다. 옷에서는 유강후 특유의 시원한 우디향이 풍겼고 지금 있는 정원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온다연은 시선을 내려 바닥을 바라보며 드디어 작은 입을 열었다.“이번에는 어떤 벌을 줄 생각이에요?”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내가 더러워?”온다연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무려 유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인데, 재력도 있고 권력도 있는 남자인데, 경원시의 여자들이 원해 마지않는 남자를 어떻게 감히 더럽다고 생각할
그 남자는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이런 화려한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깨끗한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얼굴 또한 맑고 단정했다.눈빛은 밝으면서도 약간의 풋풋함이 스며 있었으며 눈가에 찍힌 작은 ‘눈물점’은 마치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자리해 묘한 감성을 풍겼다.놀랍게도 그의 모습은 온다연이 알고 있던 주한과 무려 7,8할이나 닮아 있었다.온다연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임정아는 온다연이 그를 바라보며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를 마음에 들어 한 줄 알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참, 역시 어린 여자애들은 다 이런 스타일 좋아하더라. 저 사람 최근 대세인 주혜성이랑 닮았잖아요. 저 사람 고르는 손님이 정말 많다니까요? 근데 다연 씨도 이런 스타일을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그러더니 손짓하며 그를 불렀다.“야, 너, 이리 와봐!”그 남자는 주위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다가왔다.부드러운 조명이 그의 몸을 감싸며 마치 석양빛을 두른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그 모습은 온다연에게 과거 학교 끝난 오후,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던 주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그는 항상 따뜻한 미소로 이렇게 말했다.“다연아, 오늘 저녁은 단팥죽 만들어 줄게.”금세 남자는 온다연 앞에 섰다.“안녕하세요. 저는 허한이라고 합니다.”‘주한? 허한?’온다연은 잠시 멍해지며 중얼거렸다.“한아...”허언도 잠시 멍해지더니 귀 끝이 빨개졌다.“한아라고 불러도 괜찮아요.”온다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예전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텔에서 술을 팔던 일을 했었기에 이런 곳의 규칙은 잘 알고 있었다.“여기엔 무슨 술이 있어요?”허한은 테이블 위의 메뉴판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원하는 거 아무거나 고르세요.”그러자 온다연은 몇 병을 대충 골랐고 임정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술을 마시겠다고요? 미쳤어요? 다연 씨 몸 생각은 안 해요?”하지만 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허한을 바라보며 멍한 눈빛으로 있었다.
“자, 내가 오늘 예쁘게 꾸며줄게요!”임정아는 온다연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몇 번 꼬집고는 감탄했다.“역시 유강후, 뭘 좀 알긴 아네요. 매일 이렇게 탱탱하고 물기 가득한 미모의 여자를 끌어안고 있으니 놓을 리가 없죠!”“흥, 저런 개 같은 남자들은 누리는 것만 좋아해요. 오늘은 우리도 누려보자고요! 그 인간 생각은 그만하고 내가 남자 모델 열 명 불러줄게요. 다들 잘생기고 말도 잘하고 심지어 복근도 빵빵한 애들로다가.”온다연은 피부가 워낙 좋고 얼굴형도 예뻐서 임정아가 간단히 손만 봐줬을 뿐인데도 이미 돋보였다.모든 준비가 끝나자 임정아는 그녀를 끌고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한 클럽 앞에 멈춰 섰다.이곳의 단골인 듯 임정아가 들어서자마자 매니저는 나와 반겼다.곧 임정아는 장갑을 벗어 매니저에게 던지며 말했다.“내 동생 기분 풀러 왔어요. 새로 들어온 애들 있으면 순수하고 깨끗한 애들로 골라서 데려와요. 술은 필요 없고 음료로 대신해 줘요.”그러면서 온다연을 슬쩍 바라보며 덧붙였다.“내 동생은 술 못 마시거든요.”매니저는 온다연을 보고 눈빛을 반짝였다.“새로 계약한 모델분이신가요? 완전히 대세 얼굴인데요. 정아 씨 안목은 역시 최고입니다!”임정아는 온다연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며 경고하듯 말했다.“헛소리 하지 마요. 이 친구는 이런 업계 사람이 아니니까.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마요.”그러나 매니저는 여전히 온다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에이, 꼭 업계 사람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제가 보너스 많이 챙겨드릴게요. 7대3, 어때요?”임정아는 그에게 침을 뱉는 시늉을 하며 단호히 말했다.“닥쳐요. 이 애는 술자리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망상은 여기서 끝내요. 계속 이러면 저 그냥 갈 거예요?”매니저는 그제야 아쉬운 듯 시선을 거두었다.그렇게 임정아는 온다연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가요. 내가 오늘 제대로 된 세상을 보여줄게요. 어떤 게 진짜 미의 향연인지 알게 될 거예요.”
그러고는 아쉬운 듯 말했다.“입술 위의 그 작은 점, 정말 아쉽네요. 사실 굉장히 매력적이었는데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느낌이었거든요. 이제 없어지니까 좀 어색해요!”“근데 말이에요...”임정아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요즘 우리 사이에서 눈가 밑에 작은 눈물점 찍는 게 유행이거든요. 뭔가 절망에 빠진 것 같은 감성이 있는데 다연 씨처럼 이런 분위기를 가진 사람한테 딱 어울리는 것 같아요!”온다연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냥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나랑 안 어울려요.”임정아는 온다연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 정면을 바라보게 하며 말했다.“하려면 확실히 바꿔야죠. 게다가 이건 그냥 화장을 하는 정도예요. 약물 효과가 두세 달 정도밖에 안 가니까 시간이 지나면 점도 자연스럽게 흐려질 거예요.”온다연은 결국 묵묵히 동의했다.미용실에서 나온 뒤 온다연은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어깨에 닿는 짧은 머리는 그녀를 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만들어 딱 고등학생 같은 느낌을 줬다.그런데 새로 찍은 눈가의 작은 점이 얼굴 전체에 묘한 매력을 더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임정아는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다.“이렇게 좋은 조건을 가지고도 배우를 안 한다니 정말 안타깝네요. 이 얼굴을 사람들에게 안 보여준다는 건 완전 재능 낭비라니까요?!”“있잖아요, 배우 해볼 생각 없어요? 내가 보장하는데 지금의 주혜성보다 훨씬 더 뜰 거예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다연 씨 팬이 될걸요?”그러나 온다연은 살짝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쉴 수 있는 곳 좀 찾아줄래요? 잠깐만이라도 자고 싶어요.”임정아는 한숨을 내쉬었다.“알았어요, 가요.”그날 온다연은 저녁이 될 때까지 푹 잠들었다.눈을 뜨자마자 임정아는 그녀를 드레스룸으로 끌고 갔다.온다연은 처음으로 연예인의 드레스룸을 보게 되었고 그 규모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수백 평에 달하는 공간은 각종 명품 브랜드의 최신 시즌 의상들로 가득 차 있었고 화려한
유강후는 자신이 그녀를 더 많이 바라보다가 위험한 감정이 깊어질까 두려워 일부러 유씨 가문을 떠나 따로 거처를 마련했었다.심미진이 그래도 친이모였기에 온다연에게 큰 관심을 주진 못해도 가볍게 잔소리를 들을 정도는 될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유하령과 그 무리들이 그렇게 잔인할 줄은 유강후도 몰랐다.그는 자신이 정말로 큰 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끔찍할 만큼 잘못된 판단이었다.염지훈의 말 중 하나는 또 맞았다.온준용이 그녀의 친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깊게 파헤치지 않았다.온다연의 부모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녀가 이 생에서 의지해야 할 사람은 원래부터 부모가 아니었다.그녀의 세상에는 오직 그만이 있어야 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두고 간 외투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없이 말이다.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임정아는 온다연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가는 길에 별장 근처에 있는 미용실의 유리창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비친 것을 본 온다연이 걸음을 멈췄다.그녀는 한참 동안 유리창을 바라보더니 낮게 말했다.“정아 씨, 나 이 미용실에 들어가고 싶어요.”임정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참 신기하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미용을 하고 싶어 하다니.”그러면서 그녀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뺨을 살짝 꼬집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얼굴이 이렇게 예쁘고 탱탱한데, 미용 스타들도 다 이길 것 같은데 굳이 뭐하러 가요?”하지만 온다연은 대꾸하지 않고 미용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그러고는 자신을 반기러 온 미용사에게 말했다.“작은 시술을 받고 싶어요.”뒤이어 온다연은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여기에 작은 점이 있는데 없애주세요.”미용사는 그녀의 입술 위에 있는 바늘구멍만큼 작은 점을 살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점은 굉장히 작고 위치도 참 좋네요. 미모를 방해하기는커녕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주는걸요. 없앨 필요가 없어요!”그때, 안으로 들
염지훈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유씨 가문에서 지내온 세월 동안, 다연이는 매일같이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왔어요. 그게 다 당신 덕분이고요. 유강후 씨, 무슨 구세주라도 되는 것처럼 굴지 마요. 그때 다연이를 괴롭힌 사람들을 모두 제거했다고 한들, 당신이야말로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으니까!”그는 피 섞인 침을 뱉으며 냉소적으로 덧붙였다.“열세 살이던 해에, 심미진이 다연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했던 걸 당신이 막았잖아요. 강제로 다연이를 남게 했었죠. 그런데 남게 한 다음엔 뭘 했죠? 방치하고 대놓고 유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해서 더 큰 괴롭힘을 받게 만들었잖아요!”“유강후 씨, 당신은 자격이 없어요!”그는 천천히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조롱이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그리고 사실 알고 있었잖아요. 온준용이 다연이의 친부가 아니라는 걸. 하지만 당신은 그걸 이용해서 다연이를 자기 곁에 가두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다연이가 그렇게 아름다운 건 다연이의 유전자가 특별하기 때문이겠죠. 다연이의 친부모를 찾아주면, 그 사람들이 다연이의 편에 서서 다연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까 봐, 그래서 다연이가 당신의 통제에서 벗어날까 봐 두려웠던 거잖아요!”그러자 눈빛이 싸늘해지며 유강후가 말했다.“염지훈, 오늘 여기서 죽고 싶은 거야? 입 닥쳐!”하지만 염지훈은 비웃음을 터뜨렸다.“뭐예요, 내가 당신 약점 건드리니까 심장이 떨려요? 겁나요?”“유강후 씨, 정말 잘도 계획했네요. 하지만 그 아름다운 꿈은 곧 끝나게 될 겁니다.”“그리고 난 당신과 달라요. 나는 다연이를 데려가서 당신 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 겁니다!”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단호히 말했다.“난 다연이를 존중해 줄 거예요. 자유를 줄 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응원할 거예요.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새로운 삶을 탐험하도록 도와줄 겁니다. 당신처럼 병적으로 다연이를 가둬두는 짓은 하지 않고요.”그 순간, 차가운 무언가가 그의 머리에 닿았다.유강후는
경호원들은 두 사람이 마주 선 모습에서 싸움이 일어날 것을 직감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었다.유강후는 낮게 포효했다.“나가! 이건 우리 두 사람 일이야. 너희들은 끼어들지 마!”염지훈은 비웃으며 말했다.“의외로 남자답게 행동할 때도 있네요.”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손목시계를 풀어 바닥에 던지고 손목을 한 번 돌렸다.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않고 조금씩 풀어냈다.오랜만에 이런 싸움에 대한 충동을 느꼈다.오늘 이 방 안에서 유강후와 염지훈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쓰러질 것이었다.그리고 그 사람은 절대 유강후 자신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염지훈이 반응할 틈도 없이 유강후는 표범처럼 그에게 덤벼들었다.염지훈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강렬한 펀치를 한 대 맞고도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경호원들은 방 안에서 두 명의 권위 높은 남자가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며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아무도 싸움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한참 뒤, 유강후가 간신히 우위를 점했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일어서며 염지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어이, 내가 이미 경고했지. 다연이는 네가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다시 다연이한테 다가가기만 하면 내가 죽여버릴 거야!”염지훈은 피를 뱉어내며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오늘 겨우 이겼다고 승리한 줄 알아요? 웃기지 마요. 그쪽은 다연이 옆에 설 자격이 없으니까. 그쪽이 하는 사랑은 결국 다연이를 가두는 감옥을 만드는 것이었으니까.”“학교에 보내면서도 다연이가 금융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모든 금융 수업을 끊어버린 것. 다연이의 그림을 대가들이 감탄했을 때, 그 대가들의 전시 제안을 막아버린 것. 이런 것들은 다연이에게조차 숨긴 게 바로 그쪽이에요.”“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다연이의 날개를 꺾고 깃털을 뽑아버리며 그쪽 곁에만 묶어두려 한 거죠. 개인 소유물로 만들기 위해서.”“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은별과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나은별의 집안에 대
“짝!”다음 순간, 강렬한 뺨 소리가 울리며 온다연의 손바닥이 염지훈의 얼굴에 꽂혔다.거의 모든 힘을 쏟아 때린 탓에 염지훈의 머리가 옆으로 살짝 돌아갔다.입가에서는 피가 흘렀다.염지훈은 손으로 상처를 닦으며 혀를 차고 말했다.“꽤 달콤하네.”분노가 차오른 온다연은 펄쩍 날뛰며 욕설을 내뱉었다.“진짜 미쳤어요? 내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사람 말 못 알아들어요?”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바로 화장실로 뛰어갔다.그러고는 입술이 닳도록 씻은 뒤에야 다시 나왔다.그러자 염지훈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단지 한 번 스친 것뿐인데 그렇게 날 싫어할 필요 있어?”온다연은 문을 가리키며 낮게 소리쳤다.“나가요!”염지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온다연, 그 사람은 네가 그렇게 할 가치가 없어.”“뒷말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알려주는 거야. 그 사람이 한 짓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고.”온다연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나와 그 사람의 문제지 지훈 씨가 상관할 일 아니에요.”염지훈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온다연은 다시 문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외쳤다.“나가요. 보고 싶지 않으니까. 염지훈 씨,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유강후 씨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염지훈 씨를 좋아할 일은 없어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로요.”순간 가슴이 조여오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염지훈의 눈빛은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여?”온다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듯 말했다.“나가라니까요. 내 말 안 들려요?”“온다연!”갑자기 염지훈은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나랑 같이 가자. 내가 너를 이 도시에서 데리고 나갈게.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줄게. 유강후, 그놈 곁에...”끝내 그는 말을 멈췄다.온다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어쨌든 그놈은 자격이 없어.”이번에 온다연은 그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그녀는 눈을 내리깔
그러다 임정아는 갑작스레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렀다.“다연 씨!”그 순간, 온다연의 입에서 선혈이 쏟아졌고 얼굴은 유령처럼 새하얘졌다.임정아는 다급히 다가가며 말했다.“뭐가 이렇게 급해요! 그냥 가능성을 말한 거지 사실이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창백한 얼굴을 한 채 뒤이어 온다연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정아 씨, 함부로 말하지 마요. 내 아이는 살아 있어요. 그저 다른 사람에게 있을 뿐이지...”눈앞이 깜깜해져 휘청거리더니 온다연의 몸은 이내 균형을 잃고 쓰러질 듯 흔들렸다.“내가 데려올 거예요. 반드시...”이 말을 끝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임정아는 깜짝 놀라 외쳤다.“여기! 빨리 119 좀 불러줘요!”그러자 임정아의 매니저가 급히 들어와 온다연을 부축하며 바깥으로 옮겼다.이때, 옆에서 구경하던 여배우 한 명이 온다연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어머, 이 사람 내 그 싸구려 동생이 말하던 여자친구 아니야? 왜 쓰러졌지?”그러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염지훈, 네가 찾아다니던 여자친구...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정보비는 2억, 한 푼도 깎지 마!”...온다연은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방은 깨끗하고 밝았으며 침대 머리맡에는 백합꽃이 꽂혀 있었다.창가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는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고 잘생긴 얼굴엔 약간의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온다연이 깨어난 것을 보자 그는 본래의 태도를 되찾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약간 헝클어진 앞머리가 그의 매력을 더 돋보이게 했다.“깼네?”염지훈은 다가와 뜨거운 물을 따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물 좀 마셔.”온다연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지훈 씨가 왜 여기 있어요?”염지훈은 살짝 비웃는 듯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네 지도교수가 그러더라. 휴학했다면서. 잘 다니던 학교를 왜 갑자기 휴학한 거야? 혹시 유강후가 널 가둬뒀어?”유강후의 이름이 언급되자 온다연의
온다연은 체구가 작고 연약해 보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반면 유강후는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에다 차가운 표정까지 더해지니 교통경찰은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상황을 믿게 되었다.교통경찰은 곧바로 말했다.“혹시 신분증 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유강후는 냉랭한 목소리로 답했다.“저희는 부부입니다. 지금 말다툼 중이니 제발 끼어들지 말아 주세요.”그러자 온다연은 바로 외쳤다.“아니에요! 저 이 사람 몰라요. 경찰관님, 저 도와주세요!”이 말을 끝내자마자 온다연은 힘껏 유강후의 손을 뿌리치고 바로 차에서 내려 몇 걸음 만에 계단으로 뛰어올랐다.유강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경찰이 제지했다.“일단 검문에 협조해 주시죠!”이미 육교 위로 올라가고 있는 온다연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뜨더니 유강후는 경찰을 매몰차게 밀치며 말했다.“비켜!”이 말에 경찰들도 얼굴빛이 바뀌며 강경하게 그를 붙잡았다.“신분증을 보여주시지 않으면 경찰서로 모셔야겠습니다!”이때 뒤따라온 경호원들이 황급히 차에서 내려와 경찰에게 신분증을 건넸다.“죄송합니다. 여기 신분증입니다!”경찰은 신분증을 꼼꼼히 확인한 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되돌려주며 말했다.“다음부터는 주차나 정차를 신중히 하세요.”하지만 그사이 온다연은 이미 육교 중간에 서 있었다.유강후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따라가. 놓치지 말고!”그러나 이곳은 번화가였고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다.경호원이 뒤쫓아 갔을 때, 온다연은 이미 맞은편 쇼핑몰로 들어가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두 시간 후, 온다연은 시 외곽의 한 영상 제작소 대형 세트장에 나타났다.그녀의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은 임정아는 화가 나서 들고 있던 밀크티를 바닥에 던져버렸다.“그 사람, 인간도 아니에요!”“다연 씨 아들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다니... 다연 씨를 뭘로 본 거예요?”“전화했을 때부터 안 좋은 일이 생긴 줄 알았어요. 그래도 이건 너무 지나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