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미친 거지. 날 납치한 건 연다인이야. 넌 명인시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잖아. 그런데 겨우 여자 하나 제대로 해결 못 해? 연다인을 그렇게 믿는 거야? 연다인의 처음 경험을 누구에게 줬는지나 알고 있어?"“임슬기, 네가 정말 미쳤구나. 또 연다인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거야? 네가 납치당했을 때 연다인은 병원에 있었어.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을 꾸몄겠어?”배정우는 임슬기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고 흔들며 다그쳤다.“연다인은 너무 착해서 매일 네가 위험에 처할까 걱정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런 연다인을 의심하다니? 임슬기
배정우가 문 앞에 서 있을 때 임슬기는 바닥에 앉아 침대 옆 서랍을 뒤적이고 있었다.그녀는 물건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잠시 멈칫하며 아쉬움과 미련이 남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다 손끝이 붉은 비단 상자에 닿자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자 그 안에 반짝이는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이 반지는 3년 전 배정우가 세계적인 장인에게 맞춤 제작을 의뢰해 프러포즈하려 했던 다이아몬드 반지였고 그녀는 그동안 이 반지를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며 혹여나 흠이라도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권민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배정우였다.권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사모님, 걱정 마세요. 우선 전화부터 받겠습니다.”“네. 볼일 보세요. 조심하세요.”임슬기는 김현정을 방으로 데려갔고 권민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배정우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재로 와.”서재에 들어선 권민은 배정우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내가 없던 사이에 또 사모님과 대표님이 다투셨던 건가?’“임슬기가 나를 만나기 전에 어떤 남자들을 만났는지 전부 조사
“아가씨?”임슬기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주섬주섬 꺼냈던 주얼리를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팔지 않겠습니다.”전당포 주인은 그녀가 가격이 너무 낮다고 생각해 팔지 않으려는 줄 알고 당황하며 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아가씨, 가격이 너무 낮다고 생각하시면 다시 협상할 수 있습니다. 60억까지 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이 정도면 충분히 높은 가격이었기에 전당포 주인은 자신 있게 임슬기의 반응을 기다렸다.그러나 임슬기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은 채 주얼리 상자를 단단히 끌어안았다.“얼마를 준다 해도 팔 수 없어
“안 돼요. 그 반지 내놔요.”“그럼 두 번째 선택을 하겠다는 거군요.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면 반지를 돌려줄 수도 있어요”임슬기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두 손을 가슴께로 모아 움켜쥐며 그들을 노려보았다.“다가오지 마요.”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들은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아가씨, 아무리 소리쳐도 여기선 아무도 널 도와줄 사람 없어요.”“반지 내놔요.”“그럼 반지를 선택한 거예요.”첫 번째 남자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순식간에 임슬기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녀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찢으려 했다.“움직이지 마
임슬기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이었다.김현정은 죽을 준비를 하며 방에 들어가자 임슬기가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공포에 질린 얼굴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돌려줘요.”김현정은 죽을 옆에 놓고 말했다.“슬기 언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제 계속 돌려달라고 반복해서 말했어요."임슬기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피하면서 말했다.“내가 또 뭘 말했어요?”“그냥 반지를 계속 돌려달라고 반복했어요. 그 외엔 아무 말도 안 했고 내가 물어봤을 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냥 계속 울어서 나 진짜로 놀랐어요.”“미안해
몇몇 꽃들이 이미 시들어가는 기미를 보였고 그것은 그녀의 마음을 조금 슬프게 했다.‘한때는 얼마나 화려했던 정원이었는데 이제는...’“미안해. 너희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그 말이 끝나자 현관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고, 임슬기는 김현정이 돌아온 줄 알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지금 돌아온 거예요?”“임슬기, 너 정말 여기 있었구나.”임슬기는 손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불청객이 온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여기는 내 집이야. 내가 여기 없으면 어디 있어야 할까?”연다인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
“정우, 나 정말로 슬기를 밀지 않았어. 나를 믿어줘...”연다인은 배정우의 팔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그가 임슬기를 보러 가는 길을 막았다.“다인아, 일어나.”“아니. 정우가 날 믿지 않으면 나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억울한 기분은 정말 견디기 힘들어. 지금 슬기가 바닥에서 고통받고 있다는데 내가 정말 그런 짓을 했다고...”연다인은 점점 더 억울하게 말하며 마치 자신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정우, 내가 돌아왔을 때 슬기가 나를 고용해 사람을 납치했다고 했어. 난 너무 놀랐어. 내가 그런 일을
병원 복도.김현정은 허둥지둥 달려와 병실 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 있는 임슬기를 보더니 진승윤을 향해 물었다.“진 변호사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김현정이 나갔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또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진승윤은 간단히 상황을 설명한 뒤 물었다.“김서우와 슬기 사이에 또 다른 문제라도 있었나요?”진승윤은 자신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 같았다.김현정은 휴대전화에 저장했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이거, 실검에 오른 내용이에요.”진승윤은
진승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꽃뱀이라니? 다 너 같은 줄 알아?”“임슬기가 몇 번이나 다친 건 다 김씨 가문과 관련이 있는데, 그게 너랑 상관없다고?”배정우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진승윤은 김서우가 떠오르자, 눈빛이 싸늘하게 변해갔다.이 일이 진승윤과 관계가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미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서우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결국 말로는 안 통하는군.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네.’얼마 후, 육문주가 응급실 문을 열고 나오더니 두 사람을 훑어보며 물었다.“슬기 씨 혹시 머리를 부딪혔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배정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재빨리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그는 거칠게 임슬기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진승윤은 놓아주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배정우, 적당히 해.”지금 임슬기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진승윤은 배정우와 싸우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 배정우는 임슬기의 손을 꽉 잡은 채 그녀를 응시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임슬기, 이리 와.”이미 얼굴이 백지장만큼 창백해진 임슬기는 목에서 올라오는 피 비린 맛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김서우의 말 한마디에 임슬기는 즉시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김서우는 먼저 온라인에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그걸 구실 삼아 따지러 온 것이었다.임슬기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김서우를 째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김서우, 진실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김서우의 눈빛에는 잠시 당황함이 스쳤지만 이내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무슨 헛소리야? 네가 우리 엄마에게 약을 타서 우리 집 재산을 가지려 했던 거잖아!”“김씨 가문 재산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상관없다고?”김서우는 콧방귀를 끼고는 말
임슬기는 강재호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동생 잘 돌보고,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요.”“고마워요, 임슬기 씨.”강재호는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원래 육문주가 두 사람을 배웅하려 했지만, 진승윤이 먼저 임슬기의 짐을 차에 실었다.“육문주, 너는 해야 할 일이나 잘해. 이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육문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승윤 형, 내가 무슨 원수예요?”“배정우의 간첩이잖아.”“진짜 아니라고요.”육문주는 진승윤의 귀에 속삭였다.“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형
“네.”대답하고 나서야 육문주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바로 말을 바꿨다.“아니에요. 안 좋았어요.”배정우는 한참을 침묵하다 욕을 퍼부었다.“쓸모없는 새끼.”육문주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내가 왜 쓸모없어요?”“육문주, 내 기억 상실 어떻게 치료해야 해?”“최면이요.”육문주는 배정우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설명하려 했지만,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한참 뒤 배정우가 물었던‘기분 좋았어?’의 상대가 자신이 아닌 임슬기였음을 알아차린 육문주는 배정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해 질 녘, 김현정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육문주가 도시락을 가만히 들고 들어왔다.“슬기 씨, 여기 저녁이요.”도시락을 내려놓은 육문주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덧붙였다.“난 정말 정우 형 편이 아니에요. 그냥 의사로서 환자를 돌봐줄 뿐이라고요.”“환자? 이미 퇴원한 거 아니었어요?”육문주는 복잡한 표정으로 임슬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슬기 씨, 사실 전에 여러 번 말하려다 계속 말 못했던 게 있어요. 정우 형이 2년 전 교통사고로 뇌진탕을 입었었는데, 그때는 한 달 정도 요양하고 다 나았지만, 최근 다시 두통이
그날 밤, 임슬기는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꿈속에 배정우가 나타났고 두 사람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갑자기 배정우가 임종현의 목을 움켜쥐며 그녀를 위협했다. 숨 막히는 공포가 엄습하자,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그때, 갑자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아기? 내 아기인가?’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임슬기는 그제야 모두 꿈이었음을 알아차렸다. 아이의 울음소리도 마침 복도를 지나가는 누군가의 아이일 뿐이었다.“슬기 언니, 아침 먹어요.”임슬기는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오는 김현정을 보며 물었다.“방금 나가서 사 온 거야
육문주는 배정우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정확히 그날, 임슬기가 추락한 자리로 끌고 가 말했다.“정신이 좀 들어요?”배정우는 어두운 눈빛으로 불쾌한 듯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육문주, 죽고 싶어?”“여길 봐요.”육문주는 자신의 발 아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정우 형, 여기가 슬기 씨가 떨어진 곳이에요. 형 손으로 직접 밀어낸 곳이라고.”“난 그런 적 없어.”“그건 형 생각이죠. 근데 슬기 씨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이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얼마나 절망스러웠을지?”육문주의 말에 흠칫하던 배정우는 옥상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