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령은 유강후를 잘 알고 있다. 유강후는 어려서부터 냉정하고 누구한테도 다정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았던 그가 여자를 달래다니. 유하령은 유강후가 그 여자한테 단단히 홀렸다고 생각했다.총애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유하령은 다시 문을 두드리려고 했지만 두 경호원은 그녀를 호텔에서 끌고 나왔다.온다연은 바닥에 있는 고양이를 주워 안았다. 새끼 고양이는 너무 어렸고 넘어져서 아픈지 계속 야옹거리며 울었다.온다연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고양이를 안고 묻은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후 다시 바구니에 넣었다. 하지만 놓자마자 고양이는 다시 넘어지면서 더 크게 울었댔다.온다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양이를 안고 다시 한번 검사했다. 그리고 오른쪽 뒷다리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리에는 힘이 전혀 없었고 온다연이 살짝 다치기만 해도 고양이는 처량하게 울었다.그녀는 이내 고양이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판단하였다. 너무 슬픈 나머지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온다연은 아무 말도 없이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긴 후 고양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온다연은 고양이를 자기 뒤로 숨기며 경계했다. 유강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사나워졌다.몹시 화가 난 것처럼 말이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싸늘하게 물었다.“혹시 나를 탓하는 거야?”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강후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평소 나긋나긋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말수가 적은 편이라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자 분위기는 너무 싸늘했다.특히 유강후의 눈빛은 어둡고 차가웠다. 턱선마저 팽팽해지면서 이를 가는 것 같았다. 이것은 그가 곧 화를 낼 거라는 징조이다.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장화연은 입을 열었다.“다연 씨, 고양이가 다쳤나 봐요. 이렇게 작은 고양이는 전문 의사에게 맡겨야 해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온다연은 주먹을 더 꽉 쥐었다. 그녀는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유하령이다. 유하령이 갑자기 뛰어 들어오면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고양이가 다치게 되었다. 유강후를 화나게 한 사람은 유하령이다.하지만 왜 온다연이 벌을 받아야 할까?유강후는 온다연이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지금 온다연이 원한는건 오직 그 고양이인데 유강후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고양이를 가져갈 뿐만 아니라 유하령의 잘못까지 그녀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이런 행동은 지극히 잔인하고 지독한 유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온다연을 애완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애완동물은 주인에게 상을 받으면 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온다연은 주먹을 꽉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고양이를 가져가면 안 돼요.”유강후는 온다연의 하얀 작은 발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시선을 점점 위로 옮겼다. 점점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처음부터 지금까지 잘못한 일이 적다고 생각해?”온다연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긴장한 나머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또 옛날 일을 꺼내는 거야? 그럼 왜 고양이를 그때 나에게 줬는데? 정이 생기니 또다시 가차 없이 빼앗아 가려는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일과 사람을 대하는 것도 이렇게 잔인하다고 생각했다.나은별과 결혼할 거면서 계속 자기를 괴롭히는 모습은 유하령과 유민준과 다를 바가 없었다.온다연은 갑자기 경원시에서 떠돌던 소문이 생각났다.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 유강후는 성격이 예민하고 도도해서 몇 년 동안 나은별 외에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여자가 없었다. 유강후와 스캔들이 났던 여자들은 모두 사라졌다.정말 사라졌을까? 아니면 죽었을까?어떤 결과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유강후는 생각에 잠긴 온다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면서 차갑게 말했다.“이리 와!”온다연은 뒷걸음치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무작정 화를 내는 유강후를 째려보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는 온다연을 놓아주고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의자 위에 앉혔다.그는 숨을 헐떡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를 화나게 하지 마. 너한테 좋을 게 없어.”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들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대답해!”그러자 온다연은 눈을 깜빡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 곁에 앉아 책상 위의 물티슈를 꺼내 흙이 묻지도 않은 그녀의 발을 닦았다.그리고 하얗고 보드라운 발에 두 가닥의 핏자국이 생긴 것을 보자 유강후는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앞으로 맨발로 정원에서 뛰어다니지 마.”이때 장화연은 잘 다린 한약을 들고나왔다. 검은 한약은 하얀 도자기 그릇에 담겨있었고 보기만 해도 엄청 쓸 것 같았다.“너무 뜨겁지 않습니다. 다연 씨 지금 먹어요.”온다연은 그 약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몸도 저절로 움츠러들었다.유강후는 사탕 한 알을 그녀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입에 넣고 있으면 안 쓸 거야.”온다연은 고분고분 그의 말을 듣고 사탕을 깨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약의 맛을 덮을 수 없었다. 게다가 왜 갑자기 한 그릇이 더 많아졌는지 모른다. 예전보다 더 쓰고 토하고 싶게 만드는 맛이었다.유강후 옆에 있는 매 순간순간 모두 고통스러웠다. 온다연이 약을 다 먹자 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를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그녀의 앙증맞은 발을 몇 번 주무르더니 장화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가져와.”그러자 장화연은 이내 방에서 예쁜 상자를 들고나왔다.심플한 검은색 디자인의 상자였지만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상자 위에는 블루 다이아몬드가 박혔고 가치가 상당했다.온다연은 상자를 받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는 필요 없어요.”그러자 장화연은 상자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다연
그러자 상자에 있던 화려한 액세서리들이 바닥에 쏟아졌다.석양이 비추자 더욱 눈 부신 빛을 발했다.유강후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온다연의 손을 강제로 잡고 억지로 그녀의 중지에 반지를 끼웠다.마침 사이즈가 딱 맞았다.장화연은 액세서리를 치우면서 말했다.“다연 씨, 이건 사모님의 혼수 액세서리에요. 지금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죠. 이 반지는 특별히 다연 씨 사이즈에 맞게 고친 건데 싫어하면 안 되죠.”온다연은 그 반지를 끼자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반지를 뺐다.유강후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다시 껴.”온다연은 반지가 아니라 마치 폭탄을 쥐고 있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녀는 유강후의 물건을 원하지 않는다.유강후가 고양이를 데려간 일 때문에 온다연은 이미 그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였다.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유강후에게 반지를 건넸다.“아저씨, 이런 물건은 은별 언니에게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유강후는 그 반지를 보면서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그리고 전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온다연, 한 번만 더 말할게. 다시 껴.”하지만 온다연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어. 나를 자극하지 마.”그러자 온다연은 나지막이 말했다.“저는 이걸 받기 싫어요.”이 반지는 나은별의 것이다. 만약 온다연이 이 반지를 끼면 그녀는 내연녀가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셈이다.온다연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바로 내연녀이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왜 그녀에게 이렇게 비싼 물건을 주는지 몰랐지만 그녀는 좋아하지도 않고 받기도 싫었다. 특히 반지 같은 물건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유강후는 진짜 그 의미를 모를까?유강후는 온다연이 움직이지 않자 다시 강제적으로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려고 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강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유강후는 이런 온다연을
온다연은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지?유강후는 갑자기 온다연의 턱을 치켜들며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쳐다보지 않고 오히려 눈을 감았다.“아저씨는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유일하게 갖고 싶었던 고양이마저 방금 빼앗겼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을 바라봤다. 곧 화를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이때 그는 갑자기 온다연을 놓아주더니 그녀를 한쪽으로 밀고 일어섰다.그리고 온다연을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유강후의 기에 눌려 온다연은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온다연, 정말 제멋대로네.”온다연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낮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게임이라고 생각해. 이제 시작이야. 게임 룰과 언제 끝나는지는 내가 결정할 거야.”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살살 어루만지며 말했다.“내 취향은 변한 적이 없어.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20년 동안 계속 그것만 먹을 수 있거든.”온다연은 순간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졌고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떠난 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저녁이 되자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공기 중에는 아직도 유강후의 몸에서 나는 옅은 우디향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향기였다.바람이 불자 온다연은 추워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았다.장화연은 담요를 가져와 그녀에게 걸치고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보석들은 사모님이 도련님에게 남겨준 물건들이라 도련님이 굉장히 아끼는 거예요.”온다연은 무뚝뚝하게 마당 밖으로 뻗어 자란 나뭇가지를 보며 말했다.“제 것이 아닌 걸 가지는 건 훔치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어차피 다시 돌려줘야 해요.”장화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끝내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연속 3일 동안 유강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장
온다연은 여기에서 유민준을 만날 줄 몰랐다. 그녀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빠, 왜 여기에 있어요?”유민준은 잘생긴 데다 멋진 수트까지 입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분명 그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때 온다연은 유민준의 손을 뿌리쳤다.유민준은 들뜬 마음에 온다연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계속 찾았어. 아무 일도 없는 건 알겠지만 왜 전화하지 않았어?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잖아...”유민준이 너무 힘을 주며 온다연의 손을 쥐자 온다연은 너무 아팠다. 그녀는 손을 빼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오빠, 다들 쳐다봐요...”유민준은 온다연의 의사는 묻지 않고 그녀를 바로 옆 작은 정자로 끌고 갔다.그곳에 있는 대나무 장식이 마침 사람들의 시야를 가릴 수 있었다. 온다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유민준은 온다연을 안고 싶었지만 온다연은 피했다. 그는 온다연의 예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예전보다 더 예뻐졌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살이 너무 빠져서 옷이 커 보였다.유민준은 안쓰러운 듯 온다연을 쳐다보면서 다급하게 물었다.“혹시 여기서 알바해? 집에도 안 가고 학교에서도 연락 안 된다고 하고 다들 너를 찾아다니는 거 몰라?”온다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유민준은 감격에 겨워 그녀를 껴안았다.“다연아, 혹시 일부러 나를 피해 다니는 거야? 내가 약혼한다는 사실을 듣고 일부러 숨어 다니는 거냐고? 화 풀어. 내가 약혼했다고 해도 널 버리지 않을거야...”유강후의 힘이 너무 세서 온다연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온다연은 유민준이 너무 이상해 보였다.‘약혼하든 안 하든 나랑 무슨 상관이지?’온다연이 숨어다니는 이유는 유민준 때문이 아닌데 말이다. 그녀는 힘차게 유강후를 밀쳐내고 심하게 기침했다.유민준은 온다연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네가 사고를 쳤다는 건 알아. 무한테크 그룹의 딸 고유정을 때렸다며? 하지만 숨어다니지 말았어야 했어. 나를 찾아와야지. 내가 다
온다연은 유민준을 정말 싫어했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온다연은 집에 돌아가서 샤워를 열 번이라도 할 것이다. 온다연은 계속 피하면서 유민준을 뿌리치려고 했다.“둘이 뭐해?”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민준은 재빨리 온다연을 놓아줬다.“삼촌, 왔어요?”유민준은 옷을 정리하고 애써 침착한 척하며 온다연을 자기 뒤로 숨겼다. 온다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3일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유강후를 보게 되었다.그는 검은색 수트를 차려입고 차분하고 도도한 분위기를 뽐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너무 살벌해서 온다연은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솔직히 유민준도 충분히 잘생겼지만 유강후와 비하면 살짝 아쉬웠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유강후는 훨씬 더 고급스러웠다.유강후는 서 있기만 해도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그의 우월한 비주얼은 물론 막강한 카리스마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게 된다.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톱스타 임정아는 예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오늘 입은 머메이드 치마는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더 부각해 줬다. 임정아는 목과 손목에 연한 파란색 다이아몬드 액세서리를 하고 있었고 무심코 손을 들 때마다 커다란 파란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드러냈다.그날 유강후가 선물해 준 것과 똑같은 반지였다.유강후와 임정아는 천생연분처럼 너무 잘 어울려 보였다.어쩐지 요즘 연예 뉴스에 두 사람의 스캔들이 계속 있더라니. 알고 보니 소문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온다연은 고개를 푹 떨구고 옷을 꽉 움켜쥔 채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이렇게 빨리 새 여자가 생겼다고?’유강후는 몇 초 동안 온다연을 바라보다가 다시 유민준을 쳐다봤다.“곧 파티가 시작될 건데 여기서 뭐 해?”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마치 온다연을 모르는 것처럼 그녀와 얽힌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유민준과 온다연이 함께 있는 것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표정이
유강후는 포스가 넘쳤고 임정아는 매력적이고 섹시했다.온다연은 넋을 놓고 두 사람을 쳐다봤다. 골목 입구에 다다르자 임정아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남녀노소 모두 반할 것 같은 환한 미소였다.온다연은 잠시 멍해 있다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사라졌다.바람이 불어오자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자세히 들어보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온다연은 갑자기 그녀를 제외하고 온 세상이 바삐 돌아가는 것 같았다. 천천히 별장으로 걸어가자 장화연이 흰색 장미 화분 십여 개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다.온다연은 방금 꽃밭에서 따온 작은 아이리스꽃 한 움큼을 장화연에게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장화연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다연 씨, 이 꽃을 꽂아둘까요?”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꽃잎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장 집사님한테 선물하려고 가져온 거예요.”장화연은 잠깐 어리둥절해졌다.“감사합니다.”하지만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말투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이때 온다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이리스의 꽃말은 과묵하지만 우아한 영혼이란 뜻이에요.”그 말을 듣자 장화연은 드디어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그녀는 가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흰 장미를 다른 꽃으로 바꿀까요? 해바라기 같은 건 어떠세요?”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오늘 여기서 유씨 가문 파티가 열리나요?”“도련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됐어요. 오늘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저녁에 파티도 열릴 예정입니다.”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더라니. 고씨 가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침실로 들어온 온다연은 핸드폰을 꺼내 카카오톡에 남은 잔액을 보며 잠시 멍을 때리다가 다시 일어나 캐주얼한 흰색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이 살짝 두꺼워서 요즘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외출하려고 할 때 장화연이 물었다.“추워요? 왜 이렇게 많이 입었어요?”그러자 온다연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