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상자에 있던 화려한 액세서리들이 바닥에 쏟아졌다.석양이 비추자 더욱 눈 부신 빛을 발했다.유강후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온다연의 손을 강제로 잡고 억지로 그녀의 중지에 반지를 끼웠다.마침 사이즈가 딱 맞았다.장화연은 액세서리를 치우면서 말했다.“다연 씨, 이건 사모님의 혼수 액세서리에요. 지금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죠. 이 반지는 특별히 다연 씨 사이즈에 맞게 고친 건데 싫어하면 안 되죠.”온다연은 그 반지를 끼자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반지를 뺐다.유강후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다시 껴.”온다연은 반지가 아니라 마치 폭탄을 쥐고 있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녀는 유강후의 물건을 원하지 않는다.유강후가 고양이를 데려간 일 때문에 온다연은 이미 그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였다.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유강후에게 반지를 건넸다.“아저씨, 이런 물건은 은별 언니에게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유강후는 그 반지를 보면서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그리고 전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온다연, 한 번만 더 말할게. 다시 껴.”하지만 온다연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어. 나를 자극하지 마.”그러자 온다연은 나지막이 말했다.“저는 이걸 받기 싫어요.”이 반지는 나은별의 것이다. 만약 온다연이 이 반지를 끼면 그녀는 내연녀가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셈이다.온다연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바로 내연녀이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왜 그녀에게 이렇게 비싼 물건을 주는지 몰랐지만 그녀는 좋아하지도 않고 받기도 싫었다. 특히 반지 같은 물건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유강후는 진짜 그 의미를 모를까?유강후는 온다연이 움직이지 않자 다시 강제적으로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려고 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강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유강후는 이런 온다연을
온다연은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지?유강후는 갑자기 온다연의 턱을 치켜들며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쳐다보지 않고 오히려 눈을 감았다.“아저씨는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유일하게 갖고 싶었던 고양이마저 방금 빼앗겼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을 바라봤다. 곧 화를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이때 그는 갑자기 온다연을 놓아주더니 그녀를 한쪽으로 밀고 일어섰다.그리고 온다연을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유강후의 기에 눌려 온다연은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온다연, 정말 제멋대로네.”온다연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낮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게임이라고 생각해. 이제 시작이야. 게임 룰과 언제 끝나는지는 내가 결정할 거야.”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살살 어루만지며 말했다.“내 취향은 변한 적이 없어.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20년 동안 계속 그것만 먹을 수 있거든.”온다연은 순간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졌고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떠난 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저녁이 되자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공기 중에는 아직도 유강후의 몸에서 나는 옅은 우디향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향기였다.바람이 불자 온다연은 추워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았다.장화연은 담요를 가져와 그녀에게 걸치고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보석들은 사모님이 도련님에게 남겨준 물건들이라 도련님이 굉장히 아끼는 거예요.”온다연은 무뚝뚝하게 마당 밖으로 뻗어 자란 나뭇가지를 보며 말했다.“제 것이 아닌 걸 가지는 건 훔치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어차피 다시 돌려줘야 해요.”장화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끝내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연속 3일 동안 유강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장
온다연은 여기에서 유민준을 만날 줄 몰랐다. 그녀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빠, 왜 여기에 있어요?”유민준은 잘생긴 데다 멋진 수트까지 입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분명 그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때 온다연은 유민준의 손을 뿌리쳤다.유민준은 들뜬 마음에 온다연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계속 찾았어. 아무 일도 없는 건 알겠지만 왜 전화하지 않았어?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잖아...”유민준이 너무 힘을 주며 온다연의 손을 쥐자 온다연은 너무 아팠다. 그녀는 손을 빼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오빠, 다들 쳐다봐요...”유민준은 온다연의 의사는 묻지 않고 그녀를 바로 옆 작은 정자로 끌고 갔다.그곳에 있는 대나무 장식이 마침 사람들의 시야를 가릴 수 있었다. 온다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유민준은 온다연을 안고 싶었지만 온다연은 피했다. 그는 온다연의 예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예전보다 더 예뻐졌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살이 너무 빠져서 옷이 커 보였다.유민준은 안쓰러운 듯 온다연을 쳐다보면서 다급하게 물었다.“혹시 여기서 알바해? 집에도 안 가고 학교에서도 연락 안 된다고 하고 다들 너를 찾아다니는 거 몰라?”온다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유민준은 감격에 겨워 그녀를 껴안았다.“다연아, 혹시 일부러 나를 피해 다니는 거야? 내가 약혼한다는 사실을 듣고 일부러 숨어 다니는 거냐고? 화 풀어. 내가 약혼했다고 해도 널 버리지 않을거야...”유강후의 힘이 너무 세서 온다연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온다연은 유민준이 너무 이상해 보였다.‘약혼하든 안 하든 나랑 무슨 상관이지?’온다연이 숨어다니는 이유는 유민준 때문이 아닌데 말이다. 그녀는 힘차게 유강후를 밀쳐내고 심하게 기침했다.유민준은 온다연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네가 사고를 쳤다는 건 알아. 무한테크 그룹의 딸 고유정을 때렸다며? 하지만 숨어다니지 말았어야 했어. 나를 찾아와야지. 내가 다
온다연은 유민준을 정말 싫어했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온다연은 집에 돌아가서 샤워를 열 번이라도 할 것이다. 온다연은 계속 피하면서 유민준을 뿌리치려고 했다.“둘이 뭐해?”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민준은 재빨리 온다연을 놓아줬다.“삼촌, 왔어요?”유민준은 옷을 정리하고 애써 침착한 척하며 온다연을 자기 뒤로 숨겼다. 온다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3일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유강후를 보게 되었다.그는 검은색 수트를 차려입고 차분하고 도도한 분위기를 뽐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너무 살벌해서 온다연은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솔직히 유민준도 충분히 잘생겼지만 유강후와 비하면 살짝 아쉬웠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유강후는 훨씬 더 고급스러웠다.유강후는 서 있기만 해도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그의 우월한 비주얼은 물론 막강한 카리스마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게 된다.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톱스타 임정아는 예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오늘 입은 머메이드 치마는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더 부각해 줬다. 임정아는 목과 손목에 연한 파란색 다이아몬드 액세서리를 하고 있었고 무심코 손을 들 때마다 커다란 파란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드러냈다.그날 유강후가 선물해 준 것과 똑같은 반지였다.유강후와 임정아는 천생연분처럼 너무 잘 어울려 보였다.어쩐지 요즘 연예 뉴스에 두 사람의 스캔들이 계속 있더라니. 알고 보니 소문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온다연은 고개를 푹 떨구고 옷을 꽉 움켜쥔 채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이렇게 빨리 새 여자가 생겼다고?’유강후는 몇 초 동안 온다연을 바라보다가 다시 유민준을 쳐다봤다.“곧 파티가 시작될 건데 여기서 뭐 해?”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마치 온다연을 모르는 것처럼 그녀와 얽힌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유민준과 온다연이 함께 있는 것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표정이
유강후는 포스가 넘쳤고 임정아는 매력적이고 섹시했다.온다연은 넋을 놓고 두 사람을 쳐다봤다. 골목 입구에 다다르자 임정아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남녀노소 모두 반할 것 같은 환한 미소였다.온다연은 잠시 멍해 있다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사라졌다.바람이 불어오자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자세히 들어보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온다연은 갑자기 그녀를 제외하고 온 세상이 바삐 돌아가는 것 같았다. 천천히 별장으로 걸어가자 장화연이 흰색 장미 화분 십여 개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다.온다연은 방금 꽃밭에서 따온 작은 아이리스꽃 한 움큼을 장화연에게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장화연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다연 씨, 이 꽃을 꽂아둘까요?”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꽃잎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장 집사님한테 선물하려고 가져온 거예요.”장화연은 잠깐 어리둥절해졌다.“감사합니다.”하지만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말투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이때 온다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이리스의 꽃말은 과묵하지만 우아한 영혼이란 뜻이에요.”그 말을 듣자 장화연은 드디어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그녀는 가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흰 장미를 다른 꽃으로 바꿀까요? 해바라기 같은 건 어떠세요?”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오늘 여기서 유씨 가문 파티가 열리나요?”“도련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됐어요. 오늘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저녁에 파티도 열릴 예정입니다.”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더라니. 고씨 가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침실로 들어온 온다연은 핸드폰을 꺼내 카카오톡에 남은 잔액을 보며 잠시 멍을 때리다가 다시 일어나 캐주얼한 흰색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이 살짝 두꺼워서 요즘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외출하려고 할 때 장화연이 물었다.“추워요? 왜 이렇게 많이 입었어요?”그러자 온다연
온다연은 여러 가지 핑계를 둘러댔지만 주희는 온다연이 입원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유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를 가두었다고 굳게 믿었다.온다연이 마지막으로 상처를 보여주고 나서야 주희는 겨우 믿었다. 그녀는 카드를 주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카드 안에 몇백만 원이 있으니 먼저 써. 수술 비용은 내가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볼게.”주희는 안색이 변하더니 단칼에 거절했다.“싫어요.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게다가 당분간은 적합한 골수를 찾을 수 없어요.”주희는 온다연을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나, 몇 년 동안 정말 수고했어요. 앞으로 절대 누나를 고생시키지 않을 거예요.”주희는 최근 키가 많이 자랐다. 이미 온다연보다 한 뼘 정도 더 컸다. 이렇게 온다연을 안고 있으면 온다연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아이가 되었다.온다연은 주희가 소유욕으로 가득 찬 자세로 그녀를 안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주희의 눈빛도 예전처럼 순수하지만은 않았다.“누나, 유씨 가문에서 그렇게 누나를 대했는데 돌아가지 마세요. 이모도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누나를 데리고 간 건 사실...”“주희야!”온다연은 주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렸을 때의 촉감이 아니라 약간 따가웠다.“됐어. 주희야, 그만해. 이모는 지금 나의 유일한 가족이야.”주희는 여전히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누나, 저야말로 누나의 유일한 가족이에요.”“그래. 알았어. 너도 내 가족이야. 그러니깐 이제 나를 좀 놔줄래? 너무 꽉 안아서 숨 막혀.”주희는 그제야 온다연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문지르면서 애교를 부렸다.“좀 더 안고 싶은데 안지도 못하게 하네요. 두 달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유씨 저택에 몇 번이나 찾아갔어요.”울먹거리는 주희의 목소리를 듣자 온다연은 마음이 약해졌다.그녀는 주희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굴어. 이제 곧 고등학교도 졸업할 텐데.”주희는 계속해서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묻고 몸을 구부린 상태로
주희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주지 마세요. 달라고 한 적도 없잖아요.”그리고 차 문을 뿌리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 여자는 급히 뒤쫓아가며 말했다.“아이고, 그냥 장난친 거야. 내가 잘못했어. 지금 당장 사과할게. 화 풀어.”주희는 그제야 멈춰 섰다.“오늘은 어디예요?”그러자 그 여자는 주희의 교복을 잡아당기더니 뒤꿈치를 들고 그의 볼에 뽀뽀하면서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산꼭대기에 있는 별장이야. 누나가 텐트를 준비했어. 저녁에 별을 볼 수 있거든.”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여자도 곧 차에 탑승했다.차는 곧 낡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온다연은 임혜린과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임혜린은 많이 야위어 보였고 정신상태도 좋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온다연이 두 달 동안 사라진 이유를 간단히 묻고 별말을 하지 않았다.온다연은 무슨 문제라도 생겼느냐고 묻자 임혜린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오히려 온다연에게 물었다.“유민준이 아직도 너를 귀찮게 해?”온다연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이효진과 곧 결혼할 것 같아. 이효진은 소유욕도 강하고 성격도 나쁜데 민준 오빠가 불구덩이에 들어간 셈이지, 앞으로 내 일에 참견할 시간조차 없을 거야.”온다연은 말하면서 챙겨온 증명서류를 임혜린에게 주었다.“이건 내 모든 증명서류야. 우리 엄마가 예전에 깨어있을 때 쓰신 유서도 있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안전하지 않아서 잠시만 보관해 줘.”임혜린은 한번 훑어보더니 호적등본과 부동산 증명서가 안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호적등본과 부동산 증명서는?”그러자 온다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한테 있어.”그러자 임혜린은 언짢은 어조로 말했다.“그 여자가 왜 그걸 갖고 있어? 비록 네 집은 좀 낡고 작지만 역세권에 있어서 집값이 꽤 나갈 거야. 네 엄마가 유서에 분명히 썼잖아. 20살이 될 때까지만 집을 지켜달라고. 그다음엔 너
이때 임혜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헐! 뭐야!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다고? 이렇게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이렇게 멋진 남자를 보게 될 줄이야. 왠지 낯이 익은데. 혹시 연예인인가? 어머! 저 남자가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은데.”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몇 초 바라보다가 임혜린을 쳐다봤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그러자 온다연은 깜짝 놀라면서 다급하게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말했다.“빨리 넣어둬.”하지만 임혜린은 아직도 유강후의 미모에 흠뻑 빠져있었다.“정말 너무 잘생겼어. 왜 이렇게 서둘러. 누가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닌데.”온다연은 임혜린의 가방을 빼앗아 와 증명서류를 모두 쑤셔 넣었다. 임혜린은 그녀가 왜 이러는지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유강후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유강후는 임혜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임혜린은 벌떡 일어나 더듬거리며 말했다.“무... 무슨... 무슨 일이세요?”유강후의 눈빛은 매섭고 차가웠다. 너무 도도하고 기가 세서 인간미가 없어 보였다. 비록 얼굴은 너무 잘생겼지만 성격은 예민하고 난폭할 것 같았다.이렇게 비교하니 한이준이 더 괜찮은 것 같았다.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을 때 유강후는 온다연 옆에 앉았다. 온다연은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가 왜 여기에...”그러자 유강후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그럼 난 어디에 있어야 하는데?”온다연은 손바닥과 이마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유강후가 자기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주희 집이 아닌 걸 온다연은 다행으로 생각했다.온다연은 감정을 추스르고 담담하게 말했다.“호텔에서 유씨 가문 파티가 열린다고 하길래 나왔어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수다도 떨고 그러려고요.”유강후는 차가운 시선으로 임혜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칼날 같
예상치 못하게 회사에서 갓 소문을 접한 매니저들과 직원들은 이번엔 눈앞에서 직접 드라마틱한 ‘현실 연애’를 목격하게 되었다. 비서는 유강후가 온다연을 안고 사무실을 나서는 것을 보더니 매니저들에게 손짓했다.“오늘의 회의와 보고는 다 끝났으니까 해산하세요. 대표님은 이만 퇴근하셨습니다.”레스토랑은 회사에서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두 사람이 들어서자,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직접 나와 서툰 한국어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이른 저녁이라 식당은 한산했고 매니저는 두 사람을 전망이 가장 좋은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했다.그 방은 크지 않았지만 로맨틱하게 꾸며져 있었고, 연인들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다. 창문 너머로는 금성의 CBD 광장 중심부가 보였고 도시의 절반 정도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곧이어 디저트가 나왔다. 화려하고 유혹적인 디저트들이 투명한 크리스탈 접시에 담겨 있었고 그 위에 금빛 설탕 시럽이 흐르며 몇몇 디저트 위에는 반짝이는 금박이 장식되어 있었다.크리스탈이 빛을 굴절시키면서 모든 것이 환상적으로 보였고 이곳이 지상 낙원처럼 느껴졌다.온다연은 조심스럽게 한 입을 먹어보더니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너무나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보자 유강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입에 맞나 보네요. 이 집은 디저트를 잘 만들어요...”온다연은 나이프로 크림 한 덩이를 퍼서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강 대표님도 드셔보세요.”하지만 유강후는 크림 대신 그녀의 입술 가장자리에 묻은 크림을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잡아 끌어당기더니 입을 맞췄다.오랫동안 이어진 키스가 끝나자,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맛있네요. 아주 달콤해요.”온다연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작게 말했다.“여기 밖이에요. 밖에서 함부로 키스하다가 사람들이 보면 어떡해요...”유강후는 그녀의 키스로 붉어진 입술을 보며 아쉬운 듯 미소 지었지만, 더 다가가려는 순간
곧 새로 산 얇은 담요가 배달되었다.유강후가 온다연에게 담요를 덮어주자마자 그녀가 눈을 떴다. 조금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 그녀는 두어 초 동안 낯선 환경에 당황하다가 상황을 파악했다.유강후는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맞추며 말했다.“깼어요? 더 잘래요?”온다연은 머리를 비비며 나직하게 말했다.“더 자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악몽을 꿔서 너무 피곤해요.”유강후는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를 들어 올려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낮게 속삭였다.“무슨 꿈을 꿨어요?”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기대어 강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그 소리에 마음이 조금 진정된 후 그녀가 말했다.“누군가가 저를 괴롭히는 꿈을 꿨어요. 그런데 한 소년이 나타나 저를 구해줬어요. 하지만 그 소년이 결국 죽었어요...”그녀는 꿈속에서 너무나도 무력하고 마치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았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오직 그 소년만이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했지만 그 소년마저도 자신을 구하려다 4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꿈속에서 그녀는 심장이 찢어지듯 울었고 그 모든 감정이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꿈이 아니라 실제로 겪었던 기억처럼 느껴졌다.온다연은 그의 옷을 꼭 쥐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강 대표님, 꿈이 아닌 것 같을 정도로 생생해요. 정말로 있었던 일이 꿈에 나타나는 거 아닐까요?”유강후의 눈 속에 어둠이 스쳤지만,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그녀를 꼭 안았다.“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요. 그저 꿈일 뿐일 테니까...”온다연은 멍하니 말했다.“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이런 꿈을 꿔요. 그리고 정말 현실처럼 느껴져요. 가짜 같지 않아요.”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덧붙였다.“그 소년도 기억나요. 그 소년이...”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그건 단지 꿈이라니까요...”잠시 침묵한 후 그가 덧붙였다.“설령 그게 사실이었다 해도, 유나 씨를 괴롭혔던 사람들은 반드시 벌을 받았을 거예요. 아무
“원래는 이 원단을 몸에 두르고 무대 위에서 시연하는 방식으로 소개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제가 이 원단을 구매해 치파오로 완성품을 만들기로 하면서, 저 대신 어머님께서 무대에서 입어주실 수 있는지 부탁드리고 싶어 하더라고요.”온다연은 강현미의 반응을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물론 이 부탁이 무리인 건 알아요. 어머님의 신분이 워낙 귀하시다 보니 런웨이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 친구 말로는 이 원단의 공예적 가치는 정말 대단해서 세상에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다고 해요...”“좋아. 그 부탁은 내가 들어줄 수 있을 것 같구나.”강현미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온다연은 잠시 멍해졌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지,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다.강현미가 이어서 말했다.“이렇게 훌륭한 원단이라면 전 세계에 우리가 가진 럭셔리의 진짜 가치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 외국의 명품보다 더 희귀하고 소중하다는 걸 알려야지. 네 친구에게 가서 내가 참여한다고 전해.”그녀는 온다연을 한 번 바라보더니 말했다.“나는 네가 국풍 패션 브랜드에 투자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줄 알았어.”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사실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시장 가능성이 정말 크다고 느껴지거든요.”“좋은 판단이야. 나는 네 결정을 지지해. 만약 네가 브랜드를 런칭하면 내가 경영 쪽으로 지원해 줄게.”온다연은 기쁨에 강현미를 살짝 끌어안으며 말했다.“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강현미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고맙긴... 이제 나는 그만 가봐야겠다.”온다연이 몇 번이나 식사까지 하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강현미는 끝내 점심을 함께하지 않고 떠났다.점심 식사 후, 온다연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미래 그룹 본사로 향했다. 유강후는 아직 회의 중이라 그녀는 그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미래 그룹의 크기와 유강후의 바쁜 일정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녀가 사무실에서 잠깐 기다리는 동안에도 비서가 서류를 한가득 안
몇 개의 고풍스러운 상자 안에는 정교하게 제작된 중식 개량 치파오가 담겨 있었다.온다연이 입고 있는 치파오와는 다르게, 이 치파오들은 색상이 더욱 우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온다연이 상자에 놓인 치파오들을 짚으며 말했다.“이건 어제 제 친구가 디자인한 치파오들이에요. 이 디자인을 보고 나서 어머님께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급히 보내달라고 했어요. 시간이 촉박했지만 이미 어머님 치수에 맞게 수정해 두었어요. 그리고 제가 친구에게 주문해 둔 두 가지 특별한 원단도 있어요. 분명히 마음에 드실 거예요.”그녀는 상자에서 원단 샘플을 꺼내 강현미에게 건넸다.“이건 샘플이에요. 이런 원단은 비록 귀하지만 비교적 구하기 쉬워요. 하지만 이 원단은 정말 희귀해요. 제 친구가 연구를 거듭했지만 겨우 네 가지 색상을 재현했어요. 하늘색, 브라운색, 은빛을 곁들인 붉은색과 옅은 그린이에요. 만져보세요.”강현미는 원단을 만지며 감탄했다.“정말 이 원단이 아직 있었네.”하늘색 원단은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듯 은은하고 신비로운 색감을 띠고 있었으며 촉감은 가장 얇은 비단보다도 부드러웠다.그녀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에 동남아에서 왕비가 이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멀리서 봤을 때도 마치 강가의 안개비처럼 아련하고 우아했었다. 그 원단이 세계에 남은 마지막 원단이었고 이미 다시 복구하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이 원단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사라진 줄로 알았는데?”온다연이 설명했다.“저도 이 원단이 있다는 건 책에서나 보는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제 제 친구가 샘플을 가져와 보여주더라고요. 전설 속 이야기처럼 들렸던 게 진짜였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원단이 너무 복잡해서 실패율이 높대요. 경력이 많은 장인들이 몇 달 동안 작업해도 한 필을 얻기가 어렵다고 해요. 지금 제가 주문한 이 네 가지 원단도 친구가 2년 동안 공들여 겨우 얻은 모든 것이에요. 어머님께서는 치파오의 디자인을 먼
“내 앞에서 가릴 필요 없어. 너희가 아이를 가지려고 한다면 자연스러운 일이잖니...”온다연은 얼굴이 더 붉어지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이를 가지겠다고 했다면 그건 강 대표님의 농담이에요. 아직 저희는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어요.”강현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에 놓인 큰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네가 왔으니 간단하게 준비한 선물이야. 어제 네가 치파오 입은 걸 보니 빈티지한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이건 내가 젊을 때 수집한 보석들이야. 네가 새로 맞춘 치파오와 잘 어울릴 거야. 한번 꺼내서 봐.”그녀는 나무 상자를 열었다.온다연이 안을 들여다보자마자 숨을 들이쉬며 속으로 감탄했다.‘너무 화려한데...’상자 안에는 온통 비취 장신구로 가득했고 적어도 백여 점은 되어 보였다.한눈에 보기에도 모든 품질이 완벽했지만, 마치 시장에서 산 물건처럼 하나의 평범한 상자에 마구 담겨 있었다.온다연은 손에 닿는 대로 비취 팔찌 하나를 꺼내 보며 감탄했다.“정말 대단하네요. 이렇게 투명한 팔찌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죠. 작년에 저희 어머니도 비슷한 걸 구입하셨는데, 그게 16억 정도 하더라고요.”강현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예전에 내가 동남아에 갔을 때 비취 시장에서 구입한 것들이야. 그땐 원석 도박이 유행이었는데, 운이 좋아서 귀한 품종을 꽤 많이 얻었지. 네가 비취를 좋아하면, 내 방에 아직 가공하지 않은 큰 비취 원석들이 몇 개 더 있어.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골라서 가공해도 돼.”그녀는 상자 속을 한 번 훑어보며 덧붙였다.“사실 이건 그 원석들에 비하면 별거 아니야.”온다연은 급히 말했다.“괜찮아요.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게다가 이 모든 게 너무 값비싸서 다 받을 순 없어요.”그녀는 몇 가지 장신구를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이 정도면 제가 가진 옷들과 매치하기에 충분해요. 나머지는 다시 가져가 주세요. 너무 부담돼요.”강현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사를 손짓으로 불렀다.“이걸
연회가 끝났을 때는 이미 새벽에 가까웠다.유강후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소파에서 잠든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다가가 몸을 굽히려는 순간 온다연이 눈을 떴다.“끝났어요?”유강후는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방에 가서 자지 않았어요?”그에게서 은은한 술 냄새가 풍기자, 온다연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를 밀어냈다.“술 드셨잖아요.”유강후는 분명 몇 잔 마셨고, 약간 취해 있었다. 그는 술기운에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강하게 잡고 다시 입을 맞췄다.“저를 싫다고 밀어내는 거예요? 유나 씨...”온다연은 고개를 홱 돌리며 두 손으로 그를 막았다.“제가 가서 해장국 끓여올게요.”유강후는 코웃음을 치며 한 손으로 그녀를 마치 작은 고양이를 들듯 번쩍 들어 욕실로 데려갔다.얼마 후, 집사가 해장국을 준비하고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욕실 안에서 민망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집사는 급히 발길을 돌렸다.‘대표님과 유나 씨의 관계가 정말 좋은가 보네...’집사는 지금 이 흐름대로라면 이 집에 작은 도련님이 생기는 것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얼른 어르신께 넌지시 알려드리고 미리 아기방 준비를 해야 할지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다음 날, 정오가 가까워서야 온다연은 겨우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온몸이 마치 차에 치인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어젯밤의 일이 떠오르자,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강 대표님은 진짜 너무해. 그제도 폭풍 같은 시간이었는데... 어제는 더 심했어. 술기운에 밤새 몇 번이고 나를 덮쳤어...’어젯밤의 부끄러운 장면들이 떠오르자, 온다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저주하듯 말했다.“진짜 말도 안 돼요. 쉬지도 않고 밤새...”‘참! 어젯밤에도 콘돔을 안 꼈던 것 같은데...’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침대에 다시 쓰러졌다. 유강후는 원래 이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녀에게 늘 다정하고 세심하게 대해주었는데, 최근 몇 번은
‘다연이가 과거를 잊은 후 새롭게 시작하는 거니까 새로운 여자로 봐도 되겠지...’염지훈이 비꼬는 듯한 웃음과 함께 도발적으로 말했다.“그래서 이렇게 초대도 받지 못한 자리에 왔습니다. 미래 그룹 총수의 새 부인이 얼마나 미인인지 직접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미스코리아를 나갈만한 미인인가요?”유강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냉기가 서려 있었다.“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몸이 안 좋아서 이미 잠자리에 들었어. 조만간 내가 아내를 데리고 직접 염 대표님의 회사를 방문하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그의 눈빛이 순간 묘한 빛을 띠며 덧붙였다.“가까운 시일 내에 볼 수 있을 테니 그때 어떤 사람인지 직접 확인하면 되잖아.”염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옛날엔 다연이에게 목숨까지 바칠 것처럼 굴더니, 겨우 3년 만에 새 여자와 결혼했다는 거네요? 결국 그때도 전부 연극이었다는 거잖아요.”유강후의 손이 서서히 주먹으로 쥐어지며 목소리가 낮아졌다.“듣기로는 아직도 다연이를 찾고 있다던데, 몇 년을 찾아 헤맸다던데 무슨 소식이라도 있어?”염지훈은 잠시 흥분한 듯 쏘아붙였다.“소식이 있다고 해도 너 같은 놈에게는 절대 한마디도 해주지 않아! 넌 온다연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가질 자격이 없어! 설령 다연이가 살아 있다 해도 널 절대 만나주지 않을 거야. 넌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그렇다면 소식을 듣긴 한 것처럼 보이네?”염지훈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비웃었다.“없다고 했잖아!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야!”유강후는 듣자마자 단호하게 말했다.“염 대표님, 온다연이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중요하지 않죠. 중요한 건 온다연은 내 아내라는 겁니다. 온다연은 저와 법적으로 결혼했고 우리에겐 함께 키우는 아이도 있어요. 설령 온다연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그녀의 묘비엔 우리 가문의 성씨가 새겨질 거고 염 대표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염지훈의 얼굴이 굳어지며 분노가 치밀었다.“그래서? 네까짓
온다연은 유강후 앞에서 한 바퀴 돌며 웃었다.“이 치파오 정말 예쁘죠?”달빛처럼 은은한 화이트 톤의 개량식 치파오는 그녀가 착용한 옥 장신구와 완벽하게 어우러져 온다연 특유의 소녀다운 맑음과 온화한 매력을 한껏 살려 주었다.유강후는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정말 예뻐요. 이제 만찬이 시작될 시간이네요. 가시죠.”세 사람은 곧 연회장에 도착했다.연회장에는 이미 손님들이 대부분 자리를 잡고 있었고 온다연과 유강후는 단연코 오늘 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그리고 두 사람과 함께 등장한 임혜린 역시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었다.특히 온다연과 임혜린이 입은 중식 개량식 치파오는 우아하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뽐내 주변의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그 자리에서 임혜린의 작업실은 수많은 주문을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연회가 약 3분의 1쯤 진행되었을 때, 집사가 급히 유강후에게 다가와 그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유강후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더니, 별안간 온다연을 번쩍 안아 올리고 곧장 휴게실로 향했다.임혜린과 즐겁게 대화 중이던 온다연은 느닷없이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려지자,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람들 앞에서 이러면 어떡해요? 손님들도 있는데...”유강후는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임혜린 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함께 하시죠.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운전기사가 대기 중이니 편히 돌아가세요.”그의 말은 명백한 작별 통보였다.임혜린은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마침 피곤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순순히 온다연과 인사를 나눈 후 자리를 떠났다.온다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왜 갑자기 혜린이를 내보낸 거예요? 한창 재밌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단 말이에요. 조금 전 그 행동은 좀 무례했어요!”유강후는 그녀의 작은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디자이너님의 비서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이가 아프다길래 제가 먼저 보내 드린 거예요.”온다연은 조금
임혜린은 멀지 않은 곳에서 서류를 보는 척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 유강후를 흘깃 보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온다연의 귀에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몇 마디를 속삭였다.온다연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찡그렸고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유강후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해 즉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곧 임혜린의 휴대폰에 낯선 계정으로부터 친구 추가 요청이 들어왔다. 귀여운 곰돌이 그림이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된 계정은 다소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였다.임혜린은 유강후를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휴대폰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계속 온다연과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한번 친구 추가 요청을 보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까지 기재해 뒀지만 곧 [상대방이 친구 추가를 거부했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받았다.유강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임혜린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채 몰래 중지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유강후는 다시 친구 추가 요청을 보내며 새로운 메모를 남겼다.[한이준은 아들이 두 살인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역시나 임혜린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친구 추가 요청을 수락했다.곧바로 유강후가 메시지를 보냈다.[임혜린, 내 아내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임혜린은 코웃음을 치며 바로 답장을 보냈다.[유강후 씨의 아내가 누구죠? 나은별인가요?]유강후는 속으로 임혜린을 몇 번이고 죽이고 싶었지만, 온다연이 있는 자리라 꾹 참았다. 그는 즉석에서 임혜린과 온다연이 대화하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이건 또 무슨 장난이죠?][내 아내 앞에서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이 사진은 곧바로 한이준의 휴대폰으로 전송될 거란걸 알아둬.]임혜린은 바로 반응했다.[그럴 배짱이 있나요?]곧 유강후는 한이준과의 대화 일부를 캡처해 그녀에게 보냈다. 임혜린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바로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