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이라는 두 글자에 배정우의 손에는 힘이 더 세게 들어갔고 임슬기의 목이 거의 으스러질 정도로 조르고 있었다.“애초에 시한부도 아니었어!”연다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며 깁스한 오른손을 들고는 걱정스럽게 말했다.“하지만 방금 간호사님이 분명 나한테...”“하, 전부 이 여자가 사람을 매수해서 거짓말을 한 거야. 동정심 유발이라도 하려고!”배정우는 임슬기의 얼굴로 가까이 다가간 뒤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임슬기. 네가 이러면 이럴수록 너를 향한 내 증오가 커진다는 거 몰라?!”연다인은 얼른 다가가 배정우를
임슬기는 화가 나 몸까지 부들부들 떨렸다. 연다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다.“연다인, 네가 직접 나한테 말했잖아. 교통사고도 거짓말이라는 거 네가 오전에 감방에서 말해준 거잖아!”“난 그런 적 없어...”연다인은 바로 배정우의 품으로 숨으며 눈치를 살피곤 입을 열었다.“정우야, 난 오전에 감방에 간 적 없어...”“하, 거짓말하지 마. 너 분명 왔잖아. 너 때문에...”임슬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배정우가 소리를 지르며 잘라버렸다.“그만! 임슬기, 아직도 부족해서 이러는 거야? 간호사를
‘17년이라니?'연다인을 안고 있던 배정우의 손이 경직되었다. 그와 임슬기는 알고 지낸 지 4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17년이라니 말이 되지 않았다.“하, 정말 갈수록 뻔뻔해지네. 17년이라고? 그딴 시간은 대체 어떻게 계산한 거지?”임슬기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지만 가슴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자꾸만 찬 공기만 들어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그는 잊은 것이다... 그와 다시 만나게 된 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언급한 적 없었다. 그저 이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해 하늘이 그와 그녀를 이어준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에야 알게 되
임슬기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녀는 그저 자신의 주치의에게만 폐렴이라고 검사 결과를 고쳐달라고만 했다. 그런데 연다인이 이 일과 연관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임슬기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그러니까 누가 병원 사람들을 매수해 제 검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건가요?”“네, 간호사까지 전부 매수했어요. 그러면서 저는 임슬기 시가 매수한 사람이라고,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문까지 냈더라고요. 그래서 임슬기 씨 남편도 그렇게 믿고 있는 거예요.”‘그런 거였다니...'임슬기는 픽 웃었다. 연다인
연다인은 임슬기의 앞으로 다가가 길을 막아서며 이 말을 던진 것이다. 임슬기는 그대로 얼어붙게 되었다. 현재 상황에서 연다인이 원한다고 한마디만 한다면 배정우는 바로 사줄 것이 분명했으니까.대성 그룹에 140억이란 아무것도 아닌 돈이었다. 하지만 임씨 가문 저택은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이었고 그곳엔 부모님과 오정태, 그리고 임종현과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집 안에는 예전에 쓰던 물건도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연다인이 범죄를 저지른 증거도 있었던지라 절대 연다인의 손에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되었다.“본가 저택을 손에 넣어서 뭐하게?”
다시 진승윤을 떠올렸을 때는 며칠이 지난 후였다. 어차피 진승윤과 별다른 사이도 아니었고 진승윤은 배정우의 친구였으니 떠오르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였기에 그녀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진승윤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었다.역시나 그녀의 곁에 남은 사람들 중 행복한 결말을 맺은 사람은 없었다.진승윤은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 심각한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미안해요.”“정말 괜찮다니까요...”연다인이 비웃으며 끼어들었다.“슬기야, 정우가 자꾸 오해하고
당황한 임슬기를 본 진승윤은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마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매번 슬기 씨를 볼 때마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인데 변호사로서 어떻게 그냥 보고 지나쳐요. 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똑같이 구해주려고 했을 거예요.”말을 마친 그는 행여나 임슬기가 오해하고 부담이라도 느낄까 봐 계속 설명했다.“정우도 지금 날 의심하고 있진 하지만 전 정우의 방법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정우는 제 친구니까 정우 대신 슬기 씨를 돌봐주고 있는 거예요.
‘놀이 상대?'‘빌려주겠다고? 내가 자기 거라면서. 평생 자기 여자라고 했으면서 이젠 놀이 상대로 된 거야?'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발걸음 소리를 듣게 되어 가슴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정우가 온 건가? 왜 온 거지?'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점점 정우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 순간 머리채 잡힌 그녀는 강제로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배정우는 차가운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바싹대며 이를 빠득 갈았다.“임슬기, 그새 못 참고 또 남자한테 꼬리 치고 있었던 거야?”“아니야... 난
임슬기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오랜만에 어머니를 만났고 울면서 안기려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엔 투명한 벽이라도 놓인 듯 가까이 갈 수 없었다.어머니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초조해진 임슬기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엄마!”하지만 어머니는 그저 슬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뿐, 점점 멀어져 갔다.“엄마, 가지 마!”임슬기는 울부짖으며 투명한 벽을 깨뜨리려 몸을 던졌다.“나도 데려가 줘... 엄마, 제발...”그렇게 울던 임슬기는 눈을 떴다. 손은 아직도 진승윤의 팔을 꼭 붙잡
“말해!”배정우는 온성현의 멱살을 낚아채 들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잔혹하게 번뜩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누가 시킨 거야? 누가 내 아내를 해치라고 했지?”이때의 온성현은 이미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는 도련님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온성현은 울먹이며 애원했다.“배, 배 대표님... 제발 죽이지 말아 주세요.”배정우는 싸늘하게 웃으며 손을 놓고 곧바로 그의 배를 짓밟았다. 살짝만 힘을 줬을 뿐인데 온성현은 피를 쏟으며 고꾸라졌다.“온성현. 지금 네가 운 좋은 건, 죽어가는 사람
진승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였어.”그 말에 임슬기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진승윤의 손등에 뚝뚝 떨어졌고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고마워, 승윤아. 정말 고마워...”임슬기가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때 그녀가 17년을 사랑했던 남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녀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던 사람이었던 진승윤은 아무 대가도 없이 그녀를 살렸다.그 은혜를 임슬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은 자신이 사랑했던 그 남자에게 철저하게 부서졌다.진
배정우는 걸음을 멈췄지만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목소리는 거칠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다인이를 죽게 둘 수 없어.”그 말을 들은 임슬기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의 등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가슴 어딘가에 날카로운 칼이 꽂힌 듯 그 틈으로 스며든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얼려버렸다. 슬픔도, 원망도 전부 꽁꽁 얼어붙었다.연다인이를 죽게 둘 수 없다는 그 말은 곧 임슬기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연다인은 절대 안 된다는 뜻이었다.배정우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그렇게도 하찮은 존재인데, 대체 왜 지금까지 놓아주지
지금 이 순간 임슬기는 배정우와 말다툼할 기력조차 없었다.“당장 놔!”“말해!”하지만 배정우는 그녀를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손에 힘을 더 주며 움켜잡았다.“왜? 그렇게 다인이가 죽길 바라는 거야?”“아파, 이거 놔!”“하, 아프다고? 다인이가 죽으려고 손목 그었어. 너 알고나 있어?”그 말에 임슬기는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곧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그래, 난 걔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 걔는 집사님이랑 우리 엄마를 죽였고, 아빠도 죽게 만들었어. 게다가 이제 너까지 빼앗아 갔어. 그런 인간은 죽어 마
“임슬기 씨?”임슬기가 고개를 들자 위용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고 안쪽을 가리켰다.“현정이... 빨리! 현정이 좀 살려줘요!”둘이 병실 문 앞까지 달려갔을 때 안에서 김현정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악!”위용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뛰어들어 남자를 제압했고 임슬기는 쓰러진 김현정을 얼른 안았다.그때 임슬기의 눈에 들어온 건 김현정의 가슴에 깊이 꽂힌 칼과 피였다. 임슬기는 순간 얼어붙었다.김현정의 가슴팍은 피로 뒤덮였고 선홍빛이 임슬기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현정아!”목소리는 떨렸고 눈물은 김현
“이건...”순식간에 또 다른 기사가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치고 올라왔다.[최악의 불륜녀 연다인. 상류층 입성을 위해 자작 교통사고. 본처에게 죄 뒤집어씌워]임슬기의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요동치며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켰다.그녀는 기사 제목을 눌러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심지어 의사의 증언까지 실려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연다인은 정말 끝이었다.댓글은 하나같이 연다인을 향한 비난으로 가득했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도 많았다. 보다 못한 임슬기는 결국 화면을 닫아버렸다.“현정아...”눈물이 저절로 흐르기 시작했다. 임슬기
“또 다른 딸이 있다고요?”김현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러자 임슬기는 계단 입구에서 우연히 듣게 된 대화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숨김없이 모두 털어놨다.이야기를 다 들은 김현정은 곧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언니, 혹시 김서우가 진짜 김씨 집안 딸이 아닌 거 아닐까요?”‘김서우가 친딸이 아니라고?’임슬기는 그 말에 망설이며 고개를 저었다.“설마... 그럴 리 없잖아. 명인시에서 다 아는 일이잖아. 김진국 차희라 부부가 얼마나 김서우를 아끼는지. 진짜 딸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임슬기는 잠시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어떻게 왔어?”진승윤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어제도 왔었어. 근데 네가 자고 있길래, 무사한 거 확인하고 그냥 갔지.”그러다 이내 표정이 굳으며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런데 넌 이런 큰일이 생겼는데도 나한텐 말도 안 해? 나를 남으로 생각하나 보지?”그 말에 임슬기의 마음이 따뜻해지며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별일도 아니었고.”“별일이 아니라고? 임슬기, 다음부턴 거짓말하려거든 대본이라도 써놔.”할 말이 없어진 임슬기는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