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작은 골목에서 임슬기가 반지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보호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배정우는 임슬기를 품에 안고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임슬기,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병원에 도착하자 그는 임슬기를 신속히 응급실로 옮겼고 응급실의 불이 꺼질 때까지 계속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그 아이가 그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만약 그 아이가 정말로 사라진다면 아쉬운 마음이 들 것 같았다.“의사 선생님, 어떠세요?”“부인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계속 약을
“연다인, 너.”“네 동생은 지금 내 말을 따르고 있어. 내가 너의 동생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게 하거나 찍지 말아야 할 사진을 찍게 할까? 아니면 동생의 손가락 하나와 귀 하나를 없애는 게 더 나을까? 선택은 네게 맡길게.”연다인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슬기는 두려움에 떨며 입술을 꼭 깨물고 말했다.“내 동생에게 손대지 마.”“그럼 네가 내 말을 잘 들어야 해.”그때 김현정이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연다인이 임슬기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서 그녀를 때리려 했지만 연다인은 민첩하게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나한테만 의지하면 안 돼요. 내가 죽고 나면 현정 씨는 어떻게 할 건데요?”김현정은 컵을 탁자에 세게 내려놓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슬기 언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퉤퉤퉤! 언니는 절대 죽지 않아요.”임슬기는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 미소를 지었다.“사람은 결국 모두 죽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폐암 말기라는 사실 현정 씨도 알고 있잖아요.”“진 변호사님의 약이 분명 언니를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현정 씨, 인생에는 기적이 없어요. 특히 내게는 더욱 없을
임슬기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송재현과 거리를 두었다.“뭐 먹고 싶어?”“아무거나.”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배정우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나타나 자신을 하찮은 여자라고 욕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그녀는 두 손을 꽉 쥐고 창밖을 바라보며 긴장된 표정으로 대충 대답했다. 송재현은 그런 임슬기를 흘깃 쳐다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슬기, 나랑 있을 때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지난번엔 내 잘못이었어. 그래도 우리는 함께 자란 사이인데 내가 널 외면할 수 있겠어
임슬기는 배정우를 밀면서 말했다.“정우, 그만 좀 해. 나 너랑 같이 갈게.”배정우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닥쳐. 집에 돌아가서 다시 보자.”“정우...”송재현이 다가와 손을 뻗어 임슬기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배정우 씨, 슬기는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 하지 않아요. 슬기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돼요.”배정우는 송재현을 밀어내며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당신이 뭐길래 내가 내 아내와 어떻게 지내는지에 간섭하는 거죠?”“배정우 씨, 슬기를 아내로 여기신 적 있나요? 이런 행동은
가는 내내 배정우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았고 주위엔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감돌았다. 그 기세에 눌린 임슬기는 조수석에 웅크린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한참을 달리던 차 안, 침묵을 깨고 배정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설명 안 할 거야?”임슬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속눈썹 끝에는 눈물이 아슬하게 맺혀 있었다.“내가 해명하면... 들어줄 거야?”“말해 봐.”화가 난 배정우는 짧게 한 마디 내뱉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마치 그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듯한 목소리였다.“나랑 송
“뭐? 안 지울 거야! 이거 놔!”임슬기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배정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자 그대로 그의 손목을 꽉 깨물었다.배정우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결국 그녀의 손을 놓쳤고 그 기회에 임슬기는 곧장 밖으로 뛰어갔다.‘아이를 지켜야 해!’임슬기가 배 속의 아이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함께 버텨왔는데 살아 있는 한 절대 스스로 이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다.하지만 배정우는 순식간에 그녀를 따라잡아 단숨에 품 안에 가뒀다.“어디로 도망치려고?”임슬기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살려
“임슬기...”배정우는 갑자기 손을 뻗어 연다인의 손을 움켜쥐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러나 배정우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자 연다인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우야, 깼어?”눈을 뜬 배정우는 연다인의 얼굴을 확인하곤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그녀의 손을 놓았다.“네가 왜 여기 있어?”“너 다섯 시간이나 기절해 있었어. 나 정말 너무 놀랐어. 어때, 좀 괜찮아?”하지만 배정우는 그녀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권
임슬기가 말을 하기도 전에 김현정이 화가 난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슬기 언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임종현 그 녀석이 또 문제를 일으켰어요? 아니면 정우 그 개자식인가요?”“그들과는 상관없어.”“그럼 누군데요? 말해봐요. 내가 가서 혼내줄게요.”김현정이 소매를 걷어붙이는 모습을 보며 임슬기는 살짝 웃었다.“현정아, 그런 성격으로 언제 결혼하겠니?”“난 결혼 안 할 거예요! 평생 언니 곁에 있을 거라고요!”말을 마치자 김현정은 다시 화를 내며 물었다.“얼렁뚱땅 넘기지 말고 대체 누군데요?”“다인이네 가족이지?”
“슬기야, 다인이도 잘못했지만 그래도 네 친구잖아. 너희는 한때 자매처럼 지냈는데 이제 와서 그 아이를 죽이려고까지 해야 해?”“슬기야, 이렇게 잔인하게 굴지 마!”“다인이는 지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10kg 넘게 빠졌어. 네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해.”“그 아이가 자살 못하도록 나와 다인이 아빠가 24시간 지켜보고 있어. 슬기야...”이 울음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며 임슬기를 둘러쌌다.“다인이 어머니, 일어나 주세요! 다인이가 내 부모님을 죽이고 내 남편을 빼앗고 내 아이까지 해쳤을 때 그와 나는
육문주는 임슬기의 상처에 약을 바르며 말했다.“슬기 씨, 성격이 너무 착한 것 같아요.”“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예의 따질 필요 없어요.”약을 다 바르고 나서 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만약 임씨 가문이 힘이 없다고 생각되면 내 이름을 걸어봐요. 누가 감히 무시하겠어요?”임슬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문주 씨, 고마워요.”그녀는 거울 앞으로 가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상처를 가렸다.“나는 우현식이 정말 다쳤는지 알고 싶어요. 만약 실제로 다쳤다면 종현이도 잘못이 있는 거지만...”“만약 다친 게 거짓이라면
병원.임슬기는 우현식이 있는 병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안녕, 현식아.”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우현식은 그녀를 보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왜 왔어요?”“네 부상 상태를 보러 왔어.”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과일 바구니를 옆에 놓고 그의 다리 쪽으로 다가가 석고를 살짝 찔러보았다.“아파?”우현식의 어머니는 없었고 우현식은 임슬기가 무서운 듯 다리를 움직이며 대답했다.“아파요.”“종현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야?”우현식은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임슬기는 임종현이 우현식을 다치게 할 정도의 힘이 있
아침 식사 시간, 임슬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정우를 몇 번 흘깃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못 들은 건가?’임슬기는 배정우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식사 후, 배정우는 그녀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새 옷이야. 갈아입어.”임슬기는 거절하려 했지만, 임종현을 학교에 데려다주려면 옷을 바꿔입어야겠다는 생각에 받아들였다.“고마워요.”방으로 들어가 봉투를 열어보자, 검은색 롱드레스와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이해할 수 없는 배정우의 행동에 임슬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정우야,
임슬기는 눈물을 닦고 침대 옆으로 다가가 이불을 바꾸려던 찰나, 깨끗한 이불이 깔린 걸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곳이 먼지 하나 없이 청소되어 있었다.‘누가 청소한 거지? 지난번에 왔을 때는 먼지가 가득했는데?’책장 옆으로 가던 중 그녀는 갑자기 일기장이 사라진 걸 알아챘다.배정우가 가져간 것 같아 속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가 봤다 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일기장에 있던 사진은 이미 임슬기가 가져갔으니, 배정우는 그녀가 쓴 일기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챌 리도 없었다. 설령 알아챈다 해도, 모두 오래
남자의 몸에서는 희미한 술 냄새와 담배 향이 났다. 또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임슬기는 숨이 막혀 몸을 비틀며 저항했다.“놔요.”하지만 배정우는 놓아주기는커녕 더욱 단단히 끌어안더니, 차가운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가져다 대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싫어.”“배정우 씨,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슬기야,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임슬기는 숨이 턱 막혀왔다.한참 후, 배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진짜로 날 잊었으면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응?”임슬기는 이를 악물고 냉정하게 말했다
“안 그럴 거야. 이제 종현이 곁을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야.”임슬기는 코를 훌쩍였다.“누나는 종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 졸업하고, 대학 가고, 결혼해서 아이 낳는 모습까지 다 보고 싶어. 누나가 곁에 있을게. 앞으로 계속...”임슬기는 만약 죽지 않는다면, 정말로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다.임종현은 주먹을 꽉 잡으며 말했다.“하지만 난 아직 용서는 못 하겠어요.”“종현아, 누나한테 시간을 줘. 나중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될 거야. 알겠지?”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껴안고 있었다.임종현은 임슬기의 손을 떼어내고 돌아서서
임종현이 물을 사 오는 동안, 임슬기는 이미 약을 먹고 벤치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여기 물. 약 먹어요.”임슬기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고마워.”“대체 무슨 병인 거예요?”임종현은 한 발짝 떨어져 서서 눈살을 찌푸렸다.“대충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요.”임종현의 관심에 임슬기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폐암에 대한 건 여전히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임슬기는 임종현도 배정우처럼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폐렴이야.”“그냥 폐렴이요?”임종현은 자신의 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