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빠르게 온다연을 안아 올리며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디 다친 데는 없어?”온다연은 부어오른 얼굴 한쪽을 손으로 감싸고는 그의 품에 기대어 울기 시작했다.“얼굴이 너무 아파요!”유강후가 그녀의 손을 떼어 확인해보니 원래 하얗고 부드럽던 얼굴이 빨갛게 부어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눈물 그렁그렁한 그녀의 모습은 너무 억울한 표정이었다.유강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는 몸을 돌려 유자성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형, 다연은 왜 때린 거예요?”유자성은 화가 안 풀린 듯 온다연을 가리키며 말했다.“하령의 이번 일은 얘가 꾸민 게 틀림없어!”유강후의 눈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형, 증거라도 있어요? 내가 들은 바로는 하령이가 스스로 그런 곳에 가서 먹지 말아야 할 걸 먹고 금수저들을 건드리는 바람에 그자들한테 끌려간 거라던데!”유자성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외쳤다.“넌 지금 하령이가 당해도 싸다는 거야?”유강후는 차갑게 대꾸했다.“형, 자기 딸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요?”평소의 겸손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유자성은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온다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그럼 얘는 왜 여기에 있는 건데?”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잡으며 유자성을 차갑게 응시했다.“여기에 있으면 왜 안 돼요? 와서 볼 수도 있잖아요. 과거에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유자성의 몸은 굳어진 채 자신의 동생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며 물었다.“강후야,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형의 딸이 다연을 몇 년 동안 괴롭혔는지 모르진 않겠죠?”“유강후!”유자성은 화가 나서 낮게 소리쳤다.“하령은 네 친조카야! 너 이깟 고아 하나 때문에 유씨 가문도 버릴 셈이냐?”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다연은 몸을 떨며 유강후의 손을 꼭 붙잡았다. 무척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온다연의 두려움을 느낀 유강후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그는 유자성을
심미진은 깜짝 놀라며 뛰어와 소리쳤다. “자성 씨, 괜찮아요?”유자성은 통증에 식은땀을 흘리며 유강후를 노려보며 말했다.“여자 하나 때문에 나한테 손을 대!”유강후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내가 경고했잖아요. 내 사람에게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말라고. 형이라도 예외는 없어요.”“이것은 오늘 형이 그녀를 때린 것에 대한 답례에요. 다음에 또 이러면 우리 형제 인연도 끝인 줄 알아요!”그는 심미진을 차갑게 흘겨보았다.“난 여자를 때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앞으로 다연한테 손끝 하나 댄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해드리죠!”차갑고 매서운 눈빛에 심미진은 겁에 질려 창백한 얼굴로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녀는 복잡한 시선으로 유강후의 뒤에 서 있는 온다연을 바라봤지만, 온다연은 그저 차갑고 냉담한 눈빛만 보일 뿐이었다.아까 유강후의 품에 기대어 울던 가엾은 여자는 그저 환상인듯했다.그녀는 갑자기 몸이 오싹해지며 온다연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졌다.이때 온다연이 살며시 유강후의 옷자락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저 때문에 자성 아저씨와 싸우지 말아요...”수많은 억울함을 겪은 듯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부드러웠다.“자성 아저씨 말이 맞아요. 아저씨들이야말로 친형제이지 난 그저 남일 뿐이에요. 그러니...”유강후는 너무 안쓰러웠다. 그는 차갑게 유자성을 바라보며 말했다.“형 손은 그저 탈골됐을 뿐이니 안 죽어요! 난 형에게도 기회를 줬고 하령에게도 기회를 줬어요. 하지만 당신들은 그걸 무시했죠. 지난번 영원에서 있었던 일, 이제 하나씩 잘 따져봅시다!”말을 마친 그는 유자성의 분노와 충격 어린 눈빛을 무시한 채 돌아서서 온다연을 안았다.“왜 혼자 이런 데까지 왔어?”그는 살짝 화가 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보고 싶으면 나한테 말하면 되잖아. 너 혼자 오면 위험하다는 거 몰라?”이때 경찰관의 부축을 받으며 하령이 창고 쪽에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어디서 구했는지
유하령의 몸이 순간 떨렸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 그녀를 휩싸고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유강후가 완전히 자신을 포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심지어 그들은 이제 적대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아니. 이건 그녀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유씨 가문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역시나 유강후와 미래 그룹의 경제적 지원이 있었다.비록 유씨 가문도 몇몇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미래 그룹과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미래 그룹에서 털 하나만 뽑아도 그 회사들보다 훨씬 굵을 정도였다.만약 유강후가 정말로 자신을 포기한다면, 그동안 누려왔던 사치스러운 생활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안돼. 절대 그럴 순 없다.이때 유하령은 유강후의 품에 안겨 자신에게 조롱하는 눈빛을 보내는 온다연을 발견했다.순간, 그녀는 시간이 왜곡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지금 자신의 비참한 모습은 예전 온다연이 괴롭힘을 당하던 때와 같았고 온다연은 그때의 자신처럼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마치 길거리의 떠돌이 개를 보듯이 말이다.유하령은 순간 치욕감을 느꼈다.당장이라도 온다연을 죽이고 싶었다.하지만 유강후의 혐오스러운 눈빛이 두려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고 결국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작은 아빠, 저 여자예요. 날 믿어주세요. 저 여자가 복수하려고 사람을 시켜서 저를 납치한 거예요. 그리고 유씨 가문도 산산조각내려고 했다고요!”“그만해!”유강후는 그녀를 혐오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이렇게 된 건 다 네가 자초한 거야! 다연이가 너를 납치했는지는 법이 알아서 할 일이지, 네가 여기서 심판할 필요는 없어!”“그리고 앞으로 나를 작은 아빠라고 부르지 마. 난 네 작은 아빠가 아니야!”말을 마친 뒤, 그는 온다연을 안고 차에 올라탔다. 통곡하며 울부짖는 유하령을 뒤로한 채 차는 천천히 떠났다.차는 곧 큰길로 진입했다.유강후는 운전 중인 경호원을 흘끗 쳐다보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다연
확실히 그도 잘못이 있었다.그해, 그녀를 직접 데려와서 키우지 않은 것이 그의 가장 큰 실수였다.나중에 정당한 명분을 얻기 위해 그는 온다연이 유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는 원인이 되었다.심지어 그녀가 17살이 되던 해, 그 사건 이후 그녀를 데려가지 않은 것도 그의 잘못이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이 모든 게 그의 잘못이었다.하지만 그는 보상할 것이다. 그녀에게 온 세상을 다 줄 것이다.그는 입을 열고 나지막이 말했다.“다연아,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그때, 온다연이 갑자기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아저씨, 우리 이제 끝내요.”온다연은 마치 중요한 결정을 한 듯 차가운 표정으로 무겁게 말했다.“우리 더 이상 얽히지 말고 끝내요. 너무 힘들어요!”그녀는 유강후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이 있는지 알지 못했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다.그들 사이는 애초부터 하늘과 땅처럼 다르지 않았던가?그는 세상의 정점에서 태어나 권력과 사랑을 모두 누리며 자라난 사람이었다.반면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가족이라는 의미조차도 모른 채 자라왔다.그에 대한 작디작은 사랑과 동경마저도 어둠 속에서 피어난 비열한 감정이었다.하늘과 땅처럼 다른 두 사람이 더 얽힌다고 좋은 결말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유강후는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서서히 마음속에서 차오르기 시작했다.그는 온다연이 진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한 말은 전부 그녀의 진정한 생각이었다.그러나 그는 결코 그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온다연은 그의 것이다. 영원히 그에게만 속할 것이고, 언제나 그의 곁에 있어야 한다.그녀는 그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고 그의 손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를 잘 지켜주지 못했다.그녀는 너무 많은 상처와 고통을 겪었고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지금 그녀는 분명 그의 품 안에, 그의
하지만 지금은 모든 착각이 깨졌다.그녀는 이미 모든 걸 계획했고 한 걸음 한 걸음 오늘에 이르렀다. 심지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유하령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겼다.게다가, 그녀는 의심스러운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빠져나왔다.그녀는 너무 똑똑했다. 너무 똑똑해서 그녀의 모든 행동이 그의 통제 밖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그렇다면, 둘 중 진짜 사냥꾼은 누구인가?하지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녀가 자기 곁에 머물러 주기만을 바랐다.감정이 없으면 함께 만들어가면 된다.그녀가 아이를 원한다면 많이 낳으면 되는 일이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온다연이 입을 열었다.“아저씨, 이 아이는 나에게 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아저씨는 다 가졌잖아요. 당신을 위해 아이를 낳아주겠다는 여자도 많은데 그냥 이 아이는 나랑 다투지 말고 양보해주면 안 될까요?”잠시 멈추고 그녀는 다시 말했다.“아저씨가 나랑 이 아이를 다툰다면 우린 평생 원수로 지낼 거예요. 난 아저씨와 원수가 되고 싶지 않아요.”유강후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왜 다퉈야 하지? 이건 우리 아이잖아. 우린 계속 함께할 거야. 화 풀어. 날이 좀 풀리면 우리 결혼하자. 난 이미 신혼집도 준비해놨어. 영운산에 마련했는데 분명 네 마음에 들 거야.”온다연은 눈을 들었다. 그 속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난 아저씨랑 결혼 안 해요. 유강후, 당신은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에요.”유강후는 그녀를 안은 팔을 서서히 조이기 시작했다. 그 힘은 통제력을 잃은 듯 점점 강해졌다.공기 속에는 어딘가 비정상적인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그렇다면, 네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지?”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없어요.”유강후는 다시 낮게 물었다.“그럼 예전에는 있었던 거야?”온다연은 대
그는 그녀를 너무 꽉 껴안아서 온다연은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몇 번이고 몸을 비틀어보았지만, 그의 힘이 너무 강해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의 큰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그 압박감에 피부는 찢어질 것 같았다.게다가 그가 침묵하자 차 안의 분위기는 더욱 답답했고 손도 점점 더 세게 조여왔다.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그의 손가락을 뜯어내기 시작했다.하나하나씩 뜯어냈지만, 그는 다시 움켜잡았고 그 힘은 아까보다 더 강했다.온다연은 그가 자신의 배를 조일까 봐 걱정됐지만, 그의 손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몇 번의 시도 끝에 온다연은 화가 나서 그의 목을 깨물었다.화가 나고 급한 마음에 있는 힘껏 깨물었기에 잠깐 사이에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강후는 여전히 손을 풀지 않았다.그는 눈을 감고 미동도 없이 그녀가 자신을 깨물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녀가 입을 떼기까지 그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온다연은 힘으로 맞서는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해서 이 남자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유강후의 몸은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그녀는 눈을 감고 그의 키스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천천히 그의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과연 그는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하지만 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에서 떠나지 않고 가볍게 그녀의 배 위에 얹혀 있었다.동시에 그는 그녀의 입술을 덥석 머금고는 주도적으로 탐닉하기 시작했다.금세 온다연은 숨이 막힐 정도였지만 그의 손이 아랫배에 더 큰 힘을 가할까 봐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하지만 이곳은 차 안이었기에 차가 몇 번 흔들리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그 모습은 마치 그녀가 그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것처럼 보였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어 그를 밀쳐냈다.온몸의 기운이 빠져 그녀는
그녀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이 며칠 동안, 그녀는 계속 아이의 첫 태동을 기다렸던 것이다.아이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었던 그녀는 태동이 없을까 봐, 아니면 자연스럽게 유산될까 봐 너무 불안했다.걱정으로 밤새 잠을 못 이룰 때도 많았다.하지만 오늘 이 작은 생명은 다른 건강한 4~5개월 아이들처럼 움직였고 그 생명력도 꽤 강해 보였다.그녀는 그의 옷을 꽉 잡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는 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유강후는 그녀를 꼭 안으며 대답했다.“아니야, 난 절대 그런 말 한 적 없어.”눈물이 북받친 온다연은 그의 과거 잘못을 지적했다.“아저씨는 이 아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것도 여러 번이나!”“만지지 말아요! 만지는 게 싫어요!”온다연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갈라졌고, 빨개진 눈으로 흥분된 감정에 휘말린 채 도저히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그녀는 그의 몸을 힘껏 몇 번 때리고는 다시 배 위에 손을 얹었다. 목이 메어 흐느끼는 소리가 더 커졌다.유강후의 마음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의 우는 모습에 그의 마음은 너무 아팠다.그는 그녀에게 키스해주며 눈물을 닦아주었다.“울지 마, 착하지.”“내가 잘못했어, 다 내 탓이야. 이제 울지 마...”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계속 울었다. 그의 옷은 이미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유강후는 그녀를 안으며 처음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가 너무 작고 연약해서 그는 차마 힘껏 안아주지도 못했다. 혹시라도 너무 세게 안으면 다칠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하지만 그녀의 배 속에는 그녀보다 더 약하고 작은 생명이 있었다.그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들 모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지 몰랐다.순간 주성원의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며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고 동시에 희망을 품게 했다.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그녀의 아랫배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 아이가 만약...”“만약은 없어요!”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며
염지훈은 유강후를 흘끗 쳐다보았다. 유강후는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도발적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고개를 돌려 온다연에게 말했다.“너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네 아저씨더러 자리 좀 피해 주라고 하면 안 될까?”온다연은 유강후 앞에 다가갔다.“나 지훈 씨와 따로 얘기하고 싶어요.”유강후가 반대할까 봐,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에 난 저 사람을 이용했어요.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러니 제대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딱 이번 한 번뿐, 더는 저 사람을 만나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말했다.“아저씨가 반대해도 난 갈 거예요.”유강후의 시선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머물렀고 눈빛은 차갑고 어두워졌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었다.오랜 침묵 끝에,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차분하게 말했다.“가. 근데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너무 오래 걸리지 마. 넌 쉬어야 하니까.”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염지훈과 함께 차에 올랐다.검은 험머가 멀어져갈수록 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차가 거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그는 손짓했다.마당 안에서 곧바로 경호원이 달려 나와 물었다.“도련님.”유강후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차를 바라보며 말했다.“앞에 있는 애들한테 계속 감시하라고 해. 염지훈 그 녀석이 다연에게 손이라도 대면 바로 목을 비틀어 버려!”그는 잠시 멈추더니 말을 이었다.“절대 놓치지 마. 놓치면 너희도 돌아오지 마!”경호원은 그의 차가운 말에 몸을 떨며 간신히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도련님!”염지훈과 온다연은 근처의 한 카페에 차를 세웠다.룸에 앉자마자 염지훈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유강후가 때린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스스로 부정하며 말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 사람은 너한테 잘해주던데. 널 때리진 않았을 거야. 근데 얼굴은 왜 이렇게 부었어?”그러면서 몸을 앞으로 내밀며 그녀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결혼식까지 남은 날이 3,4일밖에 되지 않았다.영운산에 있는 집은 완벽하게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가구도 모두 배치되었다. 요 며칠 동안은 생활용품들을 하나씩 채우는 중이었다.이 별장은 영운산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지 면적이 1천 평이 넘고 경운시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천연 온천이었다.탁월한 약효를 자랑하는 이 온천은 오랜 기간 몸을 조리해야 하는 온다연에게 그야말로 최적이었다.이곳은 결혼 후 유강후와 함께 머물 신혼집으로, 그는 집을 꾸미는 데 엄청난 정성을 들였다.전체적으로 전통 스타일로 꾸며졌지만 거실 천장은 최상의 채광 효과를 위해 설계되었다.하여 날씨가 좋은 밤이면 소파에 누워 별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마당에는 해바라기와 붉은 장미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장미는 이미 몇 송이가 만개해 있었고 은은한 향기가 온 정원을 가득 메우며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유강후가 고양이 구월이의 집을 배치하고 있을 때, 온다연은 그 모습을 가만히 그네에 앉아 지켜보았다.그런데 구월이의 집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그녀는 그만 잠들어 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이 한쪽으로 기울어 깊이 잠든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나무 아래에 있는 긴 의자에 눕혔다.그는 요즘 들어 그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전보다 훨씬 자주 잠에 빠졌고 무언가를 생각하다 멍해지는 일이 늘었다.온다연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녀는 말을 아꼈고 가끔씩 겨우 한두 마디를 내뱉었지만 그 내용조차 마음을 긁는 말들뿐이었다.그녀가 가장 많이 말을 했던 날은 지예솔이 찾아왔던 그날이었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유강후는 잠들어 있는 온다연의 옆모습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그녀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다연아, 또 날 떠날 생각 하는 거야?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깊이 잠들어
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그중에서도 내가 보기엔 가장 약점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거래 전문가예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죠?”지예솔은 대답하지 않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잠시 후,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사모님, 다이닝룸에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우유 커스터드가 준비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밖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어요.”지예솔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보아하니 강후 씨는 정말 다연 씨를 철저히 통제하나 봐요. 잠깐 떨어졌는데도 불안해하다니... 혹시 내가 다연 씨를 데려갈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요?”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고양이 모양 쿠션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잘 보관해요. 이 안에 들어 있는 카메라는 구하기 힘든 거예요.”이렇게 말한 뒤, 두 사람은 함께 서재를 나섰다.다이닝룸에 다다르기도 전에 봉현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 씨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끝도 없이 하는 거죠? 혹시 우리 집 예솔이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거 아니예요?”유강후의 반응도 냉랭했다.“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를 데려간다니요? 예솔 씨야말로 진짜 문제 아니예요? 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요! 아직 현수 씨한테 따질 말도 많아요, 근데 왜 현수 씨가 먼저 큰소리쳐요?”“현수 씨, 선 넘지 마요!”온다연과 지예솔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눈에서 당혹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식탁으로 돌아왔을 때, 유강후는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막 입을 열려는 순간, 지예솔이 손에 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보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쿠션을 좋아하신다면 여러 개 선물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안 됩니다.”그 쿠션은 온다연과 유강후가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을 때, 온다연이 인터넷으로 주문해 그의 책상 의자에 놓은 것이었다.그녀는 그것을 ‘등받이로
온다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같은 사람에게 사랑은 필수가 아니에요. 감정도 중요하지 않고요. 강후 씨와 나는 애초에 같은 부류가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습니다.”“전 유씨 가문 사람들이 과거에 저에게 했던 짓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들이 죽었다고 해도 내 마음의 한은 풀리지 않아요.”“하지만 강후 씨에게 유씨 가문은 가족이잖아요. 그 사람이 그들을 진정으로 끝장낼 리가 없어요.”“봐봐요, 유하령이 그렇게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지금은 겨우 다리 하나 잃은 정도잖아. 유씨 가문 사람들이 여전히 유하령의 재활을 돕고 있고 아마 1,2년 안에 다시 정상적으로 걸을 수도 있을 거예요.”“게다가 내 동생의 죽음, 그리고 나와 나은별 같은 사람들의 얽힌 관계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알려줬어요. 나는 결국 희생될 수 있는 사람이란 걸.”“강후 씨는 한편으론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사람들이 날 무자비하게 해치도록 방치했어요. 이런 사랑은 나로선 감당할 수 없어요.”눈빛에 어두운 기색이 스치며 온다연이 말을 이었다.“한때는 아이만 있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순진했던 거예요. 아이가 있어도 그 모든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고 다만 조금 늦게 터질 뿐이었겠죠.”“유강후라는 사람은 겉으론 깊은 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정해요. 그 사람은 항상 자신의 사고방식으로만 사람들을 판단해요. 얻지 못하면 가두거나 파괴해버리고 자기 뜻에 따르지 않으면 온갖 방식으로 벌을 주죠.”“완벽한 사업가이자 타고난 리더지만 좋은 연인은 아니에요.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은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나에겐 사랑보다 배를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니까.”그녀의 말이 끝난 후, 서재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잠시 후, 온다연은 책상 의자에 놓인 고양이 모양 쿠션을 정리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쿠션의 고
온다연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곽혜영을 무시한 채 한이준을 향해 말했다.“한 대표님, 안목이 갈수록 떨어지시네요. 눈이 좀 안 좋으신가 봐요. 강후 씨가 갓 사 온 영양제가 있는데 돌아가실 때 몇 개 가져가세요. 눈은 깨끗해야 좋으니까요.”한이준의 얼굴이 즉각 굳어졌고 곽혜영의 표정은 더 심각했다.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그녀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말했다.“유 대표님, 제가 다연 씨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요? 화나신 것 같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유강후는 냉담하게 말했다.“다연이 기분을 상하게 한 걸 알면서도 물어요? 그렇게 생각했으면 저기 문 있잖아요. 나가세요. 배웅은 안 할 테니.”이 말이 끝나자마자 봉현수가 웃음을 터뜨렸다.“강후 씨, 그래도 상대는 여자잖아요. 게다가 은별 씨 사촌인데 손님으로 온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한이준의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지며 분노했다.“두 사람 다 그만해요! 혜영이는 제 파트너입니다. 적당히 좀 해요!”온다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 친척이셨구나.”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곁에 있던 지예솔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솔 씨, 제가 주얼리 관련해서 여쭐 게 있어요. 서재로 가서 얘기해요.”그렇게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남은 곽혜영은 얼굴이 어두워진 채 침묵을 유지했다.한이준은 눈물이 곧 흘러내릴 듯한 곽혜영의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이끌고 나갔다.봉현수가 한이준이 정말 화가 난 듯해 따라나서려 했지만 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수 씨, 앉아요.”“신경 쓰지 마요! 이준이는 갈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어요. 우리 다연이조차 저 혜영 씨한테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아는데 여전히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혜린 씨랑 헤어지고 나서는 정말 허기가 졌나 봐요. 아무거나 다 먹을 정도로.”“그냥 스스로 정신 차릴 때까지 둬요.”서재 안에서, 온다연은 앰버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예솔 씨, 부탁 하나 드리고
장화연은 표진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마 그냥 지나가는 말일 겁니다. 적어도 사모님 뒷말은 하지 마세요.”“잠시 후에 한 대표님과 봉 대표님이 오셔서 결혼식 장소에 대해 논의할 거예요. 차와 간식을 준비하세요. 한 대표님의 새로운 파트너분은 커피와 서양 과자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것도 준비하시고 나머지는 평소대로 하시면 됩니다.”“네, 장 집사님.”하인이 돌아서려는 순간, 장화연이 다시 말했다.“준비해 두세요. 결혼식이 끝난 뒤, 당신은 영운산 별장으로 가서 일하게 될 겁니다. 모든 일에 좀 더 신경 쓰세요. 셋째 도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장으로 가는 사람은 대우가 더 나아질 거라고 하셨습니다.”하인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알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저녁 식사 전, 한이준과 봉현수가 정말로 도착했다.다만 한이준 옆에 선 사람은 낯선 얼굴이었다.봉현수 옆에는 여전히 지예솔이 함께였다.온다연의 시선이 한이준의 파트너에게 스치듯 지나갔다.단정하고 청순한 외모로 임혜린과 몇 분 닮은 느낌이었다.하지만 곧 그녀는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렸다.그런데도 그 여자는 무척 친근한 척하며 달콤한 미소로 말했다.“유 대표님, 저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진이의 어릴 적 친구 곽혜영이에요. 예전에 모임에서 뵌 적 있는데.”유강후는 별다른 표정 없이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곽혜영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 있게 행동했다.저녁 식사가 무척 풍성하게 준비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곽혜영은 식사 중 활발하게 대화를 이끌며 마치 유씨 가문과 봉씨 가문에 아주 익숙한 사람처럼 굴었다.그러나 두 남자는 마치 포커페이스를 하듯 냉담한 표정을 유지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곽혜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국제 정세와 금융 이야기를 꺼내며 온다연과 지예솔을 가끔씩 흘끔거렸다.그 눈빛 속에는 미묘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곽혜영은 사전에 조사를 했었다.온다연과 지예솔은 얼굴로 자리를 차지한
말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감탄했다.보기에는 여리여리하지만 옷감 아래 숨겨진 몸매는 정말 볼륨감이 있었다. 허리는 너무나 가늘어 아찔할 정도였고 가슴은 부드럽고 풍만해 전혀 작지 않았다.외부 사람이 있는 것을 본 온다연은 유강후의 팔에서 벗어나려 했다.눈가에는 아직도 약간의 붉은 기운이 남아 있는 채로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고르고 싶지 않아요. 아저씨가 결정한 일이니까 아저씨가 직접 골라요.”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 나가려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그녀를 다시 끌어안으며 성급함을 억누르고 달래듯 말했다.“결혼식이 이제 보름 남았어. 고르지 않으면 그날 입을 게 없잖아.”온다연은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유강후의 품에 갇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표진아의 조수가 몇 벌의 웨딩드레스를 가져왔다. 모두 엄선된 고급 맞춤 드레스였는데 화려하면서도 신선하고 우아한 매력을 잃지 않은 디자인이었다.하지만 20벌이 넘는 드레스를 계속 보여줬음에도 온다연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너무 피곤한 듯 보였다.지쳐 보이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안쓰러워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많이 힘들지? 내일 다시 골라볼까?”그러나 온다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드레스들 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며칠 동안 그녀는 계속 이런 상태였다.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아이를 잃었다는 소식은 그녀의 마음을 철저히 무너뜨렸다.오늘도 유강후가 계속 달래고 유도하며 울고 말하게 하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자 유강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곧 허리를 숙여 그녀를 안아 들고 나가려는 찰나, 표진아가 급히 말했다.“사모님께서 만족하지 못하신다면 제가 다른 시리즈를 준비해왔습니다. 트렌디한 전통 스타일인데 사모님의 기품에 딱 맞을 겁니다. 애프터 드레스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이런 큰 거래를
표진아가 뚫어져라 온다연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집사가 입을 열었다.“저희 사모님입니다.”표진아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설마 미성년자를 만나는 건가?’부유한 집안의 아가씨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유강후라는 온실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처럼 보였다.‘이런 외모를 가졌으면 유 대표님 같은 분을 만나는 게 맞지. 안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 얼마나 꼬이겠어.’표진아는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사모님이 생각보다 어리시네요. 미성년자는 아니겠죠?”집사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눈살을 찌푸렸다.“진아 씨, 도련님이 화낼지도 모르니 안에 들어가서는 절대 이런 얘기를 꺼내시면 안 됩니다. 사모님은 혼인신고까지 마친 성인이에요.”“그리고 사모님이 요즘 도련님과 갈등이 생겨 기분이 안 좋으시니 언행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표진아가 막 답하려던 찰나 커다란 문이 열리며 제네시스 한 대가 안으로 들어왔다.집사는 그녀의 옆에서 급히 속삭였다.“도련님이 오셨네요. 진아 씨는 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시죠.”표진아는 집사의 뒤를 따르며 걸음을 옮겼다.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다실에는 넓은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었고 창문을 열면 바깥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표진아는 천하의 미래 그룹 대표가 차에서 커다란 상자 몇 개를 옮기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그런 다음 부하들을 시켜 상자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내 조립했고 순식간에 2,3m 높이에 달하는 고양이 집이 완성되었다.표진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유 대표님이 이런 일도 직접 한다고?’곧이어 목격한 장면에 그녀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평소 위엄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유강후가 허리를 숙여 조심스럽게 온다연을 달래주고 있었다.그러나 온다연은 가볍게 무시한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유강후가 옆에서 한참을 달래도 입조차 벙끗하지 않았다.곧이어 유강후는 비서에게 뭔가를 지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나왔다.고양이를 보고서야 온다연의 얼굴에는 미세한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그러나
“하는 짓을 봐서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합니다.”유강후는 섬뜩한 눈빛으로 사진을 바라봤다.“로운 불러와.”곧이어 로운이 들어왔다.유강후는 단호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공격해. 경원으로 들어온 암살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죽여버려.”“시간은 딱 한 달이야. 난 한 달 안에 김씨 가문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어.”로운은 눈살을 찌푸렸다.“대표님, 열흘 정도만 더 기다리면 분명히 성공할 거라 확신합니다만 지금 바로 공격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로운.”유강후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이미 내가 참을 수 있는 최대 인내심에 도달했어. 한 달 후에 임무를 완수한다면 돈, 사람, 물건 네가 원하는 건 전부 다 줄 수 있으니까 넌 여기에만 집중해.”“계정에 나온 모든 암살자를 너한테 맡길 거야. 난 대답만 원하니까 넌 반드시 성공해.”로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맡겨주신 일은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로운이 나가자 이권이 입을 열었다.“도련님, 열흘이면 되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는 건...”“안돼.”유강후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화창한 봄날에 꽃 피는 언덕에서 가장 로맨틱한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다연이랑 약속했어.”“안 그래도 빚진 게 많은데 이런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면 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이권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벙끗했으나 끝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유강후는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굉장히 침착하고 이성적인 성향이기에 지금처럼 큰 위험을 감수할 때가 많지 않다. 남자로서 유강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리스크가 너무 큰 모험이다.온다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래 그룹의 앞날을 걸고 있는 격이다.유강후는 정말 뼛속까지 온다연을 사랑하고 있었다.봄은 갈수록 날이 길어졌고 햇볕은 점점 더 따뜻해졌다.그러나 생기가 넘쳐야 할 봄날과 달리 한옥은 조용하기 그지없다.듣기로 여주인은 정원 중앙의 나무 밑에 의자를 두어 그
온다연이 너무 안쓰러워 덩달아 괴로움이 밀려온 유강후는 끊임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아니야. 다연이는 최고의 엄마야.”“우리 아이는 다연이를 엄청 좋아해. 그러니까 계속 꿈에 나타나잖아.”“울고 싶으면 울어. 참지 않아도 돼.”온다연은 울먹였다.“꼭 돌아오겠죠? 강후 씨, 아이는 다시 절 찾아올 거예요. 맞죠?”“그런데 꿈속에는 신발 한 켤레도 없이 맨발이었어요. 너무 불쌍해요.”꿈속의 장면이 떠오른 온다연은 가슴이 터질 듯 울부짖었다.“그곳이 너무 춥대요. 왜 데리러 안 오냐고 원망하는데...”“강후 씨, 아이가 추워하나 봐요.”“나 너무 힘들어요.”“괴로워요.”...극심한 괴로움과 고통은 몸의 경련을 일으켰다.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느새 유강후의 옷자락을 적셨다.그는 온다연의 피와 살에 녹아들듯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돌아올 거야. 무조건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마. 다연아, 이제 그만 아파해.”...한참 동안 울다가 지쳐버린 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흐느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안방 문을 열려 있었는데 침대는 깨끗이 치워졌고 도우미 몇 명이 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찾고 있었다.그에게 안겨있던 온다연은 발버둥 치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팔찌가 부러진 곳에 무릎을 꿇더니 나무판자 틈을 따라 조금씩 이동하며 찾았다.온다연이 움직이는 방향 따라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마침내 호박석은 바닥과 벽이 맞닿은 틈새에서 발견됐다.온다연은 그것을 손에 쥔 채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아예 몰랐던 도우미들은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나지 않아 푹 숙인 채 입을 닫았다.유강후는 그녀 앞에 무릎을 반쯤 꿇고 품에 안았다.“다연아, 이제 찾았으니까 좀 쉴래?”온다연은 호박석에 담긴 아이의 체온이라도 느끼려는듯 손에 꽉 쥔채 놓지 않았다.“강후 씨, 아이가 잠든 곳에 가고 싶어요.”온다연은 몸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