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슬기는 화가 나 몸까지 부들부들 떨렸다. 연다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다.“연다인, 네가 직접 나한테 말했잖아. 교통사고도 거짓말이라는 거 네가 오전에 감방에서 말해준 거잖아!”“난 그런 적 없어...”연다인은 바로 배정우의 품으로 숨으며 눈치를 살피곤 입을 열었다.“정우야, 난 오전에 감방에 간 적 없어...”“하, 거짓말하지 마. 너 분명 왔잖아. 너 때문에...”임슬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배정우가 소리를 지르며 잘라버렸다.“그만! 임슬기, 아직도 부족해서 이러는 거야? 간호사를
‘17년이라니?'연다인을 안고 있던 배정우의 손이 경직되었다. 그와 임슬기는 알고 지낸 지 4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17년이라니 말이 되지 않았다.“하, 정말 갈수록 뻔뻔해지네. 17년이라고? 그딴 시간은 대체 어떻게 계산한 거지?”임슬기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지만 가슴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자꾸만 찬 공기만 들어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그는 잊은 것이다... 그와 다시 만나게 된 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언급한 적 없었다. 그저 이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해 하늘이 그와 그녀를 이어준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에야 알게 되
임슬기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녀는 그저 자신의 주치의에게만 폐렴이라고 검사 결과를 고쳐달라고만 했다. 그런데 연다인이 이 일과 연관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임슬기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그러니까 누가 병원 사람들을 매수해 제 검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건가요?”“네, 간호사까지 전부 매수했어요. 그러면서 저는 임슬기 시가 매수한 사람이라고,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문까지 냈더라고요. 그래서 임슬기 씨 남편도 그렇게 믿고 있는 거예요.”‘그런 거였다니...'임슬기는 픽 웃었다. 연다인
연다인은 임슬기의 앞으로 다가가 길을 막아서며 이 말을 던진 것이다. 임슬기는 그대로 얼어붙게 되었다. 현재 상황에서 연다인이 원한다고 한마디만 한다면 배정우는 바로 사줄 것이 분명했으니까.대성 그룹에 140억이란 아무것도 아닌 돈이었다. 하지만 임씨 가문 저택은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이었고 그곳엔 부모님과 오정태, 그리고 임종현과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집 안에는 예전에 쓰던 물건도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연다인이 범죄를 저지른 증거도 있었던지라 절대 연다인의 손에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되었다.“본가 저택을 손에 넣어서 뭐하게?”
다시 진승윤을 떠올렸을 때는 며칠이 지난 후였다. 어차피 진승윤과 별다른 사이도 아니었고 진승윤은 배정우의 친구였으니 떠오르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였기에 그녀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진승윤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었다.역시나 그녀의 곁에 남은 사람들 중 행복한 결말을 맺은 사람은 없었다.진승윤은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 심각한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미안해요.”“정말 괜찮다니까요...”연다인이 비웃으며 끼어들었다.“슬기야, 정우가 자꾸 오해하고
당황한 임슬기를 본 진승윤은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마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매번 슬기 씨를 볼 때마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인데 변호사로서 어떻게 그냥 보고 지나쳐요. 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똑같이 구해주려고 했을 거예요.”말을 마친 그는 행여나 임슬기가 오해하고 부담이라도 느낄까 봐 계속 설명했다.“정우도 지금 날 의심하고 있진 하지만 전 정우의 방법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정우는 제 친구니까 정우 대신 슬기 씨를 돌봐주고 있는 거예요.
‘놀이 상대?'‘빌려주겠다고? 내가 자기 거라면서. 평생 자기 여자라고 했으면서 이젠 놀이 상대로 된 거야?'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발걸음 소리를 듣게 되어 가슴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정우가 온 건가? 왜 온 거지?'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점점 정우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 순간 머리채 잡힌 그녀는 강제로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배정우는 차가운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바싹대며 이를 빠득 갈았다.“임슬기, 그새 못 참고 또 남자한테 꼬리 치고 있었던 거야?”“아니야... 난
배정우가 나간 뒤 한참 지나도 임슬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눈물은 말라버려 얼굴에 자국을 남겼고 빛을 잃은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을 보았다.감방에서 나오긴 했지만 배정우가 언제 다시 감방으로 보낼지는 아무도 몰랐다. 게다가 임씨 가문 저택이 매매로 나왔으니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부모님의 사망 원인도 알아내지 못했고 오정태도 구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동생인 임종현도 만나지 못했다...그녀는 혀를 꽉 깨물자 바로 피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눈을 깜빡이며 침대에서 일어나 배를 만졌다. 그녀에겐 죽는 것도 허
“이건...”순식간에 또 다른 기사가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치고 올라왔다.[최악의 불륜녀 연다인. 상류층 입성을 위해 자작 교통사고. 본처에게 죄 뒤집어씌워]임슬기의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요동치며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켰다.그녀는 기사 제목을 눌러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심지어 의사의 증언까지 실려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연다인은 정말 끝이었다.댓글은 하나같이 연다인을 향한 비난으로 가득했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도 많았다. 보다 못한 임슬기는 결국 화면을 닫아버렸다.“현정아...”눈물이 저절로 흐르기 시작했다. 임슬기
“또 다른 딸이 있다고요?”김현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러자 임슬기는 계단 입구에서 우연히 듣게 된 대화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숨김없이 모두 털어놨다.이야기를 다 들은 김현정은 곧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언니, 혹시 김서우가 진짜 김씨 집안 딸이 아닌 거 아닐까요?”‘김서우가 친딸이 아니라고?’임슬기는 그 말에 망설이며 고개를 저었다.“설마... 그럴 리 없잖아. 명인시에서 다 아는 일이잖아. 김진국 차희라 부부가 얼마나 김서우를 아끼는지. 진짜 딸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임슬기는 잠시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어떻게 왔어?”진승윤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어제도 왔었어. 근데 네가 자고 있길래, 무사한 거 확인하고 그냥 갔지.”그러다 이내 표정이 굳으며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런데 넌 이런 큰일이 생겼는데도 나한텐 말도 안 해? 나를 남으로 생각하나 보지?”그 말에 임슬기의 마음이 따뜻해지며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별일도 아니었고.”“별일이 아니라고? 임슬기, 다음부턴 거짓말하려거든 대본이라도 써놔.”할 말이 없어진 임슬기는 고개를
모녀는 부둥켜안고 울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세상에, 나이도 어린 애가 얼마나 독하면 어른한테 무릎 꿇게 해?”“무릎 꿇은 사람 김씨 가문 사모님이라며? 저 여자가 대체 뭘 했길래 김씨 가문에서 고개를 숙이는 거야?”“듣기로 저 여자 내연녀라던데...”소문은 점점 더 황당하게 부풀어갔다. 결국 참다못한 임슬기가 주변을 싸늘하게 훑어보며 말했다.“입이라는 게 있으면 책임도 있어야죠. 함부로 거짓 퍼뜨리는 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고 싶어요?”그 말에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움찔하며 한 발씩 뒤로
차희라는 이 모든 걸 전혀 몰랐던 듯 임슬기의 목덜미에 선명하게 남은 멍 자국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그게... 그게 우리 서우가 한 거라고요?”임슬기는 옷깃을 여미며 고개를 끄덕였다.“네.”“말도 안 돼... 그럴 리가...”차희라는 충격을 받은 듯 입술까지 떨고 있었다.“김서우 씨가 말로만 저를 험담했으면 그냥 넘겼을 거예요. 그런데 저를 진심으로 미워하더라고요.”임슬기는 알고 있었다. 김서우의 적의에는 진승윤이 한몫하고 있다는걸.하지만 어제 그녀가 목을 조르던 순간 언급했던 건 그 남자 하나만이 아니었
그 숨결이 너무 익숙했다. 배정우였다. 임슬기는 눈을 뜨려 했지만 시야는 뿌옇고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배정우는 쓰러진 임슬기를 품에 안은 채 눈빛에 살기를 띠며 말했다.“죽고 싶어?”김서우는 그 기세에 질려 다리가 풀리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배정우 씨, 그게 아니에요. 아까 보신 그건... 이 여자가 먼저...”하지만 배정우는 단 한마디의 변명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꺼져.”그 말에 김서우는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휘청이며 병실을 빠져나갔다.배정우는 조심스레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서우가 대뜸 다가와 임슬기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짝!임슬기의 고개가 홱 돌아가고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화면이 켜지면서 진승윤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떴고 이어 전화기 너머로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슬기야? 무슨 일이야?”그 목소리에 기름을 부은 듯 김서우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고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더니 임슬기의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이 더러운 년, 대체 뭘 바라는 거야? 승윤 씨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그럼 이건 뭐야! 다인이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넌 그
김현정을 제대로 쉬게 하려고 임슬기는 식사를 마친 후 일부러 그녀에게 더 자라고 말했다. 처음엔 김현정이 완강히 거절했지만 결국 임슬기를 이기지 못하고 얌전히 다시 눕게 되었다.병실로 돌아가던 길, 임슬기는 계단 입구 근처를 지나다가 우연히 차희라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내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 알잖아. 꼭 살아서... 그 애를 만나야 해.”“사모님, 벌써 스무 해가 넘었잖아요. 이제 그만 포기하시는 게... 김서아 씨도 계시고, 충분하지 않나요?”하지만 차희라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아니야, 달라. 그 애
밤새 울었던 탓에, 아침에 눈을 뜨자 임슬기의 눈은 또 퉁퉁 부어 있었다.부기를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기 위해 따뜻한 수건으로 찜질까지 하고 나서야 간신히 외출할 얼굴이 되었다.몸단장을 마치고 김현정을 보러 가려던 참에 문을 나서자 문 앞에 놓인 영양제들과 보온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임슬기는 영양제를 방 안에 들여놓고 보온 가방을 열어보았다.안에는 보온 도시락 두 개가 들어 있었고 흔들어보니 안에 국물이 담긴 듯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어디에도 쪽지는 없었고 누가 두고 간 건지도 알 수 없었다.찜찜한 기분에 임슬기는 잠시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