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심은 샤워를 도와주는 중 불가피하게 손이 닿을 때마다 시언의 탄탄한 피부에서 전해지는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언의 단단한 근육은 아심의 부드럽고 하얀 손과는 대조를 이루며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아심은 거리낌 없이 시언의 가슴부터 아래로 거품을 발라 내려가며 씻겨 주었고, 다시 위로 손을 올리려는 순간, 시언이 손을 잡아 멈춰 세웠다. 그의 팔 근육은 긴장으로 인해 힘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됐어, 이제 나가.”아심은 장난스럽게 말했다.“한 번 더 발라야 깨끗해질 텐데요. 다 끝나고 나면 바디크림도 발라줄 수 있는데, 어때요?”시언은 그윽한 눈빛으로 시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더 안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장담 못 해.”아심은 시언의 시선을 피하며 잠깐 내려다보았다가 얼른 거품을 씻어주고 나와버렸다.문을 닫자마자 안에서 시언의 낮은 앓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심은 순간 긴장했지만, 곧 시언의 상처에 물이 닿았을까 걱정되어 손을 문에 올린 채 다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곧 무슨 상황인지 깨닫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사실 아심은 바로 위층으로 가려 했지만, 거실을 지나자 진서하가 식탁에 저녁을 세팅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젖은 티셔츠와 바지를 내려다보며 아심은 이런 상태로 밖에 나가면 오해를 살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언의 방에 다시 돌아와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시언이 허리에 수건을 두른 채 머리를 닦으며 방에서 나왔다. 그가 잠시 멈춰 아심을 보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아심은 말했다.“진서하 씨에게 나가서 쉬라고 해 주세요.”시언은 아심의 젖은 옷차림을 한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옷장에서 자기 티셔츠 하나를 꺼내 아심에게 건넸다.“여기서 씻어. 샤워 후에 와서 저녁 먹자.”“저도 제가 쓰는 전용 바디워시와 크림을 써야 해요. 게다가 티셔츠만 갈아입을 수도 없고요. 먼저 내보내 주세요.” 아심이 단호히 말했다. 시언은 아심을 잠시 바라보
강시언의 눈에는 냉랭한 기운이 가득했고, 말투도 차가웠다.“이미 선택한 거 아니야? 뭘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거지?”시언은 말을 마치고 손을 닦은 후, 그대로 돌아섰다. 아심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설거지하다가, 목이 메어 삼키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일, 강성으로 돌아갈 거예요.”시언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더욱 차가워졌다.“마음대로 해. 네 일은 네가 알아서 결정해.”시언은 그 말을 남기고 더 이상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아심은 두 손으로 주방 싱크대의 차가운 대리석을 힘껏 짚고, 고개를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후에야 남은 설거지를 다시 시작했다.주방과 식당을 모두 정리하고 불을 끄고 나서, 아심은 무의식적으로 1층 방 쪽을 한 번 더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침대에 누웠지만 하루의 피로가 몰려와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뒤척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산속의 별은 유난히 밝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지만, 아심이 올려다본 하늘은 회색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달도 희미하게 노란빛만 남겨둔 채 숨은 듯했다.‘비가 오려나. 내일은 산에서 내려간 후에 비가 왔으면 좋겠어.’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아심은 문득 아래층의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시언 역시 잠들지 않은 듯했다. 베란다에서 몸을 살짝 기울이면 시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아심은 그 충동을 꾹 참으며 다시 하늘의 별을 찾기 시작했다.목이 뻐근할 정도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멀리 있는 작은 별장을 보았고, 무언가에 끌리듯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핏 보니 기주현이었다.발목을 다친 주현이 왜 방에 들어가 쉬지 않고 풀밭에 앉아 있는지 의아했다. 아심은 의아해하며 외투를 걸치고 주현에게 다가갔다....가까이 다가가자 역시 주현이 맞았다. 주현은 혼자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심을
“처음엔 응원했는데, 이렇게 여기저기 떠돌면서 연애 한 번 못 하는 걸 보더니 슬슬 초조해지신 거죠.” 주현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결혼하라고 하신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몰라요. 매번 거절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기정사실로 만들었죠. 소개팅 상대도 이미 정해 놨다더라니 까요.”“집에 가자마자 혼인 서류 쓰고, 결혼식 올리고, 결혼식 끝나면 바로 신혼 방 입성.”아심은 주현의 불만스러운 투에 웃음을 터뜨렸다.“뭐 그렇게 빨리 진행되겠어요?”주현은 볼을 괴며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집이 돈은 있어도 권력은 없거든요. 그러니 우리 부모님은 항상 권력 있는 가문으로 시집가길 바라시고요.”“이번 소개팅 상대도 무슨 과장의 아들이래요. 심지어 우리 남동생은 그쪽 도움 덕에 공무원 자리까지 잡았다고 엄청나게 만족하시더라고요.”“그러니 가자마자 결혼식 올리고 신혼 방 입성, 그게 전혀 과장된 얘기 아니고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싫다면 반대할 수도 있죠.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평생의 반려자를 대신 정해 줄 순 없으니까.”주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당연히 싫죠, 게다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할 리도 없고요.”“근데 만약 그 사람이 키도 크고 잘생겼다면?”“그렇더라도 안 좋아할걸요!”아심은 주현의 단호함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역시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네요?”주현은 얼굴이 붉어지며 말없이 입술을 깨물고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리란 법은 없잖아요.”아심은 주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낯선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에 둔 사람에게 고백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떠나버릴까 봐 두려운 것이다.“직접 물어보면 되잖아요.” 아심이 말하자, 주현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절대 안 해. 거절이라도 당하면 나중에 얼굴을 어떻게 보고 지내요? 설령 사귀게 된다 해도 평생 그 앞에서 당당하지 못할 거라고요.”“사랑이
수요일 저녁 7시 정각 소희는 전위 호텔 앞에 나타났다.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리자 소희는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아빠 소정인이었다. [소희야, 아빠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차가 좀 막히네. 먼저 들어가있어.]소희는 발걸음을 늦추며 이따 임구택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까 생각하고 있었다.결혼 3년 동안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임구택이 이 결혼을 동의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부한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그렇다고 임구택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과거 소씨 가문의 회사가 위기를 맞자 뻔뻔하게 임씨 가문을 찾아가 혼인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였고, 당시 임씨 가문의 장남은 이미 결혼을 한 터라 자연스레 그 약속은 차남 임구택이 이행하게 되었다. 그가 내키지 않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임씨 가문은 당연히 소씨 가문에 좌지우지 당하지만은 않았다. 예물로 50억 원을 건네어 소씨 가문이 난관을 이겨내게 도우면서도 조건을 제시했다. 3년 뒤에 이 혼사가 자동 해지되는 것으로.3년 전, 그녀는 아직 법정 결혼 연령이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라스베가스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대리인이 가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결혼하자마자 임구택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결혼 해지를 석 달 앞두고 돌아왔다. 결혼을 거부한다는 태도가 너무나도 뚜렷했다.하필이면 오늘, 그녀의 아버지가 회사 때문에 그녀를 앞세워 다시 한번 그를 찾아가 부탁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소희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생각하였다. “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 아내에요!”그가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할까?듣건대 임구택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강성의 유명한 악질이었다고 한다. 강성의 흑과 백을 모두 통솔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매섭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지만 며칠 전 TV의 경제 채널에서 임구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명품 양복을 입고, 거만하면서도 우아하고 듬직해 보였다.그녀는
그의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일을 마친 후 돈을 지불하다니. 그녀는 그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걸까?남자가 냉담한 얼굴을 하고 발코니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과연 창문이 열려 있었다.여기는 층고가 높아서 3층이 4층 높이일 텐데 그녀는 어떻게 뛰어내렸을까?그가 그렇게 무서웠나?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칠 만큼?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물을 끼얹은 듯 청량한 바람이지만 남자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화는 식히지 못하였다. 이 여인은 만 원으로 그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일이 끝난 후에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 잡히기만 해봐! ......택시에 앉은 소희가 재채기를 하자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물었다. “아가씨, 괜찮아요?”이렇게 예쁘게 생겨서 홀딱 젖어있다니, 딱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학생이죠? 밖에 혼자 다닐 때 각별히 조심해야 되요.”“네, 감사합니다. 기사님.”소희는 대답하고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천위 호텔의 7시와 9시경에 내가 찍힌 CCTV 기록은 모두 없애!”“ok!” 상대방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시에 따랐다.남자의 귀에 거슬리는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려 퍼졌다. 소희는 오늘 임구택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따위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다만 임구택이 그녀가 왔었다는 사실을 모르게만 하고 싶었다.운해로에서 내리면서 소희는 뒷좌석을 적신 대가로 택시비를 두 배로 지불했다.별장으로 돌아오자 하인은 소희의 젖은 옷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작은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일이 좀 있었어요, 일단 올라가서 샤워부터 할게요.”소희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목욕물 준비해 드릴게요.”하녀는 더 묻지 못한 채 위층으로 올라가 준비했다.몇 분 후 소희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긴장했던 몸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머릿속이 복잡해서 머리까지 물속에 파묻고 오늘 밤에 있
소희는 멍해졌다.남자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왜 절 따라오시는 거예요? 강성대 학생이신가요?”그는 오는 길에서부터 이 여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멈추면 그녀도 무슨 일이 있는 척 멈추더니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소희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내 다시 냉정을 되찾고 반문했다. “여기가 당신 집으로 가는 길인가요?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을 왜 제가 따라다닌다고 하는 거죠?”남자의 눈동자의 싸늘한 빛이 스치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소희에게 올라오라고 눈짓했다.소희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비꼬듯 말했다. “됐어요, 오해받을 만한 행동 안할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서 계단으로 걸어갔다.그녀 뒤로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며 남자의 가늘게 뜬 눈을 가렸다.소희는 임구택과 다시 마주칠까 봐 아예 계단으로 9층까지 올라갔다.회의실에 도착하니 조교가 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교는 그녀를 보자 잠시 기다리라고 눈짓했다.그 옆에는 몇몇 학생들도 자료를 제출하러 왔는데, 그중 한 명은 따가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소희는 못 본 척 휴대폰을 꺼내 스도쿠를 했다.5분도 안 돼 한 판을 풀고 나니 밖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돌아온 지 얼마 안 됐죠? 출국한지 오래됐으니 돌아올 때 됐구나 싶었는데”교장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한 사람은 교장선생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임구택도 소희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머물지 않고 바로 지나갔다.학과장은 급히 마중 나가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방 교장은 그에게 소개하였다. “이 분은 LS그룹의 대표이사님이십니다. 예전에 우리 학교 학생이었지요. 참, 우리 학교 여러 항목의 장학금도 임 회장님이 후원한 것입니다.”그러자 학과장은 냉큼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임구택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마침 학생들에게 장학금 신청 서류를 제출
임구택은 그날 창문에서 뛰어내린 여자를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명우는 제일 먼저 천위 호텔의 CCTV를 조사했다.이상하게도 7시와 9시 두 시간대 모두 공백 상태였고 천위 호텔의 보안요원조차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당시 인터넷이 끊겼을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 있었다.그래도 명우는 한 사람을 찾았다. 서이연.서이연은 B급 배우로 청순하고 러블리한 이미지의 노선을 걷고 있으나 줄곧 뜨지 못했다. 어제 저녁 6시 50분쯤 그녀가 천위 호텔에 들어가 연풍관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CCTV에서 볼 수 있었다. 이후 CCTV 기록에는 공백이 있어 그녀가 어느 방으로 갔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9시 5분경 서이연의 매니저가 그녀를 부축하고 연풍관 밖에 나타났는데, 그녀는 한쪽 다리를 구부린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그 뒤로 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에 명우는 서이연이 어떤 차를 타고 떠났는지 몰라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젯밤 그녀는 왼쪽 다리를 수술했다.명우는 이미 차트를 확인했는데 낙상이었다.그날 밤, 강성의대 부속병원.VIP706호. 병상에 누워있는 여인은 두 손을 맞잡고 불안한 표정으로 맞은 켠 소파에 앉은 임구택을 바라보았다. “임 대표님 무슨 일이에요?”“다리 어떻게 다쳤어요?” 임구택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서이연은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반쯤 늘어뜨린 눈꺼풀 아래 눈물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 대표님과 관련이 있나요?”“숨길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 이미 CCTV를 확인했으니까. 어젯밤 9시쯤 매니저가 당신을 부축해서 차를 타고 떠날 때 다리는 이미 부러져 있었죠. 그날 밤 제 방에서 뛰어내린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맞나요?” 임구택의 어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담담했다.손님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천위 호텔은 카메라가 객실 창문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이연이 어디서 뛰어내렸는지는 볼 수 없지만,
여인이 달려들며 손에 들고 있던 꽃들은 소희의 몸에 던져졌다. 힘껏 소희를 뒤로 밀치고는 소연을 품에 끌어안았다.진원은 긴장한 채 소연의 몸을 살펴보며 물었다. “다친 거야? 혹시 피났어? 어디 아프니?”이슬을 머금은 꽃잎이 온 바닥에 흩어지고 꽃의 가시가 소희의 목덜미를 찔러 따끔거렸다. 그녀는 여인의 긴장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소정인은 이내 다가와 소희에게 물었다.“안 다쳤니?”진원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무서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야, 소연이를 죽이려는 거니?”소희는 여인의 눈에 비친 혐오와 원한을 보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소연은 소희를 한 번 쳐다보고는 급히 진원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엄마, 오해예요. 제가 언니한테 머리 좀 잘라달라고 했어요. 언니는 절 다치게 하지 않았어요.”“그렇구나!”소정인은 ‘하하’하고 웃으며 진원을 원망했다. “당신은 항상 너무 급해서 문제야. 무슨 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화부터 낸단 말이야. 당신 때문에 소희 옷이 다 더러워졌잖아.”진원은 자신이 소희를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안해하며 변명했다. “들어오자마자 소희가 가위를 소연이의 목에 대고 있길래... 머리를 자르는 건줄도 모르고...”“그만 해!”소정인은 진원에게 눈짓을 하고는 소연에게 말했다. “언니 데려고 가서 옷 좀 갈아입혀. 옷이 다 더러워졌네.”“언니, 이리 와!”소연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희는 어깨의 꽃잎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2층 침실로 들어가자 소연이 사과했다. “언니, 정말 미안해, 엄마가 이 시간에 돌아올 줄 몰랐어. 나 때문에 언니가 다쳤네.”“너 때문이 아니야!”소희의 순수한 얼굴에는 한 줄기 미소를 띠고 있었다.소연은 옷방에 가서 흰색 티셔츠를 가져와 소파에 놓았다. “언니, 이건 새거야, 한 번도 안 입었어. 옷 갈아입어, 난 내려가서 기다릴게.”“응.”소연이 문을 닫자 소희는 소파 위의 옷을 보며 안색이 흐려졌다. 한쪽에서는 머리를 잘라달라