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걸음 뛰자마자 장화연은 유하령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유강후는 차갑게 유하령을 쳐다보며 경고했다.“하령아, 내가 말했지. 넌 내 일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당장 장 집사에게 사과해.”“싫어요!”유하령은 화가 나서 몸을 떨며 사과를 거부했다. 그녀의 기억에 유강후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예뻐했고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고 설령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녀를 벌한 적 없는 착한 삼촌이었다. 하지만 오늘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하고 심지어 하인에게 사과하라고 하다니.유하령은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사과해!”유강후는 더 차갑게 유하령을 쳐다봤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하령아, 왜 이렇게 점점 버릇이 없어. 자성 형이 예의를 배워 줄 선생님을 구해주지 않았어?”손목의 통증을 느낀 유하령은 몸부림치면서 울었다.“삼촌, 왜 겁을 줘요. 하인 때문에 지금 나를 때린 거예요?”“닥쳐! 하인? 넌 그저 가족을 등에 업고 날뛰고 있는 것뿐이야. 이러다가는 조만간 유씨 가문에 큰 화를 일으킬 거야.”유강후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손을 뒤로 젖히자 유하령은 순식간에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예뻐해 주던 삼촌이 이렇게 행동하자 믿기지 않아 두 눈을 부릅뜨고 유강후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방을 쳐다봤다.“전에는 이러지 않았어요. 이게 다 저 여자 때문이죠? 누군데요? 혹시 저 여자가 제 험담을 했어요? 그래서 저를 이렇게 대하는 거예요? 삼촌!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내연녀를...”“여봐라! 얘를 끌어내!”유강후는 유하령의 말을 자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사람을 불렀다.그러자 곧 경호원이 밖에서 뛰어 들어와 유하령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유강후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유하령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경호원의 손을 뿌리치고 책상 쪽으로 달려가 책상 위에 있던 모든 물건을 모두 바닥에 쓰러뜨렸다.그중에는 고양이가 자고 있는 바구니도 포함되었다.고양이는
유하령은 유강후를 잘 알고 있다. 유강후는 어려서부터 냉정하고 누구한테도 다정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았던 그가 여자를 달래다니. 유하령은 유강후가 그 여자한테 단단히 홀렸다고 생각했다.총애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유하령은 다시 문을 두드리려고 했지만 두 경호원은 그녀를 호텔에서 끌고 나왔다.온다연은 바닥에 있는 고양이를 주워 안았다. 새끼 고양이는 너무 어렸고 넘어져서 아픈지 계속 야옹거리며 울었다.온다연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고양이를 안고 묻은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후 다시 바구니에 넣었다. 하지만 놓자마자 고양이는 다시 넘어지면서 더 크게 울었댔다.온다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양이를 안고 다시 한번 검사했다. 그리고 오른쪽 뒷다리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리에는 힘이 전혀 없었고 온다연이 살짝 다치기만 해도 고양이는 처량하게 울었다.그녀는 이내 고양이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판단하였다. 너무 슬픈 나머지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온다연은 아무 말도 없이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긴 후 고양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온다연은 고양이를 자기 뒤로 숨기며 경계했다. 유강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사나워졌다.몹시 화가 난 것처럼 말이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싸늘하게 물었다.“혹시 나를 탓하는 거야?”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강후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평소 나긋나긋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말수가 적은 편이라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자 분위기는 너무 싸늘했다.특히 유강후의 눈빛은 어둡고 차가웠다. 턱선마저 팽팽해지면서 이를 가는 것 같았다. 이것은 그가 곧 화를 낼 거라는 징조이다.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장화연은 입을 열었다.“다연 씨, 고양이가 다쳤나 봐요. 이렇게 작은 고양이는 전문 의사에게 맡겨야 해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온다연은 주먹을 더 꽉 쥐었다. 그녀는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유하령이다. 유하령이 갑자기 뛰어 들어오면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고양이가 다치게 되었다. 유강후를 화나게 한 사람은 유하령이다.하지만 왜 온다연이 벌을 받아야 할까?유강후는 온다연이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지금 온다연이 원한는건 오직 그 고양이인데 유강후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고양이를 가져갈 뿐만 아니라 유하령의 잘못까지 그녀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이런 행동은 지극히 잔인하고 지독한 유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온다연을 애완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애완동물은 주인에게 상을 받으면 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온다연은 주먹을 꽉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고양이를 가져가면 안 돼요.”유강후는 온다연의 하얀 작은 발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시선을 점점 위로 옮겼다. 점점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처음부터 지금까지 잘못한 일이 적다고 생각해?”온다연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긴장한 나머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또 옛날 일을 꺼내는 거야? 그럼 왜 고양이를 그때 나에게 줬는데? 정이 생기니 또다시 가차 없이 빼앗아 가려는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일과 사람을 대하는 것도 이렇게 잔인하다고 생각했다.나은별과 결혼할 거면서 계속 자기를 괴롭히는 모습은 유하령과 유민준과 다를 바가 없었다.온다연은 갑자기 경원시에서 떠돌던 소문이 생각났다.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 유강후는 성격이 예민하고 도도해서 몇 년 동안 나은별 외에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여자가 없었다. 유강후와 스캔들이 났던 여자들은 모두 사라졌다.정말 사라졌을까? 아니면 죽었을까?어떤 결과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유강후는 생각에 잠긴 온다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면서 차갑게 말했다.“이리 와!”온다연은 뒷걸음치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무작정 화를 내는 유강후를 째려보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는 온다연을 놓아주고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의자 위에 앉혔다.그는 숨을 헐떡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를 화나게 하지 마. 너한테 좋을 게 없어.”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들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대답해!”그러자 온다연은 눈을 깜빡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 곁에 앉아 책상 위의 물티슈를 꺼내 흙이 묻지도 않은 그녀의 발을 닦았다.그리고 하얗고 보드라운 발에 두 가닥의 핏자국이 생긴 것을 보자 유강후는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앞으로 맨발로 정원에서 뛰어다니지 마.”이때 장화연은 잘 다린 한약을 들고나왔다. 검은 한약은 하얀 도자기 그릇에 담겨있었고 보기만 해도 엄청 쓸 것 같았다.“너무 뜨겁지 않습니다. 다연 씨 지금 먹어요.”온다연은 그 약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몸도 저절로 움츠러들었다.유강후는 사탕 한 알을 그녀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입에 넣고 있으면 안 쓸 거야.”온다연은 고분고분 그의 말을 듣고 사탕을 깨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약의 맛을 덮을 수 없었다. 게다가 왜 갑자기 한 그릇이 더 많아졌는지 모른다. 예전보다 더 쓰고 토하고 싶게 만드는 맛이었다.유강후 옆에 있는 매 순간순간 모두 고통스러웠다. 온다연이 약을 다 먹자 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를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그녀의 앙증맞은 발을 몇 번 주무르더니 장화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가져와.”그러자 장화연은 이내 방에서 예쁜 상자를 들고나왔다.심플한 검은색 디자인의 상자였지만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상자 위에는 블루 다이아몬드가 박혔고 가치가 상당했다.온다연은 상자를 받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는 필요 없어요.”그러자 장화연은 상자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다연
그러자 상자에 있던 화려한 액세서리들이 바닥에 쏟아졌다.석양이 비추자 더욱 눈 부신 빛을 발했다.유강후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온다연의 손을 강제로 잡고 억지로 그녀의 중지에 반지를 끼웠다.마침 사이즈가 딱 맞았다.장화연은 액세서리를 치우면서 말했다.“다연 씨, 이건 사모님의 혼수 액세서리에요. 지금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죠. 이 반지는 특별히 다연 씨 사이즈에 맞게 고친 건데 싫어하면 안 되죠.”온다연은 그 반지를 끼자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반지를 뺐다.유강후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다시 껴.”온다연은 반지가 아니라 마치 폭탄을 쥐고 있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녀는 유강후의 물건을 원하지 않는다.유강후가 고양이를 데려간 일 때문에 온다연은 이미 그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였다.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유강후에게 반지를 건넸다.“아저씨, 이런 물건은 은별 언니에게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유강후는 그 반지를 보면서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그리고 전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온다연, 한 번만 더 말할게. 다시 껴.”하지만 온다연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어. 나를 자극하지 마.”그러자 온다연은 나지막이 말했다.“저는 이걸 받기 싫어요.”이 반지는 나은별의 것이다. 만약 온다연이 이 반지를 끼면 그녀는 내연녀가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셈이다.온다연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바로 내연녀이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왜 그녀에게 이렇게 비싼 물건을 주는지 몰랐지만 그녀는 좋아하지도 않고 받기도 싫었다. 특히 반지 같은 물건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유강후는 진짜 그 의미를 모를까?유강후는 온다연이 움직이지 않자 다시 강제적으로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려고 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강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유강후는 이런 온다연을
온다연은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지?유강후는 갑자기 온다연의 턱을 치켜들며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쳐다보지 않고 오히려 눈을 감았다.“아저씨는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유일하게 갖고 싶었던 고양이마저 방금 빼앗겼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다연을 바라봤다. 곧 화를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이때 그는 갑자기 온다연을 놓아주더니 그녀를 한쪽으로 밀고 일어섰다.그리고 온다연을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유강후의 기에 눌려 온다연은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온다연, 정말 제멋대로네.”온다연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낮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게임이라고 생각해. 이제 시작이야. 게임 룰과 언제 끝나는지는 내가 결정할 거야.”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살살 어루만지며 말했다.“내 취향은 변한 적이 없어.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20년 동안 계속 그것만 먹을 수 있거든.”온다연은 순간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졌고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떠난 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저녁이 되자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공기 중에는 아직도 유강후의 몸에서 나는 옅은 우디향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향기였다.바람이 불자 온다연은 추워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았다.장화연은 담요를 가져와 그녀에게 걸치고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보석들은 사모님이 도련님에게 남겨준 물건들이라 도련님이 굉장히 아끼는 거예요.”온다연은 무뚝뚝하게 마당 밖으로 뻗어 자란 나뭇가지를 보며 말했다.“제 것이 아닌 걸 가지는 건 훔치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어차피 다시 돌려줘야 해요.”장화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끝내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연속 3일 동안 유강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장
온다연은 여기에서 유민준을 만날 줄 몰랐다. 그녀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빠, 왜 여기에 있어요?”유민준은 잘생긴 데다 멋진 수트까지 입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분명 그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때 온다연은 유민준의 손을 뿌리쳤다.유민준은 들뜬 마음에 온다연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계속 찾았어. 아무 일도 없는 건 알겠지만 왜 전화하지 않았어?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잖아...”유민준이 너무 힘을 주며 온다연의 손을 쥐자 온다연은 너무 아팠다. 그녀는 손을 빼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오빠, 다들 쳐다봐요...”유민준은 온다연의 의사는 묻지 않고 그녀를 바로 옆 작은 정자로 끌고 갔다.그곳에 있는 대나무 장식이 마침 사람들의 시야를 가릴 수 있었다. 온다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유민준은 온다연을 안고 싶었지만 온다연은 피했다. 그는 온다연의 예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예전보다 더 예뻐졌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살이 너무 빠져서 옷이 커 보였다.유민준은 안쓰러운 듯 온다연을 쳐다보면서 다급하게 물었다.“혹시 여기서 알바해? 집에도 안 가고 학교에서도 연락 안 된다고 하고 다들 너를 찾아다니는 거 몰라?”온다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유민준은 감격에 겨워 그녀를 껴안았다.“다연아, 혹시 일부러 나를 피해 다니는 거야? 내가 약혼한다는 사실을 듣고 일부러 숨어 다니는 거냐고? 화 풀어. 내가 약혼했다고 해도 널 버리지 않을거야...”유강후의 힘이 너무 세서 온다연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온다연은 유민준이 너무 이상해 보였다.‘약혼하든 안 하든 나랑 무슨 상관이지?’온다연이 숨어다니는 이유는 유민준 때문이 아닌데 말이다. 그녀는 힘차게 유강후를 밀쳐내고 심하게 기침했다.유민준은 온다연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네가 사고를 쳤다는 건 알아. 무한테크 그룹의 딸 고유정을 때렸다며? 하지만 숨어다니지 말았어야 했어. 나를 찾아와야지. 내가 다
온다연은 유민준을 정말 싫어했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온다연은 집에 돌아가서 샤워를 열 번이라도 할 것이다. 온다연은 계속 피하면서 유민준을 뿌리치려고 했다.“둘이 뭐해?”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민준은 재빨리 온다연을 놓아줬다.“삼촌, 왔어요?”유민준은 옷을 정리하고 애써 침착한 척하며 온다연을 자기 뒤로 숨겼다. 온다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3일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유강후를 보게 되었다.그는 검은색 수트를 차려입고 차분하고 도도한 분위기를 뽐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너무 살벌해서 온다연은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솔직히 유민준도 충분히 잘생겼지만 유강후와 비하면 살짝 아쉬웠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유강후는 훨씬 더 고급스러웠다.유강후는 서 있기만 해도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그의 우월한 비주얼은 물론 막강한 카리스마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게 된다.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톱스타 임정아는 예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오늘 입은 머메이드 치마는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더 부각해 줬다. 임정아는 목과 손목에 연한 파란색 다이아몬드 액세서리를 하고 있었고 무심코 손을 들 때마다 커다란 파란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드러냈다.그날 유강후가 선물해 준 것과 똑같은 반지였다.유강후와 임정아는 천생연분처럼 너무 잘 어울려 보였다.어쩐지 요즘 연예 뉴스에 두 사람의 스캔들이 계속 있더라니. 알고 보니 소문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온다연은 고개를 푹 떨구고 옷을 꽉 움켜쥔 채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이렇게 빨리 새 여자가 생겼다고?’유강후는 몇 초 동안 온다연을 바라보다가 다시 유민준을 쳐다봤다.“곧 파티가 시작될 건데 여기서 뭐 해?”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마치 온다연을 모르는 것처럼 그녀와 얽힌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유민준과 온다연이 함께 있는 것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표정이
그 말에 염지훈은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네. 좋아! 네 말대로 해보자.” 그는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렸다.“준철아, 놈들을 다른 길로 유인해. 최대한 멀리 끌고 가.”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준철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좋습니다! 운전은 제 전문이니까요!” 잠시 후, 흰색 차량은 천천히 출발했다.온다연의 예상대로 검문은 철수되어 있었고 두 사람이 탄 차는 순조롭게 경원시를 빠져나왔다.그렇게 깊은 밤이 지나고 차는 한 저택 앞에 멈췄는데 문 앞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이 내리자 한 사람이 급히 나와 인사했다. “도련님, 도착하셨군요!” 이 저택은 전통적인 중식 건축 양식을 띠고 있었으며 유강후의 전통 한옥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마당에는 커다란 파초 나무와 연못이 조화를 이루며 운치 있는 풍경을 자랑했다. 그러나 온다연은 이 모든 것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고 방 한쪽에 기대어 휴대폰 화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화면에는 임정아와 관련된 더 많은 부정적인 소식이 떠오르고 있었다.‘아저씨는 내 주변 사람들까지 가만두지 않는데 내가 그 사람한테 잡히면 정말 감옥처럼 갇혀 살다 쓸쓸히 죽게 되는 걸까?’ ‘내 아들은 지금 그 여자 품에서 편히 잠들어 있을까? 그녀는 아이를 잘 보살피고 있는 걸까?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걸까?’ 온다연은 순간적으로 우림도 떠올랐다. 비록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 아이에게서 많은 정을 느꼈었다.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온다연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눈물은 밤이 깊어질수록 멈출 줄 몰랐다. 동이 틀 무렵, 온다연은 탁자에 엎드린 채 잠들었다.염지훈이 방에 들어섰을 때 이미 온다연은 창가의 탁자에 엎드린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가가 그녀를 침대로 옮기려 했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온도가 이상하리만치 뜨거웠다. 이상한 느낌에 염지훈은 온다연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고
염지훈은 뒤돌아 온다연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여자 너랑 정말 많이 닮았어. 놀랄 만큼.” 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온다연의 가슴을 깊숙이 찌르는 것 같았다.이미 무뎌져 버렸다고 생각한 마음이 다시금 은은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 여자를 그렇게까지 아끼면서 왜 자신에게 이토록 집착하는지 말이다. 그냥 놔주는 게 낫지 않은가? 왜 굳이 자신이어야 하는가? 그가 그런 얼굴을 가진 여자를 그렇게 좋아한다면 또 다른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될 텐데 왜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걸까?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해 사람을 찾는 꼴이 우스웠다. 마치 깊은 애정을 가장이라도 하는 듯 보였으니.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고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가고 있었지만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다.빛은 아주 어두웠지만 염지훈은 온다연의 눈에 서린 깊은 슬픔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한참을 어두워진 안색을 한 채 서 있던 염지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마음 아파할 가치 없어. 정말로.” 온다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더 빨리 옮겼다. 그 후로 두 사람은 각자 마음속에 무거운 생각을 안고 있었는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길을 걸었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작은 길의 끝에 다다랐고 그곳에는 검은색 지프 랭글러가 이미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올라탄 후에도 두 사람은 말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도로의 불빛이 점점 많아지고 이내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운전 기사가 입을 열었다. “이 구역의 검문은 철수했지만 대신 호텔과 여관을 다시 검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호텔 근처에 이르렀다. 호텔을 지나칠 때, 익숙한 붉은 깃발이 걸린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차문이 열리
염지훈은 그 말에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낮은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누군가 우리가 있는 곳을 누설했을 거야. 아니면 이렇게 빨리 찾을 수 없었을 거야.” 염지훈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유강후가 이곳을 정확히 찾아낸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잠든 온다연을 한 번 쓱 쳐다봤다. “유강후는 온다연 씨를 유독 주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온다연 씨 몸에 위치 추적 장치가 붙어 있는 건 아닐까요?” 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그는 잔뜩 어두워진 안색을 하고는 밑으로 내려왔다. 그는 온다연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그 위에는 터키석으로 만든 단추가 하나 있었는데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걸 본 온다연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이게... 위치 추적 장치인가요?” 염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군사용 최신 장치야. 다른 단추들은 진짜 터키석인데 이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어.” 그는 손에 힘을 주어 단추를 두 동강 냈고 그제야 안쪽에 숨어있던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정밀하게 제작된 위치 추적 장치에는 작고 복잡한 부품들이 들어 있었는데 은밀하면서도 강력해 보였다. 염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나 말했다.“유강후가 정말 돈을 아끼지 않는군. 이렇게 작은 장치 하나가 수백만 달러짜리야. 막 개발된 신형 기술인데 군에도 몇 개 없대, 그걸 네 몸에 달아놨다니.” 온다연은 고개를 뚝 떨군 채 낮게 말했다. “저희 여기서 나가요.” 염지훈은 장치를 다시 맞춰 덮고는 옆 사람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멀리 던져버려. 사람 많은 곳이면 더 좋겠어. 유강후가 애타게 찾게.”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사람은 재빨리 장치를 들고 나갔고 염지훈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온다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가자. 유강후가 곧 도착할 거야. 여기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온다연이 말했다. “좋아요.” 아래 작은 정원에는 이미 두 개의 바비큐 그릴이 놓여 있었고 몇 개의 편안한 의자가 잔디 위에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기 중에는 바비큐 특유의 고소한 향이 가득했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염지훈과 온다연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고 그중 한 명이 장난스럽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형수님, 안녕하세요.” 염지훈은 그를 째려보며 대답했다. “헛소리하지 마. 아직 그럴 때 아니야.” 그 사람은 싱글벙글 웃으며 염지훈의 말에 대꾸했다. “그럴 날이 금방 올 것 같은데요?” 염지훈은 더 이상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온다연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저 사람들 원래 말 저렇게 해. 제멋대로라서.” 온다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물었다. “괜찮으세요?” 그 사람은 다리에 감긴 붕대를 손으로 가볍게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별거 아니에요. 며칠 쉬면 나을 겁니다.” 온다연이 먼저 다가와 괜찮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당황하며 귀끝까지 빨개졌다. 잠시 후, 몇 술이 몇 상자나 도착하며 분위기가 한층 더 활기를 띠었다. 염지훈은 생굴 한 상자를 가져오더니 직접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고기를 손수 뜯어 작게 자르더니 그녀에게 건넸다. 온다연은 염지훈이 건넨 고기를 받지 않고 스스로 닭 다리 한 조각을 뜯어 손에 들고는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먹은 온다연의 입가에는 기름이 번들거렸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기도 하고 지금 기분이 조금 나아진 터라 허겁지겁 먹게 된 것이다. 염지훈은 너무도 잘 먹는 그녀가 의외라는 듯 바라보다가 매운맛에 빨개진 온다연의 입술을 보고는 안색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이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먹어. 그리고 체하지 않게 조심하고...” 염지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사람들의 아주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형님이 직접 나서셨
염지훈이 수도관을 고치고 욕실에서 나올 때쯤 바이크 슈트를 입은 사람 몇 명이 들어왔다.“유강후 그 사람 정말 미쳤습니다. 경원의 중요한 교차로마다 검사대를 설치했다니까요? 바이크를 탄 사람은 전부 다 면허증을 제공해야 된대요. 우리를 잡으려고 눈이 완전히 뒤집힌 모양이에요.”염지훈은 젖은 옷을 벗어 소파에 내팽개치더니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었다.“찾으라고 해. 어차피 타 지역 번호판이랑 면허증이라서 못 찾을 거야.”곧이어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하지만 정체가 이미 탄로된 것 같습니다. 유강후가 알아챈 게 틀림없어요. 지호 형님이 저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염지훈은 대수롭지 않은 듯 콧방귀를 뀌었다.“여신 그룹 지분은 이미 진작에 포기했어. 이제 염씨 가문이랑 엮인 게 없으니까 어차피 형이 날 찾아도 달라질 건 없어.”“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유강후는 워낙 경원에서 세력이 큰 사람이잖아요. 저희가 아직 맞서 싸울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경원에서 그나마 이름을 알린 가문이라면 다 유강후의 투자를 받으려고 목을 매지 않습니까. 돈과 권력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유강후한테 굽신거리니 참...”“심지어 잘나가는 기업에는 무조건 유강후의 지분이 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유강후를 따라서 투자한다잖아요. 참 빈틈이 없네요.”염지훈은 여전히 신경 쓰지 않았다.“금융 천재? 능력이 좋으면 뭐 해. 온다연은 아직도 벗어나려고 도망치고 있잖아. 유강후는 온다연을 소중히 여길 줄 몰라. 그러니까 애초에 가질 자격이 없는 인간이야.”남자는 온다연이 있는 방을 힐끔 쳐다봤다.“아직 식사 안 하셨죠? 저희도 배고파서 밖에 바비큐 그릴을 설치하는 중인데, 나중에 내려와서 좀 드세요.”그 말을 끝으로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염지훈은 소파에 잠시 앉아 있다가 여러 차례 통화를 마치고 온다연이
염지훈을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나중에 개발하려고 여기 동네를 내가 다 샀어. 지금은 내 구역이니까 당분간 안전해.”“그런데 나도 여기 온 지 꽤 되어서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어. 오늘 밤만 버티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자.”염지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얼른 가서 씻어. 온몸이 흙투성이네.”보아하니 이곳은 정말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고 욕실도 임시로 청소한 듯 남루하기 그지없었다.낡은 인테리어에 바디워시와 기타 생활용품도 급하게 구입한 듯 모두 익숙한 브랜드였다.친근한 느낌이 밀려온 온다연은 자취방에서 살았던 날들이 떠올랐다.비록 그 시절에는 돈이 없었지만 오히려 지금보다는 마음이 편했다.온다연은 추억 여행을 마치고 온수기를 켰다.어찌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온수기의 수도관이 터져 온몸에 뜨거운 물이 튀었다.그 소리를 들은 염지훈은 부랴부랴 달려와 문을 두드렸다.“왜 그래?”삐걱거리던 낡은 문은 염지훈의 힘센 주먹질에 저절로 열렸다.문이 열리자 홀딱 젖은 채로 욕실에 서 있는 온다연이 보였는데 얇은 옷이 물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날렵한 각선미, 잘록한 허리, 늘씬한 다리가 더해진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워낙 얇고 부드러운 소재의 옷이라 젖으면서 반투명해졌고 보일듯말듯한 하얀 피부는 매혹적이었다.어안이 벙벙해진 염지훈은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온다연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기에 재빨리 타올로 몸을 감쌌다.온수기가 터질 줄도 몰랐지만 문이 이렇게 쉽게 열릴 줄은 더더욱 몰랐다.“미안해요. 저도 갑자기 터질 줄은 몰랐어요.”염지훈은 태연하게 답했다.“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봐. 밖에 나가 있어. 내가 할게.”온다연은 민망함을 무릅쓰고 타올을 몸에 걸린 채 재빠르게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염지훈도 온몸이 홀딱 젖은 채로 욕실에서 나왔다.그는 방에서 공구함을 챙겨 안으로 들어가더니 수도관을 고치기 시작했다.온다연은 명문가 도련님이 이런 일을 하
빛의 속도로 할리데이비슨 바이크가 질주해 왔다.바닥에 있던 낙엽과 먼지는 사방으로 흩날렸고 그들은 조금도 물러설 의사가 없는 듯 유강후와 경호원을 향해 돌진했다.특히 선두에 선 사람은 검은색의 바이크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강풍에 부풀어 올라 왠지 모를 공포감을 조성했다.경호원들은 유강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섰다.정말 순식간에 바이크가 다가왔고 온다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이크를 향해 돌진했다.유강후도 표정이 돌변했다.“빨리 잡아.”하지만 이미 늦었다. 선두에 선 남자는 재빨리 달려와 한 손으로 온다연을 붙잡고 끌어당기며 바이크에 앉혔다.곧이어 바이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급커브를 돌며 방향을 틀었다.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경호원이 돌진했을 땐 이미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유강후는 주저 없이 차에 올라탔다.유턴하고 액셀을 밟은 차는 쏜살같이 치고 나갔다.염지훈은 돌진해 오는 제네시스를 돌아보고선 동료가 던진 헬멧을 잡아 온다연에게 넘겼다.“이거 쓰고 날 꽉 잡아.”바이크가 처음이었던 온다연은 모든 게 낯설고 경험이 없었기에 염지훈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고삐 풀린 야생마가 질주하듯 바이크는 멈출 줄 몰랐고 순식간에 제네시스를 한참이나 따돌렸다.유강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경호원이 건네준 총을 잡고 총구를 바이크에 겨눴다.두 차례의 굉음과 함께 바이크 한 대가 펑크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90도 급선회한 뒤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뒤를 돌아온 온다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어떡해요. 타이어를 맞았나 봐요.”염지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신경 쓰지 마. 알아서 잘할 거야. 속도 올릴거니까 꽉 잡아.”거센 바람 소리를 더불어 바이크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이내 제네시스는 시야에서 사라졌다.아무도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바이크는 오래된 단지로 들어갔다.염지훈은 바이크에서 내리며 여유롭게 온다연을 바라봤다.“놀라서 운 건 아니지?”온다연은 헬멧을
헤드라이트다.익숙한 차의 헤드라이트!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를 보니 유강후의 제네시스가 틀림없다.소스라치게 놀란 온다연은 재빨리 등을 돌려 옆 광고판에 몸을 찰싹 붙였다.때마침 제네시스 한 대가 그녀의 뒤쪽에 있는 도로를 쏜살같이 지나갔다.온다연은 행여나 유강후에게 들킬까 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래서 차가 멀리 가기도 전에 발을 빼며 도망쳤다.그런데 이때 차에 있던 이권이 길가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차 속도가 워낙 빨라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낯익은 듯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스쳐지났다.“밤길에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인데 웬 여자가 돌아다니고 있네요.”이권의 백미러에는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비쳤고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저 사람... 다연 씨 아니에요?”유강후의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차 돌려. 얼른 따라가.”그 시각 활짝 열린 별장에서 경호원 7,8 명이 달려왔다.유강후의 차를 본 그들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한눈판 틈을 타 사모님이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습니다.”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쓸모없는 것들. 이런 일도 제대로 못 해? 얼른 쫓아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경호원 몇 명이 서둘러 쫓아갔다.그 시각 온다연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분 만에 차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강에 가까워지자 온다연은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러자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경호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의 뒤에 있는 건 유강후의 제네시스였다.다리를 지나 강 건너편으로 넘어가 차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10분은 걸린다.그러나 유강후는 불과 2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다.절망이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질식감이 온몸을 뒤덮였다.도망칠 당시 슬리퍼 한 켤레만 신고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벗겨져 맨발인 상태였다.하얗고 부드러운 한 쌍의 발은 어느새 잔뜩 닳아 핏자
전부 임정아에 관한 기사였다.온다연은 재빨리 연예계 카테고리를 눌렀고 순식간에 임정아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나왔다.[대세 여배우 임정아, 영화 오디션 탈락이라니?][임정아, 앰버서더에서 물러나다? L사와 B사에서 돌연 계약 해지한 이유는?][드라마 대박 난 임정아, 정말 촬영장에서 텃세 부리며 조연을 괴롭혔나? 여주인공 전격 교체?][유명 여배우 임정아가 열애설에 휩싸인 내연녀라는 목격자의 증언이 잇달아...][사실 임씨 가문의 딸이 아니다? 임정아의 신분은...][임정아, 그동안 숨겨왔던 추악한 면모가 드러나자 팬들도 등을 돌려...]...기사를 본 온다연은 손발이 차가워졌다.임정아는 집안 배경이 탄탄하고 스스로 프로듀서와 감독할 만큼 능력이 뛰어났기에 아무리 구설수에 휩싸인다 한들 이렇게 한순간에 나락가지는 않을 것이다.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진 이유는 단 하나,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온다연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유강후뿐이었다.유선전화기로 걸어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왜 그랬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수화기를 들자마자 다시 내려놓았다. 왜냐하면 유강후와의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까.한참을 생각한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그곳에는 저녁 식사 재료를 준비하는 도우미 여러 명이 있었다.온다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모두들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멀지 않은 테이블 위에 핸드폰 여러 대가 놓여있는 걸 발견한 온다연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메뉴가 뭔지 궁금해서 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하세요.”잠시 후, 부엌에서 나온 온다연의 손에는 핸드폰 하나가 들려있었다.다행히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온다연은 재빨리 방으로 돌아가 임정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온다연의 전화를 받은 임정아는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가득 담겨있었다.그녀의 말투에서는 유강후에 대한 원망이 느껴졌다.온다연은 이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직접 끝내고 싶었다.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