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지?유강후는 갑자기 온다연의 턱을 치켜들며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쳐다보지 않고 오히려 눈을 감았다.“아저씨는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유일하게 갖고 싶었던 고양이마저 방금 빼앗겼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을 바라봤다. 곧 화를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이때 그는 갑자기 온다연을 놓아주더니 그녀를 한쪽으로 밀고 일어섰다.그리고 온다연을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유강후의 기에 눌려 온다연은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온다연, 정말 제멋대로네.”온다연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낮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게임이라고 생각해. 이제 시작이야. 게임 룰과 언제 끝나는지는 내가 결정할 거야.”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살살 어루만지며 말했다.“내 취향은 변한 적이 없어.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20년 동안 계속 그것만 먹을 수 있거든.”온다연은 순간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졌고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떠난 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저녁이 되자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공기 중에는 아직도 유강후의 몸에서 나는 옅은 우디향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향기였다.바람이 불자 온다연은 추워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았다.장화연은 담요를 가져와 그녀에게 걸치고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보석들은 사모님이 도련님에게 남겨준 물건들이라 도련님이 굉장히 아끼는 거예요.”온다연은 무뚝뚝하게 마당 밖으로 뻗어 자란 나뭇가지를 보며 말했다.“제 것이 아닌 걸 가지는 건 훔치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어차피 다시 돌려줘야 해요.”장화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끝내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연속 3일 동안 유강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장
온다연은 여기에서 유민준을 만날 줄 몰랐다. 그녀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빠, 왜 여기에 있어요?”유민준은 잘생긴 데다 멋진 수트까지 입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분명 그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때 온다연은 유민준의 손을 뿌리쳤다.유민준은 들뜬 마음에 온다연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계속 찾았어. 아무 일도 없는 건 알겠지만 왜 전화하지 않았어?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잖아...”유민준이 너무 힘을 주며 온다연의 손을 쥐자 온다연은 너무 아팠다. 그녀는 손을 빼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오빠, 다들 쳐다봐요...”유민준은 온다연의 의사는 묻지 않고 그녀를 바로 옆 작은 정자로 끌고 갔다.그곳에 있는 대나무 장식이 마침 사람들의 시야를 가릴 수 있었다. 온다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유민준은 온다연을 안고 싶었지만 온다연은 피했다. 그는 온다연의 예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예전보다 더 예뻐졌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살이 너무 빠져서 옷이 커 보였다.유민준은 안쓰러운 듯 온다연을 쳐다보면서 다급하게 물었다.“혹시 여기서 알바해? 집에도 안 가고 학교에서도 연락 안 된다고 하고 다들 너를 찾아다니는 거 몰라?”온다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유민준은 감격에 겨워 그녀를 껴안았다.“다연아, 혹시 일부러 나를 피해 다니는 거야? 내가 약혼한다는 사실을 듣고 일부러 숨어 다니는 거냐고? 화 풀어. 내가 약혼했다고 해도 널 버리지 않을거야...”유강후의 힘이 너무 세서 온다연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온다연은 유민준이 너무 이상해 보였다.‘약혼하든 안 하든 나랑 무슨 상관이지?’온다연이 숨어다니는 이유는 유민준 때문이 아닌데 말이다. 그녀는 힘차게 유강후를 밀쳐내고 심하게 기침했다.유민준은 온다연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네가 사고를 쳤다는 건 알아. 무한테크 그룹의 딸 고유정을 때렸다며? 하지만 숨어다니지 말았어야 했어. 나를 찾아와야지. 내가 다
온다연은 유민준을 정말 싫어했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온다연은 집에 돌아가서 샤워를 열 번이라도 할 것이다. 온다연은 계속 피하면서 유민준을 뿌리치려고 했다.“둘이 뭐해?”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민준은 재빨리 온다연을 놓아줬다.“삼촌, 왔어요?”유민준은 옷을 정리하고 애써 침착한 척하며 온다연을 자기 뒤로 숨겼다. 온다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3일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유강후를 보게 되었다.그는 검은색 수트를 차려입고 차분하고 도도한 분위기를 뽐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너무 살벌해서 온다연은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솔직히 유민준도 충분히 잘생겼지만 유강후와 비하면 살짝 아쉬웠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유강후는 훨씬 더 고급스러웠다.유강후는 서 있기만 해도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그의 우월한 비주얼은 물론 막강한 카리스마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게 된다.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톱스타 임정아는 예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오늘 입은 머메이드 치마는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더 부각해 줬다. 임정아는 목과 손목에 연한 파란색 다이아몬드 액세서리를 하고 있었고 무심코 손을 들 때마다 커다란 파란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드러냈다.그날 유강후가 선물해 준 것과 똑같은 반지였다.유강후와 임정아는 천생연분처럼 너무 잘 어울려 보였다.어쩐지 요즘 연예 뉴스에 두 사람의 스캔들이 계속 있더라니. 알고 보니 소문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온다연은 고개를 푹 떨구고 옷을 꽉 움켜쥔 채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이렇게 빨리 새 여자가 생겼다고?’유강후는 몇 초 동안 온다연을 바라보다가 다시 유민준을 쳐다봤다.“곧 파티가 시작될 건데 여기서 뭐 해?”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마치 온다연을 모르는 것처럼 그녀와 얽힌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유민준과 온다연이 함께 있는 것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표정이
유강후는 포스가 넘쳤고 임정아는 매력적이고 섹시했다.온다연은 넋을 놓고 두 사람을 쳐다봤다. 골목 입구에 다다르자 임정아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남녀노소 모두 반할 것 같은 환한 미소였다.온다연은 잠시 멍해 있다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사라졌다.바람이 불어오자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자세히 들어보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온다연은 갑자기 그녀를 제외하고 온 세상이 바삐 돌아가는 것 같았다. 천천히 별장으로 걸어가자 장화연이 흰색 장미 화분 십여 개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다.온다연은 방금 꽃밭에서 따온 작은 아이리스꽃 한 움큼을 장화연에게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장화연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다연 씨, 이 꽃을 꽂아둘까요?”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꽃잎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장 집사님한테 선물하려고 가져온 거예요.”장화연은 잠깐 어리둥절해졌다.“감사합니다.”하지만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말투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이때 온다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이리스의 꽃말은 과묵하지만 우아한 영혼이란 뜻이에요.”그 말을 듣자 장화연은 드디어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그녀는 가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흰 장미를 다른 꽃으로 바꿀까요? 해바라기 같은 건 어떠세요?”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오늘 여기서 유씨 가문 파티가 열리나요?”“도련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됐어요. 오늘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저녁에 파티도 열릴 예정입니다.”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더라니. 고씨 가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침실로 들어온 온다연은 핸드폰을 꺼내 카카오톡에 남은 잔액을 보며 잠시 멍을 때리다가 다시 일어나 캐주얼한 흰색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이 살짝 두꺼워서 요즘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외출하려고 할 때 장화연이 물었다.“추워요? 왜 이렇게 많이 입었어요?”그러자 온다연
온다연은 여러 가지 핑계를 둘러댔지만 주희는 온다연이 입원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유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를 가두었다고 굳게 믿었다.온다연이 마지막으로 상처를 보여주고 나서야 주희는 겨우 믿었다. 그녀는 카드를 주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카드 안에 몇백만 원이 있으니 먼저 써. 수술 비용은 내가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볼게.”주희는 안색이 변하더니 단칼에 거절했다.“싫어요.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게다가 당분간은 적합한 골수를 찾을 수 없어요.”주희는 온다연을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나, 몇 년 동안 정말 수고했어요. 앞으로 절대 누나를 고생시키지 않을 거예요.”주희는 최근 키가 많이 자랐다. 이미 온다연보다 한 뼘 정도 더 컸다. 이렇게 온다연을 안고 있으면 온다연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아이가 되었다.온다연은 주희가 소유욕으로 가득 찬 자세로 그녀를 안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주희의 눈빛도 예전처럼 순수하지만은 않았다.“누나, 유씨 가문에서 그렇게 누나를 대했는데 돌아가지 마세요. 이모도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누나를 데리고 간 건 사실...”“주희야!”온다연은 주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렸을 때의 촉감이 아니라 약간 따가웠다.“됐어. 주희야, 그만해. 이모는 지금 나의 유일한 가족이야.”주희는 여전히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누나, 저야말로 누나의 유일한 가족이에요.”“그래. 알았어. 너도 내 가족이야. 그러니깐 이제 나를 좀 놔줄래? 너무 꽉 안아서 숨 막혀.”주희는 그제야 온다연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문지르면서 애교를 부렸다.“좀 더 안고 싶은데 안지도 못하게 하네요. 두 달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유씨 저택에 몇 번이나 찾아갔어요.”울먹거리는 주희의 목소리를 듣자 온다연은 마음이 약해졌다.그녀는 주희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굴어. 이제 곧 고등학교도 졸업할 텐데.”주희는 계속해서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묻고 몸을 구부린 상태로
주희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주지 마세요. 달라고 한 적도 없잖아요.”그리고 차 문을 뿌리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 여자는 급히 뒤쫓아가며 말했다.“아이고, 그냥 장난친 거야. 내가 잘못했어. 지금 당장 사과할게. 화 풀어.”주희는 그제야 멈춰 섰다.“오늘은 어디예요?”그러자 그 여자는 주희의 교복을 잡아당기더니 뒤꿈치를 들고 그의 볼에 뽀뽀하면서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산꼭대기에 있는 별장이야. 누나가 텐트를 준비했어. 저녁에 별을 볼 수 있거든.”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여자도 곧 차에 탑승했다.차는 곧 낡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온다연은 임혜린과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임혜린은 많이 야위어 보였고 정신상태도 좋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온다연이 두 달 동안 사라진 이유를 간단히 묻고 별말을 하지 않았다.온다연은 무슨 문제라도 생겼느냐고 묻자 임혜린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오히려 온다연에게 물었다.“유민준이 아직도 너를 귀찮게 해?”온다연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이효진과 곧 결혼할 것 같아. 이효진은 소유욕도 강하고 성격도 나쁜데 민준 오빠가 불구덩이에 들어간 셈이지, 앞으로 내 일에 참견할 시간조차 없을 거야.”온다연은 말하면서 챙겨온 증명서류를 임혜린에게 주었다.“이건 내 모든 증명서류야. 우리 엄마가 예전에 깨어있을 때 쓰신 유서도 있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안전하지 않아서 잠시만 보관해 줘.”임혜린은 한번 훑어보더니 호적등본과 부동산 증명서가 안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호적등본과 부동산 증명서는?”그러자 온다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한테 있어.”그러자 임혜린은 언짢은 어조로 말했다.“그 여자가 왜 그걸 갖고 있어? 비록 네 집은 좀 낡고 작지만 역세권에 있어서 집값이 꽤 나갈 거야. 네 엄마가 유서에 분명히 썼잖아. 20살이 될 때까지만 집을 지켜달라고. 그다음엔 너
이때 임혜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헐! 뭐야!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다고? 이렇게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이렇게 멋진 남자를 보게 될 줄이야. 왠지 낯이 익은데. 혹시 연예인인가? 어머! 저 남자가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은데.”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몇 초 바라보다가 임혜린을 쳐다봤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그러자 온다연은 깜짝 놀라면서 다급하게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말했다.“빨리 넣어둬.”하지만 임혜린은 아직도 유강후의 미모에 흠뻑 빠져있었다.“정말 너무 잘생겼어. 왜 이렇게 서둘러. 누가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닌데.”온다연은 임혜린의 가방을 빼앗아 와 증명서류를 모두 쑤셔 넣었다. 임혜린은 그녀가 왜 이러는지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유강후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유강후는 임혜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임혜린은 벌떡 일어나 더듬거리며 말했다.“무... 무슨... 무슨 일이세요?”유강후의 눈빛은 매섭고 차가웠다. 너무 도도하고 기가 세서 인간미가 없어 보였다. 비록 얼굴은 너무 잘생겼지만 성격은 예민하고 난폭할 것 같았다.이렇게 비교하니 한이준이 더 괜찮은 것 같았다.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을 때 유강후는 온다연 옆에 앉았다. 온다연은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가 왜 여기에...”그러자 유강후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그럼 난 어디에 있어야 하는데?”온다연은 손바닥과 이마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유강후가 자기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주희 집이 아닌 걸 온다연은 다행으로 생각했다.온다연은 감정을 추스르고 담담하게 말했다.“호텔에서 유씨 가문 파티가 열린다고 하길래 나왔어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수다도 떨고 그러려고요.”유강후는 차가운 시선으로 임혜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칼날 같
“아... 아저씨,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혜린이는 제 친구예요. 오해할 수 있단 말이에요.”온다연은 당황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임혜린에게 다급하게 설명했다.“아니야. 오해하지 마. 아저씨가 장난치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야.”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을 더 차갑게 바라봤다.“다연아, 걸어서 따라올래 아니면 내가 너를 안고 갈까?”그 말을 듣자 온다연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왜 여기서 이런 말을 하지?온다연은 이번에 유강후를 화나게 하면 유강후는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다.왜 두 사람의 관계를 공개할까?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말이다.유강후는 나은별과 곧 결혼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을 더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공개하면 온다연은 내연녀가 될 거고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욕할 것이다.혹시 온다연에게 이런 식으로 벌을 주는 건가?온다연은 생각할수록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그리고 유강후에게 손을 잡힌 채 덜덜 떨고 있었다.이때 정신을 차린 임혜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보았다.“다연아, 둘이..”온다연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혜린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내가 나중에 설명해 줄게…”말을 마치자 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유강후는 다리가 길어서 보폭도 컸다. 온다연은 뒤에서 끌려다니는 식으로 걸어 나갔다.임혜린은 온다연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이내 달려가 온다연의 다른 한쪽 손을 잡아당겼다.“안 돼요!”그러자 유강후는 멈춰서더니 임혜린을 차갑게 쳐다봤다. 그는 눈빛으로 임혜린에게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이런 강한 압박감에 임혜린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대담하게 말했다.“유씨 가문 사람이면 뭐 어때요? 다연이 싫다잖아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녀를 사납게 쳐다봤다.“임혜린이라고 했지? 네 스폰서가 지금 너를 돌아다니며 찾고 있어. 너 자신이나 챙겨.”임혜린은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순
유강후는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10일.”“온다연, 너 계속 이러면 아기 퇴원하는 날에도 못 볼 줄 알아.”그 말을 듣고 얼어붙은 온다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알고 있다. 정말 그를 화가게 한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아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꾹 참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심하게 때려서 그런지 유강후는 온다연의 걷는 자세가 살짝 잘못된 걸 발견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던지고 걷어찼던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온다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이권도 그곳에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덩이를 맞은 걸 모든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면서도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반지를 주워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유강후가 아기로 협박을 하니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온다연은 유강후에 대한 호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70점이었다면 이제는 50점밖에 되지 않았다.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고선 마지못해 바닥에 있는 반지를 주웠다.온다연이 휴게실로 돌아오자 유강후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끼워줘.”그 모습은 어찌나 무자비하고 싸늘한지 마치 인정머리 없는 제왕 같았다.온다연은 화가 나서 반지를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으며 유강후에게 반지를 끼웠다.유강후는 반지를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래치가 없는 걸 보고선 마음속의 분노가 절반 가라앉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온다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온다연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보니 유강후도 마음이 반쯤 풀렸다. 그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네가 말해봐.
유강후는 그저 말없이 가만히 온다연을 쳐다봤고 온다연은 그의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서야 힘을 풀었다.유강후는 곧바로 다시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내리쳤다.심지어 전보다 더 무자비해졌다.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온다연은 목 놓아 울부짖었다.“미워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날 때릴 자격이 없잖아요.”유강후는 얼굴빛 변한 온다연을 보고선 가슴이 아픈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또 함부로 버릴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더욱이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버릴 거예요. 평생 찾지 못하게 바다에 던질 거라고요. 때려죽이든 마음대로 해요.”일말의 작은 연민은 온다연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졌다.유강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손까지 떨었다.결혼반지라는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버렸으면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온다연이 이해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들어 세게 두 번 정도 내리쳤다.전보다 훨씬 힘을 주어서 그런지 온다연은 괴로움에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울었다.울면서도 잊지 않고 유강후를 비난했다.“분명히 은별 씨 편을 들었으면서...”“차라리 때려죽여요. 그러면 은별 씨랑 결혼해도 되잖아요.”“우리 이제 그만해요.”...온다연이 말할수록 유강후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고 끝내 또 세게 때렸다.분노와 두려움, 공포와 고통의 감정이 뒤섞이자 저도 모르게 주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너무 아파... 주한아, 나 좀 도와줘.”“그만 때려요.... 아픈단 말이에요.”...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굳어버렸다.주한... 온다연은 주한에게 도움을 청했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숨이 멎을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방금 뭐라고 했어?”온다연은 심하게 울부짖은 탓에 목소리가 잔뜩 쉬었다.“뭐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나 괴롭히고 때릴 줄밖에 모르잖아요. 싫어요. 아저씨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 놔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솟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안긴 방금 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마치 유강후가 키우는 고양이나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별반 다를게 없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온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싫어요.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유강후는 고집불통인 온다연의 모습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눈앞에 있는 반지는 그가 이 생에 받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이다.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온다연은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쳤다.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여러 번 짓밟는 격이다.유강후는 머리가 피가 쏠릴 정도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우라고.”온다연은 유강후가 화난 걸 알았지만 그녀도 같은 상황이기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분명히 나은별을 밀어낼 수 있었음에도 유강후는 기댈 수 있게 팔을 내어주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면 차라리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온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싫어요. 그리고 제가 나은별 씨를 먼저 때렸어요. 아저씨가 아끼는 사람을 때려서 가슴이 아파요? 그럼 다시 날 때리면 되겠네.”유강후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네가 언제 가슴 아프다고 했어?”욕하고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해도 되지만, 유독 이 반지를 떨어뜨린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그의 마음과 진심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는 해동이다.“주워서 깨끗하게 닦아.”유강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온다연 마음속의 작은 화산이 완전히 폭발하였고 곧바로 눈앞의 반지를 발로 차버렸다.“주울 생각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싼 반지는 아저씨한테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나은별 씨한테 더 비싼 거로 사달라고 하세요.”온다연의 발차기에 반지는 더 멀리 날아갔다.유강후는 너무 화가 나서 목의 핏줄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으르릉거렸다.“온다연, 넌 오늘 혼 좀 나야겠다.”그
나은별은 손톱이 살을 피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강후 씨, 이제 내 말은 믿지도 않는 거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연 씨가 먼저 손쓴 걸 봤는데도 여전히 내 문제라는 거야?”유강후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조아영을 바라봤다.“조세진이 그쪽 아버지?”조아영은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차마 유강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맞아요.”유강후의 말투는 단호했다.“아버지한테 전해. 파산할 거니까 미리 마음 준비하라고.”조아영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울부짖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유강후는 무자비했다.“들리는 그대로야. 오늘부터 조씨 가문은 너 때문에 파산하게 될 거야. 기대해.”조아영은 고개를 번쩍 들고 마지막으로 발악했다.“분명히 저 여자가 먼저 때렸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죠?”유강후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먼저 때렸다고? 그래서 뭐? 내가 있는 한 다연이가 사람을 때려죽여도 잘했다고 칭찬할 거야. 너 같은 인간을 수없이 많이 봤어. 내가 너보다 지위가 낮았다면 그런 표정이랑 행동으로 말했을까?”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유강후는 곧바로 경호원에게 말했다.“은별이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다른 사람 전부 다 내보내. 당장.”나은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강후 씨,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유강후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선 뒤를 돌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며 경호원에게 말했다.“내가 왔을 때 여기에 사람이 남아있으면 너희들도 끝장인 줄 알아.”경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네, 도련님.”나은별은 멀어지는 유강후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에서는 악의가 번쩍였다.‘유강후, 날 이렇게 대한다는 거지? 두고 봐, 나도 더는 안 참아.’경호원들은 나은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의무적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얼른 가시죠. 도련님이 분부했으니 저희는
유강후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나은별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 계속 비틀거렸다.밀어내려고 할수록 나은별은 그의 옷을 한사코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온다연의 눈에 비친 이 장면은 마치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연인 같았다.순간 어려서부터 각별한 사이로 자라온 소꿉친구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나은별의 말대로 유강후는 어쩌면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지금처럼 행동하는 걸 수도 있다.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내가 때렸어요. 왜요? 가슴 아파요?”그 말에 화가 난 유강후는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온다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온다연은 싸늘하게 웃었다.“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죠.”이때 반지를 수정하려고 자리를 잠깐 비운 직원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수정된 반지와 함께 걸어왔다.“다연 씨, 요청하신 대로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온다연은 번쩍 돌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이제 필요 없으니까 환불해 줘요.”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몸을 떨었다.“그러기만 해봐.”온다연은 시선은 여전히 그의 팔에 기대어있는 나은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두 사람 결혼해요. 아주 천생연분이네.”그 말을 한 뒤 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환불해 줘요. 이제 필요 없어졌거든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직원은 정석대로 안내했다.“죄송합니다. 이니셜이 새겨진 특별 제작한 반지라 환불이 불가합니다.”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앞으로 걸어가더니 반지를 집고 땅바닥에 내던졌다.“그럼 버릴게요.”단단한 반지가 바닥에 닿자 몇 미터 높이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유강후는 자신이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온다연, 당장 주워.”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힐끗 보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분노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유강후는 단번에 나은별을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온다연의 눈에 비친 살기는 두피를 저리게 했고, 손에 칼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나은별을 찔렀을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했다.사람들은 온다연처럼 몸집이 작은 여자가 어디서 폭발적인 힘이 나왔는지 몰랐고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악의를 품고 있는데 이해되지 않았다.조아영은 체면을 잃었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온다연을 때릴 기세였다.“미친X. 남의 남자 친구를 뺏은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사람을 때려?”“하여튼 가정 교육을 못 받으면 이렇다니까. 세컨드인 걸 아무리 즐겨도 그렇지 어떻게 당사자 여자 친구를 떄려?”“내가 오늘 너 죽여버릴 거야.”그러나 조아영의 손이 온다연에 닿기도 전에 손목이 잡혔다.우드득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조아영은 반대편 벽에 내동댕이쳐졌다.불과 몇 초안에 일어난 일에 다들 눈을 의심하여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들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는지 주위 사람들은 몰랐으나 눈앞의 이 훤칠한 남자가 마치 조아영을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살벌하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누군가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끌어당겨 몸 곳곳을 확인했다.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럭했다.“왜 가만히 있어. 다른 사람이 때리려고 하면 소리라도 질러야지.”이때 옆에 있던 조아영이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눈 잘못됐어요? 저 여자가 은별이를 때렸다고요. 은별이가 어떻게 맞았는지 두 눈 뜨고 똑바로 봐봐요.”유강후는 그제야 바닥에 앉아 있는 나은별이 눈에 들어왔다.평소의 매력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이고 머리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헝클어져 있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누군가를 때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우리 다연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이때 옆에 있던 직원이 용기 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희가 봤습니다. 이 여성분이 먼저 손을 쓴 게...”“닥쳐.”유강후는 버럭 호통을 쳤다.“내가 말하라고 했어?
온다연은 망설임 없이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고 뒤로 힘껏 밀쳤다.힐을 신은 여자는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온다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누구신데 남 일에 참견하는 거죠? 경고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넘어질 뻔하던 일행을 나은별이 부축했다.여자는 나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감히 밀쳐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듯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럼에도 분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달려들어 온다연을 치려고 했다.이때 나은별이 팔을 붙잡았다.“조아영, 그만해. 때릴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야.”나은별은 온다연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내가 화내면서 뺨 한 대 치길 바랐던 건 아니죠? 솔직히 그 모습을 강후 씨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잖아요. 내가 유하령처럼 멍청해 보여요?”“온다연, 내가 너처럼 천한 여자를 한두 번 본 것 같아? 매달려도 소용없으니까 포기해. 유씨 가문이랑 강씨 가문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할까? 너처럼 가진 것 하나없는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강후 씨랑 만나.”“유하령이 말해줬으니까 순진한 척 그만해. 너 복수하려고 강후 씨를 만나는 거잖아. 엄청 친한 친구가 있었다며? 널 구하려고 다른 사람 손에 죽었다던데 맞아? 죽기 전에 영상까지 찍혔다며? 아참, 유하령이 그 영상을 나한테 보내줬어.”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죽일 듯이 나은별을 노려봤다.나은별은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고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그 남자애가 너한테 소중한 존재라고 들었어. 죽은 사람의 마지막 체면을 지켜주고 싶으면 좋은 말로 할 때 강후 씨 곁에서 떨어져. 안 그러면 내가 그 영상 인터넷에 확 뿌려버릴 거야. 죽어서도 고통스럽게...”짝.온다연은 나은별의 따귀를 세게 한 대 갈겼다.눈빛에는 독기가 가득했고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 살벌했다.“유하령이랑 똑같은 인간인 줄은 몰랐네요. 당신 같은 인간은 살 자격도 없어요.”나은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은별은 이권을 여러 번 찾아가 유강후가 왜 만나주지 않느냐고 물었다.이권도 처음에는 예의 바르게 대했지만 찾는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더는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이실직고하게 되었고 온다연이 싫어해서 만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그 후로는 나은별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나씨 가문과 유씨 가문의 혼담이 취소된 걸 누가 소문냈는지 유강후에게 아기가 생겼고 그 상대가 나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라는 것까지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그 이후로 나은별과 나씨 가문은 경원의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온갖 조롱과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유강후와 결혼하는 건 나씨 가문의 일방적인 바람이었을 뿐 유강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은별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나씨 가문의 투자자들은 하나둘씩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회사는 지금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가장 역겨운 점은 예전에 빌붙으려고 양손 가득 선물 챙겨서 찾아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이라도 한 듯 문전성시를 이루던 나씨 가문은 하루아침에 적막해졌다.배은망덕한 사람들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른 나씨 가문 어르신은 명절날에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나은별은 이런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있다.사람들이 추측하며 수군거릴 때 아무런 대처 없이 묵인한 유강후가 그 원인의 중심이다.그동안 나씨 가문을 통해 미래 그룹에 빌붙으려던 사람들까지 발걸음을 멈췄다.나은별은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이익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하늘에서 땅이 아닌 지옥으로 떨어지는 케이스를 수없이 많이 봐왔기에 이런 우여곡절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이익 때문에 등을 돌린 인간이 아닌 사건의 원흉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나은별은 온다연이 유강후에게 빌붙어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초라한 자신에 비해 전보다 안색도 좋아지고 예쁜 얼굴마저 더 정교해진 온다연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게다가 입고 있는 옷의 패턴
온다연은 순순히 그의 품에 안겨 몰래 눈물을 닦았다.“보석상에서 가지러 가도 된다고 연락왔는데 아직 안 갔어요. 결혼식 며칠 전에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유강후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지금 가지러 가자. 어떤 건지 너무 보고 싶어.”옷 갈아입을 때 유강후는 특별히 가장 마음에 드는 슈트를 입었다.그러고는 온다연에게 넥타이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온다연은 너무도 많은 넥타이에 흠칫하다가 다시 신중하게 골랐다.유강후는 캐비닛 앞에 서서 열심히 넥타이를 고르는 온다연이 귀여운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온다연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을 때 유강후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외출 준비할 때 아내인 온다연이 옷과 넥타이를 골라주며 신경 써주는 이 상황을 수년동안 기다렸다.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상상이 현실로 되었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온다연은 매우 열심히 넥타이를 골라주고 있다.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너무 무리한 탓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유강후는 뒤에서 온다연을 끌어안고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골랐어?”온다연은 회색 넥타이를 꺼냈다.“오늘 입은 옷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뻐요.”유강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예쁜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 다연이가 좋아하면 그게 뭐든 나도 좋아.”온다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아저씨, 그만해요.”빨갛게 달아오른 온다연의 귀를 본 유강후는 더 이상 참지 못했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선 한참이나 키스를 한 후에야 놓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보석상에 도착했다.임정아는 안목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얼리 브랜드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연은 가성비가 좋고 흔치 않은 남성용 반지를 골랐다.온다연이 집 사려고 모아둔 금액이었으니 싼값은 아니었다.하지만 유강후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도 있으니 긴장된 마음을 늦추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시계에 비하면 훨씬 싼 값이니까.그런데 의외로 유강후는 매우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