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여러 가지 핑계를 둘러댔지만 주희는 온다연이 입원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유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를 가두었다고 굳게 믿었다.온다연이 마지막으로 상처를 보여주고 나서야 주희는 겨우 믿었다. 그녀는 카드를 주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카드 안에 몇백만 원이 있으니 먼저 써. 수술 비용은 내가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볼게.”주희는 안색이 변하더니 단칼에 거절했다.“싫어요.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게다가 당분간은 적합한 골수를 찾을 수 없어요.”주희는 온다연을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나, 몇 년 동안 정말 수고했어요. 앞으로 절대 누나를 고생시키지 않을 거예요.”주희는 최근 키가 많이 자랐다. 이미 온다연보다 한 뼘 정도 더 컸다. 이렇게 온다연을 안고 있으면 온다연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아이가 되었다.온다연은 주희가 소유욕으로 가득 찬 자세로 그녀를 안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주희의 눈빛도 예전처럼 순수하지만은 않았다.“누나, 유씨 가문에서 그렇게 누나를 대했는데 돌아가지 마세요. 이모도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누나를 데리고 간 건 사실...”“주희야!”온다연은 주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렸을 때의 촉감이 아니라 약간 따가웠다.“됐어. 주희야, 그만해. 이모는 지금 나의 유일한 가족이야.”주희는 여전히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누나, 저야말로 누나의 유일한 가족이에요.”“그래. 알았어. 너도 내 가족이야. 그러니깐 이제 나를 좀 놔줄래? 너무 꽉 안아서 숨 막혀.”주희는 그제야 온다연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문지르면서 애교를 부렸다.“좀 더 안고 싶은데 안지도 못하게 하네요. 두 달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유씨 저택에 몇 번이나 찾아갔어요.”울먹거리는 주희의 목소리를 듣자 온다연은 마음이 약해졌다.그녀는 주희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굴어. 이제 곧 고등학교도 졸업할 텐데.”주희는 계속해서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묻고 몸을 구부린 상태로
주희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주지 마세요. 달라고 한 적도 없잖아요.”그리고 차 문을 뿌리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 여자는 급히 뒤쫓아가며 말했다.“아이고, 그냥 장난친 거야. 내가 잘못했어. 지금 당장 사과할게. 화 풀어.”주희는 그제야 멈춰 섰다.“오늘은 어디예요?”그러자 그 여자는 주희의 교복을 잡아당기더니 뒤꿈치를 들고 그의 볼에 뽀뽀하면서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산꼭대기에 있는 별장이야. 누나가 텐트를 준비했어. 저녁에 별을 볼 수 있거든.”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여자도 곧 차에 탑승했다.차는 곧 낡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온다연은 임혜린과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임혜린은 많이 야위어 보였고 정신상태도 좋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온다연이 두 달 동안 사라진 이유를 간단히 묻고 별말을 하지 않았다.온다연은 무슨 문제라도 생겼느냐고 묻자 임혜린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오히려 온다연에게 물었다.“유민준이 아직도 너를 귀찮게 해?”온다연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이효진과 곧 결혼할 것 같아. 이효진은 소유욕도 강하고 성격도 나쁜데 민준 오빠가 불구덩이에 들어간 셈이지, 앞으로 내 일에 참견할 시간조차 없을 거야.”온다연은 말하면서 챙겨온 증명서류를 임혜린에게 주었다.“이건 내 모든 증명서류야. 우리 엄마가 예전에 깨어있을 때 쓰신 유서도 있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안전하지 않아서 잠시만 보관해 줘.”임혜린은 한번 훑어보더니 호적등본과 부동산 증명서가 안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호적등본과 부동산 증명서는?”그러자 온다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한테 있어.”그러자 임혜린은 언짢은 어조로 말했다.“그 여자가 왜 그걸 갖고 있어? 비록 네 집은 좀 낡고 작지만 역세권에 있어서 집값이 꽤 나갈 거야. 네 엄마가 유서에 분명히 썼잖아. 20살이 될 때까지만 집을 지켜달라고. 그다음엔 너
이때 임혜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헐! 뭐야!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다고? 이렇게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이렇게 멋진 남자를 보게 될 줄이야. 왠지 낯이 익은데. 혹시 연예인인가? 어머! 저 남자가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은데.”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몇 초 바라보다가 임혜린을 쳐다봤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그러자 온다연은 깜짝 놀라면서 다급하게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말했다.“빨리 넣어둬.”하지만 임혜린은 아직도 유강후의 미모에 흠뻑 빠져있었다.“정말 너무 잘생겼어. 왜 이렇게 서둘러. 누가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닌데.”온다연은 임혜린의 가방을 빼앗아 와 증명서류를 모두 쑤셔 넣었다. 임혜린은 그녀가 왜 이러는지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유강후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유강후는 임혜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임혜린은 벌떡 일어나 더듬거리며 말했다.“무... 무슨... 무슨 일이세요?”유강후의 눈빛은 매섭고 차가웠다. 너무 도도하고 기가 세서 인간미가 없어 보였다. 비록 얼굴은 너무 잘생겼지만 성격은 예민하고 난폭할 것 같았다.이렇게 비교하니 한이준이 더 괜찮은 것 같았다.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을 때 유강후는 온다연 옆에 앉았다. 온다연은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가 왜 여기에...”그러자 유강후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그럼 난 어디에 있어야 하는데?”온다연은 손바닥과 이마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유강후가 자기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주희 집이 아닌 걸 온다연은 다행으로 생각했다.온다연은 감정을 추스르고 담담하게 말했다.“호텔에서 유씨 가문 파티가 열린다고 하길래 나왔어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수다도 떨고 그러려고요.”유강후는 차가운 시선으로 임혜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칼날 같
“아... 아저씨,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혜린이는 제 친구예요. 오해할 수 있단 말이에요.”온다연은 당황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임혜린에게 다급하게 설명했다.“아니야. 오해하지 마. 아저씨가 장난치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야.”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을 더 차갑게 바라봤다.“다연아, 걸어서 따라올래 아니면 내가 너를 안고 갈까?”그 말을 듣자 온다연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왜 여기서 이런 말을 하지?온다연은 이번에 유강후를 화나게 하면 유강후는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다.왜 두 사람의 관계를 공개할까?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말이다.유강후는 나은별과 곧 결혼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을 더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공개하면 온다연은 내연녀가 될 거고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욕할 것이다.혹시 온다연에게 이런 식으로 벌을 주는 건가?온다연은 생각할수록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그리고 유강후에게 손을 잡힌 채 덜덜 떨고 있었다.이때 정신을 차린 임혜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보았다.“다연아, 둘이..”온다연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혜린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내가 나중에 설명해 줄게…”말을 마치자 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유강후는 다리가 길어서 보폭도 컸다. 온다연은 뒤에서 끌려다니는 식으로 걸어 나갔다.임혜린은 온다연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이내 달려가 온다연의 다른 한쪽 손을 잡아당겼다.“안 돼요!”그러자 유강후는 멈춰서더니 임혜린을 차갑게 쳐다봤다. 그는 눈빛으로 임혜린에게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이런 강한 압박감에 임혜린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대담하게 말했다.“유씨 가문 사람이면 뭐 어때요? 다연이 싫다잖아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녀를 사납게 쳐다봤다.“임혜린이라고 했지? 네 스폰서가 지금 너를 돌아다니며 찾고 있어. 너 자신이나 챙겨.”임혜린은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순
유강후가 손짓을 하자 뒤에 있던 차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달려 나와 임혜린을 잡았다.화가 난 임혜린은 욕설을 퍼부으며 발로 경호원을 찼고 손으로 마구 헤집었다. 그중 한 경호원은 가랑이를 맞았고 아파서 뒹굴뒹글 굴었다.유강후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손을 부러뜨리고 한이준에게 넘겨.”그러자 온다연은 깜짝 놀라면서 유강후의 손을 잡고 말했다.“아저씨, 제발 그러지 마세요. 혜린이는 제 친구예요. 살려주세요.”그러자 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넌 친구가 필요하지 않아. 이런 친구는 더더욱 필요 없지. 앞으로 쟤랑 연락하지 마.”이때 임혜린은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야! 이 개자식아. 너랑 한이준은 다 쓰레기야. 내가 평생 너희들을 저주할 거야. 아! 아파! 다연아, 내 손… 탈골된 것 같아. 살려줘! 다연아, 당장 112에 신고해. 이 자식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당장 신고해.”온다연은 임혜린이 다치자 진땀을 흘리면서 유강후의 손을 뿌리치고 경호원을 잡아당기러 갔다.하지만 이 두 경호원은 키가 모두 190cm 이상이고 체격도 우람져서 온다연이 몇 번 잡아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온다연은 급한 나머지 한 경호원의 팔을 잡고 세게 물었다.그러자 경호원은 무의식적으로 온다연을 밀쳤고 그녀는 벽에 내동댕이쳐졌다.온다연의 배는 벽에 튀어나온 장식물에 마침 부딪혔다.그 모습을 본 유강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만!”그런데 이때 온다연은 옆 테이블에 놓인 두리안을 잡고 경호원을 향해 세 개 내리쳤다. 그러자 마침 경호원의 이마를 명중했다.그는 아마 평생 두리안에 머리를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한 경호원은 몸을 비틀거렸다.하지만 감히 손을 쓸 수 없어서 그녀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그 눈빛을 본 온다연은 겁에 질려 잠깐 뒤로 물러섰지만 다시 앞으로 돌격하며 임혜린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이때 차에서 더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내려와 임혜린을 제압했다. 온다연은 다급해서 거의 울 뻔했고
“얼른 데려가! 절대로 놓치지 마!”임혜린은 다급하고 화가 나서 머리로 차 문을 부딪치며 더 많은 시선을 끌려고 했다. 그러자 경호원이 서둘러 다가와 그녀의 뒤통수를 가격했고, 임혜린은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바로 기절했다.온다연은 이를 보고 급히 달려가 그 경호원을 향해 발길질하고 주먹을 휘둘렀다.그 경호원은 온다연에게 손을 대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며 유강후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가와 온다연의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다.온다연은 임혜린이 걱정됐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유강후의 팔을 붙잡고 다급하게 부탁했다.“아저씨, 혜린이를 놓아주세요... 제발!”유강후는 온다연의 작은 얼굴이 다급해져서 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더 화가 났다. 그는 차갑게 온다연을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임혜린이 너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야?”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가가 빨개지기 시작했다.“부탁할게요... 혜린이를 놓아주세요. 혜린이는 빨리 병원으로 이동해서 손목을 치료받아야 해요. 정말 아플 거예요. 빨리요! 제발 부탁해요!”온다연은 임혜린을 위해 처음으로 유강후에게 부탁을 했고, 그녀가 유강후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유강후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다시 들끓어 올랐다.“대답해! 임혜린이 너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야?”온다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혜린이는 저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에요. 아저씨, 혜린이는 제 친구입니다.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요... 제발 혜린이를 놓아주세요!”유강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갑자기 온다연의 턱을 움켜쥐며 차가운 목소리로 무자비하게 말했다.“그렇게 할 수 없다면 어떡할 건데? 난 임혜린을 사라지게 할 거야.”‘온다연, 네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어. 네가 애정을 주거나 마음을 줄 만한 모든 것들을 없애버릴 거야. 넌 오직 나만 보고 내 생각만 해야 해!’온다연은 유강후가 갑자기 임혜린을 공격할 줄은 몰랐다
차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고, 온다연이 달려가기 전에 이미 차는 출발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계속 달려가 차 문손잡이를 끝까지 붙잡고 끊임없이 두드렸다.“문 열어! 당장 차 세워!”“문 열라고! 당신들 미쳤어?”하지만 차는 이미 출발했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온다연은 손을 놓지 않고 차를 따라 계속 뛰었다.차가 점점 속도를 높이자, 온다연도 따라서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사람이 달리는 차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에게 고비가 찾아왔고 그녀는 힘들어서 헐떡거렸다. 그럼에도 임혜린을 그냥 둘 수 없어서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곧 온다연은 숨이 가빠왔고, 가슴도 심하게 아팠다. 이어서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온다연이 땅에 풀썩 주저앉던 순간, 달리던 차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서며 주변은 뽀얗게 먼지가 날렸다.온다연은 땅에 무릎을 꿇고 헐떡였지만, 여전히 차 문고리를 놓지 않았다.이때 유강후가 뒤에서 온다연의 옷깃을 붙잡았다.“다연아! 너 미쳤어?”놀라고 화난 목소리였다.‘늘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한다니까! 이번에는 겁도 없이 차를 쫓아 뛰어가? 다음번에는 얼마나 기막힌 행동을 하려는 거야? 고작 임혜린 때문에 내 말을 거역하고 목숨까지 건 거야?’온다연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목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고, 몸은 힘이 빠져 축 처졌다.이때, 온다연이 갑자기 유강후를 끌어안았다.“아저씨, 제가 잘못했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이제 안 뛸게요. 제발 제 친구를 놔주세요.”온다연은 말하면서 발끝을 들어 유강후의 입에 키스했다. 그리고 애절하게 말했다.“아저씨, 내가 잘못했어요...”유강후는 잠시 멍해졌다. 그는 온다연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다. 이것은 온다연이 처음으로 유강후에게 자발적으로 키스를 한 순간이었다.예상치 못한 상황,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유강후는 무심코 온다연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진한 빨간색 피가 천천히 흘러
유강후는 온다연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며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더니,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지도 않고 그대로 키스하며 빨아들였다.비릿하면서도 뒷맛이 달콤한 피 때문에, 유강후는 온다연을 삼켜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만약 가능하다면, 유강후는 그녀를 갈가리 찢어 삼켜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더 이상 이런 번거로움도 없고, 온다연이 다른 마음을 품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유강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생애 처음으로, 그는 누군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겠다는 느낌을 받았다.‘너는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모르는 거야? 난 단지 네가 내 말을 잘 듣기만을 바랄 뿐이야. 네가 내 곁에서 얌전히만 있으면, 뭐든지 다 줄 수 있어.’온다연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순순히 지시에 따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복종하는 듯 보이지만, 은밀히 반항하는 것이 그녀의 일관된 태도였다.온다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유강후의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감정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유강후는 어릴 때부터 유씨 가문과 안씨 가문의 후계자로 키워졌다. 그가 배운 것들은 모두 비즈니스 노하우나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등 현실적인 인간관계였다. 정보와 지식 면에서도 배우는 내용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었다.그러나 감정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에게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강후가 원하는 것은 많지 않았고, 그저 온다연이 자기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사실 유강후는 지금 꽤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온다연이 유씨 가문에 들어왔을 때 직접 그녀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심미진의 곁에서 자라도록 방치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온다연이 고생했고, 지금과 같은 반항적인 성격으로 자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피 맛의 자극 속에서 유강후는 갑자기 온다연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모두 죽여야겠다는
그 말에 염지훈은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네. 좋아! 네 말대로 해보자.” 그는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렸다.“준철아, 놈들을 다른 길로 유인해. 최대한 멀리 끌고 가.”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준철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좋습니다! 운전은 제 전문이니까요!” 잠시 후, 흰색 차량은 천천히 출발했다.온다연의 예상대로 검문은 철수되어 있었고 두 사람이 탄 차는 순조롭게 경원시를 빠져나왔다.그렇게 깊은 밤이 지나고 차는 한 저택 앞에 멈췄는데 문 앞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이 내리자 한 사람이 급히 나와 인사했다. “도련님, 도착하셨군요!” 이 저택은 전통적인 중식 건축 양식을 띠고 있었으며 유강후의 전통 한옥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마당에는 커다란 파초 나무와 연못이 조화를 이루며 운치 있는 풍경을 자랑했다. 그러나 온다연은 이 모든 것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고 방 한쪽에 기대어 휴대폰 화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화면에는 임정아와 관련된 더 많은 부정적인 소식이 떠오르고 있었다.‘아저씨는 내 주변 사람들까지 가만두지 않는데 내가 그 사람한테 잡히면 정말 감옥처럼 갇혀 살다 쓸쓸히 죽게 되는 걸까?’ ‘내 아들은 지금 그 여자 품에서 편히 잠들어 있을까? 그녀는 아이를 잘 보살피고 있는 걸까?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걸까?’ 온다연은 순간적으로 우림도 떠올랐다. 비록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 아이에게서 많은 정을 느꼈었다.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온다연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눈물은 밤이 깊어질수록 멈출 줄 몰랐다. 동이 틀 무렵, 온다연은 탁자에 엎드린 채 잠들었다.염지훈이 방에 들어섰을 때 이미 온다연은 창가의 탁자에 엎드린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가가 그녀를 침대로 옮기려 했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온도가 이상하리만치 뜨거웠다. 이상한 느낌에 염지훈은 온다연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고
염지훈은 뒤돌아 온다연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여자 너랑 정말 많이 닮았어. 놀랄 만큼.” 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온다연의 가슴을 깊숙이 찌르는 것 같았다.이미 무뎌져 버렸다고 생각한 마음이 다시금 은은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 여자를 그렇게까지 아끼면서 왜 자신에게 이토록 집착하는지 말이다. 그냥 놔주는 게 낫지 않은가? 왜 굳이 자신이어야 하는가? 그가 그런 얼굴을 가진 여자를 그렇게 좋아한다면 또 다른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될 텐데 왜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걸까?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해 사람을 찾는 꼴이 우스웠다. 마치 깊은 애정을 가장이라도 하는 듯 보였으니.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고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가고 있었지만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다.빛은 아주 어두웠지만 염지훈은 온다연의 눈에 서린 깊은 슬픔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한참을 어두워진 안색을 한 채 서 있던 염지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마음 아파할 가치 없어. 정말로.” 온다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더 빨리 옮겼다. 그 후로 두 사람은 각자 마음속에 무거운 생각을 안고 있었는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길을 걸었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작은 길의 끝에 다다랐고 그곳에는 검은색 지프 랭글러가 이미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올라탄 후에도 두 사람은 말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도로의 불빛이 점점 많아지고 이내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운전 기사가 입을 열었다. “이 구역의 검문은 철수했지만 대신 호텔과 여관을 다시 검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호텔 근처에 이르렀다. 호텔을 지나칠 때, 익숙한 붉은 깃발이 걸린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차문이 열리
염지훈은 그 말에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낮은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누군가 우리가 있는 곳을 누설했을 거야. 아니면 이렇게 빨리 찾을 수 없었을 거야.” 염지훈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유강후가 이곳을 정확히 찾아낸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잠든 온다연을 한 번 쓱 쳐다봤다. “유강후는 온다연 씨를 유독 주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온다연 씨 몸에 위치 추적 장치가 붙어 있는 건 아닐까요?” 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그는 잔뜩 어두워진 안색을 하고는 밑으로 내려왔다. 그는 온다연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그 위에는 터키석으로 만든 단추가 하나 있었는데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걸 본 온다연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이게... 위치 추적 장치인가요?” 염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군사용 최신 장치야. 다른 단추들은 진짜 터키석인데 이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어.” 그는 손에 힘을 주어 단추를 두 동강 냈고 그제야 안쪽에 숨어있던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정밀하게 제작된 위치 추적 장치에는 작고 복잡한 부품들이 들어 있었는데 은밀하면서도 강력해 보였다. 염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나 말했다.“유강후가 정말 돈을 아끼지 않는군. 이렇게 작은 장치 하나가 수백만 달러짜리야. 막 개발된 신형 기술인데 군에도 몇 개 없대, 그걸 네 몸에 달아놨다니.” 온다연은 고개를 뚝 떨군 채 낮게 말했다. “저희 여기서 나가요.” 염지훈은 장치를 다시 맞춰 덮고는 옆 사람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멀리 던져버려. 사람 많은 곳이면 더 좋겠어. 유강후가 애타게 찾게.”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사람은 재빨리 장치를 들고 나갔고 염지훈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온다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가자. 유강후가 곧 도착할 거야. 여기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온다연이 말했다. “좋아요.” 아래 작은 정원에는 이미 두 개의 바비큐 그릴이 놓여 있었고 몇 개의 편안한 의자가 잔디 위에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기 중에는 바비큐 특유의 고소한 향이 가득했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염지훈과 온다연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고 그중 한 명이 장난스럽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형수님, 안녕하세요.” 염지훈은 그를 째려보며 대답했다. “헛소리하지 마. 아직 그럴 때 아니야.” 그 사람은 싱글벙글 웃으며 염지훈의 말에 대꾸했다. “그럴 날이 금방 올 것 같은데요?” 염지훈은 더 이상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온다연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저 사람들 원래 말 저렇게 해. 제멋대로라서.” 온다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물었다. “괜찮으세요?” 그 사람은 다리에 감긴 붕대를 손으로 가볍게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별거 아니에요. 며칠 쉬면 나을 겁니다.” 온다연이 먼저 다가와 괜찮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당황하며 귀끝까지 빨개졌다. 잠시 후, 몇 술이 몇 상자나 도착하며 분위기가 한층 더 활기를 띠었다. 염지훈은 생굴 한 상자를 가져오더니 직접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고기를 손수 뜯어 작게 자르더니 그녀에게 건넸다. 온다연은 염지훈이 건넨 고기를 받지 않고 스스로 닭 다리 한 조각을 뜯어 손에 들고는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먹은 온다연의 입가에는 기름이 번들거렸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기도 하고 지금 기분이 조금 나아진 터라 허겁지겁 먹게 된 것이다. 염지훈은 너무도 잘 먹는 그녀가 의외라는 듯 바라보다가 매운맛에 빨개진 온다연의 입술을 보고는 안색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이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먹어. 그리고 체하지 않게 조심하고...” 염지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사람들의 아주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형님이 직접 나서셨
염지훈이 수도관을 고치고 욕실에서 나올 때쯤 바이크 슈트를 입은 사람 몇 명이 들어왔다.“유강후 그 사람 정말 미쳤습니다. 경원의 중요한 교차로마다 검사대를 설치했다니까요? 바이크를 탄 사람은 전부 다 면허증을 제공해야 된대요. 우리를 잡으려고 눈이 완전히 뒤집힌 모양이에요.”염지훈은 젖은 옷을 벗어 소파에 내팽개치더니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었다.“찾으라고 해. 어차피 타 지역 번호판이랑 면허증이라서 못 찾을 거야.”곧이어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하지만 정체가 이미 탄로된 것 같습니다. 유강후가 알아챈 게 틀림없어요. 지호 형님이 저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염지훈은 대수롭지 않은 듯 콧방귀를 뀌었다.“여신 그룹 지분은 이미 진작에 포기했어. 이제 염씨 가문이랑 엮인 게 없으니까 어차피 형이 날 찾아도 달라질 건 없어.”“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유강후는 워낙 경원에서 세력이 큰 사람이잖아요. 저희가 아직 맞서 싸울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경원에서 그나마 이름을 알린 가문이라면 다 유강후의 투자를 받으려고 목을 매지 않습니까. 돈과 권력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유강후한테 굽신거리니 참...”“심지어 잘나가는 기업에는 무조건 유강후의 지분이 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유강후를 따라서 투자한다잖아요. 참 빈틈이 없네요.”염지훈은 여전히 신경 쓰지 않았다.“금융 천재? 능력이 좋으면 뭐 해. 온다연은 아직도 벗어나려고 도망치고 있잖아. 유강후는 온다연을 소중히 여길 줄 몰라. 그러니까 애초에 가질 자격이 없는 인간이야.”남자는 온다연이 있는 방을 힐끔 쳐다봤다.“아직 식사 안 하셨죠? 저희도 배고파서 밖에 바비큐 그릴을 설치하는 중인데, 나중에 내려와서 좀 드세요.”그 말을 끝으로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염지훈은 소파에 잠시 앉아 있다가 여러 차례 통화를 마치고 온다연이
염지훈을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나중에 개발하려고 여기 동네를 내가 다 샀어. 지금은 내 구역이니까 당분간 안전해.”“그런데 나도 여기 온 지 꽤 되어서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어. 오늘 밤만 버티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자.”염지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얼른 가서 씻어. 온몸이 흙투성이네.”보아하니 이곳은 정말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고 욕실도 임시로 청소한 듯 남루하기 그지없었다.낡은 인테리어에 바디워시와 기타 생활용품도 급하게 구입한 듯 모두 익숙한 브랜드였다.친근한 느낌이 밀려온 온다연은 자취방에서 살았던 날들이 떠올랐다.비록 그 시절에는 돈이 없었지만 오히려 지금보다는 마음이 편했다.온다연은 추억 여행을 마치고 온수기를 켰다.어찌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온수기의 수도관이 터져 온몸에 뜨거운 물이 튀었다.그 소리를 들은 염지훈은 부랴부랴 달려와 문을 두드렸다.“왜 그래?”삐걱거리던 낡은 문은 염지훈의 힘센 주먹질에 저절로 열렸다.문이 열리자 홀딱 젖은 채로 욕실에 서 있는 온다연이 보였는데 얇은 옷이 물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날렵한 각선미, 잘록한 허리, 늘씬한 다리가 더해진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워낙 얇고 부드러운 소재의 옷이라 젖으면서 반투명해졌고 보일듯말듯한 하얀 피부는 매혹적이었다.어안이 벙벙해진 염지훈은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온다연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기에 재빨리 타올로 몸을 감쌌다.온수기가 터질 줄도 몰랐지만 문이 이렇게 쉽게 열릴 줄은 더더욱 몰랐다.“미안해요. 저도 갑자기 터질 줄은 몰랐어요.”염지훈은 태연하게 답했다.“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봐. 밖에 나가 있어. 내가 할게.”온다연은 민망함을 무릅쓰고 타올을 몸에 걸린 채 재빠르게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염지훈도 온몸이 홀딱 젖은 채로 욕실에서 나왔다.그는 방에서 공구함을 챙겨 안으로 들어가더니 수도관을 고치기 시작했다.온다연은 명문가 도련님이 이런 일을 하
빛의 속도로 할리데이비슨 바이크가 질주해 왔다.바닥에 있던 낙엽과 먼지는 사방으로 흩날렸고 그들은 조금도 물러설 의사가 없는 듯 유강후와 경호원을 향해 돌진했다.특히 선두에 선 사람은 검은색의 바이크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강풍에 부풀어 올라 왠지 모를 공포감을 조성했다.경호원들은 유강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섰다.정말 순식간에 바이크가 다가왔고 온다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이크를 향해 돌진했다.유강후도 표정이 돌변했다.“빨리 잡아.”하지만 이미 늦었다. 선두에 선 남자는 재빨리 달려와 한 손으로 온다연을 붙잡고 끌어당기며 바이크에 앉혔다.곧이어 바이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급커브를 돌며 방향을 틀었다.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경호원이 돌진했을 땐 이미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유강후는 주저 없이 차에 올라탔다.유턴하고 액셀을 밟은 차는 쏜살같이 치고 나갔다.염지훈은 돌진해 오는 제네시스를 돌아보고선 동료가 던진 헬멧을 잡아 온다연에게 넘겼다.“이거 쓰고 날 꽉 잡아.”바이크가 처음이었던 온다연은 모든 게 낯설고 경험이 없었기에 염지훈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고삐 풀린 야생마가 질주하듯 바이크는 멈출 줄 몰랐고 순식간에 제네시스를 한참이나 따돌렸다.유강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경호원이 건네준 총을 잡고 총구를 바이크에 겨눴다.두 차례의 굉음과 함께 바이크 한 대가 펑크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90도 급선회한 뒤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뒤를 돌아온 온다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어떡해요. 타이어를 맞았나 봐요.”염지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신경 쓰지 마. 알아서 잘할 거야. 속도 올릴거니까 꽉 잡아.”거센 바람 소리를 더불어 바이크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이내 제네시스는 시야에서 사라졌다.아무도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바이크는 오래된 단지로 들어갔다.염지훈은 바이크에서 내리며 여유롭게 온다연을 바라봤다.“놀라서 운 건 아니지?”온다연은 헬멧을
헤드라이트다.익숙한 차의 헤드라이트!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를 보니 유강후의 제네시스가 틀림없다.소스라치게 놀란 온다연은 재빨리 등을 돌려 옆 광고판에 몸을 찰싹 붙였다.때마침 제네시스 한 대가 그녀의 뒤쪽에 있는 도로를 쏜살같이 지나갔다.온다연은 행여나 유강후에게 들킬까 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래서 차가 멀리 가기도 전에 발을 빼며 도망쳤다.그런데 이때 차에 있던 이권이 길가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차 속도가 워낙 빨라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낯익은 듯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스쳐지났다.“밤길에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인데 웬 여자가 돌아다니고 있네요.”이권의 백미러에는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비쳤고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저 사람... 다연 씨 아니에요?”유강후의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차 돌려. 얼른 따라가.”그 시각 활짝 열린 별장에서 경호원 7,8 명이 달려왔다.유강후의 차를 본 그들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한눈판 틈을 타 사모님이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습니다.”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쓸모없는 것들. 이런 일도 제대로 못 해? 얼른 쫓아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경호원 몇 명이 서둘러 쫓아갔다.그 시각 온다연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분 만에 차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강에 가까워지자 온다연은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러자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경호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의 뒤에 있는 건 유강후의 제네시스였다.다리를 지나 강 건너편으로 넘어가 차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10분은 걸린다.그러나 유강후는 불과 2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다.절망이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질식감이 온몸을 뒤덮였다.도망칠 당시 슬리퍼 한 켤레만 신고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벗겨져 맨발인 상태였다.하얗고 부드러운 한 쌍의 발은 어느새 잔뜩 닳아 핏자
전부 임정아에 관한 기사였다.온다연은 재빨리 연예계 카테고리를 눌렀고 순식간에 임정아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나왔다.[대세 여배우 임정아, 영화 오디션 탈락이라니?][임정아, 앰버서더에서 물러나다? L사와 B사에서 돌연 계약 해지한 이유는?][드라마 대박 난 임정아, 정말 촬영장에서 텃세 부리며 조연을 괴롭혔나? 여주인공 전격 교체?][유명 여배우 임정아가 열애설에 휩싸인 내연녀라는 목격자의 증언이 잇달아...][사실 임씨 가문의 딸이 아니다? 임정아의 신분은...][임정아, 그동안 숨겨왔던 추악한 면모가 드러나자 팬들도 등을 돌려...]...기사를 본 온다연은 손발이 차가워졌다.임정아는 집안 배경이 탄탄하고 스스로 프로듀서와 감독할 만큼 능력이 뛰어났기에 아무리 구설수에 휩싸인다 한들 이렇게 한순간에 나락가지는 않을 것이다.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진 이유는 단 하나,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온다연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유강후뿐이었다.유선전화기로 걸어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왜 그랬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수화기를 들자마자 다시 내려놓았다. 왜냐하면 유강후와의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까.한참을 생각한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그곳에는 저녁 식사 재료를 준비하는 도우미 여러 명이 있었다.온다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모두들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멀지 않은 테이블 위에 핸드폰 여러 대가 놓여있는 걸 발견한 온다연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메뉴가 뭔지 궁금해서 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하세요.”잠시 후, 부엌에서 나온 온다연의 손에는 핸드폰 하나가 들려있었다.다행히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온다연은 재빨리 방으로 돌아가 임정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온다연의 전화를 받은 임정아는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가득 담겨있었다.그녀의 말투에서는 유강후에 대한 원망이 느껴졌다.온다연은 이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직접 끝내고 싶었다.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